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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현 성악가

인터뷰 동그란 바퀴로 희망의 궤적을 그리며 노래하는

  • 송현민 음악평론가
  • 등록일 2022-07-27
  • 조회수1315

인터뷰

이남현에게 받은 명함에는 “기적을 노래하는 바퀴 달린 성악가”라고 적혀 있다. 음악가의 또 다른 명함인 음반도 건넨다. 그가 직접 지은 선율과 노랫말로 된 다섯 곡이 실린 음반이다.

“아프고 슬프고 힘들 때 / 말없이 눈가에 이슬이 맺혀 / 그 이슬이 마르고 안개가 걷히면 / 맑은 하늘에 밝은 태양이 오른다. // 사랑이 녹고 슬픔도 녹고 / 녹아내려 하나로 모여 일어설 힘이 되고 / 사랑이 녹고 슬픔도 녹고 모두 녹아내려 / 하나로 모이면 기적이 된다.”

그가 직접 짓고 부른 <미라클(Miracle)-다시 만난 기적> 노랫말 중 일부이다. 그가 탄 휠체어의 바퀴도 동그랗고, 그의 목소리가 담긴 음반도 동그랗다. 그는 이 동그라미를 타고 세상을 돌아다니며 노래한다. 그러면서 꿈과 희망이 끊어진 곳을 자신의 경험과 음악을 통해 잇는다. 동그랗게, 그리고 그게 ‘기적’을 위한 한 걸음이라고 말한다.

바리톤인데, 노래에 실린 목소리가 소년 같다. 이렇게 음반 선물을 받아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음악가에게 음반은 곧 ‘명함’인데, 사실 이 명함(?)은 CD플레이어를 구하기 힘든 지금 시대에는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을 담아서 드리고 싶은 선물이다. 그래서 앨범명도 《프레즌트(Present)》다. 과거 병상에 누워있을 적에 종일 음악을 들었던 시간이 떠올라 만든 것이고, 음악을 통해 그런 위로를 받으시라고 나눠드린다. 그래서 비매품으로 발매했다.

<우리의 꿈을 향해> <다시 만난 기적> <하늘이 준 선물> <영원한 사랑> 등 수록곡의 제목이 인상적이다. 그중 대표곡을 꼽는다면 어떤 곡인가?

작곡과 작사에 직접 참여했기에 곡마다 애착이 묻어 있다. 노래를 부르다 보면 숨이 차올라 일부러 느린 곡조로 지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훗날 음악극 같은 것을 만들어 연기자들이 나의 노래를 불러주면 좋겠다.

활동이 다양하다. 코로나 시국에 어떻게 지내고 있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공연과 강의가 점점 늘고 있다. 요청에 따라 주제에 맞춘 강연이나 장애인식개선 프로그램 등과 관련된 것이 많다.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 게 그저 감사할 뿐이다. 긴 시간 코로나로 공연계가 전반적으로 공연이 줄어든 가운데도 초심을 생각하며 나름대로 노력하다 보니 상복도 많았다. 2020년에는 국무총리표창(장애인 문화예술발전 유공 포상)을 받았고, 올해는 대통령 표창을 받는 ‘올해의 장애인상’을 받기도 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는 비대면으로 수상했는데, 대통령상은 직접 받았다. 뭔가 감회가 남달랐다.

  • 옅은 청색 셔츠에 베이지색 니트베스트를 입은 성악가 이남현
  • 옅은 청색 셔츠에 베이지색 니트베스트를 입은 성악가 이남현
  • 옅은 청색 셔츠에 베이지색 니트베스트를 입은 성악가 이남현

희망으로 굴러가는 바퀴 위에서

그의 이야기는 여러 기사로 발표되었다. 1981년생인 이남현이 성악을 시작한 것은 중학교 때다.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서 성악 공부를 이어갔다. 군을 전역한 해 여름, 수영장에서 다이빙을 하는데 입수 자세가 불완전해서 벽면에 뒷머리를 부딪치는 사고를 당했다. 이후 그의 삶은 급속도로 바뀌었다. 그런 그가 다시 돌아와 붙잡은 것은 음악이었고, 노래였다.

노래를 다시 시작했을 때 어떠했나?

