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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영국] 장애 예술가의 일상과 작업을 지원하는 <예술가의 일상>

  • 등록일 2020-12-08
  • 조회수544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장애 예술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영국 ‘장애 예술 온라인(Disability Arts Online)’은 지난 3월 23일부터 총 8,000파운드의 예산으로 <예술가의 일상> <공개 커미션> 및 <아티스트 프레젠테이션> 공모를 진행하여 총 30개의 작업을 선정하였다. 창작이나 연습 과정 등을 통해 예술가의 작업과 생활에 대한 이해를 돕는 <예술가의 일상>에는 총 10명의 예술가가 선정되었고 지난 4월 말부터 기사, 영상, 오디오 작업 등 다양한 형식으로 장애 예술가들이 이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중 시각예술가 레오 발렌티(Leo Valenti)의 작업과 일상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 •원제 : A Day in the Life of an Artist: Leo Valenti
  • •출처 : Disability Arts Online [원문바로가기]
  • •기사작성일 : 2020.08.20.

장애 예술가들의 일상적인 작업 풍경을 들여다보는 ‘예술가의 일상’ 시리즈에서는 시각예술가 레오 발렌티가 본업을 따로 둔 프리랜서 예술가로서 삶을 꾸려가는 방법과 자신에게 필요한 규칙적 생활 습관과 창작 공간에 관해 이야기한다.

  • 이사 첫 주, 책상 앞에서 @Disability Arts Online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내가 본업이 따로 있는 프리랜서 예술가라는 점을 먼저 밝혀둔다. 나는 습관의 노예이자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는 사람이다. 열여섯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3년을 공부한 뒤 나는 학생처에서 퇴학 통보를 받았다. 정신적인 문제 때문에 출석률이 90%에 못 미친 탓이다. 이게 졸업을 고작 3개월 앞둔, 모든 과목 A학점 학생을 학교에서 쫓아낼 이유가 되냐고? 그런가 보다.

스케치북을 챙겨 교정을 나서면서 나는 아르바이트하던 곳의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풀타임으로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고맙게도 사장은 내 부탁을 들어주었고, 그로 인해 불행히도 내 창작활동은 타격을 입게 되었다.

프리랜서 예술가가 되고자 했던 내 꿈은 작년 말에 작업실이 생기면서 멋지게 실현되었다. 그때부터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는 작업실은 나의 피난처가 되었다. 늘 꿈에 그리던 목표를 이루고 나서 당연히 나는 식탁 앞에 앉아 같은 작업을 반복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은 나에게 동기부여가 되었다.

중증 강박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나는 지독히도 반복적인 일상을 고수한다. 늘 같은 시각에 일어나고, 매번 똑같은 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하며, 샤워한 뒤에는 늘 미리 준비해 둔 옷을 입는다. 매일 같은 전철을 타고 작업실에 가며, 항상 같은 시각에 그곳을 나선다. 다른 사람들에겐 이런 단조로운 생활 방식이 허구한 날 전자레인지용 간편식으로 허기를 때우는 처지보다 더 우울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이런 삶이 축복이다.

그렇다고 혹시 내 작품도 늘 이렇게 똑같이 만드는 게 아니냐고? 그렇지는 않다. 예전에 들었던 귀한 충고를 내내 새기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 1학년 때 나는 겁이 많은 아이였다. 뜻했던 그대로 정확히 작품이 나오지 않으면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 작업에 선뜻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강사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처음엔 아주 엉망으로 실패해 보는 것이 좋다고. 그러면 그다음 시도부터는 매번 점점 더 나아질 테니까. 실패해 보라는 말은 그전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터라, 오히려 그건 나에게 하나의 도전과도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창작 시간은 나에게 해방의 시간이 되었다. 예술은 감정을 통제하려는 욕구를 내려놓고 그냥... 놀 수 있게 해준다. 아니, 오히려 놀라고 몰아붙인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내게 필요한 것이다.

내 온라인 매장에서 가장 잘나가는 것 중 하나는 초상화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재료인 잉크로 손수 문양을 찍어 제작하는 라이노컷(linocut, 리놀륨 판화) 티셔츠다. 사람들은 늘 나에게 프린팅 작업을 어디에서 하느냐고 묻고, 내가 “카펫 위에서요!”라고 대답하면 그때마다 화들짝 놀란다.

  • 만들어 둔 도안들을 작업실 바닥에서 한 번에 몰아 찍는다. @Disability Arts Online

이 글을 쓰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매 순간 자기 뇌와 싸움을 벌이는 나 같은 예술가의 일상이 다른 사람들에겐 어떻게 보일까? 정서적으로 산만한 내 뇌는 생각보다 더 자주 나를 지배하고, 그 때문에 할 일을 제대로 못 할 때가 많다. 결국 ‘그냥 공치는 날도 있는 법이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사흘 동안 침대에서 못 나가겠으면 그냥 안 나가는 것이다. 동료들이 끊임없이 창작활동에 매진하고 각종 행사에 나가 서로 활발히 교류하는 모습을 보면 같은 분야의 종사자로서 자존감과 자신감에 상처를 입지만, 그래도 그러한 장애를 받아들이는 편이 훨씬 마음 편하다. 중요한 건 나에게 통하는 방법을 찾았다는 것이다.

정해진 순서대로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마치고 나면 나는 자리에 앉아 그날의 일과를 계획한다. 내가 무지하게 잘 까먹는 편이라 계획을 세워 두면 도움이 된다. 당장 처리할 일부터 먼저 기록하고 자유로운 창작의 시간은 맨 뒤로 미룬다. 우체국에 한 번만 가도록 모든 주문품은 한꺼번에 포장하는 게 나에게 가장 효율적이다. 그래서 나는 물품에 주문자 이름을 제대로 썼는지, 그리고 그 이름에 맞게 주소를 잘 썼는지 서너 번씩 확인한다.

