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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사회적 감수성을 담은 예술교육

이슈 서로 연결된 삶-서로 의지하는 예술

  • 고헌, 김주혜, 이영실, 이진희 
  • 등록일 2021-10-27
  • 조회수1617

이슈

개요

  • 일시2021년 10월 14일(수) 오후 4시

  • 장소온라인(zoom)

  • 참석자

    좌장.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대표
    패널.
    고헌 공연기획·연출가
    김주혜 예술가·기획자
    이영실 독립공연예술가·예술교육자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고헌, 김주혜, 이영실, 이진희

삶의 자리에서 만난 장애예술교육

이진희 장애인권, 장애예술 관점에서 예술교육을 진행할 때, 그것이 비단 장애인 당사자만의 경험이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의 관점에서, 만나는 분들을 고민하며 활동하게 된다. 소수자성, 인권의 가치 등을 내포하는 뜻으로 ‘사회적 감수성’ 관점에서 어떤 지향과 방식을 고민하며 활동해오고 있는지 이야기 나눠보려 한다. 우선 각자 활동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시작해보면 좋겠다.

고헌 공연기획·제작·연출을 하고 있다. 먼저 연출가로 시작했다. 전문 배우나 퍼포머보다는 삶의 현장에서 삶의 맥락을 가지고 사회적 소수자들과 함께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작업을 해왔고 참여적 형식을 실험해왔다. 최근에는 생태적 관점에서 작업하고 있다. 2012년부터 장애인문화예술단체 ‘장애인문화공간’과도 꾸준히 작업해오고 있다.

이영실 10년 전 독일에서 연극교육을 공부하고 돌아와서, 연극 관련 예술과 예술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수박’이라는 닉네임으로 독립공연예술가로 활동하며 창작과 공연을 하고, 예술교육 및 공연단체 ‘예술하는 아이다’를 운영하고 있다. 우연한 계기로 청각장애 아이들과 2년간 연극 작업을 했고, 느린학습자들과 3년째 연극 놀이로 만나고 있다. 그림책을 매개로 아이들과 연극 놀이를 하고, 그림과 몸짓으로 구성된 스토리텔링극을 간간이 한다. 제가 그린 그림을 예술교육과 공연창작에 활용하기도 한다. 올해 느린학습자를 둘러싼 다양한 주체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리서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오늘도 느린학습자 자녀를 둔 보호자들과 워크숍을 했는데, 순간 뭉클하고 서로 위로하는 모습에 감동받고 왔다.

김주혜 구례에 살고 노래한다. 구례 사는 어르신들과 노래교실도 하고 초등학교에서 1:1 학습코칭이라는 것도 하고 있다. 학습코칭은, 학부모와 담임교사, 그리고 학생분의 요청이 있을 때 학교생활이 힘든 점을 나눈다던가, 한글을 함께 공부한다던가 하면서 학교 생활을 좀 더 즐겁게 바꿔보려는 만남 활동이다. 여기에 초대된 건, 아마도 2016년에 처음 장애여성공감과 인연을 맺어 ‘일곱빛깔 무지개 합창단’에서 같이 노래도 부르고 만들었던 인연 때문인 것 같다. 장애여성차별, 장애인 이동권, 또 (장애여성공감이 연대하고 있는 지보이스 등) 성 소수자 관련해서 공연할 일이 있을 때는 함께 공연도 준비하기도 했다. 또 극단 춤추는허리와 연대해서 활동하기도 하고... 이분들과 함께하면서 아름다운 노래란 뭘까, 정상적인 음악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어떤 걸 예술이라고 하는 거지?’, ‘누가 예술가라는 걸 정하는 걸까’ 등등을 재미있게 공부했다.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차리기

이진희 장애, 예술, 교육 각각의 함의도 넓고 지향이나 해석, 일궈가는 방법도 다양하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맥락에서 소수자와 만난다는 얘기도 해주셨는데, 장애인 예술 교육과 관련하여 무엇을 중요한 방향과 질문으로 삼고 활동하는지, 어떻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지속하는 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김주혜 며칠 전엔 불교학자이자 페미니스트이고 환경운동가인 조안나 메이시의 ‘재연결 작업’에 관한 생태 워크숍에 참여했다. 그중 우리의 삶을 바꾸고 지속가능하기 위한 대전환의 징후를 어디서 느끼는지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데, 멸종반란(Extinction Rebellion) 활동가가 해 준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환경운동하는 분들이 장애인권운동과 이어짐을 느끼고, 장애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동물권 관련해 직접 행동을 하는 사람과 이어지고, 성소수자로서 경험하는 차별과 혐오가 ‘동물’, ‘장애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리는 순간과 자리, 사람들을 만날 때 대전환의 시기라고 느낀다는 말이 공감되었다. 한 사람을 알게 되면, 그 안에 수많은 삶과 존재 방식이 서식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스스로도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다채롭고 두껍게 삶을 시간을 들여서 깊이 만나면서, ‘다채로운’ 서식지 속 삶을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과 잇는 이야기를 만든다. 표현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가 또 다른 삶을 초대하여서 자기 안에 서식하도록 하는 그런 작업에 관심이 있다, 지금은 그 안에서 자유로워지고, 소외되어 있었던 삶의 부분들도 돌보면서, 연결감을 통해 힘을 느끼기도 한다. 가끔은 해방된 것 같은 시간을 만날 수 있어서 이런 작업을 계속하는 것 같다.

