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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스튜디오 <소풍 小風- 나와 너의 세상에 부는 작은 바람>

리뷰 내 안의 맹수와 소통하는 방법

  • 안태호 협동조합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이사
  • 등록일 2018-12-26
  • 조회수346

“자라투스트라가 신체에 대해 ‘우리 안에 맹수들이 살고 있다’는 말을 할 때였다. 이때 맹수란 우리도 어찌할 수 없는, 불쑥불쑥 튀어나와 우리를 삼켜버리는 충동이나 욕망 같은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그 구절을 읽고 있을 때, 갑자기 여러 학생들이 동시에 소리를 질러대는 것이었다. 소리를 지르고 손을 휘젓고 휠체어를 들썩였다. B는 급작스레 근육의 강직이 일었고, C는 자기를 손으로 가리켰으며, D는 ‘내가 그렇다’고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중략)… 세상 그 누구보다 그 문장을 자기가 잘 안다는 듯이 그들은 뭔가를 쏟아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거두어 두었을 우울과 분노, 슬픔, 격정이 쇠우리에 갇힌 괴물처럼 자기 안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고병권, 『“살아가겠다”』 중

철학자 고병권은 노들야학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던 경험을 위와 같이 이야기한다. 장애인들은 자라투스트라의 ‘맹수’를 누구보다 예민하게 자신의 이야기로 확신한다. 평생을 갇혀있던 정동의 격정적 분출과 하나의 프로그램이 빚어내는 효과를 동일 선상에 배치하는 것이 온당한지에 대해 잠시 고민했으나 고병권의 글을 옮겨두기로 한다. 단지 이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장애’라는 틀에 갇힌 존재적 해방의 과정을 설계하는 데 유용하다 싶은 판단 때문이다.

10월 5일 이음센터 아트홀에서 진행된 다도스튜디오의 <소풍 小風 – 나와 너의 세상에 부는 작은 바람>은 발달장애인들이 참여하는 예술체험 프로그램이다. 1부는 공연, 2부는 체험으로 구성되었다. 무대에는 퍼포머와 커다란 천 한 장만이 올라있었다. 솔로와 듀엣 공연으로 이어지는 1부 퍼포먼스에서 천은 펄럭이는 바람이 되었다가 파도 소리 가득한 바다가 되었다가 고요한 땅이 되었다가 불쑥 솟아오르는 산이 되기도 했다. 두 사람을 갈라놓는 갈등의 매개가 되었다가 다시 그 둘을 잇는 관계의 연결고리가 되기도 했다. 공연장을 가득 덮는 커다란 천과 퍼포머의 움직임만을 가지고 만들어내는 소리와 이미지가 다채로웠고, 비정형의 형태가 빚어내는 자유로움과 즐거움이 가득했다. 단순한 세팅과 정제된 움직임이 주는 커다란 울림은, 어쩌면 발달장애인들에게 1시간의 공연 관람이 지루하거나 견디기 어려운 것은 아닐까 싶은 의구심을 깨끗하게 지워주었다.

2부는 참여자들의 체험 퍼포먼스로 진행되었다. 무대에 접속한 이들은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표현하고 뛰놀았다. 천의 움직임과 감촉을 직접 경험하며 참여자들은 파도나 산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바닷속에 풍덩 몸을 담그거나 냇가를 건너고 터널을 빠져나가 보기도 했다. 천 위에서 겅중거리고 뛰거나 망토처럼 천을 걸친 채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동안 무대와 객석을 가릴 것 없이 쉴 새 없는 웃음이 까르르 터져 나왔다. 천 속으로 몸을 집어넣으면 간단한 움직임만으로도 순식간에 다른 존재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익살스러운 도깨비나 덩치를 키운 공룡, 으스스한 귀신과 같은 모습을 연출하는 과정은 자기표현을 위한 효과적인 시간이었다. 천의 흐름에 따라 공간 자체가 이동하며 집단적으로 만들어내는 움직임은 단순하면서도 신선한 경험으로 참여자들의 몸과 마음에 축적되었을 것이다. 퍼포머들은 연기와 시범을 뒤섞으며 객석의 장애인들을 유쾌하게 초대하고 최소한의 개입으로 상황을 능숙하게 조율해냈다.

