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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은

장애학 코드로 미디어 읽기

  • 작성자차미경
  • 등록일 2021-02-15
  • 조회수296

체로키 족 인디언의 달력으로 2월은 ‘홀로 걷는 달’이라 불린다. 한 해의 농사와 사냥을 시작하기 전 모든 우주와 생명을 주관하는 위대한 정령의 소리를 듣기 위해 필요한 시간, 그래서 ‘홀로 걷는 달’일 것이다. 인디언에게 홀로 있는 시간은 전 생애에 걸쳐 매우 중요한 시간이었다. 그것은 단지 외로움의 시간이 아니라 온 우주와 자연을 주관하는 위대한 정령에게 자신을 통째로 드리고 얻는 위대한 신비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디언 소년들은 산꼭대기에 혼자 올라가 위대한 정령과 함께 신비한 고독을 경험하는 것으로 성인식을 치렀다고 한다. 아무도 없는 깊은 산꼭대기에 혼자 올라가 하루나 이틀을 아무것도 먹지 않으며, 오로지 자기 자신과 모든 생명을 향해 온 영혼의 주파수를 맞추고 지내다가, 소년에게 내린 꿈이 평생에 그의 이름이 된다. 위대한 정령이 오로지 그 한 사람에게만 부여한 특별한 생의 선물, 그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생의 목적. 인디언에게 이름이란 그런 것이다.

이름에 대한 특별한 성찰은 일본 지브리 사의 여러 애니메이션 영화에서도 드러난다. 그중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가장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다. 소녀 치히로는 부모님과 시골로 이사 가던 중 숲속에서 길을 잃고 이상한 요괴의 나라로 행방불명이 되는데, 그곳에서 빠져나와 현생으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이름을 잊지 않는 것이다. 마녀가 지배하는 이상한 요괴의 나라에서 치히로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센’으로 불린다. 이름을 잊어버리고 이상한 나라를 헤매던 센은 소년 하쿠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녀가 마녀의 세상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이 영화 외에도 지브리 사가 제작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여러 작품에서는 잊지 말아야 할 ‘이름’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이름을 잊지 않는 것,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는 것이다.

지난해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는 배우들의 명연기와 기존에 없던 그라운드 밖 이야기로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 야구 시즌이 끝나는 12월부터 3월까지 팀을 정비하고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기간을 이르는 스토브리그. 만년 꼴찌인데다가 매각 대상이 된 야구팀 ‘드림즈’에 새로운 단장 백승수(남궁민 분)가 오면서 펼쳐지는 그라운드 뒤 야구인들의 이야기가 무척 흥미롭던 웰메이드 드라마였다. 그 드라마에 등장하는 백승수 단장의 동생이자 전 야구선수인 백영수(윤선우 분)를 매우 관심 있게 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가 장애를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타는 신박하고 날렵한 전동휠체어도 꽤 매력 있었지만, 휠체어를 타고 당당하게 등장해 면접시험을 보는 장면은 그동안 타 드라마에서 보여준 적 없던 장애인 캐릭터로, 보는 동안 눈을 떼지 않을 만큼 꽤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게다가 그를 채용하기로 한 후 드림즈 팀의 사무실 전체에 있던 문턱을 없애는 장면은 손에 꼽을 만큼 칭찬하고픈 장면이기도 하다.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웬 샛길인가 싶겠지만, 본격적인 이야기는 바로 지금부터다. <스토브리그> 8회에는 백영수가 드디어 드림즈의 전력분석팀 직원으로 채용되어 일하는 장면이 나온다.
“야, 너 그 훨체어 알아?”

다른 직원들에게 백영수는 그렇게 불린다. ‘휠체어를 탄 사람’도 아니고 그저 일명 '휠체어'로 지칭될 뿐이다. 이를 본 드림즈 운영팀 직원인 한재희(조병규 분)는 “아무리 그래도 훨체어가 뭡니까? 사람한테….”라며 그렇게 말하는 직원들을 퉁명스럽게 나무란다. 그러게 말이다! 사람에게, 사람인데, 사람도 지우고 이름도 지우고 그가 사용하는 보조기구만을 대표로 지칭하여 ‘휠체어’라니…. 어떤 집단에 대한 비하와 혐오가 그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지워버리는 모습이 그 장면에 잘 담겼다.

