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웹진 이음

김종민 영화감독

인터뷰 당사자의 몫을 화면에 담는 방법

  • 김재영 다큐멘터리 영화 연출가
  • 등록일 2022-05-11
  • 조회수1029

인터뷰

김종민 영화감독은 장애인이 실제로 경험하는 삶의 짧은 순간을 영화로 만든다. 2019년 ‘토론토 스마트폰 영화제’ 개막작으로 초청받은 <하고 싶은 말>을 비롯하여 <용기> <중고거래> <듣고 싶은 말> 등의 단편영화는 모두 장애인들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영화에서는 장애인이 겪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더욱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그는 자신도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장애인의 삶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세 살이 되던 해, 계단에서 구르는 사고로 인한 뇌병변편마비로 지금까지도 몸의 왼편을 움직이는 데 불편함을 느낀다. 평상시에는 별다른 통증을 느끼진 않지만, 긴장하거나 추울 때는 왼편이 경직된다고 한다. 인터뷰를 진행한 스튜디오가 지하에 있어서 그런지 조금 쌀쌀하게 느껴졌다. 그가 불편함을 느낄까 걱정되었지만, 다행히도 그는 편안하고 여유 있는 모습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어떤 계기로 영화를 만들게 되었나.

1986년 서울에서 아시안게임이 개최되었을 즈음, 아버지가 비디오 플레이어를 사 오셨다. 동네 비디오가게에서 2박 3일에 천 원을 내고 비디오를 빌려왔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다섯 번은 족히 봤던 것 같다. 그게 임권택 감독의 영화 <장군의 아들>이었다. 중학생이 된 이후에는 천호동의 ‘한일시네마’에서 <천장지구> <영웅본색> 같은 홍콩영화 보는 재미에 빠졌다. 본격적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한 건 스무 살 때였는데, 강서구의 ‘화면 속으로’라는 비디오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하루에 두세 편은 기본적으로 봤으니까, 1년에 800편 넘게 봤던 것 같다. 그때는 장르도 가리지 않고 예술영화, 성인영화 모두 다 봤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양한 영화를 봤다고 했는데, 영화를 만들 때는 주로 어떤 스타일의 영화에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사실 코미디, 멜로, 스릴러 같은 장르를 다 좋아한다. 그런데 독립영화 시나리오를 쓸 때는 다르덴 형제나 이창동 감독, 홍상수 감독의 영화처럼 사실적인 이야기를 쓰게 된다. 아마 그게 내가 잘할 수 있는 영화인 것 같다. 주로 직접 체험한 내 이야기이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지만 취재를 통해서 잘 알게 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게 된다. 다른 사람한테 들은 이야기일 경우에는 내 경험인 것처럼 체화되어야 독립영화 시나리오로 쓸 수 있다.

지금까지 제작한 영화들은 주로 장애인의 삶을 다루고 있다. 장애인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내가 장애 당사자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장애인차별금지법」(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정을 촉구하는 활동을 했었고, 당시에 많은 장애인과 함께 숙식을 함께하면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장애는 유형이 매우 다양하고 개인마다 다른데, 내가 가진 장애 외에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그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또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이 굉장히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삶이라 하더라도 어떤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여 무언가를 외치고 있다면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 부채 의식 같은 게 생기게 되었다. 스무 살이 넘도록 너무 관심이 없었고 한 게 없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이 궁금하다. 시나리오를 쓸 때 주로 어떻게 영감을 얻나.

최근에 만든 작품들은 주로 중증장애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영감을 받았다. 10~15주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장애인들과 만나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주로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와 같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보면 내가 지금껏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다. 내가 미처 몰랐던 이야기를 어떤 사람이 얘기하면, 그때부터 그 사람을 관찰하면서 그가 겪었을 일을 상상한다. 또는 내가 평소에 많이 생각했던 것들이나 관심이 많았던 것들과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 둘을 하나로 묶는다.

영화에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비전문 배우들이 중요한 역할로 등장한다. 이들과 작업하는 방식을 고수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주로 장애인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시나리오로 발전시키기 때문에, 영화로 제작할 때에도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출연을 부탁하게 되는 것 같다. 중증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 중에서도 연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고 또 잘하는 사람도 많다. 출연을 부탁하면 흔쾌히 하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수줍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출연을 마다한 사람은 없었다. 영화의 톤에 맞추어 연기를 지도하면 대부분 잘 따라온다.

