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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탐구로서의 장애예술과 장애미학

이슈 기존 질서를 의심하고
새로운 가치를 해석한다

  • 최창희 감성정책연구소장
  • 등록일 2023-06-14
  • 조회수836

이슈

“‘틀리다’라는 말은 틀려. ‘다르다’가 맞아.” 이 말은 철학이나 미학을 처음 접했을 무렵 한 친구가 내게 한 설명인데, 그 강렬함이 잊히질 않아 여러 강의에서 종종 인용했었다. 이러한 ‘차이’를 강조하는 철학자가 질 들뢰즈였으며, 20세기 후반 이후 많은 철학자, 사상가들은 유사한 개념으로 세상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20세기의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은 이념과 사상 뒤에 숨은 인간의 폭력성과 욕망을 발견하게 한 큰 사건이었고, 그들은 이러한 사건과 현상 뒤에 숨은 문제를 차이, 평등, 환대 등 다양한 개념으로 설명했다. 또한 이들은 예술에 주목했는데, 예술가들은 보다 빠르고 쉽게 세계의 질서와 규율을 의심하고 사물의 가치를 새롭게 이해하며 예술작품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현대예술과 장애의 예술적 탐구

장애예술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국내에서도 장애와 비장애, 정상과 비정상, 중심과 주변에 관한 문제의식이 넓은 의미의 의사소통 형식과 연계되어 새롭고 실험적인 예술 형식으로 주목할 만한 장애예술이 등장했다. 주제와 형식 모두 배리어프리 실험으로 연출된 공연 <브레이크:BREAK>(주1)가 그러했고, 청인 중심 사회에서 농문화의 혁신적 예술을 선보이고 있는 핸드스피크가 그렇다. 특히 핸드스피크는 광복절을 기념하여 뮤지컬 <영웅>의 넘버 ‘누가 죄인인가’를 커버해 수어 뮤직비디오로 제작했는데, 수어와 함께 각 배우가 병렬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예술 표현 형식으로서 수어의 가치를 보여주었다.(주2) 그뿐만 아니라 일방적인 언어 소통이 아닌 수평적 방식의 다양한 예술적 소통 형식을 새롭게 제안한 것으로, 대중성뿐 아니라 상당한 예술성을 지녔다고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와 같은 예술적 형식은 장애예술이라고 구분되어 소개되기 이전부터 현대예술의 여러 장면에서 자주 등장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사례로는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도 있다. 미디어시티서울 2016의 타이틀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는 화성인의 말을 상상한 미래의 언어인데, 새로운 소통 체계에 대한 예술적 탐구를 제안하는 선구적인 주제였다. 그러한 맥락에서 장애와 연관된 소통의 문제를 다룬 크리스틴 선 킴의 <기술을 요하는 게임 2.0>과 휠체어 램프를 새롭게 해석한 사라 헨드렌의 <끼어든 경사로> 등의 작품이 전시되기도 했다. 비엔날레의 여름 캠프로 마련된 <불확실한 학교>는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기존 세계의 언어로 소통하지 못했던 것을 예술-기술-장애의 관계를 탐구하며 새로운 소통 언어를 찾는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전반적인 내용은 여전히 매우 의미 있는 기획이라고 본다.(주3)

