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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set프로젝트 <관람모드>

이음광장 관람모드: 극장을 보는 방식

  • 신재 
  • 등록일 2020-09-08
  • 조회수1024

“<관람모드> 프로젝트는 시작할 때의 기대와는 다른 기록과 답을 해야 했다. 그것은 추상적인 질문이 구체적인 현실을 만났기 때문이기도 했고, 공연의 한계와 가치를 실감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것은 지난 글의 마지막 문장이다. 그래서 이번 글은 추상적인 질문이 실제로 만난 ‘구체적인 현실’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풀어보고자 한다. (그러니 아마도 다음 글은 프로젝트 과정에서 실감한 ‘공연의 한계와 가치’에 관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프로젝트 과정에서 우리가 관람한 것 중 가장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은 극장 자체였다. 극장은 0set프로젝트(제로셋프로젝트)가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품고 있는 질문인 “극장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가”의 첫 구절에 자리 잡고 있는 키워드이자 주요한 탐구 대상(주제)이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다고 전제되는 극장이 실제로 얼마나 열려있는지(닫혀있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이 사회가(우리가) 무엇을(누구를) 놓치고(배제하고) 있는지 인식하게 해주는 하나의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0set프로젝트가 그동안 만나온 극장들을 조사했던 방식으로 이번 프로젝트 과정에서 주어진 극장도 시설 접근성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2019년 5월부터 0set프로젝트가 삼일로창고극장 워킹그룹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1) <관람모드> 프로젝트 참여자 중 4명이 따로 모여 삼일로창고극장을 시설 접근성의 관점에서 바라볼 유닛 모임을 결성했다. 유닛 모임은 공간 디자이너와 함께 다섯 차례에 걸쳐 삼일로창고극장을 이루고 있는 공간의 시설 접근성을 살펴보고 개선 방안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모임을 가졌다. 서울문화재단이 임차운영하는 삼일로창고극장의 주어진 조건과 환경을 바탕에 두고 시설 접근성의 한계와 개선이 필요한-가능한 부분에 관한 논의를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2018년 삼일로창고극장 재개관 리모델링에 참여한 무대감독과 시설감독을 만났고, 리모델링 당시 주력했던 지점과 극장 건물의 구조 및 특성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극장의 시설 접근성을 연구하는 유닛 모임
출처. 0set 프로젝트

삼일로창고극장 리모델링은 기존 극장의 특성 및 장점은 살리되, 블랙박스-가변형 무대, 스튜디오, 갤러리 조성 등 창작자의 공간 활용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되었다. 그 과정에서 시설 접근성 개선사항에 관한 자문을 받은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람모드> 프로젝트를 진행할 당시 삼일로창고극장에는 건물 입구에서 극장 입구로 가는 외부 경사로 2), 극장 입구 단차를 없애기 위한 이동식 경사로, 극장 내부 가변형 무대-객석으로 이동하는 경사로 등이 갖춰져 있었고, 1층 갤러리 공간에는 장애인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극장 내외부의 경사로들은 휠체어 이용자(관객 입장)의 접근이 어려울 수 있겠다고 생각한(극장의 활용도를 좀 더 높이고자 한) 극장 직원들의 ‘호의’ 혹은 문제의식으로 마련되었고, 장애인 화장실은 극장 대관 공연팀의 건의를 받아들여 2019년에 조성되었다.

삼일로창고극장은 계속 변화를 꾀하고 있는 공간임에 틀림없지만 시설 접근성의 관점에서 살펴보았을 때 여전히 인식하고 시도해야 할 과제가 많은 공간이었다. 또한 당장 극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기는 힘들더라도, 공간을 이용하는 관객, 다양한 창작자를 염두에 두고 구체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찾고 마련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공간이기도 했다. (유닛 모임에서 찾아낸 삼일로창고극장 시설 접근성 한계지점과 개선 아이디어는 공간 디자이너와 함께 정리해 기록책자 『0set 프로젝트 - 관람모드편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에 담았다.)

그리고 극장 시설 접근성을 점검할 때마다 나를 찾아왔던 질문들이 삼일로창고극장을 경유해서 또다시 찾아왔다. 대답이 곧 다른 질문이 될 수밖에 없는 질문들이었다.

1. 극장의 시설 접근성 개선과 부딪히는 극장의 고유한 ‘가치’는 무엇일까

삼일로창고극장 내부 가변형 무대-객석 진입 통로는 경사로이다. 그러나 경사로의 너비가 좁고 경사도가 커서 휠체어 이용자가 이동할 때는 이동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구체적인 관객 혹은 창작자로서의 휠체어 이용자를 전제로 만들어진 경사로가 아니기 때문에, 경사로가 있지만 ‘도움’도 있어야만 휠체어 이용자의 극장 입장 및 공간 활용이 가능하다.