장애인 비전문 배우와 작업할 때, 좋은 점과 어려운 점이 동시에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사실적인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것 같은데, 또 한편으로는 촬영 현장에서 특별히 신경 써야 할 일도 많을 것 같다.

실제로 장애를 가진 사람이 연기할 때 자연스러운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장소에서 자신의 언어로 얘기하는 사람들을 볼 때 특히 그렇다. 아마 관객도 이 이야기는 진짜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당연히 힘든 점도 많다.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영화 촬영 현장에서도 심각하다. 장소를 이동할 때, 휠체어 장애인은 장콜(장애인 콜택시)을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장콜은 부른다고 바로 오는 게 아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이용할 수 없고, 길게는 3시간까지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영화 촬영을 위해서 장콜을 하루 종일 빌릴 수도 없다. 그러면 다른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없게 될 테니 말이다. 또 제작비가 많지 않은 환경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차량을 대절하는 것도 큰 부담이 된다. 그래서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나 촬영 현장에서 시나리오를 많이 변경하게 되고, 장소 이동을 최소한으로 줄이게 된다. 부족한 제작비 때문에 장소 이동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가 가장 아쉽고 어려운 것 같다.

비전문 배우들에게 어떻게 연기를 지도하는지도 궁금하다.

비전문 배우의 연기 톤은 매번 달라진다. 그걸 맞추는 게 쉽지 않다. 비전문 배우는 생활연기를 하는 것이지, 전문배우처럼 연기할 수가 없다. 이들이 생활연기를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감독의 역할인 것 같다. 아무래도 연기를 처음 해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사가 많으면 특히 힘들어하고,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는 등의 실수도 종종 한다. 이럴 때는 감독도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한여름에 야외 체육공원에서 단편영화 <중고거래>를 촬영할 때의 일이다. 워낙 날이 더운 데다가 야외 촬영이다 보니 주인공 역을 맡은 장애인 배우가 대사를 계속 틀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롱테이크로 긴 대사를 한 번에 촬영하려고 했지만, 배우가 힘들어해서 계획을 수정했다. 배우에게 장면을 짧게 짧게 촬영해서 편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 같다고 설명하니 미안해하기에, 원래 이렇게 하려고 했었다고 안심시키기도 했다. 배우가 주눅 들지 않도록 별일 아닌 것처럼 얘기하는 스킬도 필요하다.

지금까지 작업한 작품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이 가장 생각난다. 영화를 찍기 위해 다섯 번씩 대중교통을 갈아타고 왕복 6시간에 걸쳐 용인을 스무 번쯤 오갔다. 중증장애인이 배우로 출연하고 스태프로 참여하기도 했다. 성과도 좋았다. ‘토론토 스마트폰 영화제’에 출품하여 상영하고, 관객들과 대화도 많이 나눴다. 토론토로 출국하던 날, MBC 뉴스데스크 팀에서 직접 공항으로 찾아와 인터뷰를 했고, 우리 영화가 방송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6분짜리 짧은 영화이고 작은 규모의 영화제에 참석하는 것인데도 이 영화를 가치 있는 작품으로 평가해준 점이 감동이었다.

<하고 싶은 말>도 장애인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것인가.

