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웹진 이음

무대, 몸과 시선이 교환되는 공간

이음광장 여전히 대면 예술이 필요하다

  • 문영민 장애예술연구자
  • 등록일 2020-10-16
  • 조회수776

비대면 활동의 확산은 4차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화두와 결합하며, 대중매체와 기업은 마치 장애인의 삶에 존재하는 모든 물리적 제약을 인공지능, AR 기술 등이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속삭인다. 최근 소개된 SK텔레콤 광고도 그중 하나다. 고궁으로 소풍을 떠난 초등학생 무리가 계단 위 정자로 뛰어갈 때 휠체어를 탄 아이가 홀로 남아 뛰어가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부러운 듯 바라본다. SK텔레콤은 ‘5G 기반 AR 가이드맵’을 소개하고 휠체어를 탄 아이는 AR 기술로 가상의 정자에 올라 상상 속의 동물인 해태와 함께 연못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광고가 마무리된다.

SK텔레콤 5G 기반 AR 가이드맵 광고
[출처] SK텔레콤 유튜브

최근 KT의 ‘마음을 담다’ 광고가 청능주의(audism)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장애인 당사자의 비판을 받았듯, SK텔레콤의 광고 역시 감동으로 포장한 비장애인 중심주의(ableism)을 여실히 드러낸다. AR 기술로 장애 아동이 고궁을 ‘간접적’으로 만나기 전에, 그보다 훨씬 간단한 기술로 실현 가능한 고궁의 장애인 접근성을 왜 먼저 고려하지 않는가? AR 기술과 인공지능, 자율주행 자동차와 같은 획기적인 기술의 발전이 마치 장벽이 없는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주장하는 시대에 나는 촌스럽게도 여전히 장애인에게 대면의 만남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려 한다. 특히 대면의 장은 장애 예술가에게 더더욱 중요하다.

장애 예술가에게 대면의 공간이 필요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장애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공간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장애 예술가가 무대나 전시관보다 더 먼저 만나는 공간은 대체로 여러 장애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극단 혹은 레지던시와 같은 공동체이다. 이 공간에서 장애 예술가는 당사자로 살아온 경험을 반영하여 작품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공동체 내에서 구성원과 일상적인 상호작용을 경험한다. 연습과 공연 과정에서 장애인 구성원의 상호의존을 통해 감정적 애착을 형성한다. 마침내 구성원이 오랜 시간 공동작업을 통해 만들어낸 공동창작물로서의 ‘공연’은 장애 예술가가 장애인으로서의 정체성,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의식’으로 작동한다. 연구 인터뷰를 위해 만났던 장애 공연예술가 A는 이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연극을 하는 장애인은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장애인하고는 다르게 보여. 연극을 하는 색깔이 각자 뚜렷하게 보인다는 거지. 예전 같으면 장애인은 다 똑같지 이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바뀐 거야. XX도 밖에서 보면, 만약에 옛날같이 공연하기 전에 지나가다 보면 아무 것도 아니야. 그런데 걔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같이 작품하며 바뀌지. 편견이랑 선입견이 많았는데, 그걸 고쳐준 게 사회생활이고 연극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

“무대는 장애인의 몸과 시선이 근거리에서 교환되는 공간이다.”
[사진출처 : 0set프로젝트 공연 <연극의 3요소>(좌), <불편한 입장들>(우)]

또한 작품을 발표하는 공간으로 극장도 장애 예술가에게 온라인 공간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는 없다. 갈랜드 톰슨(Garland-Thomson, 2000)은 장애 예술가의 무대가 장애인의 몸과 관객의 ‘시선’이 교환되는 사회적 공간이라고 주장한다. 무대 위에서 장애 예술가가 몸을 ‘응시’받는 경험은 저항의 방식이며, 장애 예술가가 장애를 재의미화하는 시각적인 상호작용이다. 이것이 대면의 공간인 무대와 객석 사이에서만 가능한 이유는 장애인이 관객의 시선을 통제할 수 있는, 관객의 시선이 가두어진(arrested attentiveness) 공간이기 때문이다. 무대에서 일어나는 이 독특한 상호작용은 클릭 한 번으로 관객이 창을 단번에 닫을 수 있는 온라인 공간에서는 발생하기 힘든 상호작용이다. 또 다른 장애 공연예술가 B는 무대 위에서의 상호작용을 이렇게 언급한다.

“일상에서는 식당에 가든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나를 안 봤으면 좋겠어요. 근데 무대에서는 나를 봐줬으면 하는 거죠. 무대는 다른 특성이죠. 장애를 가지고, 그렇게 연습을 해서 공연을 하는구나 하는 눈빛. 대단하다는 눈빛도 있고, 공연 자체가 좋다는 느낌도 있죠. 공연할 때는 어떤 불편한 눈빛이 전혀 없는 거예요.”