  • 삼일로창고극장 내부 경사로
    출처. 디자인 송기조

  • 삼일로창고극장 입구 높낮이 차이
    출처. 디자인 송기조

또한 극장 입구에 단차가 있어서 이동식 경사로를 놓아야만 휠체어 이용자가 극장 입구를 넘어갈 수 있으며 다시 경사로를 제거해야 극장 입구 문을 닫을 수 있다. 게다가 이 단차와 공간의 좁은 너비 등으로 인해 휠체어 이용자는 극장 입구 왼편에 위치한 조정실로 진입할 수 없다. 현재 휠체어 이용자의 분장실(백스테이지) 접근 역시 좁고 높은 계단으로 인해 불가능하지만, 입구 단차가 없어진다면 백스테이지 통로 중 일부(분장실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의 이용이 가능해진다.

삼일로창고극장 리모델링 당시 약 15㎝ 정도 되는 이 단차를 없애지 않은 이유는 주로 객석이 배치되는 위치를 기준으로 관객들의 관람 시야를 확보하면서 40~50석 정도의 객석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극장 내부가 가변형 무대-객석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극장을 이용하는 공연팀에 따라 무대-객석의 위치를 다르게 배치하기 때문에), 그리고 극장 내부에 경사로를 만들었을 때의 문제의식(휠체어 이용자를 비롯해 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극장을 이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떠올린다면 약 15㎝ 단차를 없애는 일이 과연 공간의 활용도를 줄이는 일인지 다시 질문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극장 공간 및 시설 접근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종종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접근성 개선도 물론 좋지만 공간이 추구하는 ‘가치와 부딪힌다’ ‘이용하는 사람이 없다’ 등의 말들이 이어진다. 어떤 점에서 그 말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드러나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태도이다. 우리는 우리를 멈칫하게 만드는 현실 앞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방안을 찾을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어느 것도 하지 않겠다는 이유를 찾을 수도 있다.

여전히 극장에서 ‘접근성’은 우선시 되는 주요한 가치가 아니기 때문에 그에 관한 문제 제기는 온갖 이유에 부딪히곤 한다. 하지만 시설 접근성 개선보다 우선하는 가치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시설 접근성 개선과 공존할 수 없는(상관없는) 가치일까. 함께, 더 많은 그리고 더 다양한 사람들이 극장을 이용하고 방문할 수 있도록 공간을 변화시켜나가는 것 이상의 가치는 무엇일까. 어쩌면 극장의 시설 접근성 개선과 부딪히는 가치는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아니고 정체가 불분명한 가치일지도 모른다. 충분히 살펴보고 따져 묻는 것, 시설 접근성 개선은 거기서부터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2. 극장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장애인의 시설 접근 여부는 대개 ‘턱’의 유무로 인식되곤 한다. 턱의 유무를 비롯한 시설의 너비, 높이, 경사로의 각도는 시설 접근성을 확인하는 기본적이면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하지만 그 기준의 충족이 곧 시설 접근성의 확보는 아니다.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시설 접근성은 아직 ‘낯선’ 단어이기 때문에, ‘턱’ 또는 경사로의 유무로만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시설의 접근성을 확인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시설 이용을 어렵게 만드는 모든 요소를 확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극장 시설에 턱이 없어도 점자블록이 적절한 위치 3)에 없다면 시각장애인의 시설 접근이 어렵다. 점자블록이 있어도 공연에 음성해설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극장 시설을 이용하는 주 목적인 공연을 관람하는 데 제약이 발생하므로) 시각장애인의 시설 접근은 여전히 어렵다고 볼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예로 극장에 턱이 없고 점자블록이 있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장면해설을 포함한 공연, 청각장애인을 위한 문자통역을 포함한 공연, 농인을 위한 수어통역이 제공되는 공연이 상연된다고 하더라도, 해당 공연의 정보가 당사자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이런 경우에도 시설 접근성이 확보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이외에도 시설 접근성이 고려되지 않은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극장은 발달장애인과 함께 공연을 관람하거나 발달장애인이 직접 무대에 서기 위한 시설적·환경적 조건은 무엇인지, 정신장애인과 함께 극장에 있는(머무는) 방식이 무엇인지 궁금해한 적이 없다.

