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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가 무의미해지는 사회①

이음광장 장애의 판타지, 삶의 리얼리티

  • 홍윤희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
  • 등록일 2022-06-15
  • 조회수1667

올해 상반기 장애문화예술 계에서 가장 화제가 된 사건이 있다.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이하 ‘우블’)에 다운증후군 장애 당사자 정은혜 작가가 등장한 것이다. 정 작가는 일러스트레이터로 발달장애 계에서는 이미 유명인사다. 하지만 장애 당사자가 이렇게 비중 있는 역할로 등장하는 건 한국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역사적인 일이다.

정은혜 작가가 분한 영희는 주요 캐릭터인 영옥(한지민 분)의 쌍둥이 언니다. 부모님을 모두 잃은 후 장애인 시설에 있던 영희가 영옥이 해녀로 일하는 제주도에 잠시 내려와 생활한다는 설정을 보여준다. 두 회를 마친 후 내 주위의 반응은 세 가지로 나뉘었다. 장애와 연이 없는 비장애인들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발달장애인의 삶에 대해 전혀 몰랐던 걸 알게 됐다는 거다. 장애인 당사자들과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사람들의 의견은 두 갈래로 갈렸다. “비장애인 가족의 리얼리티를 잘 살렸다”는 게 중론이었지만, 어떤 당사자와 그 가족들은 ‘저 등장인물이 어두운 이유는 가족의 장애 때문’이라는 흔한 설정을 지적했다. 쌍둥이 언니의 장애를 ‘재앙’이라고 표현하며 힘든 마음을 털어놓는 영옥의 대사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우블’은 분명 예술과 문화 분야의 장애 반영에 있어 한국 드라마에 한 획을 그었다. 첫 번째 이유는, 작가와 연출이 성실하게 당사자성을 반영했다는 측면이다. 각본을 쓴 노희경 작가가 정은혜 작가와 1년 이상 소통하며 극 중 묘사와 대사에 정 작가의 모습을 담았다. 그동안 비장애인이 장애인 역할을 했던 영화, 드라마를 떠올려 보자. 조승우가 자폐인 마라토너였던 <말아톤>, 신현준이 발달장애인 역할을 한 <맨발의 기봉이>를 떠올려 보면 아무리 비장애인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고 해도 장애인 아닌 ‘비장애인이 얼마나 장애 연기를 잘했나’가 화제가 된다. 노희경 작가의 전작인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휠체어를 타는 (그리고 장애 때문에 연인에게 버림받는) 조인성의 모습과 비교해도 ‘우블’은 큰 진전이다.

두 번째 이유는, 장애를 불행으로 만드는 한국 사회의 리얼리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야 할 이상적인 판타지를 약하게나마 다 표현한다는 측면이다. 극 중에서 영옥의 ‘재앙’ 발언이나 영희가 있는 ‘장애인 시설’은 발달장애인이 사회에서 살 수 있는 인프라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실패를 보여준다. 나아갈 방향의 단초는 영옥의 연인 선장(김우빈 분)의 대사에서 나온다. 영희를 보고 놀라는 선장은 이내 사과하며 “장애인을 어떻게 대하는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서 그랬다”라고 말한다. “한 집 건너 하나씩은 장애인이 있다. 그게 뭐 대수라”고 말하는 해녀 어멍의 대사는 판타지처럼 들리지만, 장애인이 시설과 집 밖으로 나오기 위해 사회가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한 조용하지만 강력한 선언이기도 하다.

그동안 한국의 TV 프로그램에서 장애를 그리는 방식은 리얼리티 또는 판타지였다. 장애인의 리얼리티는 뉴스 사회부의 소재였고, TV 교양 프로그램에서 주로 다루었다. KBS <사랑의 가족>, EBS <세상을 비집고> 같은 프로그램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된다. 예능에서 장애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그려진다. ‘장애 극복 서사’는 예능의 단골 소재다. 예를 들어 <유 퀴즈 온 더 블록>(이하 ‘유퀴즈’)에 나온 장애인 출연자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된다. 중도장애로 시각장애인이 된 판사가 어려운 역경을 극복한 이야기엔 감동이 있다. 그러나 그의 사례를 ‘시각장애가 있어도 도전하면 되네’라며 쉽게 단선화하는 건 위험하다. 선천적인 시각장애가 있는 지인이 변호사 시험에서 정당한 편의를 얻어내기 위해 법무부와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유퀴즈’의 장애 극복 서사는 판타지에 더 가깝다고 봐도 무방하다.

현실에는 예술과 문화에서 장애가 아닌 장애인 자체가 주인공이 되기에는 아직 ‘사회적 장애물’이 너무 많다. 발달장애를 드라마에서 다룰 때 발달장애인 가족에게 떠넘겨지는 돌봄 책임이란 건 마치 없는 것처럼 간과할 수 있을까? 2022년 5월 ‘우블’이 방영되는 가운데, 뉴스에선 수백 명의 발달장애 부모들이 삭발하며 “부모가 자녀를 돌보다 살해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현실을 바꾸어 달라”며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불편한 진실도 드라마에서만큼은 아름다운 주인공들이 등장해 판타지 또는 유사 판타지로 끝내는 걸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드라마적 판타지로 끝내기에 장애는 너무 많은 사람의 삶에서 리얼리티다.

