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웹진 이음

장애가 무의미해지는 사회③

이음광장 ‘우영우’ 신드롬에서 더 많은 질문으로

  • 홍윤희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
  • 등록일 2022-08-10
  • 조회수915

TV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가 가히 신드롬급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은 지적장애 여성과 비장애 남성의 사랑을 다룬 10화를 본 후인데, 회를 거듭할수록 장애와 관련된 아주 민감한 이슈들을 정면으로 건드리고 있다.

드라마 속 법적 공방을 보면 장애 이슈의 역학관계가 얼마나 복잡한지를 알 수 있다. 지적장애 여성은 자신을 준강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자친구에 대해 “좋아했지만 성관계는 불편하고 싫었다”고 밝혔다. ‘여친 카드’로 대부분의 데이트 비용을 충당하게 했던 (그리고 그게 처음도 아니었던) 남성은 “여친을 정말 사랑한 게 맞다”고 항변했다. 극 중 여성의 어머니는 “지적장애라고 내 딸을 속이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는가?”라고 말한다. 결국 이 남성은 배심원들에겐 4대 3으로 간신히 무죄 평결을 받지만, 판사로부터 실형 선고를 받는다. 극의 결론은 ‘지적장애가 있더라도 자기결정권이 있다’, ‘진짜 두 사람이 사랑하는 사이라면 좋겠다’며 이 남성을 변호하기로 결심했던 우영우의 신념이나 소망과는 달리, 장애인 대상 그루밍이나 범죄가 만연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드라마는 복잡한 현실 묘사에서 그치지 않는다. “법은 마음을 중시합니다”라는 우영우의 대사에서도 나타나듯 판결문이나 사회면 기사에선 읽기 어려운 마음속 갈등을 보여준다. 장애를 비극적으로 그리는 대중문화의 일반적인 장애 클리셰를 훌쩍 뛰어넘어 장애인-비장애인 간의 인간관계나 사회 수용성에 대한 깊은 고민을 묘사하고 있다.

극 중에는 다양한 비장애인이 있다.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캐릭터(우영우의 고등학교 친구들)도 있고, 차별을 법 논리로 정당화하는 캐릭터(극 중 일부 검사들)도 있으며, 오히려 역차별을 받는다며 분노하고 호시탐탐 복수할 기회를 노리는 캐릭터(권민우 변호사)도 있다. 이 중에서도 자기 행동이 차별임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비장애인들의 ‘미세 차별’ 사례가 가장 돋보인다. 미세 차별은 우영우를 사랑하게 되는 이준호와 그 주변 인물들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준호는 우영우와 함께 걷던 중 우연히 대학 후배를 마주친다. 후배는 자폐장애가 있는 우영우를 보고는 “오빠, 봉사하고 있구나?”라며 넘겨짚는다. 명백한 미세 차별이다. 드라마는 그 미세 차별을 보여주고 가치판단을 하게 만드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인물들의 심경 변화를 섬세하게 그린다. 이준호는 우영우에 대한 감정이 연민인지 사랑인지, 혹시라도 자신의 선의가 우영우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지 오랫동안 숙고하다가 마음을 확인한다. 그 후 “너, 그 감정, 연민이야”라는 친구의 말에 폭발해 화를 낸다. 이 장면은, 애초부터 장애인의 인간관계가 벽에 부딪히게 만드는 건 사회 편견이며 이게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를 좀먹고 있다는 걸 드러내고 있다.

확실히 드라마 <우영우>는 언론매체의 사회면에 갇혀 있던 장애 이슈 논의를 한 단계 진전시켰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다룰 수 없는 장애 관련 이슈가 하나 있다. 바로 당사자주의다. 10화까지 나왔던 3명의 장애인 캐릭터가 모두 비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지적장애인의 자기 결정권’을 더 깊게 파고들기 어려웠던 이유도 이런 한계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드라마이므로 반드시 어떤 정체성을 가진 당사자가 꼭 그 역할을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장애가 워낙 인식 왜곡이 심한 분야다 보니 당사자가 참여하지 않는 점은 아쉽다.

