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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락의 예술 시작기②

이음광장 창작의 씨앗 ‘소리’로 만나는 하나뿐인 이야기

  • 김시락 다원예술 창작자
  • 등록일 2023-07-12
  • 조회수390

이음광장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에게 관심이 많다. 특히 사람의 성격에 관해 그러한데, 사주팔자에서부터 혈액형별 분류, MBTI 열풍에 이르기까지 시대가 변해도 식지 않는 인기를 보면 뜨거운 관심을 짐작할 수 있다. 또, 유형별 성격을 기억할 때 자신의 유형에 해당하는 정보만 기억하는 사람은 아직 한 명도 보지 못했다. 타인에 대해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잠재해 있는 것이다.

혈액형의 경우는 너무 익숙하다 보니 선후 관계마저 왜곡해 기억하는 게 아닌지 의심을 품게 된 사건이 있었다. 나 역시 어렸을 때부터 내 혈액형을 알고 있었고 주변에서도 자기 혈액형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중요한 건강 정보라서 모두가 알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할 때 중국인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대부분이 자신의 혈액형을 모르는 게 아닌가. 반면 본인의 별자리는 다들 잘 알고 있었다(중국은 별자리에 따른 성격 분류가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한다). 또, 태국 사람들은 자신의 생년월일과 함께 태어난 요일까지 기억한다고 한다. 역시 태어난 요일에 따라 성격이 결정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타인에 관한 관심은 어디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렇다면 혹시 한국 사람이 혈액형을 기억하는 것은 주요 건강 정보라서가 아니라 본인과 타인의 성격을 알기 위해서, 그리고 그 주제로 대화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이러한 타인에 관한 관심의 기저에는 낯선 존재, 낯선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 불편하지 않은 낯섦은 우리의 감정을 고양한다.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이야기는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모두의 이야기에는 마음을 동하게 하는 힘이 있다. 본인은 아무리 일상적이고 사소하다고 여길지라도 그 이야기는 그 사람만의 고유하고 특별한 이야기이다. 같은 직업군이라거나 같은 동네에 산다거나 같은 유형의 장애를 가졌다거나 하는 것들은 범주화하기 위한 하나의 특성일 뿐, 한 집합에 속한 개인이 집합 내 다른 개인과 같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저마다 모습이 다르고 습관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거쳐온 시간이 다르다. 각자가 유일무이하고 독립된 이야기의 주체다. 누구나 적어도 한 편의 이야기는 풀어낼 수 있는 능숙한 이야기꾼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자신의 이야기 말이다.

소리창작 워크숍 <상상경작>도 이런 생각에서부터 출발했다. 상상의 씨앗을 뿌려 여러 사람의 개성 있는 상상과 이야기를 풍성하게 수확하고 나누고 싶었다. 사실 프로젝트명이 <상상경작>이 된 데에는 경험적 배경이 있다. 조그만 시민 텃밭에 감자를 심은 적이 있는데, 감자가 알아서 잘 자라줘서 길렀다고 하기도 민망하지만 생각보다 엄청난 수확량에 깜짝 놀랐다. 하나의 감자에서 수많은 가느다란 줄기가 나오고 그 줄기들이 굵어지며 또 다른 감자가 되듯이, 내가 뿌린 작은 상상의 씨앗에서 사람들의 상상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 ‘이야기’라는 결실을 맺기 바라는 마음을 담아 <상상경작>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감자는 못난이 감자라는 인식이 별로 없다. 울퉁불퉁 제멋대로 생겼지만 모두 그 자체로 어엿한 감자로 평가된다. 이야기 역시 못난 이야기라고 차별받는 이야기가 없길 바랐다.

