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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좌담] 충청 지역 장애예술 지형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터전을 만들기 위해

  • 김인규·남인순·최문철·최선영 
  • 등록일 2024-11-27
  • 조회수 206

이슈

지역의 필요를 바탕으로, 지역을 삶과 예술의 터전으로 삼는 장애예술은 어떻게 가능할까. 충청 지역의 장애예술 지형과 현황을 그려보고 현장의 경험을 함께 나누는 자리를 만들었다. 예술가이자 예술교육가로, 기획자로, 활동가로서 청주, 서천, 홍성을 거점 삼아 활동하는 세 분과 이음온라인 기획위원이 만나 충청 지역 장애예술의 현안은 무엇이며, 장애예술 생태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이야기 나눈다.

개요

  • 일시2024년 11월 8일 오후 3시 30분

  • 장소꿈이자라는뜰 농장

  • 참석자
    김인규 미술작가, 발달장애인 독립공간 예술쉼터 대표
    남인숙 해바라기예술센터 대표
    최문철 꿈이자라는뜰 사회적협동조합 조합장
    최선영 문화예술기획자, 이음온라인 기획위원(좌장)

  • 농장의 작은 건물을 배경으로 네 사람이 나란히 서서 환하게 미소짓고 있다. 각자 두 손에는 빨간 홍시 한 개씩 들었다.

    왼쪽부터 김인규 대표, 남인숙 대표, 최선영 기획위원, 최문철 조합장

최선영최근 5년 새 장애예술, 장애예술교육 관련 책이 많이 쏟아진 데 비해 현장 얘기는 여전히 두루뭉술했다. 한편, 수도권 이외 지역에는 장애예술 신에서 활동하는 예술가가 많지 않은 게 현실이자 어려움이다. 공공지원사업도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과 광역문화재단의 일부 사업 중심이다. 그래서 지역 실태를 짚고 현장 이야기를 듣고자,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예술적인 경험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모색하는 분들을 모셨다. 우선 간단히 소개 부탁드린다.

최문철꿈이자라는뜰(이하 꿈뜰)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기다운 모습으로 어울리고 배우는 농장이고, 2009년에 시작했다. 지역 주민이자 발달장애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교사 두 분이 당신들이 가르쳤던 제자가 졸업 후에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들여다보니 대부분 집에만 있었다. 당시에는 읍내에 복지관이 있긴 하지만, 교통편이 수월한 것도 아니고 정보도 적은 편이라 이용이 쉽지 않았다. 애써 가르쳤는데 졸업 후 고립되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고민 끝에 직업을 가질 수 있으면 자립도 하고 어울리는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농촌에서 제일 접근하기 쉬운 농사일을 같이 해보자고 시작한 게 꿈뜰이다. 작년에 15년 만에 처음으로 사회적협동조합이라는 법인 옷을 입었다. 학교 밖에서 학교와 마을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며 농장과 공간을 지켜줄 역할로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하고 있다.

남인숙충북 청주에서 해바라기예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예술 활동과 문화예술교육을 하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건 발달장애가 있는 조카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즐겁게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장애인 예술교육을 시작한 게 2002년이었다. 그 당시에는 정신장애인을 대상으로 수업했다. 그분들과 함께하면서 저도 즐겁고 행복했다. 그분들이 자신을 표현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문화예술교육을 좀 더 일찍 많이 경험했다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술 자체에 치료의 힘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전까지는 ‘딴따라’로 활동했는데, 그때부터 장애인 예술교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즐겁고 재미있는 경험’이 제가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이다. 그렇게 진행해 온 게 벌써 20여 년이 되었다.

김인규충남 서천에서 ‘발달장애인독립공간 예술쉼터’(이하 예술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약 20명 정도가 이용하는데, 그중 절반은 활동지원사 없이 혼자 온다. 주중에는 일하는 사람도 있고 복지관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하니 어딘가 갈 데가 있지만, 주말에는 갈 데가 없다 보니 주로 토요일에 오는 게 하나의 패턴으로 형성되더라.

