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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춘천형 권리중심 예술노동

이슈 극장에서 무대에서, 일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 엄윤경 (사)춘천연극제 사무국장
  • 등록일 2022-09-28
  • 조회수656

2022년 강원도 춘천시는 전국 기초 지자체 중 최초로 ‘중증장애인 권리중심 맞춤형 공공일자리’(이하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사업을 시행했다. 춘천형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사업은 최중증장애인에게도 노동권을 부여하고 장애인이 살만한 도시를 조성하겠다는 춘천시의 의지를 보여준다. 춘천시는 그동안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장벽 없는 도시’ 조성과 장애인의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는지를 사업 전에 미리 검토하는 ‘장애 인지적 정책’ 조례를 제정하는 등의 복지정책을 펼쳐왔다. 또한,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사업을 위해 올해 시비 4억 6,000만 원을 투입해 4개 단체를 선정하고, 장애인 권익 옹호, 문화예술, 장애인 인식개선 활동으로 중증장애인 일자리를 마련했다. 참여하는 중증장애인들은 주 15시간 일하고 장애 유형과 특성을 고려한 직무를 수행하며 최저시급인 9,160원을 받는다. 누구에게나 노동할 권리가 있듯 중증장애인도 노동의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장애인 일자리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

그중 강원도 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춘천시지부(이하 협회)는 (사)춘천연극제와 협력해 문화예술 활동으로 중증장애인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 협회는 2020년부터 (사)춘천연극제 연극아카데미 장애인 과정에 참여해왔다. 연극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연극 만드는 과정에서 공연자, 스태프, 하우스어셔(공연장 안내원) 등 다양한 직업군을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적‧발달장애인이 연극을 한다고?”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춘천연극제는 참여자들이 연극놀이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했고, 그것을 옴니버스 연극으로 제작해 무대에 올렸다. 참여자들은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연기를 하며 자신들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고, 공연이 끝나고 난 후에도 여운이 길게 남아 “한 달 내내 축제 분위기”였다고 함께 참여했던 사회복지사는 말한다.

문화예술 중에서도 특히 연극은 창의성을 키워주는 도구이며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엄청난 영역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이 아니라 노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참여자들은 연극 활동을 하기 위해 강도 있는 신체 훈련을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대사를 받아치면서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중증장애인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또한 연극은 연출, 배우, 무대감독, 조명감독, 음향감독, 무대세트팀, 분장팀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하는 작업이다. 배려와 소통, 책임감 등을 가져야 하고, 상대 배우가 말하는 것에 공감할 수 있어야 감정을 실은 연기가 가능하기에 중증장애를 가진 참여자들이 사회성을 키우는 데 최적화된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사업 문화예술 활동 참여자 중 50%만이 그동안 직업을 가졌던 경험이 있다. 그것도 지적발달장애인협회나 특수학교와 연계된 직업이 대부분이었고, 이마저도 골고루 기회가 주어져야 하기 때문에 6개월에서 1년 정도밖에 일할 수 없었다. 중증장애인은 일하고 싶어도 사회와 소통해본 경험이 드물어서 어떻게 취업해야 할지 모르는 게 현실이다.

“우리가 연극을 할 수 있을까요?” “전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게 자신 없어요.”

지난 4월, 활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참여자들은 활동 시간 내내 집중하지 못하고 각자 자기 얘기만 하며 소란을 피우기 일쑤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고 어느덧 5개월이 흘렀다. 이제는 이곳이 직장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출근하면 출근부에 도장을 찍듯 핸드폰부터 맡기며 연극 만들기 활동에 집중하고 재미를 느낀다. 참여자들과의 첫 작업은 각자의 실패감과 좌절감에서 벗어나기였다. 장애인이라서 겪어야 했던 절망의 경험을 얘기하고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지금은 어떤 반응을 할 것인지를 연극으로 만드는 작업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변화를 보였던 것은 건묵 씨다.

건묵 씨는 중학교 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괴롭힘 당했던 기억을 소환해 그때의 좌절감을 표현하고, 지금이라면 그들에게 어떻게 행동하고 말할지를 연기했다. 평소에 좀체 말이 없던 건묵 씨는 연극을 통해 “나의 이야기를 연기하면서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두려움과 미움이 해소되었고 마음이 뻥 뚫린 것처럼 후련했어요. 항상 위축되어 말하기 어려웠는데 연극을 하고 나서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라며 내 손을 꼭 잡았다.

