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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 휴먼 자서전 『나는, 휴먼』

리뷰 치열하고 뭉클한 선언, 나도 사람이다!

  • 차미경 작가
  • 등록일 2022-06-02
  • 조회수491

리뷰

나도 사람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때때마다 이렇게 외쳐야 하는 상황은 매번 서글프다. 마늘이랑 쑥을 먹고 사는 곰이나 호랑이도 아닌데 대체 언제까지 장애인도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외쳐야 한단 말인가. 장애인도 편리한 대중교통으로 자유롭게 이동하고 싶다, 탈시설 해서 이웃과 더불어 살고 싶다, 공부하고 일하고 사랑하며 더불어 사는 당연한 일상을 내 뜻대로 선택하고 결정하며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말이 그리 어려운 말인가. 게다가 장애인도 똑같은 사람임을 인정해 달라는 절규가 ‘비문명’ 취급까지 받는 요즘 ‘나는 사람’이란 인간 선언은 어쩐지 더 치열하고 가슴 뭉클한 자기 선언처럼 들린다. 주디스 휴먼의 『나는, 휴먼』은 내게 그런 책이다.

미국 장애인 운동의 산증인인 주디스 휴먼은 내게 이미 낯익은 이름이었다. 미국의 장애운동사를 다룬 책에서 그녀의 이름을 종종 접했고 다큐멘터리 <크립캠프 : 장애는 없다(Crip Camp : A Disability Revolution)>(2020)에 등장하는 그녀의 모습을 이미 만났기 때문에 그녀의 책은 친근한 사람을 다시 만나듯 반갑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크립캠프>가 보여준 영상의 이미지가 꽤 인상 깊었던지 그녀의 책을 읽는 동안은 마치 책의 내용이 눈에 보이듯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했다.

그녀가 장애 때문에 겪어야 했던 모든 이야기가 놀랍게도 내겐 하나도 낯설지 않았다. 국적과 시간을 초월하여 이쪽에 사는 장애인과 저쪽에 사는 다른 장애인이 겪는 이야기가 어쩜 그리 비슷한지 새삼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결국 장애에 대한 인식은 어디나 별반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했다. 특히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그녀가 교사 자격증을 따내기 위해 겪어야 했던 모욕과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벌인 투쟁 이야기는 내 생애 첫 좌절과 많이 닮았다. 덕분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다시 떠올려 보게 됐지만.

스물세 살, 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형식적인 면접시험만 남겨 둔 때였다. 이제 마지막 관문만 통과하면 된다는 설렘으로 한껏 부풀어 있던 내게 나이 든 면접관은 말하기도 귀찮다는 듯 그렇게 물었다. 그 몸으로 바닥에 붙은 껌을 뗄 수 있겠느냐고. 바닥에 붙은 껌을 떼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그 사소하고 하찮은 일로 그는 내게 엄청난 모욕감을 주었다. 그래도 설마 했지만 역시 그는 나를 떨어뜨렸고 그 후로 나는 공무원이 되지 못했다.

이 기억은 내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았고 그때 나는 비로소 ‘장애인’이 되었다. 그 이전까지 나는 그저 장애가 있는 조금 다른 몸을 가진 한 사람이었을 뿐, 그 때문에 배제되거나 차별당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는 주디스 휴먼처럼 그런 모멸과 차별을 경험했을 때 그것과 맞서 싸우지 못했다. 그녀처럼 용기를 내보지도 못했지만, 주변 어디에도 나와 함께 싸워줄 아군이 없었다. “장애인이니까 당연히 그런 건 못 하는 것 아니야?” 대부분 이런 반응들이었다. 심지어 장애인단체나 지역 국회의원조차도 아직은 우리 사회가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냐며, 속상하지만 마음을 접는 편이 좋겠다고 싸워볼 엄두조차 못 내도록 투지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 책에서 주디스 휴먼이 이끌었거나 참여했던 투쟁에서 승리한 요인 중 중요한 한 가지는 그녀의 주장을 전달해 주는 스피커가 많았다는 점이 아니었을까. 교사 자격증 쟁취를 위한 교육위원회와의 소송에서도 그렇고 재활법 504조 개정과 미국장애인법 제정을 위한 투쟁 과정에서도 수많은 언론이 그녀의 주장을 기사나 사설 등을 통해 전달해 주는 언로가 되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떨까.

이 책의 북토크에서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우리나라 장애인 운동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활동가 중 한 사람인 그녀는 그 수많은 언론사의 스피커 중 단 하나도 장애인 시위 현장을 향하지 않았다며 아무리 열심히 시위해도 단 한 줄도 기사화되지 않는 씁쓸함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우아하고 세련되고 문명적인 시위는 기사화될까 반문하기도 했는데 깊이 공감한다. 삭발식을 하고 단식하고 점거 농성을 하고… 아무리 절박한 명목의 시위를 해도 장애인의 목소리를 담은 단 한 줄의 기사를 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던가. (여당 대표의 자극적인 혐오 발언이 있고서야 겨우 기사화라도 되는 요즘이다.)

