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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창작과 배리어프리①

이슈 불온한 목소리를 허하라

  • 김효진 작가
  • 등록일 2021-09-29
  • 조회수1206

이슈

예술창작과 배리어프리①

불온한 목소리를 허하라

김효진 작가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에세이가 있다. 가벼운 우울 증상이 지속되는 기분부전장애와 불안장애를 가진 저자가 정신과 전문의와 12주간 대화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자신의 어두움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을 듯하다. 정신장애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이 얼마나 팽배한가. 그런 이유로 정신과 의사의 책은 넘쳐나지만 정신장애를 겪는 이들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백세희 작가는 서문에서 “예술이 내게 준 행동은 용기였다”면서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예술을 한다”라고 말한다. ‘글쓰기’라는 창작활동을 통해 마침내 자유를 얻은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어디 정신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뿐이랴. 비장애 중심의 우리 사회에서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과도한(?) 용기가 필요하다. 장애인은 공통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강요당하는 억압을 경험하고 있는 까닭이다. 장애는 기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고, 장애인의 목소리는 그저 비정상에서 나오는 것일 뿐이라고 취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분야에서든 장애는 대체로 비장애인의 경험을 통해 해석되고 묘사되어 왔다. 그러다 보니 장애에 대한 왜곡된 관점이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장애인 당사자들은 이런 비장애 중심의 관점을 내면화해 타자화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데 오히려 익숙하다. 그래서 스스로가 감정과 의지를 지닌, 고유성을 지닌 개인임을 잊고 살아가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 장벽이 이미 가로놓여 있는 셈이다. 장애인이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려는 순간부터 장벽은 존재한다. 당사자의 목소리는 불온하거나 심지어 위험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차라리 숨기는 것이 더 안전하다.

간혹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삶의 경험과 깨달음이 예술의 형태로 표현될 때 사람들은 애써 외면하거나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 관심을 받을 때조차도 고작 치료 또는 재활 성공담으로 소비될 뿐이다. 왜 장애인의 예술창작 행위는 ‘예술’이 아니고 ‘장애극복’ ‘인간승리’의 서사로만 해석하려 할까? ‘치료’ 혹은 ‘장애극복’으로 규정하는 시각의 의도는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 장애인은 결함을 지닌 열등한 존재이므로 예술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일 거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구분하고 배제하려는 논리가 예술창작 영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엄혹하게 구분하고 배제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장애 예술인·단체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전문성 논란이야말로 배제의 언어에 다름 아니다. 전문성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자연스레 어울리며 배우고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래서 무수히 많은 장애인이 전문성이라는 기준과 잣대로 인해 예술창작의 문 앞에서 서성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문성이라는 가당치도 않은 잣대로부터 자유로워질 때에 장애인의 목소리는 비로소 세상 밖으로 튀어나올 수 있을 것이다.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어두움의 언어가 아닌 빛의 언어가 될 수 있다.

장애 예술인들은 ‘나만의 방식으로’ 예술창작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할 것이다. 백세희 작가가 그런 것처럼, 예술 활동을 통해 장애인들은 지금 있는 그대로 신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완전한 존재로서 비로소 자신을 존중하고 존중받는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이는 장애 예술인을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새로운 세계, 자유로운 세계를 열어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장애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이 충분히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자신의 삶의 이야기는 아무것도 아니며, 심지어 부정해야 할 어떤 것으로 여기는 문화 속에서 장애인도 발설(發說)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용기 있게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며 창작활동을 하는 장애 예술인의 실천적·해방적 측면이 재조명되어야 한다. 차별받고 있는 장애인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우리 사회가 어떤 식으로 장애인을 억압해왔는지 예술로 표현해내는 과정은 장애인을 포함해 다양한 억압을 경험하는 우리 시대 보통사람들을 해방의 길로 이끌어 줄 수 있다. 비장애인 중심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다르게 볼 수 있다면 장애 예술에 대한 전문성 시비는 더는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30조에는 장애인이 “특정한 문화적·언어적 정체성을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인정받고 지원받을 자격이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장애인의 독특한 경험과 고유성을 긍정하고 존중하는 대안 문화,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회에 대한 저항을 표현하는 대항문화로서의 장애 예술이 피어날 수 있도록 굳게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리길 기대한다.

