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웹진 이음

창작공간, 창작과정에서의 접근성에 대하여

이음광장 예외적인 시공간에서 접근성 상상하기

  • 문영민 장애예술연구자
  • 등록일 2020-12-11
  • 조회수656

장애를 가진 창작자로 공연을 만들 때 가장 힘든 부분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계단이 있는 연습실? 연습 시간에 맞춰 도착하지 않는 장애인 콜택시? 장애가 있는 배우의 몸을 생경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관객? 아니면 장애가 없는 창작자들과 동일한 속도로 움직이고 말해야 하는 것? 휠체어를 타며 난청이 있는 나에게, 이 모든 제약만큼이나 큰 어려움은, 의사소통의 어려움이다. 나는 일대일 대화나 조용한 공간에서 여러 사람과 대화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소음이 있는 공간이나 여러 사람이 동시에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에서는 대화에 잘 참여하지 못한다. 몇 년 전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의 연극 〈테레즈 라캥〉 작업에 참여할 때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종종 경험했다. 여러 명의 배우가 동시에 말해야 하는 장면에서 상대방의 대사를 놓치거나, 대사를 하는 도중 연출가가 대사를 끊고 코멘트를 할 때 코멘트를 듣지 못해서 혼자서 대사를 하고 있던 적도 있었다.

이러한 문제는 다양한 몸을 가진 창작자의 몸의 속도와 언어를 존중한다는 기치로 모인 장애 예술 창작공간에서는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나는 나의 장애와 제약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동료들과 함께 새로운 접근성 규칙을 만들었다. 제한적이기는 했지만, 연습이 진행되는 동안 스태프들이 돌아가며 문자통역을 진행하는 식으로 제약들을 돌파해나갔다. 우리는 이내 서로의 몸과 속도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공연을 앞두고 극장에서 리허설을 진행할 때였다. 배우와 스태프는 무대와 분장실을 뛰어다니며 각자의 역할을 바삐 수행했고, 공연을 앞두고 모두의 마음이 뾰족해져 있었다. 리허설을 진행하며 무대에 맞춰 동선이나 대사를 수정해야 할 부분이 많았고 동시에 여기저기서 코멘트가 쏟아져 나왔다. 평화로운 연습실에서와 다르게 예외적으로 모두가 바쁘고 날카로워진 공간에서는 그간 쌓아왔던 접근성 규칙, 다른 소통방식에 대한 신뢰와 이해는 크게 힘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문자통역을 기대할 수 없었고, 동료 배우들에게 이야기를 다시 해달라거나 놓쳐버린 연출가의 코멘트를 전달해달라고 말할 때마다 마음의 부담이 컸다. 여유롭고 일상적인 연습공간과 다른 예외적인 시공간에서도 접근성 규칙이 힘을 잃지 않도록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혼자서는 답을 찾지 못했다.

최근에 재난 상황에서 장애를 가진 예술가에게 안전한 공간을 어떻게 구성할지를 고민하는 일에 참여했다. 물리적으로 안전한 공간이란 기본적으로 배리어프리 공간이어야 하며, 수화통역이나 문자통역 지원 등을 통해 다양한 소통방식을 존중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리고 심리적으로 편안한 공간이어야 한다. 공연을 관람하는 극장에 장애인 화장실이 없다면 그 공간은 심리적으로 편안한 공간일 수 없다. 극장 리허설 때 나의 소통방식만이 존중받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된다면, 불이 났을 때 5층의 극장에서 나만 탈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된다면, 그 창작의 공간 역시 심리적으로 편안한 공간이기 어렵다. 심리적으로 편안한 공간을 구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예상하지 못하는 순간을 예상할 수 있는 시공간으로 만드는 작은 시도들을 상상해볼 수 있다.