그러나 스피커를 대주지 않는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목청껏 스피커가 되는 수밖에. 굳이 시위에 참여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일상을 지배하는 수 없이 많은 배제와 차별에 대하여 목소리를 내는 일, 그리고 어렵게 입을 뗀 사람의 낮은 목소리를 지지해 주는 일을 끊임없이 멈추지 않는 것이 스피커의 역할을 해내는 일이 될 것이다.

다양하게 참여하는 일상에서 딸이 배제되거나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엄마가 한 일들에 대해 주디스 휴먼은 “내가 배제되지 않도록 싸우는 일과 통합되려고 너무 애쓰다가 결국 배제되는 위험 사이의 가느다란 줄 위에서 외줄타기”라고 표현했다.

맞다, 외줄타기. 배제되거나 짐이 되지 않고 비장애인과 완전한 통합을 이루기 위해 나를 비롯한 많은 장애인은 지금도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런 일상의 외줄타기가 그 어떤 격렬한 시위보다 더 어렵다. 일상에 녹아 있는 소소한 편견과 차별에 침묵하지 않고 내 존재를 드러내는 외줄타기 같은 일상은 지난하고 힘겹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스피커로서 목소리를 내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낮은 목소리를 북돋는 일에 볼륨을 높여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내가 되고 우리가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주디스 휴먼의 용기 있는 여정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처럼.

나는, 휴먼-장애 운동가 주디스 휴먼 자서전

주디스 휴먼, 크리스틴 조이너(지은이) | 김채원, 문영민(옮긴이) | 사계절 | 2022

지하철역의 엘리베이터, 건물 출입구의 경사로, 텔레비전 방송에서 제공하는 수어 통역과 자막, 점자 보도블록, 장애인 활동 지원 제도 등은 어느 날 갑자기 도입된 것이 아니다. 수많은 장애인 당사자와 운동가가 자신의 삶을 걸고 투쟁한 끝에 하나씩 겨우 마련한 것이다. 『나는, 휴먼』은 휠체어를 탄다는 이유로 학교에 갈 수 없었던 어린 시절부터 사회의 모든 영역에 장애인의 자리를 만들어 온 주디스 휴먼의 일대기를 그 자신의 말로 정리한 자서전이다. 지난 2022년 4월 14일에는 이 책의 출간을 기념하여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 대표와 번역자이자 장애학 연구자인 문영민의 북토크가 열렸다.

관련영상. 『나는, 휴먼』 박김영희×문영민 북토크 바로가기(링크)

차미경

10여 년간 KBS 라디오에서 장애인 및 소외계층을 위한 방송을 했으며 ‘장애’라는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보는 장애학 연구자로서 문화예술 관련 칼럼을 쓴다.
myrodem1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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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제공. 사계절출판사

2022년 6월 (31호)

상세내용

리뷰

나도 사람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때때마다 이렇게 외쳐야 하는 상황은 매번 서글프다. 마늘이랑 쑥을 먹고 사는 곰이나 호랑이도 아닌데 대체 언제까지 장애인도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외쳐야 한단 말인가. 장애인도 편리한 대중교통으로 자유롭게 이동하고 싶다, 탈시설 해서 이웃과 더불어 살고 싶다, 공부하고 일하고 사랑하며 더불어 사는 당연한 일상을 내 뜻대로 선택하고 결정하며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말이 그리 어려운 말인가. 게다가 장애인도 똑같은 사람임을 인정해 달라는 절규가 ‘비문명’ 취급까지 받는 요즘 ‘나는 사람’이란 인간 선언은 어쩐지 더 치열하고 가슴 뭉클한 자기 선언처럼 들린다. 주디스 휴먼의 『나는, 휴먼』은 내게 그런 책이다.

미국 장애인 운동의 산증인인 주디스 휴먼은 내게 이미 낯익은 이름이었다. 미국의 장애운동사를 다룬 책에서 그녀의 이름을 종종 접했고 다큐멘터리 <크립캠프 : 장애는 없다(Crip Camp : A Disability Revolution)>(2020)에 등장하는 그녀의 모습을 이미 만났기 때문에 그녀의 책은 친근한 사람을 다시 만나듯 반갑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크립캠프>가 보여준 영상의 이미지가 꽤 인상 깊었던지 그녀의 책을 읽는 동안은 마치 책의 내용이 눈에 보이듯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했다.

그녀가 장애 때문에 겪어야 했던 모든 이야기가 놀랍게도 내겐 하나도 낯설지 않았다. 국적과 시간을 초월하여 이쪽에 사는 장애인과 저쪽에 사는 다른 장애인이 겪는 이야기가 어쩜 그리 비슷한지 새삼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결국 장애에 대한 인식은 어디나 별반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했다. 특히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그녀가 교사 자격증을 따내기 위해 겪어야 했던 모욕과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벌인 투쟁 이야기는 내 생애 첫 좌절과 많이 닮았다. 덕분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다시 떠올려 보게 됐지만.