고헌 현장에서는 항상 장애라는 틀, 예술 혹은 교육이 협소하게 느껴지고 도대체 어디에 끼워 맞춰야 하나 답답함을 느낀다. 훨씬 통합적인 방식 혹은 연결의 방향을 생각하게 된다. 범주의 협소함과 경직성을 더 크게 느끼는 데는 지원사업의 틀에서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동료적인 포지션을 유지하는 것’을 중요한 방향으로 놓는다. 현장에서 뭔가를 의욕적으로 하려고 할 때면 항상 위계가 작동하는 것 같다. 장애/비장애 이런 범주 자체에서 오는 위계나 격차를 계속 감지하게 되는데, 그것을 모른 체할 수가 없었다. 동료라고 했을 때 중요하게 생각되는 지점은, 어떤 위계적인 관계보다는 각자의 포지션에서 동료적 관계를 인지하는 것이다. 서로의 지향점을 함께 보고 같이 가는 옆 사람. 정보를 공유하고 나누는 것이 더 평등한 관계를 만든다. 위계가 존재하는 부분과 평등한 지평이 있다면, 그 평등한 지평을 기반으로 위계의 격차를 빨리 인지하고 공유하며 그 안에서 방법을 찾아가는 게 동료적인 관계라고 생각한다. 막상 이렇게 중심을 잡더라도 현장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매번 깨지는 과정이 있는 것 같다.

이진희 얘기를 들으면서, 책 『시설사회』에서 청소년 인권운동을 하는 한낱 님의 말이 떠올랐다. “이쯤 되면 평등하겠지”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 동료 하기는 사회 안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확인하면서 계속 실천해야 할 문제이지 완성형이 아니라는 취지의 글이었다.

이영실 지금도 제가 만나는 아이들이 장애인지 아닌지 단정지어 말하기가 어렵다. 이번 좌담을 통해 장애예술교육이라는 말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저는 한 예술가로서 아이들과 만났을 때 뭘 하고 싶지, 어떻게 해야 이 아이들과 연극을 할 수 있을지에 관해 질문을 많이 했었다. 처음 난청 어린이 청소년들과 만났을 때는 청각장애에 대한 개념이나 이해가 거의 없어서 이 아이들이 거의 들을 수 없고 수화로 얘기해야 소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만나보니 보청기나 인공와우 기계장치를 통해 소리를 정말 잘 들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첫 만남부터 저를 정면으로 보고 이야기하는 게 인상적이었는데, 나중에야 그들이 제 입 모양을 보고 읽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굴을 보지도 않고 말해왔던 저의 소통방식과는 너무 달라서 걱정도 되었다. 그런데 매번 연극 작업이나 활동을 할 때면 진지한 태도로 저를 바라보는 시선과 온전히 연극에 집중하는 모습이 저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런 경험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고민을 하게 되었다.
느린학습자에 속하는 경계선 지능은 자폐, ADHD, 뇌전증 성향 등 그 스펙트럼이 유동적이고 매우 넓다. 그 아이들과 연극을 하면서 느낀 것은, 지능 때문에 어려움은 없었다는 것이다. 활동이나 커뮤니케이션이 어렵다기보다는, 오히려 또래와의 관계나 자신이 생각한 것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 실패나 주위의 시선 때문에 위축되어 있는 아이들이 많았고, 그래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더 큰 문제는, 이 아이들이 하나의 그룹으로 묶인다는 것이다. 한 아이가 모든 면에서 다 느린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글씨를 잘 쓰고, 누군가는 그림을 잘 그린다. 다양한 영역에서 각자의 속도와 리듬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모든 게 느리다고 일반화하고 지능지수를 기준으로 평가하며 문제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각자의 개성과 고유성, 각자의 리듬과 속도를 존중하며 만나야 각자의 삶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살 수 있지 않을까.

매뉴얼 없이 동료 시민으로 만나기

이진희 장애, 예술, 교육이란 개념을 각기 떼어 놓으면 사회문화적 맥락, 개별의 욕구와 고유성 등 복잡한 맥락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장애예술교육’ 이렇게 붙여 놓으면 납작해지는 느낌이다. 치료, 치유, 교육, 여가 활동… 이런 식으로 하나의 프로그램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장애여성 인권운동에서는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그 안에 당사자를 머물게 하고 다른 곳을 넘나들기 어렵게 삶을 구획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산이 늘어나고 프로그램이 많아져도 프로그램화(제도화)되기만 하고 토론이 없으면 점점 만남의 목표나 방식에 대한 고민도 흐려질 수밖에 없다. 장애인 예술 교육이 매뉴얼에 갇히지 않고, 동료 시민으로 만나며 예술 활동하는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제도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을까?

고헌 장애예술 활동을 하면 예술에 대해 다시 질문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장애/비장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자 하고, 교육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실제 활동에서는 지원사업이라는 틀 안에서 벽을 만난다. 지원서를 쓸 때부터 말이 굉장히 많아지는 것 같다. ‘우리가 하려는 예술은 이렇다’라고 길게 설명하며 에너지를 소모적으로 쓰게 된다. 지원을 받게 된 경우에도 실제 체감하는 걸림돌은 예산 항목이다. 현실적으로 예산을 사용하는 항목은 뻔한데, 인건비나 제작비 이런 부분은 이미 항목에서 규정하고 있다. 그 틀에 맞출 수가 없으니, 예산 항목도 다시 정의하게 된다. 또 실행하다 보면 현장에서는 계속 상황이 바뀌는데, 그때마다 증명해야 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예술활동을 공감하고 협의하고 공적 기금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지며 같이하는 느낌이 아니라, 허공의 실체 없는 주인, 실체 없는 유령과 싸우는 느낌이다. 예술단체를 장애예술 활동을 풍요롭게 만드는 주체로 인정하는 게 아니라 계속 평가한다. 어찌 보면 면책을 위한 자료만 계속 쌓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끊임없이 상호 간에 불신이 쌓이는 제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필요한 것은 증빙이 아니라 상호 교류하고 나누는 장이다. 이런 논의가 늘 있지만, 공허한 메아리만 울리고 있는 것 같다.