나는 <우영우>가 우리 사회에 던진 가장 큰 의미는 바로 장애에 대한 다양한 질문이 나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영우>를 비평하며 모처럼 장애계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장애 당사자, 장애인 부모, 장애계 종사자 등 장애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도 자신의 의견을 쏟아낸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좋은 답변을 끌어내기 위해 중요한 건 좋은 질문이고, 좋은 질문을 끌어내려면 양적으로 많은 질문을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내게는 이런 말풍선이 머릿속에 가득 떠오른다. 드라마의 선풍적 인기가 가져온 장애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 다른 대중문화의 작품에서 발전시키고 나아가 현실에서의 변화로 이끌어낼 수 있을까? 우영우를 혼자 돌봐온 아버지의 장애인 양육에 대한 고뇌를 다루는 작품이 다음에는 나와야 하지 않을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만평처럼 ‘착하고 무해하고 귀여운’ 자폐장애인 우영우는 응원하면서, 지하철 장애인 활동가 시위는 비난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장애 당사자들의 콘텐츠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다운증후군을 가진 정은혜 작가가 TV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1년 전부터 캐스팅되었던 과정을 <우영우>와 같은 다른 작품의 제작 과정에 차용할 수는 없을까?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에 장애를 적절히 반영하기 위해 미디어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기업들, 엔터테인먼트사들의 ESG 실천에 녹여 넣을 수는 없을까? 장애·비장애를 포괄하는 예술인을 육성할 수 있는 시스템은 무엇일까?

많은 물음표와 치열한 논의를 통해 해가 갈수록 장애 담론이 한 차원 더 업그레이드되기를 바란다.

  • 전장연의 만평. 제목 : 다른 반응. 첫 번째 컷 : 우영우의 대사 : 80년 전만 해도 자폐는 살 가치가 없는 병이었습니다. A의 말 : 장애인도 함께 살아야지. 두 번째 컷 : 지하철에서 장애인 이동권 시위하는 장면을 보는 A의 말 : 집에만 처박혀 있을 것이지, 왜 출근길 막고 난리야!!

    전장연 만평 <다른 반응> (그림. 피델체)
    사진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페이스북(링크)

홍윤희

장애가 무의미해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2015년 ‘무의’를 결성하고, 2016년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교통약자를 위한 지하철 환승 지도와 이동권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고 장애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yhhong7309@gmail.com

홍윤희

홍윤희 

장애가 무의미해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2015년 ‘무의’를 결성하고, 2016년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교통약자를 위한 지하철 환승 지도와 이동권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고 장애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yhhong7309@gmail.com

상세내용

TV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가 가히 신드롬급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은 지적장애 여성과 비장애 남성의 사랑을 다룬 10화를 본 후인데, 회를 거듭할수록 장애와 관련된 아주 민감한 이슈들을 정면으로 건드리고 있다.

드라마 속 법적 공방을 보면 장애 이슈의 역학관계가 얼마나 복잡한지를 알 수 있다. 지적장애 여성은 자신을 준강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자친구에 대해 “좋아했지만 성관계는 불편하고 싫었다”고 밝혔다. ‘여친 카드’로 대부분의 데이트 비용을 충당하게 했던 (그리고 그게 처음도 아니었던) 남성은 “여친을 정말 사랑한 게 맞다”고 항변했다. 극 중 여성의 어머니는 “지적장애라고 내 딸을 속이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는가?”라고 말한다. 결국 이 남성은 배심원들에겐 4대 3으로 간신히 무죄 평결을 받지만, 판사로부터 실형 선고를 받는다. 극의 결론은 ‘지적장애가 있더라도 자기결정권이 있다’, ‘진짜 두 사람이 사랑하는 사이라면 좋겠다’며 이 남성을 변호하기로 결심했던 우영우의 신념이나 소망과는 달리, 장애인 대상 그루밍이나 범죄가 만연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드라마는 복잡한 현실 묘사에서 그치지 않는다. “법은 마음을 중시합니다”라는 우영우의 대사에서도 나타나듯 판결문이나 사회면 기사에선 읽기 어려운 마음속 갈등을 보여준다. 장애를 비극적으로 그리는 대중문화의 일반적인 장애 클리셰를 훌쩍 뛰어넘어 장애인-비장애인 간의 인간관계나 사회 수용성에 대한 깊은 고민을 묘사하고 있다.

극 중에는 다양한 비장애인이 있다.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캐릭터(우영우의 고등학교 친구들)도 있고, 차별을 법 논리로 정당화하는 캐릭터(극 중 일부 검사들)도 있으며, 오히려 역차별을 받는다며 분노하고 호시탐탐 복수할 기회를 노리는 캐릭터(권민우 변호사)도 있다. 이 중에서도 자기 행동이 차별임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비장애인들의 ‘미세 차별’ 사례가 가장 돋보인다. 미세 차별은 우영우를 사랑하게 되는 이준호와 그 주변 인물들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준호는 우영우와 함께 걷던 중 우연히 대학 후배를 마주친다. 후배는 자폐장애가 있는 우영우를 보고는 “오빠, 봉사하고 있구나?”라며 넘겨짚는다. 명백한 미세 차별이다. 드라마는 그 미세 차별을 보여주고 가치판단을 하게 만드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인물들의 심경 변화를 섬세하게 그린다. 이준호는 우영우에 대한 감정이 연민인지 사랑인지, 혹시라도 자신의 선의가 우영우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지 오랫동안 숙고하다가 마음을 확인한다. 그 후 “너, 그 감정, 연민이야”라는 친구의 말에 폭발해 화를 낸다. 이 장면은, 애초부터 장애인의 인간관계가 벽에 부딪히게 만드는 건 사회 편견이며 이게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를 좀먹고 있다는 걸 드러내고 있다.

