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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좌담] 장애 예술과 창작역량② 시각예술

이슈 다양한 미적 형태를 수용하는 열린 마음으로

  • 김인경, 김효나, 박범, 심명진, 이지혜 
  • 등록일 2020-11-25
  • 조회수900

이슈

[연속 좌담] 장애 예술과 창작역량② 시각예술

다양한 미적 형태를 수용하는 열린 마음으로

김인경, 김효나, 박범, 심명진, 이지혜

개요

  • 일시 2020년 10월 17일(토) 오후 3시~5시

  • 장소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3층 커뮤니티룸2

  • 참석자

    좌장.
    김인경·김효나 (밝은방 공동대표, 이음 온라인·웹진 기획위원)
    패널.
    박범(패션·영상 창작자), 심명진(안티카 대표), 이지혜(로아트 큐레이터)

창작의 세계를 펼치며

김인 발달장애와 정신장애를 중심으로 한 예술단체의 창작자와 기획자들을 이 자리에 모셨다. 각자 작업에 대한 소개와 함께 어려운 점, 필요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 아이디어와 의견을 편하게 얘기해 주시기 바란다. 제가 진행을 하고 김효나 작가가 밝은방과 로사이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역할을 나누었다. 저희는 장애예술 분야의 기획을 하고 있지만, 각자 시각예술과 문학 작업을 하는 창작자이기도 하다.

김효 10년 전쯤 워크숍에서 만난 어느 발달장애인의 노트를 보게 됐는데 자기만의 글자, 사인, 이미지로 암호 같은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집에서는 항상 버려지는 노트였지만 내가 보기엔 재밌는 요소와 소통할 거리가 많은 우주 같았다. 그와 공동창작, 아트링크를 하며 활동을 시작했고 ‘로사이드’를 10년 정도 운영하다가, 그림 그리고 글을 쓰며 창작에만 집중하는 작은 공간이 필요해 ‘밝은방’을 운영하고 있다. 발달장애 작가들의 작업을 전시나 출판물로 소개하고 창작자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어 온라인 전시처럼 정리해서 보여주는 아카이빙 작업 등을 하고 있다.
박범 작가님도 로사이드 활동할 때 전시에서 처음 만났다. 패션 디자이너가 꿈인 박범 작가님이 제일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칼 라거펠트이다. 명품 잡지에 나온 이미지를 소재로 자신이 덧대어 패션 디자인을 하고 글도 쓰는데 화려하고 경쾌한 패션 디자인 이미지 위에 “삶은 고통이다”라는 텍스트를 반복적으로 덧붙이는 식으로 독특한 개인 작업을 한다.

현재 장애인 일자리 카페에서 바리스타 일을 하면서 블로그를 운영하고 집에서 혼자 작업하고 있다. 10년 전 여의도에 있는 장애인 종합복지공간 이룸센터에서 곽규섭 작가 전시회 포스터를 보고 김효나 작가님께 연락드렸고 로사이드에 들어가 미술을 배웠다. 수업이 재미있어서 좋았고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이지 사단법인 로아트가 운영하는 대야미스튜디오에서 작가들과 함께 워크숍, 창작, 전시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이전에는 비영리 전시공간에서 활동했다.

심명 ‘혐오를 이기는 광기’라는 슬로건으로 정신장애인 창작단체 안티카를 운영하고 있다. 정신장애인의 창작과 네트워킹을 지원하고 그 과정에서 예술을 통해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4년째 활동하고 있는데 그동안 사회적으로 환경이 많이 변하고 있는 걸 느낀다. 안티카는 상근 창작자가 운영 업무를 하고 단원 창작자가 본인만의 대항적 언어를 개발해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재작년부터 대항 창작 드로잉, 연극제작, 유튜브 창작 등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매드 프라이드’(Mad Pride) 때 창작자를 6월에 모집해 4개월간 지원금을 드리며 오브제 창작을 진행했고 대형 조형물을 만들어 광장에 나갔다.

김인경행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창작자들이 많은데, 안티카에서 운영인력과 창작자로 나누어지는 게 특별해 보인다. 당사자와 비당사자의 비율은 어떻게 되고 그 안에서 운영인력의 비율은 어떻게 되나?

심명진비율은 계속 바뀌지만, 항상 두세 명 정도는 당사자였다. 창작하는데 행정 역량을 좀 더 확보하고 싶은 당사자는 창작하면서 상근자가 되고 활동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일을 잘하신다.

김인경밝은방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해 6~7개월간 작업을 이어나갈 수 없었고, 최근에 화상 온라인 프로그램 안으로 창작공간을 옮겨가면서 문제도 많았다. 작업을 지속하기에 어려움이나 부족함 또는 필요한 것들이 있다면 이야기를 부탁드린다.

김효나박범 작가님은 로사이드에서 주 1회 정도 작업을 하셨는데, 로사이드 활동 중단 후에도 작업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하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박 범근본적인 문제는 아이디어 고갈이다. 지금은 조금 슬럼프다. 블로그도 하루에 두 번 정도 글을 올린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느낌이다. 코로나로 인해 전시를 보러 갈 수 없는데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등 전시장의 작업 아카이브를 인터넷으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심명진삼일로창고극장이 휴관하면서 안티카의 레퍼토리로 개발된 공연을 못 하게 되었고, 11개월간 열심히 준비한 연극을 보여줄 수 없어 단원들이 굉장히 마음 아파했다. 금방 괜찮아질 상황이 아니다 보니 온라인 전시와 공연 등으로 방법을 찾아 나가고 있다. <춤추는 광기> 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당사자가 직접 만드는 영상 콘텐츠와 당사자의 시 낭독과 지지하는 사람들의 화답 공연, 축제 전야제 생중계 프로그램과 축제 퍼포먼스를 포함한 생중계도 올렸다. ‘매드 프라이드 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림을 볼 수 있도록 기획했다. 작은 화면 속에서 보이는 그림이 생각보다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않는 것에 대한 보완이었다. 대중에게 당사자 창작자들의 예술을 더 효과적으로 보여줄 방법을 다양하게 고민 중이다. ‘매드 프라이드’도 온라인으로 진행했는데,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 부대끼면서 웃는 얼굴을 마주하고 “수고했어요”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보니 창작자들이 많이 지치는 상황이다.

