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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에 대한 입장

이슈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세계를 향하여

  • 신재 연출
  • 등록일 2022-05-11
  • 조회수1407

이슈

입장에 대한 입장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세계를 향하여

글. 신재 연출

공연장을 포함한 문화예술공간의 ‘시설 접근성 조사 워크숍’(주1)을 진행할 때면 종종 받는 질문이 있다. 이 질문은 주로 워크숍이 끝날 때쯤, 참여자들이 공연장의 시설 및 운영방식 곳곳에 놓여있는 ‘턱’을 직접 확인한 후에 등장한다. 워크숍마다 각기 다른 사람이 비슷하게 내뱉은 이 질문에는 당면한 상황에 대한 저마다의 의사나 태도가 담겨 있었다.

“그래도 오지 않던데요?”

이 질문은 접근성의 관점에서 보면 공연장 또는 공연이 부족한 점이 많겠지만, 그동안 찾아온 장애인 관객이 거의 없었으며 최근 장애인 관객을 위한 몇 가지 시도, 가령 경사로 설치, 한글자막·한국수어 통역·음성해설 제공 등을 해보았지만 마찬가지로 별 소용이 없었다는 말의 끝에 덧붙었다. “그래도 오지 않던데요?”

곧바로 “무엇을 더 해야 할까요?”라는 고민을 토로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리고 이미 접근성 관련해서 시도한 것들과 앞으로 하고자 하는 방안들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을 나눠주는 참여자들도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이 질문의 대부분은 “지금까지 오지 않았고, 뭔가를 시도해봐도 오지 않는데 바꿔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라는 의사를 내비치며 끝이 났다. 무엇인가 시도해야 할 이유가 필요한 사람도 무엇인가를 하지 않아도 될 이유를 찾는 사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방금 전까지 함께 체크리스트와 줄자를 들고 다니면서 공연장 입구에 놓여있는 15cm의 턱, 건물 입구에서 끊겨 있는 점자블록, 여닫기에 무거운 문, 너비와 높이가 적절하지 않거나 혹은 부재한 장애인 화장실, 한글자막과 한국수어가 포함되지 않은 공연 및 비상대피 안내 등을 확인했지만, 다시 말해 그동안 누군가를 이곳에 입장하지 못하게 했던 수많은 구체적인 사실들을 직접 확인했지만, 그 사실들은 이곳을 바꿔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변화하지 않아도 될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래도 오지 않던데요!”

워크숍을 마칠 때마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처음 시설 접근성 조사 워크숍을 기획할 때 나는, 참여자들이 누군가의 입장을 막는 유무형의 턱들을 직접 확인하기만 한다면, 오래된 하지만 여전히 낯선 이 사실 ― ‘나’는 들어갈 수 있지만 ‘너’는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함께 문제로 인식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나의 기대와 저 질문(“그래도 오지 않던데요?”)이 놓친 것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공연장과 공연에서 일상적으로 장애인을 만날 수 없는 이유, 누군가의 입장을 방해하는 수많은 사실이 개선해야 할 문제가 되지 못하는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걸까.

“이것은 시민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에요!”

2021년 12월 6일에 시작되어,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21년 전에 시작되어 아직 끝나지 않은 출근길 지하철 장애인 시위가 있었던 어느 날, “21년 동안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고 싶다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당신들과 함께 이동하며 일상을 살아가고 싶다고, 계속 이야기 해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차별(계단)버스는 장애인을 남겨두고 떠나고,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 장애인의 자리는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시위 참여자를 향해 한 ‘시민’이 호통치듯 소리쳤다. “이것은 시민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에요!”

