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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일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인터뷰 낮은 곳을 향하는 거침 없는 로우 앵글

  • 김보람 월간 [대구문화] 기자
  • 등록일 2021-02-24
  • 조회수810

인터뷰

안종일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낮은 곳을 향하는 거침 없는 로우 앵글

김보람 월간 [대구문화] 기자

안종일 감독은 허울 좋은 복지가 시끌시끌할 때 그 맹점에서 소외당하는 사람들의 한숨을 듣고, 재개발 열풍으로 치솟는 땅값보다 그 땅에서 잘려나간 사람들의 절망에 마음이 쏠리는 사람이었다. 왜소증으로 땅을 가까이하고 산 그는 유독 낮은 데서 나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촉수를 가졌다. 그는 카메라를 들기 시작하면서 이것을 예리한 ‘사회적 감수성’으로 갈고 닦았다. 좋은 다큐멘터리 감독의 필수 자질이기도 하다. 인터뷰에서 만난 그는 “낮은 곳에 머무른 사람의 마음을 듣는 것이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의 일”이라고 했다. 안 감독을 만나고 돌아서는 길. 신은 그러한 일을 맡기기 위해 그를 완벽한 모습으로 창조한 것이 틀림없다고 되뇌었다.

많은 영화 장르 중에서도 ‘다큐멘터리 하는 마음’은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공존〉을 출품한 2019년 대구단편영화제에서도 다큐멘터리 장르 출품 비율은 극소수에 불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 당시 출품작이 죄다 극영화였다. 그래서 단상에 올라 소감을 이야기할 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어떻게 해서든 다큐멘터리를 붙들고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해 나가 보겠습니다.”라고. 사실 극영화는 팀 작업을 하며 많이 참여해봤다. 하지만 내 작품을 할 때는 늘 다큐멘터리로 향했다. 그것은 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내면이나 소외되는 소수자의 삶에 온 귀가 열리는 천성 탓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누군가가 맞닥뜨리고 있는 생을 있는 그대로 대면하는 일이 나 자신을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온 것도 같다. 다큐멘터리는 제작 기간이 길고 그 문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기 때문에 감독이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변한다. 그렇게 다큐멘터리를 통해 삶과 세상을 배워가는 중이다.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인물들은 감독에게 자신이 마주하는 체증 어린 삶의 모습을 다 보여주지 않나. 이러한 작업은 인간적인 교류 없이는 이뤄지기 힘들 것 같다.

사람을 화면에 등장시킨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처음에는 쫓기는 게 일일 때도 있었다. 대구 북구 검단공단이 재개발되면서 그곳에서 밀려나는 농부, 공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 〈공존〉은 8분짜리다. 그런데 제작 기간만 8개월 정도 걸렸다. 그중 20일이 넘는 시간 동안 그 일대 사람들과 살았다고 보면 된다. 농부들과 생활하며 해가 뜨면 출근하고, 해가 지면 퇴근했다. 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카메라 2~3대씩을 온종일 켜두고 다니면서 모조리 다 담았다. 영화에 등장하지 않았지만, 화면 밖에는 더 많은 이해관계가 첩첩이 얽혀있다. 사실 이것은 생존에 관한 이야기이기에 궁지로 내몰린 심정은 듣는 것만으로도 심적으로 힘든 작업이다.

온종일 카메라를 켜두었다고 했는데, 그 때문인지 〈공존〉에서는 사소한 소음마저도 독특한 내러티브를 형상화하고 있다. 다시는 볼 수 없는 검단공간의 마지막 순간을 영정사진 찍듯 기록한 장면은 다큐멘터리의 경계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시적인 정서가 느껴졌다.