획일적인 사회와 극장에서 다른 이동, 소통, 존재 방식을 가진 사람들의 접근성은 하나부터 열까지 확인하고 질문해야 할 것들로 남아있다. 따라서 시설 접근성 개선은 어떤 조건을 충족하면 완성되는 형태가 아니라, 누군가의 시설 접근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을 끊임없이 찾고 장·단기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하려는 태도가 된다. 그리고 그게 누구든지 간에 극장을 이용할 사람을 구체적인 필요와 욕구 그리고 삶의 방식을 가진 ‘종합적인 인간’으로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구체적인 사람들의 필요와 욕구에 의해 극장이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을 때야 비로소 ‘극장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1) <관람모드> 프로젝트는 2019년 2월에 8명의 참여자를 모집하면서 시작되었다.

2) 이 외부 경사로가 있는 토지는 명동성당의 소유로 삼일로창고극장 재개관 이전에는 계단 형식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재개관 이후 극장 직원들이 건물 입구에서 극장 입구로 가는 통로가 모두 계단으로 이뤄졌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면서, 명동성당과의 협의하여 통로를 계단에서 경사로 형태로 변경하였다. 그 이후 경사로를 통해 극장에 입장해야 할 경우 명동성당과의 협의 하에 이 외부 경사로를 일정 시간 동안 개방하고 있다. <관람모드-보는방식>의 공연과 셋업 기간에도 휠체어 이용 창작자가 극장에 오는 일정을 미리 공유해, 해당 시간 동안에만 건물 진입 경사로를 개방해 이용하였다.

3) 극장 건물에 점자블록이 설치되어 있더라도, 그 위치가 시각장애인의 시설 접근과는 상관없는 경우가 더러 있다. 시각장애인이 극장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찾아가야 하는 장소(건물 입구, 안내데스크, 화장실 등)와 상관없이 ‘건축법상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냥’ 설치한 경우가 그렇다. 실제 이용에 대한 고려 없이 ‘적절하지 않은 위치’에 있는 점자블록은 있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신재

신재 

하고 싶은 이야기, 들어야할 말을 품고 있는 사람들과 공동 창작 작업하고 있으며, 2017년부터 프로젝트 형식으로 조사, 워크숍, 공연 제작 등을 하는 ‘0set프로젝트’ 팀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footlooseyou@gmail.com

신재

신재 

하고 싶은 이야기, 들어야할 말을 품고 있는 사람들과 공동 창작 작업하고 있으며, 2017년부터 프로젝트 형식으로 조사, 워크숍, 공연 제작 등을 하는 ‘0set프로젝트’ 팀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footlooseyou@gmail.com

상세내용

“<관람모드> 프로젝트는 시작할 때의 기대와는 다른 기록과 답을 해야 했다. 그것은 추상적인 질문이 구체적인 현실을 만났기 때문이기도 했고, 공연의 한계와 가치를 실감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것은 지난 글의 마지막 문장이다. 그래서 이번 글은 추상적인 질문이 실제로 만난 ‘구체적인 현실’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풀어보고자 한다. (그러니 아마도 다음 글은 프로젝트 과정에서 실감한 ‘공연의 한계와 가치’에 관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프로젝트 과정에서 우리가 관람한 것 중 가장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은 극장 자체였다. 극장은 0set프로젝트(제로셋프로젝트)가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품고 있는 질문인 “극장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가”의 첫 구절에 자리 잡고 있는 키워드이자 주요한 탐구 대상(주제)이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다고 전제되는 극장이 실제로 얼마나 열려있는지(닫혀있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이 사회가(우리가) 무엇을(누구를) 놓치고(배제하고) 있는지 인식하게 해주는 하나의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0set프로젝트가 그동안 만나온 극장들을 조사했던 방식으로 이번 프로젝트 과정에서 주어진 극장도 시설 접근성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2019년 5월부터 0set프로젝트가 삼일로창고극장 워킹그룹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1) <관람모드> 프로젝트 참여자 중 4명이 따로 모여 삼일로창고극장을 시설 접근성의 관점에서 바라볼 유닛 모임을 결성했다. 유닛 모임은 공간 디자이너와 함께 다섯 차례에 걸쳐 삼일로창고극장을 이루고 있는 공간의 시설 접근성을 살펴보고 개선 방안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모임을 가졌다. 서울문화재단이 임차운영하는 삼일로창고극장의 주어진 조건과 환경을 바탕에 두고 시설 접근성의 한계와 개선이 필요한-가능한 부분에 관한 논의를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2018년 삼일로창고극장 재개관 리모델링에 참여한 무대감독과 시설감독을 만났고, 리모델링 당시 주력했던 지점과 극장 건물의 구조 및 특성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극장의 시설 접근성을 연구하는 유닛 모임
출처. 0set 프로젝트

