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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좌담] 장애 예술과 창작역량③ 문학

이슈 외연을 넓혀가며 타인과 만나는 장애 문학

  • 김효진, 손병걸, 윤석정, 차희정 
  • 등록일 2020-12-30
  • 조회수977

이슈

[연속 좌담] 장애 예술과 창작역량③ 문학

외연을 넓혀가며 타인과 만나는 장애 문학

김효진, 손병걸, 윤석정, 차희정

개요

  • 일시 2020년 11월 10일(화) 오전 11시~오후 1시

  • 장소 다산북살롱

  • 참석자

    좌장.
    윤석정(시인, 트루베르크리에이티브 대표)
    패널.
    김효진(동화작가), 손병걸(시인), 차희정(문학평론가)

다른 몸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

윤석정 장애 예술과 창작역량이라는 주제로 문학 분야 선생님들을 모시고 좌담회를 갖게 되었다. 장애 문학에 관한 넓은 이야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장애 문학인들이 창작역량을 펼치고 강화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춰, 선생님들의 경험과 현장에서 느끼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길 바란다. 저는 시를 쓰고, 문학 관련 콘텐츠를 연출, 기획, 제작하고 있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김효진 동화를 쓰고 있고, 본업은 장애여성네트워크 대표이다. 일이 잘 안될 때, 길을 찾기 위해서 글을 쓴다. 학부 때 문학을 전공했고 막연하게 소설가의 꿈을 갖고 있다가 대학 졸업 후 10년 정도 지나서 아동문학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주로 출판 계통에서 일하다가 인권운동을 하기 위해 장애계에 뛰어들게 되었다. 장애여성네트워크 초창기에는 5년 넘게 글쓰기 교육을 꾸준히 했었다. 당시 글쓰기를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긍정하게 되고 자신감이 생긴 분들이 현재 장애계 여러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저의 자부심이다. 활동가들이 문화예술을 어렵게 생각하는 탓에 최근에는 문학 활동을 하고 있진 않다. 하지만 제 작품을 소개하는 북콘서트에서 장애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사회 인식 등을 접목하기도 한다.

손병걸 저는 시를 쓰고, 중도 시각장애가 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이자 인천작가회의 지회장을 맡고 있다. 서른 살에 시각장애가 왔기 때문에 어떤 장애인 단체에도 속해 본 적이 없었다. 장애를 갖기 전부터 글을 썼고 천리안 문단에서 활동하다가 어느 순간 시력을 잃게 되고 사회에서 격리되다 보니 시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전에는 글쓰기가 놀이였는데 주변에서 등단을 권유해 신춘문예에 도전해서 등단하게 되었다.

차희정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현대소설을 전공했고 해방기 문학, 중국 조선족 문학을 연구하며 소수자, 장애인 문학으로 연구 과제가 변화되었다. 제가 연구를 시작할 당시에는 연구자가 별로 없었는데 근래에 장애와 문학의 관련성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위해 ‘장애와문학학회’가 발족하여 훌륭한 문학 연구자, 국어 교육자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했다. 다행스럽고 반가운 일이다. 저도 한쪽 손에 경미한 장애가 있고, 자폐성 장애가 있는 조카가 그림에 재능이 있어서 장애문화예술에 관심을 두고 관련 일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윤석정 장애여성네트워크에서 글쓰기 교육을 5년 넘게 하셨는데, 어떤 분들이 강사로 나섰나?

김효진 처음 글쓰기 시작할 때는 ‘줌마네’라는 여성주의 단체 멤버 중 장애 감수성이 뛰어난 비장애 강사를 모셨고, 2~3년이 지난 후부터 수강생 중에서 강사가 되기 시작했다. 글 잘 쓰는 사람은 많지만, 장애 여성의 경험을 이해하고 긍정할 수 있는 사람, 장애 감수성을 제일 우선으로 생각한다. 저나 그때 강사들은 현재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 타 단체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윤석정 손병걸 선생님은 비장애인과 경쟁해 등단해서 활동하고 있다. 그 힘으로 인천작가회의 지회장까지 오지 않았을까 한다. 혹시 그 과정에서 차별은 없었나?

손병걸 문학을 하는 이들은 문학의 크기를 장애 여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부분에서 냉정하기는 했다. 중도 장애인에게는 공통적으로 자기 분노가 나타나고, 그 분노를 꺼트리기 위해 자기 노출을 하기도 한다. 그것에 대해 냉정하게 이야기할 때, 그 정도의 배려도 용납 못 하는 게 무슨 문학이냐고 항거하기도 했지만, 문학은 그 정도로 날카로워야 한다고 빨리 인정하게 되었다. 장애가 있는 문학인들이 배려를 요구하거나 약간의 질타를 못 견디기도 하는데 그 부분을 뚫고 나가야 문학의 영역과 자기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 정책에서 문학을 복지 차원으로 전락시켜버린 행정의 오류도 있다. 문학은 정말 치열한 장르이다. 장애의 틀에서 스스로 배려받아야 한다는 약함이 문학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에너지를 굉장히 많이 억제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 반성할 지점이기도 하다.

다양한 장애 문학을 위한 지원

윤석정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범주이다. 장애인이 하는 문학이 있고, 장애를 소재로 쓴 문학이 있는데, 장애인 문학이라고 하면 장애인이 하는 문학으로만 범주가 축소되지 않을까 싶다.