김효나공간에 대한 원초적 어려움이 항상 있다. 2년 전부터 공공단체와 해오던 워크숍이 갑자기 중단되면서 밝은방은 현재 공간이 없는 상태다. 덧붙여, 로사이드 활동을 하면서 많이 들었던 말이 “좋은 일 하시네요”다. 상당히 힘 빠지게 하는 말이다. 창작 세계를 들여다보기에 앞서 장애인들이 작업한다는 사실만 인지하고 그 시선으로만 보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다보니 작업에 대한 리뷰나 다양한 관점의 언어 생성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지혜로아트의 경우, 작가의 보호자들이 발기하여 재원을 조성하고 법인을 설립했다. 작가들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게 작업실이었기 때문에 스튜디오를 먼저 개설하게 되었다. 활동을 할수록 현장에서 체감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활동이 발달장애인의 예술 창작 기회를 확충해 주는 좋은 일로 다루어질 뿐 예술 범주 안에서 다양한 양상을 수용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게 아주 어렵다는 사실이다. 대회에서 상을 타고 싶은 예술도 있고, 삶 자체가 예술이고자 할 수도 있고 다양한데 나와 다른 관념의 예술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게 지금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드러내기와 함께하기

김인경‘장애 예술’이라는 표현에 관해 얘기 나눠보고 싶다. 예술 안에서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이 과연 필요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들기도 하고, 창작지원금을 받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장애 예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박 범장애인이어서 지원받는 건 가능하겠지만 사람들에게 그림을 (향유하라고) 억지로 강요할 수는 없다. 예술지원금은 창작과 교육으로 나뉘는데, 장애인들이 교육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창작 지원금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비장애인 창작자도 그림이 안 팔리면 생활고에 시달리듯 장애인 창작자도 마찬가지다. 지원금에서 자존심을 세울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이지혜장애 예술이 향유되고 제공되는 기회가 적었고 삶 자체가 제약적이다 보니 예술이 가능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지난 6월 최봄이 작가 개인전을 열었다. 예전에는 지원을 받기 위해 ‘발달장애 예술인 지원 확충을 위한’ 등의 부제를 달았는데 이번 전시는 그런 미사여구를 사용하지 않았더니 구성원들 사이에서 발달장애 예술이라는 걸 왜 빼느냐는 불만이 있었다. 처음 시작하는 단계에서 보였던 표현적 특징은 장애가 있기 때문에 표현할 수 있는 게 분명히 있었겠지만, 어느 정도 지나서 그 사람의 작업 세계가 구축된 후에는 장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어려운 문제다.

심명진장애는 모든 사람이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신장애인 예술창작을 하는 안티카입니다”라는 말 자체가 주홍글씨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청년 장애인 당사자 중에는 정신장애라는 말을 빼지 않으면 활동하지 않겠다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신장애라는 요소를 빼고는 우리가 겪는 현실을 말할 수 없어 일부러 드러내고 활동한다. DSM5(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 분류체계가 있는데 이런 의학적인 틀에 갇히면 치유와 회복밖에 할 수 없다. 사회구조 자체가 장애이고 이런 사회구조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정신장애로밖에 표현될 수 없는 상황 자체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정신장애인이라는 용어를 의도적으로 쓰고 더 크게 보여주려 한다.

김효나정신장애라는 단어를 빼달라는 분들에게 설명하면 납득하시나?

심명진창작으로 표현했을 때 자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는 것을 보고 나면 스스로 “폐쇄병동 경험자다. 병원에서 몇 년을 있었지만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식으로 당당히 드러내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정신장애인들은 아직 자신을 드러내는 경험이 정말 미숙한 단계인데, 경험 전후의 차이인 것 같다. 작년에 매드 프라이드를 처음 열 때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아무도 우리를 때리지 않았고 같이 깃발 들고 춤추며 놀았다. 주홍글씨가 생기는 것은 사람 간에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혐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 우리 단원들은 공연, 전시, 팟캐스트 등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당당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게 되었다. 예술 활동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다.

이지혜정신장애나 발달장애가 있는 예술가를 더 많이 지원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장애 여부에 상관없이 작가들을 지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비장애 작가도 꾸준하게, 오롯이 지원받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장애를 앞세우지 않으면 장애가 있는 작가들은 공간이나 인력 등 구조 안에서 전혀 배려받지 못한다.

심명진사회적으로 장애를 지워버리고 정상성 안에 가두고 장애인을 거리에서 지워버리는 게 목적이라면 사회가 문제인 거다. 5년 정도 모든 장애 요소들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경험하면, 장애인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걸 인식하지 않을까. 그래서 억지로라도 더 많이, 더 크게, 더 효과적으로 보일 필요를 느낀다.

김인경발달장애를 왜 드러내지 않았냐고 물었던 분들은 발달장애 창작자가 아니라 부모나 주변 분들일 것으로 생각한다.