그가 말하는 ‘시민’ 안에 장애인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일상적으로 누려온, 그래서 ‘권리’라고 이름 붙인 적도 없었을 교통수단 이용에 잠시 불편을 느끼자마자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21년 동안 “함께 이동하며 일상을 살아갈” 권리를 보장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는 또 다른 ‘시민’을 향해, 그 권리는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자기 입장을 밝힐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말은 그가 겪은 불편에 대한 분노의 표현만이 아니었다. 그가 경험하고 생각하고 믿어온 세계 안에 시민으로서 장애인이 없었기 때문에, 지하철에서도 버스에서도 거리에서도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이 사회 어느 곳에서도 동등한 시민으로 장애인을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망설임 없이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함께 살고 있지 않다. “장애인들은 별로 밖으로 나돌지 않는 것처럼 보이며, 실제로도 그러하다.”(주2) 이 세계에서 대다수 장애인은 분리된 채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당연하고 익숙한 사실이다. 언젠가 공연을 함께한 휠체어 이용 창작자가 지나가는 말로 “가끔 거리를 다니다 보면 이 세계가 나를 거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거리를 활보하는 우리 옆으로 입구에 1~3개의 계단이 놓인 상가들이 즐비했다. 그의 말은 은유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지금의 세계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경험을 해본 적도 제공해본 적도 없는 곳이다. 어쩌면 함께 살아가는 세계는 아직 한 번도 만들어진 적이 없는, 새롭게 창조되어야 하는 세계일지도 모르겠다. 이 세계는 전에 없던 것들 혹은 있지만 없다고 여겨졌던 것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경험하고 인식하고 배우고 시도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만들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 공연장에 경사로를 마련했는데, 이번 공연에 한글자막과 수어통역을 제공했는데 ‘그래도 안 오던데요’라는 질문을 쉽게 던지지 말자. 무엇인가를 했는데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동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지 않은(못한) 것이다. 공연장과 공연이 지금 뭔가를 시도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동안 장애인과 공연장 사이에 없었던 길을 내기 위해 처음으로 내딛는 하나의 발걸음일 뿐이다. 길은 아직 생겨나지 않았다. 비장애인 중심의 “획일적인 사회에서 다른 이동, 소통, 존재 방식을 가진 사람들의 접근성은 하나부터 열까지 확인하고 질문해야 할 것들로 남아 있다.”(주3)

“제대로 된 세계에서라면”

일라이 클레어는 『망명과 자긍심』(현실문화, 2020)에서 “제대로 된 세계”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제대로 된 세계에서라면 아마도 장애인은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책과 잡지에 점자와 음성 녹음판이 있는 게 당연하고, 청인이 수어를 쓰는 게 당연한 세계. 모든 학교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통합교육이 이루어지고, 보건의료가 무료로 누구에게나 보장되는 세계. 보편적 접근이란 말이 정확하게 그 말뜻 그대로인 세계. 장애인이 집이나 장애인 수용시설에 감금되지 않고, 보호 작업장으로 밀려나지 않고, 저임금에 노동 착취를 당하지 않는 세계.”

이 단락은 이렇게 끝나지 않는다. 다음의 한 문장이 더 붙는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세계에선, 다른 능력을 가진, 신체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 거짓을 말하는 단어이다.”

지금과 같은 세계에선 제대로 된 공연장은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 거짓을 말하는 단어이다. 제대로 된 공연장은 제대로 된 세계를 참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함께 지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공연장에 나의 몸과 방식을 끼워 맞춰 넣거나 입장을 거부당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필요와 욕구 그리고 방식에 따라 자신을 마음껏 발현하고 즐기는 시공간으로 공연장과 공연을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의 세계에선 거창해 보이는 이러한 온전한 전환은 당연하게 주어졌던 사실, 즉 누구나 포함되어 있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생각했던 장 안으로 누군가는 입장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함께 문제로 인식하는 소박하고 일상적인 과정을 필요로 한다.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도 쉽게, 직접 찾는 수고 없이 그 사실을 보고 들을 수 있다. 아니, 21년 동안의 외침이 이제야 보이고 들리게 된 것일 수도 있겠다. 사실을 알지 못했던 혹은 알고 싶어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쉽게 확인하고 느낄 수 있도록 누군가가 지하철에서 온몸으로 그 사실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 여러분! 장애인은 비시민이 아닙니다. 천민이 아닙니다.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이동하고 교육받고 장애인 거주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관계를 만들고 싶습니다.” -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페이스북 게시글 중

이제 이 사실을 문제로 인식할 차례다. 누군가의 입장 앞에서 어느 입장에 설 것인지를 생각해야 할 때다. 익숙하고 편안한 기존의 세계에 남을 것인지 아니면 아직 아무도 입장한 적이 없는 제대로 된 세계를 향해 갈 것인지.

  • 시설 접근성 조사 워크숍 방식 참고 사진. 2022년 2~3월에 진행한 ‘성북공공예술사업 접근성 탐방 워크숍’ <입장-하다> 참여자들이 시설 접근성을 조사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왼편) 참여자들이 시설 접근성 조사에 앞서 극장 내부에 둥글게 모여 서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오른편) 한 참여자가 극장 건물 외부의 장애인 화장실을 찾아가는 길에 나온 건널목의 턱 높이를 줄자로 재고 있다.