손병걸 ‘장애’라는 문학의 꼬리표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소재냐 주체냐의 차원에서 장애인 문학과 장애 문학에 대한 단체들 사이의 논쟁이 있었다. 저는 문학은 자기 세계의 문제이지 몸에 대한 결과치는 아니라 생각하고 장애가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실제 몸이 불편한 건 인정해야 하고 그 부분이 지원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인지하게 되었다. 그런 차원에서 정책으로 마련되어야 할 부분에 관해 문화체육관광부 연구에도 참여했고, 이음센터 만들기 전에도 여러 토론에 참석하고 의견을 개진했다. 그러나 여전히 주장과 설득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차희정 사실 장애인 문학에 대한 범주화가 학문적으로 합의되어 있지는 않다. ‘장애인 문학’을 붙여 쓸 것인가 띄어 쓸 것인가도 합의되지 않았다. 지금은 활발한 논의를 통해서 장애인에 의한 창작뿐만 아니라 장애와 장애인이 소재가 되거나 등장하는 등의 문학 전반을 장애인 문학으로 범주화하는데 대략적인 합의가 도출되었다. 근래 몇 년 동안은 문학 관련 학술대회에서 소수자 문학으로서 장애가 몇 차례 기획 주제로 다뤄지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장애인 문학이라고 하면 장애가 있는 작가들의 창작을 대상으로 하고 내용이나 주제 또한 선천적이거나 중도 장애가 있는 내 몸으로 인해 겪게 되는 다양한 차별과 소외의 양상이나 그로 인한 분노 등이 아니겠냐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장애인 문학 관련한 제 첫 논문은 1991년부터 25년 간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수상작을 검토해 본 것이었는데 많은 작품에서 실제로 자신의 신체에 대한 안쓰러움, 세상과 차별에 대한 분노 등이 형상화 작업 없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장애인과 다른 몸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는지,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 그 목소리를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문학을 통해서 우리 사회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학문적으로 장애인 문학을 이야기했을 때 다양한 장애 담론이 공론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애 작가들 또한 자신의 장애를 주체적으로 인식하고 장애가 개성으로 구현되는 문학적 지향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차곡차곡 누적된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그것이 농익어 문학적 형상화의 과정을 거쳐 표현되어야만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효진 저는 ‘장애 문학’이 맞는 것 같다. 장애 예술과 장애인 예술을 구분하면서 장애인 예술은 장애 당사자가 하는 것, 그리고 장애 예술은 대안적인 예술, 저항예술 차원이라는 글을 읽었다. 장애인들이 하는 예술도 있지만, 장애의 관점에서 세계를 다르게 보는 것, 장애를 대상화해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천편일률적 시각을 뛰어넘으려는 시도, 이런 게 예술에서 구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책을 듣는 시간』을 쓴 정은 작가는 장애 당사자가 아님에도 장애의 세계를 너무 잘 묘사한다. 이런 부분도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장애인 문학이라고 하면 장애인이 하는 문학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손병걸 뒤집어보면 명쾌하다. 어떤 우수한 작품이 있는데 장애인이 썼으면 ‘극복’이고 비장애인이 썼으면 그냥 ‘우수한 작품’이다. 장애인이 문학을 대하는 태도에 의한 결과일 수도 있고 원인을 제공한 바가 있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 바라보는 모습이 왜 그렇게 단단하게 고여 있을까? 그걸 타파해야 한다.

차희정 장애학에서는 내가 가진 신체적 결손이나 여러 가지 어려움 때문에 사회 진입이 어렵다고 이해했던 기존의 장애 관점이 아닌 장애인의 사회 진입을 어렵게 하는 다양한 사회적 장애를 장애로 이해한다. 즉, 장애가 다수의 비장애인 중심으로 기획, 구축된 사회로 인해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 생각에 동의하고 문학도 그런 식으로 가고 있다. 장애가 있는 사람이 보는 세계, 작가 의식에 관한 탐구도 필요하다. 그런 부분에서 장애인 문학이라고 하는 것 같다.

손병걸 장애 문학이 출발한 게 단체부터 만들고 예산 따는 것이었다. 예술의 힘을 키울 수 있는 제도가 없어서 외부 강사 없이 자신들의 체험을 누적하고 그 누적된 체험으로 예산을 확보하면서 단체가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단체 수는 늘어나지만 큰 틀에서는 에너지가 줄어든다. 단체끼리 싸우고 서로에 대한 불협화음이 사회적 편견을 더 단단히 하는 아주 나쁜 영향을 끼진다. 그래서 저는 국립장애예술종합학교 같은 것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도권 안에서 합리적으로 교육받고 치열하게 온몸을 바쳐 문학의 세계로 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길을 열어줘야 하는데 다 고만고만한 자리에 머물고 있다.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예산도 집중해서 국립대학 같은 형식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움직이는 동선은 도움을 받아야 한다. 시각장애인은 일반대학에서 화면낭독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없고, 휠체어 올라가는 곳도 없다. 중증의 경우에는 특수한 기구들이 필요한데 일반 대학에는 없다. 이렇게 느슨하고 느린 환경을 갖춘 시스템 안에서 공부할 수 있는 자리와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참석자 모두 좋은 생각이다. 갑자기 설레기 시작한다. (웃음)

차희정 가장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 글쓰기이다. 몇 년 전 솟대문학 20년을 정리하는 세미나에서 만난 시인에게서 폐지 수집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장애인이 이면지에 시를 써와서는 봐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 역시 부족함을 느끼지만, 자신의 시를 봐달라고 가져오는 다른 장애인이 있었다며 표현하고 싶은 욕구는 이렇게 큰데 발표할 지면은 없다고 말씀하셨다. 국립학교가 어렵다면 이음센터 등 다양한 곳에서 글쓰기 교육이 진행되고 프로그램이 융성해지면 좋겠다. 이를 통해 장애인 작가들이 가진 생각을 좀 더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비장애인에게 장애인 문학이 알려질 창구가 생기면 좋겠다. 발달장애인의 그림에 대해 잘 몰랐지만, 점점 사람들이 관심을 두고 마니아층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장애인 문학도 그런 통로가 많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윤석정 등단이나 작가의 길로 가는 글쓰기와 자기만족, 자기표현을 위한 글쓰기를 나눠서 이야기하면 좋겠다. 작가의 창작역량을 위한 지원도 필요할 것이고, 작가를 꿈꾸지는 않지만 글을 쓰고 싶어 하고 자기표현을 하고 싶어 하는 분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필요할 것이다.

차희정 토양이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장애인만큼 장애인도 글 쓰는 경험에 많이 노출되어야 한다. 도서관에서 하는 문화 프로그램도 많지만, 장애인이 참여하려면 어려움이 많고 그들을 위한 배려도 빈약하다. 이음센터 등에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져야 그다음 단계를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현재 솟대문학이 없어지고 장애인 문학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곳이 계간지 [E美지] 정도다. 연구자들에 의해 좋은 평을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거론되고 노출되어야 또 다른 동기가 되어 다음 단계로 올라갈 텐데 현재는 장애인 창작자들의 열망을 해소해 줄 곳이 없다. 저는 백만 권이 있는 도서관 하나보다 만 권이 있는 도서관 백 개가 더 좋다고 생각한다. 크고 작은 문학 창작, 글쓰기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많아야만 장애인은 표현할 기회가 생기고 그다음에 자연스럽게 작가군도 형성될 거로 생각한다. 서울문화재단에서 해마다 장애인 작가에게 창작지원 공모를 하는데 이런 공모가 많아지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고,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등 장애 예술 지원사업의 규모가 좀 더 커진다면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까.