이 영화를 만들 때, 일주일에 한 번씩 중증장애인 여섯 분을 만나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 한 분이 연애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내서, 멜로 영화를 만들어볼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그 사람을 주목하고 있었는데, 옆에 계신 활동지원사가 항상 똑같은 음료를 갖다 주더라. 그때부터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는 저 음료수가 맛있을까? 항상 똑같은 음료수만 먹고 싶어 할까? 한 번이라도 자신이 먹고 싶은 음료를 달라고 요청해본 적이 있을까? 그분은 뇌병변 증상이 심한 중증장애인이라 다른 사람이 그의 발음을 알아듣기가 힘들다. 아마도 처음에는 자신이 마시고 싶은 음료를 달라고 요청했다가 주위 사람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니 점점 포기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냥 음료수가 맛있다고 얘기하게 되고, 활동지원사는 ‘그가 이 음료를 좋아하는구나’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점점 사라진다. 그래서 중증장애인이 카페에 가서 자신이 마시고 싶은 커피를 주문하는 <하고 싶은 말>이라는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그런데 이건 그냥 나의 상상이다. 그에게 정말 그러냐고 물어본 적은 없다. 앞으로도 확인하지는 않을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지금까지 1년에 한 편 정도 단편영화를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만들 것이다. 제작비를 모아서 계속하려고 한다. 그리고 장편영화 한 편을 10년째 준비하고 있다. 장애인과 라이따이한이 주인공인 작품이다. 포기하지 않고, 손에서 놓지 않으면 언젠가 제작이 이뤄질 수 있지 않을까. 하루하루 열심히 하다 보면 되지 않을까. 10년이 아니라, 20년 30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좌절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들을 꿈꾸며 살고 싶다.

  • <중고거래>

  • <하고 싶은 말>

김종민

대학로에서 연극 조연출로 일을 시작했고, 충무로에서 상업영화 스태프로 영화제작에 참여했다. 이후 많은 영화의 연출부를 거쳐 이제 자신의 영화를 만들고 있다. 우리동네평생학교 등에서 영화 만들기 강사로도 활동한다. 주요 작품으로 <다리놓기>(2010) <하고 싶은 말>(2017) <용기>(2018) <중고거래>(2021) <듣고 싶은 말>(2022) 등이 있다. 주로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있다.
유튜브 바로가기(링크)

김재영

대학원에서 공연예술학을 전공하였고, 다큐멘터리 영화 <초승달의 집>을 연출했다. 현재 ‘다큐멘터리와 다큐멘트’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doide@naver.com

영상. 박유미 미술작가 gomako1983@gmail.com
사진. 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자료사진·영상 제공. 김종민

2022년 5월 (30호)

상세내용

인터뷰

김종민 영화감독은 장애인이 실제로 경험하는 삶의 짧은 순간을 영화로 만든다. 2019년 ‘토론토 스마트폰 영화제’ 개막작으로 초청받은 <하고 싶은 말>을 비롯하여 <용기> <중고거래> <듣고 싶은 말> 등의 단편영화는 모두 장애인들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영화에서는 장애인이 겪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더욱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그는 자신도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장애인의 삶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세 살이 되던 해, 계단에서 구르는 사고로 인한 뇌병변편마비로 지금까지도 몸의 왼편을 움직이는 데 불편함을 느낀다. 평상시에는 별다른 통증을 느끼진 않지만, 긴장하거나 추울 때는 왼편이 경직된다고 한다. 인터뷰를 진행한 스튜디오가 지하에 있어서 그런지 조금 쌀쌀하게 느껴졌다. 그가 불편함을 느낄까 걱정되었지만, 다행히도 그는 편안하고 여유 있는 모습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어떤 계기로 영화를 만들게 되었나.

1986년 서울에서 아시안게임이 개최되었을 즈음, 아버지가 비디오 플레이어를 사 오셨다. 동네 비디오가게에서 2박 3일에 천 원을 내고 비디오를 빌려왔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다섯 번은 족히 봤던 것 같다. 그게 임권택 감독의 영화 <장군의 아들>이었다. 중학생이 된 이후에는 천호동의 ‘한일시네마’에서 <천장지구> <영웅본색> 같은 홍콩영화 보는 재미에 빠졌다. 본격적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한 건 스무 살 때였는데, 강서구의 ‘화면 속으로’라는 비디오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하루에 두세 편은 기본적으로 봤으니까, 1년에 800편 넘게 봤던 것 같다. 그때는 장르도 가리지 않고 예술영화, 성인영화 모두 다 봤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양한 영화를 봤다고 했는데, 영화를 만들 때는 주로 어떤 스타일의 영화에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사실 코미디, 멜로, 스릴러 같은 장르를 다 좋아한다. 그런데 독립영화 시나리오를 쓸 때는 다르덴 형제나 이창동 감독, 홍상수 감독의 영화처럼 사실적인 이야기를 쓰게 된다. 아마 그게 내가 잘할 수 있는 영화인 것 같다. 주로 직접 체험한 내 이야기이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지만 취재를 통해서 잘 알게 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게 된다. 다른 사람한테 들은 이야기일 경우에는 내 경험인 것처럼 체화되어야 독립영화 시나리오로 쓸 수 있다.