이영실 저 역시 많이 공감한다. 한편으로는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이야기를 외쳐야 하나, 허공에 바위 치기인가 싶고 공허함이 생긴다. 제가 경험한 예술교육 영역에서는 강사비, 인건비, 소모품비 등은 쓸 수 있지만 그 외에는 대여해야 한다. e-나라도움이 이제는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불신의 시선 때문에 사업에 집중하기 어렵다. 매번 변경신청을 컨펌받고 진행하는 시스템인데, 이제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김주혜 문화예술교육, 장애예술교육 지원 정보를 다양한 사람들이 공평하게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일전에 매개자와 관련한 글을 봤는데, 거기에서도 매개자라고 하는 위치가 어떤 식으로 가정되어 있었다. 장애/비장애를 떠나서 예술 전문가의 정상성이 감지되는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예술가도 교육자도 전형성이 있고, 그런 전형성이 예술의 기준에서 어떤 정상성을 상정하는 것 같다. 글을 보면서 너무 익숙한 담론, 예전에 제도권 미술 안에서 들었던 얘기들이 나와서 놀랐다. 소위 예술판 밖 미술의 문턱도 높고 예술에 대해 어려워하는 사람들에 대해, 제도는 얼마나 평등하게 작동할까. 장애예술교육 당사자 혹은 그것과 관계를 맺고 동료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평등하게 만나는 정보나 시스템을 여는 데 있어 어떤 방책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매뉴얼을 만든다고 할 때도, 그것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라고 상정하는 걸까. 장애인과 비장애인, 두 부류 안에서 딱 하나의 매뉴얼이 있는 것 같다.

연대의 시작, 동료 되기/하기

이진희 사회가 장애인을 차별하는 방식이 제도 안에서도 그대로 반영되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것을 해보고자 시도하고, 혼자가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하며 동료성을 중요한 가치로 둔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방향으로 동료성을 추구하는지, 어떻게 동료 되기/동료 하기 과정을 겪고 있는지 궁금하다. 매뉴얼이 아니라 각자의 방식을 찾고 제도에 갇히지 않기 위해, 같이 작업하는 동료들과는 어떤 실천을 하고 있나?

이영실 느린학습자 아이들과 연극 작업을 하는 경우, 아이들 본인이 선택해서 참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보호자가 선택하는 게 대부분이다. 본인의 선택이나 의지가 담겨 있지 않으면 그게 활동에서 드러난다. 그런 경험을 통해 아이들과 만나는 작업의 방식을 바꿔보았다. 아이들과 초반엔 연극놀이의 기본이 되는 맛보기 경험을 한 후 얘기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참여자의 자발적 의지를 존중하며, 본인의 의지로 계속 연극 작업을 이어나갈 것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준다. 한편, 느린학습자 시민회와 연대해서 ‘우리는 서로 다른 한 사람’이라는 느린학습자 리서치 작업을 하고 있는데, 느린학습자 보호자와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 안에서 서로 위로하고 의지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이 연대의 시작, 동료 시민으로 만나는 작업이 아닐까.

고헌 예전에는 어떤 결과를 내야겠다거나 예술적 성취에 관한 압박감 속에서 작업했던 것 같다. 2019년에 변화의 계기가 있었는데, 다 내려놓고 참여자, 같이 하는 동료들이 선택하는 리듬과 템포로 진행해보고자 했다. 꾸준히 모이는 날짜와 대략적인 큰 방향성은 설정해놓았지만, 구체적으로 짜지 않고 충분히 기다리고 충분히 선택할 수 있는 여유를 두었다. 다른 스태프나 가끔 와서 보는 사람들은 답답했겠지만, 같이 하는 사람들이 부담 느끼지 않는 템포를 유지하는 것을 1순위로 두고 계속 진행했다. 그러면서 제가 오랜 시간 장애인들과 작업해왔던 것들이 역전되는 순간이 있었다. 매번 모임마다 감동해서 울기도 했다. 충만하고 충분하다는 경험을 그때서야 했다. 선택에 충분한 공간감을 주는 시도가 저에게 큰 자원이 되었고, 저를 지지해주었다.
한편, ‘시민’ ‘성원권’은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과 연결되어 있다. 동료적 관계는 한 사람의 성원권을 온전히 인정하고 보호한 상태에서 만나는 관계다. 공연 작업 과정을 통해 어떤 감각을 서로 주고받고 어떤 감각을 익히는 것은 누구를 성원으로 할 것인가와 연결된다. 그래서 제가 하는 공연 작업 자체가 동료적·시민적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작업하고 있다.

김주혜 예술이란 게 좋은 것이, 내 자율적인 시간과 노력을 들여 다른 존재를 섬세하게 내 고유한 리듬에 맞추어서 마주할 수 있는 시간, 노동을 인정받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해방감과 자유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장애나 장애예술교육처럼 정체성을 기반으로 예술을 생각하다 보면 ‘장애인’ 이라는 집단을 만들어내야 한다. 상상해야 한다고 할까. 대상화하는 시스템이 있다. 게다가 만나는 방법이나 속도에도 규칙이 많다. 그 규칙 안에서 내가 받아들이고 또 활용할 수 있는 것은 하기도 하고, 아니면 꾀를 부리기도 한다. 그래도 그 규칙들을 지키려고 억지를 부릴 때에도 뿌리로 삼고서 되새기는 건 있다. 만남은 제안한 사람으로서 ‘작가’든 혹은 ‘매개자’든 어떻게 불리든지 자기 위치성을 솔직하게 드러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 삶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걸 먼저 드러낸다. 레즈비언으로 불리기도 했던 여성,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노동자 같은 명확한 정체성에서 나온 것도 있고, 병과 함께 살고 있다거나 뚱뚱한 몸으로 혐오의 대상이었던 경험, 폭력이 일상화된 구조 속에서 피해자로뿐만 아니라 방조자 또는 적극적인 가해자로 사는 부분까지. 매 순간 실패하는 모든 순간에 대해서 말이다. 한 사람 한 사람 혹은 한 존재 한 존재가 겪고 있는 삶의 여정 안에서 적당한 타이밍과 장소에서 만나도록 내 위치성을 점검하고 다듬어가는 것, 이것이 동료 시민일지도. 이어짐을 제안하는 존재가 열심히 하면 아름다울 수도 있는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실패와 두려움을 끌어안기

이진희 활동하다 보면 갈등이나 문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갈등을 충분히 겪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 같다. 주변인으로 인해 당사자와 소통하기 어렵거나 주변인의 심한 개입 등도 있을 것 같다. 어려움을 나누거나 토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갈등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풀어가고 있나.

