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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속 장애인식 톺아보기

이슈 장애를 온전히 드러낼 ‘왜곡 없는 거울’은 가능한가

  • 백수정 대중문화비평 활동가
  • 등록일 2022-08-24
  • 조회수1420

2008년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이후 장애인 인권 교육이 의무화되는 등 장애인의 권리 보장, 권리침해나 차별에 대한 인식은 예전보다 높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2019년 국가인권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9.1%가 한국에서 차별이 심각하다고 답했고, 인권침해와 차별을 가장 많이 받는 집단으로는 장애인(36.2%), 여성(16.4%), 이주민(4.7%), 노인 (13.1%) 순으로 조사되었다. 대중은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차별이 예전보다 줄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인식은 사회 전반에, 또 각 분야에 퍼져 있고 깊게 배어 있다.

미디어는 어떨까? 문화예술 분야를 다루는 전통적 매체 중에서도 가장 보편적인 매체인 방송, 신문을 중심으로 그 속에 배어 있는 장애 인식과 이로 인한 재현 방식, 변화한 미디어 환경에서의 긍정적인 움직임 등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장애인이 없는 제작 현장

흔히 미디어를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라 한다. 과연 그럴까? 나는 동의하지 않는 편에 가깝다. 미디어는 재현의 매체이다. 재현은 필연적으로 재현하는 주체의 시각과 인식에 의해 굴절될 수밖에 없다.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 신문 기사, 다큐멘터리처럼 기본적으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야 하는 프로그램에서조차도 만든이의 관점이나 인식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내용과 메시지가 다르게 전달된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대중문화 콘텐츠 속 이미지들은 대중의 생각과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힘도 가진다.

현재 대중매체 콘텐츠를 제작하는 주체는 대부분 우리 사회의 주류다. 여성보다는 남성이, 노인보다는 중년 또는 젊은 층이 제작 일선에 있고, 이 중에서도 장애가 있는 사람은 (배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우 드물며 중증 장애를 가진 제작진은 거의 없다. 「2021년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15세 이상 장애 인구 중 경제활동참가율은 37.3%로 전체 인구의 경제활동참가율(63.7%)과의 격차가 크게 나타났다. 특히 장애인 취업자의 직장 산업분류에서 미디어 산업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산업현장 전반, 특히 미디어 산업현장 내 제작 주체로서의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이로 인한 낮은 고용 현실을 보여준다. 이런 현실이 결국 장애인이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빈도, 장애와 관련한 주제를 선정하고 다루는 빈도를 결정하며 비장애인 중심의 제작 현실에서 관점이나 재현 방식에 영향을 주어, 장애인 당사자의 생각이 반영되지 않거나 사실과 다른 왜곡된 이미지를 생산하는 데 영향을 준다. 나아가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 혐오감 등 부정적 인식을 형성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미디어 속 가려진 장애인

실제로 「2019년 미디어 다양성 조사」를 보면 국내 TV 채널 기준 드라마, 뉴스, 예능 버라이어티, 탐사 프로그램에서 전체 출연자 중 장애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1%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탐사 프로그램에서는 총 202명의 출연자 중 장애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와 관련해 한국장애인권포럼 장애정책모니터링센터에서 진행한 「2021년 미디어 모니터 결과보고서」를 살펴보면, 뉴스는 약 46만 건의 기사 중 장애 관련 기사가 332건으로 0.7%에 불과했고, 시사 프로그램은 246건 중 장애 관련 주제는 5건에 불과했다. 또 드라마는 모니터링 대상인 20개 작품 중에서 장애인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3개였으며,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장애를 가진 예능인이나 방송인, 스포츠인 등의 출연도 없었다. 이렇게 모든 장르에서 장애 캐릭터 혹은 장애 당사자가 등장하거나 장애와 관련한 주제를 선정해 다루는 빈도는 현저히 낮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뉴스 프로그램에서 조금이나마 변화가 읽힌다는 점이다. 「2021년 미디어 모니터 결과보고서」를 보면 장애 관련 332건의 기사 중 패럴림픽 관련 기사와 인터뷰를 제외하면 장애인 인권·권리 관련 기사 54건, 자립·탈시설, 제도·행정, 접근성·편의, 교육·학습 기사 각 19건, 그리고 노동·취업, 문화·관광·예술 관련 각 10건으로 조사되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전은 물론이고 시행 후 10년이 지난 시점까지만 해도 장애 관련 기사들은 인간 승리나 장애 극복, 영웅 등의 관점에서 재현하거나 묘사하는 것이 보편적이었고, 미담이나 사건 사고, 행사 관련 기사가 전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분명히 이전과는 달라진 양상이다. 장애 인식 개선 노력과 인권 운동의 결과라 볼 수 있어 긍정적이고 유의미하다고 본다.

