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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익숙한 것을 낯설게, 승패의 의미는 다르게

놀이하듯 배리어프리와 만나기

  • 이재환 미술작가
  • 등록일 2021-03-01
  • 조회수72

이슈

놀이하듯 배리어프리와 만나기

익숙한 것을 낯설게, 승패의 의미는 다르게

글. 이재환 미술작가

아직 정리되지 않았으나 탐구 중인 작업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배리어프리 놀이’라고까지 말하기에는 망설여지지만, 놀이에 대한 몇 가지 관점이자 시도이다. 나는 타인과의 만남의 방식을 놀이의 맥락에서 연구해왔다. 그 시간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특별한 놀이를 개발한 것은 아니다. 단지 놀이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안에서 어떻게 의미화될 수 있을지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그건 놀이가 특히 필요한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서 조금 다른 가치를 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에 있어서도 그러했다. 조금은 다른 순간을 만들고 싶었고 나도 재미있게 같이 놀고 싶었다. 그래서 놀고 즐기는 활동을 여러모로 시도해봤는데, 그 과정에서 고민한 몇 가지 방식을 이야기하고 싶다. 보드게임을 즐겨 하는 내 입장에서 참여자를 ‘플레이어’라고 표현해보자면, 플레이어의 능력이 각기 다를 때 할 수 있는 활동이 있다.

최근 특수학교에서 진행했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어떤 시간에 계획한 것을 못 하면 그것은 잘 해내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어떻게 하면 그게 아니라 잘 즐긴 것으로 의미화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준비의 개념이 좀 달라야 했다. 프로그램이라는 게 일정 부분 내가 준비해간 무언가를 참여자가 수행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나는 현장에서 잘 운영될 수 있는 활동을 계획해서 가야 하는 걸까 고민이 들었다. 그보다는 서로가 즐기는 순간이 많아지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두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참여자-플레이어가 좋아하거나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우선적으로 파악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음 시간에는 플레이어가 어떤 활동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지 상상해볼 수 있었다. 그다음에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구상을 할 수 있다.

신체 능력의 차이를 낯설게

1. 두 사람 간에 신체적 능력에 큰 차이가 있다면 신체적 능력이 중심이 되는 활동은 놀이가 되기 어렵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계속 불리한 위치에 놓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뇌성마비 장애인과 비장애인, 또는 성인과 아이의 당구 게임은 놀이가 되기 어렵다. 이때 당구를 같이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모색할 수 있다. 이러한 스포츠 형태의 놀이, 이를테면 힘과 각도를 기본으로 하여 진행하는 종목은 다음과 같은 방향성을 생각할 수 있다.

1-1. 힘과 각도의 요소를 플레이어의 신체적 능력으로 해결하지 않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슈터(shooter: 공이나 총을 쏘는 기계)와 같이 낯설지만 새로운 것을 제작하는 방법, 혹은 다른 종목에서 익숙한 슈팅의 방식 ― 예를 들어 손가락으로 컬링 하기, 테니스 라켓으로 탁구 하기 등 ― 을 가져오는 방법을 고민할 수 있다.

1-2. 반면 익숙함을 조금 더 고려하여 다른 종목 간 결합을 하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 나는, 플레이어에게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함으로써 신체적 능력에 대한 차이를 줄여보고자 노력한다. 예를 들어, 축구공에 골프의 룰을 적용하는 것이다. 축구공을 발로 차서 코스에 따라 이동하며 놀 수 있다.

1-3. 이렇게 다른 종목을 결합해보니 우연의 요소가 생기는 경우가 있었다. 이것을 더 활성화하여 우연의 요소가 더 많아지도록 시도해보기도 했다. 이를테면 탱탱볼로 축구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1-4. 이러한 놀이가 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놀이에 필요한 도구나 사물, 용품 등을 플레이어가 만들어볼 수 있다. 축구를 할 때, 이미 제작된 축구공과 골대를 사용하는 대신 관련된 여러 사물을 함께 만드는 것이다.

학습 능력의 차이가 무의미하게

2. 플레이어의 경력이나 학습 능력에서 차이가 있는 경우도 있다. 어떤 내용에 대해 더 많이 학습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이기기는 쉬워진다. 이를테면 바둑은 학습 능력에 차이가 발생하므로 누군가에게는 놀이가 되기 어렵다. 이런 경우 다음과 같은 방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2-1. 아주 간단한 연산만으로 이루어진 놀이를 만들어볼 수 있다. 사칙연산 대신 그보다 더 간단한 방식을 고안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오름차순이나 내림차순, 홀수와 짝수처럼 개념과 방식만 가지고 놀이를 시도할 수 있다.