의자 씬(scene)이 바로 그런 의도로 찍은 대표적인 장면이다. 식사 시간 텅 빈 공단 거리를 돌다가 어느 공장 문 앞에 덜렁 놓인 의자 하나를 우연히 보았는데, 홀로 우두커니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 마치 여기 사람들의 모습 같아 얼른 카메라를 들었다. 편집 과정에서도 그런 장면들을 추가했다. 핸드폰이 초점을 잡지 못해 흐려졌다 맞춰졌다 하는 장면이 있는데, 사실 오류가 난 장면이지만 그걸 그대로 썼다. 그들의 상황을 대변할 수 있는 것이 말로는 충분하지 않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촬영감독 출신들은 현란한 이미지와 기술로 서사를 압도할 만큼의 장면을 만들어내곤 한다. 그런데 감독님의 작품은 되려 힘을 다 빼 거친 느낌마저 든다. 방송 촬영감독일 때와 영화감독일 때 접근 태도가 다를 듯하다.

영상은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해 비교적 가볍게 진입해서 정보를 채집한다. 영화는 더 본질적인 이야기와 맞닿기에 오랜 시간 쌓아 올린 고민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데 치중한다. 촬영감독을 할 때는 색에 민감할 수밖에 없어 씬을 아름답게 만드는 기술적인 부분에 신경을 썼다. 반면에 다큐멘터리 영화 작업에서는 대상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이기 위해, 보정이 되는 좋은 카메라들을 다 버리고 일반 캠코더나 핸드폰 카메라를 쓰기도 했다. 찍고자 하는 것의 민낯을 드러내는 것이 다큐멘터리로서 더 설득력을 가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거하는 아파트를 소재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풀어낸 첫 단편 〈시선〉이 2016년 발표됐다. 어떻게 영화에 접어들게 됐나.

어릴 적 아버지가 캐논 수동 카메라 한 대를 물려주면서 사진을 먼저 접하게 됐다. 이후 생업과는 별개로 사진을 취미로 삼다가 이것을 영사하는 방식인 ‘슬라이드쇼’에 한계를 느껴 손을 댄 것이 영상이다. 2011년 대구MBC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시민영상제작과정을 수강하면서 재미를 붙였다. 이 수업에서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고, 이들과 함께 ‘미디어 공감’이라는 동아리를 만들었다. 초대 회장으로 6년간 활동하면서 10여 편의 영상 작품을 제작하게 됐는데, 그 계기로 업을 바꿔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 지금은 ‘두띠’라는 팀에 소속돼 있다. 가장 어린 사람과 나이 많은 사람의 나이 차가 24살이 난다. 공통의 관심사를 지닌 이들과 어울려 작업하는 것이 즐겁다.

감독이면서 동시에 미디어 강사로서도 전국을 다니며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도 무려 11개의 수업을 맡고 계신다고 들었다.

누군가의 삶과 깊이 맞닿는 것이 영화로도 가능하지만, 강의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지금까지 수업을 통해 아이부터 노년층까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넘나들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수업은 가르친다기보다 영상을 매개로 같이 어울린다고 보면 된다. 그 과정을 통해 집에만 계시던 어르신들이 노인영화제에서 본선까지 올라 기뻐하는 모습을 봤고, 손목을 긋던 학교 밖 아이들이 남을 돕고 싶다는 꿈을 꾸고 대학 입학식에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미디어 교실이지만, 프레임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고 세상과 새로 관계 맺는다. 그 과정을 지나다 보면 그들이 사회에 녹아들어 새 구성원이 되어 있더라.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감독님은 특히나 장애, 비장애 영역을 자유롭게 오가는 활동을 보여주고 계신다. 영화제 출품도 그렇고, 교육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올해 2월에는 지역 문화기관에서 선보이는 시각예술 전시에서 미디어 영상 작업도 시도하셨다.

저는 웬만하면 장애 여부를 묻는 항목에 ‘장애’ 표시를 안 하는 편이다. 때론 장애가 있어 힘든 상황이 분명 있지만, 장애인이라 해서 그것을 매 순간 느끼면서 경계를 짓고, 그 구획 안에만 머물러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서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남들과 똑같은 선상에서 출발하고 싶다는 게 내 생각이다. 장애는 내게 축복에 더 가깝다. 장애가 있어서 내가 영화로 하는 이야기를 더 귀 기울여 듣는 분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 별명이 ‘로우 앵글의 달인’이다. 아래에 있는 것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남들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복이다. 그런데 주변에선 걱정이 많다. 영화나 영상 촬영에는 수많은 장비가 필요한데, 거기에 더해 나는 사다리까지 들고 다니니 힘들어 보이나 보다. 그러면 내가 웃으면서 농담을 툭 던진다. “키 큰 사람들은 중력 때문에 더 무거울걸요?”라고. 나는 조금 더 작을 뿐, 지금까지는 그것이 내 활동에 제약이 되지 않는다고 느낀다.