든든한 관계망을 만들기

최선영공간이나 단체가 생겨난 배경에서 특히 주요한 운영 철학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필요나 지향을 바탕으로 시작했고, 현재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최문철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장애’ ‘농사’ ‘마을’ 이 세 가지의 연결이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단순히 농사 기술 전수가 아니라는 것을 차츰 알아가게 되었다. 익숙한 공간에서, 오래되고 편안한 관계에서 마음껏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어야 하고 싶은 것, 도전할 수 있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편안하게 고민이나 어려움을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가 만들어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시 따르기가 잘 되는 숙련된 농업 노동자를 기르는 게 목표가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것을 부드럽고 친절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고, 같이 경험하고, 함께 재미있는 일을 고민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만들어지길 바랐다. 동네 이웃이자 농장 동료라는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 소중해졌고, 서로를 알아가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갔다. 현재 성인 장애인 4명과 비장애인 6명이 농장 일을 함께하고 있다. 매주 한 번씩 방과후 수업으로 청소년들과 함께 농사짓는 교육을 한다. 그리고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 캠페인이나 ‘허브데이’처럼 지역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어울리고 교류하며 활동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자리를 만드는 게 주로 하는 일이다.

남인숙해바라기예술센터는 저 혼자 운영하고 있고, 제 쉼터이자 연습하는 곳이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즐거운 문화예술 경험’이다. 현재 장애인 한 팀, 비장애인 세 팀, 그리고 개인적으로 출강 나가는 장애인 세 팀이 있다. 주로 국악이나 난타 교육을 한다. 한 번은 탈 만드는 수업을 했는데, 한 분이 울고 있는 탈을 만들었다. 그분의 방어 기제가 우는 거였는데, 자기를 그렇게 표현한 게 감동이었다. 주간활동센터, 장애인자립센터, 장애인보호작업장, 특수학교 등에도 나가는데, 참여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말이 ‘난타 수업을 못 할 수도 있다’라는 말이라고 하더라. 이게 위협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좋아한다는 거다. 그런 관계와 경험 속에서 변화해 나가는 것 같다.

김인규예술쉼터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되고자 했다. 예술쉼터까지 오게 된 과정이 있다. 2009년부터 장애인부모회를 준비했고, 2011년 정식으로 결성하여 부모회 사무실을 거점으로 제 아이를 포함해서 발달장애 아동들과 미술 활동을 시작했다. 아이들이 부모공동체를 중심으로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터전을 만들어 나가자는 생각이었다.
2016년에는 협동조합 법인을 만들기도 했다. 그 당시 일상적으로 아트타일을 생산했는데, 충청남도교육청에서 매입한 것이 계기였다. 이것을 기반으로 아이들이 재미있게 미술 활동을 하고 생산물을 판매해서 큰돈은 아닐지라도 성취감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차 부모들이 함께 움직이기보다는 서비스를 받는 소비자처럼 되면서 제가 다 감당해야 하게 되었다. 한편, 활동지원사 제도가 정착되면서 부모는 활동에서 대부분 사라지고 활동지원사와 당사자만 남게 된 것도 있다. 결국 몇 년 운영하다가 문을 닫았다. 경제적인 부분보다는 일상성에 초점을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지속적인 지원이 가능한 복지관과 파트너십을 맺고 활동을 이어갔다. 복지관은 큰 힘이 되었다. 복지관이 많은 실무적인 일들을 해결해주었고, 나는 미술 활동을 지속하도록 기획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복지관에는 미술 활동만을 위한 공간은 없었다. 활동이 끝나면 다 치우고, 다시 활동이 시작되면 또 다 펼쳐놓아야 했다. 당사자들은 늘 손님처럼 행동해야 했다. 이에 좀더 안정적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제 작업실을 예술쉼터로 내놓았다. 이제 3년째 접어들고 있다.

