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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학으로 읽는 문학③

이음광장 다르고, 알 수 없는 세계의 만남

  • 차희정 문학평론가
  • 등록일 2022-08-10
  • 조회수865

현재도 장애(인)를 바라보는 비장애(인)의 시선은 폭력적이다. 여기서 폭력적이란 낯섦에서 기인한 두려움, 경계, 냉담, 차별과 배제 등의 언어적·실천적 행위 및 과도한 동정이나 연민 등 공감 유사 감정의 재현까지를 포함한다. 낯설다는 인식은 곧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것이기에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일련의 폭력적 행위들은 셀 수 없이 다양한 양상으로 표출되어왔다. 이러한 인식은 장애적 사회 환경을 구축하는 데도 힘을 실었고, 또 그로부터 영향받으며 차별 담론을 공고히 하는 데도 역할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차별적이고 위계적인 장애 인식과 언어 등에 문제를 제기하는 장애학의 탄생에도 이바지했다.

장애학은 육체적이고 정신적 ‘차이’를 열등함의 근거로 간주하고 장애(인)에 차등한 권력과 지위를 배정하려는 일련의 태도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한다. 즉,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양산한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체계와 구조를 비판하고, 그 대안을 모색한다. 같은 맥락에서, 장애학에 기반한 소설 탐구는 그동안 문학 담론에서 배제되고 무화(無化)되었던 장애(인)의 다름의 다양성에 주목한다. 소설 속 장애인 캐릭터는 문학의 새로운 ‘읽기’를 제공하고 그 의미와 의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주체이다.

2016년 황순원문학상과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정용준의 「선릉 산책」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각각의 주체로서 서로의 세계를 ‘관찰’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흥미롭다. 서술자인 비장애인 ‘나’와 또 다른 주인공인 자폐장애인 ‘한두운’은 서로의 세계를 관찰하고 경험하며 두 세계의 공존 가능성과 그 방식을 생각하도록 자극한다.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경험

소설의 서술자인 ‘나’는 선배 대신 “땜빵으로” 자폐장애인 ‘한두운’을 돌보는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선릉역에서 만난 한두운은 헤드기어를 쓰고, 20kg은 돼 보이는 배낭을 메고 있다. 이보다 더 특별한 것은 침을 뱉거나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몸이 꺾인 듯 걷는 모습이다. 나는 온종일 두운과 선릉을 산책하면서 그의 돌발행동에 망연자실하고, 일련의 기분 상함을 적극적으로 감추지 않기 위해서 명령과 억압의 말하기를 지속한다.

그러나 나는 두운과 함께 걸으며 바람을 ‘보고’ 느끼며 그의 잰 몸놀림에 ‘파피용’이란 단어를 말하고부터 관찰하는 태도가 변화하기 시작한다. 나는 두운이 듣는지 안 듣는지 모를 대학 시절 권투 시합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쓰고 있는 헤드기어를 벗겨주고, 그로부터 알지 못하는 갖가지 나무 이름을 듣는 데까지 이른다. 일관되게 반응하지 않던 두운이 이제 나를 보고, 내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타자와 그의 언어를 몸이 느끼고 인식한 결과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지각의 현상학』에서 “대상을 인식하는 주체는 인간의 몸이라는 것인데 손상이 있는 장애인의 몸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라고 했다. 그가 말한 대로 지각하는 인간의 ‘몸’만이 세상을 연결하는 주체라고 이해한다면, 장애인의 몸 또한 ‘세계-에의-존재(l'être-au-monde)’로서 비장애인의 몸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몸은 세계 속에 존재하는 동시에 세계 속으로 나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두운은 침을 뱉었다고 격분한 청소년들의 주먹세례를 나비처럼 가볍게 피하고는, 자기 얼굴과 머리를 무지막지하게 때리는 것으로 참아온 분노를 표출했다. 그리고 나는 도착한 두운의 이모로부터 다그침을 당하고, 보호자의 고통의 울부짖음을 들으면서도 살기가 번뜩였거나 공허로 투명했던 눈이 아닌, ‘다른’ 두운의 눈을 ‘본’다. 두운이 몸으로 인식한 세계에 존재했던 나는 그와 엉켜 드러누운 채 두운의 세계를 경험하고 인식했다. 몸과 영혼은 분리되지 않는다. 나와 두운은 다른 세계가 만나는 경험을 통해 서로를 관찰했을 뿐이다.

