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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이음

다양한 몸과 환경을 위한 미디어 연구

이음광장 공진하는 능력 연결되려는 마음

  • 김성환 사운드 디자이너
  • 등록일 2021-02-26
  • 조회수796

한번은 일하다가 장애 예술인들과 함께 밥을 먹으러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많은 대학로 밥집 중에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가게를 결국 찾지 못했다. 그것은 정말이지 내 인생에서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로, 내가 익숙한 세계로부터 튕겨 나와 다른 층위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흡사 영화 <매트릭스>의 빨간약을 먹은 것과 같았다. 나는 그 층위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자책과 내가 익숙한 것으로부터 거절당할 수 있다는 충격에 적잖이 놀랐다. 그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적어도 일주일은 우울한 음악을 반복해서 들었다. 어떻게든 받아들여 보려 했지만 역시 단박에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음 예술창작 아카데미]의 일환인 ‘다양한 몸들을 위한 소리산책 워크숍’을 준비하는 동안 함께한 동료들이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녔고, ‘연민’이라는 감정도 자칫 ‘차별’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혹시 나도 모르는 새에 누군가를 차별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잔뜩 움츠러들었고 마음이 더욱 심란해졌다. 왜냐하면 평소 내가 맺는 관계의 동기를 ‘연민’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층위의 경험을 맞닥뜨리자, 연민이 무엇인지 나 스스로 정의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 ‘평온’을 미덕으로 삼고 그것을 위한 명상에 관심이 많은데, 얼마 전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명상하는 ‘눈 명상’을 예술가 그룹과 몇 차례 진행했었다. 그 과정에서 내 심연의 ‘연민’이 나의 모든 의사 결정에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발견했고, 그 사실이 나에게 적지 않은 무게로 다가왔다. 혹시 연민은 없음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발달한 사회적 감정이 아닐까.  그래서 두려움에 대한 방어기제로 무의식중에 작동되는 것이 아닐까…. 여러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는데, 워크숍이 진행되면서 차츰 정리되어 갔다.

나는 오랜 기간 음악과 소리를 다뤄왔는데, 최근 나의 관심은 ‘내 몸과 마음이 주변의 소리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가’ 하는 것이다. 이 주제는 이번 워크숍에서도 다루게 되었다. 워크숍에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 10명이 참여했고, 그중에는 청각장애 예술인도 2명 있었다. 워크숍을 준비하면서 그들과 소리를 공유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하다, 결국 소리의 본질인 진동의 영역을 다루게 되었다. 진동을 주제로 지구, 사람, 종교, 시각, 소리로 세분화해서 다뤘다.

  • 워크숍 ‘각자의 소리적 세계관’ 소리 지도 그리기
    [이미지 출처] 필자 제공

소리의 본질은 진동이고 우주는 진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물질과 마찬가지로 사람도 진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요소로 구성되어 있고, 미시적으로 확대해보면 원자핵과 전자를 제외한 99.9%는 빈 공간일 뿐이다. 당신도 나도 같은 구성요소로 되어있는 빈 공간들 사이에 0.1% 이하의 여러 요소가 진동하고 있는 진동체일 뿐이다. 각자의 진동수가 달라 이런저런 차이가 있을 뿐 본질은 진동체인 것이다. 진동체는 서로 진동수가 비슷하면 공진할 수 있고, 그것이 세상의 모든 '연결'을 만들어 낸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내가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여러 가치판단의 기준이 나를 오히려 고립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세상의 존재들을 정말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고, 연민의 역할에 대해 작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나에게 연민은 타인과 ‘공진’하려는 능력이고 ‘연결’되려는 마음이다. 그것은 관계 맺기 안에서 누군가 고통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나아가 서로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세상은 이것을 ‘존엄’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서로를 존엄하게 만드는 것은, 함께 진동하기 위한 순수한 관계 맺기에서 시작된다. 소리는 이러한 진동을 전달하는 매질이다. 나는 내 마음도 진동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슬픈 음악을 들으면 마음도 슬퍼지는 게 아닐까. 그렇게 내 주변의 소리가 나와 관여되고 있는 게 아닐까.

워크숍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진동과 소리를 기반으로 서로 다름을 배려하고 천천히 자신을 표현했다. 모두 진동체로 연결된 하나의 몸체이기 때문에,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는 것이 나 스스로를 존중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번 워크숍은 우리의 존재가 진동으로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나에겐 몹시 뜻깊은 계기가 되었다.

나에게 연민은 연결을 위해 존재하는 다리와 같다. 아무것도 오가지 않는 다리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다리로 무엇을 주고받을 것인가에 집중한다면, 나의 연민도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김성환

김성환 

음악가, 사운드 엔지니어&디자이너. 2000년대 초반부터 ‘김성출’이라는 이름으로 사운드 엔지니어와 인디밴드 활동을 해왔다. 2012년부터 전시, 연극, 무용, 다원 등 여러 장르의 작가들과 협업하며 사운드 디자이너로서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도시의 소리에서 현대인이 느끼는 감정의 어떤 지점을 찾고 있으며, 음악과 전시, 퍼포먼스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풀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ulala44@naver.com
필자 블로그 바로가기 : http://google.com