최문철첫해에 초중고 다 합쳐서 18명 정도가 함께 수업하고 활동했다. 농사를 배웠다고 다 농부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역에서 어디든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그 중간 다리 놓는 일을 한 적도 있었다. 고등학생의 경우 지역에 있는 농장이나 도서관, 어린이집에 인턴십을 연결해 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룹홈에서만 지내던 분들이 농장에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오히려 우리와 청소년기를 보내지 않은 성인들이 먼저 같이 일하게 됐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하루 1시간 자원봉사처럼 와서 경험해 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조금씩 시간을 늘려서 일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지역사회에서 고립되지 않기를 바라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작년에 드디어 꿈뜰을 거쳐 간 청소년들이 동료 일꾼으로 들어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장애가 있는 청년들이 지역사회에 살면서 할 일이 있고, 갈 데가 있고, 만날 사람이 있는 게 너무 중요하다. 그것이 예술 활동이든 직업 활동이든, 또는 복지관 활동이든. 중요한 것은, 단순히 소비자나 대상자의 모습이 아니라, 자기다운 모습으로 머물 수 있고, 외롭다고 이야기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고, 또 너무 무겁게 기대지 않으면서도 그냥 이웃으로 지낼 수 있는 관계가 길고 넓게 이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 김인규 발달장애인 독립공간 예술쉼터 대표

  • 남인숙 해바리기예술센터 대표

  • 최선영 이음온라인 기획위원

  • 최문철 꿈이자라는뜰 사회적협동조합 조합장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최선영각 공간이나 단체에서 문화예술 활동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왜 다른 활동이나 교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이루어지는지 궁금하다. 보통 장애인 문화예술 활동이 주 몇 회 어떤 프로그램이나 워크숍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참여자가 공간에 입장할 때부터 자신의 루틴이 있고, 같이 활동하는 또 다른 장애인과의 관계가 중요해서 온다든지 하는 이유가 있다. 그 사람의 삶에서 이 공간이 일상의 일부가 되어가는 게 보인다. 공간을 통해 문화예술 활동뿐 아니라 그런 다른 경험들이 풍성하게 이루어지는 걸 자주 경험하게 되는데, 사회적으로 이것을 읽어내는 시선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김인규일단 다양한 사람이 함께 모이기에 공간이 갖는 메리트가 있다. 예술쉼터는 딱히 정해진 시간이 있는 게 아니니 각자 편하게 접근한다. 오면 자기들끼리 함께 앉아 있고, 활동지원사들도 자기들끼리 커뮤니티가 형성된다. 같이 만나서 오고, 여기서 만나서 같이 가고, 밖에서도 같이 놀고. 공간에 와서 수다를 떠는 게 큰 즐거움인 것 같다. 가끔 누구 생일이라고 파티가 벌어지기도 하고. 활동지원사에게도 이런 공간이 필요하다. 1년에 한 번씩 빠뜨리지 않고 전시회를 하는데, 우리가 하는 활동이 지역사회 문화의 한 축으로 존중받고 인정받는 측면이 있다. 전시회 무대에서 자기를 보여주는 것이 이용자들에게도 의미 있어서 전시회를 기다린다. 사실 이건 소도시여서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서로 어디 사는 누구인지 대충 아니까 작품과 당사자를 연결해 내고, ‘작년에 이렇게 했는데 올해는 이렇게 했네’ 이런 식으로 좀 더 적극적인 감상이 이루어진다.

최선영어떻게 보면 이것이 아주 당연한 건데, 이렇게 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애인이 어떤 시스템 안에서 무언가 활동을 하려면 서비스를 신청해서 지원받는 식으로 분절되어 있잖나. 그런데 자신이 가는 시간 오는 시간도 선택하고, 모여서 일상을 나누고 축하해 주기도 하고 기분이 좋으면 더 하기도 하고 싫으면 더 안 하기도 하는 게 문화예술 활동 현장에서 오히려 폭넓고 자연스럽게 포착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더 넓은 질문이 계속 생기고, 사회적인 이슈에도 관심이 더 커지며, 제도나 시스템에 대한 개선 요구도 더 커지고, 예술 너머까지 시선이 넓어지는 것 같다.

