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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는 여기까지

이음광장 세상이 정한 대로? 내 선택으로!

  • 김리후 배우
  • 등록일 2022-06-15
  • 조회수886

이 글을 시작하기 전에 내가 누구이며, 어떤 일을 해왔고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지 소개해야 하는데, 이건 정말이지 어려운 것 같다. 배우, 모델, 방송인 외에도 수어를 주 언어로 삼고 의사소통을 하는 농(Deaf) 사회의 구성원으로서도 정말 다양한 활동을 했었기에 배우님 선생님 등 다양한 호칭으로 불린다. 그런 만큼 어떤 한 단어로 딱 정해서 직업과 함께 심플한 소개를 하는 게 참 쉽지가 않다.

나는 경기도 출신 1990년생으로 올해 서른세 살이고, 이 글은 배우에 관한 내용을 주로 다룰 것 같으니 영화배우인 것으로 하자. 단편영화로 데뷔한 지는 벌써 12년 차다. 으레 나에게 연기자로 데뷔하게 된 계기나 동기를 물어오는데, 그 질문은 다른 배우에게도 할 수 있는 흔한 질문이겠지만, 질문을 듣는 빈도는 아무래도 결코 비슷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청각장애가 있고, 우리나라 사회가 정한 장애의 분류 따위를 기준으로 굳이 부가적인 설명을 더하면 2급에 해당했다가 중증이 된 장애인이다. 언제부터 청력 손실이 있었는지, 얼마나 안 들리는 건지, 몇 급인지가 왜 궁금한지, 내 배우 활동이나 필모그래피를 알아가는 것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이제는 무례하다는 불쾌한 감정도 무뎌져 그냥 그러려니 한다. 그렇게 대답을 하면 꼭 당연하듯 정해진 절차마냥 이제는 어떻게 배우가 됐는지 혹은 왜 배우를 하게 됐냐는 질문이 들어올 순서다. 여태까지 인터뷰에 응할 때마다 나의 대답은 똑같았지만, 그것을 다듬고 정리하는 사람은 다 다른 사람이었기에 어쩌면 날것 그대로인 구체적인 대답은 이번이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소위 말하는 일반 학교에 다녔다. (‘일반 학교’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거부감이 든다. 그렇다면, 특수학교나 농학교는 일반적이지가 않다는 의미일까.) 중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 진로적성검사를 한 적이 있었다. MBTI 성격유형검사처럼 문항에 맞는 답변에 체크하는 간단한 검사였다. 검사 결과는 예술 분야만 압도적으로 높고 나머지는 낮았을 뿐만 아니라 비등비등했기 때문에, 청각장애가 있던 나에게는 진학이나 취업 고민에 딱히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하긴, 장애 학생이 있을 거라는 고려를 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새내기 당시에도 그 기억 때문에 나름대로 신중하게 예술에 관한 질문이다 싶은 부분에는 아니오 혹은 거기에 근접한 답변으로 체크했는데도 결과는 거의 같았다. 결과가 실시간으로 바로 나와서 확인할 수 있는 온라인 형식도 아니고, 심지어 학교도 다르니 분명 전문기관이 동일한 곳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방황했다. 이미 나의 진로 고민에 대해서는 엄마와 얘기한 적이 있었고 어떻게 말을 꺼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자식을 향한 걱정과 뼈아픈 현실적인 조언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장애가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직업을 고르고 선택하는 과정부터가 순탄치 않을 것이며,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세상이 제시하는 선택지에 맞물리는 일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을 이미 수차례 들은 터라 꽤 마음고생이 심했었다.

가수가 꿈이었던 엄마를 닮아서인지 작사를 하거나 춤추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한번 방송에 나간 적이 있었다. 원래는 주 1회 분량으로 두 번 전국에 송출되는 방송이 나가는 것으로 얘기가 됐었지만, 이미 두 차례나 KBS <인간극장> 출연을 반대했었던 엄마는 이마저도 방송국 관계자와 협의해 1회 분량으로 송출되었다. 상당히 많은 촬영분을 잘라내고 대중에 나를 보이는 것으로 협의했던 엄마는 내 존재 자체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걱정했었다. 장애를 가진 자식을 둔 엄마가 나보다 한참 먼저 생판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수군대는 사람들을 상대했었으니, 당사자인 내가 겪게 될 미래를 생각하면 우려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대학을 갈지 취업을 할지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고3 때 학교 친구들과 종로에서 놀다가, 지금은 없어진 ‘피아노 거리’에 즐비했던 사주를 봐주는 곳 중 아무 한곳에서 직업운을 본 적이 있다. 거기서도 “예술 쪽이나 연예인을 할 팔자”라는 얘기를 들었다. 아니, 장애인한테 무슨 연예인이 가당키나 하냐, 그게 말이 되냐면서 화들짝 놀라 반문했지만, 어떻게 연예인이 되는지는 구체적으로 잘 모르겠고, 사주 자체가 그렇다고 대답했었다. 그냥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단순히 직업운을 보고 싶다고 한 게 다였기에, 이쯤 되면 정말 운명이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했었다.