문제는 기사의 양이 현저하게 적다는 것과 등장과 재현에 담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다. 한 예로, 지난해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유세현장이나 선거 당일 투표소 현장 취재기사에서 장애인 유권자의 목소리와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선거권을 가진 동등한 국민으로서는 존재감이 없고, 투표소의 장애인 접근성만을 조명하는 방식에서 시청자들은 어떤 인식을 갖게 될까? 의도적이지는 않았겠지만, 장애인을 정치적 의견, 요구 등을 발언하고 행사하는 권리 주체로 인식하는 것에 취약한 사회임이 드러난 것 아닐까?

장애인식과 재현

「2021년 미디어 모니터 결과보고서」에서는 드라마 속 장애를 가진 사람은 여전히 보호와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투영돼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능의 경우는 비하 용어나 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사례는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장애 특성을 희화화해서 조롱하고 혐오감을 조장하는 행태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 조사의 대상은 아니었지만, tvN의 예능 프로그램 <신서유기> 속 게임 ‘고요 속의 외침’은 청각장애가 있는 시청자에겐 불쾌감을 줄 수 있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환경에서 설명하는 제시어를 맞추는 게임인데, 이 과정에서 엉뚱한 단어가 튀어나오거나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이 웃음을 유발하는 포인트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일상이다. 방송에서 장애인의 일상을 무의식적으로 희화화하는 비인권적이고 비장애 중심적인 장면들은 의외로 일상적으로 만연해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이후 전반적으로 줄긴 했지만, 매체에서 장애 비하 용어나 잘못된 표현을 여전히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2020년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에서 종합일간지 10개와 경제지 8개, 지방일간지 45개를 대상으로 장애 관련 차별이나 편견을 조장할 수 있는 용어 사용을 모니터링한 결과, 총 2,113건이 조사되어 2019년(2,892건)에 비해 2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이 조사된 비하 용어는 ‘벙어리(510건)’, ‘장애자(290건)’, ‘맹인(249건)’, ‘절름발이(235건)’, ‘장님(221건)’, ‘정상인(220건)’ 순이었다. 지난해는 도쿄패럴림픽이 열려서인지, 관련 기사와 화제의 인물기사가 많았던 것으로 조사되었고, 방송 뉴스의 장애 관련 기사에서도 위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이들 기사의 관점은 극복과 감동의 서사가 여전히 많았으며, ‘장애를 앓다’와 같은 잘못된 표현들을 여전히 사용하는 문제도 지적했다.

물론 모니터링 대상이 대부분 지상파와 종합편성 채널이었고 한 해 동안 제작된 모든 프로그램을 모니터한 결과가 아니어서 전체적인 평가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신문이나 방송에서 좀처럼 장애인을 보기 어렵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모습이나 생각, 의식과는 여전히 많이 다르다. 그나마도 장애인의 날과 장애 관련 빅 이벤트 등 특정한 기간에 주로 등장하고 다뤄진다. 특히 재현 방식에 있어서 장애를 여전히 극복이나 불행, 고통, 결함, 결핍이라는 관점에서 인식하고 있는데, 이는 장애가 희화나 조롱의 대상이거나 사회나 가족의 도움과 베풂 없이는 살아가기 어려운 시혜적 존재로 재현되는 것과 깊이 관련된다.