이영실 연극 놀이 현장에서 보호자 중에 고민과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분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이 그림책이 우리 아이에게는 어렵고 맞지 않은 것 같으니 바꿔줄 수 있냐 같은 요구다.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스러웠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니 보호자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되는 측면이 있었다. 보호자의 걱정과 답답함을 하나하나 들어주고 의견을 나누면서 대화로 풀었다. 아이들 안에서 싸움이 일어날 때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모든 상황을 열고 이야기하려 한다. 연극 놀이를 하는 상황에서 심한 싸움을 하거나 심한 이야기가 오가면 모든 것을 중지하고 정황을 들어본다. 그러고 나서 갈등 당사자끼리 갈등을 풀고 싶은지 아니면 같이 얘기해서 해결점을 찾고 싶은지 선택하게 한다. 자기들끼리 해결하고 싶다고 하면 좀 더 시간을 주고 이야기하고 오게 한다. 훈육이라기보다는, 본인이 어떤 얘기를 했고, 그래서 상대방이 어떤 감정이 들어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이야기 듣고 토론해보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낯설어했는데, 어느 순간 본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태도가 바뀐다. 그럴 때 아이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한 의미를 찾는 것 같다.

고헌 다양한 갈등 양상을 겪고 있는데 매번 고민이고 매번 시험에 든다. 스스로 방어적일 때 갈등이 더 증폭되는 것 같다. 그래서 무엇이 두려운 건지 알아차리고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항상 두려움과 마주하는 것 같다. 얘기를 들으면서, 제 위치성을 드러내는 것과 저의 취약성이 오히려 관계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일단 용기를 내자는 생각이다.

김주혜 ‘동료 되기’를 위해서는 연결감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연결성은 기후위기 때문에 이미 비극적인 방식으로 드러나고 실현되고 있는 것 같다. 연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할까. 굉장히 달라서, ‘나’와는 혹은 ‘우리’와는 절대 이어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삶이나 존재들과 이어질 수밖에 없고, 그래야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있다. 끝이 눈앞에 닥칠지라도 배제나 차별 없이 차근차근 이 여정을 함께 직조하고 싶다. 그런 작업을 같이할 수 있는 존재들과 공명하면서 각자 살아가는 감각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면 좋겠다.

이진희 예술이 억압하거나 불평등하거나 차별하는 세계의 집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집을 부수기 위한 여러 가지 실천이라면, 장애예술교육이 정형화되지 않도록 긴장감을 가지고 비판적으로 보면서 동료성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 활동하고 작업하는 안에서 누군가가 리드하고 알려주는 게 아니라, 상호의존성 속에서 작업 관계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럴 때 취약성이나 돌봄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도가 전문성이나 수월성 혹은 성취가 아니라, 실패나 두려움을 응원하고 지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될 수 있을까. 두려움이나 갈등을 서로 잘 마주하면서 덜 차별적으로 만나도록 현장을 지원하고 지지할 수 있길 바란다.

고헌(모기, 매운콩)

해고노동자, 쫓겨난 임차상인, 장애인, 성 소수자 등 특정 맥락에 놓인 비전문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하는 뉴다큐멘터리씨어터, 창작과정에 관객이 개입할 수 있는 열린 구조의 관객참여형 연극, 특정 집단이 공유하는 수행적 요소들을 의례화하는 공동체 기반의 커뮤니티 아트 등의 작업을 하고 있다. 2019년부터 생태 공동체, 활동가들과 교류하며 소매틱, 생태예술에 관심을 갖고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주요 작업으로 <모-래> <구일만 햄릿> <법앞에서> <25ㅅㅣ間: 시간거래> 등의 공연 연출과 영상작업이 있고, 장애인문화공간과 릴레이 집연극 프로젝트 ‘이몸저방구석’을 함께하고 있다.
ihunnyi@naver.com

김주혜(수수)

지역에서 노래하는 사람동물. 전남 구례 동네 가수로 행세하면서, 사람들/다양한 존재들과 이어지려고 애쓰고 있다. 장애여성공감과는 <일곱빛깔 무지개 합창단> 에서 노래를 함께 만들었다. 극단 <춤추는허리> 와는 거리, 미술관, 극장 등에서 소리로 연대했다.
femmage@gmail.com

이영실

예술교육가, 예술하는 아이다 대표. 연극교육을 전공한 드라마 전문가로 어린이청소년과 함께하는 예술작업을 하면서, 작가인 동시에 공연자 그룹인 독립공연예술가네트워크(IPAN)의 일원으로 ‘수박’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 노원에 있는 키움센터의 지역TA로 작업하고 있고, 예술하는 아이다를 운영하면서 느린학습자를 위한 연극 놀이를 주로 하고 있다. 느린학습자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경계없는 연극 놀이_지금, 여기, 다르게!>, 난청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마음을 잇는 그림책상상극장>, 청각장애 어린이청소년 연극공연 <신기한 그림족자_또 다른 이야기> <낱말공장 나라_또 다른 이야기> 등이 있다.
traumtree@hanmail.net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로 극단 춤추는허리에서 연극을 만들고 있다. 한국예술위원회 7기 위원이다. 이음온라인 기획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rpvl72@gmail.com