그래도 여전히 아무런 선택도 하지 못한 채로 졸업했고, 거의 2년 동안 놀기만 했다. 그러다 문득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장애인치고는 잘생겼다, 탤런트 같다는 말을 해왔고, 중학생 때 방송작가 누나가 나에게 뭐가 되든 될 것 같다면서, ‘장애’를 핸디캡으로 여기지 말고 그걸 발판 삼아 날아올랐으면 한다는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그렇게 해서 사진 모델에 지원했다가, 우연히 그 잡지를 본 김조광수 감독님이 직접 연락을 주어 데뷔하게 됐다.

이 정도면 궁금증이 해소됐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충분한 것 같다. 어떻게 감독님,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 연기하는지는 다음 글에 길게 풀어나갈 예정이다. 끝맺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여기까지 하는 것으로 하자. (웃음)

김리후

김리후

영화배우, 모델, 유튜버. 한국농아청년회 국제이사, 한국농아방송 수어 뉴스 앵커·리포터로 활동했고, 한국농아인협회 중앙회에서 일하고 있다. KBS 스페셜 ‘너의 손이 빛나고 있어’ 수어 내레이션, 2019 동계 데플림픽 국제수화&영어 통역, EBS 라디오 ‘일상에 대하여’ 한국수어 통역 등 수어와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영화 <사랑은 100℃>(2010) <미드나잇 썬>(2014) 등에 출연했다.
인스타그램 바로가기(링크)
lihootv@gmail.com

김리후

김리후 

영화배우, 모델, 유튜버. 한국농아청년회 국제이사, 한국농아방송 수어 뉴스 앵커·리포터로 활동했고, 한국농아인협회 중앙회에서 일하고 있다. KBS 스페셜 ‘너의 손이 빛나고 있어’ 수어 내레이션, 2019 동계 데플림픽 국제수화&영어 통역, EBS 라디오 ‘일상에 대하여’ 한국수어 통역 등 수어와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영화 <사랑은 100℃>(2010) <미드나잇 썬>(2014) 등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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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내용

이 글을 시작하기 전에 내가 누구이며, 어떤 일을 해왔고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지 소개해야 하는데, 이건 정말이지 어려운 것 같다. 배우, 모델, 방송인 외에도 수어를 주 언어로 삼고 의사소통을 하는 농(Deaf) 사회의 구성원으로서도 정말 다양한 활동을 했었기에 배우님 선생님 등 다양한 호칭으로 불린다. 그런 만큼 어떤 한 단어로 딱 정해서 직업과 함께 심플한 소개를 하는 게 참 쉽지가 않다.

나는 경기도 출신 1990년생으로 올해 서른세 살이고, 이 글은 배우에 관한 내용을 주로 다룰 것 같으니 영화배우인 것으로 하자. 단편영화로 데뷔한 지는 벌써 12년 차다. 으레 나에게 연기자로 데뷔하게 된 계기나 동기를 물어오는데, 그 질문은 다른 배우에게도 할 수 있는 흔한 질문이겠지만, 질문을 듣는 빈도는 아무래도 결코 비슷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청각장애가 있고, 우리나라 사회가 정한 장애의 분류 따위를 기준으로 굳이 부가적인 설명을 더하면 2급에 해당했다가 중증이 된 장애인이다. 언제부터 청력 손실이 있었는지, 얼마나 안 들리는 건지, 몇 급인지가 왜 궁금한지, 내 배우 활동이나 필모그래피를 알아가는 것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이제는 무례하다는 불쾌한 감정도 무뎌져 그냥 그러려니 한다. 그렇게 대답을 하면 꼭 당연하듯 정해진 절차마냥 이제는 어떻게 배우가 됐는지 혹은 왜 배우를 하게 됐냐는 질문이 들어올 순서다. 여태까지 인터뷰에 응할 때마다 나의 대답은 똑같았지만, 그것을 다듬고 정리하는 사람은 다 다른 사람이었기에 어쩌면 날것 그대로인 구체적인 대답은 이번이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소위 말하는 일반 학교에 다녔다. (‘일반 학교’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거부감이 든다. 그렇다면, 특수학교나 농학교는 일반적이지가 않다는 의미일까.) 중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 진로적성검사를 한 적이 있었다. MBTI 성격유형검사처럼 문항에 맞는 답변에 체크하는 간단한 검사였다. 검사 결과는 예술 분야만 압도적으로 높고 나머지는 낮았을 뿐만 아니라 비등비등했기 때문에, 청각장애가 있던 나에게는 진학이나 취업 고민에 딱히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하긴, 장애 학생이 있을 거라는 고려를 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새내기 당시에도 그 기억 때문에 나름대로 신중하게 예술에 관한 질문이다 싶은 부분에는 아니오 혹은 거기에 근접한 답변으로 체크했는데도 결과는 거의 같았다. 결과가 실시간으로 바로 나와서 확인할 수 있는 온라인 형식도 아니고, 심지어 학교도 다르니 분명 전문기관이 동일한 곳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방황했다. 이미 나의 진로 고민에 대해서는 엄마와 얘기한 적이 있었고 어떻게 말을 꺼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자식을 향한 걱정과 뼈아픈 현실적인 조언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장애가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직업을 고르고 선택하는 과정부터가 순탄치 않을 것이며,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세상이 제시하는 선택지에 맞물리는 일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을 이미 수차례 들은 터라 꽤 마음고생이 심했었다.