잘 움직이지 않고 대사 있을 때만 입을 열었던 유진 씨는 연극을 접하면서 자신의 변화에 놀라고 있다. “마음속 화를 다스릴 수 있게 되었어요. 항상 화가 마음속에 가득했었거든요. 그런데 연극 활동으로 일자리가 생기면서 의미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행복해요.” 유진 씨는 늘 무표정이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은데 연극을 할 때면 얼굴에 생기와 활기가 가득해진다. 이들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든 <다름의 차이>는 대본 없이 즉흥극 형식으로 진행했는데, 유진 씨가 자진해서 대본 작업을 해왔다. “제가 쓴 대본을 우리가 함께 읽을 때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흥분되고 자신감도 생겨요.”라며 작업을 마냥 즐거워한다. 참여자들은 연극을 통해 쉼 없이 변화를 거듭하고 있고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는다.

31살 길용 씨는 ‘형사’라고 쓴 명찰을 항상 목에 걸고 다닌다. 하루에도 수십 번 다른 사람이 듣건 말건 “내 꿈이 형사라서 매일 수사를 하고 다녀요.”라고 똑같은 얘기를 하고 눈에 보이는 것을 뒤적거리며 ‘수사’를 한다. 참여자 중 목소리가 가장 크고 연기도 제법 잘하는 그는 이제 춘천 제1호 장애인 연극배우가 되고 싶은 게 꿈이다. 그리고 같은 얘기를 수십 번씩 하던 것을 멈추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려고 노력한다. 생애 첫 직장에서 받은 월급명세서를 사진 찍어 보내며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신나요. 결혼하려면 적금을 들어야죠.”라고 말한다. 연극 활동을 통해 그는 꿈이 달라졌고 인생의 목표가 생겼다.

수연 씨는 예전에 협회에서 연결해준 반찬 만드는 업체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단순한 작업이라도 비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일이어서 수연 씨는 매번 직장 사람들에게 “행동이 느리다” “제대로 못 한다”며 안 좋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때 마음의 상처가 아직도 남아있다. 이번 공공일자리에서는 누군가에게 비난받지 않고 자신에게 맞춤형 직업이 생겨서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하루에 3시간만 일할 수 있어 그 이후 시간은 혼자 방에서 외로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 싫다며 근무 시간을 더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얘기했다.

22살 지민 씨는 춘천연극제 연극아카데미에서 연극을 해본 경험이 있는 참여자로, 권리중심 공공일자리가 첫 직장이다. “연극 일자리로 언니 오빠들과 함께 일해서 좋고 성격도 많이 활발해졌어요. 첫 월급을 받으면 저 때문에 고생하는 엄마한테 맛있는 걸 사드리고 싶어요.”라고 작은 소망을 이야기한다.

이처럼 이들의 바람은 아주 작다. 중증장애로 노동을 할 수 없었던 이들은 어쩌면 그동안 작은 바람조차 꿈꿀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지난 9월 17일 참여자들은 춘천예술마당 야외에 마련된 특설무대에서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시민들에게 선보였다. “관객이 앞에 있으니 머리가 하얘졌어요.” “너무 떨렸지만 틀리지 않고 공연해서 뿌듯해요.”라며 공연 소감을 들려주었고, 관객들은 최선을 다한 그들의 모습에 아낌없는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공연에 앞서 참여자들은 이날 열린 마켓과 공연을 홍보하는 안내원 일자리 체험도 함께했다. 10월에는 하우스어셔 교육을 받고 공연장에 찾아오는 관객의 안전과 질서유지를 책임지는 업무도 할 예정이며, 12월에는 현재 준비하고 있는 연극 <동행>을 봄내극장 무대에 올린다. 이런 무대 경험으로 참여자들이 자립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길 바란다.

참여자들은 문화예술을 통해 삶을 변화시키고 예술과 장애인의 삶의 문제를 하나로 묶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문화예술 활동을 통한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서 무기력했던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 올해의 최종 목표다. 또한 사회와 소통이 적었던 중증장애인들이 연극 활동을 통해 사회적 소통과 공감을 시나브로 몸에 익혀 지역사회에 참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년에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사업이 없어질까 걱정하는 참여자들이 많다. 그들이 걱정 없이 즐겁고 당당하게 노동할 수 있는 기회가 더욱 확대되길 바란다.

  • 춘천형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 참여 중인 다수의 사람들이 양 팔을 위로 펼치는 동작을 하며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 춘천시청 앞 광장에서다수의 사람들이 여러 피켓과 연극, 청개구리 연극반이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엄윤경

KBS 춘천방송총국 구성작가, 극단 연극사회 단원으로 활동했고 춘천예총 사무국장, 춘천연극협회 지부장을 역임했다. 다양한 연극 작품에 출연했으며 춘천연극예술상(2006), 강원연극제 연기상을 수상했다. 20여 년간 학교문화예술교육과 장애인 예술교육에 힘쓰고 있다. 현재 (사)춘천연극제 사무국장이고, 예술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nunsense68@daum.net

사진 제공.필자

2022년 10월 (35호)