프로그램은 관습적이지 않은 움직임으로 낯선 감각들을 만나고, 나아가 발달장애인들이 자신의 표현 욕구를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원예술 단체 ‘다도스튜디오’ 양승주 대표와 장애인 교육연극 단체 ‘올리브와찐콩’ 이영숙 대표는 발달장애인과 예술가는 남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공통점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들은 함께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어떻게 성인 발달장애인 활동의 특수성을 살릴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을 거듭했다. 비장애인들과 같은 테크닉을 연마하는 것과는 다른 결로, 타자와의 소통과 자기발견을 통한 존재의 확장이라는 주제를 파고들었고, 이 시도는 일정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평소 유사한 프로그램, 관행적인 체험에 익숙해진 이들일수록 이 과정을 통해 더 커다란 해방감을 맛봤을 것이다. 묘한 사실은, 비장애인 관찰자인 나 역시 유사한 해방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적절한 솔루션과 자극이 주어진다면 장애인의 자기표현을 더욱 유쾌한 방식으로 열어낼 수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한 기분이었다. 장애는 새로운 가능성이다. 한국의 등록 장애인은 전체인구의 5% 정도라고 한다. 우리는 지금껏 5% 인구가 가진 가능성을 제대로 발견하지 못했다. 장애인을 비장애인의 프레임에 억지로 밀어 넣지 않는, 장애인의 욕구를 발견해내고 그 욕구와 소통하며 다른 가능성을 일깨우는 활동이 계속 확장되기를 기대해 본다. ‘맹수’의 발견이 장애인들에게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맹수’를 마주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큰 과제일 것이다.

<소풍 小風- 나와 너의 세상에 부는 작은 바람> 공연 및 체험 프로그램

소풍 小風– 나와 너의 세상에 부는 작은 바람

<소풍 小風– 나와 너의 세상에 부는 작은 바람>

다도스튜디오, 2018.10.3.~10.6 이음센터 아트홀 / 10.9~12 라파엘센터

다도스튜디오와 올리브와찐콩 이영숙 대표가 협업하여 개발한 프로그램이다. 성인 발달장애인만의 특별함과 만나는 예술적 접근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며 함께 소통하는 공연과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안태호

안태호

협동조합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한국문화정책연구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 민예총 활동가를 시작으로 웹진 [컬처뉴스] 편집장, 부천문화재단, 제주문화예술재단 팀장 등을 거쳤다. 함께 쓴 책으로 『나의 아름다운 철공소』 『노년예술수업』 등이 있다. 스무 살 무렵 빼어난 재능들에 주눅 들어 창작에서 도망친 후, 예술 동네 근처에서 얼쩡거리며 문화정책과 기획 관련 일을 해왔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왕성한 문화 소비자가 꿈이며, 여전히 만화를 보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redanth2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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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다도스튜디오

2018년 12월 (2호)

상세내용

“자라투스트라가 신체에 대해 ‘우리 안에 맹수들이 살고 있다’는 말을 할 때였다. 이때 맹수란 우리도 어찌할 수 없는, 불쑥불쑥 튀어나와 우리를 삼켜버리는 충동이나 욕망 같은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그 구절을 읽고 있을 때, 갑자기 여러 학생들이 동시에 소리를 질러대는 것이었다. 소리를 지르고 손을 휘젓고 휠체어를 들썩였다. B는 급작스레 근육의 강직이 일었고, C는 자기를 손으로 가리켰으며, D는 ‘내가 그렇다’고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중략)… 세상 그 누구보다 그 문장을 자기가 잘 안다는 듯이 그들은 뭔가를 쏟아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거두어 두었을 우울과 분노, 슬픔, 격정이 쇠우리에 갇힌 괴물처럼 자기 안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고병권, 『“살아가겠다”』 중

철학자 고병권은 노들야학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던 경험을 위와 같이 이야기한다. 장애인들은 자라투스트라의 ‘맹수’를 누구보다 예민하게 자신의 이야기로 확신한다. 평생을 갇혀있던 정동의 격정적 분출과 하나의 프로그램이 빚어내는 효과를 동일 선상에 배치하는 것이 온당한지에 대해 잠시 고민했으나 고병권의 글을 옮겨두기로 한다. 단지 이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장애’라는 틀에 갇힌 존재적 해방의 과정을 설계하는 데 유용하다 싶은 판단 때문이다.

10월 5일 이음센터 아트홀에서 진행된 다도스튜디오의 <소풍 小風 – 나와 너의 세상에 부는 작은 바람>은 발달장애인들이 참여하는 예술체험 프로그램이다. 1부는 공연, 2부는 체험으로 구성되었다. 무대에는 퍼포머와 커다란 천 한 장만이 올라있었다. 솔로와 듀엣 공연으로 이어지는 1부 퍼포먼스에서 천은 펄럭이는 바람이 되었다가 파도 소리 가득한 바다가 되었다가 고요한 땅이 되었다가 불쑥 솟아오르는 산이 되기도 했다. 두 사람을 갈라놓는 갈등의 매개가 되었다가 다시 그 둘을 잇는 관계의 연결고리가 되기도 했다. 공연장을 가득 덮는 커다란 천과 퍼포머의 움직임만을 가지고 만들어내는 소리와 이미지가 다채로웠고, 비정형의 형태가 빚어내는 자유로움과 즐거움이 가득했다. 단순한 세팅과 정제된 움직임이 주는 커다란 울림은, 어쩌면 발달장애인들에게 1시간의 공연 관람이 지루하거나 견디기 어려운 것은 아닐까 싶은 의구심을 깨끗하게 지워주었다.