최문철꿈뜰은 다른 걸 하다가 예술도 하는 곳이다. 지시 따르기가 잘 되는 농업 노동자를 기르는 게 목표가 아닌 것처럼, 원칙이 있다면 첫째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거다. 우리가 오늘 해야 할 일은 이런 것들이 있는데 이 중에서 어떤 걸 하고 싶은지 묻고, 선택을 최대한 열어놓는다. 둘째는, 혼자 일하도록 두는 게 아니라 최대한 함께 일한다. 농사는 대부분 수다를 떨면서 할 수 있다. 여럿이 함께 일하다 보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다. 지난 주말에 무엇을 했고 어땠는지 이런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런 상황이 편안하고 이야기가 풍성해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매년 동네 이웃들에게 편지를 쓰는데, 비장애인 일꾼들이나 장애인 동료들에게 올해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에 남는 게 무엇인지 물어보고, 그것을 채록해서 기록을 공유한다. 자기 모습이 누군가의 그림으로, 글로 담겨 공유되고 남겨지는 거다. 우리가 필요해서 하는 거지만 같이 누릴 수 있는 부분이 되길 바란다. 또 1년에 한 번 ‘허브데이’를 연다. 처음에는 학교와 손잡고 ‘올해 이런 활동을 했고, 우리 이렇게 잘하고 있다, 도와줘서 고맙다’라는 의미로 하다가, 어느 해인가 무대에 마을 주민도 같이 올랐다. 몇 해가 더 지나서는 아예 무대를 없애고 농장 여기저기에 자리를 펼쳤다. 누가 장애인인지 아닌지, 누가 주인인지 손님인지 드러나지 않고, 나이가 많든 어리든, 이 공간에서는 자기가 즐기고 싶은 걸 마음껏 즐길 수 있고 내가 즐기는 걸 같이 해보자고 얘기할 수 있는 날이다. 1년 내내 허브데이 같으면 좋겠다.
그리고 농장이 베이스이다 보니 이 공간을 어떻게 하면 더 생태적이고 효율적이면서도 아름답게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안전한 공간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퍼머컬처 디자인, 유니버설 디자인을 공부하며 이것저것 적용해 보았다. 더 많은 사람이 쉽고 편하게 접근하고 마주치는 기회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선영제가 일본 장애예술 사례를 연구할 때 느꼈던 것을 꿈뜰에서 많이 보았다. 굉장히 예술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하며 물어보면, 같이 살려다 보니 예술 활동 같은 것을 하는 거지 예술을 하려는 게 아니라고 답하더라. 꿈뜰에서도 그런 것을 느꼈다.

남인숙저희 센터 혹은 저와 함께하는 장애인들은 다른 활동보다는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하고 관계를 맺고 있다. 얼마 전 우리 센터에서 활동하는 한 팀이 지역 발달장애인 행사에서 공연했는데, 그 모습을 누군가 촬영해서 유튜브에 올렸나 보더라. 한 참여자가 그걸 보고 “선생님, 나 유튜브에 나와요. 행복해요”라고 했다. 지역사회에서 그이가 주요 인물이 된 거다. 이런 것들이 자기 삶에서 자신을 확장하는 게 아닐까. 또 우리의 활동을 듣고 오케스트라나 비장애인팀이 같이 협연하자는 제안을 해왔을 때,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자기를 발견할 기회가 되겠다 싶어 좋았다.
개별성을 포착하는 건 개인의 변화에서라고 느껴진다. 처음에 연주가 어려웠던 아이들이 같이 협연을 잘 해낸다든지,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너무 즐겁게 활동하고 관계를 맺고, 수업에 점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부적응 행동을 하는 아이를 옆에 있는 친구들이 말리는 모습 등을 보며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수업과 경험을 통해 다들 ‘변화’ ‘발전’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들이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었는데 드러나지 않았거나 드러내지 못한 모습을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찾고 있고, 그렇게 찾은 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최선영단체를 운영하는 개인이 관계 맺는 방식이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에 따라 관계를 만들어가는 방식도 다르게 작동한다.

남인숙우리 센터는 도심은 아니고 약간 외곽에 있다. 그렇다고 아주 시골도 아니다. 센터에 오는 분들은 주로 복지기관 이용자들인데, 대부분 문화예술 활동을 경험한 분이 많다. 제가 수업하는 분들이 공연하는 걸 보거나 혹은 제 수업에 온 분들이다. 입소문으로 오는 분들도 있다.

