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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미츠 다이얼로그 탭톡 <창작하기, 유통하기, 펀딩하기>

리뷰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창의적 성장’의 조건

  • 이지혜 완보작업실 디렉터
  • 등록일 2022-09-28
  • 조회수1471

‘No Limits in Seoul 2022 노리미츠인서울’이 9월 16일부터 30일까지 열렸다. 그중 국내외 장애예술 전문가들이 모여 장애예술의 현황과 쟁점을 통해 동시대 이슈를 고민하고 방향성을 모색하는 토크 시리즈 다이얼로그 탭톡에는 미국 크리에이티브 그로스의 사례를 바탕으로 시각예술스튜디오 운영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 편집자 주

2012년 경기도미술관 국제교류전 《다른 그리고 특별한》에서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작가들의 작업이 소개된 바 있고, 이후 많은 국내 기관에서 그와 관련한 해외 리서치와 보고서가 나왔다. 이후 거의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크리에이티브 그로스의 이야기를 듣는다. 여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나라는 2010년을 전후로 장애예술 단체가 하나둘 형성되었다. 그 운영방식이나 형태는 다양하다. 우영우 신드롬이 일어난 지금에 비해 당시 사회의 장애인식은 현저히 부족했지만, 제도권의 문화예술지원이 시작되었고 창작에 흥미를 느끼는 발달장애인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이전에는 발달장애인의 창작이 다루어진 적이 거의 없다시피 했기에 몇몇 작가들은 많은 주목을 받으며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단체의 예산 조달 문제, 예술가의 부재, 스태프의 업무 과중과 지속 불가 문제, 창작스튜디오에 대한 이해 부족, 장애에 대한 사회의 편견 등 현실적인 한계를 피할 수 없었다. 정부의 발달장애인 예술지원이라고 하면 장애복지과와 예술지원과에서 서로 일을 미루기 일쑤였고, 정치권에서는 극소수인 사람들을 위해 움직일 이유가 없었다. 작가들은 조건에 맞추어 계속 스튜디오를 옮겨 다녀야 했고 작품을 축적할 만한 환경을 조성하지 못했다. 안정적인 창작스튜디오를 만드는 데에는 다양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작가를 알리려는 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고 최근에 와서는 작가지원이 법제화되고 정책 제도가 마련되었다.

이후 발달장애인의 예술 활동은 고용과 직결되었다. 작업을 근로로 인정하여 발달장애 작가의 창작을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중증장애인 고용정책이 마련되고 연계고용이나 표준사업장 혹은 기업의 자회사로 창작스튜디오를 두어 작가가 창작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개발되기도 했다. 장애인고용은 기업의 고용부담금과 직결된 문제이기에 창작스튜디오 지원과 관련한 제안을 하면 기업들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경험을 빌려보자면, 프로젝트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경영지원팀이나 홍보팀의 의지와 다르게 법무팀의 벽을 넘기 어려웠다. 몇몇 기업은 ‘해야만 한다’라는 의지를 가지고 현실적으로 문제가 되는 지점을 풀고자 노력하며 긍정적인 사례를 만들었다. 지자체가 나서서 지원사업을 마련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는 ‘경기도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사업이 있다. 이 사업을 통해 스튜디오에서의 작업을 근로로 인정해 급여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최저시급은 벗어나지 못했다. 65세 이상 작가가 지원받을 수 없는 문제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장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창작스튜디오가 많이 생겨났지만, 여전히 작가의 이동과 활동의 대부분을 보호자가 지원한다는 점이나 단체의 상황과 무관하게 작가가 자유로운 작업환경을 제공받을 수 없다는 점은 풀어야 할 숙제다.

톰 디 마리아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명예 이사의 말을 빌려보자면, 창작스튜디오 혹은 아트센터가 갖추어야 하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① 이동이나 주거는 복지 분야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② 스튜디오는 예술가들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③ 작가가 자신의 길을 찾을 때까지 믿고 기다려야 한다. ④ 예산은 정부 지원, 단체의 수익사업, 후원으로 나뉜다. ⑤ 작가의 수익을 창출한다. ⑥ 오래 해야 한다. 그는 갤러리의 장소성도 중요하게 언급했다. 아트센터의 갤러리는 대중이 예술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장소이자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장소, 예술가에게 수입을 제공할 수 있는 장소, 예술가를 만나는 장소이다. 이러한 창작스튜디오의 조건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제가 필요하다. ① 우리의 프로젝트가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을 찾아라. ② 예술을 별도의 카테고리로 분류하려 하면 완강히 저항하라. ③ 옳다고 믿는 방법을 작가에게 제안하지 않는다. ④ 작가를 가르치지 않는다. ⑤ 작가를 치료하지 않는다.