2부는 참여자들의 체험 퍼포먼스로 진행되었다. 무대에 접속한 이들은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표현하고 뛰놀았다. 천의 움직임과 감촉을 직접 경험하며 참여자들은 파도나 산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바닷속에 풍덩 몸을 담그거나 냇가를 건너고 터널을 빠져나가 보기도 했다. 천 위에서 겅중거리고 뛰거나 망토처럼 천을 걸친 채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동안 무대와 객석을 가릴 것 없이 쉴 새 없는 웃음이 까르르 터져 나왔다. 천 속으로 몸을 집어넣으면 간단한 움직임만으로도 순식간에 다른 존재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익살스러운 도깨비나 덩치를 키운 공룡, 으스스한 귀신과 같은 모습을 연출하는 과정은 자기표현을 위한 효과적인 시간이었다. 천의 흐름에 따라 공간 자체가 이동하며 집단적으로 만들어내는 움직임은 단순하면서도 신선한 경험으로 참여자들의 몸과 마음에 축적되었을 것이다. 퍼포머들은 연기와 시범을 뒤섞으며 객석의 장애인들을 유쾌하게 초대하고 최소한의 개입으로 상황을 능숙하게 조율해냈다.

프로그램은 관습적이지 않은 움직임으로 낯선 감각들을 만나고, 나아가 발달장애인들이 자신의 표현 욕구를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원예술 단체 ‘다도스튜디오’ 양승주 대표와 장애인 교육연극 단체 ‘올리브와찐콩’ 이영숙 대표는 발달장애인과 예술가는 남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공통점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들은 함께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어떻게 성인 발달장애인 활동의 특수성을 살릴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을 거듭했다. 비장애인들과 같은 테크닉을 연마하는 것과는 다른 결로, 타자와의 소통과 자기발견을 통한 존재의 확장이라는 주제를 파고들었고, 이 시도는 일정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평소 유사한 프로그램, 관행적인 체험에 익숙해진 이들일수록 이 과정을 통해 더 커다란 해방감을 맛봤을 것이다. 묘한 사실은, 비장애인 관찰자인 나 역시 유사한 해방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적절한 솔루션과 자극이 주어진다면 장애인의 자기표현을 더욱 유쾌한 방식으로 열어낼 수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한 기분이었다. 장애는 새로운 가능성이다. 한국의 등록 장애인은 전체인구의 5% 정도라고 한다. 우리는 지금껏 5% 인구가 가진 가능성을 제대로 발견하지 못했다. 장애인을 비장애인의 프레임에 억지로 밀어 넣지 않는, 장애인의 욕구를 발견해내고 그 욕구와 소통하며 다른 가능성을 일깨우는 활동이 계속 확장되기를 기대해 본다. ‘맹수’의 발견이 장애인들에게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맹수’를 마주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큰 과제일 것이다.

<소풍 小風- 나와 너의 세상에 부는 작은 바람> 공연 및 체험 프로그램

소풍 小風– 나와 너의 세상에 부는 작은 바람

<소풍 小風– 나와 너의 세상에 부는 작은 바람>

다도스튜디오, 2018.10.3.~10.6 이음센터 아트홀 / 10.9~12 라파엘센터

다도스튜디오와 올리브와찐콩 이영숙 대표가 협업하여 개발한 프로그램이다. 성인 발달장애인만의 특별함과 만나는 예술적 접근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며 함께 소통하는 공연과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안태호

안태호

협동조합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한국문화정책연구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 민예총 활동가를 시작으로 웹진 [컬처뉴스] 편집장, 부천문화재단, 제주문화예술재단 팀장 등을 거쳤다. 함께 쓴 책으로 『나의 아름다운 철공소』 『노년예술수업』 등이 있다. 스무 살 무렵 빼어난 재능들에 주눅 들어 창작에서 도망친 후, 예술 동네 근처에서 얼쩡거리며 문화정책과 기획 관련 일을 해왔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왕성한 문화 소비자가 꿈이며, 여전히 만화를 보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redanth2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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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다도스튜디오

2018년 12월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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