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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장애를 연결하는 관점과 태도

이슈 매개, 멀리 돌아 나에게로 온 질문

  • 최선영 유구리최실장
  • 등록일 2021-07-28
  • 조회수1504

이슈

예술과 장애를 연결하는 관점과 태도

매개, 멀리 돌아 나에게로 온 질문

최선영 유구리 최실장

“장애인을 잘 돕는 나, 장애인을 잘 모르는 나, 장애인을 싫어하는 나, 장애인이 되고 싶지 않은 나, 장애가 있는 나, 장애인을 만나보지 못한 나, 장애인이 익숙한 나, 장애인에 대해 공부해야겠다고 느끼는 나…. 우리는 그런 ‘나’를 얼마나 들여다보려고 했을까. ‘나’라는 ‘사람’을 마주하려 하지 않은 채로 다른 ‘사람’을 무엇과 매개하는 것이 가능할까. 내가 나를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2019년 충북문화재단의 장애인 예술 매개자 양성과정 <렛잇비 Let it be>에 멘토로 참여한 나는 결과자료집에 이런 혼잣말을 썼다. 사업적으로는 매개자를 양성한다는 미션이 있었지만 결국 내가 무엇을 왜 매개하려 하는지, 그런 나는 누구인지 돌아보는 대화가 프로그램 내내 이어졌기 때문이다. 참여자들의 마음과 표현이 솔직해질수록 대화는 무겁게 내려앉았다가 가볍게 서로에게 튀어 나갔다. 그리고 각자에게 돌아온 질문은 다시 낯선 무게가 되어 자기 앞에 놓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순간을 만드는 주요한 원인은 ‘장애’나 ‘장애인’이라는 대화의 주제가 아니라 ‘예술’이라는 모호한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가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장애나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결정했다. 그래서 (프로그램 참여자가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예술에 대한 막연한 기대나 위계적 관점을 전제하면 ‘장애인도 예술을 할 수 있다’, ‘장애인에게 예술이 필요하다’, ‘장애인이 예술을 하면 지금보다 더 인정받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등의 표현이 반복되었다. 이것은 ‘예술이 삶 안에 이미 존재한다’, ‘각자의 표현이 갖는 예술적 의미가 있다’, ‘예술은 학습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등의 관점과 거리가 멀다. 하지만 기존의 예술계와 사회적 분위기 안에서도 예술의 위계성이 공고히 작동되고 있어서, 주로 그러한 시선 안에 있던 매개자도 자신의 관점으로부터 거리를 두기 어려웠다. 보통은 예술을 사회적으로 적당히 높고 넓은 자리에 위치시키고 그것으로부터 소외된 장애인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예술과 연결, 매개할 것인가라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관점이 지속하는 상황 안에서, 혹은 그 상황을 꺼내어 다시 살펴보지 않는 상태에서 매개의 효율적, 혹은 전문적 방법을 개발하는 방향으로만 논의할 경우 매개자의 역할은 한정될 수 있고 정책적으로도 매개자의 직무와 인력 양성만 중요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역할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는 직무나 역량이 아닌 사람에 대한 태도, 그리고 예술에 대한 관점이다. 이미 현장에서 매개자의 역할을 하는 많은 사람이 공감하듯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매개자가 사람이나 예술이라는 주제를 저 멀리 두고 얼마나 다층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가의 이슈가 아니다. 그 이전에 ‘내가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 나는 어떤 삶의 과정 안에서 그러한 관점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살피는 과정이 필요하다. 비장애인 중심적 관점이 지배적인 사회 안에서 살아왔던 사람에게 이러한 질문은 더욱 낯설고 어렵다. 하지만 매개자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나의 자발적 고민, 능동적 실천, 일상적 연결일 수 있다. ‘나는 매개(라고도 불리는) 활동을 왜 하려고 하는가, 이 활동은 나의 삶에 어떤 의미인가, 나는 장애나 예술에 대해 일반화된 관점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스스로 어떤 사유나 시도를 하고 있는가’ 등의 질문을 마주해야 한다.