손병걸 시 한 편을 쓰려면 백 편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 있듯, 접하는 방식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오프라인은 물론이고, 움직이기 어려운 중증장애인을 위해서는 온라인으로도 기존 작품을 많이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문예사조별로, 시대별로, 노동, 참여 등 작품 카테고리를 나누어 집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온라인을 구축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고 엄청난 효과가 날 것이다. 오프라인의 경우는 장애인들이 자체적으로 공모를 해서 뭔가 축제처럼 모일 수 있는 그런 장을 만들면 좋겠다. 일련의 경험을 해보고 해갈을 시킨 다음에 전문성을 키울지 말지 결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계속해서 어느 선에서 머무르는 지원제도는 예산은 예산대로 쓰고 결과도 안 좋고 장애인끼리 불협화음은 계속 강화되는 것이 불 보듯이, 빤히, 안보이지, 내가. (일동 웃음)

김효진 몸의 제한과 접근성을 위한 여러 가지 지원이 필요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것이 마련된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인 문제로 벽에 부딪힌다. 대한민국은 학벌 사회라 학맥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대인관계에서 적절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결국 네트워크가 없다. 장애인 당사자의 역량 강화와 뜻이 맞는 서너 명의 소그룹을 지원해주고, 지원금 등에 대해 컨설팅을 할 수 있는 중간지원단체 혹은 조직을 고려해 보면 어떨까. 물론 중간지원조직도 일정한 공신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비장애인 문화예술단체가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대안적인 장애 문학과 추구하는 바가 다르거나 지나치게 과정에 개입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에 장애인이 절반을 넘는 의사결정 구조를 갖는다는 전제하에 제안해본다.

오롯이 창작을 지원하는 창작지원금

윤석정 장애 유형에 따라 예술을 하며 경험한 어려움에 대해 말씀해 달라.

손병걸 장애 유형에 따라 글을 쓰는 도구와 형식이 다른데 거기에 대한 지원이 없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중도 실명을 해서 점자를 따라갈 수 없었는데 화면낭독 프로그램의 기능적인 부분을 전문적으로 가르쳐 주는 곳도 없었고 매뉴얼도 없었다. 그걸 좀 빨리 배웠으면 시간을 절약했을 거다. 저는 컴퓨터 기능을 잘 알고 있어서 다행히 빨리 터득했지만, 교육을 받지 않으면 접근을 못 한다. 장애 유형에 따른 지원 프로그램을 매뉴얼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효진 작가가 본업이 아니고 인권운동 와중에 짬짬이 써내야 하는 혼자만의 작업으로 외로움이 컸다. 그리고 제 장애의 경험을 글로 쓰다 보니 이해받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제가 좋아하는 김미선 작가님의 소설에 관해 계속 장애를 주제 또는 소재로 썼다는 이유로 보편적이지 않다고 평가하는 것을 보았다. 같은 두려움이 내 안에 있었고, 그래서 작년부터 몇몇 작가와 모임을 시작했는데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서 모임을 하지 못했다. 단체 활동을 하면서 생계유지를 위해 교정·편집 아르바이트를 계속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집중하는 데 한계가 있어 최근에는 못하고 있다. 그동안 창작지원금을 두 번 받았는데 천만 원 신청해서 오백만 원을 받았다. 그중 삼백만 원은 출판사에 주고 나머지 이백만 원으로 작가와의 대화 등을 기획했다. 원고료 지원 등 개인 창작자 지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윤석정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은 결과물로 책만 내고 지원금을 어떻게 쓰든 관여하지 않는다. 이러한 방식이 바람직하다. 2018년 웹진 [이음]의 장애 예술 창작 활성화 관련 설문조사에서 장애 예술인 역량 강화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원의 첫 번째가 창작지원금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문학인들의 공통된 과제가 글을 써서 생계유지가 힘들다는 것이다. 올해 12월부터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예술인지원법」)이 시행된다. 일자리 창출 정책도 포함되는데, 공공기관이나 기업에 제안하는 것으로 가능할까?

차희정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 생각한다. 기업에서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아 내는 장애인고용부담금을 장애 예술인들에게 월급 형식으로 지원하고, 그들의 창작활동을 기업이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실천하는 것이 첫걸음이 되어야 하고 (정책으로서) 실효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웬만한 규모의 기업은 CSR 공익사업팀이 있어 장애인 창작자가 객원기자 식으로 기사를 작성하거나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거 같다. 쓰는 일을 지속할 수 있도록 기업에서 나서서 해주면 국가 정책으로 창작지원금을 주는 것보다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손병걸 문학인들에게 원고를 받아서 출판사에서 책을 한 권 찍어주는 형식의 책 발간 사업은 당장 창작지원금으로 고쳐 창작자의 활동에 대한 부분을 지원하고 결과보고서는 책으로 받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절대 금액을 놓고 나눠주기식 지원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아무 도움이 안 된다.

김효진 기본소득으로 접근하면 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것 같다. 전 국민에게 당장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최저선에서의 보장은 먼저 장애 예술 분야부터 시도될 수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장애인에게 돈을 주면 엉뚱한 곳으로 간다는 우리 사회의 부정적 인식을 넘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지면과 기회를 활짝 펼치는 방법

윤석정 예술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장애 예술인 지원에 대한 근거와 당위성을 요구하거나, 세금을 축낸다는 여론이나 비장애인도 힘들다고 하는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저는 ‘사랑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조건 없이 주는 마음이다. 장애 문학인에게 조건 없이 지원해야 장애인 문학이 더 발전할 수 있다. 더욱이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문학 작품을 자주 접해야 하는데 장애인 문학을 만날 수 있는 매체가 거의 없다. 장애 문학인이 발표할 수 있는 지면과 매체가 없고 책을 발간해도 거론되지 않는다. 문학인에게 지면이 없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이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차희정 「장애예술인지원법」에서 스크린 쿼터제처럼 계간지 등에 장애인 문학 지면을 할애하도록 요구하는 움직임도 있다. 계간지조차 어렵긴 하지만 장애 문학인들에게 발표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나 기업에서 장애 예술인을 지원하고자 할 때 국가가 일정 부분 지원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세부항목이 없다.

윤석정 사실 문학은 독자가 떠나고 있어서 기존 문예지들은 명맥만 유지하거나 폐간을 했고 유수한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문예지 몇 개만 남았다. 장애 문학인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을 확보해주는 대신 운영이 어려운 문학지에 지원해준다면 현실성이 있지 않을까?