다양한 세계의 공존을 위하여

나는 두운과 선릉을 산책하던 중에 그의 가볍고 재빠른 몸놀림을 보고 ‘파피용’이라 말했다. 그리고 대학 시절 “파피용!!”이라 응원받으며 권투 시합에 출전했던 이야기를 이어갔다. ‘파피용’은 프랑스어로 ‘나비’란 뜻이다. 그런데 이는 우리말과 달리 나방과 나비를 구분하지 못한다. 일체의 확실성을 해체하고 탐색하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기표(signifiant)들 간의 관계로 기의(signifié)가 정해진다는 구조주의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기표는 무수히 많으므로 다른 기표들과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기의는 영원히 결정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즉 ‘파피용’은 나비이지만 나비가 아닐 수도 있고, 나방일 수도 있으며 다른 의미를 가지는 무엇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한두운, 그의 세계 또한 특정한 단어나 명제로 명명할 수 없다. 그저 ‘다른’ 세계를 인정하고 관찰하고 바라보는 것만이 유일한 공존의 방식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상단에 제16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정용준 선릉산책, 최종후보작 8개 작품과 작가 이름이 나열돼 있다. 파랑색과 초록색으로 된 몸통의 말 형상 일러스트가 전면에 있다. 몸통 한쪽엔 세 그루 나무, 한쪽엔 두 사람이 그려져 있다.

    『제16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2016)
    사진 출처. 중앙북스

차희정

차희정

현대 소설 연구자로 장애인문학을 연구하고, 문예지에 장애인문학 비평을 게재하고 있다. 대구대학교 대학원에서 장애인 예술을, 경희대, 경찰대, 아주대 등에서 글쓰기와 문화예술비평을 강의하고 있다.
whywhat33@naver.com

차희정

차희정 

현대 소설 연구자로 장애인문학을 연구하고, 문예지에 장애인문학 비평을 게재하고 있다. 대구대학교 대학원에서 장애인 예술을, 경희대, 경찰대, 아주대 등에서 글쓰기와 문화예술비평을 강의하고 있다.
whywhat33@naver.com

상세내용

현재도 장애(인)를 바라보는 비장애(인)의 시선은 폭력적이다. 여기서 폭력적이란 낯섦에서 기인한 두려움, 경계, 냉담, 차별과 배제 등의 언어적·실천적 행위 및 과도한 동정이나 연민 등 공감 유사 감정의 재현까지를 포함한다. 낯설다는 인식은 곧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것이기에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일련의 폭력적 행위들은 셀 수 없이 다양한 양상으로 표출되어왔다. 이러한 인식은 장애적 사회 환경을 구축하는 데도 힘을 실었고, 또 그로부터 영향받으며 차별 담론을 공고히 하는 데도 역할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차별적이고 위계적인 장애 인식과 언어 등에 문제를 제기하는 장애학의 탄생에도 이바지했다.

장애학은 육체적이고 정신적 ‘차이’를 열등함의 근거로 간주하고 장애(인)에 차등한 권력과 지위를 배정하려는 일련의 태도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한다. 즉,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양산한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체계와 구조를 비판하고, 그 대안을 모색한다. 같은 맥락에서, 장애학에 기반한 소설 탐구는 그동안 문학 담론에서 배제되고 무화(無化)되었던 장애(인)의 다름의 다양성에 주목한다. 소설 속 장애인 캐릭터는 문학의 새로운 ‘읽기’를 제공하고 그 의미와 의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주체이다.

