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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등한 소통으로서의 번역과 통역

이슈 공동의 성취를 향한 서로의 노력과 배려

  • 송윤 배우
  • 등록일 2022-07-27
  • 조회수690

이슈

사람은 하루에 7천 개에서 2만 개의 단어를 말한다고 한다. 이 많은 단어 중 단 한 단어만으로도 사람을 웃게 할 수도, 울게 할 수도 있다. 어떤 단어를 선택할지 어떤 방식으로 대화할지 신중하지 않으면 소통이 어려워질 수 있다. 소통의 과정은 어렵지만 꼭 필요한 부분이다. 수어는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신세계이고 새로운 방식의 소통이었다.

어느 날 명동성당에 수어 교실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농인과 대화하고 싶기도 하고, 배우로서 특기가 될 수 있겠다, 재미있겠다 등의 이유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렇게 입문한 수어의 매력에 빠져 수어 전문교육원까지 등록해 배움을 이어나간 지 6년의 세월이 흘렀다. 덕분에 지금은 여러 공연에 수어통역사로, 수어를 하는 배우로 참여하고 있다. 수어가 낯선 비장애인(청인)의 입장에서는 조금이나마 수어를 아는 내가 신기하고 실력자로 보였던 모양이다. 사실 이제 갓 걸음마를 뗐을 뿐인데…. 가끔 수어통역 의뢰가 들어올 때면 아직은 너무 어렵고 겁부터 나서 거절도 여러 번 했다.

수어는 한국어 문장과 순서가 다르다. 예를 들면 “예쁜 꽃”이라는 표현은 수어로 “꽃 예뻐”, “뭐야 이거?”는 “이거 뭐?”라는 식으로 표현이 된다. 공연할 때도 대본을 수어에 맞게 번역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외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해야 하듯이, 한국어를 한국수어로 번역하지 않으면 농인은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 지금도 나에게 수어 번역은 너무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라 급하게 의뢰를 받게 되면 상황을 설명하고 정중히 거절한다. 그럴 때면 대부분 “아! 저희가 너무 쉽게 생각했나 봐요. 글을 보거나 들으면 바로 번역이 되고 통역이 되는 줄 알았어요”라는 반응을 보인다. 비슷한 예로 “수어 공부는 얼마나 하면 잘해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음…, 영어는 공부를 얼마나 하면 잘할 수 있을까요? 수어도 똑같아요. 아마 평생 공부해야 할거에요”라고 설명한다. 부끄럽지만 나도 같은 질문을 했었다.

수어를 배우고 있는 배우의 입장에서 수어통역사는 참 대단해 보인다. 극한 직업이기도 하다. 최근 공연들을 보면 수어통역사의 역할이 고정된 위치에서 벗어나 무대에 직접 오르기도 하고 배우와 함께 움직이며 그림자 역할로 앙상블을 이루며 통역하기도 한다. 모든 방식을 다 존중하고 새로운 시도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반면에 이런 생각도 든다. 배우와 수어통역사가 함께 움직이면 관객이 배우를 봐야 할지 수어통역사를 봐야 할지 헷갈리지 않을까? 만약 배우만 보고 싶은 관객이라면 수어통역사의 움직임이 관람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해결책은 있을까? 연습에 농인과 청인 관객을 초청해서 접근성에 대한 모니터링과 자문을 구하는 건 어떨까? 아직은 답을 몰라 이런저런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요즘 배리어프리 공연에 참여하게 되면서 장애인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모두 다 소중한 공연이었지만, 농인 배우와 함께했던 <브레이크: BREAK>(공연영상 바로가기 링크)와 시각장애인 배우와 상대 배역으로 호흡을 맞춘 <나인프리다>(공연 리뷰 바로가기 링크)에서의 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농인 배우와 연습할 때 팀원들과 공연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종종 가졌는데, 그가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한 점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다 이해했다고는 하는데 아무래도 표정은 그렇지가 않은 것 같아서 다시 물으니, 사실 잘 모르겠는데 연습의 흐름이 끊길까 봐 표현을 못했다고 했다. 중간에서 내가 수어통역을 하긴 했지만 부족한 실력 탓인지 전달이 잘 안 된 것 같아서 너무 미안했다. 팀원들은 시각 중심인 농인 배우를 위해 간단한 수어를 배우기도 하고, 얼굴을 마주 보며 또박또박 얘기하고, 몸짓과 필담으로 소통했다.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수어통역과 음성통역을 했다. 농인 배우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생기면 질문을 하고 대화를 통해 답을 찾아 나갔다. 서로의 불편함에 관해 대화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면서 한 발짝 다가간 것 같았다.