차희정 구매해야 하는 잡지보다는 오히려 사보에 있는 글을 관심 있게 많이 보더라. 짧은 글이었는데 이런 작가를 아느냐 물어보기도 했다. 장애인고용부담금을 장애 예술인에게 주도록 하자는 첫걸음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어떤 식으로든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함께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기회를 열어 놓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잘 정착된다면 그 위에 뭔가 쌓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궁극적 지향점은 장애인 예술이 봐주고 관심을 가져줘야 하는 무엇이 아니라, 새롭고 다른 것들로 감동을 줄 수 있는 예술, 문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석정 'A의 모든 것'이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그전까지는 한 번도 못 봤고 관심 두지 않았던 작품을 만나게 되었고, 제가 생각지 못했던 시각과 인식이 생겼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끊임없이 만나고 교류해야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서로 모르기 때문에 벽이 생긴다. 그래서 지면 확대도 중요하고 네트워크도 중요하다. 실질적인 방안이 있을까?

김효진 오프라인으로 작품을 접할 기회도 많아져야 한다. 코로나 상황이라 여의치 않겠지만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넘나드는 교류의 장, 낭송회나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낭송이 주는 울림이 있을 텐데, 정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작품에 관해 이야기 나눌 소규모 공간과 시간이 일상에서 많이 일어날 수 있도록 지원책이 필요하다.

차희정 이음센터가 좀 더 개방감이 있으면 좋겠다. 혜화역 2번 출구로 나와서 마로니에 공원으로 갈 때 옆 골목을 이용하거나 돌아가게 된다. 현재 이음센터는 장애인 문화행사만 하는 곳이라 생각되어 비장애인의 접근이 어렵다. 실제 출입문도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이음센터를 방문하는 목적이 아니라도 이음센터를 통과하도록 한다면 자연스레 1층 로비는 문화예술 광장으로 역할할 수 있다. 장애인·비장애인의 창작활동을 로비에서 공개적으로 진행하면 굉장히 자유로운 아이디어가 오가고 분위기가 좋아질 것이다. 지금 이음센터는 고여 있는 공간 같다. 기왕 귀한 공간을 얻었으니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그 안에서 섞였으면 좋겠다. 문화 다양성은 그러한 분위기에서 자라날 수 있다. 이음센터가 확 열린 곳으로, 적극적 개방감으로 이를 담아내길 바란다.

손병걸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연결되기 위한 마당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이음센터를 새로 지으려고 설문 조사도 하고 토론도 했지만 있는 건물을 활용하라는 결과가 되었다. 그나마 주어진 공간 안에서 패배감에 젖는 것이 아니라 그곳이 살아있는 공간으로서의 접근성을 확보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미래의 장애 문학 독자들께

윤석정 장애 문학에 접근하는,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미래의 독자들에게 장애 문학의 특수성과 독창성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차희정 지금까지 많은 소설 속에서 시대적인 아픔이나 불합리한 것들이 장애인의 몸으로 재현되었다. 역으로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놓고 보면 그 시대가 약자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요구했고, 문제의식이 무엇인지 굉장히 명징하게 볼 수 있다. 문학을 읽는 새로운 방법으로서 장애가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고 생각한다.

김효진 문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해석이자 부딪힘이라고 생각하는데, 장애 문학이 특수하다면 이 특수성은 보편으로 가는 길이지, 그 특수성 자체가 장애 문학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장애 문학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문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만약 기존 장애 문학에서 그런 것이 발견되지 않았더라도 그것은 장애 문학의 한계가 아니다. 우리는 세계와 인간에 대해 무한하게 사고하고 상상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개개인은 굉장히 협소하다. 그 협소함을 깨고 무한하게 넓힐 수 있는 것이 장애 문학이고 앞으로는 그런 문학이 많이 나올 것이다. 기대해도 좋다고 말하고 싶다.

손병걸 개인이 가진 체험은 장애나 비장애를 망라해 독창적일 수밖에 없고, 독창성을 갖고 있다. 장애 문학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갇혀 있는 것을 어떻게 깨부술 것인가에 대해 계속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장애인이 써야 할 작품의 방향성에 대해 말씀드리며 얘기를 갈음하겠다. 당장 계단을 내려갈 때 타인의 팔이 없으면 못 내려가는 시각장애인 당사자도 힘들지만, 내가 혼자 못 가는 괴로움에 머물러 있지 말고 나에게 왼팔을 빌려주고 계단을 앞장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대되어야 한다. 장애인 가족이 겪는 어려움이 많은데, 이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결국 장애가 사회 전반적인 문제였음을 깨닫고, 장애에 대한 편견이 으그러지는 식으로 문학이 변화해야 한다. 계속해서 ‘장애는 장애’라고 머물다 보면 우리가 독창성이니 특수성이니 얘기한들 냄비 속 개구리처럼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엄밀히 말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누가 장애 문학으로 보겠나.

윤석정 글쓰기가 자기 치유에서 시작해도 이에 그치지 않고 외연을 넓혀 타인도 치유와 위안을 받는 것처럼 장애 문학도 바깥으로 펼쳐나가야 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차별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장애인이라서 한계를 규정짓는 사람은 누구인가 생각하게 됐고, 장애 문학인이 가진 창작역량을 어떻게 발휘할 것인가 깊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결국 장애 문학인들이 창작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꾸준히, 지속해서 지원하고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만날 수 있는 장을 여는 게 관건이 아닐까 싶다. 귀한 말씀을 해 주셔서 감사드린다.

윤석정

시인, 문학공연연출가.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오페라 미용실』이 있다. 문학의 저변을 넓히고자 2007년 시를 노래하는 ‘트루베르’를 결성했고 다양한 예술인들과 함께 문화창작집단 ‘트루베르크리에이티브’를 만들었다. 현재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에서 기획홍보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김효진

동화를 쓰는 작가이자 장애인권운동을 하고 있다. 장애여성네트워크 대표로 활동하며 『깡이의 꽃밭』, 『달려라 송이』, 『착한 아이 안할래』 등의 작품을 썼다.
장애여성네트워크 www.dwnet.modoo.at

손병걸

200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하여 구상솟대문학상, 장애인문화예술인 국무총리상, 중봉조헌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푸른 신호등』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통증을 켜다』가 있고, 수필집 『어둠의 감시자』를 발간했다. 현재 인천작가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차희정

경찰대학, 경희대학교, 아주대학교에서 글쓰기와 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장애인 문학을 연구하며 다수 문예지와 잡지 등에 장애와 문학 관련 글을 싣고 있다. 저서로 장애인문학평론집 『상실의 욕망』이 있다.

