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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과 탐구가 만들어낸 배리어프리

이슈 낯선 조우의 순간, 장벽이 걷힌다

  • 노경애 아트엘 대표, 안무가
  • 등록일 2019-06-26
  • 조회수376

이슈

실험과 탐구가 만들어낸 배리어프리

낯선 조우의 순간, 장벽이 걷힌다

글. 노경애 아트엘 대표, 안무가

배리어프리(barrier free)는 배리어(barrier), 즉 장벽 혹은 장애물을 없애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장애인들이 공연이나 전시를 보는 데 도움을 주는 것에 대한 말인데, 나는 ‘표현의 방법, 배제, 관계와 역할의 변화’ 세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나는 안무가로서 2013년부터 뇌성마비 작가들과 몸의 움직임에 대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리고 2014년 청각장애 청소년을 대상으로 사운드아티스트와 함께 한 작업에 이어 2018~2019년에는 청각장애, 시각장애, 비장애 예술가들이 함께 듣는 것에 대해 리서치하는 프로젝트 <듣다>를 진행해 오고 있다.

프로젝트 <듣다>는 듣는 것에 어려움이 있어 보는 감각이 발달한 사람, 보는 것에 어려움이 있어 듣는 감각이 발달한 사람, 그리고 듣고 보는 감각이 함께 하는 사람들이 모여, 시각예술, 사운드아트, 몸의 움직임을 통해 ‘듣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탐구하는 작업이다. 청각과 시각에 장애를 가진 예술가들과의 작업으로 ‘듣는다’는 것을 새롭게 생각해 보고 소리를 통해 형태, 언어, 공간, 질감 등을 탐구해 오고 있다. 모든 작가의 탐구와 실험 속에서, 의성어를 통해 ‘소리언어’를 각자의 듣는 방식에 따라 새롭게 창안하고, 글자의 크기와 모양을 이용해 글자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글자와 점자를 배치하여 소리를 시각적 또는 촉각적으로 읽는 시도를 했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어떤 소리를 상상하게 하는지, 들리는 것은 어떤 형태를 그려내는지 질문하고 실험했으며, 악상기호를 이용해서 글자와 소리로 새로운 음악을 창안했다. 이 작업 속에서 ‘장애’는 새로운 시각이 되고 표현언어가 되었다.

이 중 글자를 통한 소리 표현에 대한 다양한 실험은 김은설(청각장애) 작가가 평소 영화의 자막을 보면서 느꼈던 생각과 더해져 작업화되었다. 김은설 작가는 청각장애인들이 영화나 TV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자막은 꼭 필요한데, 모든 자막은 배우의 감정, 상황의 분위기, 배경음악의 느낌 등을 전혀 담아내지 못하고 모든 상황과 대사를 한가지 톤으로 만든다고 했다. 자막을 통해서는 거친 바람 소리, 쿵-물건이 떨어지는 소리, 끼이익-문 열리는 소리는 느낄 수가 없다. 음악 소리가 나면 (음악), (무거운 음악)이라고 하거나, 문 닫는 소리가 나면 ‘탁’이 아닌 (문 닫는 소리)라는 자막이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가 감정이 절제되고 건조한 느낌이 들고, 보는 사람의 감정도 절제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래서 김은설 작가는 자막을 배우의 목소리 톤이나 감정을 글자의 모양으로 표현하고, (타자 치는 소리)가 아니라 소리가 들리는 대로 ‘타타탁’으로 바꾸면서, 글자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했고, <소리 없이 영화를 즐겁게 감상하기>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또 다른 작업은 읽는 방식이 다른 두 글자에 대한 작업이다. 귀로 소리를 듣지 않아도 청각적으로 묘사된 글을 읽으면 소리의 상이 맺힌다. 위성희 작가는 시각장애 음악가 전경호와 협업하여 청각적으로 묘사된 글을 묵자(눈으로 읽는 글)와 점자(손으로 만지며 읽는 글)의 배치를 통해 표현했다. 이것은 장애를 가진 작가들이 듣거나 보는 상황에서 ‘배제’되는 것에 대한 생각을 작업화한 것이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 작가들은 듣거나 만지는 행위를 통해 감각할 수 있는데, 일반적인 전시장의 작품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 관람해야 하기에 시각장애인은 그 관람에서 배제되는 대상이 되어버린다. 두 사람은 전경호 작가의 경험을 세 개의 종이에 표현했다. 첫 번째 장은 묵자, 두 번째 장은 묵자와 점자, 세 번째 장은 점자를 유리 액자에 넣어 전시했다. 그래서 첫 번째 장은 눈으로만 글을 읽을 수 있고, 두 번째 장은 눈으로 일부분을 읽고, 손으로 만지면서 다른 부분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세 번째 장은 보는 것으로도 만지는 것으로도 읽을 수 없어 결국 아무도 읽을 수 없는 글 작업이었다. 묵자는 시각적이기 때문에 글과 독자 사이의 거리가 있어야 하지만, 점자는 촉각적이기에 그 거리가 없어야 읽을 수 있다. 일반적인 미술 작품처럼 만질 수 없게 유리 액자에 전시된 점자는 모두를 배제 시켜 결국 모두에게 침묵한다.

