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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박소영의 닮고 싶은 책] 급진적으로, 내 목소리로 존재하기

  • 등록일 2023-10-24
  • 조회수42

약 1년 전쯤 영화관에서 동생과 함께 '애프터 양'을 봤다. 안드로이드 인간 '양'이 어느 날 작동을 멈추면서 그와 삶을 공유하던 사람들이 슬픔에 잠기는 이야기였다. 가슴 따뜻해지는 영화였지만 묘하게 뒤틀리는 구석이 있었다. 극장을 나서면서 동생이 내게 말했다.

"글쎄, 안드로이드까지 가지 않아도 이미 여기에 너무 많은 죽음들이 있지 않나. 동물들은 매일 같이 학살당하고 어딘가에선 아이들이 굶어 죽어. 그런 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안드로이드 인간을 만들어서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일이 나한테는 좀 기만적으로 느껴져."

'급진적으로 존재하기'(가망서사)에 실린 질리언 와이즈의 글을 읽으며 저 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 건 이 문장 때문이었다.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이 "사이보그 개념이 전제하는 장애인이라는 참조점을 지워버리면서 사이보그 정체성을 사용한다"며 그가 이렇게 쓴 것이다.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고.

그것은 동물들의 이야기 없이 성립할 수 없는 숱한 논의들에서 그들의 존재가 빠져 있는 것을 목격하고 우리가 매일 같이 하는 말이었다. "더 이상 놀랍지도 않아. 기대도 안 했어."

질리언 와이즈는 '평범한 사이보그'라는 짧은 글에서 스스로를 사이보그로 정체화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보여준다. 매일 밤 인공다리를 떼어내며 다리가 없이도 스스로의 안전을 지킬 수 있을지 자문하는 와이즈에게, 픽션의 문제로서의 사이보그 이야기는 한가하게 들린다. 그에게 사이보그로 사는 일은 선택 가능한 것이 아니기에.

'급진적으로 존재하기'는 미국 장애인권 활동가이자 중증장애인인 앨리스 웡이 미 장애인법 제정 30주년을 맞아 엮은 책으로, 장애 당사자들의 에세이를 모은 것이다. 장애 유형도, 인종이나 계급도 모두 다른 저자들이 스스로의 삶을 열어 보이는데, 별도의 수식 없이도 빛나는 글들이 가득하다.

가령 해리엇 맥브라이드 존슨은 '장애가 있는 영아를 살해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있나'를 두고 피터 싱어와 벌인 그 유명한 토론에 대해, 스카이 쿠바컵은 어떤 신체 정체성을 가진 사람도 입을 수 있는 의류 브랜드를 탄생시킨 경험에 대해 들려준다.

"내 인생의 드라마는 나 같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세상 속에서 쓰였다. 그것이 이 드라마만의 특징이다. 나의 투쟁은 나를 대하는 세상을 향한 것이었을 뿐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나를 향한 것, 협상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해리엇 맥브라이드 존슨 '말로 다 할 수 없는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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