정리. 최순화 프로젝트 궁리 콘텐츠 제작 PD suna.choe@gmail.com

2021년 11월 (25호)

상세내용

이슈

개요

  • 일시2021년 10월 14일(수) 오후 4시

  • 장소온라인(zoom)

  • 참석자

    좌장.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대표
    패널.
    고헌 공연기획·연출가
    김주혜 예술가·기획자
    이영실 독립공연예술가·예술교육자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고헌, 김주혜, 이영실, 이진희

삶의 자리에서 만난 장애예술교육

이진희 장애인권, 장애예술 관점에서 예술교육을 진행할 때, 그것이 비단 장애인 당사자만의 경험이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의 관점에서, 만나는 분들을 고민하며 활동하게 된다. 소수자성, 인권의 가치 등을 내포하는 뜻으로 ‘사회적 감수성’ 관점에서 어떤 지향과 방식을 고민하며 활동해오고 있는지 이야기 나눠보려 한다. 우선 각자 활동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시작해보면 좋겠다.

고헌 공연기획·제작·연출을 하고 있다. 먼저 연출가로 시작했다. 전문 배우나 퍼포머보다는 삶의 현장에서 삶의 맥락을 가지고 사회적 소수자들과 함께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작업을 해왔고 참여적 형식을 실험해왔다. 최근에는 생태적 관점에서 작업하고 있다. 2012년부터 장애인문화예술단체 ‘장애인문화공간’과도 꾸준히 작업해오고 있다.

이영실 10년 전 독일에서 연극교육을 공부하고 돌아와서, 연극 관련 예술과 예술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수박’이라는 닉네임으로 독립공연예술가로 활동하며 창작과 공연을 하고, 예술교육 및 공연단체 ‘예술하는 아이다’를 운영하고 있다. 우연한 계기로 청각장애 아이들과 2년간 연극 작업을 했고, 느린학습자들과 3년째 연극 놀이로 만나고 있다. 그림책을 매개로 아이들과 연극 놀이를 하고, 그림과 몸짓으로 구성된 스토리텔링극을 간간이 한다. 제가 그린 그림을 예술교육과 공연창작에 활용하기도 한다. 올해 느린학습자를 둘러싼 다양한 주체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리서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오늘도 느린학습자 자녀를 둔 보호자들과 워크숍을 했는데, 순간 뭉클하고 서로 위로하는 모습에 감동받고 왔다.

김주혜 구례에 살고 노래한다. 구례 사는 어르신들과 노래교실도 하고 초등학교에서 1:1 학습코칭이라는 것도 하고 있다. 학습코칭은, 학부모와 담임교사, 그리고 학생분의 요청이 있을 때 학교생활이 힘든 점을 나눈다던가, 한글을 함께 공부한다던가 하면서 학교 생활을 좀 더 즐겁게 바꿔보려는 만남 활동이다. 여기에 초대된 건, 아마도 2016년에 처음 장애여성공감과 인연을 맺어 ‘일곱빛깔 무지개 합창단’에서 같이 노래도 부르고 만들었던 인연 때문인 것 같다. 장애여성차별, 장애인 이동권, 또 (장애여성공감이 연대하고 있는 지보이스 등) 성 소수자 관련해서 공연할 일이 있을 때는 함께 공연도 준비하기도 했다. 또 극단 춤추는허리와 연대해서 활동하기도 하고... 이분들과 함께하면서 아름다운 노래란 뭘까, 정상적인 음악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어떤 걸 예술이라고 하는 거지?’, ‘누가 예술가라는 걸 정하는 걸까’ 등등을 재미있게 공부했다.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차리기

이진희 장애, 예술, 교육 각각의 함의도 넓고 지향이나 해석, 일궈가는 방법도 다양하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맥락에서 소수자와 만난다는 얘기도 해주셨는데, 장애인 예술 교육과 관련하여 무엇을 중요한 방향과 질문으로 삼고 활동하는지, 어떻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지속하는 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김주혜 며칠 전엔 불교학자이자 페미니스트이고 환경운동가인 조안나 메이시의 ‘재연결 작업’에 관한 생태 워크숍에 참여했다. 그중 우리의 삶을 바꾸고 지속가능하기 위한 대전환의 징후를 어디서 느끼는지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데, 멸종반란(Extinction Rebellion) 활동가가 해 준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환경운동하는 분들이 장애인권운동과 이어짐을 느끼고, 장애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동물권 관련해 직접 행동을 하는 사람과 이어지고, 성소수자로서 경험하는 차별과 혐오가 ‘동물’, ‘장애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리는 순간과 자리, 사람들을 만날 때 대전환의 시기라고 느낀다는 말이 공감되었다. 한 사람을 알게 되면, 그 안에 수많은 삶과 존재 방식이 서식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스스로도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다채롭고 두껍게 삶을 시간을 들여서 깊이 만나면서, ‘다채로운’ 서식지 속 삶을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과 잇는 이야기를 만든다. 표현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가 또 다른 삶을 초대하여서 자기 안에 서식하도록 하는 그런 작업에 관심이 있다, 지금은 그 안에서 자유로워지고, 소외되어 있었던 삶의 부분들도 돌보면서, 연결감을 통해 힘을 느끼기도 한다. 가끔은 해방된 것 같은 시간을 만날 수 있어서 이런 작업을 계속하는 것 같다.