2018년 과정 공유를 위한 발표회를 준비하면서, 전시의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실행하지는 못했지만, ‘청각적 전시’에 대한 생각을 했었다. 일반적으로 ‘전시’는 보는 행위를 위한 형식인데, 만약 전시장의 한 곳은 시각적으로 준비하고, 다른 한 곳은 청각적으로 준비하면 어떨까 생각했었다. 그래서 한가지 작업물을 한곳에서는 눈으로 보고, 다른 한곳에서는 귀로 들으면서,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들이 각각의 방법으로 전시를 감상한다면 어떨까 싶었다. 그리고 작업 과정에서 작가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청각적 표현과 시각적 표현 사이의 통역(?)이었다. 하나의 작업 주제가 청각에서 시각으로, 또는 시각에서 청각으로 통역될 수 있을까. 그리고 이것은 작업에서뿐만 아니라 작가들과의 소통 방법에서도 고민하게 되었다.

뇌성마비 작가들과의 작업은 몸의 움직임을 중점으로 한다. 공연에서 내가 일반적으로 생각해 온 배리어프리는 주로 휠체어 이용 관객을 위해 휠체어석을 어떻게 놓을지 정도에 그쳤었다. 그런데 뇌성마비 퍼포머들과 관객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공연장의 배치와 작업에 영향을 주었던 부분을 지금까지의 작업에 비추어 이야기해 보고 싶다.

2014년 잠실창작스튜디오에서 처음 오픈스튜디오의 형식으로 공연했을 때, 나는 공연에 앞서 우리가 공연할 장소를 찾아가서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무대와 객석에 대한 생각이 많아져서였다. 잠실창작스튜디오 하늘연은 평소 갤러리로 사용하는 공간이어서, 우리의 사용 방법에 따라 무대와 객석을 임의로 나눌 수 있었다. 나는 휠체어 사용 관객들의 동선과 동시에 평소 휠체어를 사용하지만 공연에서는 휠체어를 사용하지 않는 두 명의 퍼포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들은 휠체어에서 내려오면 몸의 높이가 많이 낮고, 주로 바닥에 앉은 채로 움직였다. 그래서 일반적인 공연장이 아닌 평평한 공간에 의자를 배치해서 객석을 만들게 되면, 자칫 의자에 앉은 관객이 등·퇴장하는 장애인 퍼포머를 내려다보게 되어 관객과 퍼포머의 위치가 상하로 나뉘면서, 보는 사람과 보이는 사람 사이에 관계적 층위가 장애와 비장애 사이의 상하 층위로 나뉘는 듯한 불편함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래서 객석을 방석과 의자석 두 단계로 만들어서, 앉아서 등·퇴장을 하는 장애 퍼포머들의 몸의 높이가 관객의 몸의 높이와 같게 되도록 시도했다.

2016년부터 이음센터에서 공연을 하면서 우리는 이음아트홀에 있는 낮은 단상들을 무대 가장자리에 ㄷ자 형식으로 배치했다. 단상은 객석으로서 관객들이 앉기도 하고, 퍼포머들이 대기하며 앉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그러다 보니 공연 내내 장애·비장애 퍼포머들과 관객이 함께 앉거나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이 되었다. 뇌성마비 퍼포머들이 무대의 이곳저곳에서 춤을 추고, 그들의 등·퇴장의 동선에 따라 객석 이곳저곳에 앉게 되었는데, 그때 관객과 장애 작가들 사이에 낯선 마주함이 발생했다. 허명진 평론가는 이것을 ‘뇌성마비 퍼포머들의 존재로 인해 겪게 되는 다차원적인 미세조정의 순간들이 발생했다’면서 이것을 ‘중단과 머뭇거림’의 순간이라고 표현하였다.