필자는 최근 장애인의 사회적 관계망이 4차산업혁명 인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장애가 없는 인구집단에서는 직접적인 사회적 관계망이 많을수록 4차산업혁명을 부정적으로 인식하였으며, 인터넷을 통한 간접적인 사회적 관계망이 많을수록 4차산업혁명을 긍정적으로 인식했다. 이전 시대까지 정보가 직접적인 사회적 관계망을 통하여 전달되었다면, 최근에 와서 정보의 흐름은 대면 공동체나 사회조직 등의 ‘강한 연결’에서 영향을 받기보다는 개인의 관심사나 가치관을 근거로 하여 인터넷, SNS로 연결되는 ‘약한 연결’에 더욱 영향을 받게 되었다. 따라서 비장애 인구집단에서 일어나는 비대면의 간접적 관계망들은 4차산업혁명을 더욱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데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장애 집단에 대해 분석한 결과는 비장애인 집단과 상이한 결과를 나타내었다. 장애 집단은 여전히 직접적인 사회적 관계망, 즉 주위에서 직접 도움을 주는 친구, 결정을 내릴 때 조언을 해주고, 중요한 일을 맡길 수 있고, 불의에 대항하여 함께 싸워줄 수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오히려 4차산업혁명에 대해 좀 더 긍정적으로 인식하였다. 기술이 발전하고 비대면 활동이 강화되는 시대에도 여전히 장애인과 얼굴을 마주 보고, 손을 잡아주고, 장애를 가진 몸의 움직임을 근거리에서 관찰하는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비대면 창작활동이 발산하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면 창작활동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갔으면 좋겠다.

문영민

문영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서 장애인 공연예술, 장애정체성, 장애인의 몸, 장애인의 건강 불평등을 연구하고 있다. 프로젝트 극단 0set 소속으로 공연 <연극의 3요소> <불편한 입장들> <나는 인간> 등의 공연에 창작자로 참여하여 연극으로 장애인의 공연 접근성 문제를 알리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saojungym@daum.net

문영민

문영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서 장애인 공연예술, 장애정체성, 장애인의 몸, 장애인의 건강 불평등을 연구하고 있다. 프로젝트 극단 0set 소속으로 공연 <연극의 3요소> <불편한 입장들> <나는 인간> 등의 공연에 창작자로 참여하여 연극으로 장애인의 공연 접근성 문제를 알리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saojungym@daum.net

상세내용

비대면 활동의 확산은 4차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화두와 결합하며, 대중매체와 기업은 마치 장애인의 삶에 존재하는 모든 물리적 제약을 인공지능, AR 기술 등이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속삭인다. 최근 소개된 SK텔레콤 광고도 그중 하나다. 고궁으로 소풍을 떠난 초등학생 무리가 계단 위 정자로 뛰어갈 때 휠체어를 탄 아이가 홀로 남아 뛰어가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부러운 듯 바라본다. SK텔레콤은 ‘5G 기반 AR 가이드맵’을 소개하고 휠체어를 탄 아이는 AR 기술로 가상의 정자에 올라 상상 속의 동물인 해태와 함께 연못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광고가 마무리된다.

SK텔레콤 5G 기반 AR 가이드맵 광고
[출처] SK텔레콤 유튜브

최근 KT의 ‘마음을 담다’ 광고가 청능주의(audism)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장애인 당사자의 비판을 받았듯, SK텔레콤의 광고 역시 감동으로 포장한 비장애인 중심주의(ableism)을 여실히 드러낸다. AR 기술로 장애 아동이 고궁을 ‘간접적’으로 만나기 전에, 그보다 훨씬 간단한 기술로 실현 가능한 고궁의 장애인 접근성을 왜 먼저 고려하지 않는가? AR 기술과 인공지능, 자율주행 자동차와 같은 획기적인 기술의 발전이 마치 장벽이 없는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주장하는 시대에 나는 촌스럽게도 여전히 장애인에게 대면의 만남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려 한다. 특히 대면의 장은 장애 예술가에게 더더욱 중요하다.