노래하던 일상이 더는 현실이 아닌 꿈이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나는 물론이고, 주위에서도 장애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이 없었다. 이 상황을 풀어나갈 사람은 나 자신뿐이었다. 결국 장애를 가지고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했고, 그 이후 다시 꾼 첫 꿈이 노래여서 공부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물론 주위에서는 만류했다. 심지어 주변에서 부모님을 만류하기도 했다.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

쭉 불러오던 노래였는데 다시 낸 목소리가 나를 힘들게 했다. 이게 지금까지 내가 내오던 목소리가 맞나 싶더라. 머릿속에는 분명 내고 싶은 소리와 음정이 있었는데, 소리는 전혀 달랐던 거다. 그때 나름대로 인고의 시간을 겪었다. 내심 ‘조금만 더 버텨보자’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게 1년을 버티고, 다시 1년을 더 버티면서 졸업을 향해 끝까지 공부했다. 포기하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어떤 자신감이었는진 지금도 모르겠지만,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노래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

성악은 안정된 상태와 많은 호흡량이 필요하다. 사실 이를 위해 전신을 다 활용해야 하는데, 몸의 기능이 모두 소실된 상태에서 잔존하는 폐활량 30퍼센트의 신체 기능만 갖고 노래한다. 그래서 노래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노래하며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몸에는 장애가 있어도 꿈에는 장애가 없다는 메시지를 담아 노래한다.

바리톤인데, 굵고 힘 있는 성량보다는 미성이다.

저음의 바리톤은 성악의 여러 성부 중 믿음이 가는 목소리다. 음악을 다시 공부하고 무대에 서면서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혹시 어딘가에 나 같은 처지의 사람이 있진 않은지, 아니면 이후에 나타나진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먼저 그들을 위해 개척하고, 그들이 신뢰할 수 있는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한다.

2013년에 『나는 지금이 좋다 - 기적을 노래하는 바퀴 달린 성악가』를 출간했다. 책을 준비하고 집필하면서 자신과 환경을 많이 돌아보았을 것 같다.

예전에는 책은 위대한 사람, 즉 위인들이 내는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책을 내겠다는 계획을 갖지 않았었다. 다만, 장애를 만난 후 다시 만난 음악과 관련 활동을 10년 이상 하게 된다면, 또 건강이 허락되어 먼 훗날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책을 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의 공연과 방송을 눈여겨본 출판사 편집장이 어느 날 출간을 제안해왔다. 자신은 없었는데, 편집장이 강의 속 나의 이야기가 책으로 남으면 된다고 했다. 이를 계기로 내가 지나온 시간을 더듬어보고 되돌아보게 되었고, 결국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직접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거의 1년 동안 컴퓨터 키보드 자판을 하나하나 눌러가면서 쓰게 되었다. 책은 나오고 나서 완판되었다. 내가 위인도 아니고 잘 알려진 인물도 아닌데, 생각해보면 기적이었고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지금이 좋다』라는 책 제목 때문인지, 책이 나온 2013년도도, 그리고 지금도 다 좋아 보인다. 책에는 어떤 내용을 담았나?

만남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장애와의 ‘만남’과, 이 만남이 내 삶에 어떤 변화의 그림을 그렸는지 등이다. 음악 역시 만남의 시간과 순간이다. 나는 이것을 통해 여러 시간과 공간에서 다양한 관객과 만난다. 무엇보다 내게 큰 만남은 장애와의 만남이다. 예전에는 장애를 ‘예상치 못한 친구’라고 생각했고, 지금은 ‘찐친’이라고 생각한다. 삶은 보이지 않는 다리와 그 위에서의 만남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희망’으로 음악과 사회를 연결하는 ‘다리’를 놓다

이제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국내 유명 음악회 무대에 오르지만, 그는 2008년 성악가로서 처음 무대에 오르던 때를 잊을 수 없다. 목포의 작은 복지관에 마련된 무대였다. “그때, 그 무대를 인생 최고의 무대로 기억한다”라고 말하는 그는 이제 장애 음악가들과 함께하며 무대에 오를 기회, 시간, 그리고 꿈을 공유하고 있다. 그 꿈으로 가는 길에 이남현이 ‘희망’으로 놓은 ‘다리’가 있다.

‘희망다리 콘서트’를 계속 선보이고 있다. 이제 ‘이남현’을 대표하는 일종의 브랜드 공연이 되었다.