휠체어 탄 자녀의 엄마로서 나 또한 드라마나 영화에서 장애인 당사자 배우가 장애 때문에 겪는 불편함을 소재로 삼는 대신, 장애가 그 캐릭터의 특징 중 하나로 가볍게 묘사됐으면 좋겠다. 판타지 아닌 일상적인 리얼리티가 당사자에 의해 묘사되길 원하는 거다.

예를 들어 EBS의 어린이 프로그램 <딩동댕유치원>에 40년 만에 처음 등장한 장애인 캐릭터인 휠체어 탄 소녀 ‘하늘이’를 살펴보자. 하늘이는 “난 파는 싫고 운동하는 게 좋아요”라며 본인을 표현할 때 굳이 휠체어를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늘이가 진짜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이라면 현장체험학습 갈 때는 휠체어 이용자도 탈 수 있는 전세버스가 없어서 친구들과 함께 차를 타고 가지 못해 시무룩해 할 것이고, 체육 시간엔 다른 아이들이 줄넘기 시험을 보는 동안 운동장 한구석에 소외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모두 내 딸이 겪은 일이다.)

‘우블’은 장애인 당사자의 리얼리티로 시작해 우리가 바라는 판타지의 모습을 미약하게나마 제시한다. 앞으로 당사자들이 더 많이 예술과 문화에 참여한다면 장애를 장애물로 만드는 사회의 현실을 어떻게 바꿔 나갈지 대안도 자연스럽게 극에 담기길 바란다. 그런 과정을 통해 비로소 장애인의 삶을 묘사할 때 ‘장애’는 무의미해지는 대신 장애‘인’이 더 많이 조명될 것이다.

홍윤희

장애가 무의미해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2015년 ‘무의’를 결성하고, 2016년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교통약자를 위한 지하철 환승 지도와 이동권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고 장애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yhhong7309@gmail.com

홍윤희

홍윤희 

장애가 무의미해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2015년 ‘무의’를 결성하고, 2016년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교통약자를 위한 지하철 환승 지도와 이동권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고 장애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yhhong7309@gmail.com

상세내용

올해 상반기 장애문화예술 계에서 가장 화제가 된 사건이 있다.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이하 ‘우블’)에 다운증후군 장애 당사자 정은혜 작가가 등장한 것이다. 정 작가는 일러스트레이터로 발달장애 계에서는 이미 유명인사다. 하지만 장애 당사자가 이렇게 비중 있는 역할로 등장하는 건 한국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역사적인 일이다.

정은혜 작가가 분한 영희는 주요 캐릭터인 영옥(한지민 분)의 쌍둥이 언니다. 부모님을 모두 잃은 후 장애인 시설에 있던 영희가 영옥이 해녀로 일하는 제주도에 잠시 내려와 생활한다는 설정을 보여준다. 두 회를 마친 후 내 주위의 반응은 세 가지로 나뉘었다. 장애와 연이 없는 비장애인들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발달장애인의 삶에 대해 전혀 몰랐던 걸 알게 됐다는 거다. 장애인 당사자들과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사람들의 의견은 두 갈래로 갈렸다. “비장애인 가족의 리얼리티를 잘 살렸다”는 게 중론이었지만, 어떤 당사자와 그 가족들은 ‘저 등장인물이 어두운 이유는 가족의 장애 때문’이라는 흔한 설정을 지적했다. 쌍둥이 언니의 장애를 ‘재앙’이라고 표현하며 힘든 마음을 털어놓는 영옥의 대사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우블’은 분명 예술과 문화 분야의 장애 반영에 있어 한국 드라마에 한 획을 그었다. 첫 번째 이유는, 작가와 연출이 성실하게 당사자성을 반영했다는 측면이다. 각본을 쓴 노희경 작가가 정은혜 작가와 1년 이상 소통하며 극 중 묘사와 대사에 정 작가의 모습을 담았다. 그동안 비장애인이 장애인 역할을 했던 영화, 드라마를 떠올려 보자. 조승우가 자폐인 마라토너였던 <말아톤>, 신현준이 발달장애인 역할을 한 <맨발의 기봉이>를 떠올려 보면 아무리 비장애인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고 해도 장애인 아닌 ‘비장애인이 얼마나 장애 연기를 잘했나’가 화제가 된다. 노희경 작가의 전작인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휠체어를 타는 (그리고 장애 때문에 연인에게 버림받는) 조인성의 모습과 비교해도 ‘우블’은 큰 진전이다.