가수가 꿈이었던 엄마를 닮아서인지 작사를 하거나 춤추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한번 방송에 나간 적이 있었다. 원래는 주 1회 분량으로 두 번 전국에 송출되는 방송이 나가는 것으로 얘기가 됐었지만, 이미 두 차례나 KBS <인간극장> 출연을 반대했었던 엄마는 이마저도 방송국 관계자와 협의해 1회 분량으로 송출되었다. 상당히 많은 촬영분을 잘라내고 대중에 나를 보이는 것으로 협의했던 엄마는 내 존재 자체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걱정했었다. 장애를 가진 자식을 둔 엄마가 나보다 한참 먼저 생판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수군대는 사람들을 상대했었으니, 당사자인 내가 겪게 될 미래를 생각하면 우려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대학을 갈지 취업을 할지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고3 때 학교 친구들과 종로에서 놀다가, 지금은 없어진 ‘피아노 거리’에 즐비했던 사주를 봐주는 곳 중 아무 한곳에서 직업운을 본 적이 있다. 거기서도 “예술 쪽이나 연예인을 할 팔자”라는 얘기를 들었다. 아니, 장애인한테 무슨 연예인이 가당키나 하냐, 그게 말이 되냐면서 화들짝 놀라 반문했지만, 어떻게 연예인이 되는지는 구체적으로 잘 모르겠고, 사주 자체가 그렇다고 대답했었다. 그냥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단순히 직업운을 보고 싶다고 한 게 다였기에, 이쯤 되면 정말 운명이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했었다.

그래도 여전히 아무런 선택도 하지 못한 채로 졸업했고, 거의 2년 동안 놀기만 했다. 그러다 문득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장애인치고는 잘생겼다, 탤런트 같다는 말을 해왔고, 중학생 때 방송작가 누나가 나에게 뭐가 되든 될 것 같다면서, ‘장애’를 핸디캡으로 여기지 말고 그걸 발판 삼아 날아올랐으면 한다는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그렇게 해서 사진 모델에 지원했다가, 우연히 그 잡지를 본 김조광수 감독님이 직접 연락을 주어 데뷔하게 됐다.

이 정도면 궁금증이 해소됐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충분한 것 같다. 어떻게 감독님,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 연기하는지는 다음 글에 길게 풀어나갈 예정이다. 끝맺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여기까지 하는 것으로 하자. (웃음)

김리후

김리후

영화배우, 모델, 유튜버. 한국농아청년회 국제이사, 한국농아방송 수어 뉴스 앵커·리포터로 활동했고, 한국농아인협회 중앙회에서 일하고 있다. KBS 스페셜 ‘너의 손이 빛나고 있어’ 수어 내레이션, 2019 동계 데플림픽 국제수화&영어 통역, EBS 라디오 ‘일상에 대하여’ 한국수어 통역 등 수어와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영화 <사랑은 100℃>(2010) <미드나잇 썬>(2014) 등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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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4 13: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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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선택한 대로 인생을 걸어가는 모습에서 멋짐이 느껴집니다. 어려운 현실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여러 분야에서 자신감있게 활동하고 계시다는 인터뷰를 보며 좋은 에너지를 얻어갑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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