사실 한국의 현장이 이 내용을 모르는 게 아니다. 현장이 없나? 찾아보면 전국에는 묵묵히 작가의 작품 활동을 지원하는 다양한 형태의 창작스튜디오가 있다. 더 많은 지역에 더 다양한 형태로 개설되어야 하겠지만, 명칭에 ‘창작’과 ‘스튜디오’라는 말이 붙지 않았더라도 작가에게 시간과 재료를 성실히 제공하고 있는 곳도 있다. 동시대 예술을 표방하거나 예술계로의 진입을 목표로 하지 않아도 복지관이나 생활 시설에서 작가들의 작업을 귀하게 여겨 기록하고 보관하는 단체도 있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디렉터 톰 디 마리아가 크리에이티브 그로스에서 지원한 여러 작가의 성장 사례를 언급한 것처럼 작가들의 작품이 전문적인 영역에서 활발하게 다루어지지 않을까?

2019년, 쾰른에 위치한 카트18(KAT18)에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작업에 심취해 있는 작가 바벨 랑그 뒤편으로 디렉터 유타 푀츠게스와 쿤스트뮤지엄 본의 교육·매개 담당 큐레이터 사비나 레쓰만이 이야기 나누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공립미술관의 큐레이터가 이렇게 오랜 시간 창작스튜디오에 머물며 작가의 작업에 관해서 이야기 나눌 수 있냐?”는 우문을 던졌고, 그녀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전시하기 위해서는 당연하다.”라고 답했다. 반면 아주 가끔이지만, 국내 공립미술관에서 신경다양인 작가의 전시가 개최될 때면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예산과 일정이 문제가 되기 일쑤다. 한번은 작가의 개인전을 위한 지원사업 심사에서 심사위원에게 ‘작가의 장애를 언급하지 말고 미학적인 해석으로 설득해보라’는 질책을 받은 적이 있다. 작가의 작업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작가에게 들은 이야기를 했지만, 미학적인 해석만으로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를 느꼈다. 그도 당연한 것이, 지금의 미학이 가지고 있는 해석적 도구는 비장애인 중심의 미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에 ‘작가의 작업이 사회학적이고 시대적이기 때문에 미학적’이라고 말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긴 호흡으로 차분한 시간을 성실히 축적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또 끊임없이 논의하며 생성되는 가치도 있다. 빠른 문화예술 현장의 속도와 압력의 시간을 함께 견딜 동료의 부족은 나를 돌아보지 못하고 환경을 탓하게 했다.