영화를 만드는 것이 주어진 삶을 대하는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달라.

영화(카메라)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꿈이 하나씩 늘어난다. 그중에서도 저와 같은 경험을 하는 장애인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꿈이 가장 간절하다. 영상을 만나기 전 나는 시계 수리 기능사로 일했다. 영화를 하고 난 이후 주변에서는 내가 완전히 딴사람이 됐다고들 한다. 가게 안에만 박혀 있다가 카메라를 만나고 바깥세상으로 나오기 시작해서다. 현재 장애인을 지원하는 제도는 많이 있지만, 그들이 스스로 세상 밖으로 나와 설 수 있는 접점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때문에 나는 이들이 세상 밖에서 온전히 설 수 있는 길을 만들고 싶다. 장애인만으로 팀을 꾸려 영화를 제작하는 것을 구상 중이다. 이들과 함께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신체의 장애’가 결코 ‘삶의 장애’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안종일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2011년부터 영상 작업을 시작해 대구MBC 미디어센터 산하 영상동아리 ‘공감’ 대표(2014~2018)를 지냈고, 전국미디어센터 영상 강사로 활동 중이다. 대표작으로 〈시선〉(2016), 〈공존〉(2017) 등이 있다. 2018년 제19회 대구단편영화제 금상(〈공존〉 애플시네마 부분 우수상), 2020년 제15회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 대상을 받았다.

김보람

월간 [대구문화] 공연전시 담당 기자
brkim713@korea.kr

영상.박유미 미술작가 gomako1983@hanmail.net
사진.김종현 사진작가 digi@cacoong.com
사진자료 제공.안종일

2021년 2월 (18호)

상세내용

인터뷰

안종일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낮은 곳을 향하는 거침 없는 로우 앵글

김보람 월간 [대구문화] 기자

안종일 감독은 허울 좋은 복지가 시끌시끌할 때 그 맹점에서 소외당하는 사람들의 한숨을 듣고, 재개발 열풍으로 치솟는 땅값보다 그 땅에서 잘려나간 사람들의 절망에 마음이 쏠리는 사람이었다. 왜소증으로 땅을 가까이하고 산 그는 유독 낮은 데서 나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촉수를 가졌다. 그는 카메라를 들기 시작하면서 이것을 예리한 ‘사회적 감수성’으로 갈고 닦았다. 좋은 다큐멘터리 감독의 필수 자질이기도 하다. 인터뷰에서 만난 그는 “낮은 곳에 머무른 사람의 마음을 듣는 것이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의 일”이라고 했다. 안 감독을 만나고 돌아서는 길. 신은 그러한 일을 맡기기 위해 그를 완벽한 모습으로 창조한 것이 틀림없다고 되뇌었다.

많은 영화 장르 중에서도 ‘다큐멘터리 하는 마음’은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공존〉을 출품한 2019년 대구단편영화제에서도 다큐멘터리 장르 출품 비율은 극소수에 불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 당시 출품작이 죄다 극영화였다. 그래서 단상에 올라 소감을 이야기할 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어떻게 해서든 다큐멘터리를 붙들고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해 나가 보겠습니다.”라고. 사실 극영화는 팀 작업을 하며 많이 참여해봤다. 하지만 내 작품을 할 때는 늘 다큐멘터리로 향했다. 그것은 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내면이나 소외되는 소수자의 삶에 온 귀가 열리는 천성 탓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누군가가 맞닥뜨리고 있는 생을 있는 그대로 대면하는 일이 나 자신을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온 것도 같다. 다큐멘터리는 제작 기간이 길고 그 문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기 때문에 감독이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변한다. 그렇게 다큐멘터리를 통해 삶과 세상을 배워가는 중이다.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인물들은 감독에게 자신이 마주하는 체증 어린 삶의 모습을 다 보여주지 않나. 이러한 작업은 인간적인 교류 없이는 이뤄지기 힘들 것 같다.