시각장애인 배우와 함께 작업할 때도 대화를 통해 불편함을 해결하고 소통했다. 연습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배우와 시선을 맞출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껏 상대 배우와 눈을 마주치고 교감하며 마음의 대화를 나눴었는데 그럴 수가 없어서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시각장애인 배우의 뛰어난 암기력은 나를 더욱 긴장시켰다. 상대 배우는 연습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채 안 돼서 대본 암기를 끝냈는데, 아직 대본을 손에서 놓지 못했던 나는 부끄럽고 자존심도 상하고 그에게 폐를 끼칠까 봐 밤새 대사를 외우고 갔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그에게서, 자신의 장애가 연습에 방해될까 봐 최대한 빨리 대본을 숙지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듣고 괜히 미안했다.

당시에 연출은 내가 그에게 폐를 끼친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장애인 배우는 무조건 도와주고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물었다. 내가 그랬던 걸까? 몰랐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배려하고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배려는 상대방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또 미안해졌다. 그 후부터는 뭐든 많이 물어보고, 시선을 맞출 수 없어 불편한 점 등을 솔직히 얘기하고 도움을 청했다. 연습을 통해서 약속을 만들어 시선 방향을 맞추기도 하고, 상대방의 음성이나 호흡을 통해 감정을 느끼려고 노력하면서 소통과 협업을 조금이나마 배우게 되었다.

대화가 없으면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알아가야 하지 않을까. 이 간단한 진리를 매번 잊어버리고 또 깨닫기를 반복하지만, 이런 노력이 소통이고 협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소통의 중간 다리 역할을 잘 해내고 싶고 끊임없이 발전하는 배우이자 수어통역사가 되고자 노력할 것이다.

  • 2020 무장애예술주간 기획공연 <브레이크: BREAK> 공연 장면

  • 2021 무장애예술주간 기획공연 <나인프리다>
    (촬영. 박수환)

송윤

연극배우이자 수어통역사 또는 수어 배우로 무대에 선다. 2021 무장애예술주간 기획공연 <나인프리다>, <브레이크: BREAK>, 뮤지컬 <합체>에 수어 배우로 참여했다. 뮤지컬 <합체>, 음악극 <가족>, 소리극 <옥이> 등 공연에 수어통역으로 참여했다.
pretty3838@hanmail.net

사진 제공.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022년 8월 (33호)

상세내용

이슈

사람은 하루에 7천 개에서 2만 개의 단어를 말한다고 한다. 이 많은 단어 중 단 한 단어만으로도 사람을 웃게 할 수도, 울게 할 수도 있다. 어떤 단어를 선택할지 어떤 방식으로 대화할지 신중하지 않으면 소통이 어려워질 수 있다. 소통의 과정은 어렵지만 꼭 필요한 부분이다. 수어는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신세계이고 새로운 방식의 소통이었다.

어느 날 명동성당에 수어 교실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농인과 대화하고 싶기도 하고, 배우로서 특기가 될 수 있겠다, 재미있겠다 등의 이유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렇게 입문한 수어의 매력에 빠져 수어 전문교육원까지 등록해 배움을 이어나간 지 6년의 세월이 흘렀다. 덕분에 지금은 여러 공연에 수어통역사로, 수어를 하는 배우로 참여하고 있다. 수어가 낯선 비장애인(청인)의 입장에서는 조금이나마 수어를 아는 내가 신기하고 실력자로 보였던 모양이다. 사실 이제 갓 걸음마를 뗐을 뿐인데…. 가끔 수어통역 의뢰가 들어올 때면 아직은 너무 어렵고 겁부터 나서 거절도 여러 번 했다.

수어는 한국어 문장과 순서가 다르다. 예를 들면 “예쁜 꽃”이라는 표현은 수어로 “꽃 예뻐”, “뭐야 이거?”는 “이거 뭐?”라는 식으로 표현이 된다. 공연할 때도 대본을 수어에 맞게 번역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외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해야 하듯이, 한국어를 한국수어로 번역하지 않으면 농인은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 지금도 나에게 수어 번역은 너무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라 급하게 의뢰를 받게 되면 상황을 설명하고 정중히 거절한다. 그럴 때면 대부분 “아! 저희가 너무 쉽게 생각했나 봐요. 글을 보거나 들으면 바로 번역이 되고 통역이 되는 줄 알았어요”라는 반응을 보인다. 비슷한 예로 “수어 공부는 얼마나 하면 잘해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음…, 영어는 공부를 얼마나 하면 잘할 수 있을까요? 수어도 똑같아요. 아마 평생 공부해야 할거에요”라고 설명한다. 부끄럽지만 나도 같은 질문을 했었다.