최문철홍성에는 홍성군이 지원하고 홍성군장애인가족지원센터가 주관하는 ‘꿈꾸는 예술제’ 행사가 매년 열린다. 초중고 특수교육 대상 청소년들과 장애인가족지원센터의 해밀중창단을 비롯해 홍성군장애인종합복지관이 다 함께 참여해 합창, 사물놀이, 마당극 등의 발표회를 열고 ‘들락날락 작품 전시회’도 연다. 우리문화연희단 꾼이 장애청년들과 함께 마당극을 만들어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 큰 창문이 있는 작은 공간, 큰 원목 테이블에 네 사람이 둘러앉아 이야기하고 있다. 벽에는 많은 사진과 메모가 붙어 있다.

    왼쪽부터 김인규 대표, 남인숙 대표, 최선영 기획위원, 최문철 조합장

거점으로서 공간의 가능성과 고민

최선영얘기를 듣다 보니 공간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게 정말 중요하고, 어쩌면 그것이 전부인 것 같기도 하다. 장애인 예술 활동이나 예술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어떤 프로그램을 몇 차시로 얼마나 하느냐가 아니라, 그 장소에서 예술적 경험을 어떻게 지속하는가다. 지역 거점으로서 공간의 가능성과 고민도 궁금하다.

남인숙현재 가장 큰 어려움은 매년 오르는 월세다. 제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니까. 공간을 마련한 이유도 분명하고, 또 하고 싶은 의욕도 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다. 기관에서 강사비까지는 마련했지만 악기가 없다고 해서 공간을 마련하고 악기를 준비했다. 우리 공간에서 계속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또 해왔던 활동이 지원이 끊기면서 갑자기 없어졌을 때는 너무 힘들다. 기관 혹은 학교에서 예술 활동을 잘 마치고 ‘내년에 만납시다’ 하며 울면서 헤어졌는데, 기관장이나 방침이 바뀌어 기다리던 수업을 할 수 없게 되면 이용자들이 눈에 밟히고 허무하고 안타깝다. 예술교육을 30년 해왔고, 한 교육기관과는 14년을 했는데, 14년간 강사비는 하나도 안 변했다. 너무 현실은 덮어두고 이상만 좇으며 산 것은 아닌지 싶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포기해야 하나 실질적인 고민이 생기더라. 이러다 굶어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좀 더 가벼워지고 냉정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원사업의 복잡한 서류와 행정 역시 너무 복잡하고 힘들었다. 물론 사업 성과도 있고 보람도 있었지만, 기획 전담 인력이 꾸려지거나 하지 않으면 어렵겠다고 생각한다. 대표의 노동을 인정해 주지 않는 불합리한 구조를 몇 년 겪고 나서는 이제 지원사업은 하지 않는다. 충남에는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이나 문화예술 활동에 장애인 쿼터가 있는 거로 안다. 그런데 충북에는 그런 게 없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경쟁하는 모양새다. 올해 처음으로 ‘장애예술인 창작활동 준비금’이 신설되어 200만 원씩 지원하더라. 개인 작가들은 그 예산으로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공연을 하기에는 어려운 규모다. 그래서 충남 지원체계가 부럽다.