사람을 화면에 등장시킨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처음에는 쫓기는 게 일일 때도 있었다. 대구 북구 검단공단이 재개발되면서 그곳에서 밀려나는 농부, 공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 〈공존〉은 8분짜리다. 그런데 제작 기간만 8개월 정도 걸렸다. 그중 20일이 넘는 시간 동안 그 일대 사람들과 살았다고 보면 된다. 농부들과 생활하며 해가 뜨면 출근하고, 해가 지면 퇴근했다. 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카메라 2~3대씩을 온종일 켜두고 다니면서 모조리 다 담았다. 영화에 등장하지 않았지만, 화면 밖에는 더 많은 이해관계가 첩첩이 얽혀있다. 사실 이것은 생존에 관한 이야기이기에 궁지로 내몰린 심정은 듣는 것만으로도 심적으로 힘든 작업이다.

온종일 카메라를 켜두었다고 했는데, 그 때문인지 〈공존〉에서는 사소한 소음마저도 독특한 내러티브를 형상화하고 있다. 다시는 볼 수 없는 검단공간의 마지막 순간을 영정사진 찍듯 기록한 장면은 다큐멘터리의 경계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시적인 정서가 느껴졌다.

의자 씬(scene)이 바로 그런 의도로 찍은 대표적인 장면이다. 식사 시간 텅 빈 공단 거리를 돌다가 어느 공장 문 앞에 덜렁 놓인 의자 하나를 우연히 보았는데, 홀로 우두커니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 마치 여기 사람들의 모습 같아 얼른 카메라를 들었다. 편집 과정에서도 그런 장면들을 추가했다. 핸드폰이 초점을 잡지 못해 흐려졌다 맞춰졌다 하는 장면이 있는데, 사실 오류가 난 장면이지만 그걸 그대로 썼다. 그들의 상황을 대변할 수 있는 것이 말로는 충분하지 않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촬영감독 출신들은 현란한 이미지와 기술로 서사를 압도할 만큼의 장면을 만들어내곤 한다. 그런데 감독님의 작품은 되려 힘을 다 빼 거친 느낌마저 든다. 방송 촬영감독일 때와 영화감독일 때 접근 태도가 다를 듯하다.

영상은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해 비교적 가볍게 진입해서 정보를 채집한다. 영화는 더 본질적인 이야기와 맞닿기에 오랜 시간 쌓아 올린 고민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데 치중한다. 촬영감독을 할 때는 색에 민감할 수밖에 없어 씬을 아름답게 만드는 기술적인 부분에 신경을 썼다. 반면에 다큐멘터리 영화 작업에서는 대상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이기 위해, 보정이 되는 좋은 카메라들을 다 버리고 일반 캠코더나 핸드폰 카메라를 쓰기도 했다. 찍고자 하는 것의 민낯을 드러내는 것이 다큐멘터리로서 더 설득력을 가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거하는 아파트를 소재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풀어낸 첫 단편 〈시선〉이 2016년 발표됐다. 어떻게 영화에 접어들게 됐나.

어릴 적 아버지가 캐논 수동 카메라 한 대를 물려주면서 사진을 먼저 접하게 됐다. 이후 생업과는 별개로 사진을 취미로 삼다가 이것을 영사하는 방식인 ‘슬라이드쇼’에 한계를 느껴 손을 댄 것이 영상이다. 2011년 대구MBC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시민영상제작과정을 수강하면서 재미를 붙였다. 이 수업에서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고, 이들과 함께 ‘미디어 공감’이라는 동아리를 만들었다. 초대 회장으로 6년간 활동하면서 10여 편의 영상 작품을 제작하게 됐는데, 그 계기로 업을 바꿔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 지금은 ‘두띠’라는 팀에 소속돼 있다. 가장 어린 사람과 나이 많은 사람의 나이 차가 24살이 난다. 공통의 관심사를 지닌 이들과 어울려 작업하는 것이 즐겁다.