문제는, 장애에 대한 관점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왜곡되고 편협한 콘텐츠들이 대중이 쉽게 시청할 수 있는 기본 채널인 지상파 채널들을 통해 전파를 타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의식과 문제, 현실 등을 과거로 회귀시키거나 살짝 가리는 등의 왜곡된 묘사, 재현, 잘못된 용어나 표현이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되고,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대중 인식에 깊이 관여하는 막강한 힘을 가진다. 대중매체의 힘은 권력의 주체가 되기도 하고 특정 권력만을 대변하기도 하는 동력으로 변질될 때가 많다.

장애 당사자의 활약

지난 2021년 넷플릭스의 <무브 투 헤븐 :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를 시작으로 올해 들어 tvN의 <우리들의 블루스>, 요즘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는 ENA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까지, 장애를 소재로 하거나 장애를 가진 캐릭터가 주‧조연으로 등장하는 드라마들이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들 드라마의 탄생과 성공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다매체 다채널의 다양한 플랫폼 시대를 연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들 수 있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애플TV 등 다양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와 tvN, ENA와 같은 유료 방송 채널들은 편성권이 곧 권력인 공중파 방송의 제작 환경과 달리, 투자의 개념에서 영상콘텐츠의 완성도를 최우선으로 제작자, 작가, 감독 등의 영역을 최대한 존중하는 시스템이다. 이런 제작 환경이 다양한 소재, 다양한 문제를 새로운 시각, 다른 시도를 선호하면서 <우리들의 블루스>의 정은혜, 이소별 배우 등 장애를 가진 배우들이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한편으로는, 장애인 배우가 장애인 역을 연기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인식과 이를 이끄는 의무화 등의 제도 마련을 촉구해야 하는 과제를 남기기도 했다. 이밖에도 장애를 가진 유튜버들의 다양한 콘텐츠 제작 활동도 많아졌다.

이처럼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기존 미디어 산업에서 소외됐던 소수자성을 가진 당사자, 특히 재현의 대상으로만 보던 장애 당사자가 창작자로서 욕구와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 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1인 미디어시대에 장애를 가진 유튜버들의 활약은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자신의 문제를 알리고, 영향력을 가지며, 사회 변화를 이끌고, 기존 미디어에도 영향을 주는 등 이미 미디어의 권력 구조가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장애인은 대중매체에서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의 참여자이자 생산자, 향유자로서의 온전한 권리를 존중받지 못하고 차별받아 왔다. 차별이 당연시되었던 이유에는 비장애인만의 전유물이고 주체라는 인식, 즉 문화예술의 정체성과는 반대인 폐쇄성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문화예술은 어느 누구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임을, 그래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차별받지 않으며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백수정

백수정

어릴 적 친구였던 TV가 일이 되어, 다른 관점과 시각으로 대중문화를 읽고 쓴다. 장애우익권익문제연구소 방송모니터 자문위원, 서울YMCA 어린이영상문화연구회 부회장으로 다양한 미디어 모니터링 활동을 펼치고 있다. 『언론인을 위한 장애인권 길라잡이』를 함께 썼고, 디지털 언론매체 [함께걸음]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s-j0611@hanmail.net
블로그 바로가기(링크)

2022년 9월 (34호)

백수정

백수정 

고등학교까지는 특수학교를 다녔고, 미국에서 유학 중 귀국해 국내에서 학업을 마쳤다. 유아교육을 전공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방송모니터 자문위원, 서울YMCA 어린이영상문화연구회 부회장으로 다양한 곳에서 미디어 모니터링 활동을 펼치고 있다. 『언론인을 위한 장애인권 길라잡이』를 함께 썼고, 디지털 언론매체 [함께걸음]에서 칼럼을 연재 중이다.
s-j0611@hanmail.net
필자 블로그 바로가기 : https://blog.daum.net/s-j0611

상세내용

2008년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이후 장애인 인권 교육이 의무화되는 등 장애인의 권리 보장, 권리침해나 차별에 대한 인식은 예전보다 높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2019년 국가인권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9.1%가 한국에서 차별이 심각하다고 답했고, 인권침해와 차별을 가장 많이 받는 집단으로는 장애인(36.2%), 여성(16.4%), 이주민(4.7%), 노인 (13.1%) 순으로 조사되었다. 대중은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차별이 예전보다 줄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인식은 사회 전반에, 또 각 분야에 퍼져 있고 깊게 배어 있다.

