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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영국] 장애예술의 숨겨진 이야기가 분출하는 아카이브

  • 등록일 2020-02-26
  • 조회수1117

지난 2019년 10월, 장애예술온라인(Disability Arts Online)에서는 다양한 배경을 지닌 정기기고 필자 8명을 불러모아 영국 남부 버밍엄셔 주 하이위컴(High Wycome) 소재의 버킹엄셔 뉴 대학교(Buckinghamshire New University)에 자리한 국립 장애예술 콜렉션 및 아카이브(National Disability Arts Collection and Archive, 이하 NDACA)를 방문하도록 했다. 다음은 신경발달장애 분야 전문 필자인 에마 로브데일의 탐방기이다.[편집자 주]

NDACA탐방 참여자의 자기소개 장면


“이곳은 정치계와 예술계가 충돌하는 곳입니다.” NDACA 기록 보관원인 알렉스 코언(Alex Cowan)의 말이다. 우리는 존 애덤(Jon Adam)의 <위기의 알파벳(Emergency Alphabet)>(알파벳 조각들로 만들어진 정사각형에 ‘U(you)자’만 외따로 떨어져 있는 작품)과 스티브 존스(Steve Jones)의 <한없는 지루함(Bored to Death)>(고리버들 바구니 만들기에 관심이 없는 휠체어를 탄 소녀의 스케치) 등 미리 선정해놓은 작품들 주변에 둘러앉아 코언으로부터 기록 보관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매우 많은 소장품들이 신체적 장애를 지닌 예술가들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핵심적인 작품들은 1980~1995년의 것이었다... 예상대로였다. 지식 확장에도 관심이 있지만 주된 관심사는 신경발달장애 분야이기에 나는 뭐든 관련된 자료를 찾고야 말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탐방 모임은 인맥을 쌓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는 동안 나는 그곳에 신경발달장애 분야의 저널리스트가 3명이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신경발달장애 분야의 경향에 관한 내 개인적 통찰을 그들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장애인 기관들은 곧잘 신경발달장애인들을 배제하곤 한다. 그들이 ‘너무 멀쩡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비장애인 기관들은 반대로 그들의 처리 능력/불안/소통의 어려움이 ‘너무 심각하다’면서 그들을 밀어내니, 신경발달장애인은 어느 쪽에도 속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은 좋았지만, 다양한 분야와 지역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괴로운 경험들을 하고 있다는 점은 슬픈 일이었다.

NDACA의 한 게시판 앞에 선 에마 로브데일


한 저널리스트는 자기들이 어떻게 매지컬 워먼(Magical Woman)이라는 단체를 운영하고 있는지 들려 주었다. 그곳은 ADHD를 지닌 여성들이 스스로를 예술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공간으로, 그 정신은 잡지의 출간으로까지 이어졌다. 아카이브에서 그들의 잡지를 기부 받으면 신경발달장애 분야의 자료를 더욱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제안이었다! 자기소개를 할 차례가 돌아오자 나는 무척 긴장했다. 장애인 예술가와 행사에 대한 기사를 숱하게 써 왔으면서도 내 개인적 경험이 주목받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신경발달장애와 창작에 관한 내 리서치를 소개했다. 반응이 괜찮았다. 신경발달장애의 미학적 가능성이 타인들에게 인정을 받다니, 만세! 예술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어떤 이는 자신의 작업 방식이 자신의 사고 방식과 지각 방식 때문에 더 분절되는 느낌이라고 고백했다. 또 다른 이는 자신이 ADHD/자폐증이 있는 사람이 쓴 작품을 알아볼 수 있다고 했다. 거기에 ‘대단히 시각적인 스타일과 특유의 논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기소개가 끝난 뒤 우리는 보관소로 이동했다. 방 안의 선반에는 상자들이 가득했고 벽에는 포스터가 잔뜩 붙어 있었다. “영국은 장애운동이 확립되어 있는 아주 특별한 나라입니다.” 코언의 전언에 따르면, 그곳은 아카이브의 심장부이며 상자 속 많은 작품들이 아직 분류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고로 그곳을 뒤지면 오롯이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가능성이 있었다!

내가 선반에서 꺼낸 것은 ‘일상의 하루(A Day in the Life)’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로,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 모음이었다. 십여 년 전 장애인들이 하루하루를 보냈던 경험을 몰래 들여다본다는 사실에 나는 마음이 설레었다. 대중매체에서 흔히 보던 ‘안쓰러운 사진들’과는 달리 이 사진들은 장애인들의 삶을 여유롭고 아주 평범한 관점에서 그리고 있었다. 우리 그룹은 관심이 가는 대로 골라 보라는 이야기에 몇 시간을 선정 작업에 매달렸다.