이지보호자와 작가를 분리할 수 없다. 작가와 가족이 예술로 삶이 변화하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예술의 필요와 가치를 알고 있다. 그러나 삶이 자유롭지 않고 예술을 충분히 향유할 수 없는 상태에서 예술을 수단으로 뭔가 해야 하다 보니 오류가 많이 일어난다. 해외 사례를 보면 부모가 같이 창작을 하거나 기획, 스튜디오 운영에 개입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장애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문제가 예술 활동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심명진장애에 관한 사회적 책임을 개인에게 전부 지우다 보니 가족이 오히려 더 보수적으로 된다. 무조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싶어 한다. 정신장애인의 경우는 가족의 반대로 사회에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에너지를 지속하기 위한 매개자 지원

김인경2018년 웹진 [이음] 기사 를 미리 보내드렸다. 장애 예술 창작 활성화에 필요한 역량을 묻는 질문에 비장애인은 사회참여 확대를 가장 많이 꼽았다면 장애인 창작자들은 새로운 매체를 배우고 응용하고 작업하고 싶은 욕구가 높았다. 장애 예술인 역량 강화에 필요한 지원에 대해 장애인 창작자들은 창작에 필요한 지원금과 새로운 매체에 대한 배움의 욕구가 높았다. 반면 비장애인은 사회와 소통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높았다. 기획자와 창작자로서 이러한 차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다.

박 범한국장애인고용공단 지원사업 중에 ‘장애인 취업성공 패키지’가 있는데 선정 기준이 까다로웠다. 이 사업이 널리 확대되고 문턱이 낮아져서 장애인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을 받으면 좋겠다. 미술과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일을 해서 재료비를 벌어야 하니 그런 쪽으로도 지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장애 예술 분야의 기획자나 교육자도 일정 기간 배우면서 충전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김인경박범 작가님은 예술 지원사업에 신청해본 경험이나 예술지원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박 범로사이드의 패브릭 워크숍 ‘김치 프로젝트’에 아이디어를 내서 사례비를 받았고, 에이블아트에서 포스터에 그림을 그려 작업비를 받아 행복했던 경험은 있지만 지원사업에 신청한 적은 없다.

김효나지원사업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해마다 내 인건비를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였다. 10년 정도 그렇게 하다 보면 지쳐서 재충전이 필요하다. 다른 분들은 운영의 불안정과 심리적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고 충전하는지 궁금하다.

심명진모든 보조금 사업이 주최자의 인건비를 책정하지 못하는 구조다. 해야 할 일이 보이고 확장되고 있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 되면 나도 엄청 소진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사자가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아직은 없다. 상근자가 대개 기초생활수급자여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데 지금까지는 지원도 받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이들이 정당한 활동비를 받으며 계속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제일 걱정이다.

이지혜박범 작가님의 말처럼 작가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인력에 투자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기획자 혹은 연구자가 창작의 흐름을 추적할 수 있도록 작가의 작품을 한데 모을 수 있고 차분하게 연구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작가가 발굴되어도 사업의 대상으로만 국한될 뿐, 본격적인 작품 연구나 작가 혹은 씬에 대한 논의는 일어나지 않는다. 단기적인 사업으로 ‘대상화’라는 오류를 걷어내거나 내용의 깊이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장의 인력들이 만나고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게 공공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자생적으로 발생한 민간단체의 중요성과 현실적 어려움을 파악하고 그들이 계속 유지되고 분리 확장되게 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마련해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효나최근 들어 심명진 대표나 이지혜 큐레이터 같은 분을 새롭게 만날 수 있어 반갑고 이것이 정말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조차 없었다. 이런 모임을 갖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심명진저도 장애 예술인을 많이 만나고 싶고 어떤 기획자들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궁금했다. 지난 4년 동안 같이할 기회를 한 번도 못 가져 아쉬웠고 혼자 하는 느낌이었다. 저도 창작자이지만 내 옆의 정신장애 창작자들을 더 많이 인식해주었으면 좋겠다. 우리 단원 중 많은 분이 청소 노동을 하다가 창작으로 생계에 기여하면서 삶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다. 이러한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공공의 장에서 같이 논의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방향이 생겨나길 바란다. 단원들은 예술 활동을 하지만 단순인건비로 책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으로 당사자 예술에 대한 개념이 흐리다 보니 그런 것 같다.

박 범장애인만 다니는 미술대학을 만들어서 장애를 잘 아는 분을 교수로 초빙하면 좋겠다. 그리고 장애 미술계에도 먼저 들어온 선배가 멘토로 활동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지원해주면 좋겠다. 교육 기회 확대도 필요하다.

김인경소위 “문화예술 매개자”라고 불리는 연구자, 비평가, 기획자, 행정인력의 역할이 중요하고, 중간에 연결을 해주는 사람들 층이 더 두터워져야 한다.

이지혜독일이나 일본 창작 스튜디오의 경우 작가 대비 비장애 인력은 1:3, 못해도 1:1이다. 현장에 가서 보고 배우고 거기서 아름다움과 행복감을 느껴야 이 분야에 계속 인력풀이 유지되고 전통이 쌓일 수 있다. 제도적으로 창작 지원도 늘려야 하지만 연수 단원 지원, 비장애 작가 매칭 지원 등 인력 지원을 전폭적으로 확대해서 장애 예술 영역에 좋은 인력이 지속적으로 참여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심명진저희도 성의를 가지고 온 분들이 못 버티고 그만두기도 했다. 매개자 지원을 통해 같이 활동할 수 있는 동료를 찾고 인력을 양성하는 창구를 만들어 현장에 있으려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동등하고 자유로운 장애 예술을 향하여

김인경앞의 설문조사에서 비장애인은 공통으로 사회참여 확대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교류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지금 같은 코로나 시기에 어떤 방식으로 사회와 소통할 수 있을지 고민과 아이디어를 나눠달라.