정리. 프로젝트 궁리 최엄윤 PD omyunchoi@hanmail.net
사진. 복세욱 ricky76kr@naver.com

2020년 12월 (16호)

상세내용

이슈

[연속 좌담] 장애 예술과 창작역량③ 문학

외연을 넓혀가며 타인과 만나는 장애 문학

김효진, 손병걸, 윤석정, 차희정

개요

  • 일시 2020년 11월 10일(화) 오전 11시~오후 1시

  • 장소 다산북살롱

  • 참석자

    좌장.
    윤석정(시인, 트루베르크리에이티브 대표)
    패널.
    김효진(동화작가), 손병걸(시인), 차희정(문학평론가)

다른 몸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

윤석정 장애 예술과 창작역량이라는 주제로 문학 분야 선생님들을 모시고 좌담회를 갖게 되었다. 장애 문학에 관한 넓은 이야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장애 문학인들이 창작역량을 펼치고 강화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춰, 선생님들의 경험과 현장에서 느끼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길 바란다. 저는 시를 쓰고, 문학 관련 콘텐츠를 연출, 기획, 제작하고 있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김효진 동화를 쓰고 있고, 본업은 장애여성네트워크 대표이다. 일이 잘 안될 때, 길을 찾기 위해서 글을 쓴다. 학부 때 문학을 전공했고 막연하게 소설가의 꿈을 갖고 있다가 대학 졸업 후 10년 정도 지나서 아동문학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주로 출판 계통에서 일하다가 인권운동을 하기 위해 장애계에 뛰어들게 되었다. 장애여성네트워크 초창기에는 5년 넘게 글쓰기 교육을 꾸준히 했었다. 당시 글쓰기를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긍정하게 되고 자신감이 생긴 분들이 현재 장애계 여러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저의 자부심이다. 활동가들이 문화예술을 어렵게 생각하는 탓에 최근에는 문학 활동을 하고 있진 않다. 하지만 제 작품을 소개하는 북콘서트에서 장애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사회 인식 등을 접목하기도 한다.

손병걸 저는 시를 쓰고, 중도 시각장애가 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이자 인천작가회의 지회장을 맡고 있다. 서른 살에 시각장애가 왔기 때문에 어떤 장애인 단체에도 속해 본 적이 없었다. 장애를 갖기 전부터 글을 썼고 천리안 문단에서 활동하다가 어느 순간 시력을 잃게 되고 사회에서 격리되다 보니 시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전에는 글쓰기가 놀이였는데 주변에서 등단을 권유해 신춘문예에 도전해서 등단하게 되었다.

차희정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현대소설을 전공했고 해방기 문학, 중국 조선족 문학을 연구하며 소수자, 장애인 문학으로 연구 과제가 변화되었다. 제가 연구를 시작할 당시에는 연구자가 별로 없었는데 근래에 장애와 문학의 관련성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위해 ‘장애와문학학회’가 발족하여 훌륭한 문학 연구자, 국어 교육자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했다. 다행스럽고 반가운 일이다. 저도 한쪽 손에 경미한 장애가 있고, 자폐성 장애가 있는 조카가 그림에 재능이 있어서 장애문화예술에 관심을 두고 관련 일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윤석정 장애여성네트워크에서 글쓰기 교육을 5년 넘게 하셨는데, 어떤 분들이 강사로 나섰나?

김효진 처음 글쓰기 시작할 때는 ‘줌마네’라는 여성주의 단체 멤버 중 장애 감수성이 뛰어난 비장애 강사를 모셨고, 2~3년이 지난 후부터 수강생 중에서 강사가 되기 시작했다. 글 잘 쓰는 사람은 많지만, 장애 여성의 경험을 이해하고 긍정할 수 있는 사람, 장애 감수성을 제일 우선으로 생각한다. 저나 그때 강사들은 현재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 타 단체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윤석정 손병걸 선생님은 비장애인과 경쟁해 등단해서 활동하고 있다. 그 힘으로 인천작가회의 지회장까지 오지 않았을까 한다. 혹시 그 과정에서 차별은 없었나?

손병걸 문학을 하는 이들은 문학의 크기를 장애 여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부분에서 냉정하기는 했다. 중도 장애인에게는 공통적으로 자기 분노가 나타나고, 그 분노를 꺼트리기 위해 자기 노출을 하기도 한다. 그것에 대해 냉정하게 이야기할 때, 그 정도의 배려도 용납 못 하는 게 무슨 문학이냐고 항거하기도 했지만, 문학은 그 정도로 날카로워야 한다고 빨리 인정하게 되었다. 장애가 있는 문학인들이 배려를 요구하거나 약간의 질타를 못 견디기도 하는데 그 부분을 뚫고 나가야 문학의 영역과 자기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 정책에서 문학을 복지 차원으로 전락시켜버린 행정의 오류도 있다. 문학은 정말 치열한 장르이다. 장애의 틀에서 스스로 배려받아야 한다는 약함이 문학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에너지를 굉장히 많이 억제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 반성할 지점이기도 하다.

다양한 장애 문학을 위한 지원

윤석정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범주이다. 장애인이 하는 문학이 있고, 장애를 소재로 쓴 문학이 있는데, 장애인 문학이라고 하면 장애인이 하는 문학으로만 범주가 축소되지 않을까 싶다.