무대에 오르면서 음악을 하는 내가 사람과 사회의 소통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은 여러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지금 나를 태운 휠체어가 삶의 가교가 되고 음악이 다리가 되어, 그 위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한다. 내가 직접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장애 예술가와 비장애 예술가를 잇고 세상을 잇는 다리가 되고 싶어 이 음악회를 진행 중이다.

앞으로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

국내외 장애 음악가가 함께 모여 교류하고 공연하는 장애인 음악 페스티벌을 만들고 싶다. 최근 한국의 음악가들이 해외 유수의 콩쿠르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이러한 기류에 힘입어 국제 장애인 콩쿠르도 만들어보고 싶다. 지금은 꿈이지만, 시작하게 되면 지속 가능한 장을 만들고 싶다. 장애예술인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선정되면 즐거운 고민과 함께 무대를 만들지만, 선정되지 않으면 그만큼 좌절감도 크다. 선정되지 않아도 자비로 무대공연 기회를 만들며, 기획과정에 무엇이 부족했는지 살펴보고 다듬어서 재도전하곤 한다.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는 않는다. 나는 장애와 동반하면서 살아가는 모든 시간이 곧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중증장애를 가진 상태여서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누군가로부터 손발이 되는 도움을 전적으로 받아야 하지만, 이 도전은 멈출 수가 없다.

힘들 때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듣거나 부르는 음악이 있을 것 같다.

관객의 연령대나 공연을 둘러싼 환경에 따라 달라지곤 하지만, 가장 많이 요청받고 나도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는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이다. 성악을 공부하며 배웠던 한국과 외국의 가곡도 많이 있지만, 대중과 소통하며 호흡하려 할 때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다. 그리고 힘들 때면 오페라의 서곡들도 즐겨 듣는다. 서곡은 오페라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이기에 관객을 집중시키고 압도하는 힘찬 곡이 많다. 그래서인지 내게 또 다른 시작, 또 다른 힘을 불어넣곤 한다.

문화예술계의 배리어프리 바람과 함께, 장애 음악가나 예술가를 위한 정책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 여전히 개선해야 할 점이나 필요한 지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기회가 많이 주어지고 있는 건 맞지만, 장애예술가의 유형과 특성을 잘 파악하여 공간, 환경, 지원 등이 조화를 이루고, 예술가가 활동하는 데 불편하거나 어려움에 처하지 않도록 세심한 디자인이 필요하다. 휠체어를 타면 공연하고 공부하는 게 힘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수도 없이 그만둘까 싶기도 했지만, 언젠가 무대에서 내려와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야 할 때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포기하지 않았다. 박사학위 논문도 ‘장애인의 문화예술 활동이 지각된 가치와 삶의 긍정적 가치에 미치는 영향’(2019)으로 썼다.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장애예술인지원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당사자가 그 법의 혜택을 받기까지의 과정은 녹록지 않다. 이러한 법률을 토대로 정책이 더욱 구체적으로 디자인되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케이팝이나 케이푸드처럼 케이(K)-장애예술가도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 성악가 이남현의 앨범 자켓. 왼편에 더 프레즌트, 이남현이 영어로 써있고, 오른편으로 휠체어를 탄 성악가 이남현이 있다.
  • 무대 위에서 휠체어를 타고 열창하고 있는 성악가 이남현

이남현

성악가, 강사, 기획자. 국립목포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성악을 전공했고,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공연예술 예술경영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KBS교향악단과 함께하는 음악회 협연, 2018 평창장애인동계올림픽 엠블럼 선포식 축하공연, 자선기금마련 아름다운 만남&동행 콘서트, UN본부 초청공연, 오스트리아 한인회관 음악회 초청공연 등 14년간 국내외에서 오케스트라 협연 및 다양한 공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저서로 『나는 지금이 좋다』가 있으며, 2022년 ‘올해의 장애인상’을 수상했다.
baritonelee@hanmail.net

송현민

음악평론가. 월간 [객석] 편집장.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했고, ‘한반도의 르네상스’를 주장했던 음악평론가 박용구론으로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을 수상했다.
bstsong@naver.com

영상. 박유미 미술작가 gomako1983@gmail.com
사진. 이재범 POV스튜디오 andy45a@naver.com
자료 제공. 이남현

2022년 8월 (33호)

상세내용

인터뷰

이남현에게 받은 명함에는 “기적을 노래하는 바퀴 달린 성악가”라고 적혀 있다. 음악가의 또 다른 명함인 음반도 건넨다. 그가 직접 지은 선율과 노랫말로 된 다섯 곡이 실린 음반이다.