박 범예술 활동을 하다 나이가 들었을 때, 선생님들이 계시면 좋겠지만, 장애 예술가의 노후는 어떻게 될까?

이지혜문제를 맞닥뜨릴 때마다 해결해 가야 할 뿐 이상이나 대안은 없다. 필요한 걸 계속 말해야만 바뀔 수 있다. 비장애 작가와 특정한 목적을 수행하고 좋은 관계를 맺지만 그걸 계속 유지할 수 없는 현실이 있다. 밝은방에서 얼마 전 개최한 전시의 서문 중에 “밝은 숲을 지나 어둠을 직면한다”는 말이 항상 마음에 있다. 장애가 가지고 있는 현실적 어려움이 예술 활동에서도 예외는 아니기 때문에 좋은 인력이 있어도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현장에서 작가들과 함께 하는 인력들의 어려움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은 충분한 경험이 축적된 인적 인프라다. 덧붙여 장애 이해 교육, 뇌인지과학, 장애 철학이나 장애학 등에 관한 단체 모임, 세미나 등을 공공차원에서 제공하면 장애에 관한 호기심이나 환상을 제거하고 장애를 장애 그대로 인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심명진정신장애인은 장애 요소로 분류되어 혐오를 받고 있을 뿐이라는 걸 서로 알아가는 게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협업에서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장애 예술인은 배려라 생각하고 장애 예술인을 동등하게 대우하지 않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예술인은 예민하고 민감하고 사회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창의적인 사람들일 텐데도 우리를 장애인이라며 대상화하며 바라봤을 때 서로 격차가 너무 크다고 생각됐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으로써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협업 활동이 중요하다.

박 범어느 지역이든 장애인들만 서로 북돋우며 살면서 그 안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도시가 있으면 좋겠다.

이지혜박범 작가님이 말씀하신 그런 행정구역이 있다. 독일 뮌스터에 있는 알렉시아너재단인데 원예, 축사 관리, 양봉, 조립 등 다양한 워크숍 프로그램과 창작 스튜디오가 함께 있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스튜디오에 와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형태다. 이상적이기만 한 이야기 같지만 나는 할 수 있다고 본다.
작품을 보고, 작가가 장애인이니… “좋은 일 하십니다”라고 안 했으면 좋겠다. 그런 말을 들으면 작품을 보고 작품에서 좋은 걸 얘기하라고 응대한다. 예술은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프로파간다(propaganda)가 아니다. 장애 예술을 해방시키자, 장애인의 예술을 자유롭게 해주자, 좋은 일 안 해도 되고, 불손하거나 나쁜 것도 만들 수 있고, 미술사적 흐름 혹은 주류 예술계에서 인정하는 잣대에서 벗어나는 예술적 양상도 받아들이고 다양한 미적 형태를 수용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심명진장애 예술인이 특이하고 그로테스크(grotesque)한 창작을 많이 하는데 그게 멋져 보인다. 아름다움을 정의하는 게 아니라, 치유 받아야 할 사람들이 아니라, 그냥 존재 자체로 이해하면 당사자 예술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자리가 많아지고 더 많은 장애 예술인이 사회에 나서면 좋겠다.

김효나오늘 많은 얘기가 오갔는데, 일하면서 모른 척하고 묵혔던 이야기를 새로운 언어로 떠올리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데 공공에서도 적극적으로 함께 고민해주시길 부탁드린다.

김인경왜 우리는 지금껏 만나지 못했을까? 이번을 시작으로 다음 기회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김인경

시각예술 작업자이자, 발달장애 창작자들과 다양한 예술작업을 시도하며 창작과 소통의 방향을 찾는 창작그룹 밝은방의 운영자이다. <*이 설정은 픽션입니다> <밝은숲> <상자쓴아이> 등 다수의 전시와 출판물을 기획하였다.
밝은방 brightworkroom.modoo.at

김효나

소설가이자 창작그룹 밝은방 공동대표이다. 병이나 장애의 증상으로 인식되어 버려지고 금지되는 창작물과 그 창작물을 만드는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2008년부터 발달장애 창작자와 교류하며 그들의 작업을 소개하는 일을 하였다. 소설집 『2인용 독백』을 썼고, 《노트소년들》 『날 것1_고립의 텍스트』 『날 것2_환상자폐』 등 다수의 전시와 출판물을 기획하였다.

박범

패션과 회화에 관심이 많은 창작자이다. 로사이드와 에이블아트센터에서 미술을 배우고 활동하다가 현재는 티셔츠에 패브릭 마카로 그림 그리는 작업을 하며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 <희망에 대한 잡담> <나는 라거펠트를 알지만 라거펠트는 나를 알지 못한다> <너희 중 가장 능력 있는 자> 등 다수의 동영상 제작과 <김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블로그 blog.naver.com/mbyhk

심명진

‘혐오를 이기는 광기’라는 슬로건으로 정신장애인 예술단체 안티카를 운영한다. 모든 사람의 다양한 표현과 감정, 삶이 인정받는 세상이 예술을 통해 이뤄지리라 생각하며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활동을 응원하고 지지한다. <매드 프라이드 서울> <하얀 방> <거리로 나온 하얀 방> <사라진 하얀 방> <약 먹어도 괜찮아> <가족은 그때를 기억할까> 등 다양한 당사자들의 삶을 드러내는 축제와 연극을 기획하고 제작한다. 안티카 www.anticamind.com

이지혜

플레이스막 큐레이터와 비영리전시공간협의회 프로젝트 매니저로 활동했다. 현재는 사단법인 로아트 기획팀장을 맡고 있다.
로아트 rawart.kr

정리. 프로젝트 궁리 최엄윤 PD omyunchoi@hanmail.net
사진. 복세욱 ricky76kr@naver.com

2020년 11월 (15호)