이야기를 수확하기 위해 ‘소리’라는 상상의 씨앗을 뿌렸다. 잘 알고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소리, 현상이나 사물은 익숙하지만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던 소리, 낯선 공간의 소리, 현실의 소리인지 의심스러웠던 소리 등 다양한 소리를 나눈 후, 소리와 관련된 경험, 소리를 듣고 떠오른 자유로운 상상을 모아 다시 나누려는 프로젝트였다. 비슷한 경험은 비슷한 대로 공감대를 형성해서 즐겁고, 다른 경험과 독특한 상상은 그것대로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물론 모든 것이 생각한 대로 매끄럽게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진행 경험은 값진 자산이 되었고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나의 상상을 살찌우고 또 다른 창작의 씨앗이 되었다. 워크숍에서 소리를 나누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낯선 소리를 듣고 상상으로 연결하는 것이었다. 소리를 듣고 감상을 나누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열띤 퀴즈쇼가 되어 있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다른 프로젝트 내에서 진행한 미니 워크숍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타나서, 다음에는 진행 방식을 달리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낯설다는 이유로 무작정 배척해서는 안 되지만 모든 낯선 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유해한 낯섦을 불편하게 느끼고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것, 무해한 낯섦에 기꺼이 마음을 여는 것,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잘 분별하는 것이다.

  • 필자가 양손에 물조리개를 들고 감자밭에 물을 주고 있다.

  •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와인잔을 부딪쳐 본다.

김시락

소리와 움직임에 관심이 많은 다원예술 창작자이며, 다양한 공연의 접근성 모니터링도 활발히 하고 있다. 국립극단 [창작공감:연출] <커뮤니티 대소동>에 출연했고, 서울문화재단 지원사업 선정작 소리창작 워크숍 <상상경작>과 움직임 워크숍 <봉인해제> 공동기획·운영, 청년예술청 움직임 워크숍 <무성한성무>를 기획·운영했다.
qpseh0113@naver.com

사진 제공. 필자

김시락

김시락 

소리와 움직임에 관심이 많은 다원예술 창작자이며, 공연 접근성 모니터링도 활발히 하고 있다. 국립극단 [창작공감:연출] <커뮤니티 대소동>에 출연했고, 서울문화재단 지원사업 선정작 소리창작 워크숍 <상상경작>과 움직임 워크숍 <봉인해제> 공동기획·운영, 청년예술청 움직임 워크숍 <무성한성무>를 기획·운영했다.
qpseh0113@naver.com

상세내용

이음광장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에게 관심이 많다. 특히 사람의 성격에 관해 그러한데, 사주팔자에서부터 혈액형별 분류, MBTI 열풍에 이르기까지 시대가 변해도 식지 않는 인기를 보면 뜨거운 관심을 짐작할 수 있다. 또, 유형별 성격을 기억할 때 자신의 유형에 해당하는 정보만 기억하는 사람은 아직 한 명도 보지 못했다. 타인에 대해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잠재해 있는 것이다.

혈액형의 경우는 너무 익숙하다 보니 선후 관계마저 왜곡해 기억하는 게 아닌지 의심을 품게 된 사건이 있었다. 나 역시 어렸을 때부터 내 혈액형을 알고 있었고 주변에서도 자기 혈액형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중요한 건강 정보라서 모두가 알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할 때 중국인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대부분이 자신의 혈액형을 모르는 게 아닌가. 반면 본인의 별자리는 다들 잘 알고 있었다(중국은 별자리에 따른 성격 분류가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한다). 또, 태국 사람들은 자신의 생년월일과 함께 태어난 요일까지 기억한다고 한다. 역시 태어난 요일에 따라 성격이 결정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타인에 관한 관심은 어디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렇다면 혹시 한국 사람이 혈액형을 기억하는 것은 주요 건강 정보라서가 아니라 본인과 타인의 성격을 알기 위해서, 그리고 그 주제로 대화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이러한 타인에 관한 관심의 기저에는 낯선 존재, 낯선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 불편하지 않은 낯섦은 우리의 감정을 고양한다.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이야기는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모두의 이야기에는 마음을 동하게 하는 힘이 있다. 본인은 아무리 일상적이고 사소하다고 여길지라도 그 이야기는 그 사람만의 고유하고 특별한 이야기이다. 같은 직업군이라거나 같은 동네에 산다거나 같은 유형의 장애를 가졌다거나 하는 것들은 범주화하기 위한 하나의 특성일 뿐, 한 집합에 속한 개인이 집합 내 다른 개인과 같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저마다 모습이 다르고 습관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거쳐온 시간이 다르다. 각자가 유일무이하고 독립된 이야기의 주체다. 누구나 적어도 한 편의 이야기는 풀어낼 수 있는 능숙한 이야기꾼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자신의 이야기 말이다.