“아프고 슬프고 힘들 때 / 말없이 눈가에 이슬이 맺혀 / 그 이슬이 마르고 안개가 걷히면 / 맑은 하늘에 밝은 태양이 오른다. // 사랑이 녹고 슬픔도 녹고 / 녹아내려 하나로 모여 일어설 힘이 되고 / 사랑이 녹고 슬픔도 녹고 모두 녹아내려 / 하나로 모이면 기적이 된다.”

그가 직접 짓고 부른 <미라클(Miracle)-다시 만난 기적> 노랫말 중 일부이다. 그가 탄 휠체어의 바퀴도 동그랗고, 그의 목소리가 담긴 음반도 동그랗다. 그는 이 동그라미를 타고 세상을 돌아다니며 노래한다. 그러면서 꿈과 희망이 끊어진 곳을 자신의 경험과 음악을 통해 잇는다. 동그랗게, 그리고 그게 ‘기적’을 위한 한 걸음이라고 말한다.

바리톤인데, 노래에 실린 목소리가 소년 같다. 이렇게 음반 선물을 받아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음악가에게 음반은 곧 ‘명함’인데, 사실 이 명함(?)은 CD플레이어를 구하기 힘든 지금 시대에는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을 담아서 드리고 싶은 선물이다. 그래서 앨범명도 《프레즌트(Present)》다. 과거 병상에 누워있을 적에 종일 음악을 들었던 시간이 떠올라 만든 것이고, 음악을 통해 그런 위로를 받으시라고 나눠드린다. 그래서 비매품으로 발매했다.

<우리의 꿈을 향해> <다시 만난 기적> <하늘이 준 선물> <영원한 사랑> 등 수록곡의 제목이 인상적이다. 그중 대표곡을 꼽는다면 어떤 곡인가?

작곡과 작사에 직접 참여했기에 곡마다 애착이 묻어 있다. 노래를 부르다 보면 숨이 차올라 일부러 느린 곡조로 지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훗날 음악극 같은 것을 만들어 연기자들이 나의 노래를 불러주면 좋겠다.

활동이 다양하다. 코로나 시국에 어떻게 지내고 있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공연과 강의가 점점 늘고 있다. 요청에 따라 주제에 맞춘 강연이나 장애인식개선 프로그램 등과 관련된 것이 많다.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 게 그저 감사할 뿐이다. 긴 시간 코로나로 공연계가 전반적으로 공연이 줄어든 가운데도 초심을 생각하며 나름대로 노력하다 보니 상복도 많았다. 2020년에는 국무총리표창(장애인 문화예술발전 유공 포상)을 받았고, 올해는 대통령 표창을 받는 ‘올해의 장애인상’을 받기도 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는 비대면으로 수상했는데, 대통령상은 직접 받았다. 뭔가 감회가 남달랐다.

  • 옅은 청색 셔츠에 베이지색 니트베스트를 입은 성악가 이남현
  • 옅은 청색 셔츠에 베이지색 니트베스트를 입은 성악가 이남현
  • 옅은 청색 셔츠에 베이지색 니트베스트를 입은 성악가 이남현

희망으로 굴러가는 바퀴 위에서

그의 이야기는 여러 기사로 발표되었다. 1981년생인 이남현이 성악을 시작한 것은 중학교 때다.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서 성악 공부를 이어갔다. 군을 전역한 해 여름, 수영장에서 다이빙을 하는데 입수 자세가 불완전해서 벽면에 뒷머리를 부딪치는 사고를 당했다. 이후 그의 삶은 급속도로 바뀌었다. 그런 그가 다시 돌아와 붙잡은 것은 음악이었고, 노래였다.

노래를 다시 시작했을 때 어떠했나?