많은 장애인이 그렇게 불릴 것이다. 휠체어를 탄 사람은 그냥 ‘훨체어’로, 목발을 짚은 사람은 그냥 ‘목발’로, 자폐성 장애를 가진 사람은 그냥 ‘자폐’라는 장애명만으로. 그뿐인가. 바보 찔뚝이 깜깜이 등 장애를 비하하거나 장애가 있는 몸의 움직임을 희화화하고 비아냥거리는 명칭으로 그렇게 사람이 지워진 채 불리지 않던가. 만약 여기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이상한 요괴의 나라라면 장애인은 어느새 사람임을 잊고, 자신의 이름도 잊고 영영 그 세계에서 도망치지 못한 채 갇혀버릴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펭귄 블룸>(Penguin Bloom, 2020)을 보면서도 나는 내내 이름에 관한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펭귄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남극의 신사라 불리는 귀여운 새가 아니라 까치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어느 날 바닷가에서 발견한 상처 입은 어린 새를 블룸네 아이들이 집에 데리고 왔다. 블룸 가족은 어린 새에게 ‘펭귄’이라는 이름을 주고 ‘블룸’이란 성까지 붙여주면서 그 집의 막내 가족으로 받아주었다. 그리고 가족처럼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펭귄을 돌보고 사랑을 주었다. 그렇다고 펭귄이 일방적으로 사랑을 받기만 한 것은 아니다. 블룸 가족 모두 펭귄에게서 새로운 기쁨과 행복을 얻기도 했다. 특별히 주인공 샘 블룸은 펭귄에게서 새로운 용기와 힘을 얻고 삶의 의미를 발견했는데, 펭귄이 블룸 가족의 집에 오기 전까지 그녀는 사고로 입은 장애 때문에 너무나 큰 절망에 빠져 있었다.

갑작스런 사고로 장애를 입은 샘은 그동안 가지고 있던 그녀만의 생기와 삶의 기쁨을 잃고 무력감과 절망에 빠져 있었다. 왜 자신에게 그런 사고가 났어야만 했는지 알 수 없는 원망과 분노로 가득했고, 무엇보다 이제는 엄마인 자신보다는 아빠를 더 찾는 아이들을 보면서 엄마라는 이름조차 잃어버리는 것 같은 상실감도 들었다. 그러나 펭귄을 만나는 자연 속의 아주 작은 우연, 혹은 필연, 아니 소중한 인연을 만나면서 다시 생의 기쁨을 찾았고 새로운 도전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가 가진 본연의 모습도, 가장 소중한 ‘엄마’라는 이름도 되찾을 수 있었다. 펭귄 역시 블룸 가족을 떠나 대자연의 품으로 다시 돌아감으로써 본연의 자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했다. 그렇게 일상에서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은 샘과 그 가족의 이야기, 카약 세계 챔피언의 실화가 바로 이 영화다.

  •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포스터 이미지
  • 드라마 <스토브리그> 포스터 이미지
  • 영화 <펭귄 블룸> 포스터 이미지

인디언에게 있어 이름의 의미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끝까지 기억해야 할 이름의 의미도 결국 다르지 않다. 한 인간에게 부여된 특별하고 고유한 의미,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 자체로 지켜내야 할 한 인간 고유의 정체성과 특별한 개성, 그것이 바로 이름의 의미다. 삶이란 결국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의미, 그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아야 하는 긴 여행 같은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은 치히로가 길을 잃었던 그 이상한 요괴의 나라 같아서 나의 이름을, 나 자신을 잊어버리게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치히로’라는 고유한 이름이 아닌 ‘센’이란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이상한 나라에서 점점 이름을 망각해 가듯이, 장애인이라는 집단의 이름으로 고유한 개인의 이름을 지워가는 것은 아닐까.

내가 어디에 있든 내가 ‘휠체어’가 아니라, ‘장애인’이 아니라 내 이름으로 불릴 때,
드림팀 전력분석원 백영수가 직장에서 ‘휠체어’가 아니라 백영수로 불릴 때,
마녀의 나라에서 센이 아니라 치히로임을 기억할 때
우리는 더 나은 현실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홀로 걷는 달, 위대한 정령이 세상에 당신을 보내며 부여한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기를.
인디언처럼.

상세내용

차미경

작가

세상에 말을 거는 사람이다! 10여 년간 KBS 라디오에서 장애인 및 소외계층을 위한 방송에 참여했으며 ‘장애’라는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보는 장애학 연구자로서 문화·예술 관련 칼럼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