<오직 관객만을 위한 두산아트센터 스트리밍 서비스 공연>
[사진 제공] 여기는 당연히, 극장 ⓒ 혜영

지난 주말에 ‘여기는 당연히, 극장’의 <오직 관객만을 위한 두산아트센터 스트리밍 서비스 공연>을 관람했다. 공연은 팬데믹 시기의 어려움을 예술인 개인의 창작역량으로 이겨내라는 시대의 요구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독특하고 실험적인 극이었다. ‘여기는 당연히, 극장’에서 최근 진행한 공연들은 전 회차에 수화통역과 문자통역, 음성해설을 제공하고 있고, 이 공연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다섯 명의 배우와 두 명의 수화통역사가 무대에 나와 배우의 외양과 무대의 구성, 공연에서 사용될 조명과 음향효과에 대한 음성해설을 했다. 이 음성해설에는 “공연 중 퇴장하거나 긴급한 일이 있을 때 무대 양옆에 있는 스태프에게 알려달라”는 안내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안내가 나올 때 안내를 맡은 스태프들은 짝 하고 손뼉을 쳐서 본인이 서 있는 위치를 소리로 나타냈다. 시각장애를 가진 관객이 그 현장에 있었다면 박수 소리를 통해 스태프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정보는 자막으로도 함께 안내되었다. 이 간단한 정보제공 방식이 청각장애나 시각장애를 가진 관객이 그 공간을 예상 가능한 공간으로 인식하고, 편안하게 관극하게 해주는 버튼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현재 전무후무하게 예상이 어려운 시공간을 통과하고 있다. <오직 관객만을 위한 두산아트센터 스트리밍 서비스 공연>에서도 팬데믹 상황에서 공연 진행 상황이 일주일 단위로만 예측된다는 점을 지적하는 대사가 있었다. 코로나19가 어서 빨리 종식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동시에, 이 예상치 못하는 시대가 변화무쌍한 순간들을 대처하는 경험을 축적하는 시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이 시기에 시도된 실험과 상상력이 향후 장애 예술인의 창작공간을 좀 더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만드는 근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문영민

문영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서 장애인 공연예술, 장애정체성, 장애인의 몸, 장애인의 건강 불평등을 연구하고 있다. 프로젝트 극단 0set 소속으로 공연 <연극의 3요소> <불편한 입장들> <나는 인간> 등의 공연에 창작자로 참여하여 연극으로 장애인의 공연 접근성 문제를 알리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saojungym@daum.net

문영민

문영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서 장애인 공연예술, 장애정체성, 장애인의 몸, 장애인의 건강 불평등을 연구하고 있다. 프로젝트 극단 0set 소속으로 공연 <연극의 3요소> <불편한 입장들> <나는 인간> 등의 공연에 창작자로 참여하여 연극으로 장애인의 공연 접근성 문제를 알리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saojungym@daum.net

상세내용

장애를 가진 창작자로 공연을 만들 때 가장 힘든 부분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계단이 있는 연습실? 연습 시간에 맞춰 도착하지 않는 장애인 콜택시? 장애가 있는 배우의 몸을 생경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관객? 아니면 장애가 없는 창작자들과 동일한 속도로 움직이고 말해야 하는 것? 휠체어를 타며 난청이 있는 나에게, 이 모든 제약만큼이나 큰 어려움은, 의사소통의 어려움이다. 나는 일대일 대화나 조용한 공간에서 여러 사람과 대화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소음이 있는 공간이나 여러 사람이 동시에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에서는 대화에 잘 참여하지 못한다. 몇 년 전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의 연극 〈테레즈 라캥〉 작업에 참여할 때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종종 경험했다. 여러 명의 배우가 동시에 말해야 하는 장면에서 상대방의 대사를 놓치거나, 대사를 하는 도중 연출가가 대사를 끊고 코멘트를 할 때 코멘트를 듣지 못해서 혼자서 대사를 하고 있던 적도 있었다.

이러한 문제는 다양한 몸을 가진 창작자의 몸의 속도와 언어를 존중한다는 기치로 모인 장애 예술 창작공간에서는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나는 나의 장애와 제약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동료들과 함께 새로운 접근성 규칙을 만들었다. 제한적이기는 했지만, 연습이 진행되는 동안 스태프들이 돌아가며 문자통역을 진행하는 식으로 제약들을 돌파해나갔다. 우리는 이내 서로의 몸과 속도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공연을 앞두고 극장에서 리허설을 진행할 때였다. 배우와 스태프는 무대와 분장실을 뛰어다니며 각자의 역할을 바삐 수행했고, 공연을 앞두고 모두의 마음이 뾰족해져 있었다. 리허설을 진행하며 무대에 맞춰 동선이나 대사를 수정해야 할 부분이 많았고 동시에 여기저기서 코멘트가 쏟아져 나왔다. 평화로운 연습실에서와 다르게 예외적으로 모두가 바쁘고 날카로워진 공간에서는 그간 쌓아왔던 접근성 규칙, 다른 소통방식에 대한 신뢰와 이해는 크게 힘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문자통역을 기대할 수 없었고, 동료 배우들에게 이야기를 다시 해달라거나 놓쳐버린 연출가의 코멘트를 전달해달라고 말할 때마다 마음의 부담이 컸다. 여유롭고 일상적인 연습공간과 다른 예외적인 시공간에서도 접근성 규칙이 힘을 잃지 않도록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혼자서는 답을 찾지 못했다.