미국 크리에이티브 그로스의 정부 지원 예산은 연간 100억 원 이상이다. 톰의 말에 따르면, 160여 명의 창작자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100억 원 이상의 판매수익과 100억 원 이상의 후원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한다.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몇 명의 스태프가 필요할까. 나는 2020년 로아트 워크숍 기록집에서 창작스튜디오의 내부 인력을 최대 조력자로, 외부 유입인력을 최소 협력자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스튜디오 현장에서 매일 작가들을 만나 도와야 할 부분을 찾고 관찰하고 기록하는 스태프는 최대로 조력하고, 영감을 깨우는 동료로서 외부에서 섭외된 작가는 최소한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장애 유무를 떠나 작가들에게 업무가 과중하게 지워지면 오래 함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매일 반복되는 환경에서는 일정한 환기나 현장이 요구하는 깊이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기 힘든 게 사실이다. 함께하는 이들이 작가에게 끼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작가 대부분이 생활 중 많은 시간을 창작스튜디오에서 보내기 때문이다. 한 사람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과 지난한 애정을 프로젝트에 적용할 수 있는 매개자는 준비되어 있기도 어렵고 많지도 않다. 프로젝트의 가치와 비전에 동의해야 하고, 창작스튜디오에서 작가들과 오랜 시간 호흡해야 한다. 이것이 창작스튜디오의 매개자 양성의 핵심이다. 한편, 한국의 민간 창작스튜디오가 받을 수 있는 개별 지원사업의 최대 규모는 연간 1억 원 내외다. 단순히 정부 지원금만 가지고 수치로 비교하자면, 크리에이티브 그로스는 100억 원 지원금에 160명 창작자가 활동하니까 연간 1억 원을 지원받은 경우 그 수혜자는 1.6명으로 채 2명이 안 되는 수치다. 하지만 국내 지원사업은 규모가 크면 클수록 더 많은 사람에게 배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는 이미 창작스튜디오도 있고, 예술가도 있고, 매개자도 있고, 복지정책도 있는데 왜 어려울까? 몇 가지 문제점을 짚어보자면 첫째, 예술과의 거리감이다. 사람들은 예술이라는 행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보다 특별한 것으로 여긴다. 전문성을 갖춘 예술지원은 복지적 관점에서 특혜로 여기는 경우가 더러 있다. 예술은 생의 표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둘째는, 보호자 중심의 돌봄 체계 안에서의 예술 활동이다. 프랑크푸르트 시내에 위치한 창작스튜디오의 여성 발달장애인 작가들은 자전거를 타고 스튜디오까지 자립적으로 이동한다. 톰 디마리아 명예 이사가 김인규 대표와의 대담에서 언급한 것처럼, 누구나 자신 생활의 상당 부분을 자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동하거나, 약을 먹거나, 자기 의사를 전달하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방법을 스스로 마련하는 일 말이다. 셋째는, 예술가가 중심에 놓이지 못하는 현장이다. 창작스튜디오에 필요한 이는 강사와 티칭아티스트의 개념이 아니라 대등한 관계에서 작업하는 동료, 견제하고 자극받고 도움을 청하고 영감을 나눌 예술가다. 예술가 네트워크가 창작스튜디오를 배경으로 형성될 수 있다면 장르, 장애 유형, 재료, 미디어, 방법론 등 더 다양한 예술 활동이 가능할 것이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우리 프로젝트의 가치와 비전에 공감하고 실질적인 방안을 찾게 하는 일을 해야 한다. 정해진 기준이나 한계는 없다. 마음먹은 만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스튜디오 전경. 수많은 형태의 작업대와 여러가지 작업물이 가득한 넓은 사무실을 위에서 바라본 모습.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스튜디오 전경1

  •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스튜디오 전경. 여러개의 넓은 작업대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스튜디오 전경2

  • 작업실 내에서 크리에이티브 그로스의 예술가와 스태프가 같이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예술가와 스태프

  • 톰 디 마리아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명예 이사

    톰 디 마리아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명예 이사

‘No Limits in Seoul 2022 노리미츠인서울’ 다이얼로그 탭톡
<창작하기, 유통하기, 펀딩하기 – 시각예술스튜디오 운영법 : 미국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2022.9.16.~9.30.|노리미츠인서울 공식 홈페이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유튜브 채널, 네이버 TV 상영

‘창의적 성장’을 의미하는 크리에이티브 그로스는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 기반을 둔 비영리 예술단체로, 적극적인 예술 프로그램과 스튜디오 및 전시 공간을 제공하며 장애예술가 커뮤니티를 강화해왔다. 자동차 수리공장을 개조한 12,000평방피트의 스튜디오에서 약 140여 명의 예술가들이 스태프의 조력을 받아 다양한 미술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행사 프로그램 및 일정 보기 (바로가기 링크)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홈페이지 (바로가기 링크)
∙강연 영상 (바로가기 링크)
∙인터뷰 영상 (바로가기 링크)

이지혜

플레이스막 큐레이터, 비영리전시공간협의회 프로젝트 매니저 등으로 일했으며 2016년부터 신경다양성 작가들과 활동을 시작, 2019년에는 사단법인 로아트 설립을 주도했다. 2022년 4월 문화매개자 모임인 문화매개실천연구소를 설립하여 정체성과 진정성, 대중성과 예술성, 정책과 산업 사이의 문화예술을 실현하고 연구하고 있다. ‘완보작업실’은 문화매개실천연구소가 운영하는 신경다양성 창작스튜디오다.
contact.ciprl21@gmail.com

사진 제공.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022년 10월 (35호)