올해 나는 장애 작가들과 관객 사이에 발생하는 이 ‘중단과 머뭇거림’을 작업 내용으로 가져가려 한다. 무대와 객석이 나뉘어 고정되지 않고 계속 변화하면서, 퍼포머와 관객이 함께 이동하며 마주하고, 살짝 부딪치고, 머뭇거리며, 중단되는 순간들을 작업으로 나타내 보려 한다. 그 사이에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퍼포머와 관객도 함께할 것이다. 그러면서 퍼포머와 관객의 위치가 움직이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마주함이 움직이고, 무대와 객석이 변화하고, 보는 사람과 보이는 사람 사이의 역할과 방향이 변하고, 퍼포머의 움직임에 높이를 다르게 하며 변화를 주고자 한다. 그러면 장애인이 보기에 편안하게 돕는 방식의 배리어프리가 아니라, 장애와 비장애, 퍼포머와 관객 사이의 마주함 속에서 다양한 층위의 배리어(barrier, 장애물)들과 부딪히면서 배리어를 오히려 걷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리서치 프로젝트 ‘듣다’(2018)

노경애

네덜란드 EDDC(European Dance Development Center)에서 공부하며 몸에 대한 이해와 움직임에 대한 연구, 자신의 작업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다. 2010년 한국에서 아트엘(ArtEL)을 창단하고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페스티벌 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SeMA 미디어시티 비엔날레, 독일 포츠담 탄츠타게 페스티벌 등에서 공연 및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다양한 참여자를 대상으로 예술교육 활동을 하고 있으며, <듣다> <여러가지 선> <점점 퍼지다> <21°11′> 등 장애·비장애 예술가들과 함께 창작 작업을 하고 있다.

메인사진. 장애인 프로젝트 <선의 리듬>
사진제공. 아트엘

2019년 6월 (5호)

상세내용

이슈

실험과 탐구가 만들어낸 배리어프리

낯선 조우의 순간, 장벽이 걷힌다

글. 노경애 아트엘 대표, 안무가

배리어프리(barrier free)는 배리어(barrier), 즉 장벽 혹은 장애물을 없애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장애인들이 공연이나 전시를 보는 데 도움을 주는 것에 대한 말인데, 나는 ‘표현의 방법, 배제, 관계와 역할의 변화’ 세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나는 안무가로서 2013년부터 뇌성마비 작가들과 몸의 움직임에 대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리고 2014년 청각장애 청소년을 대상으로 사운드아티스트와 함께 한 작업에 이어 2018~2019년에는 청각장애, 시각장애, 비장애 예술가들이 함께 듣는 것에 대해 리서치하는 프로젝트 <듣다>를 진행해 오고 있다.

프로젝트 <듣다>는 듣는 것에 어려움이 있어 보는 감각이 발달한 사람, 보는 것에 어려움이 있어 듣는 감각이 발달한 사람, 그리고 듣고 보는 감각이 함께 하는 사람들이 모여, 시각예술, 사운드아트, 몸의 움직임을 통해 ‘듣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탐구하는 작업이다. 청각과 시각에 장애를 가진 예술가들과의 작업으로 ‘듣는다’는 것을 새롭게 생각해 보고 소리를 통해 형태, 언어, 공간, 질감 등을 탐구해 오고 있다. 모든 작가의 탐구와 실험 속에서, 의성어를 통해 ‘소리언어’를 각자의 듣는 방식에 따라 새롭게 창안하고, 글자의 크기와 모양을 이용해 글자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글자와 점자를 배치하여 소리를 시각적 또는 촉각적으로 읽는 시도를 했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어떤 소리를 상상하게 하는지, 들리는 것은 어떤 형태를 그려내는지 질문하고 실험했으며, 악상기호를 이용해서 글자와 소리로 새로운 음악을 창안했다. 이 작업 속에서 ‘장애’는 새로운 시각이 되고 표현언어가 되었다.