나는 최근 이러한 맥락에서 매개자가 스스로와 서로에게 질문하는 대화의 기회를 만들고 있다. 2020년에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진행한 장애 예술 기획자 양성과정 <서론이 길다>와 현재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에서 진행하고 있는 대화모임 <질문조립방> 등이 특히 그러하다. 이 프로그램은 참여자가 장애를 주제로 토론을 한다기보다는 결국 자기 자신의 관점과 태도를 들여다보는 것에 집중한다. 비슷한 방식으로 충북문화재단에서 2019~2020년에 진행한 장애인 예술 매개자 양성과정과 현재 진행 중인 <질문의 주인을 찾습니다>에서도 장애예술에 대한 자기 논리 마련보다는 자신의 관점을 구성하는 삶 자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 가끔 이야기가 산으로 가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욱 멀리까지 나아가 솔직한 자신을 만나기도 하고 장애·장애인에 대한 개별적 시선도 찾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은 참여자에게 쉽거나 익숙하지 않다. 내가 보고 있는 무엇에 관해 말하는 것보다 왜 그렇게 보고 있는지 자신의 관점을 들여다보는 것이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장애인과의 창작활동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자기 질문을 멈추지 않을 때 매개자의 역할과 태도를 자신에게서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새롭게 매개자를 양성·배출하는 것을 목적화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면 누구든 각자의 방식과 태도로 매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장애·장애인, 그리고 예술도 특별한 주제나 대상으로만 다루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에 매개자를 인력 차원으로 양성하기보다는, 사회적으로도 그리고 본인의 삶 안에서 자기 질문을 가진 매개자가 등장할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서론이 길다> 과정기록집 표지에 삽입된 그림을 소개하고 싶다. 한 사람이 우주복을 입고 우주 저 멀리 행성까지 무언가를 찾으러 간 듯하다. 하지만 그 사람이 새로운 행성에서 마주한 것은 결국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자기 자신이었다.

<서론이 길다> 과정기록집 표지 그림 (그림. 이재환)

[관련 자료]

  • 2020 장애예술기획자 양성과정 <서론이 길다> 과정기록집 <다운받기>
  • 2020 충북 장애인 예술 매개자 양성과정 <렛잇비 Let it be> 결과자료집 <다운받기>

최선영

세상을 구하려다 오지라퍼가 된 문화+예술+플레이어다. 완벽한 해결사가 아니라 이상한 실체가 되고 싶은데 쉽지는 않다. 그 어려움을 매개로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에 관심이 있다.
voslss@hanmail.net

사진제공.필자

2021년 8월 (22호)

상세내용

이슈

예술과 장애를 연결하는 관점과 태도

매개, 멀리 돌아 나에게로 온 질문

최선영 유구리 최실장

“장애인을 잘 돕는 나, 장애인을 잘 모르는 나, 장애인을 싫어하는 나, 장애인이 되고 싶지 않은 나, 장애가 있는 나, 장애인을 만나보지 못한 나, 장애인이 익숙한 나, 장애인에 대해 공부해야겠다고 느끼는 나…. 우리는 그런 ‘나’를 얼마나 들여다보려고 했을까. ‘나’라는 ‘사람’을 마주하려 하지 않은 채로 다른 ‘사람’을 무엇과 매개하는 것이 가능할까. 내가 나를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2019년 충북문화재단의 장애인 예술 매개자 양성과정 <렛잇비 Let it be>에 멘토로 참여한 나는 결과자료집에 이런 혼잣말을 썼다. 사업적으로는 매개자를 양성한다는 미션이 있었지만 결국 내가 무엇을 왜 매개하려 하는지, 그런 나는 누구인지 돌아보는 대화가 프로그램 내내 이어졌기 때문이다. 참여자들의 마음과 표현이 솔직해질수록 대화는 무겁게 내려앉았다가 가볍게 서로에게 튀어 나갔다. 그리고 각자에게 돌아온 질문은 다시 낯선 무게가 되어 자기 앞에 놓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순간을 만드는 주요한 원인은 ‘장애’나 ‘장애인’이라는 대화의 주제가 아니라 ‘예술’이라는 모호한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가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장애나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결정했다. 그래서 (프로그램 참여자가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예술에 대한 막연한 기대나 위계적 관점을 전제하면 ‘장애인도 예술을 할 수 있다’, ‘장애인에게 예술이 필요하다’, ‘장애인이 예술을 하면 지금보다 더 인정받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등의 표현이 반복되었다. 이것은 ‘예술이 삶 안에 이미 존재한다’, ‘각자의 표현이 갖는 예술적 의미가 있다’, ‘예술은 학습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등의 관점과 거리가 멀다. 하지만 기존의 예술계와 사회적 분위기 안에서도 예술의 위계성이 공고히 작동되고 있어서, 주로 그러한 시선 안에 있던 매개자도 자신의 관점으로부터 거리를 두기 어려웠다. 보통은 예술을 사회적으로 적당히 높고 넓은 자리에 위치시키고 그것으로부터 소외된 장애인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예술과 연결, 매개할 것인가라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관점이 지속하는 상황 안에서, 혹은 그 상황을 꺼내어 다시 살펴보지 않는 상태에서 매개의 효율적, 혹은 전문적 방법을 개발하는 방향으로만 논의할 경우 매개자의 역할은 한정될 수 있고 정책적으로도 매개자의 직무와 인력 양성만 중요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역할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는 직무나 역량이 아닌 사람에 대한 태도, 그리고 예술에 대한 관점이다. 이미 현장에서 매개자의 역할을 하는 많은 사람이 공감하듯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매개자가 사람이나 예술이라는 주제를 저 멀리 두고 얼마나 다층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가의 이슈가 아니다. 그 이전에 ‘내가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 나는 어떤 삶의 과정 안에서 그러한 관점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살피는 과정이 필요하다. 비장애인 중심적 관점이 지배적인 사회 안에서 살아왔던 사람에게 이러한 질문은 더욱 낯설고 어렵다. 하지만 매개자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나의 자발적 고민, 능동적 실천, 일상적 연결일 수 있다. ‘나는 매개(라고도 불리는) 활동을 왜 하려고 하는가, 이 활동은 나의 삶에 어떤 의미인가, 나는 장애나 예술에 대해 일반화된 관점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스스로 어떤 사유나 시도를 하고 있는가’ 등의 질문을 마주해야 한다.