장애와 예술, 인간과 세계를 해석하기

장애예술은 무엇일까? 예술은 늘 새로운 가치를 드러내며 이전의 것에서 발견하지 못한 의미와 형식을 새롭게 제안한다. 그것이 우리가 익히 들어온 아방가르드(avant-garde, 전위예술)로서 예술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새로운 형식을 자신의 고유한 이름으로 가지고 있다. 르네상스 예술, 팝아트, 키네틱아트, 미디어아트 등이 그러한 예다. 장애예술도 그러한 측면에서 새로운 형식으로 등장한 예술이다. 장애예술은 장애인 예술가의 창작물을 일컫는 것일까? 아니면 장애인이 재현된 예술인 것일까? 두 가지 모두 적절한 설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 예술과 비교해서 설명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여성 예술가의 모든 작품, 또는 여성이 재현된 작품을 페미니즘 예술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여성성이 표현되는 예술이나 사회적 구조 속에서 젠더(사회적 의미에서의 성) 문제를 다루는 예술의 방식으로 그 내용과 표현 형식의 고유성을 구분하여 지칭한다. 장애예술도 마찬가지다. 장애예술은 장애라는 사회적 구분에 의해 규정된 질서의 문제를 다루거나 장애나 신체를 새롭게 이해하는 방식으로서 ‘새로운 가능성의 역량’으로 표현되는 예술의 형식이다. 이상적인 신체를 기준으로 하는 미적 규범이나 고정된 인식 등을 해체하고 우리 인간 신체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물의 가치를 새롭게 이해하게 해주는 것이 장애예술이다.

그렇다면 장애미학은 무엇일까? 쉽게는 장애예술 또는 이와 유사하게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새로운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적 체계라고 할 수 있다. 미학을 통해 예술에 대한 비평적 개념을 마련하는 것처럼, 장애미학을 통해 장애예술에 대한 비평적·해석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조금 아쉽다. 아주 조금 더 심층적으로 설명해보자. 장애학에서는 장애를 정상에서 미달한, 신체에 결함이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초기 의료적 관점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사회 구조가 장애를 규정하고 형성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사회적 모델로 발전해왔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은 장애를 중심으로 하는 불평등한 사회적 구조에 대한 설명으로 그치는 한계가 있다. 물론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 구조에 관한 이해는 무척 필요하다. 그러나 끊임없이 평등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에 머무르기보다는 평등의 관점에서 시작하여 장애와 비장애 모두 새로운 신체 역량을 발견하도록 하는 것, 이를 통해 차이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타자를 받아들이고 세계를 이해하는 것으로서 장애미학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장애미학은 이것이다’라고 정의된 것은 아니다. 장애예술이 그러한 것처럼, 장애미학 역시 인간과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인간 탐구로서의 장애예술연구

이러한 측면에서 무엇보다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장애예술의 가치를 읽어주는 장애예술 비평의 활성화, 이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장애미학 연구가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그 움직임이 없지는 않으나 아직 미미한 상황이다. 국내에서도 뛰어난 장애예술 작업이 선보여지고 있는데도 그 예술이 지니는 의미와 가치에 대한 비평이나 분석은 잘 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장애예술의 빛나는 순간’은 이미 3~4년 전부터 주목했지만 이를 해석해주는 비평 언어가 부재하거나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작년에 이러한 문제의식과 장애예술 비평의 중요성을 공감하는 여러 연구자가 모여 장애예술의 고유한 특성을 분석하며 비평 연구를 진행하고 「인간 탐구로서의 장애예술연구」(감성정책연구소, 2022)를 발표했다.

미학연구자, 문학평론가, 무용평론가, 연출가 등이 모여서 워크숍을 진행하며 장애예술의 고유성을 찾아내고 그것을 비평적 언어로 분석했으며, 이를 시작으로 장애예술에 대한 비평 담론을 형성하고자 노력했다. 감각의 전이 또는 감각 확장의 경험으로서 ‘열 손가락 끝’으로 언어를 채굴한 손병걸 시인을 분석하는 고영직의 글에서나, 시간의 불연속을 지각하게 하는 떨림의 춤으로서 미분의 연합과 광물질적 이미지로 이민정의 안무를 분석한 김남수의 비평이 그것이다. 그리고 장애에 대한 재현으로서 연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안경모의 연구는 ‘장애인 재현 연기’와 ‘장애인 배우의 연기’를 분석하면서 예술로서 ‘장애 연기’의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무척 의미 있다. 책임연구자였던 필자는 장애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서 미학적 분석 방식의 필요성을 제안하며 장애미학을 정초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한 맥락에서 ‘신체 탐구’로서 장애예술 연구를 기술하고, 이를 기반으로 장애미학이 신체의 정치성에 주목하며 정치적인 몸으로서 장애를 연구하는 것임을 설명하였다.

