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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이음

걷고 재면서 시작된 어떤 대화

이음광장 높이로 보는 세상

  • 김지영x최승완 작가
  • 등록일 2020-01-09
  • 조회수561

툭 툭 차르르 차르륵 (중얼중얼) 차르르 차르륵.

두드리고 펼쳤다 접었다 (중얼중얼) 다시 펼쳤다 접었다를 반복한다.
그런 승완 씨를 가만히 눈으로 좇았다. 승완 씨를 처음 만난 날이었다. 승완 씨는 작업실을 서성이며 박스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툭툭 쳐보고는 7.5m 노란색 줄자를 차르르 펼친다. 높이를 재보고는 줄자를 차르륵 접는다. 10여 분간 툭 툭 차르르 차르륵 중얼중얼 소리가 떠돌았다. 그렇게 작업실 이곳저곳을 탐색하고 있었다. 어색함을 무릅쓰고 내가 먼저 말을 던졌다. “승완 씨, 여기까지 뭐 타고 왔어요?”라는 말이 승완 씨의 침묵에 튕겨져 나온다. 못 들었나 싶어 다시 던져봐도 튕겨져 나온다. 첫 만남은 늘 어렵다. 어색하지 않으려고 아무 말을 던지고 대답이 돌아오지 않으면 둘 사이에 공기가 뻣뻣해진다. 뻣뻣해진 공기를 마주하고 서로 어쩔 줄 모르는 시간이 지났다. 승완 씨에게 “우리 밖으로 나가볼까요?”라고 물었다. 그제야 승완 씨가 “네”라고 말한다.

승완 씨와 나와의 대화는 같이 걸으면서 시작되었다.
보폭이 크고 걸음이 빠른 승완 씨가 큰 소리를 내며 앞서갔다. 앞서 걷는 승완 씨의 뒷모습을 쫓으며 “승완 씨, 같이 가요.”라고 말하면 앞서 걷던 승완 씨가 뒷눈질로 나를 힐끔 보았다. 아랑곳없이 앞서 걷던 승완 씨가 어느샌가 서서히 걸음의 속도를 늦췄다. 내가 승완 씨 옆으로 가면 승완 씨는 다시 앞서 걸었다. 그렇게 앞서가던 승완 씨가 다시 뒷눈질로 나를 보고 속도를 늦췄다. 그러기를 여러 번. 앞치락 옆치락 앞치락 옆치락. 그러다 주차되어 있는 트럭을 보고는 승완 씨가 멈춰 섰다. 트럭 짐칸에 올라타려는 듯 트럭 발받이에 한 발을 올리고는 나에게 물었다. 

승완_ 트럭에 올라타면 되나요, 안 돼요?
백구_ 어떨 거 같아요?
승완_ 안 돼요.
백구_ 왜 안 돼요?
승완_ 트럭 잘못 타면 지방 같은 데 갈 수 있어요. 
백구_ 그럴 수 있죠. 승완 씨가 트럭에 올라탔는데 운전자 아저씨가 승완 씨를 못 보면 지방 같은 데 갈 수 있어요.
승완_ 양평 오크벨리 같은 데 갈 수 있나요?
백구_ 그럴 수도 있죠. 

승완 씨는 트럭 발받이에 두 발로 잠깐 올라서고는 내려왔다. 그 후에도 트럭이 지나갈 때마다 트럭을 눈으로 좇느라 승완 씨는 분주했다. 