미디어는 어떨까? 문화예술 분야를 다루는 전통적 매체 중에서도 가장 보편적인 매체인 방송, 신문을 중심으로 그 속에 배어 있는 장애 인식과 이로 인한 재현 방식, 변화한 미디어 환경에서의 긍정적인 움직임 등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장애인이 없는 제작 현장

흔히 미디어를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라 한다. 과연 그럴까? 나는 동의하지 않는 편에 가깝다. 미디어는 재현의 매체이다. 재현은 필연적으로 재현하는 주체의 시각과 인식에 의해 굴절될 수밖에 없다.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 신문 기사, 다큐멘터리처럼 기본적으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야 하는 프로그램에서조차도 만든이의 관점이나 인식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내용과 메시지가 다르게 전달된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대중문화 콘텐츠 속 이미지들은 대중의 생각과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힘도 가진다.

현재 대중매체 콘텐츠를 제작하는 주체는 대부분 우리 사회의 주류다. 여성보다는 남성이, 노인보다는 중년 또는 젊은 층이 제작 일선에 있고, 이 중에서도 장애가 있는 사람은 (배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우 드물며 중증 장애를 가진 제작진은 거의 없다. 「2021년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15세 이상 장애 인구 중 경제활동참가율은 37.3%로 전체 인구의 경제활동참가율(63.7%)과의 격차가 크게 나타났다. 특히 장애인 취업자의 직장 산업분류에서 미디어 산업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산업현장 전반, 특히 미디어 산업현장 내 제작 주체로서의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이로 인한 낮은 고용 현실을 보여준다. 이런 현실이 결국 장애인이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빈도, 장애와 관련한 주제를 선정하고 다루는 빈도를 결정하며 비장애인 중심의 제작 현실에서 관점이나 재현 방식에 영향을 주어, 장애인 당사자의 생각이 반영되지 않거나 사실과 다른 왜곡된 이미지를 생산하는 데 영향을 준다. 나아가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 혐오감 등 부정적 인식을 형성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미디어 속 가려진 장애인

실제로 「2019년 미디어 다양성 조사」를 보면 국내 TV 채널 기준 드라마, 뉴스, 예능 버라이어티, 탐사 프로그램에서 전체 출연자 중 장애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1%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탐사 프로그램에서는 총 202명의 출연자 중 장애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와 관련해 한국장애인권포럼 장애정책모니터링센터에서 진행한 「2021년 미디어 모니터 결과보고서」를 살펴보면, 뉴스는 약 46만 건의 기사 중 장애 관련 기사가 332건으로 0.7%에 불과했고, 시사 프로그램은 246건 중 장애 관련 주제는 5건에 불과했다. 또 드라마는 모니터링 대상인 20개 작품 중에서 장애인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3개였으며,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장애를 가진 예능인이나 방송인, 스포츠인 등의 출연도 없었다. 이렇게 모든 장르에서 장애 캐릭터 혹은 장애 당사자가 등장하거나 장애와 관련한 주제를 선정해 다루는 빈도는 현저히 낮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뉴스 프로그램에서 조금이나마 변화가 읽힌다는 점이다. 「2021년 미디어 모니터 결과보고서」를 보면 장애 관련 332건의 기사 중 패럴림픽 관련 기사와 인터뷰를 제외하면 장애인 인권·권리 관련 기사 54건, 자립·탈시설, 제도·행정, 접근성·편의, 교육·학습 기사 각 19건, 그리고 노동·취업, 문화·관광·예술 관련 각 10건으로 조사되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전은 물론이고 시행 후 10년이 지난 시점까지만 해도 장애 관련 기사들은 인간 승리나 장애 극복, 영웅 등의 관점에서 재현하거나 묘사하는 것이 보편적이었고, 미담이나 사건 사고, 행사 관련 기사가 전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분명히 이전과는 달라진 양상이다. 장애 인식 개선 노력과 인권 운동의 결과라 볼 수 있어 긍정적이고 유의미하다고 본다.