노래하던 일상이 더는 현실이 아닌 꿈이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나는 물론이고, 주위에서도 장애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이 없었다. 이 상황을 풀어나갈 사람은 나 자신뿐이었다. 결국 장애를 가지고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했고, 그 이후 다시 꾼 첫 꿈이 노래여서 공부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물론 주위에서는 만류했다. 심지어 주변에서 부모님을 만류하기도 했다.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

쭉 불러오던 노래였는데 다시 낸 목소리가 나를 힘들게 했다. 이게 지금까지 내가 내오던 목소리가 맞나 싶더라. 머릿속에는 분명 내고 싶은 소리와 음정이 있었는데, 소리는 전혀 달랐던 거다. 그때 나름대로 인고의 시간을 겪었다. 내심 ‘조금만 더 버텨보자’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게 1년을 버티고, 다시 1년을 더 버티면서 졸업을 향해 끝까지 공부했다. 포기하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어떤 자신감이었는진 지금도 모르겠지만,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노래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

성악은 안정된 상태와 많은 호흡량이 필요하다. 사실 이를 위해 전신을 다 활용해야 하는데, 몸의 기능이 모두 소실된 상태에서 잔존하는 폐활량 30퍼센트의 신체 기능만 갖고 노래한다. 그래서 노래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노래하며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몸에는 장애가 있어도 꿈에는 장애가 없다는 메시지를 담아 노래한다.

바리톤인데, 굵고 힘 있는 성량보다는 미성이다.

저음의 바리톤은 성악의 여러 성부 중 믿음이 가는 목소리다. 음악을 다시 공부하고 무대에 서면서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혹시 어딘가에 나 같은 처지의 사람이 있진 않은지, 아니면 이후에 나타나진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먼저 그들을 위해 개척하고, 그들이 신뢰할 수 있는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한다.

2013년에 『나는 지금이 좋다 - 기적을 노래하는 바퀴 달린 성악가』를 출간했다. 책을 준비하고 집필하면서 자신과 환경을 많이 돌아보았을 것 같다.

예전에는 책은 위대한 사람, 즉 위인들이 내는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책을 내겠다는 계획을 갖지 않았었다. 다만, 장애를 만난 후 다시 만난 음악과 관련 활동을 10년 이상 하게 된다면, 또 건강이 허락되어 먼 훗날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책을 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의 공연과 방송을 눈여겨본 출판사 편집장이 어느 날 출간을 제안해왔다. 자신은 없었는데, 편집장이 강의 속 나의 이야기가 책으로 남으면 된다고 했다. 이를 계기로 내가 지나온 시간을 더듬어보고 되돌아보게 되었고, 결국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직접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거의 1년 동안 컴퓨터 키보드 자판을 하나하나 눌러가면서 쓰게 되었다. 책은 나오고 나서 완판되었다. 내가 위인도 아니고 잘 알려진 인물도 아닌데, 생각해보면 기적이었고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지금이 좋다』라는 책 제목 때문인지, 책이 나온 2013년도도, 그리고 지금도 다 좋아 보인다. 책에는 어떤 내용을 담았나?

만남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장애와의 ‘만남’과, 이 만남이 내 삶에 어떤 변화의 그림을 그렸는지 등이다. 음악 역시 만남의 시간과 순간이다. 나는 이것을 통해 여러 시간과 공간에서 다양한 관객과 만난다. 무엇보다 내게 큰 만남은 장애와의 만남이다. 예전에는 장애를 ‘예상치 못한 친구’라고 생각했고, 지금은 ‘찐친’이라고 생각한다. 삶은 보이지 않는 다리와 그 위에서의 만남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희망’으로 음악과 사회를 연결하는 ‘다리’를 놓다

이제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국내 유명 음악회 무대에 오르지만, 그는 2008년 성악가로서 처음 무대에 오르던 때를 잊을 수 없다. 목포의 작은 복지관에 마련된 무대였다. “그때, 그 무대를 인생 최고의 무대로 기억한다”라고 말하는 그는 이제 장애 음악가들과 함께하며 무대에 오를 기회, 시간, 그리고 꿈을 공유하고 있다. 그 꿈으로 가는 길에 이남현이 ‘희망’으로 놓은 ‘다리’가 있다.

‘희망다리 콘서트’를 계속 선보이고 있다. 이제 ‘이남현’을 대표하는 일종의 브랜드 공연이 되었다.

무대에 오르면서 음악을 하는 내가 사람과 사회의 소통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은 여러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지금 나를 태운 휠체어가 삶의 가교가 되고 음악이 다리가 되어, 그 위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한다. 내가 직접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장애 예술가와 비장애 예술가를 잇고 세상을 잇는 다리가 되고 싶어 이 음악회를 진행 중이다.