이지혜

이지혜 

플레이스막 큐레이터를 지냈고, 2016년부터 정신적 장애를 가진 작가들과 활동했으며 2019년에는 사단법인 로아트 설립을 주도하고 기획팀장으로 일했다. 문화매개실천연구소를 설립하고 정체성과 진정성, 대중성과 예술성, 정책과 산업 사이의 문화예술을 실현하고 연구하며, 서울 ‘매개자포럼’과 수원 신경다양성 창작스튜디오 ‘완보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다.
contact.ciprl21@gmail.com

상세내용

‘No Limits in Seoul 2022 노리미츠인서울’이 9월 16일부터 30일까지 열렸다. 그중 국내외 장애예술 전문가들이 모여 장애예술의 현황과 쟁점을 통해 동시대 이슈를 고민하고 방향성을 모색하는 토크 시리즈 다이얼로그 탭톡에는 미국 크리에이티브 그로스의 사례를 바탕으로 시각예술스튜디오 운영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 편집자 주

2012년 경기도미술관 국제교류전 《다른 그리고 특별한》에서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작가들의 작업이 소개된 바 있고, 이후 많은 국내 기관에서 그와 관련한 해외 리서치와 보고서가 나왔다. 이후 거의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크리에이티브 그로스의 이야기를 듣는다. 여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나라는 2010년을 전후로 장애예술 단체가 하나둘 형성되었다. 그 운영방식이나 형태는 다양하다. 우영우 신드롬이 일어난 지금에 비해 당시 사회의 장애인식은 현저히 부족했지만, 제도권의 문화예술지원이 시작되었고 창작에 흥미를 느끼는 발달장애인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이전에는 발달장애인의 창작이 다루어진 적이 거의 없다시피 했기에 몇몇 작가들은 많은 주목을 받으며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단체의 예산 조달 문제, 예술가의 부재, 스태프의 업무 과중과 지속 불가 문제, 창작스튜디오에 대한 이해 부족, 장애에 대한 사회의 편견 등 현실적인 한계를 피할 수 없었다. 정부의 발달장애인 예술지원이라고 하면 장애복지과와 예술지원과에서 서로 일을 미루기 일쑤였고, 정치권에서는 극소수인 사람들을 위해 움직일 이유가 없었다. 작가들은 조건에 맞추어 계속 스튜디오를 옮겨 다녀야 했고 작품을 축적할 만한 환경을 조성하지 못했다. 안정적인 창작스튜디오를 만드는 데에는 다양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작가를 알리려는 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고 최근에 와서는 작가지원이 법제화되고 정책 제도가 마련되었다.

이후 발달장애인의 예술 활동은 고용과 직결되었다. 작업을 근로로 인정하여 발달장애 작가의 창작을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중증장애인 고용정책이 마련되고 연계고용이나 표준사업장 혹은 기업의 자회사로 창작스튜디오를 두어 작가가 창작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개발되기도 했다. 장애인고용은 기업의 고용부담금과 직결된 문제이기에 창작스튜디오 지원과 관련한 제안을 하면 기업들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경험을 빌려보자면, 프로젝트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경영지원팀이나 홍보팀의 의지와 다르게 법무팀의 벽을 넘기 어려웠다. 몇몇 기업은 ‘해야만 한다’라는 의지를 가지고 현실적으로 문제가 되는 지점을 풀고자 노력하며 긍정적인 사례를 만들었다. 지자체가 나서서 지원사업을 마련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는 ‘경기도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사업이 있다. 이 사업을 통해 스튜디오에서의 작업을 근로로 인정해 급여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최저시급은 벗어나지 못했다. 65세 이상 작가가 지원받을 수 없는 문제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장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창작스튜디오가 많이 생겨났지만, 여전히 작가의 이동과 활동의 대부분을 보호자가 지원한다는 점이나 단체의 상황과 무관하게 작가가 자유로운 작업환경을 제공받을 수 없다는 점은 풀어야 할 숙제다.