김인규문화예술교육이 장애 당사자들을 학생으로 대상화하고 있다고 본다. 무언가를 가르쳐야 하고 배워야만 사회적으로 지원 시스템 안에 들어간다. (발달장애인을) 가르치면 언젠가는 독립할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깔고 있으니, 가르쳐야만 지원하는 거다. 이런 전제가 맞는 걸까? 배우는 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하고 그게 가능할 수 있는 영역이 있어야 한다. 그 영역 중 하나가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교육 프로그램보다 공간이 더 중요하다. 이런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니, 지원이 없더라도 일단 내가 먼저 문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을 열 당시에 가장 크게 고민했던 것이 당연하게 따라붙는 ‘교육’과 ‘돌봄’, 이 두 가지였다.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교육뿐만 아니라 돌봄도 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회원제를 두었다. 회비는 1년에 1만 원이고, 와서 활동하고 돌아가기까지 모든 권리와 책임은 회원 스스로가 진다. 그런데 공간의 접근성 문제는 아직 풀지 못했다. 제 개인 공간을 내주다 보니 화장실 등 휠체어 접근성이 안 되어 있는데, 예산 문제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휠체어를 타고 온 분이 몇 번 이용하다가 그만둔 적도 있다. 그리고 이용자들이 생산한 작품이 계속 쌓이고,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공간도 비좁아지는 여러 한계가 누적되어 있다.
사실 회비로는 재료비 충당하기도 어렵다. 작년에는 후원금을 준 분도 있고 제가 사비로 사기도 했다. 다행히 올해는 평생학습지원센터에서 지원해 주는 등 지역사회 덕분에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일종의 장애인 사랑방 같은 개념으로 본다면 지방자치단체에서 해결해야 할 영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한다. 조금씩 설득력을 얻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스스로 살피고 서로를 돌보는 연결을 위해

최선영충북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3년 연속 지원사업을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진행했고, 충남도 올해로 3년이 끝난다. 그런데 그 이후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공공지원만 바라볼 수도 없고, 개인의 책임감에 기대는 건 무리가 있다. 이 와중에도 꾸준히 나아가는 현장이 소중한 것 같다. 앞으로 어떤 것에 집중하거나 새로이 시도하고 싶은지 궁금하다. 지역에서 함께할 동료가 있나?

남인숙저는 힘을 좀 빼려고 한다. 센터 이름을 ‘해바라기’라고 지은 이유도, 너무 고민하거나 대단한 걸 하려고 하지 말고, 지금 느끼는 즐거움을 같이 해나가며, 고심하는 데 쓸 에너지를 조금 내려놓자는 의미로 가볍게 지었다. 다만, 해보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이나 마당극을 만들어보고 싶다. 2003년에 청주맹학교에서 처음 교육을 시작했을 때 저시력 시각장애 학생들과 자신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아보는 탈춤 수업을 했었다. 예전 자료를 찾아보다가 시각장애 학생들이 비시각장애인을 흉내 내면서 연극 하는 걸 보고 속상했다.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도 되는데, 왜 비시각장애인 흉내를 낼까. 자신들만의 독특한 움직임을 살리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이야기 나눴다. 그러자 아이들이 학교에 대한 불만, 사회에 대한 불만을 대사로 풀어내는 거다. 그 공연을 보고 아이들은 깔깔깔 웃었고, 선생님들은 당황해하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다 유쾌하게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었다. 앞으로 이런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
사실 지역에 함께할 동료가 별로 없다. 장애아동과 수업하고 싶다는 예술강사들과 ‘도움샘’이라는 공부 동아리를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어려워해서 잘 진행되지는 않았다. 의지를 가지고 도전해도 오래 가지 못했다. 이론은 알아도 현장에서 적절히 쓸 줄 몰랐다. 만약 장애인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면 교육자 양성부터 신경 써야 한다. 장애인의 특성과 함께 개별성을 이해하기 위한 준비와 함께 ‘장애 감수성’을 갖춰야 한다. 동료가 가장 필요로 할 때는 나 자신에게 확신이 없을 때다. 지금 내가 하는 것이 맞는지,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누군가와 상의하고 어려움을 이야기할 수 있는 동료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김인규지역에서 함께할 동료를 찾는 건 정말 어렵다. 나를, 내 시간을 내놓아야 하는 거잖나.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기에 아쉽다. 한편으로는 공간을 이용하는 창작자들이 꾸준히 무언가를 꾸준히 생산하는 것들을 쌓아놓고만 있는데, 좀 더 사회적으로 유통할 방안을 찾는 게 숙제다. 서천군 신청사에 아트월로 기증한 것은 의미 있었지만, 앞으로는 수익으로 연결되어서 창작자들에게 작품비라도 지급할 수 있으면 좋겠다.