손병걸 ‘장애’라는 문학의 꼬리표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소재냐 주체냐의 차원에서 장애인 문학과 장애 문학에 대한 단체들 사이의 논쟁이 있었다. 저는 문학은 자기 세계의 문제이지 몸에 대한 결과치는 아니라 생각하고 장애가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실제 몸이 불편한 건 인정해야 하고 그 부분이 지원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인지하게 되었다. 그런 차원에서 정책으로 마련되어야 할 부분에 관해 문화체육관광부 연구에도 참여했고, 이음센터 만들기 전에도 여러 토론에 참석하고 의견을 개진했다. 그러나 여전히 주장과 설득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차희정 사실 장애인 문학에 대한 범주화가 학문적으로 합의되어 있지는 않다. ‘장애인 문학’을 붙여 쓸 것인가 띄어 쓸 것인가도 합의되지 않았다. 지금은 활발한 논의를 통해서 장애인에 의한 창작뿐만 아니라 장애와 장애인이 소재가 되거나 등장하는 등의 문학 전반을 장애인 문학으로 범주화하는데 대략적인 합의가 도출되었다. 근래 몇 년 동안은 문학 관련 학술대회에서 소수자 문학으로서 장애가 몇 차례 기획 주제로 다뤄지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장애인 문학이라고 하면 장애가 있는 작가들의 창작을 대상으로 하고 내용이나 주제 또한 선천적이거나 중도 장애가 있는 내 몸으로 인해 겪게 되는 다양한 차별과 소외의 양상이나 그로 인한 분노 등이 아니겠냐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장애인 문학 관련한 제 첫 논문은 1991년부터 25년 간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수상작을 검토해 본 것이었는데 많은 작품에서 실제로 자신의 신체에 대한 안쓰러움, 세상과 차별에 대한 분노 등이 형상화 작업 없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장애인과 다른 몸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는지,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 그 목소리를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문학을 통해서 우리 사회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학문적으로 장애인 문학을 이야기했을 때 다양한 장애 담론이 공론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애 작가들 또한 자신의 장애를 주체적으로 인식하고 장애가 개성으로 구현되는 문학적 지향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차곡차곡 누적된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그것이 농익어 문학적 형상화의 과정을 거쳐 표현되어야만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효진 저는 ‘장애 문학’이 맞는 것 같다. 장애 예술과 장애인 예술을 구분하면서 장애인 예술은 장애 당사자가 하는 것, 그리고 장애 예술은 대안적인 예술, 저항예술 차원이라는 글을 읽었다. 장애인들이 하는 예술도 있지만, 장애의 관점에서 세계를 다르게 보는 것, 장애를 대상화해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천편일률적 시각을 뛰어넘으려는 시도, 이런 게 예술에서 구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책을 듣는 시간』을 쓴 정은 작가는 장애 당사자가 아님에도 장애의 세계를 너무 잘 묘사한다. 이런 부분도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장애인 문학이라고 하면 장애인이 하는 문학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손병걸 뒤집어보면 명쾌하다. 어떤 우수한 작품이 있는데 장애인이 썼으면 ‘극복’이고 비장애인이 썼으면 그냥 ‘우수한 작품’이다. 장애인이 문학을 대하는 태도에 의한 결과일 수도 있고 원인을 제공한 바가 있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 바라보는 모습이 왜 그렇게 단단하게 고여 있을까? 그걸 타파해야 한다.

차희정 장애학에서는 내가 가진 신체적 결손이나 여러 가지 어려움 때문에 사회 진입이 어렵다고 이해했던 기존의 장애 관점이 아닌 장애인의 사회 진입을 어렵게 하는 다양한 사회적 장애를 장애로 이해한다. 즉, 장애가 다수의 비장애인 중심으로 기획, 구축된 사회로 인해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 생각에 동의하고 문학도 그런 식으로 가고 있다. 장애가 있는 사람이 보는 세계, 작가 의식에 관한 탐구도 필요하다. 그런 부분에서 장애인 문학이라고 하는 것 같다.

손병걸 장애 문학이 출발한 게 단체부터 만들고 예산 따는 것이었다. 예술의 힘을 키울 수 있는 제도가 없어서 외부 강사 없이 자신들의 체험을 누적하고 그 누적된 체험으로 예산을 확보하면서 단체가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단체 수는 늘어나지만 큰 틀에서는 에너지가 줄어든다. 단체끼리 싸우고 서로에 대한 불협화음이 사회적 편견을 더 단단히 하는 아주 나쁜 영향을 끼진다. 그래서 저는 국립장애예술종합학교 같은 것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도권 안에서 합리적으로 교육받고 치열하게 온몸을 바쳐 문학의 세계로 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길을 열어줘야 하는데 다 고만고만한 자리에 머물고 있다.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예산도 집중해서 국립대학 같은 형식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움직이는 동선은 도움을 받아야 한다. 시각장애인은 일반대학에서 화면낭독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없고, 휠체어 올라가는 곳도 없다. 중증의 경우에는 특수한 기구들이 필요한데 일반 대학에는 없다. 이렇게 느슨하고 느린 환경을 갖춘 시스템 안에서 공부할 수 있는 자리와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참석자 모두 좋은 생각이다. 갑자기 설레기 시작한다. (웃음)

차희정 가장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 글쓰기이다. 몇 년 전 솟대문학 20년을 정리하는 세미나에서 만난 시인에게서 폐지 수집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장애인이 이면지에 시를 써와서는 봐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 역시 부족함을 느끼지만, 자신의 시를 봐달라고 가져오는 다른 장애인이 있었다며 표현하고 싶은 욕구는 이렇게 큰데 발표할 지면은 없다고 말씀하셨다. 국립학교가 어렵다면 이음센터 등 다양한 곳에서 글쓰기 교육이 진행되고 프로그램이 융성해지면 좋겠다. 이를 통해 장애인 작가들이 가진 생각을 좀 더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비장애인에게 장애인 문학이 알려질 창구가 생기면 좋겠다. 발달장애인의 그림에 대해 잘 몰랐지만, 점점 사람들이 관심을 두고 마니아층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장애인 문학도 그런 통로가 많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윤석정 등단이나 작가의 길로 가는 글쓰기와 자기만족, 자기표현을 위한 글쓰기를 나눠서 이야기하면 좋겠다. 작가의 창작역량을 위한 지원도 필요할 것이고, 작가를 꿈꾸지는 않지만 글을 쓰고 싶어 하고 자기표현을 하고 싶어 하는 분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필요할 것이다.

차희정 토양이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장애인만큼 장애인도 글 쓰는 경험에 많이 노출되어야 한다. 도서관에서 하는 문화 프로그램도 많지만, 장애인이 참여하려면 어려움이 많고 그들을 위한 배려도 빈약하다. 이음센터 등에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져야 그다음 단계를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현재 솟대문학이 없어지고 장애인 문학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곳이 계간지 [E美지] 정도다. 연구자들에 의해 좋은 평을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거론되고 노출되어야 또 다른 동기가 되어 다음 단계로 올라갈 텐데 현재는 장애인 창작자들의 열망을 해소해 줄 곳이 없다. 저는 백만 권이 있는 도서관 하나보다 만 권이 있는 도서관 백 개가 더 좋다고 생각한다. 크고 작은 문학 창작, 글쓰기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많아야만 장애인은 표현할 기회가 생기고 그다음에 자연스럽게 작가군도 형성될 거로 생각한다. 서울문화재단에서 해마다 장애인 작가에게 창작지원 공모를 하는데 이런 공모가 많아지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고,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등 장애 예술 지원사업의 규모가 좀 더 커진다면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까.