8개월간의 공동워크숍을 거쳐 발표한 장애예술 비평 담론 연구였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장애예술의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읽어내고 그 가치를 확장하여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예술을 통해 다양한 삶의 가치와 공존할 수 있게 하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예술가의 뛰어난 상상력과 창조력이 이를 가능하게 하겠지만, 비평이라는 조력이 있어야 그것이 더욱 의미 있게 해석될 수 있고, 예술 자체도 그 해석을 딛고 더 발돋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예술계의 비평은 죽었다’라는 비판이 여기저기에서 제기되고 있다. 장애예술을 시작으로 더욱 가치 있는 비평 담론이 형성된다면 한국 예술 비평도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주1.연극 <브레이크:BREAK>(극작·연출 안경모)(유튜브 영상)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메이킹 배리어프리 실험과정으로 제작되었다.

주2.핸드스피크, 뮤지컬 <영웅> 넘버 ‘누가 죄인인가’ 커버 수어 뮤직비디오, 2020.(유튜브 영상)

주3.이와 관련된 상세한 내용은 필자가 다른 지면에서 작성한 글을 참조하길 바란다. “뉴미디어 시대, 매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 웹진 아르떼365, 2017년2월13일.

최창희

미학연구자. 감성정책연구소 소장.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문화정책논총 편집위원, 부산광역시립미술관 소장품수집위원. 시각예술정책 및 문화도시 조성 외 학술, 정책, 현장 등에서 광범위하게 활동하고 있다. 「랑시에르 사유에서 예술과 노동의 문제」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예술을 통한 함께 살기에 관한 연구 및 실천적 활동 등을 수행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2018년 이후 장애예술 현장에 관심을 가지며 장애예술 비평 담론과 장애미학을 집중 연구하고 있다.
mediaaura@hanmail.net

썸네일 사진.2020 무장애예술주간 기획공연 <브레이크: BREAK> (출처. 송윤, "공동의 성취를 향한 서로의 노력과 배려", 웹진이음, 2022년7월27일.)

2023년 6월 (42호)

상세내용

이슈

“‘틀리다’라는 말은 틀려. ‘다르다’가 맞아.” 이 말은 철학이나 미학을 처음 접했을 무렵 한 친구가 내게 한 설명인데, 그 강렬함이 잊히질 않아 여러 강의에서 종종 인용했었다. 이러한 ‘차이’를 강조하는 철학자가 질 들뢰즈였으며, 20세기 후반 이후 많은 철학자, 사상가들은 유사한 개념으로 세상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20세기의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은 이념과 사상 뒤에 숨은 인간의 폭력성과 욕망을 발견하게 한 큰 사건이었고, 그들은 이러한 사건과 현상 뒤에 숨은 문제를 차이, 평등, 환대 등 다양한 개념으로 설명했다. 또한 이들은 예술에 주목했는데, 예술가들은 보다 빠르고 쉽게 세계의 질서와 규율을 의심하고 사물의 가치를 새롭게 이해하며 예술작품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현대예술과 장애의 예술적 탐구