이 중 글자를 통한 소리 표현에 대한 다양한 실험은 김은설(청각장애) 작가가 평소 영화의 자막을 보면서 느꼈던 생각과 더해져 작업화되었다. 김은설 작가는 청각장애인들이 영화나 TV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자막은 꼭 필요한데, 모든 자막은 배우의 감정, 상황의 분위기, 배경음악의 느낌 등을 전혀 담아내지 못하고 모든 상황과 대사를 한가지 톤으로 만든다고 했다. 자막을 통해서는 거친 바람 소리, 쿵-물건이 떨어지는 소리, 끼이익-문 열리는 소리는 느낄 수가 없다. 음악 소리가 나면 (음악), (무거운 음악)이라고 하거나, 문 닫는 소리가 나면 ‘탁’이 아닌 (문 닫는 소리)라는 자막이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가 감정이 절제되고 건조한 느낌이 들고, 보는 사람의 감정도 절제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래서 김은설 작가는 자막을 배우의 목소리 톤이나 감정을 글자의 모양으로 표현하고, (타자 치는 소리)가 아니라 소리가 들리는 대로 ‘타타탁’으로 바꾸면서, 글자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했고, <소리 없이 영화를 즐겁게 감상하기>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또 다른 작업은 읽는 방식이 다른 두 글자에 대한 작업이다. 귀로 소리를 듣지 않아도 청각적으로 묘사된 글을 읽으면 소리의 상이 맺힌다. 위성희 작가는 시각장애 음악가 전경호와 협업하여 청각적으로 묘사된 글을 묵자(눈으로 읽는 글)와 점자(손으로 만지며 읽는 글)의 배치를 통해 표현했다. 이것은 장애를 가진 작가들이 듣거나 보는 상황에서 ‘배제’되는 것에 대한 생각을 작업화한 것이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 작가들은 듣거나 만지는 행위를 통해 감각할 수 있는데, 일반적인 전시장의 작품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 관람해야 하기에 시각장애인은 그 관람에서 배제되는 대상이 되어버린다. 두 사람은 전경호 작가의 경험을 세 개의 종이에 표현했다. 첫 번째 장은 묵자, 두 번째 장은 묵자와 점자, 세 번째 장은 점자를 유리 액자에 넣어 전시했다. 그래서 첫 번째 장은 눈으로만 글을 읽을 수 있고, 두 번째 장은 눈으로 일부분을 읽고, 손으로 만지면서 다른 부분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세 번째 장은 보는 것으로도 만지는 것으로도 읽을 수 없어 결국 아무도 읽을 수 없는 글 작업이었다. 묵자는 시각적이기 때문에 글과 독자 사이의 거리가 있어야 하지만, 점자는 촉각적이기에 그 거리가 없어야 읽을 수 있다. 일반적인 미술 작품처럼 만질 수 없게 유리 액자에 전시된 점자는 모두를 배제 시켜 결국 모두에게 침묵한다.

2018년 과정 공유를 위한 발표회를 준비하면서, 전시의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실행하지는 못했지만, ‘청각적 전시’에 대한 생각을 했었다. 일반적으로 ‘전시’는 보는 행위를 위한 형식인데, 만약 전시장의 한 곳은 시각적으로 준비하고, 다른 한 곳은 청각적으로 준비하면 어떨까 생각했었다. 그래서 한가지 작업물을 한곳에서는 눈으로 보고, 다른 한곳에서는 귀로 들으면서,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들이 각각의 방법으로 전시를 감상한다면 어떨까 싶었다. 그리고 작업 과정에서 작가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청각적 표현과 시각적 표현 사이의 통역(?)이었다. 하나의 작업 주제가 청각에서 시각으로, 또는 시각에서 청각으로 통역될 수 있을까. 그리고 이것은 작업에서뿐만 아니라 작가들과의 소통 방법에서도 고민하게 되었다.

뇌성마비 작가들과의 작업은 몸의 움직임을 중점으로 한다. 공연에서 내가 일반적으로 생각해 온 배리어프리는 주로 휠체어 이용 관객을 위해 휠체어석을 어떻게 놓을지 정도에 그쳤었다. 그런데 뇌성마비 퍼포머들과 관객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공연장의 배치와 작업에 영향을 주었던 부분을 지금까지의 작업에 비추어 이야기해 보고 싶다.