손병걸 시 한 편을 쓰려면 백 편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 있듯, 접하는 방식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오프라인은 물론이고, 움직이기 어려운 중증장애인을 위해서는 온라인으로도 기존 작품을 많이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문예사조별로, 시대별로, 노동, 참여 등 작품 카테고리를 나누어 집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온라인을 구축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고 엄청난 효과가 날 것이다. 오프라인의 경우는 장애인들이 자체적으로 공모를 해서 뭔가 축제처럼 모일 수 있는 그런 장을 만들면 좋겠다. 일련의 경험을 해보고 해갈을 시킨 다음에 전문성을 키울지 말지 결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계속해서 어느 선에서 머무르는 지원제도는 예산은 예산대로 쓰고 결과도 안 좋고 장애인끼리 불협화음은 계속 강화되는 것이 불 보듯이, 빤히, 안보이지, 내가. (일동 웃음)

김효진 몸의 제한과 접근성을 위한 여러 가지 지원이 필요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것이 마련된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인 문제로 벽에 부딪힌다. 대한민국은 학벌 사회라 학맥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대인관계에서 적절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결국 네트워크가 없다. 장애인 당사자의 역량 강화와 뜻이 맞는 서너 명의 소그룹을 지원해주고, 지원금 등에 대해 컨설팅을 할 수 있는 중간지원단체 혹은 조직을 고려해 보면 어떨까. 물론 중간지원조직도 일정한 공신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비장애인 문화예술단체가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대안적인 장애 문학과 추구하는 바가 다르거나 지나치게 과정에 개입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에 장애인이 절반을 넘는 의사결정 구조를 갖는다는 전제하에 제안해본다.

오롯이 창작을 지원하는 창작지원금

윤석정 장애 유형에 따라 예술을 하며 경험한 어려움에 대해 말씀해 달라.

손병걸 장애 유형에 따라 글을 쓰는 도구와 형식이 다른데 거기에 대한 지원이 없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중도 실명을 해서 점자를 따라갈 수 없었는데 화면낭독 프로그램의 기능적인 부분을 전문적으로 가르쳐 주는 곳도 없었고 매뉴얼도 없었다. 그걸 좀 빨리 배웠으면 시간을 절약했을 거다. 저는 컴퓨터 기능을 잘 알고 있어서 다행히 빨리 터득했지만, 교육을 받지 않으면 접근을 못 한다. 장애 유형에 따른 지원 프로그램을 매뉴얼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효진 작가가 본업이 아니고 인권운동 와중에 짬짬이 써내야 하는 혼자만의 작업으로 외로움이 컸다. 그리고 제 장애의 경험을 글로 쓰다 보니 이해받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제가 좋아하는 김미선 작가님의 소설에 관해 계속 장애를 주제 또는 소재로 썼다는 이유로 보편적이지 않다고 평가하는 것을 보았다. 같은 두려움이 내 안에 있었고, 그래서 작년부터 몇몇 작가와 모임을 시작했는데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서 모임을 하지 못했다. 단체 활동을 하면서 생계유지를 위해 교정·편집 아르바이트를 계속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집중하는 데 한계가 있어 최근에는 못하고 있다. 그동안 창작지원금을 두 번 받았는데 천만 원 신청해서 오백만 원을 받았다. 그중 삼백만 원은 출판사에 주고 나머지 이백만 원으로 작가와의 대화 등을 기획했다. 원고료 지원 등 개인 창작자 지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윤석정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은 결과물로 책만 내고 지원금을 어떻게 쓰든 관여하지 않는다. 이러한 방식이 바람직하다. 2018년 웹진 [이음]의 장애 예술 창작 활성화 관련 설문조사에서 장애 예술인 역량 강화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원의 첫 번째가 창작지원금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문학인들의 공통된 과제가 글을 써서 생계유지가 힘들다는 것이다. 올해 12월부터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예술인지원법」)이 시행된다. 일자리 창출 정책도 포함되는데, 공공기관이나 기업에 제안하는 것으로 가능할까?

차희정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 생각한다. 기업에서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아 내는 장애인고용부담금을 장애 예술인들에게 월급 형식으로 지원하고, 그들의 창작활동을 기업이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실천하는 것이 첫걸음이 되어야 하고 (정책으로서) 실효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웬만한 규모의 기업은 CSR 공익사업팀이 있어 장애인 창작자가 객원기자 식으로 기사를 작성하거나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거 같다. 쓰는 일을 지속할 수 있도록 기업에서 나서서 해주면 국가 정책으로 창작지원금을 주는 것보다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손병걸 문학인들에게 원고를 받아서 출판사에서 책을 한 권 찍어주는 형식의 책 발간 사업은 당장 창작지원금으로 고쳐 창작자의 활동에 대한 부분을 지원하고 결과보고서는 책으로 받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절대 금액을 놓고 나눠주기식 지원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아무 도움이 안 된다.

김효진 기본소득으로 접근하면 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것 같다. 전 국민에게 당장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최저선에서의 보장은 먼저 장애 예술 분야부터 시도될 수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장애인에게 돈을 주면 엉뚱한 곳으로 간다는 우리 사회의 부정적 인식을 넘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지면과 기회를 활짝 펼치는 방법

윤석정 예술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장애 예술인 지원에 대한 근거와 당위성을 요구하거나, 세금을 축낸다는 여론이나 비장애인도 힘들다고 하는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저는 ‘사랑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조건 없이 주는 마음이다. 장애 문학인에게 조건 없이 지원해야 장애인 문학이 더 발전할 수 있다. 더욱이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문학 작품을 자주 접해야 하는데 장애인 문학을 만날 수 있는 매체가 거의 없다. 장애 문학인이 발표할 수 있는 지면과 매체가 없고 책을 발간해도 거론되지 않는다. 문학인에게 지면이 없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이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차희정 「장애예술인지원법」에서 스크린 쿼터제처럼 계간지 등에 장애인 문학 지면을 할애하도록 요구하는 움직임도 있다. 계간지조차 어렵긴 하지만 장애 문학인들에게 발표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나 기업에서 장애 예술인을 지원하고자 할 때 국가가 일정 부분 지원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세부항목이 없다.

윤석정 사실 문학은 독자가 떠나고 있어서 기존 문예지들은 명맥만 유지하거나 폐간을 했고 유수한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문예지 몇 개만 남았다. 장애 문학인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을 확보해주는 대신 운영이 어려운 문학지에 지원해준다면 현실성이 있지 않을까?