고헌 현장에서는 항상 장애라는 틀, 예술 혹은 교육이 협소하게 느껴지고 도대체 어디에 끼워 맞춰야 하나 답답함을 느낀다. 훨씬 통합적인 방식 혹은 연결의 방향을 생각하게 된다. 범주의 협소함과 경직성을 더 크게 느끼는 데는 지원사업의 틀에서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동료적인 포지션을 유지하는 것’을 중요한 방향으로 놓는다. 현장에서 뭔가를 의욕적으로 하려고 할 때면 항상 위계가 작동하는 것 같다. 장애/비장애 이런 범주 자체에서 오는 위계나 격차를 계속 감지하게 되는데, 그것을 모른 체할 수가 없었다. 동료라고 했을 때 중요하게 생각되는 지점은, 어떤 위계적인 관계보다는 각자의 포지션에서 동료적 관계를 인지하는 것이다. 서로의 지향점을 함께 보고 같이 가는 옆 사람. 정보를 공유하고 나누는 것이 더 평등한 관계를 만든다. 위계가 존재하는 부분과 평등한 지평이 있다면, 그 평등한 지평을 기반으로 위계의 격차를 빨리 인지하고 공유하며 그 안에서 방법을 찾아가는 게 동료적인 관계라고 생각한다. 막상 이렇게 중심을 잡더라도 현장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매번 깨지는 과정이 있는 것 같다.

이진희 얘기를 들으면서, 책 『시설사회』에서 청소년 인권운동을 하는 한낱 님의 말이 떠올랐다. “이쯤 되면 평등하겠지”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 동료 하기는 사회 안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확인하면서 계속 실천해야 할 문제이지 완성형이 아니라는 취지의 글이었다.

이영실 지금도 제가 만나는 아이들이 장애인지 아닌지 단정지어 말하기가 어렵다. 이번 좌담을 통해 장애예술교육이라는 말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저는 한 예술가로서 아이들과 만났을 때 뭘 하고 싶지, 어떻게 해야 이 아이들과 연극을 할 수 있을지에 관해 질문을 많이 했었다. 처음 난청 어린이 청소년들과 만났을 때는 청각장애에 대한 개념이나 이해가 거의 없어서 이 아이들이 거의 들을 수 없고 수화로 얘기해야 소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만나보니 보청기나 인공와우 기계장치를 통해 소리를 정말 잘 들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첫 만남부터 저를 정면으로 보고 이야기하는 게 인상적이었는데, 나중에야 그들이 제 입 모양을 보고 읽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굴을 보지도 않고 말해왔던 저의 소통방식과는 너무 달라서 걱정도 되었다. 그런데 매번 연극 작업이나 활동을 할 때면 진지한 태도로 저를 바라보는 시선과 온전히 연극에 집중하는 모습이 저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런 경험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고민을 하게 되었다.
느린학습자에 속하는 경계선 지능은 자폐, ADHD, 뇌전증 성향 등 그 스펙트럼이 유동적이고 매우 넓다. 그 아이들과 연극을 하면서 느낀 것은, 지능 때문에 어려움은 없었다는 것이다. 활동이나 커뮤니케이션이 어렵다기보다는, 오히려 또래와의 관계나 자신이 생각한 것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 실패나 주위의 시선 때문에 위축되어 있는 아이들이 많았고, 그래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더 큰 문제는, 이 아이들이 하나의 그룹으로 묶인다는 것이다. 한 아이가 모든 면에서 다 느린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글씨를 잘 쓰고, 누군가는 그림을 잘 그린다. 다양한 영역에서 각자의 속도와 리듬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모든 게 느리다고 일반화하고 지능지수를 기준으로 평가하며 문제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각자의 개성과 고유성, 각자의 리듬과 속도를 존중하며 만나야 각자의 삶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살 수 있지 않을까.

매뉴얼 없이 동료 시민으로 만나기

이진희 장애, 예술, 교육이란 개념을 각기 떼어 놓으면 사회문화적 맥락, 개별의 욕구와 고유성 등 복잡한 맥락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장애예술교육’ 이렇게 붙여 놓으면 납작해지는 느낌이다. 치료, 치유, 교육, 여가 활동… 이런 식으로 하나의 프로그램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장애여성 인권운동에서는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그 안에 당사자를 머물게 하고 다른 곳을 넘나들기 어렵게 삶을 구획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산이 늘어나고 프로그램이 많아져도 프로그램화(제도화)되기만 하고 토론이 없으면 점점 만남의 목표나 방식에 대한 고민도 흐려질 수밖에 없다. 장애인 예술 교육이 매뉴얼에 갇히지 않고, 동료 시민으로 만나며 예술 활동하는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제도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을까?

고헌 장애예술 활동을 하면 예술에 대해 다시 질문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장애/비장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자 하고, 교육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실제 활동에서는 지원사업이라는 틀 안에서 벽을 만난다. 지원서를 쓸 때부터 말이 굉장히 많아지는 것 같다. ‘우리가 하려는 예술은 이렇다’라고 길게 설명하며 에너지를 소모적으로 쓰게 된다. 지원을 받게 된 경우에도 실제 체감하는 걸림돌은 예산 항목이다. 현실적으로 예산을 사용하는 항목은 뻔한데, 인건비나 제작비 이런 부분은 이미 항목에서 규정하고 있다. 그 틀에 맞출 수가 없으니, 예산 항목도 다시 정의하게 된다. 또 실행하다 보면 현장에서는 계속 상황이 바뀌는데, 그때마다 증명해야 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예술활동을 공감하고 협의하고 공적 기금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지며 같이하는 느낌이 아니라, 허공의 실체 없는 주인, 실체 없는 유령과 싸우는 느낌이다. 예술단체를 장애예술 활동을 풍요롭게 만드는 주체로 인정하는 게 아니라 계속 평가한다. 어찌 보면 면책을 위한 자료만 계속 쌓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끊임없이 상호 간에 불신이 쌓이는 제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필요한 것은 증빙이 아니라 상호 교류하고 나누는 장이다. 이런 논의가 늘 있지만, 공허한 메아리만 울리고 있는 것 같다.