2014년 잠실창작스튜디오에서 처음 오픈스튜디오의 형식으로 공연했을 때, 나는 공연에 앞서 우리가 공연할 장소를 찾아가서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무대와 객석에 대한 생각이 많아져서였다. 잠실창작스튜디오 하늘연은 평소 갤러리로 사용하는 공간이어서, 우리의 사용 방법에 따라 무대와 객석을 임의로 나눌 수 있었다. 나는 휠체어 사용 관객들의 동선과 동시에 평소 휠체어를 사용하지만 공연에서는 휠체어를 사용하지 않는 두 명의 퍼포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들은 휠체어에서 내려오면 몸의 높이가 많이 낮고, 주로 바닥에 앉은 채로 움직였다. 그래서 일반적인 공연장이 아닌 평평한 공간에 의자를 배치해서 객석을 만들게 되면, 자칫 의자에 앉은 관객이 등·퇴장하는 장애인 퍼포머를 내려다보게 되어 관객과 퍼포머의 위치가 상하로 나뉘면서, 보는 사람과 보이는 사람 사이에 관계적 층위가 장애와 비장애 사이의 상하 층위로 나뉘는 듯한 불편함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래서 객석을 방석과 의자석 두 단계로 만들어서, 앉아서 등·퇴장을 하는 장애 퍼포머들의 몸의 높이가 관객의 몸의 높이와 같게 되도록 시도했다.

2016년부터 이음센터에서 공연을 하면서 우리는 이음아트홀에 있는 낮은 단상들을 무대 가장자리에 ㄷ자 형식으로 배치했다. 단상은 객석으로서 관객들이 앉기도 하고, 퍼포머들이 대기하며 앉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그러다 보니 공연 내내 장애·비장애 퍼포머들과 관객이 함께 앉거나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이 되었다. 뇌성마비 퍼포머들이 무대의 이곳저곳에서 춤을 추고, 그들의 등·퇴장의 동선에 따라 객석 이곳저곳에 앉게 되었는데, 그때 관객과 장애 작가들 사이에 낯선 마주함이 발생했다. 허명진 평론가는 이것을 ‘뇌성마비 퍼포머들의 존재로 인해 겪게 되는 다차원적인 미세조정의 순간들이 발생했다’면서 이것을 ‘중단과 머뭇거림’의 순간이라고 표현하였다.

올해 나는 장애 작가들과 관객 사이에 발생하는 이 ‘중단과 머뭇거림’을 작업 내용으로 가져가려 한다. 무대와 객석이 나뉘어 고정되지 않고 계속 변화하면서, 퍼포머와 관객이 함께 이동하며 마주하고, 살짝 부딪치고, 머뭇거리며, 중단되는 순간들을 작업으로 나타내 보려 한다. 그 사이에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퍼포머와 관객도 함께할 것이다. 그러면서 퍼포머와 관객의 위치가 움직이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마주함이 움직이고, 무대와 객석이 변화하고, 보는 사람과 보이는 사람 사이의 역할과 방향이 변하고, 퍼포머의 움직임에 높이를 다르게 하며 변화를 주고자 한다. 그러면 장애인이 보기에 편안하게 돕는 방식의 배리어프리가 아니라, 장애와 비장애, 퍼포머와 관객 사이의 마주함 속에서 다양한 층위의 배리어(barrier, 장애물)들과 부딪히면서 배리어를 오히려 걷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리서치 프로젝트 ‘듣다’(2018)

노경애

네덜란드 EDDC(European Dance Development Center)에서 공부하며 몸에 대한 이해와 움직임에 대한 연구, 자신의 작업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다. 2010년 한국에서 아트엘(ArtEL)을 창단하고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페스티벌 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SeMA 미디어시티 비엔날레, 독일 포츠담 탄츠타게 페스티벌 등에서 공연 및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다양한 참여자를 대상으로 예술교육 활동을 하고 있으며, <듣다> <여러가지 선> <점점 퍼지다> <21°11′> 등 장애·비장애 예술가들과 함께 창작 작업을 하고 있다.

메인사진. 장애인 프로젝트 <선의 리듬>
사진제공. 아트엘

2019년 6월 (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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