    시설 접근성 조사 워크숍 방식 참고 사진. 2022년 2~3월에 진행한 성북공공예술사업 접근성 탐방 워크숍 <입장-하다> 참여자들이 시설 접근성을 조사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한 참여자가 극장 건물 외부의 장애인 화장실을 찾아가는 길에 나온 건널목의 턱 높이를 줄자로 재고 있다.

      

  • 시설 접근성 조사 워크숍 방식 참고 사진. 2022년 2~3월에 진행한 ‘성북공공예술사업 접근성 탐방 워크숍’ <입장-하다> 참여자들이 시설 접근성을 조사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왼편) 참여자들이 시설 접근성 조사에 앞서 극장 내부에 둥글게 모여 서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오른편) 한 참여자가 극장 건물 외부의 장애인 화장실을 찾아가는 길에 나온 건널목의 턱 높이를 줄자로 재고 있다.

    글과 함께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페이스북에 게시된 지하철 시위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사진 속 박경석은 지하철 안에 엎드려 누운 채 열려 있는 지하철 타는 출입문에 양팔을 걸쳐 놓고 있다. 박경석 뒤편 시위 참여자가 들고 있는 피켓이 보인다. 피켓에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 중앙정부 책임 분명하게 하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출처. 박경석 페이스북. 바로가기 링크

주1: ‘시설 접근성 조사 워크숍’은 공연장, 미술관, 도서관 등의 문화예술공간에 존재하는, 누군가의 입장을 막아온 유무형의 턱(장벽)을 구체적으로 확인한 후, 그 시설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기 위해서 필요한 변화를 제안하고 상상하기 위해 0set프로젝트에서 기획·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남산예술센터 시설 접근성 워크숍>(2017), <대학로 공연장 및 거리 접근성 워크숍 : 걷는 인간>(2018), <대학로예술극장 시설 접근성 점검 워크숍>(2020), <미술관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가 - 남서울미술관 시설 접근성 워크숍>(2020), <성북 접근성 탐방 워크숍 : 입장-하다>(2022) 등의 참여자 모집 워크숍과 시설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직접 조사에 참여하는 비공개 워크숍들을 진행해왔다.

주2: “우리는 대개 다른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다른 버스를 타며, 다른 대기 줄에 서고, 다른 입구로 들어가는 등 분리된 채 살아간다. 우리는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집에 머물러있을 수도 있고(집 밖에서 차별을 당하는 것보다 낫기 때문에) 혹은 우리 의지에 반해 그렇게 될 수도 있다(부모, 배우자, 활동지원사, 의사, 수급 상담사 등이 원하거나 집 밖으로 나서는 일 자체가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집을 나선다고 해도 경사로가 없는 보도블록 앞에서 가로막히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접근 불가능한 환경을 피하려 하거나, 계단 같은 물리적 장벽 그리고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낯선 사람들과 같은 심리적 장벽이 쳐진 장소들에 가능하면 가지 않으려는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우리가 비장애 중심주의를 너무나 깊게 내면화하고 있어서 부끄러움 때문에 집을 나서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게 아니면 우리는 (거주) 시설에 감금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수나우라 테일러, 『짐을 끄는 짐승들』(오월의봄, 2020).

주3: “따라서 접근성 개선(확장)은 어떤 조건을 충족하면 완성되는 형태가 아니라, 누군가의 접근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을 끊임없이 찾고 장·단기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하려는 태도가 된다. 그리고 그게 누구든지 간에 극장을 이용할 사람을 구체적인 필요와 욕구 그리고 삶의 방식을 가진 ‘종합적인 인간’으로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구체적인 사람들의 필요와 욕구에 의해 극장이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을 때야 비로소 ‘극장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가’라는 질문에 ‘네’라고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신재, 「0set프로젝트-극장편」.