확실히 드라마 <우영우>는 언론매체의 사회면에 갇혀 있던 장애 이슈 논의를 한 단계 진전시켰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다룰 수 없는 장애 관련 이슈가 하나 있다. 바로 당사자주의다. 10화까지 나왔던 3명의 장애인 캐릭터가 모두 비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지적장애인의 자기 결정권’을 더 깊게 파고들기 어려웠던 이유도 이런 한계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드라마이므로 반드시 어떤 정체성을 가진 당사자가 꼭 그 역할을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장애가 워낙 인식 왜곡이 심한 분야다 보니 당사자가 참여하지 않는 점은 아쉽다.

나는 <우영우>가 우리 사회에 던진 가장 큰 의미는 바로 장애에 대한 다양한 질문이 나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영우>를 비평하며 모처럼 장애계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장애 당사자, 장애인 부모, 장애계 종사자 등 장애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도 자신의 의견을 쏟아낸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좋은 답변을 끌어내기 위해 중요한 건 좋은 질문이고, 좋은 질문을 끌어내려면 양적으로 많은 질문을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내게는 이런 말풍선이 머릿속에 가득 떠오른다. 드라마의 선풍적 인기가 가져온 장애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 다른 대중문화의 작품에서 발전시키고 나아가 현실에서의 변화로 이끌어낼 수 있을까? 우영우를 혼자 돌봐온 아버지의 장애인 양육에 대한 고뇌를 다루는 작품이 다음에는 나와야 하지 않을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만평처럼 ‘착하고 무해하고 귀여운’ 자폐장애인 우영우는 응원하면서, 지하철 장애인 활동가 시위는 비난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장애 당사자들의 콘텐츠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다운증후군을 가진 정은혜 작가가 TV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1년 전부터 캐스팅되었던 과정을 <우영우>와 같은 다른 작품의 제작 과정에 차용할 수는 없을까?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에 장애를 적절히 반영하기 위해 미디어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기업들, 엔터테인먼트사들의 ESG 실천에 녹여 넣을 수는 없을까? 장애·비장애를 포괄하는 예술인을 육성할 수 있는 시스템은 무엇일까?

많은 물음표와 치열한 논의를 통해 해가 갈수록 장애 담론이 한 차원 더 업그레이드되기를 바란다.

  • 전장연의 만평. 제목 : 다른 반응. 첫 번째 컷 : 우영우의 대사 : 80년 전만 해도 자폐는 살 가치가 없는 병이었습니다. A의 말 : 장애인도 함께 살아야지. 두 번째 컷 : 지하철에서 장애인 이동권 시위하는 장면을 보는 A의 말 : 집에만 처박혀 있을 것이지, 왜 출근길 막고 난리야!!

    전장연 만평 <다른 반응> (그림. 피델체)
    사진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페이스북(링크)

홍윤희

장애가 무의미해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2015년 ‘무의’를 결성하고, 2016년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교통약자를 위한 지하철 환승 지도와 이동권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고 장애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yhhong7309@gmail.com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의 조건에 따라 이용이 가능합니다.

댓글 남기기

2022-08-24 08:53:33

비밀번호

작성하신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우영우 드라마는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우리에게 물음표를 제시하는 좋은 드라마라고 생각됩니다. 우영우를 시작으로 해서 이러한 작품들이 계속해서 활발하게 나오기를 기대하겠습니다.

2022-08-17 05:14:23

비밀번호

작성하신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최신 인기를 끌고 있는 우영우 드라마 애청자로서 우영우 드라마가 우리 사회에 있어 장애 이슈 논의를 한 단계 진전시킨 점에 공감합니다. 단번에 우리의 현실을 다 바꿀수는 없겠지만 드라마의 선풍적인 인기를 통해서 보다 폭넓고 깊이 있는 장애에 대한 관심과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고 고무적입니다!

제 2021-524호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WA-WEB 접근성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 | 1.업체명: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고 112 3.웹사이트:http://www.ieum.or.kr 4.유효기간:2021.05.03~2022.05.02 5.인증범위:이음 온라인 홈페이지 |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47조제1항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9조제5항에 따라 위와 같이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를 발급합니다. 2021년 05월 03일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