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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영국] 테이킹플라이트 극단, 장애와 페미니즘을 결합하다

  • 등록일 2020-02-26
  • 조회수1491

극단 테이킹플라이트(Taking Flight)가 제작한 케이트 오라일리(Kaite O'Reilly)의 <필링(peeling)>이 지난 2019년 세계 여성의 날인 3월 8일 초연을 시작으로 5월 2일까지 영국 웨일스 지방에서 순회공연을 가졌다. 다음은 극단 자체나 지역 내에서 이 작품이 지니는 중요성에 관해 다룬 기사이다.[편집자 주]

테이킹플라이트의 <필링>. 사진 © 자니르 나제라(Janire Najera)

2002년 그라이아이 극단(Graeae Theatre Company)에 의해 처음 소개된 이후 오라일리의 작품은 영국 전역의 언론으로부터 극찬을 받으며 페미니즘 연극의 걸작으로 일컬어졌다. 이후 두 차례 전국 순회공연이 있었고, 희곡은 페이버앤페이버(Faber and Faber)에서 출간되었다.

10년이 넘도록 테이킹플라이트는 대체로 셰익스피어 연극 같은 순회극을 제작해왔다. 그때도 청각장애인과 지체장애인 전문 연기자들을 캐스팅했지만 그 작품들은 특별히 장애를 하나의 사회적 구성체로 바라보지 않았다. 이러한 불충분성에 도전하고자 끊임없이 작업 중인 케이트 오라일리의 작품은 한동안 극단들의 시야에 머물러 있다가 이제야 입장을 드러낼 적기를 만났다.

장애인에 의한, 당사자성을 모색하는 연극

연출 베스 하우스(Beth House)는 이렇게 말했다.

“<필링>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는 협업의 대상을 지체장애인과 청각장애인 창작 전문가들부터 연기자는 물론이고 무대 뒤 스태프들에게까지 확장하고 싶었습니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아예 시작부터 장애인 극작가가 쓴 작품을 찾으려고 했지요. <필링>은 여성들에게 환상적인 배역을 제공할 뿐 아니라 장애인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도 탐색하는 작품입니다.

우리는 역할과 작품의 결말에 가장 적합한 배우들을 캐스팅했습니다. ‘램프스 온 더 문(Ramps on the Moon)’의 변화관리 팀장(Director for Change) 미셸 테일러(Michele Taylor)의 말처럼, 장애는 ‘플롯을 위한 장치’가 아닙니다. 우리는 <필링>이 퍼뜩 스치는 깨달음의 순간을 준다고 느꼈습니다. 무대에서 숨김없이 보여지기 때문에 관객들은 중심인물 3명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진정 포용적인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더 이상 지각되는 차이를 외면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연극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존재해온 장애의 표현을 우리로 하여금 똑바로 직시하도록 합니다.”

예술감독 엘리즈 데이비슨(Ellise Davison)은 이 작품이 상연되는 지역의 적합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웨일스는 변화할 준비가 된 비옥한 토양으로 보였습니다. 이 땅에 딱 맞는 <필링>이라는 씨앗을 심고 가꾸면 주변 경관을 바꾸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공연장, 청중, 작가들에 대한 접근성 문제를 누누이 논의해온 터라 이제는 우리가 만든 결과물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필링>은 장애인의 표현과 접근성이라는 주제를 너무나 재치 있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매개체가 되어주리라 여겨졌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창의적 접근성이라는 소재를 잘 표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칩니다.

우리는 특히 웨일스의 무대에 긍정적인 장애인 역할 모델이 부족하다는 데 실망했고, 이런 풍토를 바꾸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필링>은 당당하고 단호한 태도를 보입니다. 두 명의 지체장애인과 청각장애인 연기자가 청중들로 하여금 자세를 바로잡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서 그들 자신과 주변 세상에 질문을 하도록 만들죠.

테이킹플라이트 극단은 더 이상 ‘포용적’이라거나 ‘통합적’이라는 용어를 쓸 필요가 없을 만큼 전 극장이 다 장애인 친화적이 될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 분투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접근성’이 부가 서비스로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창작을 위한 선택 사항이 되며 모든 공연에 적용될 시대, 진정한 평등이 존재하는 시대를 위해서 말입니다. 네 여성의 공연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며 우리는 계속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장애인 접근성 문제, 어떻게 창작 과정에 통합되나

디자이너 베키 데이비스(Becky Davies)는 이에 더해 디자인 과정에 근본적으로 접근성 문제를 통합시켰던 극단의 경험을 공유했다.