김효진

동화를 쓰는 작가이자 장애인권운동을 하고 있다. 장애여성네트워크 대표를 역임했으며, 『깡이의 꽃밭』 『달려라 송이』 『착한 아이 안할래』 등의 작품을 썼다.
skyhoho21@hanmail.net

2021년 10월 (24호)

상세내용

이슈

예술창작과 배리어프리①

불온한 목소리를 허하라

김효진 작가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에세이가 있다. 가벼운 우울 증상이 지속되는 기분부전장애와 불안장애를 가진 저자가 정신과 전문의와 12주간 대화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자신의 어두움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을 듯하다. 정신장애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이 얼마나 팽배한가. 그런 이유로 정신과 의사의 책은 넘쳐나지만 정신장애를 겪는 이들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백세희 작가는 서문에서 “예술이 내게 준 행동은 용기였다”면서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예술을 한다”라고 말한다. ‘글쓰기’라는 창작활동을 통해 마침내 자유를 얻은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어디 정신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뿐이랴. 비장애 중심의 우리 사회에서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과도한(?) 용기가 필요하다. 장애인은 공통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강요당하는 억압을 경험하고 있는 까닭이다. 장애는 기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고, 장애인의 목소리는 그저 비정상에서 나오는 것일 뿐이라고 취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분야에서든 장애는 대체로 비장애인의 경험을 통해 해석되고 묘사되어 왔다. 그러다 보니 장애에 대한 왜곡된 관점이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장애인 당사자들은 이런 비장애 중심의 관점을 내면화해 타자화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데 오히려 익숙하다. 그래서 스스로가 감정과 의지를 지닌, 고유성을 지닌 개인임을 잊고 살아가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 장벽이 이미 가로놓여 있는 셈이다. 장애인이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려는 순간부터 장벽은 존재한다. 당사자의 목소리는 불온하거나 심지어 위험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차라리 숨기는 것이 더 안전하다.

간혹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삶의 경험과 깨달음이 예술의 형태로 표현될 때 사람들은 애써 외면하거나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 관심을 받을 때조차도 고작 치료 또는 재활 성공담으로 소비될 뿐이다. 왜 장애인의 예술창작 행위는 ‘예술’이 아니고 ‘장애극복’ ‘인간승리’의 서사로만 해석하려 할까? ‘치료’ 혹은 ‘장애극복’으로 규정하는 시각의 의도는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 장애인은 결함을 지닌 열등한 존재이므로 예술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일 거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구분하고 배제하려는 논리가 예술창작 영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엄혹하게 구분하고 배제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장애 예술인·단체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전문성 논란이야말로 배제의 언어에 다름 아니다. 전문성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자연스레 어울리며 배우고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래서 무수히 많은 장애인이 전문성이라는 기준과 잣대로 인해 예술창작의 문 앞에서 서성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문성이라는 가당치도 않은 잣대로부터 자유로워질 때에 장애인의 목소리는 비로소 세상 밖으로 튀어나올 수 있을 것이다.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어두움의 언어가 아닌 빛의 언어가 될 수 있다.

장애 예술인들은 ‘나만의 방식으로’ 예술창작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할 것이다. 백세희 작가가 그런 것처럼, 예술 활동을 통해 장애인들은 지금 있는 그대로 신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완전한 존재로서 비로소 자신을 존중하고 존중받는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이는 장애 예술인을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새로운 세계, 자유로운 세계를 열어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장애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이 충분히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자신의 삶의 이야기는 아무것도 아니며, 심지어 부정해야 할 어떤 것으로 여기는 문화 속에서 장애인도 발설(發說)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용기 있게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며 창작활동을 하는 장애 예술인의 실천적·해방적 측면이 재조명되어야 한다. 차별받고 있는 장애인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우리 사회가 어떤 식으로 장애인을 억압해왔는지 예술로 표현해내는 과정은 장애인을 포함해 다양한 억압을 경험하는 우리 시대 보통사람들을 해방의 길로 이끌어 줄 수 있다. 비장애인 중심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다르게 볼 수 있다면 장애 예술에 대한 전문성 시비는 더는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30조에는 장애인이 “특정한 문화적·언어적 정체성을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인정받고 지원받을 자격이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장애인의 독특한 경험과 고유성을 긍정하고 존중하는 대안 문화,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회에 대한 저항을 표현하는 대항문화로서의 장애 예술이 피어날 수 있도록 굳게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리길 기대한다.

김효진

동화를 쓰는 작가이자 장애인권운동을 하고 있다. 장애여성네트워크 대표를 역임했으며, 『깡이의 꽃밭』 『달려라 송이』 『착한 아이 안할래』 등의 작품을 썼다.
skyhoho21@hanmail.net

2021년 10월 (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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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2 15: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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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합니다. 장애예술을 수준미달로 만든 이유를 알고 바꿔나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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