그렇게 승완 씨의 뒤를 쫓으며 걷다 거대하고 긴 하얀 펜스와 마주쳤다. 대단지 아파트를 짓기 위해 세운 펜스를 본 승완 씨는 거침없이 노란색 줄자를 뽑아 들었다. 차르르 차르르 차르륵 위로, 위로 줄자가 올라갔다. 승완 씨의 뒷모습이 미동도 없이 침착해 보였다. 하얀 펜스 위로 향하던 줄자는 5m 정도 올라가다 아래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승완 씨가 소리를 내며 번쩍 뛰어올랐다. 나는 한 발짝 뒤에서 지켜보았다. 다시 가느다란 선이 하늘로 올랐다. 휘청거리며 오르던 줄자는 5m를 조금 넘어서 차르르륵 소리를 내며 아래로 떨어졌다. 초여름이었고 햇볕이 뜨거웠다. 승완 씨 이마에 땀이 맺히는 것이 보였지만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가느다란 줄자가 다시 올라갔다. 아까보다 좀 더 신중하게 하얀 펜스를 타고 줄자가 올라갔다. 줄자 끝 후크가 아슬아슬하게 펜스 끝에 걸쳐졌다 떨어졌다. ‘아, 아쉬워라.’ 탄성이 흘러나왔다. 줄자는 다시 올라가고 줄자 끝 후크가 펜스 끝을 단단히 물었다. ‘와~아’ 나도 모르게 환호가 터져 나왔다. 펜스 끝을 단단히 물은 줄자를 승완 씨가 아래로 끌어당겼다. 바닥까지 끌어당겨 신중하게 길이를 쟀다. 

승완 씨 몇 m예요?
5m 80cm.

줄자를 다시 감아 옆 펜스로 옮겨간 승완 씨는 줄자를 다시 뽑아 들었다. 차르르 오르고 차르르륵 떨어지를 반복하다 간신히 펜스 끝에 걸쳐지고 줄자는 아래로 끌어 당겨진다. 

몇 m예요? 
5m 90.

차례대로 펜스의 높이를 재면서 내려왔다. 5m 80cm, 5m 90cm, 6m 10cm, 6m 아니 6m 4cm, 5m 70cm, 5m 90cm, 5m 80cm, 5m 90 아니 바닥까지 5m 94cm.
웃음이 났다. 불확실성에 낚시질하는 낚시꾼처럼 허공에 줄자를 쏘아 올리는 승완 씨의 진지함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무엇을 물어도 튕겨져 나오던 말이 “몇 m예요?”라는 한 문장으로 대답이 열리다니 웃음이 났다. 잠시였지만 차례대로 펜스 높이를 재면서 내려올 땐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동료 같은 율동감마저 느꼈다. 그렇게 홍제동을 돌아다녔다. 둘 다 처음 온 동네였기에 발길 가는 대로 가다 주차장이 보이면 어김없이 승완 씨는 멈춰 서서 줄자를 꺼내 들고 높이를 쟀다. 나는 “몇 m예요?”라고 묻고 승완 씨는 당연하게 “2m 3cm”, “2m”, “2m 1cm”라고 대답을 했다. 주차장은 대체로 2m ~ 2m 3cm 높이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로등 높이를 재보기도 하고 100년 된 나무 높이를 재보기도 했다. 가로등은 4m 1cm, 401cm, 100년 된 나무는 5m, 500cm. 승완 씨의 줄자는 형태가 아니라 높이로 세상을 보았다. 제각각인 듯 보이는 건물들이 높이로 보니 규칙적인 풍경으로 보였다. 승완 씨와 버스정류장까지 같이 걸었다. 

백구_ 다음 주에도 금요일 2시 30분에 만날까요?
승완_ 네.

다음 주에는 어디로 걸어가 볼까? 
마음이 들떴다.

김지영x최승완

김지영x최승완 

김지영(백구)는미술 작업을 합니다. 그림을 그리기보단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중심보다 주변부를 좋아하고 미끄러짐으로써 넓어지려고 합니다. 개인전을 했고, 미디어비엔날레에도 참여 했습니다. 노들장애인야학과 서부장애인복지관에서 발달장애인들과 수업도 합니다.최승완은 표지판을 그리고 표지판을 붙이는 일을 합니다.늘 7.5m 줄자와 자신이 그린 2.0m 2.3m 높이제한 표지판들을 가방가득 들고 다닙니다. 걸음걸이가 빠르고 높이가 궁금한 장소에서는 거침없이 줄자를 뽑아듭니다. 과천 그리고 일산, 일산 그리고 과천을 바꿔 말하길 좋아하고 트럭에 올라타는 것을 좋아합니다.
whitenightkim@gmail.com