최근에 재난 상황에서 장애를 가진 예술가에게 안전한 공간을 어떻게 구성할지를 고민하는 일에 참여했다. 물리적으로 안전한 공간이란 기본적으로 배리어프리 공간이어야 하며, 수화통역이나 문자통역 지원 등을 통해 다양한 소통방식을 존중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리고 심리적으로 편안한 공간이어야 한다. 공연을 관람하는 극장에 장애인 화장실이 없다면 그 공간은 심리적으로 편안한 공간일 수 없다. 극장 리허설 때 나의 소통방식만이 존중받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된다면, 불이 났을 때 5층의 극장에서 나만 탈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된다면, 그 창작의 공간 역시 심리적으로 편안한 공간이기 어렵다. 심리적으로 편안한 공간을 구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예상하지 못하는 순간을 예상할 수 있는 시공간으로 만드는 작은 시도들을 상상해볼 수 있다.

<오직 관객만을 위한 두산아트센터 스트리밍 서비스 공연>
[사진 제공] 여기는 당연히, 극장 ⓒ 혜영

지난 주말에 ‘여기는 당연히, 극장’의 <오직 관객만을 위한 두산아트센터 스트리밍 서비스 공연>을 관람했다. 공연은 팬데믹 시기의 어려움을 예술인 개인의 창작역량으로 이겨내라는 시대의 요구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독특하고 실험적인 극이었다. ‘여기는 당연히, 극장’에서 최근 진행한 공연들은 전 회차에 수화통역과 문자통역, 음성해설을 제공하고 있고, 이 공연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다섯 명의 배우와 두 명의 수화통역사가 무대에 나와 배우의 외양과 무대의 구성, 공연에서 사용될 조명과 음향효과에 대한 음성해설을 했다. 이 음성해설에는 “공연 중 퇴장하거나 긴급한 일이 있을 때 무대 양옆에 있는 스태프에게 알려달라”는 안내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안내가 나올 때 안내를 맡은 스태프들은 짝 하고 손뼉을 쳐서 본인이 서 있는 위치를 소리로 나타냈다. 시각장애를 가진 관객이 그 현장에 있었다면 박수 소리를 통해 스태프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정보는 자막으로도 함께 안내되었다. 이 간단한 정보제공 방식이 청각장애나 시각장애를 가진 관객이 그 공간을 예상 가능한 공간으로 인식하고, 편안하게 관극하게 해주는 버튼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현재 전무후무하게 예상이 어려운 시공간을 통과하고 있다. <오직 관객만을 위한 두산아트센터 스트리밍 서비스 공연>에서도 팬데믹 상황에서 공연 진행 상황이 일주일 단위로만 예측된다는 점을 지적하는 대사가 있었다. 코로나19가 어서 빨리 종식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동시에, 이 예상치 못하는 시대가 변화무쌍한 순간들을 대처하는 경험을 축적하는 시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이 시기에 시도된 실험과 상상력이 향후 장애 예술인의 창작공간을 좀 더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만드는 근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문영민

문영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서 장애인 공연예술, 장애정체성, 장애인의 몸, 장애인의 건강 불평등을 연구하고 있다. 프로젝트 극단 0set 소속으로 공연 <연극의 3요소> <불편한 입장들> <나는 인간> 등의 공연에 창작자로 참여하여 연극으로 장애인의 공연 접근성 문제를 알리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saojungym@daum.net

댓글 남기기

제 2021-524호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WA-WEB 접근성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 | 1.업체명: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고 112 3.웹사이트:http://www.ieum.or.kr 4.유효기간:2021.05.03~2022.05.02 5.인증범위:이음 온라인 홈페이지 |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47조제1항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9조제5항에 따라 위와 같이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를 발급합니다. 2021년 05월 03일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