김성환

김성환 

음악가, 사운드 엔지니어&디자이너. 2000년대 초반부터 ‘김성출’이라는 이름으로 사운드 엔지니어와 인디밴드 활동을 해왔다. 2012년부터 전시, 연극, 무용, 다원 등 여러 장르의 작가들과 협업하며 사운드 디자이너로서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도시의 소리에서 현대인이 느끼는 감정의 어떤 지점을 찾고 있으며, 음악과 전시, 퍼포먼스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풀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ulala44@naver.com
필자 블로그 바로가기 : http://google.com

상세내용

한번은 일하다가 장애 예술인들과 함께 밥을 먹으러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많은 대학로 밥집 중에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가게를 결국 찾지 못했다. 그것은 정말이지 내 인생에서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로, 내가 익숙한 세계로부터 튕겨 나와 다른 층위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흡사 영화 <매트릭스>의 빨간약을 먹은 것과 같았다. 나는 그 층위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자책과 내가 익숙한 것으로부터 거절당할 수 있다는 충격에 적잖이 놀랐다. 그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적어도 일주일은 우울한 음악을 반복해서 들었다. 어떻게든 받아들여 보려 했지만 역시 단박에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음 예술창작 아카데미]의 일환인 ‘다양한 몸들을 위한 소리산책 워크숍’을 준비하는 동안 함께한 동료들이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녔고, ‘연민’이라는 감정도 자칫 ‘차별’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혹시 나도 모르는 새에 누군가를 차별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잔뜩 움츠러들었고 마음이 더욱 심란해졌다. 왜냐하면 평소 내가 맺는 관계의 동기를 ‘연민’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층위의 경험을 맞닥뜨리자, 연민이 무엇인지 나 스스로 정의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 ‘평온’을 미덕으로 삼고 그것을 위한 명상에 관심이 많은데, 얼마 전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명상하는 ‘눈 명상’을 예술가 그룹과 몇 차례 진행했었다. 그 과정에서 내 심연의 ‘연민’이 나의 모든 의사 결정에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발견했고, 그 사실이 나에게 적지 않은 무게로 다가왔다. 혹시 연민은 없음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발달한 사회적 감정이 아닐까.  그래서 두려움에 대한 방어기제로 무의식중에 작동되는 것이 아닐까…. 여러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는데, 워크숍이 진행되면서 차츰 정리되어 갔다.

나는 오랜 기간 음악과 소리를 다뤄왔는데, 최근 나의 관심은 ‘내 몸과 마음이 주변의 소리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가’ 하는 것이다. 이 주제는 이번 워크숍에서도 다루게 되었다. 워크숍에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 10명이 참여했고, 그중에는 청각장애 예술인도 2명 있었다. 워크숍을 준비하면서 그들과 소리를 공유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하다, 결국 소리의 본질인 진동의 영역을 다루게 되었다. 진동을 주제로 지구, 사람, 종교, 시각, 소리로 세분화해서 다뤘다.

  • 워크숍 ‘각자의 소리적 세계관’ 소리 지도 그리기
    [이미지 출처] 필자 제공

소리의 본질은 진동이고 우주는 진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물질과 마찬가지로 사람도 진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요소로 구성되어 있고, 미시적으로 확대해보면 원자핵과 전자를 제외한 99.9%는 빈 공간일 뿐이다. 당신도 나도 같은 구성요소로 되어있는 빈 공간들 사이에 0.1% 이하의 여러 요소가 진동하고 있는 진동체일 뿐이다. 각자의 진동수가 달라 이런저런 차이가 있을 뿐 본질은 진동체인 것이다. 진동체는 서로 진동수가 비슷하면 공진할 수 있고, 그것이 세상의 모든 '연결'을 만들어 낸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내가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여러 가치판단의 기준이 나를 오히려 고립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세상의 존재들을 정말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고, 연민의 역할에 대해 작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나에게 연민은 타인과 ‘공진’하려는 능력이고 ‘연결’되려는 마음이다. 그것은 관계 맺기 안에서 누군가 고통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나아가 서로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세상은 이것을 ‘존엄’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서로를 존엄하게 만드는 것은, 함께 진동하기 위한 순수한 관계 맺기에서 시작된다. 소리는 이러한 진동을 전달하는 매질이다. 나는 내 마음도 진동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슬픈 음악을 들으면 마음도 슬퍼지는 게 아닐까. 그렇게 내 주변의 소리가 나와 관여되고 있는 게 아닐까.

워크숍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진동과 소리를 기반으로 서로 다름을 배려하고 천천히 자신을 표현했다. 모두 진동체로 연결된 하나의 몸체이기 때문에,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는 것이 나 스스로를 존중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번 워크숍은 우리의 존재가 진동으로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나에겐 몹시 뜻깊은 계기가 되었다.

나에게 연민은 연결을 위해 존재하는 다리와 같다. 아무것도 오가지 않는 다리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다리로 무엇을 주고받을 것인가에 집중한다면, 나의 연민도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김성환

김성환 

음악가, 사운드 엔지니어&디자이너. 2000년대 초반부터 ‘김성출’이라는 이름으로 사운드 엔지니어와 인디밴드 활동을 해왔다. 2012년부터 전시, 연극, 무용, 다원 등 여러 장르의 작가들과 협업하며 사운드 디자이너로서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도시의 소리에서 현대인이 느끼는 감정의 어떤 지점을 찾고 있으며, 음악과 전시, 퍼포먼스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풀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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