“과거 테이킹플라이트 가족과 외부 제작진은 어떻게 하면 접근성을 창의적으로 디자인할지를 실험하는 연구원들 같았습니다. 그동안 우리 곁에선 앨러스테어 실(Alastair Sill, 음성해설가이자 컨설턴트) 같은 아티스트들이 청각장애인과 지체장애인, 감각장애인 출연진들과 더불어 우리의 지식을 꾸준히 갈고 닦는 작업에 협력해 왔습니다.

우리에게는 접근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신선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하는 자극제가 되었고, 이를 위해 테이킹플라이트의 핵심 가치인 색깔과 활력, 에너지를 양보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분장한 캐릭터로 무대에 오르는 영국 수어 통역자들에서 감각적 의상과 소품에 이르기까지, 또 음향효과에서 영감을 얻은 음성해설 서비스 카트(CART: Communication Access Realtime Translation)에서 교복에 부착하는 점자 패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장애인을 위한 도구를 창의적으로 결합하는 방법에 대한 지식과 소양을 함께 키워 왔습니다.

우리 테이킹플라이트는 특별히 <필링>을 성인극으로 제작하고 싶었습니다. 보다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한 환경에서 투지와 솔직함, 아픔으로 가득 찬 어두운 코믹극을 통해 접근성의 문제를 창의적으로 통합할 방법을 탐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만큼 장애인 포용의 실천에 나선 웨일스의 이런 현대적 모범 사례는 영국의 타 지역은 물론이고 되도록이면 전 세계와 공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엘리즈 데이비슨은 이런 말을 덧붙였다.

“우리는 시각장애인 컨설턴트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타프실라 칸(Tafsila Kahn)과 메건 프라이스(Megan Price)가 음성해설(audio description) 개발에 도움을 주고 순회공연과 촉각적 접근성을 높여줄 재료들에 대해 조언을 해주었죠. 또 리허설에 초대받은 청각장애인들이 자막과 영국 수어 통역에 대한 피드백을 주기도 했습니다.

2014년부터 우리는 음성 전단과 영국 수어 전단 및 안내문을 제작했습니다. 그 동안 수차례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접근성과 관련된 소재들을 탐구했죠. 일례로 로빈 브레이 후란(Robin Bray Hurran)에게는 촉각적 접근성에 관한 조언을 들었습니다.

또 접근성을 주제로 한 ‘상자 밖으로(Breaking out of the Box)’라는 토론회도 수없이 열었습니다. 접근성은 하나의 창작 도구이며, 감독으로서 제가 가장 먼저 고려하는 사항입니다. 또한 많은 기회를 열어 주고, 무척 흥미로운 기회를 제공하며, 연극에 접근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탄생시키고 있습니다. 최고예요!”

무대에서 객석까지, 장애인 접근성을 위한 전 과정

베스 하우스는 <필링>에 접근성을 더한 과정을 더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필링>에서 첫 번째로 넘어야 할 관문은 원작자 케이트로부터 그녀의 3인극에 수어 통역을 삽입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인물들 간의 역학 관계가 변하지 않을까 우려했죠. 하지만 우리 관객들이 수어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찾아오기 때문에 우리는 수어 없이는 작품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케이트는 자신의 풍부한 텍스트에 음성해설을 추가해 주었고, 덕분에 우리는 작업을 한결 수월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셰익스피어 극들에서는 음성해설문을 쓰면서 동시에 관객들에게 이를 전달할 장치를 만드느라 많은 리허설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전에 우리가 공연했던 <로미오와 줄리엣>은 1960년대의 한 사립학교를 배경으로 했고, 접근성을 지원하는 팀이 따로 있었죠. 등장인물인 교장선생님이 실로폰을 가지고 1960년대식 마이크에 대고 훈화 말씀을 하는 동안 정상 시력인 관객들은 음성해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조차 눈치 채지 못할 정도였어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단체의 전 운영 과정에서 접근성 문제를 생각합니다. 우선 관객과 제작진을 위한 예산을 고려하고, 마케팅도 접근성을 염두에 두고 기획합니다. 대안적 마케팅 방식을 구상하는 거죠.”