김지영x최승완

김지영x최승완 

김지영(백구)는미술 작업을 합니다. 그림을 그리기보단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중심보다 주변부를 좋아하고 미끄러짐으로써 넓어지려고 합니다. 개인전을 했고, 미디어비엔날레에도 참여 했습니다. 노들장애인야학과 서부장애인복지관에서 발달장애인들과 수업도 합니다.최승완은 표지판을 그리고 표지판을 붙이는 일을 합니다.늘 7.5m 줄자와 자신이 그린 2.0m 2.3m 높이제한 표지판들을 가방가득 들고 다닙니다. 걸음걸이가 빠르고 높이가 궁금한 장소에서는 거침없이 줄자를 뽑아듭니다. 과천 그리고 일산, 일산 그리고 과천을 바꿔 말하길 좋아하고 트럭에 올라타는 것을 좋아합니다.
whitenightkim@gmail.com

상세내용

툭 툭 차르르 차르륵 (중얼중얼) 차르르 차르륵.

두드리고 펼쳤다 접었다 (중얼중얼) 다시 펼쳤다 접었다를 반복한다.
그런 승완 씨를 가만히 눈으로 좇았다. 승완 씨를 처음 만난 날이었다. 승완 씨는 작업실을 서성이며 박스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툭툭 쳐보고는 7.5m 노란색 줄자를 차르르 펼친다. 높이를 재보고는 줄자를 차르륵 접는다. 10여 분간 툭 툭 차르르 차르륵 중얼중얼 소리가 떠돌았다. 그렇게 작업실 이곳저곳을 탐색하고 있었다. 어색함을 무릅쓰고 내가 먼저 말을 던졌다. “승완 씨, 여기까지 뭐 타고 왔어요?”라는 말이 승완 씨의 침묵에 튕겨져 나온다. 못 들었나 싶어 다시 던져봐도 튕겨져 나온다. 첫 만남은 늘 어렵다. 어색하지 않으려고 아무 말을 던지고 대답이 돌아오지 않으면 둘 사이에 공기가 뻣뻣해진다. 뻣뻣해진 공기를 마주하고 서로 어쩔 줄 모르는 시간이 지났다. 승완 씨에게 “우리 밖으로 나가볼까요?”라고 물었다. 그제야 승완 씨가 “네”라고 말한다.

승완 씨와 나와의 대화는 같이 걸으면서 시작되었다.
보폭이 크고 걸음이 빠른 승완 씨가 큰 소리를 내며 앞서갔다. 앞서 걷는 승완 씨의 뒷모습을 쫓으며 “승완 씨, 같이 가요.”라고 말하면 앞서 걷던 승완 씨가 뒷눈질로 나를 힐끔 보았다. 아랑곳없이 앞서 걷던 승완 씨가 어느샌가 서서히 걸음의 속도를 늦췄다. 내가 승완 씨 옆으로 가면 승완 씨는 다시 앞서 걸었다. 그렇게 앞서가던 승완 씨가 다시 뒷눈질로 나를 보고 속도를 늦췄다. 그러기를 여러 번. 앞치락 옆치락 앞치락 옆치락. 그러다 주차되어 있는 트럭을 보고는 승완 씨가 멈춰 섰다. 트럭 짐칸에 올라타려는 듯 트럭 발받이에 한 발을 올리고는 나에게 물었다. 

승완_ 트럭에 올라타면 되나요, 안 돼요?
백구_ 어떨 거 같아요?
승완_ 안 돼요.
백구_ 왜 안 돼요?
승완_ 트럭 잘못 타면 지방 같은 데 갈 수 있어요. 
백구_ 그럴 수 있죠. 승완 씨가 트럭에 올라탔는데 운전자 아저씨가 승완 씨를 못 보면 지방 같은 데 갈 수 있어요.
승완_ 양평 오크벨리 같은 데 갈 수 있나요?
백구_ 그럴 수도 있죠. 

승완 씨는 트럭 발받이에 두 발로 잠깐 올라서고는 내려왔다. 그 후에도 트럭이 지나갈 때마다 트럭을 눈으로 좇느라 승완 씨는 분주했다. 