두 번째 이유는, 장애를 불행으로 만드는 한국 사회의 리얼리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야 할 이상적인 판타지를 약하게나마 다 표현한다는 측면이다. 극 중에서 영옥의 ‘재앙’ 발언이나 영희가 있는 ‘장애인 시설’은 발달장애인이 사회에서 살 수 있는 인프라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실패를 보여준다. 나아갈 방향의 단초는 영옥의 연인 선장(김우빈 분)의 대사에서 나온다. 영희를 보고 놀라는 선장은 이내 사과하며 “장애인을 어떻게 대하는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서 그랬다”라고 말한다. “한 집 건너 하나씩은 장애인이 있다. 그게 뭐 대수라”고 말하는 해녀 어멍의 대사는 판타지처럼 들리지만, 장애인이 시설과 집 밖으로 나오기 위해 사회가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한 조용하지만 강력한 선언이기도 하다.

그동안 한국의 TV 프로그램에서 장애를 그리는 방식은 리얼리티 또는 판타지였다. 장애인의 리얼리티는 뉴스 사회부의 소재였고, TV 교양 프로그램에서 주로 다루었다. KBS <사랑의 가족>, EBS <세상을 비집고> 같은 프로그램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된다. 예능에서 장애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그려진다. ‘장애 극복 서사’는 예능의 단골 소재다. 예를 들어 <유 퀴즈 온 더 블록>(이하 ‘유퀴즈’)에 나온 장애인 출연자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된다. 중도장애로 시각장애인이 된 판사가 어려운 역경을 극복한 이야기엔 감동이 있다. 그러나 그의 사례를 ‘시각장애가 있어도 도전하면 되네’라며 쉽게 단선화하는 건 위험하다. 선천적인 시각장애가 있는 지인이 변호사 시험에서 정당한 편의를 얻어내기 위해 법무부와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유퀴즈’의 장애 극복 서사는 판타지에 더 가깝다고 봐도 무방하다.

현실에는 예술과 문화에서 장애가 아닌 장애인 자체가 주인공이 되기에는 아직 ‘사회적 장애물’이 너무 많다. 발달장애를 드라마에서 다룰 때 발달장애인 가족에게 떠넘겨지는 돌봄 책임이란 건 마치 없는 것처럼 간과할 수 있을까? 2022년 5월 ‘우블’이 방영되는 가운데, 뉴스에선 수백 명의 발달장애 부모들이 삭발하며 “부모가 자녀를 돌보다 살해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현실을 바꾸어 달라”며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불편한 진실도 드라마에서만큼은 아름다운 주인공들이 등장해 판타지 또는 유사 판타지로 끝내는 걸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드라마적 판타지로 끝내기에 장애는 너무 많은 사람의 삶에서 리얼리티다.

휠체어 탄 자녀의 엄마로서 나 또한 드라마나 영화에서 장애인 당사자 배우가 장애 때문에 겪는 불편함을 소재로 삼는 대신, 장애가 그 캐릭터의 특징 중 하나로 가볍게 묘사됐으면 좋겠다. 판타지 아닌 일상적인 리얼리티가 당사자에 의해 묘사되길 원하는 거다.

예를 들어 EBS의 어린이 프로그램 <딩동댕유치원>에 40년 만에 처음 등장한 장애인 캐릭터인 휠체어 탄 소녀 ‘하늘이’를 살펴보자. 하늘이는 “난 파는 싫고 운동하는 게 좋아요”라며 본인을 표현할 때 굳이 휠체어를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늘이가 진짜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이라면 현장체험학습 갈 때는 휠체어 이용자도 탈 수 있는 전세버스가 없어서 친구들과 함께 차를 타고 가지 못해 시무룩해 할 것이고, 체육 시간엔 다른 아이들이 줄넘기 시험을 보는 동안 운동장 한구석에 소외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모두 내 딸이 겪은 일이다.)

‘우블’은 장애인 당사자의 리얼리티로 시작해 우리가 바라는 판타지의 모습을 미약하게나마 제시한다. 앞으로 당사자들이 더 많이 예술과 문화에 참여한다면 장애를 장애물로 만드는 사회의 현실을 어떻게 바꿔 나갈지 대안도 자연스럽게 극에 담기길 바란다. 그런 과정을 통해 비로소 장애인의 삶을 묘사할 때 ‘장애’는 무의미해지는 대신 장애‘인’이 더 많이 조명될 것이다.

홍윤희

장애가 무의미해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2015년 ‘무의’를 결성하고, 2016년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교통약자를 위한 지하철 환승 지도와 이동권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고 장애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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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3 14: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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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덕분에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블루스>가 분명 예술과 문화 분야의 장애 반영에 있어 큰 획을 그었다는 점에서 굉장히 반갑고 고무적입니다. 판타지와 같이 단번에 사회 현실이 변화되기란 어렵지만 조금씩 조금씩 이렇게 변화되고 진전하는 문화예술계를 계속해서 지켜보고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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