장애 예술가에게 대면의 공간이 필요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장애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공간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장애 예술가가 무대나 전시관보다 더 먼저 만나는 공간은 대체로 여러 장애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극단 혹은 레지던시와 같은 공동체이다. 이 공간에서 장애 예술가는 당사자로 살아온 경험을 반영하여 작품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공동체 내에서 구성원과 일상적인 상호작용을 경험한다. 연습과 공연 과정에서 장애인 구성원의 상호의존을 통해 감정적 애착을 형성한다. 마침내 구성원이 오랜 시간 공동작업을 통해 만들어낸 공동창작물로서의 ‘공연’은 장애 예술가가 장애인으로서의 정체성,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의식’으로 작동한다. 연구 인터뷰를 위해 만났던 장애 공연예술가 A는 이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연극을 하는 장애인은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장애인하고는 다르게 보여. 연극을 하는 색깔이 각자 뚜렷하게 보인다는 거지. 예전 같으면 장애인은 다 똑같지 이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바뀐 거야. XX도 밖에서 보면, 만약에 옛날같이 공연하기 전에 지나가다 보면 아무 것도 아니야. 그런데 걔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같이 작품하며 바뀌지. 편견이랑 선입견이 많았는데, 그걸 고쳐준 게 사회생활이고 연극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

“무대는 장애인의 몸과 시선이 근거리에서 교환되는 공간이다.”
[사진출처 : 0set프로젝트 공연 <연극의 3요소>(좌), <불편한 입장들>(우)]

또한 작품을 발표하는 공간으로 극장도 장애 예술가에게 온라인 공간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는 없다. 갈랜드 톰슨(Garland-Thomson, 2000)은 장애 예술가의 무대가 장애인의 몸과 관객의 ‘시선’이 교환되는 사회적 공간이라고 주장한다. 무대 위에서 장애 예술가가 몸을 ‘응시’받는 경험은 저항의 방식이며, 장애 예술가가 장애를 재의미화하는 시각적인 상호작용이다. 이것이 대면의 공간인 무대와 객석 사이에서만 가능한 이유는 장애인이 관객의 시선을 통제할 수 있는, 관객의 시선이 가두어진(arrested attentiveness) 공간이기 때문이다. 무대에서 일어나는 이 독특한 상호작용은 클릭 한 번으로 관객이 창을 단번에 닫을 수 있는 온라인 공간에서는 발생하기 힘든 상호작용이다. 또 다른 장애 공연예술가 B는 무대 위에서의 상호작용을 이렇게 언급한다.

“일상에서는 식당에 가든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나를 안 봤으면 좋겠어요. 근데 무대에서는 나를 봐줬으면 하는 거죠. 무대는 다른 특성이죠. 장애를 가지고, 그렇게 연습을 해서 공연을 하는구나 하는 눈빛. 대단하다는 눈빛도 있고, 공연 자체가 좋다는 느낌도 있죠. 공연할 때는 어떤 불편한 눈빛이 전혀 없는 거예요.”

필자는 최근 장애인의 사회적 관계망이 4차산업혁명 인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장애가 없는 인구집단에서는 직접적인 사회적 관계망이 많을수록 4차산업혁명을 부정적으로 인식하였으며, 인터넷을 통한 간접적인 사회적 관계망이 많을수록 4차산업혁명을 긍정적으로 인식했다. 이전 시대까지 정보가 직접적인 사회적 관계망을 통하여 전달되었다면, 최근에 와서 정보의 흐름은 대면 공동체나 사회조직 등의 ‘강한 연결’에서 영향을 받기보다는 개인의 관심사나 가치관을 근거로 하여 인터넷, SNS로 연결되는 ‘약한 연결’에 더욱 영향을 받게 되었다. 따라서 비장애 인구집단에서 일어나는 비대면의 간접적 관계망들은 4차산업혁명을 더욱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데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장애 집단에 대해 분석한 결과는 비장애인 집단과 상이한 결과를 나타내었다. 장애 집단은 여전히 직접적인 사회적 관계망, 즉 주위에서 직접 도움을 주는 친구, 결정을 내릴 때 조언을 해주고, 중요한 일을 맡길 수 있고, 불의에 대항하여 함께 싸워줄 수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오히려 4차산업혁명에 대해 좀 더 긍정적으로 인식하였다. 기술이 발전하고 비대면 활동이 강화되는 시대에도 여전히 장애인과 얼굴을 마주 보고, 손을 잡아주고, 장애를 가진 몸의 움직임을 근거리에서 관찰하는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비대면 창작활동이 발산하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면 창작활동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갔으면 좋겠다.

문영민

문영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서 장애인 공연예술, 장애정체성, 장애인의 몸, 장애인의 건강 불평등을 연구하고 있다. 프로젝트 극단 0set 소속으로 공연 <연극의 3요소> <불편한 입장들> <나는 인간> 등의 공연에 창작자로 참여하여 연극으로 장애인의 공연 접근성 문제를 알리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saojungym@daum.net

댓글 남기기

제 2021-524호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WA-WEB 접근성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 | 1.업체명: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고 112 3.웹사이트:http://www.ieum.or.kr 4.유효기간:2021.05.03~2022.05.02 5.인증범위:이음 온라인 홈페이지 |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47조제1항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9조제5항에 따라 위와 같이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를 발급합니다. 2021년 05월 03일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