“접근성은 연습실에서 극을 창작하는 출발점이 되며, 극을 어떤 모습으로 그려갈지에 대한 심미적 상상력을 견인합니다. 의상의 색깔과 모양, 감촉 그리고 소품과 세트의 특징, 또 중요한 것으로 포이에(로비와 객석 사이의 공간으로 관객들이 막간에 시간을 보내는 휴게실 - 역주)의 재료에도 영향을 미치지요. 이걸 짓느라 몇 년이 걸렸습니다.

베키 데이비스와 앙가하라드 갬블(Angaharad Gamble, 의상 제작자)은 <필링>의 디자인 작업에서 본인들의 능력 이상을 발휘했습니다. 의상만 하더라도 시각과 질감 면에서 뛰어나지만, 포이에도 갖가지 소재로 허름하고 열악한 분장실의 한 귀퉁이처럼 표현되어 있어 마치 금방이라도 그곳에서 등장인물들이 무대로 떠밀려 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들지요. 향기도 나고 들을 수 있는 오디오 파일도 있습니다. 또 놀라운 점은 잘 만들어진 인형이 있어서 극이 펼쳐지는 도중에 관객들이 배우들에게서 ‘벗겨지는(peel)’ 의상들을 탐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겹 한 겹 벗겨질 때마다 새로운 의상이 나오지요.”

연극 <필링>이 벗겨내고자 하는 장벽을 생각하다

아울러 출연진도 작품에서 자신들이 맡은 역할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비티(Beaty) 역을 맡은 루스 커티스(Ruth Curtis)는 이 연극이 자신에게 지니는 의의를 설명했다.

“<필링>은 음울하고 격정적인 연극으로, 안타깝지만 처음 상연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시의성을 지닙니다. 인류는 끔찍하리만치 비인간적이며, '‘인간’은 결코 서로를 향한 폭력으로부터 배움을 얻지 못하는 듯합니다. 이 연극은 텍스트가 풍부해서 연기하기 좋으며, 연습하기에도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제 캐릭터는 시각적인 유사성 이외에 저와 특별히 닮은 점은 없습니다. 저는 제가 좀더 다정하고 덜 쌀쌀맞았으면 하거든요. 지금 저는 예전보다 정치적으로 더 무장되고 다발성 경화증 문제에 대해 더 자주 목소리를 내게 되었습니다. 비티의 철저한 독립성은 확실히 공유하고 있지요.”

에린 시오반 허칭(Erin Siobhan Hutching)은 이번 연극에서 새롭게 추가된 인물인 조(Zoe) 역할을 맡았다. 영국 수어 통역을 하면서 동시에 무대감독 역할을 한다(<필링>은 작품 안에 작품의 백스테이지가 그려진다).

“<필링>은 꼭 필요한 연극 작품입니다. 여성과 장애인, 어느 쪽 하나도 제대로 존중 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그들을 치열하고, 재미있고,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글이 아름다운 만큼 수어로 연기한다는 건 보람되면서도 만만치 않은 일이며, 또 전달해야 할 어둡고 충격적인 심상들도 많습니다. 수어로의 통역 작업 시 훌륭한 영국 수어 컨설턴트인 장 생 클레르(Jean St Clair)의 조력을 받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릅니다.

제 캐릭터의 성격이 대본에 나타나 있지 않았기에 자유롭게 맡은 인물의 배경과 성격을 정할 수 있었고, 조가 수어를 할 수 있도록 저와 같은 청각장애인 가족을 가진 것으로 설정했습니다.”

알파(Alfa) 역을 맡은 비 웹스터(Bea Webster)는 <필링>이 현 시대에 지니는 의미를 언급했다.

“도널드 트럼프와 보수당이 지배하는 현 시대에는 장애인이 사회에 민폐로 비춰지며 여성의 생식권도 여전히 주로 남자가 결정합니다. 따라서 지금 장애인 여성이 느끼는 장벽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높습니다.”

테이킹플라이트의 <필링>. 사진 © 자니르 나제라(Janire Najera)

글/ 콜린 함브루크(Colin Hambrook)

출처/ 장애예술온라인(2019년 4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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