앞으로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

국내외 장애 음악가가 함께 모여 교류하고 공연하는 장애인 음악 페스티벌을 만들고 싶다. 최근 한국의 음악가들이 해외 유수의 콩쿠르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이러한 기류에 힘입어 국제 장애인 콩쿠르도 만들어보고 싶다. 지금은 꿈이지만, 시작하게 되면 지속 가능한 장을 만들고 싶다. 장애예술인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선정되면 즐거운 고민과 함께 무대를 만들지만, 선정되지 않으면 그만큼 좌절감도 크다. 선정되지 않아도 자비로 무대공연 기회를 만들며, 기획과정에 무엇이 부족했는지 살펴보고 다듬어서 재도전하곤 한다.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는 않는다. 나는 장애와 동반하면서 살아가는 모든 시간이 곧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중증장애를 가진 상태여서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누군가로부터 손발이 되는 도움을 전적으로 받아야 하지만, 이 도전은 멈출 수가 없다.

힘들 때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듣거나 부르는 음악이 있을 것 같다.

관객의 연령대나 공연을 둘러싼 환경에 따라 달라지곤 하지만, 가장 많이 요청받고 나도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는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이다. 성악을 공부하며 배웠던 한국과 외국의 가곡도 많이 있지만, 대중과 소통하며 호흡하려 할 때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다. 그리고 힘들 때면 오페라의 서곡들도 즐겨 듣는다. 서곡은 오페라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이기에 관객을 집중시키고 압도하는 힘찬 곡이 많다. 그래서인지 내게 또 다른 시작, 또 다른 힘을 불어넣곤 한다.

문화예술계의 배리어프리 바람과 함께, 장애 음악가나 예술가를 위한 정책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 여전히 개선해야 할 점이나 필요한 지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기회가 많이 주어지고 있는 건 맞지만, 장애예술가의 유형과 특성을 잘 파악하여 공간, 환경, 지원 등이 조화를 이루고, 예술가가 활동하는 데 불편하거나 어려움에 처하지 않도록 세심한 디자인이 필요하다. 휠체어를 타면 공연하고 공부하는 게 힘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수도 없이 그만둘까 싶기도 했지만, 언젠가 무대에서 내려와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야 할 때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포기하지 않았다. 박사학위 논문도 ‘장애인의 문화예술 활동이 지각된 가치와 삶의 긍정적 가치에 미치는 영향’(2019)으로 썼다.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장애예술인지원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당사자가 그 법의 혜택을 받기까지의 과정은 녹록지 않다. 이러한 법률을 토대로 정책이 더욱 구체적으로 디자인되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케이팝이나 케이푸드처럼 케이(K)-장애예술가도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 성악가 이남현의 앨범 자켓. 왼편에 더 프레즌트, 이남현이 영어로 써있고, 오른편으로 휠체어를 탄 성악가 이남현이 있다.
  • 무대 위에서 휠체어를 타고 열창하고 있는 성악가 이남현

이남현

성악가, 강사, 기획자. 국립목포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성악을 전공했고,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공연예술 예술경영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KBS교향악단과 함께하는 음악회 협연, 2018 평창장애인동계올림픽 엠블럼 선포식 축하공연, 자선기금마련 아름다운 만남&동행 콘서트, UN본부 초청공연, 오스트리아 한인회관 음악회 초청공연 등 14년간 국내외에서 오케스트라 협연 및 다양한 공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저서로 『나는 지금이 좋다』가 있으며, 2022년 ‘올해의 장애인상’을 수상했다.
baritonelee@hanmail.net

송현민

음악평론가. 월간 [객석] 편집장.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했고, ‘한반도의 르네상스’를 주장했던 음악평론가 박용구론으로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을 수상했다.
bstsong@naver.com

영상. 박유미 미술작가 gomako1983@gmail.com
사진. 이재범 POV스튜디오 andy45a@naver.com
자료 제공. 이남현

2022년 8월 (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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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0 18: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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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는 장애가 없다는 메세지를 전해주시는 이남현 성악가님의 멋진 인터뷰 잘 보았습니다. 앳된 얼굴에 목소리도 소년같아요! 희망으로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전파해주시는 이남현 성악가님의 멋진 도전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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