이영실 저 역시 많이 공감한다. 한편으로는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이야기를 외쳐야 하나, 허공에 바위 치기인가 싶고 공허함이 생긴다. 제가 경험한 예술교육 영역에서는 강사비, 인건비, 소모품비 등은 쓸 수 있지만 그 외에는 대여해야 한다. e-나라도움이 이제는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불신의 시선 때문에 사업에 집중하기 어렵다. 매번 변경신청을 컨펌받고 진행하는 시스템인데, 이제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김주혜 문화예술교육, 장애예술교육 지원 정보를 다양한 사람들이 공평하게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일전에 매개자와 관련한 글을 봤는데, 거기에서도 매개자라고 하는 위치가 어떤 식으로 가정되어 있었다. 장애/비장애를 떠나서 예술 전문가의 정상성이 감지되는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예술가도 교육자도 전형성이 있고, 그런 전형성이 예술의 기준에서 어떤 정상성을 상정하는 것 같다. 글을 보면서 너무 익숙한 담론, 예전에 제도권 미술 안에서 들었던 얘기들이 나와서 놀랐다. 소위 예술판 밖 미술의 문턱도 높고 예술에 대해 어려워하는 사람들에 대해, 제도는 얼마나 평등하게 작동할까. 장애예술교육 당사자 혹은 그것과 관계를 맺고 동료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평등하게 만나는 정보나 시스템을 여는 데 있어 어떤 방책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매뉴얼을 만든다고 할 때도, 그것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라고 상정하는 걸까. 장애인과 비장애인, 두 부류 안에서 딱 하나의 매뉴얼이 있는 것 같다.

연대의 시작, 동료 되기/하기

이진희 사회가 장애인을 차별하는 방식이 제도 안에서도 그대로 반영되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것을 해보고자 시도하고, 혼자가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하며 동료성을 중요한 가치로 둔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방향으로 동료성을 추구하는지, 어떻게 동료 되기/동료 하기 과정을 겪고 있는지 궁금하다. 매뉴얼이 아니라 각자의 방식을 찾고 제도에 갇히지 않기 위해, 같이 작업하는 동료들과는 어떤 실천을 하고 있나?

이영실 느린학습자 아이들과 연극 작업을 하는 경우, 아이들 본인이 선택해서 참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보호자가 선택하는 게 대부분이다. 본인의 선택이나 의지가 담겨 있지 않으면 그게 활동에서 드러난다. 그런 경험을 통해 아이들과 만나는 작업의 방식을 바꿔보았다. 아이들과 초반엔 연극놀이의 기본이 되는 맛보기 경험을 한 후 얘기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참여자의 자발적 의지를 존중하며, 본인의 의지로 계속 연극 작업을 이어나갈 것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준다. 한편, 느린학습자 시민회와 연대해서 ‘우리는 서로 다른 한 사람’이라는 느린학습자 리서치 작업을 하고 있는데, 느린학습자 보호자와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 안에서 서로 위로하고 의지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이 연대의 시작, 동료 시민으로 만나는 작업이 아닐까.

고헌 예전에는 어떤 결과를 내야겠다거나 예술적 성취에 관한 압박감 속에서 작업했던 것 같다. 2019년에 변화의 계기가 있었는데, 다 내려놓고 참여자, 같이 하는 동료들이 선택하는 리듬과 템포로 진행해보고자 했다. 꾸준히 모이는 날짜와 대략적인 큰 방향성은 설정해놓았지만, 구체적으로 짜지 않고 충분히 기다리고 충분히 선택할 수 있는 여유를 두었다. 다른 스태프나 가끔 와서 보는 사람들은 답답했겠지만, 같이 하는 사람들이 부담 느끼지 않는 템포를 유지하는 것을 1순위로 두고 계속 진행했다. 그러면서 제가 오랜 시간 장애인들과 작업해왔던 것들이 역전되는 순간이 있었다. 매번 모임마다 감동해서 울기도 했다. 충만하고 충분하다는 경험을 그때서야 했다. 선택에 충분한 공간감을 주는 시도가 저에게 큰 자원이 되었고, 저를 지지해주었다.
한편, ‘시민’ ‘성원권’은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과 연결되어 있다. 동료적 관계는 한 사람의 성원권을 온전히 인정하고 보호한 상태에서 만나는 관계다. 공연 작업 과정을 통해 어떤 감각을 서로 주고받고 어떤 감각을 익히는 것은 누구를 성원으로 할 것인가와 연결된다. 그래서 제가 하는 공연 작업 자체가 동료적·시민적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작업하고 있다.

김주혜 예술이란 게 좋은 것이, 내 자율적인 시간과 노력을 들여 다른 존재를 섬세하게 내 고유한 리듬에 맞추어서 마주할 수 있는 시간, 노동을 인정받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해방감과 자유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장애나 장애예술교육처럼 정체성을 기반으로 예술을 생각하다 보면 ‘장애인’ 이라는 집단을 만들어내야 한다. 상상해야 한다고 할까. 대상화하는 시스템이 있다. 게다가 만나는 방법이나 속도에도 규칙이 많다. 그 규칙 안에서 내가 받아들이고 또 활용할 수 있는 것은 하기도 하고, 아니면 꾀를 부리기도 한다. 그래도 그 규칙들을 지키려고 억지를 부릴 때에도 뿌리로 삼고서 되새기는 건 있다. 만남은 제안한 사람으로서 ‘작가’든 혹은 ‘매개자’든 어떻게 불리든지 자기 위치성을 솔직하게 드러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 삶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걸 먼저 드러낸다. 레즈비언으로 불리기도 했던 여성,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노동자 같은 명확한 정체성에서 나온 것도 있고, 병과 함께 살고 있다거나 뚱뚱한 몸으로 혐오의 대상이었던 경험, 폭력이 일상화된 구조 속에서 피해자로뿐만 아니라 방조자 또는 적극적인 가해자로 사는 부분까지. 매 순간 실패하는 모든 순간에 대해서 말이다. 한 사람 한 사람 혹은 한 존재 한 존재가 겪고 있는 삶의 여정 안에서 적당한 타이밍과 장소에서 만나도록 내 위치성을 점검하고 다듬어가는 것, 이것이 동료 시민일지도. 이어짐을 제안하는 존재가 열심히 하면 아름다울 수도 있는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실패와 두려움을 끌어안기

이진희 활동하다 보면 갈등이나 문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갈등을 충분히 겪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 같다. 주변인으로 인해 당사자와 소통하기 어렵거나 주변인의 심한 개입 등도 있을 것 같다. 어려움을 나누거나 토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갈등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풀어가고 있나.