수어를 배우고 있는 배우의 입장에서 수어통역사는 참 대단해 보인다. 극한 직업이기도 하다. 최근 공연들을 보면 수어통역사의 역할이 고정된 위치에서 벗어나 무대에 직접 오르기도 하고 배우와 함께 움직이며 그림자 역할로 앙상블을 이루며 통역하기도 한다. 모든 방식을 다 존중하고 새로운 시도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반면에 이런 생각도 든다. 배우와 수어통역사가 함께 움직이면 관객이 배우를 봐야 할지 수어통역사를 봐야 할지 헷갈리지 않을까? 만약 배우만 보고 싶은 관객이라면 수어통역사의 움직임이 관람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해결책은 있을까? 연습에 농인과 청인 관객을 초청해서 접근성에 대한 모니터링과 자문을 구하는 건 어떨까? 아직은 답을 몰라 이런저런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요즘 배리어프리 공연에 참여하게 되면서 장애인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모두 다 소중한 공연이었지만, 농인 배우와 함께했던 <브레이크: BREAK>(공연영상 바로가기 링크)와 시각장애인 배우와 상대 배역으로 호흡을 맞춘 <나인프리다>(공연 리뷰 바로가기 링크)에서의 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농인 배우와 연습할 때 팀원들과 공연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종종 가졌는데, 그가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한 점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다 이해했다고는 하는데 아무래도 표정은 그렇지가 않은 것 같아서 다시 물으니, 사실 잘 모르겠는데 연습의 흐름이 끊길까 봐 표현을 못했다고 했다. 중간에서 내가 수어통역을 하긴 했지만 부족한 실력 탓인지 전달이 잘 안 된 것 같아서 너무 미안했다. 팀원들은 시각 중심인 농인 배우를 위해 간단한 수어를 배우기도 하고, 얼굴을 마주 보며 또박또박 얘기하고, 몸짓과 필담으로 소통했다.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수어통역과 음성통역을 했다. 농인 배우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생기면 질문을 하고 대화를 통해 답을 찾아 나갔다. 서로의 불편함에 관해 대화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면서 한 발짝 다가간 것 같았다.

시각장애인 배우와 함께 작업할 때도 대화를 통해 불편함을 해결하고 소통했다. 연습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배우와 시선을 맞출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껏 상대 배우와 눈을 마주치고 교감하며 마음의 대화를 나눴었는데 그럴 수가 없어서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시각장애인 배우의 뛰어난 암기력은 나를 더욱 긴장시켰다. 상대 배우는 연습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채 안 돼서 대본 암기를 끝냈는데, 아직 대본을 손에서 놓지 못했던 나는 부끄럽고 자존심도 상하고 그에게 폐를 끼칠까 봐 밤새 대사를 외우고 갔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그에게서, 자신의 장애가 연습에 방해될까 봐 최대한 빨리 대본을 숙지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듣고 괜히 미안했다.

당시에 연출은 내가 그에게 폐를 끼친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장애인 배우는 무조건 도와주고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물었다. 내가 그랬던 걸까? 몰랐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배려하고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배려는 상대방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또 미안해졌다. 그 후부터는 뭐든 많이 물어보고, 시선을 맞출 수 없어 불편한 점 등을 솔직히 얘기하고 도움을 청했다. 연습을 통해서 약속을 만들어 시선 방향을 맞추기도 하고, 상대방의 음성이나 호흡을 통해 감정을 느끼려고 노력하면서 소통과 협업을 조금이나마 배우게 되었다.

대화가 없으면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알아가야 하지 않을까. 이 간단한 진리를 매번 잊어버리고 또 깨닫기를 반복하지만, 이런 노력이 소통이고 협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소통의 중간 다리 역할을 잘 해내고 싶고 끊임없이 발전하는 배우이자 수어통역사가 되고자 노력할 것이다.

  • 2020 무장애예술주간 기획공연 <브레이크: BREAK> 공연 장면

  • 2021 무장애예술주간 기획공연 <나인프리다>
    (촬영. 박수환)

송윤

연극배우이자 수어통역사 또는 수어 배우로 무대에 선다. 2021 무장애예술주간 기획공연 <나인프리다>, <브레이크: BREAK>, 뮤지컬 <합체>에 수어 배우로 참여했다. 뮤지컬 <합체>, 음악극 <가족>, 소리극 <옥이> 등 공연에 수어통역으로 참여했다.
pretty3838@hanmail.net

사진 제공.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022년 8월 (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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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2 18:5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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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통역사가 극한 직업이란 점을 칼럼을 통해 간접적이지만 마음에 많은 공감을 하게 됩니다. 일방적 배려는 오히려 상대에게 불편을 주기도 하지요. 소통의 중간다리 역할이라는 어려운자리에서 부단히 노력하시고 고민하시는 글쓴 송윤 배우님은 분명 더 성공하리라 생각합니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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