상세내용

이슈

[연속 좌담] 장애 예술과 창작역량② 시각예술

다양한 미적 형태를 수용하는 열린 마음으로

김인경, 김효나, 박범, 심명진, 이지혜

개요

  • 일시 2020년 10월 17일(토) 오후 3시~5시

  • 장소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3층 커뮤니티룸2

  • 참석자

    좌장.
    김인경·김효나 (밝은방 공동대표, 이음 온라인·웹진 기획위원)
    패널.
    박범(패션·영상 창작자), 심명진(안티카 대표), 이지혜(로아트 큐레이터)

창작의 세계를 펼치며

김인 발달장애와 정신장애를 중심으로 한 예술단체의 창작자와 기획자들을 이 자리에 모셨다. 각자 작업에 대한 소개와 함께 어려운 점, 필요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 아이디어와 의견을 편하게 얘기해 주시기 바란다. 제가 진행을 하고 김효나 작가가 밝은방과 로사이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역할을 나누었다. 저희는 장애예술 분야의 기획을 하고 있지만, 각자 시각예술과 문학 작업을 하는 창작자이기도 하다.

김효 10년 전쯤 워크숍에서 만난 어느 발달장애인의 노트를 보게 됐는데 자기만의 글자, 사인, 이미지로 암호 같은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집에서는 항상 버려지는 노트였지만 내가 보기엔 재밌는 요소와 소통할 거리가 많은 우주 같았다. 그와 공동창작, 아트링크를 하며 활동을 시작했고 ‘로사이드’를 10년 정도 운영하다가, 그림 그리고 글을 쓰며 창작에만 집중하는 작은 공간이 필요해 ‘밝은방’을 운영하고 있다. 발달장애 작가들의 작업을 전시나 출판물로 소개하고 창작자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어 온라인 전시처럼 정리해서 보여주는 아카이빙 작업 등을 하고 있다.
박범 작가님도 로사이드 활동할 때 전시에서 처음 만났다. 패션 디자이너가 꿈인 박범 작가님이 제일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칼 라거펠트이다. 명품 잡지에 나온 이미지를 소재로 자신이 덧대어 패션 디자인을 하고 글도 쓰는데 화려하고 경쾌한 패션 디자인 이미지 위에 “삶은 고통이다”라는 텍스트를 반복적으로 덧붙이는 식으로 독특한 개인 작업을 한다.

현재 장애인 일자리 카페에서 바리스타 일을 하면서 블로그를 운영하고 집에서 혼자 작업하고 있다. 10년 전 여의도에 있는 장애인 종합복지공간 이룸센터에서 곽규섭 작가 전시회 포스터를 보고 김효나 작가님께 연락드렸고 로사이드에 들어가 미술을 배웠다. 수업이 재미있어서 좋았고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이지 사단법인 로아트가 운영하는 대야미스튜디오에서 작가들과 함께 워크숍, 창작, 전시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이전에는 비영리 전시공간에서 활동했다.

심명 ‘혐오를 이기는 광기’라는 슬로건으로 정신장애인 창작단체 안티카를 운영하고 있다. 정신장애인의 창작과 네트워킹을 지원하고 그 과정에서 예술을 통해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4년째 활동하고 있는데 그동안 사회적으로 환경이 많이 변하고 있는 걸 느낀다. 안티카는 상근 창작자가 운영 업무를 하고 단원 창작자가 본인만의 대항적 언어를 개발해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재작년부터 대항 창작 드로잉, 연극제작, 유튜브 창작 등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매드 프라이드’(Mad Pride) 때 창작자를 6월에 모집해 4개월간 지원금을 드리며 오브제 창작을 진행했고 대형 조형물을 만들어 광장에 나갔다.

김인경행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창작자들이 많은데, 안티카에서 운영인력과 창작자로 나누어지는 게 특별해 보인다. 당사자와 비당사자의 비율은 어떻게 되고 그 안에서 운영인력의 비율은 어떻게 되나?

심명진비율은 계속 바뀌지만, 항상 두세 명 정도는 당사자였다. 창작하는데 행정 역량을 좀 더 확보하고 싶은 당사자는 창작하면서 상근자가 되고 활동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일을 잘하신다.

김인경밝은방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해 6~7개월간 작업을 이어나갈 수 없었고, 최근에 화상 온라인 프로그램 안으로 창작공간을 옮겨가면서 문제도 많았다. 작업을 지속하기에 어려움이나 부족함 또는 필요한 것들이 있다면 이야기를 부탁드린다.

김효나박범 작가님은 로사이드에서 주 1회 정도 작업을 하셨는데, 로사이드 활동 중단 후에도 작업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하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박 범근본적인 문제는 아이디어 고갈이다. 지금은 조금 슬럼프다. 블로그도 하루에 두 번 정도 글을 올린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느낌이다. 코로나로 인해 전시를 보러 갈 수 없는데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등 전시장의 작업 아카이브를 인터넷으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심명진삼일로창고극장이 휴관하면서 안티카의 레퍼토리로 개발된 공연을 못 하게 되었고, 11개월간 열심히 준비한 연극을 보여줄 수 없어 단원들이 굉장히 마음 아파했다. 금방 괜찮아질 상황이 아니다 보니 온라인 전시와 공연 등으로 방법을 찾아 나가고 있다. <춤추는 광기> 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당사자가 직접 만드는 영상 콘텐츠와 당사자의 시 낭독과 지지하는 사람들의 화답 공연, 축제 전야제 생중계 프로그램과 축제 퍼포먼스를 포함한 생중계도 올렸다. ‘매드 프라이드 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림을 볼 수 있도록 기획했다. 작은 화면 속에서 보이는 그림이 생각보다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않는 것에 대한 보완이었다. 대중에게 당사자 창작자들의 예술을 더 효과적으로 보여줄 방법을 다양하게 고민 중이다. ‘매드 프라이드’도 온라인으로 진행했는데,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 부대끼면서 웃는 얼굴을 마주하고 “수고했어요”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보니 창작자들이 많이 지치는 상황이다.