톰 디 마리아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명예 이사의 말을 빌려보자면, 창작스튜디오 혹은 아트센터가 갖추어야 하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① 이동이나 주거는 복지 분야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② 스튜디오는 예술가들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③ 작가가 자신의 길을 찾을 때까지 믿고 기다려야 한다. ④ 예산은 정부 지원, 단체의 수익사업, 후원으로 나뉜다. ⑤ 작가의 수익을 창출한다. ⑥ 오래 해야 한다. 그는 갤러리의 장소성도 중요하게 언급했다. 아트센터의 갤러리는 대중이 예술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장소이자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장소, 예술가에게 수입을 제공할 수 있는 장소, 예술가를 만나는 장소이다. 이러한 창작스튜디오의 조건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제가 필요하다. ① 우리의 프로젝트가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을 찾아라. ② 예술을 별도의 카테고리로 분류하려 하면 완강히 저항하라. ③ 옳다고 믿는 방법을 작가에게 제안하지 않는다. ④ 작가를 가르치지 않는다. ⑤ 작가를 치료하지 않는다.

사실 한국의 현장이 이 내용을 모르는 게 아니다. 현장이 없나? 찾아보면 전국에는 묵묵히 작가의 작품 활동을 지원하는 다양한 형태의 창작스튜디오가 있다. 더 많은 지역에 더 다양한 형태로 개설되어야 하겠지만, 명칭에 ‘창작’과 ‘스튜디오’라는 말이 붙지 않았더라도 작가에게 시간과 재료를 성실히 제공하고 있는 곳도 있다. 동시대 예술을 표방하거나 예술계로의 진입을 목표로 하지 않아도 복지관이나 생활 시설에서 작가들의 작업을 귀하게 여겨 기록하고 보관하는 단체도 있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디렉터 톰 디 마리아가 크리에이티브 그로스에서 지원한 여러 작가의 성장 사례를 언급한 것처럼 작가들의 작품이 전문적인 영역에서 활발하게 다루어지지 않을까?

2019년, 쾰른에 위치한 카트18(KAT18)에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작업에 심취해 있는 작가 바벨 랑그 뒤편으로 디렉터 유타 푀츠게스와 쿤스트뮤지엄 본의 교육·매개 담당 큐레이터 사비나 레쓰만이 이야기 나누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공립미술관의 큐레이터가 이렇게 오랜 시간 창작스튜디오에 머물며 작가의 작업에 관해서 이야기 나눌 수 있냐?”는 우문을 던졌고, 그녀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전시하기 위해서는 당연하다.”라고 답했다. 반면 아주 가끔이지만, 국내 공립미술관에서 신경다양인 작가의 전시가 개최될 때면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예산과 일정이 문제가 되기 일쑤다. 한번은 작가의 개인전을 위한 지원사업 심사에서 심사위원에게 ‘작가의 장애를 언급하지 말고 미학적인 해석으로 설득해보라’는 질책을 받은 적이 있다. 작가의 작업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작가에게 들은 이야기를 했지만, 미학적인 해석만으로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를 느꼈다. 그도 당연한 것이, 지금의 미학이 가지고 있는 해석적 도구는 비장애인 중심의 미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에 ‘작가의 작업이 사회학적이고 시대적이기 때문에 미학적’이라고 말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긴 호흡으로 차분한 시간을 성실히 축적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또 끊임없이 논의하며 생성되는 가치도 있다. 빠른 문화예술 현장의 속도와 압력의 시간을 함께 견딜 동료의 부족은 나를 돌아보지 못하고 환경을 탓하게 했다.