지금까지 제작한 영화들은 주로 장애인의 삶을 다루고 있다. 장애인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내가 장애 당사자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장애인차별금지법」(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정을 촉구하는 활동을 했었고, 당시에 많은 장애인과 함께 숙식을 함께하면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장애는 유형이 매우 다양하고 개인마다 다른데, 내가 가진 장애 외에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그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또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이 굉장히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삶이라 하더라도 어떤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여 무언가를 외치고 있다면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 부채 의식 같은 게 생기게 되었다. 스무 살이 넘도록 너무 관심이 없었고 한 게 없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이 궁금하다. 시나리오를 쓸 때 주로 어떻게 영감을 얻나.

최근에 만든 작품들은 주로 중증장애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영감을 받았다. 10~15주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장애인들과 만나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주로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와 같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보면 내가 지금껏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다. 내가 미처 몰랐던 이야기를 어떤 사람이 얘기하면, 그때부터 그 사람을 관찰하면서 그가 겪었을 일을 상상한다. 또는 내가 평소에 많이 생각했던 것들이나 관심이 많았던 것들과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 둘을 하나로 묶는다.

영화에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비전문 배우들이 중요한 역할로 등장한다. 이들과 작업하는 방식을 고수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주로 장애인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시나리오로 발전시키기 때문에, 영화로 제작할 때에도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출연을 부탁하게 되는 것 같다. 중증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 중에서도 연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고 또 잘하는 사람도 많다. 출연을 부탁하면 흔쾌히 하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수줍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출연을 마다한 사람은 없었다. 영화의 톤에 맞추어 연기를 지도하면 대부분 잘 따라온다.

장애인 비전문 배우와 작업할 때, 좋은 점과 어려운 점이 동시에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사실적인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것 같은데, 또 한편으로는 촬영 현장에서 특별히 신경 써야 할 일도 많을 것 같다.

실제로 장애를 가진 사람이 연기할 때 자연스러운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장소에서 자신의 언어로 얘기하는 사람들을 볼 때 특히 그렇다. 아마 관객도 이 이야기는 진짜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당연히 힘든 점도 많다.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영화 촬영 현장에서도 심각하다. 장소를 이동할 때, 휠체어 장애인은 장콜(장애인 콜택시)을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장콜은 부른다고 바로 오는 게 아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이용할 수 없고, 길게는 3시간까지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영화 촬영을 위해서 장콜을 하루 종일 빌릴 수도 없다. 그러면 다른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없게 될 테니 말이다. 또 제작비가 많지 않은 환경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차량을 대절하는 것도 큰 부담이 된다. 그래서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나 촬영 현장에서 시나리오를 많이 변경하게 되고, 장소 이동을 최소한으로 줄이게 된다. 부족한 제작비 때문에 장소 이동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가 가장 아쉽고 어려운 것 같다.

비전문 배우들에게 어떻게 연기를 지도하는지도 궁금하다.

비전문 배우의 연기 톤은 매번 달라진다. 그걸 맞추는 게 쉽지 않다. 비전문 배우는 생활연기를 하는 것이지, 전문배우처럼 연기할 수가 없다. 이들이 생활연기를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감독의 역할인 것 같다. 아무래도 연기를 처음 해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사가 많으면 특히 힘들어하고,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는 등의 실수도 종종 한다. 이럴 때는 감독도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한여름에 야외 체육공원에서 단편영화 <중고거래>를 촬영할 때의 일이다. 워낙 날이 더운 데다가 야외 촬영이다 보니 주인공 역을 맡은 장애인 배우가 대사를 계속 틀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롱테이크로 긴 대사를 한 번에 촬영하려고 했지만, 배우가 힘들어해서 계획을 수정했다. 배우에게 장면을 짧게 짧게 촬영해서 편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 같다고 설명하니 미안해하기에, 원래 이렇게 하려고 했었다고 안심시키기도 했다. 배우가 주눅 들지 않도록 별일 아닌 것처럼 얘기하는 스킬도 필요하다.