김효나공간에 대한 원초적 어려움이 항상 있다. 2년 전부터 공공단체와 해오던 워크숍이 갑자기 중단되면서 밝은방은 현재 공간이 없는 상태다. 덧붙여, 로사이드 활동을 하면서 많이 들었던 말이 “좋은 일 하시네요”다. 상당히 힘 빠지게 하는 말이다. 창작 세계를 들여다보기에 앞서 장애인들이 작업한다는 사실만 인지하고 그 시선으로만 보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다보니 작업에 대한 리뷰나 다양한 관점의 언어 생성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지혜로아트의 경우, 작가의 보호자들이 발기하여 재원을 조성하고 법인을 설립했다. 작가들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게 작업실이었기 때문에 스튜디오를 먼저 개설하게 되었다. 활동을 할수록 현장에서 체감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활동이 발달장애인의 예술 창작 기회를 확충해 주는 좋은 일로 다루어질 뿐 예술 범주 안에서 다양한 양상을 수용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게 아주 어렵다는 사실이다. 대회에서 상을 타고 싶은 예술도 있고, 삶 자체가 예술이고자 할 수도 있고 다양한데 나와 다른 관념의 예술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게 지금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드러내기와 함께하기

김인경‘장애 예술’이라는 표현에 관해 얘기 나눠보고 싶다. 예술 안에서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이 과연 필요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들기도 하고, 창작지원금을 받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장애 예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박 범장애인이어서 지원받는 건 가능하겠지만 사람들에게 그림을 (향유하라고) 억지로 강요할 수는 없다. 예술지원금은 창작과 교육으로 나뉘는데, 장애인들이 교육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창작 지원금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비장애인 창작자도 그림이 안 팔리면 생활고에 시달리듯 장애인 창작자도 마찬가지다. 지원금에서 자존심을 세울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이지혜장애 예술이 향유되고 제공되는 기회가 적었고 삶 자체가 제약적이다 보니 예술이 가능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지난 6월 최봄이 작가 개인전을 열었다. 예전에는 지원을 받기 위해 ‘발달장애 예술인 지원 확충을 위한’ 등의 부제를 달았는데 이번 전시는 그런 미사여구를 사용하지 않았더니 구성원들 사이에서 발달장애 예술이라는 걸 왜 빼느냐는 불만이 있었다. 처음 시작하는 단계에서 보였던 표현적 특징은 장애가 있기 때문에 표현할 수 있는 게 분명히 있었겠지만, 어느 정도 지나서 그 사람의 작업 세계가 구축된 후에는 장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어려운 문제다.

심명진장애는 모든 사람이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신장애인 예술창작을 하는 안티카입니다”라는 말 자체가 주홍글씨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청년 장애인 당사자 중에는 정신장애라는 말을 빼지 않으면 활동하지 않겠다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신장애라는 요소를 빼고는 우리가 겪는 현실을 말할 수 없어 일부러 드러내고 활동한다. DSM5(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 분류체계가 있는데 이런 의학적인 틀에 갇히면 치유와 회복밖에 할 수 없다. 사회구조 자체가 장애이고 이런 사회구조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정신장애로밖에 표현될 수 없는 상황 자체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정신장애인이라는 용어를 의도적으로 쓰고 더 크게 보여주려 한다.

김효나정신장애라는 단어를 빼달라는 분들에게 설명하면 납득하시나?

심명진창작으로 표현했을 때 자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는 것을 보고 나면 스스로 “폐쇄병동 경험자다. 병원에서 몇 년을 있었지만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식으로 당당히 드러내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정신장애인들은 아직 자신을 드러내는 경험이 정말 미숙한 단계인데, 경험 전후의 차이인 것 같다. 작년에 매드 프라이드를 처음 열 때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아무도 우리를 때리지 않았고 같이 깃발 들고 춤추며 놀았다. 주홍글씨가 생기는 것은 사람 간에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혐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 우리 단원들은 공연, 전시, 팟캐스트 등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당당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게 되었다. 예술 활동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다.

이지혜정신장애나 발달장애가 있는 예술가를 더 많이 지원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장애 여부에 상관없이 작가들을 지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비장애 작가도 꾸준하게, 오롯이 지원받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장애를 앞세우지 않으면 장애가 있는 작가들은 공간이나 인력 등 구조 안에서 전혀 배려받지 못한다.

심명진사회적으로 장애를 지워버리고 정상성 안에 가두고 장애인을 거리에서 지워버리는 게 목적이라면 사회가 문제인 거다. 5년 정도 모든 장애 요소들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경험하면, 장애인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걸 인식하지 않을까. 그래서 억지로라도 더 많이, 더 크게, 더 효과적으로 보일 필요를 느낀다.

김인경발달장애를 왜 드러내지 않았냐고 물었던 분들은 발달장애 창작자가 아니라 부모나 주변 분들일 것으로 생각한다.