이영실 연극 놀이 현장에서 보호자 중에 고민과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분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이 그림책이 우리 아이에게는 어렵고 맞지 않은 것 같으니 바꿔줄 수 있냐 같은 요구다.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스러웠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니 보호자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되는 측면이 있었다. 보호자의 걱정과 답답함을 하나하나 들어주고 의견을 나누면서 대화로 풀었다. 아이들 안에서 싸움이 일어날 때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모든 상황을 열고 이야기하려 한다. 연극 놀이를 하는 상황에서 심한 싸움을 하거나 심한 이야기가 오가면 모든 것을 중지하고 정황을 들어본다. 그러고 나서 갈등 당사자끼리 갈등을 풀고 싶은지 아니면 같이 얘기해서 해결점을 찾고 싶은지 선택하게 한다. 자기들끼리 해결하고 싶다고 하면 좀 더 시간을 주고 이야기하고 오게 한다. 훈육이라기보다는, 본인이 어떤 얘기를 했고, 그래서 상대방이 어떤 감정이 들어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이야기 듣고 토론해보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낯설어했는데, 어느 순간 본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태도가 바뀐다. 그럴 때 아이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한 의미를 찾는 것 같다.

고헌 다양한 갈등 양상을 겪고 있는데 매번 고민이고 매번 시험에 든다. 스스로 방어적일 때 갈등이 더 증폭되는 것 같다. 그래서 무엇이 두려운 건지 알아차리고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항상 두려움과 마주하는 것 같다. 얘기를 들으면서, 제 위치성을 드러내는 것과 저의 취약성이 오히려 관계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일단 용기를 내자는 생각이다.

김주혜 ‘동료 되기’를 위해서는 연결감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연결성은 기후위기 때문에 이미 비극적인 방식으로 드러나고 실현되고 있는 것 같다. 연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할까. 굉장히 달라서, ‘나’와는 혹은 ‘우리’와는 절대 이어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삶이나 존재들과 이어질 수밖에 없고, 그래야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있다. 끝이 눈앞에 닥칠지라도 배제나 차별 없이 차근차근 이 여정을 함께 직조하고 싶다. 그런 작업을 같이할 수 있는 존재들과 공명하면서 각자 살아가는 감각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면 좋겠다.

이진희 예술이 억압하거나 불평등하거나 차별하는 세계의 집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집을 부수기 위한 여러 가지 실천이라면, 장애예술교육이 정형화되지 않도록 긴장감을 가지고 비판적으로 보면서 동료성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 활동하고 작업하는 안에서 누군가가 리드하고 알려주는 게 아니라, 상호의존성 속에서 작업 관계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럴 때 취약성이나 돌봄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도가 전문성이나 수월성 혹은 성취가 아니라, 실패나 두려움을 응원하고 지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될 수 있을까. 두려움이나 갈등을 서로 잘 마주하면서 덜 차별적으로 만나도록 현장을 지원하고 지지할 수 있길 바란다.

고헌(모기, 매운콩)

해고노동자, 쫓겨난 임차상인, 장애인, 성 소수자 등 특정 맥락에 놓인 비전문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하는 뉴다큐멘터리씨어터, 창작과정에 관객이 개입할 수 있는 열린 구조의 관객참여형 연극, 특정 집단이 공유하는 수행적 요소들을 의례화하는 공동체 기반의 커뮤니티 아트 등의 작업을 하고 있다. 2019년부터 생태 공동체, 활동가들과 교류하며 소매틱, 생태예술에 관심을 갖고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주요 작업으로 <모-래> <구일만 햄릿> <법앞에서> <25ㅅㅣ間: 시간거래> 등의 공연 연출과 영상작업이 있고, 장애인문화공간과 릴레이 집연극 프로젝트 ‘이몸저방구석’을 함께하고 있다.
ihunnyi@naver.com

김주혜(수수)

지역에서 노래하는 사람동물. 전남 구례 동네 가수로 행세하면서, 사람들/다양한 존재들과 이어지려고 애쓰고 있다. 장애여성공감과는 <일곱빛깔 무지개 합창단> 에서 노래를 함께 만들었다. 극단 <춤추는허리> 와는 거리, 미술관, 극장 등에서 소리로 연대했다.
femmage@gmail.com

이영실

예술교육가, 예술하는 아이다 대표. 연극교육을 전공한 드라마 전문가로 어린이청소년과 함께하는 예술작업을 하면서, 작가인 동시에 공연자 그룹인 독립공연예술가네트워크(IPAN)의 일원으로 ‘수박’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 노원에 있는 키움센터의 지역TA로 작업하고 있고, 예술하는 아이다를 운영하면서 느린학습자를 위한 연극 놀이를 주로 하고 있다. 느린학습자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경계없는 연극 놀이_지금, 여기, 다르게!>, 난청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마음을 잇는 그림책상상극장>, 청각장애 어린이청소년 연극공연 <신기한 그림족자_또 다른 이야기> <낱말공장 나라_또 다른 이야기> 등이 있다.
traumtree@hanmail.net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로 극단 춤추는허리에서 연극을 만들고 있다. 한국예술위원회 7기 위원이다. 이음온라인 기획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rpvl72@gmail.com

정리. 최순화 프로젝트 궁리 콘텐츠 제작 PD suna.choe@gmail.com

2021년 11월 (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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