문제는 기사의 양이 현저하게 적다는 것과 등장과 재현에 담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다. 한 예로, 지난해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유세현장이나 선거 당일 투표소 현장 취재기사에서 장애인 유권자의 목소리와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선거권을 가진 동등한 국민으로서는 존재감이 없고, 투표소의 장애인 접근성만을 조명하는 방식에서 시청자들은 어떤 인식을 갖게 될까? 의도적이지는 않았겠지만, 장애인을 정치적 의견, 요구 등을 발언하고 행사하는 권리 주체로 인식하는 것에 취약한 사회임이 드러난 것 아닐까?

장애인식과 재현

「2021년 미디어 모니터 결과보고서」에서는 드라마 속 장애를 가진 사람은 여전히 보호와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투영돼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능의 경우는 비하 용어나 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사례는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장애 특성을 희화화해서 조롱하고 혐오감을 조장하는 행태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 조사의 대상은 아니었지만, tvN의 예능 프로그램 <신서유기> 속 게임 ‘고요 속의 외침’은 청각장애가 있는 시청자에겐 불쾌감을 줄 수 있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환경에서 설명하는 제시어를 맞추는 게임인데, 이 과정에서 엉뚱한 단어가 튀어나오거나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이 웃음을 유발하는 포인트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일상이다. 방송에서 장애인의 일상을 무의식적으로 희화화하는 비인권적이고 비장애 중심적인 장면들은 의외로 일상적으로 만연해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이후 전반적으로 줄긴 했지만, 매체에서 장애 비하 용어나 잘못된 표현을 여전히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2020년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에서 종합일간지 10개와 경제지 8개, 지방일간지 45개를 대상으로 장애 관련 차별이나 편견을 조장할 수 있는 용어 사용을 모니터링한 결과, 총 2,113건이 조사되어 2019년(2,892건)에 비해 2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이 조사된 비하 용어는 ‘벙어리(510건)’, ‘장애자(290건)’, ‘맹인(249건)’, ‘절름발이(235건)’, ‘장님(221건)’, ‘정상인(220건)’ 순이었다. 지난해는 도쿄패럴림픽이 열려서인지, 관련 기사와 화제의 인물기사가 많았던 것으로 조사되었고, 방송 뉴스의 장애 관련 기사에서도 위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이들 기사의 관점은 극복과 감동의 서사가 여전히 많았으며, ‘장애를 앓다’와 같은 잘못된 표현들을 여전히 사용하는 문제도 지적했다.

물론 모니터링 대상이 대부분 지상파와 종합편성 채널이었고 한 해 동안 제작된 모든 프로그램을 모니터한 결과가 아니어서 전체적인 평가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신문이나 방송에서 좀처럼 장애인을 보기 어렵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모습이나 생각, 의식과는 여전히 많이 다르다. 그나마도 장애인의 날과 장애 관련 빅 이벤트 등 특정한 기간에 주로 등장하고 다뤄진다. 특히 재현 방식에 있어서 장애를 여전히 극복이나 불행, 고통, 결함, 결핍이라는 관점에서 인식하고 있는데, 이는 장애가 희화나 조롱의 대상이거나 사회나 가족의 도움과 베풂 없이는 살아가기 어려운 시혜적 존재로 재현되는 것과 깊이 관련된다.