감독이면서 동시에 미디어 강사로서도 전국을 다니며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도 무려 11개의 수업을 맡고 계신다고 들었다.

누군가의 삶과 깊이 맞닿는 것이 영화로도 가능하지만, 강의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지금까지 수업을 통해 아이부터 노년층까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넘나들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수업은 가르친다기보다 영상을 매개로 같이 어울린다고 보면 된다. 그 과정을 통해 집에만 계시던 어르신들이 노인영화제에서 본선까지 올라 기뻐하는 모습을 봤고, 손목을 긋던 학교 밖 아이들이 남을 돕고 싶다는 꿈을 꾸고 대학 입학식에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미디어 교실이지만, 프레임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고 세상과 새로 관계 맺는다. 그 과정을 지나다 보면 그들이 사회에 녹아들어 새 구성원이 되어 있더라.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감독님은 특히나 장애, 비장애 영역을 자유롭게 오가는 활동을 보여주고 계신다. 영화제 출품도 그렇고, 교육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올해 2월에는 지역 문화기관에서 선보이는 시각예술 전시에서 미디어 영상 작업도 시도하셨다.

저는 웬만하면 장애 여부를 묻는 항목에 ‘장애’ 표시를 안 하는 편이다. 때론 장애가 있어 힘든 상황이 분명 있지만, 장애인이라 해서 그것을 매 순간 느끼면서 경계를 짓고, 그 구획 안에만 머물러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서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남들과 똑같은 선상에서 출발하고 싶다는 게 내 생각이다. 장애는 내게 축복에 더 가깝다. 장애가 있어서 내가 영화로 하는 이야기를 더 귀 기울여 듣는 분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 별명이 ‘로우 앵글의 달인’이다. 아래에 있는 것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남들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복이다. 그런데 주변에선 걱정이 많다. 영화나 영상 촬영에는 수많은 장비가 필요한데, 거기에 더해 나는 사다리까지 들고 다니니 힘들어 보이나 보다. 그러면 내가 웃으면서 농담을 툭 던진다. “키 큰 사람들은 중력 때문에 더 무거울걸요?”라고. 나는 조금 더 작을 뿐, 지금까지는 그것이 내 활동에 제약이 되지 않는다고 느낀다.

영화를 만드는 것이 주어진 삶을 대하는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달라.

영화(카메라)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꿈이 하나씩 늘어난다. 그중에서도 저와 같은 경험을 하는 장애인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꿈이 가장 간절하다. 영상을 만나기 전 나는 시계 수리 기능사로 일했다. 영화를 하고 난 이후 주변에서는 내가 완전히 딴사람이 됐다고들 한다. 가게 안에만 박혀 있다가 카메라를 만나고 바깥세상으로 나오기 시작해서다. 현재 장애인을 지원하는 제도는 많이 있지만, 그들이 스스로 세상 밖으로 나와 설 수 있는 접점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때문에 나는 이들이 세상 밖에서 온전히 설 수 있는 길을 만들고 싶다. 장애인만으로 팀을 꾸려 영화를 제작하는 것을 구상 중이다. 이들과 함께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신체의 장애’가 결코 ‘삶의 장애’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안종일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2011년부터 영상 작업을 시작해 대구MBC 미디어센터 산하 영상동아리 ‘공감’ 대표(2014~2018)를 지냈고, 전국미디어센터 영상 강사로 활동 중이다. 대표작으로 〈시선〉(2016), 〈공존〉(2017) 등이 있다. 2018년 제19회 대구단편영화제 금상(〈공존〉 애플시네마 부분 우수상), 2020년 제15회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 대상을 받았다.

김보람

월간 [대구문화] 공연전시 담당 기자
brkim713@korea.kr

영상.박유미 미술작가 gomako1983@hanmail.net
사진.김종현 사진작가 digi@cacoong.com
사진자료 제공.안종일

2021년 2월 (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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