차희정 구매해야 하는 잡지보다는 오히려 사보에 있는 글을 관심 있게 많이 보더라. 짧은 글이었는데 이런 작가를 아느냐 물어보기도 했다. 장애인고용부담금을 장애 예술인에게 주도록 하자는 첫걸음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어떤 식으로든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함께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기회를 열어 놓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잘 정착된다면 그 위에 뭔가 쌓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궁극적 지향점은 장애인 예술이 봐주고 관심을 가져줘야 하는 무엇이 아니라, 새롭고 다른 것들로 감동을 줄 수 있는 예술, 문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석정 'A의 모든 것'이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그전까지는 한 번도 못 봤고 관심 두지 않았던 작품을 만나게 되었고, 제가 생각지 못했던 시각과 인식이 생겼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끊임없이 만나고 교류해야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서로 모르기 때문에 벽이 생긴다. 그래서 지면 확대도 중요하고 네트워크도 중요하다. 실질적인 방안이 있을까?

김효진 오프라인으로 작품을 접할 기회도 많아져야 한다. 코로나 상황이라 여의치 않겠지만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넘나드는 교류의 장, 낭송회나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낭송이 주는 울림이 있을 텐데, 정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작품에 관해 이야기 나눌 소규모 공간과 시간이 일상에서 많이 일어날 수 있도록 지원책이 필요하다.

차희정 이음센터가 좀 더 개방감이 있으면 좋겠다. 혜화역 2번 출구로 나와서 마로니에 공원으로 갈 때 옆 골목을 이용하거나 돌아가게 된다. 현재 이음센터는 장애인 문화행사만 하는 곳이라 생각되어 비장애인의 접근이 어렵다. 실제 출입문도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이음센터를 방문하는 목적이 아니라도 이음센터를 통과하도록 한다면 자연스레 1층 로비는 문화예술 광장으로 역할할 수 있다. 장애인·비장애인의 창작활동을 로비에서 공개적으로 진행하면 굉장히 자유로운 아이디어가 오가고 분위기가 좋아질 것이다. 지금 이음센터는 고여 있는 공간 같다. 기왕 귀한 공간을 얻었으니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그 안에서 섞였으면 좋겠다. 문화 다양성은 그러한 분위기에서 자라날 수 있다. 이음센터가 확 열린 곳으로, 적극적 개방감으로 이를 담아내길 바란다.

손병걸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연결되기 위한 마당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이음센터를 새로 지으려고 설문 조사도 하고 토론도 했지만 있는 건물을 활용하라는 결과가 되었다. 그나마 주어진 공간 안에서 패배감에 젖는 것이 아니라 그곳이 살아있는 공간으로서의 접근성을 확보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미래의 장애 문학 독자들께

윤석정 장애 문학에 접근하는,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미래의 독자들에게 장애 문학의 특수성과 독창성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차희정 지금까지 많은 소설 속에서 시대적인 아픔이나 불합리한 것들이 장애인의 몸으로 재현되었다. 역으로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놓고 보면 그 시대가 약자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요구했고, 문제의식이 무엇인지 굉장히 명징하게 볼 수 있다. 문학을 읽는 새로운 방법으로서 장애가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고 생각한다.

김효진 문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해석이자 부딪힘이라고 생각하는데, 장애 문학이 특수하다면 이 특수성은 보편으로 가는 길이지, 그 특수성 자체가 장애 문학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장애 문학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문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만약 기존 장애 문학에서 그런 것이 발견되지 않았더라도 그것은 장애 문학의 한계가 아니다. 우리는 세계와 인간에 대해 무한하게 사고하고 상상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개개인은 굉장히 협소하다. 그 협소함을 깨고 무한하게 넓힐 수 있는 것이 장애 문학이고 앞으로는 그런 문학이 많이 나올 것이다. 기대해도 좋다고 말하고 싶다.

손병걸 개인이 가진 체험은 장애나 비장애를 망라해 독창적일 수밖에 없고, 독창성을 갖고 있다. 장애 문학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갇혀 있는 것을 어떻게 깨부술 것인가에 대해 계속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장애인이 써야 할 작품의 방향성에 대해 말씀드리며 얘기를 갈음하겠다. 당장 계단을 내려갈 때 타인의 팔이 없으면 못 내려가는 시각장애인 당사자도 힘들지만, 내가 혼자 못 가는 괴로움에 머물러 있지 말고 나에게 왼팔을 빌려주고 계단을 앞장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대되어야 한다. 장애인 가족이 겪는 어려움이 많은데, 이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결국 장애가 사회 전반적인 문제였음을 깨닫고, 장애에 대한 편견이 으그러지는 식으로 문학이 변화해야 한다. 계속해서 ‘장애는 장애’라고 머물다 보면 우리가 독창성이니 특수성이니 얘기한들 냄비 속 개구리처럼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엄밀히 말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누가 장애 문학으로 보겠나.

윤석정 글쓰기가 자기 치유에서 시작해도 이에 그치지 않고 외연을 넓혀 타인도 치유와 위안을 받는 것처럼 장애 문학도 바깥으로 펼쳐나가야 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차별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장애인이라서 한계를 규정짓는 사람은 누구인가 생각하게 됐고, 장애 문학인이 가진 창작역량을 어떻게 발휘할 것인가 깊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결국 장애 문학인들이 창작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꾸준히, 지속해서 지원하고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만날 수 있는 장을 여는 게 관건이 아닐까 싶다. 귀한 말씀을 해 주셔서 감사드린다.

윤석정

시인, 문학공연연출가.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오페라 미용실』이 있다. 문학의 저변을 넓히고자 2007년 시를 노래하는 ‘트루베르’를 결성했고 다양한 예술인들과 함께 문화창작집단 ‘트루베르크리에이티브’를 만들었다. 현재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에서 기획홍보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김효진

동화를 쓰는 작가이자 장애인권운동을 하고 있다. 장애여성네트워크 대표로 활동하며 『깡이의 꽃밭』, 『달려라 송이』, 『착한 아이 안할래』 등의 작품을 썼다.
장애여성네트워크 www.dwnet.modoo.at

손병걸

200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하여 구상솟대문학상, 장애인문화예술인 국무총리상, 중봉조헌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푸른 신호등』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통증을 켜다』가 있고, 수필집 『어둠의 감시자』를 발간했다. 현재 인천작가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차희정

경찰대학, 경희대학교, 아주대학교에서 글쓰기와 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장애인 문학을 연구하며 다수 문예지와 잡지 등에 장애와 문학 관련 글을 싣고 있다. 저서로 장애인문학평론집 『상실의 욕망』이 있다.

정리. 프로젝트 궁리 최엄윤 PD omyunchoi@hanmail.net
사진. 복세욱 ricky76kr@naver.com

2020년 12월 (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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