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이음 온라인]에 공연·전시·행사 등 문화예술 소식을 보내주세요. 프로그램 등록 신청 안내

진우가 아빠 여행시켜준 날

자립, 그 언저리

  • 작성자김인규
  • 등록일 2021-01-26
  • 조회수266
  • 진우와 함께한 기차여행 - 대천 가는 기차 안에서

그간의 여행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진우가 주도하고 아빠는 진우가 하는 대로 따랐다는 것이다. 아빠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으로 가정하였다.

“오늘 아빠는 정말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야. 진우가 아빠 기차도 태워줘야 하고, 밥도 사줘야 해. 진우가 하자는 대로 할 거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니까.”

진우는 그렇게 하기로 하고 앞장을 섰다. 어딜 갈 거냐고 물으니, 대천해수욕장을 가겠단다. 얼마 전 자조모임에서 대천해수욕장을 다녀온 적이 있어서 자기가 안내할 수 있고, 아빠한테 구경시켜주겠다고 했다. 모든 일을 진우가 이끌기 시작하였다.

진우는 기차를 타러 장항역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가까운 서천역도 있건만, 반대 방향으로 한 정거장 더 가야 하는 장항역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서해금빛열차를 타고 갈 것이고, 그게 서천역에 서지 않으니까 장항역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장항역에 가면 대천역으로 가는 서해금빛열차를 탈 수 있고, 11시 37분에 출발한다고 했다. 우리는 집에서 오전 10시경에 나왔지만, 우여곡절을 겪으며 대략 11시 30분쯤 장항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11시 37분 서해금빛열차는 익산역 방향으로 가는 차였다. 익산역은 대천역과는 반대 방향으로, 하행열차 종점이었다.

어찌할 거냐 물으니, 그렇다면 익산까지 가야 한단다. 거기서 대천역에 가는 기차를 타자는 것이다. 장항역에서 기다렸다가 상행열차를 타면 대천역에 갈 수 있었지만, 나는 진우가 하자는 대로 익산행 열차를 탔다.

우리는 12시경 익산역에 도착했고, 근처에서 점심을 먹어야 했다. 그러고 나서 오후 1시경 다시 대천 가는 열차표를 구매하기 시작했다. 매표창구가 있었지만 진우는 자동발매기에서 기차표를 사려 했다. 1시 20분 열차가 있는데 현금카드를 삽입해야 하는 시점을 잘 맞추지 못한 탓에 기차표 구매에 계속 실패하였다. 진우는 차 시간을 잘못 선택하여 그렇다고 생각하였는지 2시 20분 열차로 변경하였다. 그리고 정말 발매가 이루어졌다.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말이다. 처음에는 1장밖에 구매하지 않아, 다시 어렵사리 2장을 발매하고 먼저 구매했던 1장은 매표창구에 가서 반환하였다.

그런데 얼마 후 전광판에 2시 20분 상행열차 좌석이 매진되었다고 알림이 뜨자, 그것을 본 진우는 발을 동동 굴렀다. 매진되었으니 차를 탈 수 없다는 것이다. 진우는 궁리를 하더니 이제 행선지를 변경해야 한다고 했다. 갑자기 천안아산역으로 가자는 것이다. 벌써 2시를 넘겼으니, 진우 말대로 따르다가는 대천해수욕장은커녕 집으로조차 돌아갈 수 없을 상황이었다. 돌아오는 표가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고, 진우 방식대로 한다면 시간을 맞출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나는 이제 진우에게 떼를 써야만 했다.

“아빠는 가지 않을 거야. 집에 갈 거야. 집에 갈 거야~ 힘들어!”

진우는 그럼 도고온천으로 가자고 제안했다가 아빠의 반대에 부딪히자, 애초에 정한 대로 가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우리는 그렇게 어렵사리 대천행 열차를 탈 수 있었다. 3시 30분을 넘겨 대천역에 도착했고, 이제 대천해수욕장으로 가면 될 일이었다. 그렇지만 진우는 서천으로 돌아가는 차표를 미리 사두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다시 승차권 자동발매기와 씨름을 시작하였다. 익산역에서 겪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발매는 쉽지 않았다. 발매기를 바꿔가며 해보았지만 여전히 오류를 반복했다. 현금카드를 삽입하는 시점을 맞추지 못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진우는 매표창구에 가서 기차표를 구매했다.