2-2. 학습 능력의 차이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우연의 요소를 넣을 수도 있다. 아는 만큼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운에 따라 각자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사위 던지기, 카드 뽑기, 누구도 알 수 없는 퀴즈 풀기 같은 것이다.

2-3. 그리고 이것을 구체적인 놀이 방식으로 이어갈 수 있다. 주사위를 던져서 나오는 결과에 따라 무언가를 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내용이 무작위로 적힌 카드를 뽑아 다음 활동을 할 수도 있다. 혹은 맞춘 사람도 틀린 사람도 어이없어할 황당한 퀴즈를 하며 놀이를 진행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OO가 어제저녁에 먹은 음식은?” “필통에 필기도구가 가장 적게 들어 있는 사람은?” 등의 퀴즈를 내는 것이다.

능력이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3. 앞의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섞어볼 수도 있다. 신체적 능력이나 학습 능력의 차이가 덜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이리저리 합쳐보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들은 현장에서 다양한 플레이어와 여러 가지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낼수록 더욱 구체적으로 고려될 수 있다.

이러한 전반적인 생각 안에서 중요하게 고려된 것은 우연의 요소이다. 이 요소가 극대화될 경우에는 승패의 의미가 기존과 달라지고 익숙하던 것이 낯설어진다. 이것은 모든 상황에서 경쟁의 요소를 제거해보려는 노력과도 연결된다. 하지만 이것은 그러한 놀이 자체를 개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쟁하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시도되었다. 오히려 이러한 시도가 여러 형태나 방식의 놀이적 상황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앞으로도 매우 다양한 플레이어를 만날 것이다. 나 역시 그중 한 명으로 어떻게 놀이의 과정을 즐길 수 있을지 이렇게 정리하고 연구하면서 방법을 찾아갈 것이다.

  • 우연의 요소 실험

  • 슈터 실험

이재환

오래전부터 다양한 사람들과 놀이 방식으로 만나왔다.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과 일대일로 게임하듯 대화하는 프로젝트, 공연장에서 관객과 놀면서 만나는 퍼포먼스 등을 하기도 했다.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강사로 활동하며 여러 가지 놀이를 만들거나 시도해왔다.
imsocomplicated@hanmail.net

사진자료.이재환

2021. 03월호

이보람 

현재 남호주대학교에서 문화 예술 경영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관객개발, 문화 다양성, 축제 경영에 대해 강의 하고 있다. 장애인 예술 접근성 향상, 장애인 예술가 전문성 개발, 장애 예술 국제 교류 프로그램 유치 및 연구 중이다.
boram.Lee@unisa.edu.au

상세내용

이슈

놀이하듯 배리어프리와 만나기

익숙한 것을 낯설게, 승패의 의미는 다르게

글. 이재환 미술작가

아직 정리되지 않았으나 탐구 중인 작업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배리어프리 놀이’라고까지 말하기에는 망설여지지만, 놀이에 대한 몇 가지 관점이자 시도이다. 나는 타인과의 만남의 방식을 놀이의 맥락에서 연구해왔다. 그 시간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특별한 놀이를 개발한 것은 아니다. 단지 놀이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안에서 어떻게 의미화될 수 있을지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그건 놀이가 특히 필요한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서 조금 다른 가치를 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에 있어서도 그러했다. 조금은 다른 순간을 만들고 싶었고 나도 재미있게 같이 놀고 싶었다. 그래서 놀고 즐기는 활동을 여러모로 시도해봤는데, 그 과정에서 고민한 몇 가지 방식을 이야기하고 싶다. 보드게임을 즐겨 하는 내 입장에서 참여자를 ‘플레이어’라고 표현해보자면, 플레이어의 능력이 각기 다를 때 할 수 있는 활동이 있다.

최근 특수학교에서 진행했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어떤 시간에 계획한 것을 못 하면 그것은 잘 해내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어떻게 하면 그게 아니라 잘 즐긴 것으로 의미화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준비의 개념이 좀 달라야 했다. 프로그램이라는 게 일정 부분 내가 준비해간 무언가를 참여자가 수행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나는 현장에서 잘 운영될 수 있는 활동을 계획해서 가야 하는 걸까 고민이 들었다. 그보다는 서로가 즐기는 순간이 많아지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두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참여자-플레이어가 좋아하거나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우선적으로 파악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음 시간에는 플레이어가 어떤 활동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지 상상해볼 수 있었다. 그다음에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구상을 할 수 있다.