장애예술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국내에서도 장애와 비장애, 정상과 비정상, 중심과 주변에 관한 문제의식이 넓은 의미의 의사소통 형식과 연계되어 새롭고 실험적인 예술 형식으로 주목할 만한 장애예술이 등장했다. 주제와 형식 모두 배리어프리 실험으로 연출된 공연 <브레이크:BREAK>(주1)가 그러했고, 청인 중심 사회에서 농문화의 혁신적 예술을 선보이고 있는 핸드스피크가 그렇다. 특히 핸드스피크는 광복절을 기념하여 뮤지컬 <영웅>의 넘버 ‘누가 죄인인가’를 커버해 수어 뮤직비디오로 제작했는데, 수어와 함께 각 배우가 병렬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예술 표현 형식으로서 수어의 가치를 보여주었다.(주2) 그뿐만 아니라 일방적인 언어 소통이 아닌 수평적 방식의 다양한 예술적 소통 형식을 새롭게 제안한 것으로, 대중성뿐 아니라 상당한 예술성을 지녔다고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와 같은 예술적 형식은 장애예술이라고 구분되어 소개되기 이전부터 현대예술의 여러 장면에서 자주 등장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사례로는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도 있다. 미디어시티서울 2016의 타이틀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는 화성인의 말을 상상한 미래의 언어인데, 새로운 소통 체계에 대한 예술적 탐구를 제안하는 선구적인 주제였다. 그러한 맥락에서 장애와 연관된 소통의 문제를 다룬 크리스틴 선 킴의 <기술을 요하는 게임 2.0>과 휠체어 램프를 새롭게 해석한 사라 헨드렌의 <끼어든 경사로> 등의 작품이 전시되기도 했다. 비엔날레의 여름 캠프로 마련된 <불확실한 학교>는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기존 세계의 언어로 소통하지 못했던 것을 예술-기술-장애의 관계를 탐구하며 새로운 소통 언어를 찾는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전반적인 내용은 여전히 매우 의미 있는 기획이라고 본다.(주3)

장애와 예술, 인간과 세계를 해석하기

장애예술은 무엇일까? 예술은 늘 새로운 가치를 드러내며 이전의 것에서 발견하지 못한 의미와 형식을 새롭게 제안한다. 그것이 우리가 익히 들어온 아방가르드(avant-garde, 전위예술)로서 예술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새로운 형식을 자신의 고유한 이름으로 가지고 있다. 르네상스 예술, 팝아트, 키네틱아트, 미디어아트 등이 그러한 예다. 장애예술도 그러한 측면에서 새로운 형식으로 등장한 예술이다. 장애예술은 장애인 예술가의 창작물을 일컫는 것일까? 아니면 장애인이 재현된 예술인 것일까? 두 가지 모두 적절한 설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 예술과 비교해서 설명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여성 예술가의 모든 작품, 또는 여성이 재현된 작품을 페미니즘 예술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여성성이 표현되는 예술이나 사회적 구조 속에서 젠더(사회적 의미에서의 성) 문제를 다루는 예술의 방식으로 그 내용과 표현 형식의 고유성을 구분하여 지칭한다. 장애예술도 마찬가지다. 장애예술은 장애라는 사회적 구분에 의해 규정된 질서의 문제를 다루거나 장애나 신체를 새롭게 이해하는 방식으로서 ‘새로운 가능성의 역량’으로 표현되는 예술의 형식이다. 이상적인 신체를 기준으로 하는 미적 규범이나 고정된 인식 등을 해체하고 우리 인간 신체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물의 가치를 새롭게 이해하게 해주는 것이 장애예술이다.

그렇다면 장애미학은 무엇일까? 쉽게는 장애예술 또는 이와 유사하게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새로운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적 체계라고 할 수 있다. 미학을 통해 예술에 대한 비평적 개념을 마련하는 것처럼, 장애미학을 통해 장애예술에 대한 비평적·해석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조금 아쉽다. 아주 조금 더 심층적으로 설명해보자. 장애학에서는 장애를 정상에서 미달한, 신체에 결함이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초기 의료적 관점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사회 구조가 장애를 규정하고 형성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사회적 모델로 발전해왔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은 장애를 중심으로 하는 불평등한 사회적 구조에 대한 설명으로 그치는 한계가 있다. 물론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 구조에 관한 이해는 무척 필요하다. 그러나 끊임없이 평등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에 머무르기보다는 평등의 관점에서 시작하여 장애와 비장애 모두 새로운 신체 역량을 발견하도록 하는 것, 이를 통해 차이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타자를 받아들이고 세계를 이해하는 것으로서 장애미학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장애미학은 이것이다’라고 정의된 것은 아니다. 장애예술이 그러한 것처럼, 장애미학 역시 인간과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인간 탐구로서의 장애예술연구

이러한 측면에서 무엇보다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장애예술의 가치를 읽어주는 장애예술 비평의 활성화, 이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장애미학 연구가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그 움직임이 없지는 않으나 아직 미미한 상황이다. 국내에서도 뛰어난 장애예술 작업이 선보여지고 있는데도 그 예술이 지니는 의미와 가치에 대한 비평이나 분석은 잘 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장애예술의 빛나는 순간’은 이미 3~4년 전부터 주목했지만 이를 해석해주는 비평 언어가 부재하거나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작년에 이러한 문제의식과 장애예술 비평의 중요성을 공감하는 여러 연구자가 모여 장애예술의 고유한 특성을 분석하며 비평 연구를 진행하고 「인간 탐구로서의 장애예술연구」(감성정책연구소, 2022)를 발표했다.