신재

하고 싶은 이야기, 들어야 할 말을 품고 있는 사람-존재들과 함께 있는 방식을 탐구하기 위해 2017년부터 프로젝트 형식으로 조사, 워크숍, 공연제작 등을 하는 ‘0set프로젝트’ 팀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footlooseyou@gmail.com

사진제공. 필자

2022년 5월 (30호)

신재

신재 

하고 싶은 이야기, 들어야할 말을 품고 있는 사람들과 공동 창작 작업하고 있으며, 2017년부터 프로젝트 형식으로 조사, 워크숍, 공연 제작 등을 하는 ‘0set프로젝트’ 팀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footlooseyou@gmail.com

상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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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에 대한 입장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세계를 향하여

글. 신재 연출

공연장을 포함한 문화예술공간의 ‘시설 접근성 조사 워크숍’(주1)을 진행할 때면 종종 받는 질문이 있다. 이 질문은 주로 워크숍이 끝날 때쯤, 참여자들이 공연장의 시설 및 운영방식 곳곳에 놓여있는 ‘턱’을 직접 확인한 후에 등장한다. 워크숍마다 각기 다른 사람이 비슷하게 내뱉은 이 질문에는 당면한 상황에 대한 저마다의 의사나 태도가 담겨 있었다.

“그래도 오지 않던데요?”

이 질문은 접근성의 관점에서 보면 공연장 또는 공연이 부족한 점이 많겠지만, 그동안 찾아온 장애인 관객이 거의 없었으며 최근 장애인 관객을 위한 몇 가지 시도, 가령 경사로 설치, 한글자막·한국수어 통역·음성해설 제공 등을 해보았지만 마찬가지로 별 소용이 없었다는 말의 끝에 덧붙었다. “그래도 오지 않던데요?”

곧바로 “무엇을 더 해야 할까요?”라는 고민을 토로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리고 이미 접근성 관련해서 시도한 것들과 앞으로 하고자 하는 방안들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을 나눠주는 참여자들도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이 질문의 대부분은 “지금까지 오지 않았고, 뭔가를 시도해봐도 오지 않는데 바꿔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라는 의사를 내비치며 끝이 났다. 무엇인가 시도해야 할 이유가 필요한 사람도 무엇인가를 하지 않아도 될 이유를 찾는 사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방금 전까지 함께 체크리스트와 줄자를 들고 다니면서 공연장 입구에 놓여있는 15cm의 턱, 건물 입구에서 끊겨 있는 점자블록, 여닫기에 무거운 문, 너비와 높이가 적절하지 않거나 혹은 부재한 장애인 화장실, 한글자막과 한국수어가 포함되지 않은 공연 및 비상대피 안내 등을 확인했지만, 다시 말해 그동안 누군가를 이곳에 입장하지 못하게 했던 수많은 구체적인 사실들을 직접 확인했지만, 그 사실들은 이곳을 바꿔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변화하지 않아도 될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래도 오지 않던데요!”

워크숍을 마칠 때마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처음 시설 접근성 조사 워크숍을 기획할 때 나는, 참여자들이 누군가의 입장을 막는 유무형의 턱들을 직접 확인하기만 한다면, 오래된 하지만 여전히 낯선 이 사실 ― ‘나’는 들어갈 수 있지만 ‘너’는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함께 문제로 인식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나의 기대와 저 질문(“그래도 오지 않던데요?”)이 놓친 것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공연장과 공연에서 일상적으로 장애인을 만날 수 없는 이유, 누군가의 입장을 방해하는 수많은 사실이 개선해야 할 문제가 되지 못하는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걸까.

“이것은 시민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에요!”

2021년 12월 6일에 시작되어,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21년 전에 시작되어 아직 끝나지 않은 출근길 지하철 장애인 시위가 있었던 어느 날, “21년 동안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고 싶다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당신들과 함께 이동하며 일상을 살아가고 싶다고, 계속 이야기 해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차별(계단)버스는 장애인을 남겨두고 떠나고,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 장애인의 자리는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시위 참여자를 향해 한 ‘시민’이 호통치듯 소리쳤다. “이것은 시민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에요!”