엄윤경

엄윤경 

KBS 춘천방송총국 구성작가, 극단 연극사회 단원으로 활동했고 춘천예총 사무국장, 춘천연극협회 지부장을 역임했다. 다양한 연극 작품에 출연했으며 춘천연극예술상(2006), 강원연극제 연기상을 수상했다. 20여 년간 학교문화예술교육과 장애인 예술교육에 힘쓰고 있다. 현재 (사)춘천연극제 사무국장이고, 예술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nunsense68@daum.net

상세내용

2022년 강원도 춘천시는 전국 기초 지자체 중 최초로 ‘중증장애인 권리중심 맞춤형 공공일자리’(이하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사업을 시행했다. 춘천형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사업은 최중증장애인에게도 노동권을 부여하고 장애인이 살만한 도시를 조성하겠다는 춘천시의 의지를 보여준다. 춘천시는 그동안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장벽 없는 도시’ 조성과 장애인의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는지를 사업 전에 미리 검토하는 ‘장애 인지적 정책’ 조례를 제정하는 등의 복지정책을 펼쳐왔다. 또한,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사업을 위해 올해 시비 4억 6,000만 원을 투입해 4개 단체를 선정하고, 장애인 권익 옹호, 문화예술, 장애인 인식개선 활동으로 중증장애인 일자리를 마련했다. 참여하는 중증장애인들은 주 15시간 일하고 장애 유형과 특성을 고려한 직무를 수행하며 최저시급인 9,160원을 받는다. 누구에게나 노동할 권리가 있듯 중증장애인도 노동의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장애인 일자리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

그중 강원도 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춘천시지부(이하 협회)는 (사)춘천연극제와 협력해 문화예술 활동으로 중증장애인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 협회는 2020년부터 (사)춘천연극제 연극아카데미 장애인 과정에 참여해왔다. 연극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연극 만드는 과정에서 공연자, 스태프, 하우스어셔(공연장 안내원) 등 다양한 직업군을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적‧발달장애인이 연극을 한다고?”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춘천연극제는 참여자들이 연극놀이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했고, 그것을 옴니버스 연극으로 제작해 무대에 올렸다. 참여자들은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연기를 하며 자신들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고, 공연이 끝나고 난 후에도 여운이 길게 남아 “한 달 내내 축제 분위기”였다고 함께 참여했던 사회복지사는 말한다.

문화예술 중에서도 특히 연극은 창의성을 키워주는 도구이며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엄청난 영역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이 아니라 노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참여자들은 연극 활동을 하기 위해 강도 있는 신체 훈련을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대사를 받아치면서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중증장애인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또한 연극은 연출, 배우, 무대감독, 조명감독, 음향감독, 무대세트팀, 분장팀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하는 작업이다. 배려와 소통, 책임감 등을 가져야 하고, 상대 배우가 말하는 것에 공감할 수 있어야 감정을 실은 연기가 가능하기에 중증장애를 가진 참여자들이 사회성을 키우는 데 최적화된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사업 문화예술 활동 참여자 중 50%만이 그동안 직업을 가졌던 경험이 있다. 그것도 지적발달장애인협회나 특수학교와 연계된 직업이 대부분이었고, 이마저도 골고루 기회가 주어져야 하기 때문에 6개월에서 1년 정도밖에 일할 수 없었다. 중증장애인은 일하고 싶어도 사회와 소통해본 경험이 드물어서 어떻게 취업해야 할지 모르는 게 현실이다.

“우리가 연극을 할 수 있을까요?” “전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게 자신 없어요.”

지난 4월, 활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참여자들은 활동 시간 내내 집중하지 못하고 각자 자기 얘기만 하며 소란을 피우기 일쑤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고 어느덧 5개월이 흘렀다. 이제는 이곳이 직장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출근하면 출근부에 도장을 찍듯 핸드폰부터 맡기며 연극 만들기 활동에 집중하고 재미를 느낀다. 참여자들과의 첫 작업은 각자의 실패감과 좌절감에서 벗어나기였다. 장애인이라서 겪어야 했던 절망의 경험을 얘기하고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지금은 어떤 반응을 할 것인지를 연극으로 만드는 작업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변화를 보였던 것은 건묵 씨다.

건묵 씨는 중학교 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괴롭힘 당했던 기억을 소환해 그때의 좌절감을 표현하고, 지금이라면 그들에게 어떻게 행동하고 말할지를 연기했다. 평소에 좀체 말이 없던 건묵 씨는 연극을 통해 “나의 이야기를 연기하면서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두려움과 미움이 해소되었고 마음이 뻥 뚫린 것처럼 후련했어요. 항상 위축되어 말하기 어려웠는데 연극을 하고 나서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라며 내 손을 꼭 잡았다.