삼일로창고극장 리모델링은 기존 극장의 특성 및 장점은 살리되, 블랙박스-가변형 무대, 스튜디오, 갤러리 조성 등 창작자의 공간 활용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되었다. 그 과정에서 시설 접근성 개선사항에 관한 자문을 받은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람모드> 프로젝트를 진행할 당시 삼일로창고극장에는 건물 입구에서 극장 입구로 가는 외부 경사로 2), 극장 입구 단차를 없애기 위한 이동식 경사로, 극장 내부 가변형 무대-객석으로 이동하는 경사로 등이 갖춰져 있었고, 1층 갤러리 공간에는 장애인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극장 내외부의 경사로들은 휠체어 이용자(관객 입장)의 접근이 어려울 수 있겠다고 생각한(극장의 활용도를 좀 더 높이고자 한) 극장 직원들의 ‘호의’ 혹은 문제의식으로 마련되었고, 장애인 화장실은 극장 대관 공연팀의 건의를 받아들여 2019년에 조성되었다.

삼일로창고극장은 계속 변화를 꾀하고 있는 공간임에 틀림없지만 시설 접근성의 관점에서 살펴보았을 때 여전히 인식하고 시도해야 할 과제가 많은 공간이었다. 또한 당장 극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기는 힘들더라도, 공간을 이용하는 관객, 다양한 창작자를 염두에 두고 구체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찾고 마련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공간이기도 했다. (유닛 모임에서 찾아낸 삼일로창고극장 시설 접근성 한계지점과 개선 아이디어는 공간 디자이너와 함께 정리해 기록책자 『0set 프로젝트 - 관람모드편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에 담았다.)

그리고 극장 시설 접근성을 점검할 때마다 나를 찾아왔던 질문들이 삼일로창고극장을 경유해서 또다시 찾아왔다. 대답이 곧 다른 질문이 될 수밖에 없는 질문들이었다.

1. 극장의 시설 접근성 개선과 부딪히는 극장의 고유한 ‘가치’는 무엇일까

삼일로창고극장 내부 가변형 무대-객석 진입 통로는 경사로이다. 그러나 경사로의 너비가 좁고 경사도가 커서 휠체어 이용자가 이동할 때는 이동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구체적인 관객 혹은 창작자로서의 휠체어 이용자를 전제로 만들어진 경사로가 아니기 때문에, 경사로가 있지만 ‘도움’도 있어야만 휠체어 이용자의 극장 입장 및 공간 활용이 가능하다.

  • 삼일로창고극장 내부 경사로
    출처. 디자인 송기조

  • 삼일로창고극장 입구 높낮이 차이
    출처. 디자인 송기조

또한 극장 입구에 단차가 있어서 이동식 경사로를 놓아야만 휠체어 이용자가 극장 입구를 넘어갈 수 있으며 다시 경사로를 제거해야 극장 입구 문을 닫을 수 있다. 게다가 이 단차와 공간의 좁은 너비 등으로 인해 휠체어 이용자는 극장 입구 왼편에 위치한 조정실로 진입할 수 없다. 현재 휠체어 이용자의 분장실(백스테이지) 접근 역시 좁고 높은 계단으로 인해 불가능하지만, 입구 단차가 없어진다면 백스테이지 통로 중 일부(분장실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의 이용이 가능해진다.

삼일로창고극장 리모델링 당시 약 15㎝ 정도 되는 이 단차를 없애지 않은 이유는 주로 객석이 배치되는 위치를 기준으로 관객들의 관람 시야를 확보하면서 40~50석 정도의 객석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극장 내부가 가변형 무대-객석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극장을 이용하는 공연팀에 따라 무대-객석의 위치를 다르게 배치하기 때문에), 그리고 극장 내부에 경사로를 만들었을 때의 문제의식(휠체어 이용자를 비롯해 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극장을 이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떠올린다면 약 15㎝ 단차를 없애는 일이 과연 공간의 활용도를 줄이는 일인지 다시 질문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극장 공간 및 시설 접근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종종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접근성 개선도 물론 좋지만 공간이 추구하는 ‘가치와 부딪힌다’ ‘이용하는 사람이 없다’ 등의 말들이 이어진다. 어떤 점에서 그 말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드러나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태도이다. 우리는 우리를 멈칫하게 만드는 현실 앞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방안을 찾을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어느 것도 하지 않겠다는 이유를 찾을 수도 있다.