“서천 가는 열차 있어요?”
“네 2시 59분 차가 많이 연착되어 앞으로 20분 후쯤 도착할 거예요.”
“그럼 그걸로 2장 주세요.”

진우는 기차가 금방 온다고 하니 대천해수욕장을 갈 수 없다고 했다. 시계를 보니 3시 4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진우는 기차표와 시계를 번갈아 보더니 시간이 틀렸다고 표를 잘못 끊어줬다고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진우는 표를 다시 끊어야 한다며 자동발매기에 가서 다시 발매를 시도했다. 이번에는 발매에 성공했다. 몇 차례 오류를 반복하다가 발매 환경을 ‘빠른발매’에서 ‘일반발매’로 변경하였는데, 그렇게 하니 카드 삽입 시점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1장밖에 끊지 않아 다시 2장을 추가로 발매하고는 매표창구로 가서 1장은 반환요청을 했다. 5시 46분 열차표였다. 매표창구의 역무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표를 다시 끊었어요?”
“시간이 안 맞아서요.”
“아니에요! 그 기차가 지금 올 거예요. 방금 끊은 표 다 주세요. 그것 다 반납하고 아까 끊어준 표로 기차 타세요. 지금 곧 기차가 들어오니 어서 타세요!”

진우는 아무 소리 못 하고 표를 다 반환하였다. 그리고는 말했다.

“아빠! 기차가 금방 온대. 그래서 오늘 대천해수욕장은 못 갈 것 같아.”

승차장에 올라서서는 서천역 방향이 맞는지 또 한참을 고심해야만 했다. 서천에 돌아오니 5시쯤 되었다. 오전 10시경 집에서 나와 그 시간까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결국 대천해수욕장에 가지 못한 채로 서천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대천역은 서천역에서 실제로는 4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였지만 말이다. 그런 우여곡절이 없었다면 아마도 대천해수욕장에 가서 점심을 먹고 돌아올 수 있는 일이었다.

아무튼 우리는 그날 대천해수욕장에 가지 못했다. 그렇지만 진우는 아쉬워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았다. 그냥 대천해수욕장에 가지 못했을 뿐이다. 대신 기차역을 전전하며 흥미진진한 하루를 보냈다고 느끼는 듯했다. 좋아하는 서해금빛열차도 타고 말이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진우는 다음 주에 대천해수욕장에 다시 가자고 했다.

진우가 예고 없이 기차여행을 떠나는 바람에 내가 멘붕에 빠졌던 게 벌써 1년 가까이 되었다. 진우는 스스로 움직이고 싶어 했다. 그러나 늘 아빠가 정하는 범위 안에서 아빠의 코멘트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그게 안전하니까. 그래서 결국 진우는 수동적인 위치에 묶이게 되는 것이다. 이번 여행은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 고심하다 선택한 방법이었다. 내가 진우를 따라가지만, 가능하면 모든 결정은 진우가 하도록 놔두는 것이었다. 내가 발달장애인이고 진우가 그런 아빠를 이끄는 설정이었다. 물론 전적으로 그렇게 되기는 어려웠지만, 진우는 이번 여행에서 통제받지 않는 즐거움을 누렸다. 동시에 나도 진우의 세계에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참견하고 싶은 욕구와 불안감을 이겨내는 만큼 진우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정해진 목표와 그것을 향해 일직선으로 흐르는 시간을 놓아줘야 하는 시간과 공간이었다.

상세내용

김인규 블로거님 사진블입니다.

김인규

작가

발달장애가 있는 김진우의 아빠다. 그와 관련된 여러 활동에 참여해왔다. 부모회 활동을 하였고, 지역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오랫동안 미술활동을 하여 왔으며, 매년 전시회를 개최하여 지역사회와 소통을 도모해왔다. 최근에는 서천군장애인종합복지관과 협력하여 발달장애인 일상 활동 지원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