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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름을 부를 때

장애예술인으로 정체화한다는 것

  • 작성자문영민
  • 등록일 2021-02-05
  • 조회수311

장애예술인으로 나를 정체화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음온라인] 이음광장에 게재된 차미경 작가님의 최근 칼럼을 읽으며, 오랫동안 연구의 중요한 화두로 삼아왔던 장애 정체성과 장애예술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다. 물론 법률과 연구가 제시하는 장애예술인에 대한 정의가 이미 존재한다.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제3조(정의) 제1항에서는 ‘장애예술인’을 ‘문화예술활동을 업(業)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진행한 「2018 장애인 문화예술활동 실태조사 및 분석연구」에서는 장애예술인과 장애예술 활동가를 구분 짓는다. ‘장애예술인’은 ①본인을 예술가라고 생각하거나, ②예술인 경력정보시스템에 등록되어 있거나, ③지속적으로 예술활동을 하고 있거나, ④장애인 및 예술 관련 협회에서 상을 받은 적 있거나, ⑤이러한 기관에 초청되어 예술활동을 한 적이 있는 사람이다. 한편 ‘장애예술 활동가’는 문화예술 분야의 프로그램에서 창작활동을 하여 발표, 출판, 전시, 공연을 한 경험이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연구의 기준에 의하면 나는 ‘장애예술인’으로 규정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작가님’이나 ‘배우님’이라는 호칭을 들으면 그것이 도통 나를 규정하는 단어처럼 들리지 않아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장애 정체성’이란 장애를 가진 나에 대한 자기인식이라는 측면에서, 법률과 연구의 정의가 장애예술인으로서의 나를 규정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종종 무대에 서는 경험이 있으며 예술인복지법상 ‘예술인’이지만, 어쩐지 스스로 예술인으로
정체화하기가 쉽지 않다.”
- 필자가 참여한 연극 〈걷는 인간〉 연습 장면 (0set 프로젝트, 2018)

어떠한 예술인으로 나를 정체화할 것인가의 문제는 단지 장애예술인의 문제는 아니다. 19세기 미국의 여성 작가인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는 작품에 성적 상징을 자주 등장시켜 페미니즘 작가, 심지어 ‘페미니즘의 여왕’이라는 평가를 듣곤 했다. 그러나 오키프는 “나는 ‘아티스트’이지 ‘여성 아티스트’가 아니다”라고 항변하며 ‘페미니즘 작가’ 혹은 ‘여성 아티스트’라는 명칭을 거부하였다(정필주·최샛별, 2008). 오키프가 현대에 살고 있다면 페미니즘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기쁘게 받아들였을지 모르지만, 당대 여성 예술인의 작업은 ‘지식인 여성의 넋두리’ 혹은 ‘열등감의 발로’로 받아들여져 왔기에 낙인을 가진 ‘여성 예술인’으로의 정체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장애예술인도 창작활동을 하며 장애인으로 받는 낙인과 장애예술인으로 받는 낙인을 동시에 맞닥뜨려 왔다. 전자의 낙인이 “장애인은 무능력하다”는 편견과 관련된다면, 후자의 낙인은 “장애인의 예술 활동은 치료의 목적이다”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예술을 한다” 등으로 대표된다. 이러한 낙인과 맞닥뜨릴 때 장애예술인이 선택하는 전략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장애’ 예술인이라는 꼬리표로부터 거리를 두고 ‘예술인’ 정체성에 몰두하는 것, 또 하나는 그 낙인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창작하고,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연구를 위해 만났던 장애예술인들도 ‘장애’ 예술인으로서 자신을 정체화하느냐는 질문에 각기 다른 답변을 내놓았다.

“처음에는 ‘장애’라는 단어가 싫었어요. 안 달려고 했어요. 생각해보니까 불리한 거죠.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어요. 아무리 부정적이어도 자신은 자신이고 바꿀 수 없는 거니까. 그래서 작년부터는 섭외가 들어오면 솔직하게 얘기를 다 하죠. 솔직하게 타이틀에 ‘장애’라는 단어가 붙게 되는데, 지금은 크게 개의치 않아요.” - 장애를 가진 A 예술가

“저는 장애 공연을 하는 게 아니에요. 제삼자가 봤을 때는 장애가 보이겠죠. 하지만 저는 장애가 아니라 내가 경험하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는 거예요. 제가 가진 장애의 이유에서 예술을 하고 싶진 않거든요.” - 장애를 가진 B 예술가

A 예술가는 치열한 자기고민 끝에 ‘장애’ 예술인이라는 타이틀을 결국 받아들이게 되었다면, B 예술가는 ‘장애’가 결부되지 않은 ‘나’로부터 시작하는 창작을 하고자 한다. 이와 같은 ‘장애예술인’으로서의 정체화는 이들의 창작 방식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A 예술가는 장애인 극단에서 작업하는 예술가이므로, 장애예술인들과 함께 공동작업을 하는 시간을 축적하며 장애예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을 것이다. 한편 B 예술가는 프리랜서로 주로 단독으로 창작 작업을 해서 장애를 가진 다른 예술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B 예술가가 자신을 ‘장애’ 예술가로 해석하지 않는 것은 부정적인 태도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장애에 대한 낙인이 사회적으로 만연할 때 장애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에서 받는 불이익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것을 기꺼이 드러내 낙인과 싸우고자 하는 영웅의 역할이 매우 크다. 여전히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행동과 선택을 매우 제약하지만, 이전에 비해 우리는 장애를 드러내거나 숨길 수 있는 작은 선택의 여지를 가진다. 물론 기꺼이 낙인에 맞서 싸운 영웅들 덕이다. 우리는 이제 장애뿐 아니라 자신 안에서 교차하는 다양한 정체성을 상황에 맞게 드러내거나 숨길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체성의 선택이 제한적으로나마 가능한 사회에서, 우리는 ‘장애’ 예술인일 수도, 그저 ‘예술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참고자료]

⦁ 문영민·김수영, “‘드러냄’의 장애정치 후 20년 – 한국 청년장애인의 장애 숨김/드러냄 경험 연구”, 한국사회복지학회 추계학술대회 발표문 (한국사회복지학회, 2020)

⦁ 정필주·최샛별(2008), “예술가의 정체성 갈등과 대응전략: 낙인화, 저항 그리고 미분화된 가상적 정체성을 중심으로”, 『사회과학연구논총』 제19호, pp.195-228. (이화사회과학연구소, 2008)

⦁ 한국문화관광연구원(2019), 『2018 장애인 문화예술활동 실태조사 및 분석연구』 (문화체육관광부·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019)

상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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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민

장애예술연구자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서 장애인 공연예술, 장애정체성, 장애인의 몸, 장애인의 건강 불평등을 연구하고 있다. 프로젝트 극단 0set 소속으로 공연 <연극의 3요소> <불편한 입장들> <나는 인간> 등의 공연에 창작자로 참여하여 연극으로 장애인의 공연 접근성 문제를 알리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