2016년 황순원문학상과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정용준의 「선릉 산책」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각각의 주체로서 서로의 세계를 ‘관찰’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흥미롭다. 서술자인 비장애인 ‘나’와 또 다른 주인공인 자폐장애인 ‘한두운’은 서로의 세계를 관찰하고 경험하며 두 세계의 공존 가능성과 그 방식을 생각하도록 자극한다.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경험

소설의 서술자인 ‘나’는 선배 대신 “땜빵으로” 자폐장애인 ‘한두운’을 돌보는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선릉역에서 만난 한두운은 헤드기어를 쓰고, 20kg은 돼 보이는 배낭을 메고 있다. 이보다 더 특별한 것은 침을 뱉거나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몸이 꺾인 듯 걷는 모습이다. 나는 온종일 두운과 선릉을 산책하면서 그의 돌발행동에 망연자실하고, 일련의 기분 상함을 적극적으로 감추지 않기 위해서 명령과 억압의 말하기를 지속한다.

그러나 나는 두운과 함께 걸으며 바람을 ‘보고’ 느끼며 그의 잰 몸놀림에 ‘파피용’이란 단어를 말하고부터 관찰하는 태도가 변화하기 시작한다. 나는 두운이 듣는지 안 듣는지 모를 대학 시절 권투 시합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쓰고 있는 헤드기어를 벗겨주고, 그로부터 알지 못하는 갖가지 나무 이름을 듣는 데까지 이른다. 일관되게 반응하지 않던 두운이 이제 나를 보고, 내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타자와 그의 언어를 몸이 느끼고 인식한 결과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지각의 현상학』에서 “대상을 인식하는 주체는 인간의 몸이라는 것인데 손상이 있는 장애인의 몸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라고 했다. 그가 말한 대로 지각하는 인간의 ‘몸’만이 세상을 연결하는 주체라고 이해한다면, 장애인의 몸 또한 ‘세계-에의-존재(l'être-au-monde)’로서 비장애인의 몸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몸은 세계 속에 존재하는 동시에 세계 속으로 나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두운은 침을 뱉었다고 격분한 청소년들의 주먹세례를 나비처럼 가볍게 피하고는, 자기 얼굴과 머리를 무지막지하게 때리는 것으로 참아온 분노를 표출했다. 그리고 나는 도착한 두운의 이모로부터 다그침을 당하고, 보호자의 고통의 울부짖음을 들으면서도 살기가 번뜩였거나 공허로 투명했던 눈이 아닌, ‘다른’ 두운의 눈을 ‘본’다. 두운이 몸으로 인식한 세계에 존재했던 나는 그와 엉켜 드러누운 채 두운의 세계를 경험하고 인식했다. 몸과 영혼은 분리되지 않는다. 나와 두운은 다른 세계가 만나는 경험을 통해 서로를 관찰했을 뿐이다.

다양한 세계의 공존을 위하여

나는 두운과 선릉을 산책하던 중에 그의 가볍고 재빠른 몸놀림을 보고 ‘파피용’이라 말했다. 그리고 대학 시절 “파피용!!”이라 응원받으며 권투 시합에 출전했던 이야기를 이어갔다. ‘파피용’은 프랑스어로 ‘나비’란 뜻이다. 그런데 이는 우리말과 달리 나방과 나비를 구분하지 못한다. 일체의 확실성을 해체하고 탐색하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기표(signifiant)들 간의 관계로 기의(signifié)가 정해진다는 구조주의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기표는 무수히 많으므로 다른 기표들과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기의는 영원히 결정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즉 ‘파피용’은 나비이지만 나비가 아닐 수도 있고, 나방일 수도 있으며 다른 의미를 가지는 무엇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한두운, 그의 세계 또한 특정한 단어나 명제로 명명할 수 없다. 그저 ‘다른’ 세계를 인정하고 관찰하고 바라보는 것만이 유일한 공존의 방식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상단에 제16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정용준 선릉산책, 최종후보작 8개 작품과 작가 이름이 나열돼 있다. 파랑색과 초록색으로 된 몸통의 말 형상 일러스트가 전면에 있다. 몸통 한쪽엔 세 그루 나무, 한쪽엔 두 사람이 그려져 있다.

    『제16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2016)
    사진 출처. 중앙북스

차희정

차희정

현대 소설 연구자로 장애인문학을 연구하고, 문예지에 장애인문학 비평을 게재하고 있다. 대구대학교 대학원에서 장애인 예술을, 경희대, 경찰대, 아주대 등에서 글쓰기와 문화예술비평을 강의하고 있다.
whywhat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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