미국 크리에이티브 그로스의 정부 지원 예산은 연간 100억 원 이상이다. 톰의 말에 따르면, 160여 명의 창작자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100억 원 이상의 판매수익과 100억 원 이상의 후원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한다.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몇 명의 스태프가 필요할까. 나는 2020년 로아트 워크숍 기록집에서 창작스튜디오의 내부 인력을 최대 조력자로, 외부 유입인력을 최소 협력자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스튜디오 현장에서 매일 작가들을 만나 도와야 할 부분을 찾고 관찰하고 기록하는 스태프는 최대로 조력하고, 영감을 깨우는 동료로서 외부에서 섭외된 작가는 최소한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장애 유무를 떠나 작가들에게 업무가 과중하게 지워지면 오래 함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매일 반복되는 환경에서는 일정한 환기나 현장이 요구하는 깊이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기 힘든 게 사실이다. 함께하는 이들이 작가에게 끼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작가 대부분이 생활 중 많은 시간을 창작스튜디오에서 보내기 때문이다. 한 사람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과 지난한 애정을 프로젝트에 적용할 수 있는 매개자는 준비되어 있기도 어렵고 많지도 않다. 프로젝트의 가치와 비전에 동의해야 하고, 창작스튜디오에서 작가들과 오랜 시간 호흡해야 한다. 이것이 창작스튜디오의 매개자 양성의 핵심이다. 한편, 한국의 민간 창작스튜디오가 받을 수 있는 개별 지원사업의 최대 규모는 연간 1억 원 내외다. 단순히 정부 지원금만 가지고 수치로 비교하자면, 크리에이티브 그로스는 100억 원 지원금에 160명 창작자가 활동하니까 연간 1억 원을 지원받은 경우 그 수혜자는 1.6명으로 채 2명이 안 되는 수치다. 하지만 국내 지원사업은 규모가 크면 클수록 더 많은 사람에게 배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는 이미 창작스튜디오도 있고, 예술가도 있고, 매개자도 있고, 복지정책도 있는데 왜 어려울까? 몇 가지 문제점을 짚어보자면 첫째, 예술과의 거리감이다. 사람들은 예술이라는 행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보다 특별한 것으로 여긴다. 전문성을 갖춘 예술지원은 복지적 관점에서 특혜로 여기는 경우가 더러 있다. 예술은 생의 표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둘째는, 보호자 중심의 돌봄 체계 안에서의 예술 활동이다. 프랑크푸르트 시내에 위치한 창작스튜디오의 여성 발달장애인 작가들은 자전거를 타고 스튜디오까지 자립적으로 이동한다. 톰 디마리아 명예 이사가 김인규 대표와의 대담에서 언급한 것처럼, 누구나 자신 생활의 상당 부분을 자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동하거나, 약을 먹거나, 자기 의사를 전달하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방법을 스스로 마련하는 일 말이다. 셋째는, 예술가가 중심에 놓이지 못하는 현장이다. 창작스튜디오에 필요한 이는 강사와 티칭아티스트의 개념이 아니라 대등한 관계에서 작업하는 동료, 견제하고 자극받고 도움을 청하고 영감을 나눌 예술가다. 예술가 네트워크가 창작스튜디오를 배경으로 형성될 수 있다면 장르, 장애 유형, 재료, 미디어, 방법론 등 더 다양한 예술 활동이 가능할 것이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우리 프로젝트의 가치와 비전에 공감하고 실질적인 방안을 찾게 하는 일을 해야 한다. 정해진 기준이나 한계는 없다. 마음먹은 만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스튜디오 전경. 수많은 형태의 작업대와 여러가지 작업물이 가득한 넓은 사무실을 위에서 바라본 모습.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스튜디오 전경1

  •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스튜디오 전경. 여러개의 넓은 작업대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스튜디오 전경2

  • 작업실 내에서 크리에이티브 그로스의 예술가와 스태프가 같이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예술가와 스태프

  • 톰 디 마리아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명예 이사

    톰 디 마리아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명예 이사

‘No Limits in Seoul 2022 노리미츠인서울’ 다이얼로그 탭톡
<창작하기, 유통하기, 펀딩하기 – 시각예술스튜디오 운영법 : 미국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2022.9.16.~9.30.|노리미츠인서울 공식 홈페이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유튜브 채널, 네이버 TV 상영

‘창의적 성장’을 의미하는 크리에이티브 그로스는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 기반을 둔 비영리 예술단체로, 적극적인 예술 프로그램과 스튜디오 및 전시 공간을 제공하며 장애예술가 커뮤니티를 강화해왔다. 자동차 수리공장을 개조한 12,000평방피트의 스튜디오에서 약 140여 명의 예술가들이 스태프의 조력을 받아 다양한 미술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행사 프로그램 및 일정 보기 (바로가기 링크)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홈페이지 (바로가기 링크)
∙강연 영상 (바로가기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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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플레이스막 큐레이터, 비영리전시공간협의회 프로젝트 매니저 등으로 일했으며 2016년부터 신경다양성 작가들과 활동을 시작, 2019년에는 사단법인 로아트 설립을 주도했다. 2022년 4월 문화매개자 모임인 문화매개실천연구소를 설립하여 정체성과 진정성, 대중성과 예술성, 정책과 산업 사이의 문화예술을 실현하고 연구하고 있다. ‘완보작업실’은 문화매개실천연구소가 운영하는 신경다양성 창작스튜디오다.
contact.ciprl21@gmail.com

사진 제공.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022년 10월 (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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