그가 말하는 ‘시민’ 안에 장애인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일상적으로 누려온, 그래서 ‘권리’라고 이름 붙인 적도 없었을 교통수단 이용에 잠시 불편을 느끼자마자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21년 동안 “함께 이동하며 일상을 살아갈” 권리를 보장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는 또 다른 ‘시민’을 향해, 그 권리는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자기 입장을 밝힐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말은 그가 겪은 불편에 대한 분노의 표현만이 아니었다. 그가 경험하고 생각하고 믿어온 세계 안에 시민으로서 장애인이 없었기 때문에, 지하철에서도 버스에서도 거리에서도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이 사회 어느 곳에서도 동등한 시민으로 장애인을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망설임 없이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함께 살고 있지 않다. “장애인들은 별로 밖으로 나돌지 않는 것처럼 보이며, 실제로도 그러하다.”(주2) 이 세계에서 대다수 장애인은 분리된 채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당연하고 익숙한 사실이다. 언젠가 공연을 함께한 휠체어 이용 창작자가 지나가는 말로 “가끔 거리를 다니다 보면 이 세계가 나를 거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거리를 활보하는 우리 옆으로 입구에 1~3개의 계단이 놓인 상가들이 즐비했다. 그의 말은 은유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지금의 세계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경험을 해본 적도 제공해본 적도 없는 곳이다. 어쩌면 함께 살아가는 세계는 아직 한 번도 만들어진 적이 없는, 새롭게 창조되어야 하는 세계일지도 모르겠다. 이 세계는 전에 없던 것들 혹은 있지만 없다고 여겨졌던 것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경험하고 인식하고 배우고 시도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만들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 공연장에 경사로를 마련했는데, 이번 공연에 한글자막과 수어통역을 제공했는데 ‘그래도 안 오던데요’라는 질문을 쉽게 던지지 말자. 무엇인가를 했는데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동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지 않은(못한) 것이다. 공연장과 공연이 지금 뭔가를 시도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동안 장애인과 공연장 사이에 없었던 길을 내기 위해 처음으로 내딛는 하나의 발걸음일 뿐이다. 길은 아직 생겨나지 않았다. 비장애인 중심의 “획일적인 사회에서 다른 이동, 소통, 존재 방식을 가진 사람들의 접근성은 하나부터 열까지 확인하고 질문해야 할 것들로 남아 있다.”(주3)

“제대로 된 세계에서라면”

일라이 클레어는 『망명과 자긍심』(현실문화, 2020)에서 “제대로 된 세계”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제대로 된 세계에서라면 아마도 장애인은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책과 잡지에 점자와 음성 녹음판이 있는 게 당연하고, 청인이 수어를 쓰는 게 당연한 세계. 모든 학교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통합교육이 이루어지고, 보건의료가 무료로 누구에게나 보장되는 세계. 보편적 접근이란 말이 정확하게 그 말뜻 그대로인 세계. 장애인이 집이나 장애인 수용시설에 감금되지 않고, 보호 작업장으로 밀려나지 않고, 저임금에 노동 착취를 당하지 않는 세계.”

이 단락은 이렇게 끝나지 않는다. 다음의 한 문장이 더 붙는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세계에선, 다른 능력을 가진, 신체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 거짓을 말하는 단어이다.”

지금과 같은 세계에선 제대로 된 공연장은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 거짓을 말하는 단어이다. 제대로 된 공연장은 제대로 된 세계를 참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함께 지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공연장에 나의 몸과 방식을 끼워 맞춰 넣거나 입장을 거부당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필요와 욕구 그리고 방식에 따라 자신을 마음껏 발현하고 즐기는 시공간으로 공연장과 공연을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의 세계에선 거창해 보이는 이러한 온전한 전환은 당연하게 주어졌던 사실, 즉 누구나 포함되어 있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생각했던 장 안으로 누군가는 입장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함께 문제로 인식하는 소박하고 일상적인 과정을 필요로 한다.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도 쉽게, 직접 찾는 수고 없이 그 사실을 보고 들을 수 있다. 아니, 21년 동안의 외침이 이제야 보이고 들리게 된 것일 수도 있겠다. 사실을 알지 못했던 혹은 알고 싶어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쉽게 확인하고 느낄 수 있도록 누군가가 지하철에서 온몸으로 그 사실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 여러분! 장애인은 비시민이 아닙니다. 천민이 아닙니다.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이동하고 교육받고 장애인 거주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관계를 만들고 싶습니다.” -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페이스북 게시글 중

이제 이 사실을 문제로 인식할 차례다. 누군가의 입장 앞에서 어느 입장에 설 것인지를 생각해야 할 때다. 익숙하고 편안한 기존의 세계에 남을 것인지 아니면 아직 아무도 입장한 적이 없는 제대로 된 세계를 향해 갈 것인지.

  • 시설 접근성 조사 워크숍 방식 참고 사진. 2022년 2~3월에 진행한 ‘성북공공예술사업 접근성 탐방 워크숍’ <입장-하다> 참여자들이 시설 접근성을 조사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왼편) 참여자들이 시설 접근성 조사에 앞서 극장 내부에 둥글게 모여 서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오른편) 한 참여자가 극장 건물 외부의 장애인 화장실을 찾아가는 길에 나온 건널목의 턱 높이를 줄자로 재고 있다.