잘 움직이지 않고 대사 있을 때만 입을 열었던 유진 씨는 연극을 접하면서 자신의 변화에 놀라고 있다. “마음속 화를 다스릴 수 있게 되었어요. 항상 화가 마음속에 가득했었거든요. 그런데 연극 활동으로 일자리가 생기면서 의미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행복해요.” 유진 씨는 늘 무표정이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은데 연극을 할 때면 얼굴에 생기와 활기가 가득해진다. 이들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든 <다름의 차이>는 대본 없이 즉흥극 형식으로 진행했는데, 유진 씨가 자진해서 대본 작업을 해왔다. “제가 쓴 대본을 우리가 함께 읽을 때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흥분되고 자신감도 생겨요.”라며 작업을 마냥 즐거워한다. 참여자들은 연극을 통해 쉼 없이 변화를 거듭하고 있고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는다.

31살 길용 씨는 ‘형사’라고 쓴 명찰을 항상 목에 걸고 다닌다. 하루에도 수십 번 다른 사람이 듣건 말건 “내 꿈이 형사라서 매일 수사를 하고 다녀요.”라고 똑같은 얘기를 하고 눈에 보이는 것을 뒤적거리며 ‘수사’를 한다. 참여자 중 목소리가 가장 크고 연기도 제법 잘하는 그는 이제 춘천 제1호 장애인 연극배우가 되고 싶은 게 꿈이다. 그리고 같은 얘기를 수십 번씩 하던 것을 멈추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려고 노력한다. 생애 첫 직장에서 받은 월급명세서를 사진 찍어 보내며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신나요. 결혼하려면 적금을 들어야죠.”라고 말한다. 연극 활동을 통해 그는 꿈이 달라졌고 인생의 목표가 생겼다.

수연 씨는 예전에 협회에서 연결해준 반찬 만드는 업체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단순한 작업이라도 비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일이어서 수연 씨는 매번 직장 사람들에게 “행동이 느리다” “제대로 못 한다”며 안 좋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때 마음의 상처가 아직도 남아있다. 이번 공공일자리에서는 누군가에게 비난받지 않고 자신에게 맞춤형 직업이 생겨서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하루에 3시간만 일할 수 있어 그 이후 시간은 혼자 방에서 외로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 싫다며 근무 시간을 더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얘기했다.

22살 지민 씨는 춘천연극제 연극아카데미에서 연극을 해본 경험이 있는 참여자로, 권리중심 공공일자리가 첫 직장이다. “연극 일자리로 언니 오빠들과 함께 일해서 좋고 성격도 많이 활발해졌어요. 첫 월급을 받으면 저 때문에 고생하는 엄마한테 맛있는 걸 사드리고 싶어요.”라고 작은 소망을 이야기한다.

이처럼 이들의 바람은 아주 작다. 중증장애로 노동을 할 수 없었던 이들은 어쩌면 그동안 작은 바람조차 꿈꿀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지난 9월 17일 참여자들은 춘천예술마당 야외에 마련된 특설무대에서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시민들에게 선보였다. “관객이 앞에 있으니 머리가 하얘졌어요.” “너무 떨렸지만 틀리지 않고 공연해서 뿌듯해요.”라며 공연 소감을 들려주었고, 관객들은 최선을 다한 그들의 모습에 아낌없는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공연에 앞서 참여자들은 이날 열린 마켓과 공연을 홍보하는 안내원 일자리 체험도 함께했다. 10월에는 하우스어셔 교육을 받고 공연장에 찾아오는 관객의 안전과 질서유지를 책임지는 업무도 할 예정이며, 12월에는 현재 준비하고 있는 연극 <동행>을 봄내극장 무대에 올린다. 이런 무대 경험으로 참여자들이 자립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길 바란다.

참여자들은 문화예술을 통해 삶을 변화시키고 예술과 장애인의 삶의 문제를 하나로 묶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문화예술 활동을 통한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서 무기력했던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 올해의 최종 목표다. 또한 사회와 소통이 적었던 중증장애인들이 연극 활동을 통해 사회적 소통과 공감을 시나브로 몸에 익혀 지역사회에 참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년에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사업이 없어질까 걱정하는 참여자들이 많다. 그들이 걱정 없이 즐겁고 당당하게 노동할 수 있는 기회가 더욱 확대되길 바란다.

  • 춘천형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 참여 중인 다수의 사람들이 양 팔을 위로 펼치는 동작을 하며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 춘천시청 앞 광장에서다수의 사람들이 여러 피켓과 연극, 청개구리 연극반이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엄윤경

KBS 춘천방송총국 구성작가, 극단 연극사회 단원으로 활동했고 춘천예총 사무국장, 춘천연극협회 지부장을 역임했다. 다양한 연극 작품에 출연했으며 춘천연극예술상(2006), 강원연극제 연기상을 수상했다. 20여 년간 학교문화예술교육과 장애인 예술교육에 힘쓰고 있다. 현재 (사)춘천연극제 사무국장이고, 예술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nunsense68@daum.net

사진 제공.필자

2022년 10월 (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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