지금까지 작업한 작품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이 가장 생각난다. 영화를 찍기 위해 다섯 번씩 대중교통을 갈아타고 왕복 6시간에 걸쳐 용인을 스무 번쯤 오갔다. 중증장애인이 배우로 출연하고 스태프로 참여하기도 했다. 성과도 좋았다. ‘토론토 스마트폰 영화제’에 출품하여 상영하고, 관객들과 대화도 많이 나눴다. 토론토로 출국하던 날, MBC 뉴스데스크 팀에서 직접 공항으로 찾아와 인터뷰를 했고, 우리 영화가 방송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6분짜리 짧은 영화이고 작은 규모의 영화제에 참석하는 것인데도 이 영화를 가치 있는 작품으로 평가해준 점이 감동이었다.

<하고 싶은 말>도 장애인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것인가.

이 영화를 만들 때, 일주일에 한 번씩 중증장애인 여섯 분을 만나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 한 분이 연애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내서, 멜로 영화를 만들어볼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그 사람을 주목하고 있었는데, 옆에 계신 활동지원사가 항상 똑같은 음료를 갖다 주더라. 그때부터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는 저 음료수가 맛있을까? 항상 똑같은 음료수만 먹고 싶어 할까? 한 번이라도 자신이 먹고 싶은 음료를 달라고 요청해본 적이 있을까? 그분은 뇌병변 증상이 심한 중증장애인이라 다른 사람이 그의 발음을 알아듣기가 힘들다. 아마도 처음에는 자신이 마시고 싶은 음료를 달라고 요청했다가 주위 사람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니 점점 포기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냥 음료수가 맛있다고 얘기하게 되고, 활동지원사는 ‘그가 이 음료를 좋아하는구나’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점점 사라진다. 그래서 중증장애인이 카페에 가서 자신이 마시고 싶은 커피를 주문하는 <하고 싶은 말>이라는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그런데 이건 그냥 나의 상상이다. 그에게 정말 그러냐고 물어본 적은 없다. 앞으로도 확인하지는 않을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지금까지 1년에 한 편 정도 단편영화를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만들 것이다. 제작비를 모아서 계속하려고 한다. 그리고 장편영화 한 편을 10년째 준비하고 있다. 장애인과 라이따이한이 주인공인 작품이다. 포기하지 않고, 손에서 놓지 않으면 언젠가 제작이 이뤄질 수 있지 않을까. 하루하루 열심히 하다 보면 되지 않을까. 10년이 아니라, 20년 30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좌절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들을 꿈꾸며 살고 싶다.

  • <중고거래>

  • <하고 싶은 말>

김종민

대학로에서 연극 조연출로 일을 시작했고, 충무로에서 상업영화 스태프로 영화제작에 참여했다. 이후 많은 영화의 연출부를 거쳐 이제 자신의 영화를 만들고 있다. 우리동네평생학교 등에서 영화 만들기 강사로도 활동한다. 주요 작품으로 <다리놓기>(2010) <하고 싶은 말>(2017) <용기>(2018) <중고거래>(2021) <듣고 싶은 말>(2022) 등이 있다. 주로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있다.
유튜브 바로가기(링크)

김재영

대학원에서 공연예술학을 전공하였고, 다큐멘터리 영화 <초승달의 집>을 연출했다. 현재 ‘다큐멘터리와 다큐멘트’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doide@naver.com

영상. 박유미 미술작가 gomako1983@gmail.com
사진. 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자료사진·영상 제공. 김종민

2022년 5월 (30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의 조건에 따라 이용이 가능합니다.

댓글 남기기

제 2021-524호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WA-WEB 접근성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 | 1.업체명: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고 112 3.웹사이트:http://www.ieum.or.kr 4.유효기간:2021.05.03~2022.05.02 5.인증범위:이음 온라인 홈페이지 |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47조제1항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9조제5항에 따라 위와 같이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를 발급합니다. 2021년 05월 03일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