그렇게 승완 씨의 뒤를 쫓으며 걷다 거대하고 긴 하얀 펜스와 마주쳤다. 대단지 아파트를 짓기 위해 세운 펜스를 본 승완 씨는 거침없이 노란색 줄자를 뽑아 들었다. 차르르 차르르 차르륵 위로, 위로 줄자가 올라갔다. 승완 씨의 뒷모습이 미동도 없이 침착해 보였다. 하얀 펜스 위로 향하던 줄자는 5m 정도 올라가다 아래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승완 씨가 소리를 내며 번쩍 뛰어올랐다. 나는 한 발짝 뒤에서 지켜보았다. 다시 가느다란 선이 하늘로 올랐다. 휘청거리며 오르던 줄자는 5m를 조금 넘어서 차르르륵 소리를 내며 아래로 떨어졌다. 초여름이었고 햇볕이 뜨거웠다. 승완 씨 이마에 땀이 맺히는 것이 보였지만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가느다란 줄자가 다시 올라갔다. 아까보다 좀 더 신중하게 하얀 펜스를 타고 줄자가 올라갔다. 줄자 끝 후크가 아슬아슬하게 펜스 끝에 걸쳐졌다 떨어졌다. ‘아, 아쉬워라.’ 탄성이 흘러나왔다. 줄자는 다시 올라가고 줄자 끝 후크가 펜스 끝을 단단히 물었다. ‘와~아’ 나도 모르게 환호가 터져 나왔다. 펜스 끝을 단단히 물은 줄자를 승완 씨가 아래로 끌어당겼다. 바닥까지 끌어당겨 신중하게 길이를 쟀다. 

승완 씨 몇 m예요?
5m 80cm.

줄자를 다시 감아 옆 펜스로 옮겨간 승완 씨는 줄자를 다시 뽑아 들었다. 차르르 오르고 차르르륵 떨어지를 반복하다 간신히 펜스 끝에 걸쳐지고 줄자는 아래로 끌어 당겨진다. 

몇 m예요? 
5m 90.

차례대로 펜스의 높이를 재면서 내려왔다. 5m 80cm, 5m 90cm, 6m 10cm, 6m 아니 6m 4cm, 5m 70cm, 5m 90cm, 5m 80cm, 5m 90 아니 바닥까지 5m 94cm.
웃음이 났다. 불확실성에 낚시질하는 낚시꾼처럼 허공에 줄자를 쏘아 올리는 승완 씨의 진지함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무엇을 물어도 튕겨져 나오던 말이 “몇 m예요?”라는 한 문장으로 대답이 열리다니 웃음이 났다. 잠시였지만 차례대로 펜스 높이를 재면서 내려올 땐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동료 같은 율동감마저 느꼈다. 그렇게 홍제동을 돌아다녔다. 둘 다 처음 온 동네였기에 발길 가는 대로 가다 주차장이 보이면 어김없이 승완 씨는 멈춰 서서 줄자를 꺼내 들고 높이를 쟀다. 나는 “몇 m예요?”라고 묻고 승완 씨는 당연하게 “2m 3cm”, “2m”, “2m 1cm”라고 대답을 했다. 주차장은 대체로 2m ~ 2m 3cm 높이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로등 높이를 재보기도 하고 100년 된 나무 높이를 재보기도 했다. 가로등은 4m 1cm, 401cm, 100년 된 나무는 5m, 500cm. 승완 씨의 줄자는 형태가 아니라 높이로 세상을 보았다. 제각각인 듯 보이는 건물들이 높이로 보니 규칙적인 풍경으로 보였다. 승완 씨와 버스정류장까지 같이 걸었다. 

백구_ 다음 주에도 금요일 2시 30분에 만날까요?
승완_ 네.

다음 주에는 어디로 걸어가 볼까? 
마음이 들떴다.

김지영x최승완

김지영x최승완 

김지영(백구)는미술 작업을 합니다. 그림을 그리기보단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중심보다 주변부를 좋아하고 미끄러짐으로써 넓어지려고 합니다. 개인전을 했고, 미디어비엔날레에도 참여 했습니다. 노들장애인야학과 서부장애인복지관에서 발달장애인들과 수업도 합니다.최승완은 표지판을 그리고 표지판을 붙이는 일을 합니다.늘 7.5m 줄자와 자신이 그린 2.0m 2.3m 높이제한 표지판들을 가방가득 들고 다닙니다. 걸음걸이가 빠르고 높이가 궁금한 장소에서는 거침없이 줄자를 뽑아듭니다. 과천 그리고 일산, 일산 그리고 과천을 바꿔 말하길 좋아하고 트럭에 올라타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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