여전히 극장에서 ‘접근성’은 우선시 되는 주요한 가치가 아니기 때문에 그에 관한 문제 제기는 온갖 이유에 부딪히곤 한다. 하지만 시설 접근성 개선보다 우선하는 가치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시설 접근성 개선과 공존할 수 없는(상관없는) 가치일까. 함께, 더 많은 그리고 더 다양한 사람들이 극장을 이용하고 방문할 수 있도록 공간을 변화시켜나가는 것 이상의 가치는 무엇일까. 어쩌면 극장의 시설 접근성 개선과 부딪히는 가치는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아니고 정체가 불분명한 가치일지도 모른다. 충분히 살펴보고 따져 묻는 것, 시설 접근성 개선은 거기서부터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2. 극장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장애인의 시설 접근 여부는 대개 ‘턱’의 유무로 인식되곤 한다. 턱의 유무를 비롯한 시설의 너비, 높이, 경사로의 각도는 시설 접근성을 확인하는 기본적이면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하지만 그 기준의 충족이 곧 시설 접근성의 확보는 아니다.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시설 접근성은 아직 ‘낯선’ 단어이기 때문에, ‘턱’ 또는 경사로의 유무로만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시설의 접근성을 확인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시설 이용을 어렵게 만드는 모든 요소를 확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극장 시설에 턱이 없어도 점자블록이 적절한 위치 3)에 없다면 시각장애인의 시설 접근이 어렵다. 점자블록이 있어도 공연에 음성해설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극장 시설을 이용하는 주 목적인 공연을 관람하는 데 제약이 발생하므로) 시각장애인의 시설 접근은 여전히 어렵다고 볼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예로 극장에 턱이 없고 점자블록이 있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장면해설을 포함한 공연, 청각장애인을 위한 문자통역을 포함한 공연, 농인을 위한 수어통역이 제공되는 공연이 상연된다고 하더라도, 해당 공연의 정보가 당사자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이런 경우에도 시설 접근성이 확보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이외에도 시설 접근성이 고려되지 않은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극장은 발달장애인과 함께 공연을 관람하거나 발달장애인이 직접 무대에 서기 위한 시설적·환경적 조건은 무엇인지, 정신장애인과 함께 극장에 있는(머무는) 방식이 무엇인지 궁금해한 적이 없다.

획일적인 사회와 극장에서 다른 이동, 소통, 존재 방식을 가진 사람들의 접근성은 하나부터 열까지 확인하고 질문해야 할 것들로 남아있다. 따라서 시설 접근성 개선은 어떤 조건을 충족하면 완성되는 형태가 아니라, 누군가의 시설 접근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을 끊임없이 찾고 장·단기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하려는 태도가 된다. 그리고 그게 누구든지 간에 극장을 이용할 사람을 구체적인 필요와 욕구 그리고 삶의 방식을 가진 ‘종합적인 인간’으로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구체적인 사람들의 필요와 욕구에 의해 극장이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을 때야 비로소 ‘극장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1) <관람모드> 프로젝트는 2019년 2월에 8명의 참여자를 모집하면서 시작되었다.

2) 이 외부 경사로가 있는 토지는 명동성당의 소유로 삼일로창고극장 재개관 이전에는 계단 형식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재개관 이후 극장 직원들이 건물 입구에서 극장 입구로 가는 통로가 모두 계단으로 이뤄졌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면서, 명동성당과의 협의하여 통로를 계단에서 경사로 형태로 변경하였다. 그 이후 경사로를 통해 극장에 입장해야 할 경우 명동성당과의 협의 하에 이 외부 경사로를 일정 시간 동안 개방하고 있다. <관람모드-보는방식>의 공연과 셋업 기간에도 휠체어 이용 창작자가 극장에 오는 일정을 미리 공유해, 해당 시간 동안에만 건물 진입 경사로를 개방해 이용하였다.

3) 극장 건물에 점자블록이 설치되어 있더라도, 그 위치가 시각장애인의 시설 접근과는 상관없는 경우가 더러 있다. 시각장애인이 극장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찾아가야 하는 장소(건물 입구, 안내데스크, 화장실 등)와 상관없이 ‘건축법상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냥’ 설치한 경우가 그렇다. 실제 이용에 대한 고려 없이 ‘적절하지 않은 위치’에 있는 점자블록은 있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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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이야기, 들어야할 말을 품고 있는 사람들과 공동 창작 작업하고 있으며, 2017년부터 프로젝트 형식으로 조사, 워크숍, 공연 제작 등을 하는 ‘0set프로젝트’ 팀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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