최문철저 역시 처음에는 비장애인 동료를 만나기가 정말 어려웠다. 다들 장애에 대해 낯설어하고 농사짓는 것도 쉬운 게 아닌 데다 활동비를 넉넉하게 마련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래서 무리하지 않고 조금씩 참여할 수 있게 했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고 최대한 자율적이고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엄청 애를 썼다. 그러면서 차츰 좋은 동료들을 만나게 되었다. 동료들은 수업도 열심히 준비하고, 수업이 끝나면 수업을 어떻게 했는지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회고하는 시간을 꼭 가진다. 2주에 한 번, 2시간씩 책 모임을 지속하고 있다. 이 일을 계속하는 데 필요한 힘을 활동 안에서 생산해 내야 하잖나. 일에서 재미나 의미, 배움을 구할 때, 혼자보다는 함께 협동하는 게 나으니까. 지금은 다른 지역 활동가나 부모도 일부러 찾아온다. 일방적이지 않은 협동을 계속할 수 있고 연결을 계속 만들어 나가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게 이 일을 지속하는 힘이 아닐지 생각한다.
그런 시간이 쌓이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게 있다. 장애인 당사자도 돌봄이나 욕구 해소, 발견이나 성장이 필요하지만, 그 옆에 있는 옹호인들도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을 뿐,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는 거다. 자신의 고민과 아픔을 안전하게 드러낼 수 있는 관계를 통해 해답을 찾고 싶고, 버틸 힘을 공급받고 싶고, 관계로 구축된 비빌 언덕을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역시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언제든지 열려 있어서 어려워하지 않고 들어오고, 오래 있어도 눈치 보지 않고 같이 공부하면서 속 깊은 얘기도 할 수 있는 카페나 책방, 게스트하우스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최선영요즘 강의와 멘토링을 하다 보면, 최근 2, 3년 새 장애인 예술에 대한 막연한 기대는 조금 사라진 것 같다. 예전에는 장애인이 유명 예술가가 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데, 해보니 안된다는 걸 느끼는 사람들이 나오고, 현장에서 어려움을 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런데 어려우니까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좋았던 경험이 있었기에 지속하고 싶다는 욕구가 오히려 더 강해진 것 같다. 답답함과 의지가 같이 가는 거다. 그런 분들에게 오늘 이야기가 의미 있을 것 같다. 경험과 고민, 통찰을 나눠주셔서 감사하다.

  • 네 사람이 농장 건물 계단에 걸터 앉아 환하게 미소짓고 있다.

    왼쪽부터 김인규 대표, 남인숙 대표, 최문철 조합장, 최선영 기획위원

김인규

미술작가, 발달장애인 독립공간 예술쉼터 대표. 서천발달장애인예술창작그룹 대표. 지역에서 발달장애인의 예술활동 및 자조모임 등을 지원하는 다양한 활동하고 있다. 한편 오랫동안 미술 교사로 일했으며, 현재는 자유로운 예술교육 활동을 수행하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kig8142@naver.com
발달장애인 독립공간 예술쉼터 페이스북

남인숙

해바라기 예술센터 대표. 예술공장 두레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다. 학교예술강사로 활동하며 청주맹학교, 성심학교, 혜화학교 등 특수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했고, 장애인복지기관 등에서 수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에서 시작된 고민으로 예술치료, 국악치료를 공부했고,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연구 등에도 참여했다.
chumine@naver.com

최문철

꿈이자라는뜰 사회적협동조합 조합장. 발달장애 청소년을 위한 교육농장이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기다운 모습으로 어울리고 배우는 농장을 가꾸고 있다. 농장과 마을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살피고 서로를 보살피는 법을 익히며, 자기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좋은 삶을 함께 만들어 가고자 한다.
joshua.choi@gmail.com
꿈이자라는뜰 홈페이지

최선영

문화예술기획자, 이음온라인 기획위원. 2007년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개별성 중심의 활동을 기획 및 연구하고 있다. 2022년부터 이음온라인 기획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voslss@hanmail.net

정리.최순화 프로젝트 궁리 콘텐츠제작 PD suna.choe@gmail.com
사진.이재범 라무팜스튜디오 실장 andy45a@naver.com

2024년 12월 (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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