    시설 접근성 조사 워크숍 방식 참고 사진. 2022년 2~3월에 진행한 성북공공예술사업 접근성 탐방 워크숍 <입장-하다> 참여자들이 시설 접근성을 조사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한 참여자가 극장 건물 외부의 장애인 화장실을 찾아가는 길에 나온 건널목의 턱 높이를 줄자로 재고 있다.

      

  • 시설 접근성 조사 워크숍 방식 참고 사진. 2022년 2~3월에 진행한 ‘성북공공예술사업 접근성 탐방 워크숍’ <입장-하다> 참여자들이 시설 접근성을 조사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왼편) 참여자들이 시설 접근성 조사에 앞서 극장 내부에 둥글게 모여 서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오른편) 한 참여자가 극장 건물 외부의 장애인 화장실을 찾아가는 길에 나온 건널목의 턱 높이를 줄자로 재고 있다.

    글과 함께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페이스북에 게시된 지하철 시위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사진 속 박경석은 지하철 안에 엎드려 누운 채 열려 있는 지하철 타는 출입문에 양팔을 걸쳐 놓고 있다. 박경석 뒤편 시위 참여자가 들고 있는 피켓이 보인다. 피켓에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 중앙정부 책임 분명하게 하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출처. 박경석 페이스북. 바로가기 링크

주1: ‘시설 접근성 조사 워크숍’은 공연장, 미술관, 도서관 등의 문화예술공간에 존재하는, 누군가의 입장을 막아온 유무형의 턱(장벽)을 구체적으로 확인한 후, 그 시설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기 위해서 필요한 변화를 제안하고 상상하기 위해 0set프로젝트에서 기획·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남산예술센터 시설 접근성 워크숍>(2017), <대학로 공연장 및 거리 접근성 워크숍 : 걷는 인간>(2018), <대학로예술극장 시설 접근성 점검 워크숍>(2020), <미술관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가 - 남서울미술관 시설 접근성 워크숍>(2020), <성북 접근성 탐방 워크숍 : 입장-하다>(2022) 등의 참여자 모집 워크숍과 시설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직접 조사에 참여하는 비공개 워크숍들을 진행해왔다.

주2: “우리는 대개 다른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다른 버스를 타며, 다른 대기 줄에 서고, 다른 입구로 들어가는 등 분리된 채 살아간다. 우리는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집에 머물러있을 수도 있고(집 밖에서 차별을 당하는 것보다 낫기 때문에) 혹은 우리 의지에 반해 그렇게 될 수도 있다(부모, 배우자, 활동지원사, 의사, 수급 상담사 등이 원하거나 집 밖으로 나서는 일 자체가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집을 나선다고 해도 경사로가 없는 보도블록 앞에서 가로막히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접근 불가능한 환경을 피하려 하거나, 계단 같은 물리적 장벽 그리고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낯선 사람들과 같은 심리적 장벽이 쳐진 장소들에 가능하면 가지 않으려는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우리가 비장애 중심주의를 너무나 깊게 내면화하고 있어서 부끄러움 때문에 집을 나서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게 아니면 우리는 (거주) 시설에 감금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수나우라 테일러, 『짐을 끄는 짐승들』(오월의봄, 2020).

주3: “따라서 접근성 개선(확장)은 어떤 조건을 충족하면 완성되는 형태가 아니라, 누군가의 접근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을 끊임없이 찾고 장·단기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하려는 태도가 된다. 그리고 그게 누구든지 간에 극장을 이용할 사람을 구체적인 필요와 욕구 그리고 삶의 방식을 가진 ‘종합적인 인간’으로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구체적인 사람들의 필요와 욕구에 의해 극장이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을 때야 비로소 ‘극장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가’라는 질문에 ‘네’라고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신재, 「0set프로젝트-극장편」.

신재

하고 싶은 이야기, 들어야 할 말을 품고 있는 사람-존재들과 함께 있는 방식을 탐구하기 위해 2017년부터 프로젝트 형식으로 조사, 워크숍, 공연제작 등을 하는 ‘0set프로젝트’ 팀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footlooseyou@gmail.com

사진제공. 필자

2022년 5월 (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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