미학연구자, 문학평론가, 무용평론가, 연출가 등이 모여서 워크숍을 진행하며 장애예술의 고유성을 찾아내고 그것을 비평적 언어로 분석했으며, 이를 시작으로 장애예술에 대한 비평 담론을 형성하고자 노력했다. 감각의 전이 또는 감각 확장의 경험으로서 ‘열 손가락 끝’으로 언어를 채굴한 손병걸 시인을 분석하는 고영직의 글에서나, 시간의 불연속을 지각하게 하는 떨림의 춤으로서 미분의 연합과 광물질적 이미지로 이민정의 안무를 분석한 김남수의 비평이 그것이다. 그리고 장애에 대한 재현으로서 연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안경모의 연구는 ‘장애인 재현 연기’와 ‘장애인 배우의 연기’를 분석하면서 예술로서 ‘장애 연기’의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무척 의미 있다. 책임연구자였던 필자는 장애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서 미학적 분석 방식의 필요성을 제안하며 장애미학을 정초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한 맥락에서 ‘신체 탐구’로서 장애예술 연구를 기술하고, 이를 기반으로 장애미학이 신체의 정치성에 주목하며 정치적인 몸으로서 장애를 연구하는 것임을 설명하였다.

8개월간의 공동워크숍을 거쳐 발표한 장애예술 비평 담론 연구였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장애예술의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읽어내고 그 가치를 확장하여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예술을 통해 다양한 삶의 가치와 공존할 수 있게 하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예술가의 뛰어난 상상력과 창조력이 이를 가능하게 하겠지만, 비평이라는 조력이 있어야 그것이 더욱 의미 있게 해석될 수 있고, 예술 자체도 그 해석을 딛고 더 발돋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예술계의 비평은 죽었다’라는 비판이 여기저기에서 제기되고 있다. 장애예술을 시작으로 더욱 가치 있는 비평 담론이 형성된다면 한국 예술 비평도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주1.연극 <브레이크:BREAK>(극작·연출 안경모)(유튜브 영상)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메이킹 배리어프리 실험과정으로 제작되었다.

주2.핸드스피크, 뮤지컬 <영웅> 넘버 ‘누가 죄인인가’ 커버 수어 뮤직비디오, 2020.(유튜브 영상)

주3.이와 관련된 상세한 내용은 필자가 다른 지면에서 작성한 글을 참조하길 바란다. “뉴미디어 시대, 매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 웹진 아르떼365, 2017년2월13일.

최창희

미학연구자. 감성정책연구소 소장.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문화정책논총 편집위원, 부산광역시립미술관 소장품수집위원. 시각예술정책 및 문화도시 조성 외 학술, 정책, 현장 등에서 광범위하게 활동하고 있다. 「랑시에르 사유에서 예술과 노동의 문제」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예술을 통한 함께 살기에 관한 연구 및 실천적 활동 등을 수행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2018년 이후 장애예술 현장에 관심을 가지며 장애예술 비평 담론과 장애미학을 집중 연구하고 있다.
mediaaura@hanmail.net

썸네일 사진.2020 무장애예술주간 기획공연 <브레이크: BREAK> (출처. 송윤, "공동의 성취를 향한 서로의 노력과 배려", 웹진이음, 2022년7월27일.)

2023년 6월 (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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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5 15:2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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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는 이해가 우리 사회에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장애예술 또한 우리 사회에서 예술을 통해 다양성의 공존과 가치를 확장시키는 점에서 응원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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