소리창작 워크숍 <상상경작>도 이런 생각에서부터 출발했다. 상상의 씨앗을 뿌려 여러 사람의 개성 있는 상상과 이야기를 풍성하게 수확하고 나누고 싶었다. 사실 프로젝트명이 <상상경작>이 된 데에는 경험적 배경이 있다. 조그만 시민 텃밭에 감자를 심은 적이 있는데, 감자가 알아서 잘 자라줘서 길렀다고 하기도 민망하지만 생각보다 엄청난 수확량에 깜짝 놀랐다. 하나의 감자에서 수많은 가느다란 줄기가 나오고 그 줄기들이 굵어지며 또 다른 감자가 되듯이, 내가 뿌린 작은 상상의 씨앗에서 사람들의 상상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 ‘이야기’라는 결실을 맺기 바라는 마음을 담아 <상상경작>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감자는 못난이 감자라는 인식이 별로 없다. 울퉁불퉁 제멋대로 생겼지만 모두 그 자체로 어엿한 감자로 평가된다. 이야기 역시 못난 이야기라고 차별받는 이야기가 없길 바랐다.

이야기를 수확하기 위해 ‘소리’라는 상상의 씨앗을 뿌렸다. 잘 알고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소리, 현상이나 사물은 익숙하지만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던 소리, 낯선 공간의 소리, 현실의 소리인지 의심스러웠던 소리 등 다양한 소리를 나눈 후, 소리와 관련된 경험, 소리를 듣고 떠오른 자유로운 상상을 모아 다시 나누려는 프로젝트였다. 비슷한 경험은 비슷한 대로 공감대를 형성해서 즐겁고, 다른 경험과 독특한 상상은 그것대로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물론 모든 것이 생각한 대로 매끄럽게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진행 경험은 값진 자산이 되었고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나의 상상을 살찌우고 또 다른 창작의 씨앗이 되었다. 워크숍에서 소리를 나누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낯선 소리를 듣고 상상으로 연결하는 것이었다. 소리를 듣고 감상을 나누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열띤 퀴즈쇼가 되어 있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다른 프로젝트 내에서 진행한 미니 워크숍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타나서, 다음에는 진행 방식을 달리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낯설다는 이유로 무작정 배척해서는 안 되지만 모든 낯선 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유해한 낯섦을 불편하게 느끼고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것, 무해한 낯섦에 기꺼이 마음을 여는 것,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잘 분별하는 것이다.

  • 필자가 양손에 물조리개를 들고 감자밭에 물을 주고 있다.

  •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와인잔을 부딪쳐 본다.

김시락

소리와 움직임에 관심이 많은 다원예술 창작자이며, 다양한 공연의 접근성 모니터링도 활발히 하고 있다. 국립극단 [창작공감:연출] <커뮤니티 대소동>에 출연했고, 서울문화재단 지원사업 선정작 소리창작 워크숍 <상상경작>과 움직임 워크숍 <봉인해제> 공동기획·운영, 청년예술청 움직임 워크숍 <무성한성무>를 기획·운영했다.
qpseh0113@naver.com

사진 제공.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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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7 13: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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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지 않은 낯섦... 무해한 낯섦....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타인에 대한 두려움을 긍정의, 무해한 낯섦으로 다시 해석해봅니다. ^^ 시락님의 소리의 세계로 더 많은 이들이 초대 받아 '무해한 낯섦'을 경험해보길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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