문제는, 장애에 대한 관점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왜곡되고 편협한 콘텐츠들이 대중이 쉽게 시청할 수 있는 기본 채널인 지상파 채널들을 통해 전파를 타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의식과 문제, 현실 등을 과거로 회귀시키거나 살짝 가리는 등의 왜곡된 묘사, 재현, 잘못된 용어나 표현이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되고,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대중 인식에 깊이 관여하는 막강한 힘을 가진다. 대중매체의 힘은 권력의 주체가 되기도 하고 특정 권력만을 대변하기도 하는 동력으로 변질될 때가 많다.

장애 당사자의 활약

지난 2021년 넷플릭스의 <무브 투 헤븐 :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를 시작으로 올해 들어 tvN의 <우리들의 블루스>, 요즘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는 ENA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까지, 장애를 소재로 하거나 장애를 가진 캐릭터가 주‧조연으로 등장하는 드라마들이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들 드라마의 탄생과 성공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다매체 다채널의 다양한 플랫폼 시대를 연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들 수 있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애플TV 등 다양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와 tvN, ENA와 같은 유료 방송 채널들은 편성권이 곧 권력인 공중파 방송의 제작 환경과 달리, 투자의 개념에서 영상콘텐츠의 완성도를 최우선으로 제작자, 작가, 감독 등의 영역을 최대한 존중하는 시스템이다. 이런 제작 환경이 다양한 소재, 다양한 문제를 새로운 시각, 다른 시도를 선호하면서 <우리들의 블루스>의 정은혜, 이소별 배우 등 장애를 가진 배우들이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한편으로는, 장애인 배우가 장애인 역을 연기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인식과 이를 이끄는 의무화 등의 제도 마련을 촉구해야 하는 과제를 남기기도 했다. 이밖에도 장애를 가진 유튜버들의 다양한 콘텐츠 제작 활동도 많아졌다.

이처럼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기존 미디어 산업에서 소외됐던 소수자성을 가진 당사자, 특히 재현의 대상으로만 보던 장애 당사자가 창작자로서 욕구와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 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1인 미디어시대에 장애를 가진 유튜버들의 활약은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자신의 문제를 알리고, 영향력을 가지며, 사회 변화를 이끌고, 기존 미디어에도 영향을 주는 등 이미 미디어의 권력 구조가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장애인은 대중매체에서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의 참여자이자 생산자, 향유자로서의 온전한 권리를 존중받지 못하고 차별받아 왔다. 차별이 당연시되었던 이유에는 비장애인만의 전유물이고 주체라는 인식, 즉 문화예술의 정체성과는 반대인 폐쇄성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문화예술은 어느 누구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임을, 그래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차별받지 않으며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백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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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친구였던 TV가 일이 되어, 다른 관점과 시각으로 대중문화를 읽고 쓴다. 장애우익권익문제연구소 방송모니터 자문위원, 서울YMCA 어린이영상문화연구회 부회장으로 다양한 미디어 모니터링 활동을 펼치고 있다. 『언론인을 위한 장애인권 길라잡이』를 함께 썼고, 디지털 언론매체 [함께걸음]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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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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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9 20: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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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미디어의 환경 변화와 영상기술의 발달은 장애인들의 미디어 창작활동을 할 수 있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와 통로가 다양해진거지요. 앞으로 이들의 활동이 많아질수록 장애인식도 나아지리란 기대를 가져봅니다.

2022-09-26 04:4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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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인식에 대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조금씩 조금씩 느껴지는 것 같아서 다행이고 고무적입니다. 문화예술이란 장르는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인식의 변화를 더욱 기대하게 됩니다.

2022-08-26 10:3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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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시고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2022-08-26 07:5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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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는 메소드 연기자가 아니라 실존 그 자체로 재현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외침에 깊게 공감합니다.

제 2021-524호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WA-WEB 접근성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 | 1.업체명: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고 112 3.웹사이트:http://www.ieum.or.kr 4.유효기간:2021.05.03~2022.05.02 5.인증범위:이음 온라인 홈페이지 |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47조제1항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9조제5항에 따라 위와 같이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를 발급합니다. 2021년 05월 03일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