신체 능력의 차이를 낯설게

1. 두 사람 간에 신체적 능력에 큰 차이가 있다면 신체적 능력이 중심이 되는 활동은 놀이가 되기 어렵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계속 불리한 위치에 놓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뇌성마비 장애인과 비장애인, 또는 성인과 아이의 당구 게임은 놀이가 되기 어렵다. 이때 당구를 같이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모색할 수 있다. 이러한 스포츠 형태의 놀이, 이를테면 힘과 각도를 기본으로 하여 진행하는 종목은 다음과 같은 방향성을 생각할 수 있다.

1-1. 힘과 각도의 요소를 플레이어의 신체적 능력으로 해결하지 않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슈터(shooter: 공이나 총을 쏘는 기계)와 같이 낯설지만 새로운 것을 제작하는 방법, 혹은 다른 종목에서 익숙한 슈팅의 방식 ― 예를 들어 손가락으로 컬링 하기, 테니스 라켓으로 탁구 하기 등 ― 을 가져오는 방법을 고민할 수 있다.

1-2. 반면 익숙함을 조금 더 고려하여 다른 종목 간 결합을 하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 나는, 플레이어에게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함으로써 신체적 능력에 대한 차이를 줄여보고자 노력한다. 예를 들어, 축구공에 골프의 룰을 적용하는 것이다. 축구공을 발로 차서 코스에 따라 이동하며 놀 수 있다.

1-3. 이렇게 다른 종목을 결합해보니 우연의 요소가 생기는 경우가 있었다. 이것을 더 활성화하여 우연의 요소가 더 많아지도록 시도해보기도 했다. 이를테면 탱탱볼로 축구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1-4. 이러한 놀이가 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놀이에 필요한 도구나 사물, 용품 등을 플레이어가 만들어볼 수 있다. 축구를 할 때, 이미 제작된 축구공과 골대를 사용하는 대신 관련된 여러 사물을 함께 만드는 것이다.

학습 능력의 차이가 무의미하게

2. 플레이어의 경력이나 학습 능력에서 차이가 있는 경우도 있다. 어떤 내용에 대해 더 많이 학습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이기기는 쉬워진다. 이를테면 바둑은 학습 능력에 차이가 발생하므로 누군가에게는 놀이가 되기 어렵다. 이런 경우 다음과 같은 방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2-1. 아주 간단한 연산만으로 이루어진 놀이를 만들어볼 수 있다. 사칙연산 대신 그보다 더 간단한 방식을 고안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오름차순이나 내림차순, 홀수와 짝수처럼 개념과 방식만 가지고 놀이를 시도할 수 있다.

2-2. 학습 능력의 차이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우연의 요소를 넣을 수도 있다. 아는 만큼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운에 따라 각자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사위 던지기, 카드 뽑기, 누구도 알 수 없는 퀴즈 풀기 같은 것이다.

2-3. 그리고 이것을 구체적인 놀이 방식으로 이어갈 수 있다. 주사위를 던져서 나오는 결과에 따라 무언가를 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내용이 무작위로 적힌 카드를 뽑아 다음 활동을 할 수도 있다. 혹은 맞춘 사람도 틀린 사람도 어이없어할 황당한 퀴즈를 하며 놀이를 진행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OO가 어제저녁에 먹은 음식은?” “필통에 필기도구가 가장 적게 들어 있는 사람은?” 등의 퀴즈를 내는 것이다.

능력이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3. 앞의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섞어볼 수도 있다. 신체적 능력이나 학습 능력의 차이가 덜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이리저리 합쳐보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들은 현장에서 다양한 플레이어와 여러 가지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낼수록 더욱 구체적으로 고려될 수 있다.

이러한 전반적인 생각 안에서 중요하게 고려된 것은 우연의 요소이다. 이 요소가 극대화될 경우에는 승패의 의미가 기존과 달라지고 익숙하던 것이 낯설어진다. 이것은 모든 상황에서 경쟁의 요소를 제거해보려는 노력과도 연결된다. 하지만 이것은 그러한 놀이 자체를 개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쟁하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시도되었다. 오히려 이러한 시도가 여러 형태나 방식의 놀이적 상황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앞으로도 매우 다양한 플레이어를 만날 것이다. 나 역시 그중 한 명으로 어떻게 놀이의 과정을 즐길 수 있을지 이렇게 정리하고 연구하면서 방법을 찾아갈 것이다.

  • 우연의 요소 실험

  • 슈터 실험

이재환

오래전부터 다양한 사람들과 놀이 방식으로 만나왔다.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과 일대일로 게임하듯 대화하는 프로젝트, 공연장에서 관객과 놀면서 만나는 퍼포먼스 등을 하기도 했다.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강사로 활동하며 여러 가지 놀이를 만들거나 시도해왔다.
imsocomplicated@hanmail.net

사진자료.이재환

2021.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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