의뢰받은 작업을 먼저 하는데, 그 이유는 그냥 이 작업이 제일 좋기 때문이다. 가장 자주 들어오는 의뢰는 초상화이고, 초상화 작업에는 다음의 도구를 이용한다.

● 아이패드 프로 9인치와 그와 함께 사용하는 애플 펜슬
● ‘타야스이 스케치(Tayasui Sketches)’라는 놀라운 앱 : 무료 앱 치고 사실적인 브러시 프리셋들을 무척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다.

이 작업이 끝나면 프린팅에 들어간다.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매번 하나씩 찍느라 잉크와 천을 낭비하기보다는 티셔츠와 토트백들에 미리 프린팅을 해두는 편이 훨씬 부담이 덜하다. 내가 프린트하는 방식은 이렇다.

● 먼저 원하는 도안을 그린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최신 도안은 ‘이블 벅스(Evil Bugs)’ 컬렉션이다. 하지만 프린팅에 사용되는 기법은 어느 도안에나 동일하다.
● 부드러운 리놀륨 판 위에 도안을 옮겨 그린 뒤 조각을 한다. 무척 지루한 과정이지만 나는 이때 생겨나는 질감이 마음에 들고 또 무척 힐링이 된다. 불안감에 자주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시도해 보기 바란다. 최면에 걸린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
● 천 위에 프린팅할 때 블록 인쇄 잉크 사용은 추천하지 않는다. 이 잉크는 비용 면에서 효율적이지 않다. 대신 나는 섬유 보조제와 아크릴 물감을 1:1로 혼합해서 사용한다. 그렇게 했을 때 표면이 훨씬 더 매끄럽게 나오고 건조도 빨리 되기 때문이다. 살짝 다림질을 해 주고 나면 재료가 천에 잘 부착되어 세탁해도 끄떡없다!

  • 혼합재료 실험 작품 두 점. 콜라주 기법과 잉크를 사용해 여러 가지 질감의 크고 굵은 획을 표현했다.
    @Disability Arts Online

작품 활동을 하는 주된 목표가 사람들과의 교류이기 때문에, 나는 하루 중 많은 시간을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감사편지를 쓰고 성의 표시로 그들을 위한 작은 그림을 그리는 데 쓴다. 보통 큰 주문일 경우 내 활동을 지원해 주는 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여분의 판화가 있으면 그것도 함께 보낸다. “힘들게 번 돈을 쓸 때 나라면 뭘 받고 싶을까?” 하는 관점으로 주문받은 작품의 수준을 한층 더 높이 끌어올리기 위해 애쓴다.

자유 시간을 갖기 전에는 인터넷을 뒤지며 다른 일거리가 없는지 살핀다. 잡지에 작품 내기, 공모 참여, 다른 화가의 그림 보조 등 예술계의 현장으로 나는 자주 스스로를 혹독하게 내몬다. 백 번을 퇴짜 맞더라도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기회를 기꺼이 제공해 줄 사람이 어딘가 한 명은 있을 테니까.

그러고 나면 나는 스케치북을 죽 훑어본 뒤 터질 듯한 필통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한 장 한 장을 그림으로 메워 간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여러분에게 알려주고 싶다. 창작열이 고갈되고 뇌가 멎는 듯한 느낌이 들 때면 나는 굳이 애써 작품 활동을 하지 않는다.

이런 말을 하면 정신 나간 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이메일을 사랑한다. 이메일을 주고받는 게 좋다. 이메일은 예술계의 인맥을 다지고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당신의 작품으로 안내하는 초대장처럼 이메일을 바라보라. 누구든 불명확한 주소나 이해하기 힘들고 어수선한 내용으로는 파티 초대장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이 초대에 응해 주기를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괜히 어설프게 작품을 소개했다가는 평판만 깎이고 애써 만든 작품에 들어간 노고가 허사가 될 테니 주의하자.

  • 보내려고 준비해 둔 물건들. 의뢰받은 작품마다 무료 판화, 직접 쓴 쪽지, 작은 선 그림 원본을 함께 보낸다.
    @Disability Arts Online

나처럼 신경다양성이나 불안증으로 고생하는 많은 사람은 일상생활 속에서 대본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런 대본은 직무와 관련하여 반복적인 업무를 수행할 때 도움이 된다. 이메일을 보내거나 업무상 사람을 만날 때 불안감이 든다면 그런 상황에 적합한 서식을 하나 만들어 놓고 두고두고 사용해 보라. 그러면 이메일을 쓸 때 문법이나 문장 구조에 대한 압박감이 덜해져서 담고자 하는 정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작업 공간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나는 다른 예술가의 작업실과 그들에게 영감을 주는 환경을 살펴보는 걸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색에 둘러싸여 있어야 한다. 내 작업실은 아이들 놀이방 같아야 한다. 그래야만 앉아서 작업에 집중할 수가 있다(남들에게는 산만하기 그지없어 보이겠지만). 강박 장애 때문에 나는 불필요한 물건들을 잔뜩 모아놓는데, 그런 물건들이 주변에 있어야만 마음이 푹 놓이고 안심이 된다. 그러니 작은 사슬톱을 책상에 올려놓아야만 마음이 진정되는 사람은 그렇게 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 새롭게 기분 전환할 방법을 찾는다면 공간에 작은 변화만 주어도 세상을 달라지게 할 수 있다. 시야 안에 들어 있던 물건을 시야 밖으로 치우는 간단한 방법만으로도 말이다.

  • ‘집’이라는 개념과 ‘집을 갖는다’는 의미에 초점을 둔 콜라주 작품 두 점 @Disability Arts 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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