에마 로브데일의 자료 모음


그러던 중 신경발달장애와 관련된 자료를 발견하고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생존자의 시(Survivor's Poetry)’가 담긴 상자도 그중 하나다. 그것을 내 자료 모음에 합쳐 놓은 뒤 나는 그 시들의 상당수가 정신적 문제를 동반한 신경발달장애인에 의해 쓰인 것임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서 다루는 주제는 성적 학대, 기관의 학대, 유년기, 괴롭힘, 분노, 약물, 우울, 죽음 등으로 다양했지만... 나는 여러 목소리에 공감했다. 그룹의 다른 사람들도 ‘생존자의 시’가 신경발달장애인이 겪는 어려움과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다는 데 동의했다.

“보편적인 동시에 개인적이에요... 새로운 단어들을 말하고 우리의 뇌, 우리의 지각을 교화하는 힘이 있죠. 이 시들은 정신의학 체계를 견뎌내고, 진단을 이겨내고, 학대를 버텨낸 신경발달장애인들의 이야기에요. 무엇이 아픈 것이고, 누가 아프다고 정하는 사람은 대체 누구죠?”

페미니스트 잡지들이 든 상자, 리즈 카(Liz Carr)가 변호사가 되어야 할지 코미디언/배우가 되어야 할지를 장애인 극단 그라이아이(Graeae)에게 물으며 조언을 구하는 편지, 방대한 양의 신문 스크랩 등 자료들을 살펴볼 시간을 가진 뒤 우리 그룹은 최종 대담을 나누었다. 다들 아카이브의 풍성한 자료로 새로운 자양분을 흡수한 덕에 토론은 열기를 띠었고, 그 공간은 장애계의 발전 방향에 대한 논의로 활기가 넘쳤다.

누군가 “왜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는 신경발달장애인들의 작품이 적을까요?”라는 질문을 했다. 나는 신경발달장애에 씌워진 지독한 오명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역사적으로(그리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장애를 ‘밝히지’ 않았던 것이다. 단지 그들이 ‘눈에 덜 띄는 것’일 뿐이라는 또 다른 의견도 있었다. 우리는 매우 시각적인 문화에 살기 때문에 만약 휠체어 탄 남자가 버스 앞에서 시위를 하면 시각적으로 강력한 정치적 의사표현일 수 있겠지만, 난독증이 있는 사람이 똑같은 행동을 하면 그만큼의 시각적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변화를 위해 싸울 때 대중교통 수단 앞에 나가지는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NDACA에서의 그룹 토론 

사회적 모델의 원칙들이 ‘차별반대 신체장애인 조합(UPIAS)’에서 비롯되었으며 반드시 신경발달장애를 포함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사회적 모델이 장애인권리 운동과 나아가 장애인차별금지법(1995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참작할 때,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의 신경발달장애 공동체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 그들의 특수한 어려움은 과연 적절히 고려되고 있을까?

토론 중 이외에 인상 깊었던 내용은 장애인 예술가들의 본질을 묻는 질문이었다. 만약 장애가 없었다면 그들은 어떤 작품을 만들었을까? 장애가 그들의 예술혼을 불러일으킨 걸까?... 아니면 보다 자연스러운 관심사로 나아갈 길을 방해한 걸까? 그 답을 우리가 찾아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누구나(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실생활의 경험에 의해 지적·예술적 면모를 갖추게 되며, 나는 이것이 예술을 공고히 하고 그 가치를 더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미래의 예술가들은 직접적으로 ‘장애’에 관한 작품을 만들고 싶은 욕구를 덜 느낄지도 모르겠다. (희망사항이긴 하지만) 그때는 장애가 그들 인생에서 그리 논쟁적인 사안이 아니게 될 테니까.

정치와 배제에 대한 너무나 가슴 아프고 때로는 고통스럽기까지 한 많은 이야기 끝에 그래도 제임스 자트카-하스(James Zatka-Haas)로부터 그가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랑과 장애(Love and Disability)’에 대해서 들으니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보거나 읽어서 흡수한 내용을 통해,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된 다른 장애인들의 경험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우리의 의지를 더 굳건하게 해줍니다.”

알렉스 코언은 그날의 활동을 이렇게 요약했다. “여러분,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누구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삶을 이야기로 바꾸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참으로 지당한 말이었다. 그가 일하는 아카이브뿐만 아니라 장애인이 주도하는 광범위한 예술과 관련하여, 우리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또 그것을 어떻게 매력적인 기사로 써낼지 알 필요가 있는 ‘우리’ 저널리스트/작가들을 위해서도 말이다. 주의력과 독창성, 훈련된 귀로 우리는 신경발달장애인을 비롯한 모든 장애인 예술가들의 다채로우면서도 때로는 정치적인 작품들 하나하나에 대해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글/ 에마 로브데일(Emma Robdale)

출처/ 장애예술온라인(2019년 11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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