스물세 살, 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형식적인 면접시험만 남겨 둔 때였다. 이제 마지막 관문만 통과하면 된다는 설렘으로 한껏 부풀어 있던 내게 나이 든 면접관은 말하기도 귀찮다는 듯 그렇게 물었다. 그 몸으로 바닥에 붙은 껌을 뗄 수 있겠느냐고. 바닥에 붙은 껌을 떼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그 사소하고 하찮은 일로 그는 내게 엄청난 모욕감을 주었다. 그래도 설마 했지만 역시 그는 나를 떨어뜨렸고 그 후로 나는 공무원이 되지 못했다.

이 기억은 내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았고 그때 나는 비로소 ‘장애인’이 되었다. 그 이전까지 나는 그저 장애가 있는 조금 다른 몸을 가진 한 사람이었을 뿐, 그 때문에 배제되거나 차별당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는 주디스 휴먼처럼 그런 모멸과 차별을 경험했을 때 그것과 맞서 싸우지 못했다. 그녀처럼 용기를 내보지도 못했지만, 주변 어디에도 나와 함께 싸워줄 아군이 없었다. “장애인이니까 당연히 그런 건 못 하는 것 아니야?” 대부분 이런 반응들이었다. 심지어 장애인단체나 지역 국회의원조차도 아직은 우리 사회가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냐며, 속상하지만 마음을 접는 편이 좋겠다고 싸워볼 엄두조차 못 내도록 투지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 책에서 주디스 휴먼이 이끌었거나 참여했던 투쟁에서 승리한 요인 중 중요한 한 가지는 그녀의 주장을 전달해 주는 스피커가 많았다는 점이 아니었을까. 교사 자격증 쟁취를 위한 교육위원회와의 소송에서도 그렇고 재활법 504조 개정과 미국장애인법 제정을 위한 투쟁 과정에서도 수많은 언론이 그녀의 주장을 기사나 사설 등을 통해 전달해 주는 언로가 되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떨까.

이 책의 북토크에서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우리나라 장애인 운동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활동가 중 한 사람인 그녀는 그 수많은 언론사의 스피커 중 단 하나도 장애인 시위 현장을 향하지 않았다며 아무리 열심히 시위해도 단 한 줄도 기사화되지 않는 씁쓸함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우아하고 세련되고 문명적인 시위는 기사화될까 반문하기도 했는데 깊이 공감한다. 삭발식을 하고 단식하고 점거 농성을 하고… 아무리 절박한 명목의 시위를 해도 장애인의 목소리를 담은 단 한 줄의 기사를 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던가. (여당 대표의 자극적인 혐오 발언이 있고서야 겨우 기사화라도 되는 요즘이다.)

그러나 스피커를 대주지 않는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목청껏 스피커가 되는 수밖에. 굳이 시위에 참여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일상을 지배하는 수 없이 많은 배제와 차별에 대하여 목소리를 내는 일, 그리고 어렵게 입을 뗀 사람의 낮은 목소리를 지지해 주는 일을 끊임없이 멈추지 않는 것이 스피커의 역할을 해내는 일이 될 것이다.

다양하게 참여하는 일상에서 딸이 배제되거나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엄마가 한 일들에 대해 주디스 휴먼은 “내가 배제되지 않도록 싸우는 일과 통합되려고 너무 애쓰다가 결국 배제되는 위험 사이의 가느다란 줄 위에서 외줄타기”라고 표현했다.

맞다, 외줄타기. 배제되거나 짐이 되지 않고 비장애인과 완전한 통합을 이루기 위해 나를 비롯한 많은 장애인은 지금도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런 일상의 외줄타기가 그 어떤 격렬한 시위보다 더 어렵다. 일상에 녹아 있는 소소한 편견과 차별에 침묵하지 않고 내 존재를 드러내는 외줄타기 같은 일상은 지난하고 힘겹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스피커로서 목소리를 내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낮은 목소리를 북돋는 일에 볼륨을 높여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내가 되고 우리가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주디스 휴먼의 용기 있는 여정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처럼.

나는, 휴먼-장애 운동가 주디스 휴먼 자서전

주디스 휴먼, 크리스틴 조이너(지은이) | 김채원, 문영민(옮긴이) | 사계절 | 2022

지하철역의 엘리베이터, 건물 출입구의 경사로, 텔레비전 방송에서 제공하는 수어 통역과 자막, 점자 보도블록, 장애인 활동 지원 제도 등은 어느 날 갑자기 도입된 것이 아니다. 수많은 장애인 당사자와 운동가가 자신의 삶을 걸고 투쟁한 끝에 하나씩 겨우 마련한 것이다. 『나는, 휴먼』은 휠체어를 탄다는 이유로 학교에 갈 수 없었던 어린 시절부터 사회의 모든 영역에 장애인의 자리를 만들어 온 주디스 휴먼의 일대기를 그 자신의 말로 정리한 자서전이다. 지난 2022년 4월 14일에는 이 책의 출간을 기념하여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 대표와 번역자이자 장애학 연구자인 문영민의 북토크가 열렸다.

관련영상. 『나는, 휴먼』 박김영희×문영민 북토크 바로가기(링크)

차미경

10여 년간 KBS 라디오에서 장애인 및 소외계층을 위한 방송을 했으며 ‘장애’라는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보는 장애학 연구자로서 문화예술 관련 칼럼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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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제공. 사계절출판사

2022년 6월 (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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