이지보호자와 작가를 분리할 수 없다. 작가와 가족이 예술로 삶이 변화하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예술의 필요와 가치를 알고 있다. 그러나 삶이 자유롭지 않고 예술을 충분히 향유할 수 없는 상태에서 예술을 수단으로 뭔가 해야 하다 보니 오류가 많이 일어난다. 해외 사례를 보면 부모가 같이 창작을 하거나 기획, 스튜디오 운영에 개입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장애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문제가 예술 활동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심명진장애에 관한 사회적 책임을 개인에게 전부 지우다 보니 가족이 오히려 더 보수적으로 된다. 무조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싶어 한다. 정신장애인의 경우는 가족의 반대로 사회에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에너지를 지속하기 위한 매개자 지원

김인경2018년 웹진 [이음] 기사 를 미리 보내드렸다. 장애 예술 창작 활성화에 필요한 역량을 묻는 질문에 비장애인은 사회참여 확대를 가장 많이 꼽았다면 장애인 창작자들은 새로운 매체를 배우고 응용하고 작업하고 싶은 욕구가 높았다. 장애 예술인 역량 강화에 필요한 지원에 대해 장애인 창작자들은 창작에 필요한 지원금과 새로운 매체에 대한 배움의 욕구가 높았다. 반면 비장애인은 사회와 소통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높았다. 기획자와 창작자로서 이러한 차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다.

박 범한국장애인고용공단 지원사업 중에 ‘장애인 취업성공 패키지’가 있는데 선정 기준이 까다로웠다. 이 사업이 널리 확대되고 문턱이 낮아져서 장애인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을 받으면 좋겠다. 미술과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일을 해서 재료비를 벌어야 하니 그런 쪽으로도 지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장애 예술 분야의 기획자나 교육자도 일정 기간 배우면서 충전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김인경박범 작가님은 예술 지원사업에 신청해본 경험이나 예술지원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박 범로사이드의 패브릭 워크숍 ‘김치 프로젝트’에 아이디어를 내서 사례비를 받았고, 에이블아트에서 포스터에 그림을 그려 작업비를 받아 행복했던 경험은 있지만 지원사업에 신청한 적은 없다.

김효나지원사업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해마다 내 인건비를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였다. 10년 정도 그렇게 하다 보면 지쳐서 재충전이 필요하다. 다른 분들은 운영의 불안정과 심리적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고 충전하는지 궁금하다.

심명진모든 보조금 사업이 주최자의 인건비를 책정하지 못하는 구조다. 해야 할 일이 보이고 확장되고 있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 되면 나도 엄청 소진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사자가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아직은 없다. 상근자가 대개 기초생활수급자여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데 지금까지는 지원도 받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이들이 정당한 활동비를 받으며 계속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제일 걱정이다.

이지혜박범 작가님의 말처럼 작가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인력에 투자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기획자 혹은 연구자가 창작의 흐름을 추적할 수 있도록 작가의 작품을 한데 모을 수 있고 차분하게 연구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작가가 발굴되어도 사업의 대상으로만 국한될 뿐, 본격적인 작품 연구나 작가 혹은 씬에 대한 논의는 일어나지 않는다. 단기적인 사업으로 ‘대상화’라는 오류를 걷어내거나 내용의 깊이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장의 인력들이 만나고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게 공공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자생적으로 발생한 민간단체의 중요성과 현실적 어려움을 파악하고 그들이 계속 유지되고 분리 확장되게 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마련해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효나최근 들어 심명진 대표나 이지혜 큐레이터 같은 분을 새롭게 만날 수 있어 반갑고 이것이 정말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조차 없었다. 이런 모임을 갖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심명진저도 장애 예술인을 많이 만나고 싶고 어떤 기획자들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궁금했다. 지난 4년 동안 같이할 기회를 한 번도 못 가져 아쉬웠고 혼자 하는 느낌이었다. 저도 창작자이지만 내 옆의 정신장애 창작자들을 더 많이 인식해주었으면 좋겠다. 우리 단원 중 많은 분이 청소 노동을 하다가 창작으로 생계에 기여하면서 삶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다. 이러한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공공의 장에서 같이 논의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방향이 생겨나길 바란다. 단원들은 예술 활동을 하지만 단순인건비로 책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으로 당사자 예술에 대한 개념이 흐리다 보니 그런 것 같다.

박 범장애인만 다니는 미술대학을 만들어서 장애를 잘 아는 분을 교수로 초빙하면 좋겠다. 그리고 장애 미술계에도 먼저 들어온 선배가 멘토로 활동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지원해주면 좋겠다. 교육 기회 확대도 필요하다.

김인경소위 “문화예술 매개자”라고 불리는 연구자, 비평가, 기획자, 행정인력의 역할이 중요하고, 중간에 연결을 해주는 사람들 층이 더 두터워져야 한다.

이지혜독일이나 일본 창작 스튜디오의 경우 작가 대비 비장애 인력은 1:3, 못해도 1:1이다. 현장에 가서 보고 배우고 거기서 아름다움과 행복감을 느껴야 이 분야에 계속 인력풀이 유지되고 전통이 쌓일 수 있다. 제도적으로 창작 지원도 늘려야 하지만 연수 단원 지원, 비장애 작가 매칭 지원 등 인력 지원을 전폭적으로 확대해서 장애 예술 영역에 좋은 인력이 지속적으로 참여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심명진저희도 성의를 가지고 온 분들이 못 버티고 그만두기도 했다. 매개자 지원을 통해 같이 활동할 수 있는 동료를 찾고 인력을 양성하는 창구를 만들어 현장에 있으려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동등하고 자유로운 장애 예술을 향하여

김인경앞의 설문조사에서 비장애인은 공통으로 사회참여 확대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교류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지금 같은 코로나 시기에 어떤 방식으로 사회와 소통할 수 있을지 고민과 아이디어를 나눠달라.

박 범예술 활동을 하다 나이가 들었을 때, 선생님들이 계시면 좋겠지만, 장애 예술가의 노후는 어떻게 될까?