나는 최근 이러한 맥락에서 매개자가 스스로와 서로에게 질문하는 대화의 기회를 만들고 있다. 2020년에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진행한 장애 예술 기획자 양성과정 <서론이 길다>와 현재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에서 진행하고 있는 대화모임 <질문조립방> 등이 특히 그러하다. 이 프로그램은 참여자가 장애를 주제로 토론을 한다기보다는 결국 자기 자신의 관점과 태도를 들여다보는 것에 집중한다. 비슷한 방식으로 충북문화재단에서 2019~2020년에 진행한 장애인 예술 매개자 양성과정과 현재 진행 중인 <질문의 주인을 찾습니다>에서도 장애예술에 대한 자기 논리 마련보다는 자신의 관점을 구성하는 삶 자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 가끔 이야기가 산으로 가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욱 멀리까지 나아가 솔직한 자신을 만나기도 하고 장애·장애인에 대한 개별적 시선도 찾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은 참여자에게 쉽거나 익숙하지 않다. 내가 보고 있는 무엇에 관해 말하는 것보다 왜 그렇게 보고 있는지 자신의 관점을 들여다보는 것이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장애인과의 창작활동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자기 질문을 멈추지 않을 때 매개자의 역할과 태도를 자신에게서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새롭게 매개자를 양성·배출하는 것을 목적화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면 누구든 각자의 방식과 태도로 매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장애·장애인, 그리고 예술도 특별한 주제나 대상으로만 다루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에 매개자를 인력 차원으로 양성하기보다는, 사회적으로도 그리고 본인의 삶 안에서 자기 질문을 가진 매개자가 등장할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서론이 길다> 과정기록집 표지에 삽입된 그림을 소개하고 싶다. 한 사람이 우주복을 입고 우주 저 멀리 행성까지 무언가를 찾으러 간 듯하다. 하지만 그 사람이 새로운 행성에서 마주한 것은 결국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자기 자신이었다.

<서론이 길다> 과정기록집 표지 그림 (그림. 이재환)

[관련 자료]

  • 2020 장애예술기획자 양성과정 <서론이 길다> 과정기록집 <다운받기>
  • 2020 충북 장애인 예술 매개자 양성과정 <렛잇비 Let it be> 결과자료집 <다운받기>

최선영

세상을 구하려다 오지라퍼가 된 문화+예술+플레이어다. 완벽한 해결사가 아니라 이상한 실체가 되고 싶은데 쉽지는 않다. 그 어려움을 매개로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에 관심이 있다.
vosl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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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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