이지혜문제를 맞닥뜨릴 때마다 해결해 가야 할 뿐 이상이나 대안은 없다. 필요한 걸 계속 말해야만 바뀔 수 있다. 비장애 작가와 특정한 목적을 수행하고 좋은 관계를 맺지만 그걸 계속 유지할 수 없는 현실이 있다. 밝은방에서 얼마 전 개최한 전시의 서문 중에 “밝은 숲을 지나 어둠을 직면한다”는 말이 항상 마음에 있다. 장애가 가지고 있는 현실적 어려움이 예술 활동에서도 예외는 아니기 때문에 좋은 인력이 있어도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현장에서 작가들과 함께 하는 인력들의 어려움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은 충분한 경험이 축적된 인적 인프라다. 덧붙여 장애 이해 교육, 뇌인지과학, 장애 철학이나 장애학 등에 관한 단체 모임, 세미나 등을 공공차원에서 제공하면 장애에 관한 호기심이나 환상을 제거하고 장애를 장애 그대로 인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심명진정신장애인은 장애 요소로 분류되어 혐오를 받고 있을 뿐이라는 걸 서로 알아가는 게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협업에서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장애 예술인은 배려라 생각하고 장애 예술인을 동등하게 대우하지 않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예술인은 예민하고 민감하고 사회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창의적인 사람들일 텐데도 우리를 장애인이라며 대상화하며 바라봤을 때 서로 격차가 너무 크다고 생각됐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으로써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협업 활동이 중요하다.

박 범어느 지역이든 장애인들만 서로 북돋우며 살면서 그 안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도시가 있으면 좋겠다.

이지혜박범 작가님이 말씀하신 그런 행정구역이 있다. 독일 뮌스터에 있는 알렉시아너재단인데 원예, 축사 관리, 양봉, 조립 등 다양한 워크숍 프로그램과 창작 스튜디오가 함께 있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스튜디오에 와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형태다. 이상적이기만 한 이야기 같지만 나는 할 수 있다고 본다.
작품을 보고, 작가가 장애인이니… “좋은 일 하십니다”라고 안 했으면 좋겠다. 그런 말을 들으면 작품을 보고 작품에서 좋은 걸 얘기하라고 응대한다. 예술은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프로파간다(propaganda)가 아니다. 장애 예술을 해방시키자, 장애인의 예술을 자유롭게 해주자, 좋은 일 안 해도 되고, 불손하거나 나쁜 것도 만들 수 있고, 미술사적 흐름 혹은 주류 예술계에서 인정하는 잣대에서 벗어나는 예술적 양상도 받아들이고 다양한 미적 형태를 수용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심명진장애 예술인이 특이하고 그로테스크(grotesque)한 창작을 많이 하는데 그게 멋져 보인다. 아름다움을 정의하는 게 아니라, 치유 받아야 할 사람들이 아니라, 그냥 존재 자체로 이해하면 당사자 예술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자리가 많아지고 더 많은 장애 예술인이 사회에 나서면 좋겠다.

김효나오늘 많은 얘기가 오갔는데, 일하면서 모른 척하고 묵혔던 이야기를 새로운 언어로 떠올리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데 공공에서도 적극적으로 함께 고민해주시길 부탁드린다.

김인경왜 우리는 지금껏 만나지 못했을까? 이번을 시작으로 다음 기회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김인경

시각예술 작업자이자, 발달장애 창작자들과 다양한 예술작업을 시도하며 창작과 소통의 방향을 찾는 창작그룹 밝은방의 운영자이다. <*이 설정은 픽션입니다> <밝은숲> <상자쓴아이> 등 다수의 전시와 출판물을 기획하였다.
밝은방 brightworkroom.modoo.at

김효나

소설가이자 창작그룹 밝은방 공동대표이다. 병이나 장애의 증상으로 인식되어 버려지고 금지되는 창작물과 그 창작물을 만드는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2008년부터 발달장애 창작자와 교류하며 그들의 작업을 소개하는 일을 하였다. 소설집 『2인용 독백』을 썼고, 《노트소년들》 『날 것1_고립의 텍스트』 『날 것2_환상자폐』 등 다수의 전시와 출판물을 기획하였다.

박범

패션과 회화에 관심이 많은 창작자이다. 로사이드와 에이블아트센터에서 미술을 배우고 활동하다가 현재는 티셔츠에 패브릭 마카로 그림 그리는 작업을 하며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 <희망에 대한 잡담> <나는 라거펠트를 알지만 라거펠트는 나를 알지 못한다> <너희 중 가장 능력 있는 자> 등 다수의 동영상 제작과 <김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블로그 blog.naver.com/mbyhk

심명진

‘혐오를 이기는 광기’라는 슬로건으로 정신장애인 예술단체 안티카를 운영한다. 모든 사람의 다양한 표현과 감정, 삶이 인정받는 세상이 예술을 통해 이뤄지리라 생각하며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활동을 응원하고 지지한다. <매드 프라이드 서울> <하얀 방> <거리로 나온 하얀 방> <사라진 하얀 방> <약 먹어도 괜찮아> <가족은 그때를 기억할까> 등 다양한 당사자들의 삶을 드러내는 축제와 연극을 기획하고 제작한다. 안티카 www.anticamind.com

이지혜

플레이스막 큐레이터와 비영리전시공간협의회 프로젝트 매니저로 활동했다. 현재는 사단법인 로아트 기획팀장을 맡고 있다.
로아트 rawart.kr

정리. 프로젝트 궁리 최엄윤 PD omyunchoi@hanmail.net
사진. 복세욱 ricky76kr@naver.com

2020년 11월 (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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