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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공동연출 프로젝트 <어느 마을>

리뷰 중첩된 세계, 흐려진 경계

  • 전강희 공연평론가
  • 등록일 2021-06-02
  • 조회수1727

리뷰

한일공동연출 프로젝트 <어느 마을>

중첩된 세계, 흐려진 경계

전강희 공연평론가

올해 3월 이연주가 작가로 참여한 연극 <어느 마을>이 한국과 일본에서 무대에 올랐다. <어느 마을>은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와 일본 돗토리현에 있는 새의극장(鳥の劇場)이 공동으로 추진한 연출프로젝트로 본래 계획대로라면 작년에 두 나라의 연출가와 배우들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서로 적극적인 협업으로 공연을 무대에 올렸을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팬데믹으로, 물리적인 협업보다는 각 나라의 상황에 맞는 공연 방식을 택해서 올해 3월에 관객을 만났다.

일본 공연이 먼저 3월 2일에 온라인을 통해서 한국에 소개되었다. 새의극장에서 극단 씨어터 포포의 연출가와 배우들이 만든 공연이다. ‘씨어터 포포’는 민들레라는 뜻의 일본말 ‘탐포포’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 극단의 배우들은 나라현에 있는 ‘민들레의 집’이라는 복지시설에서 생활하고 있고 주로 발달장애인이다. 연출가 모리나가 마코토와는 예전부터 교류하고 있었지만, 이들이 배우로서 무대에 서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극단 씨어터 포포가 탄생했다.

무대로부터 흐려지는 모든 경계

한국 공연은 3월 4일과 5일 한예종 연극원 실험무대에서 올라갔다. 팬데믹으로 소수의 관객만 입장 가능한 공연이었는데 5일 공연을 온라인으로 생중계하면서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 연출은 정성경이 맡았고, 강보람, 강선자, 강희철, 김범진, 아누팜 트리파티, 홍선우가 배우로 출연했다. 공연에는 수어 통역, 음성해설과 자막이 제공되었다. 배우 아누팜 트리파티가 출연하는 장면은 힌디어로 진행되는데 이 장면을 위해 한국어 자막과 수어 통역이 따로 또 제공되었다. 이 공연에는 극장에 누구나 올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배리어프리 매니저가 있었다. 공연 중 힌디어가 들리는 부분에서 배리어프리 매니저인 강보름이 한국어 자막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가 있는 관객에게 다가가 속삭이듯 극 내용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런 전달 방식을 ‘위스퍼링 통역’이라고 하며, 공연 도중 이런 통역이 있을 거라는 점이 관객 모두에게 사전에 공지되었다.

공연은 배우가 관객에게 직접 자기를 소개하면서 시작된다. 강희철 배우는 병원에 입원해있어 온라인으로 무대에 출연했다. 휠체어에 그의 의상을 놓아 몸통을 표현하고 얼굴 부분만 아이패드 화면 속 강희철로 대신해 병실과 극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뛰어넘어 실시간으로 출연했다. ‘블랙박스 씨어터’라는 물리적 공간과 배우 얼굴이 있는 아이패드 속 공간, 이 모든 것이 송출되는 온라인 공간이 중첩되면서 공연은 시작한다. 미화복을 입은 극장장 역의 강선자 배우는 연극원에서 실제로 미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극 중 극장장이 하는 일도 극장 구석구석을 정리하고 돌보는 것이라서, 실제 강선자와 배우 강선자의 역할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이 여러 차례 있었다. 연극과 연극이 올라가는 블랙박스 씨어터, 블랙박스 씨어터가 놓인 건물과 건물 바깥 세계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극은 시작한다.

닭들의 이유, 달걀의 결심

어느 날, 마을의 닭들이 알을 낳지 않는다. 이유가 메모 한 장에 적혀있다.

“(…) 우리는 당분간 알을 낳지 않습니다. 알을 낳을 수가 없습니다. 지난 전염병은 우리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많은 동료와 가족들이 떠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습니다. (…) 애도 기간을 갖지 않고, 알 생산에 열중했던 것을 후회합니다. 우리는 마을의 일원으로서, 일에 매진하여 슬픔을 극복하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이제라도 늦은 애도 기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에 동참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닭들은 마을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는 달걀을 낳고, 사람들은 달걀을 먹고 힘을 내어 각자 맡은 일을 하고 마을을 생산력이 높은 공동체로 유지한다. 마을 사람들은 구체적인 인물이 아니라, 요리사, 농부, 공장장으로 명명되면서 공동체가 작동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본적인 직업군을 대표하고 있다. 닭이 알을 낳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처음에는 닭을 염려했던 마을 사람들은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달걀을 먹지 못하니 힘이 나지 않아 일을 할 수 없어 자신들이 공동체에서 쓸모없는 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에 휩싸인다. 생산력, 쓸모와 같은 말에서 이 마을이 자본주의 질서를 깊게 체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닭을 치료하기 위해 최근 마을로 들어온 수의사에게 분풀이하면서 자신들의 불안을 투영한다.

수의사는 원래 이곳 사람이 아니다. 수의사를 찾아 다른 마을에서 들어온 심리치료사도 이 마을 사람이 아니다. 두 사람은 공동체에서 자신의 몫이 없는 이방인들이다.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주던 동물들이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는 이방인들이 차지하고 있는 지금 상황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비정상적이다. 정상성을 회복하고자 수의사를 마을 밖으로 쫓아낼 궁리를 한다. <어느 마을>의 극 속 세계는 마을 구성원의 세계, 외부의 세계, 그리고 달걀의 세계가 있다. 의사는 어느 날 우연히 닭장에서 굴러 나온 달걀 하나를 발견하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채로 담겨있는 하나의 세상을 상상해 본다.

<어느 마을>의 극 속에는 마을, 마을 밖, 달걀의 내부, 그리고 또 하나 극장이라는 세계가 있다. 극장장을 맡은 강선자 배우가 극 중 인물이기도 연극원의 인물이기도 한 것처럼, 극장도 극 안에 있기도, 극 밖 실제 세상에 있기도 하다. 어떤 때에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마을이 되기도, 어떤 때에는 마을이라는 세트를 담고 있는 극장이라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어느 마을>의 세계는 서로의 내부에 있으면서, 서로의 외부에 있다.

극장장이 실수로 조명을 건드려 무대를 암전시키자 마을은 더는 해가 뜨지 않는 곳으로 변한다. 빛이 없는 이곳에서 세계의 경계가 점차 사라지지 시작한다. 여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은 역설적이게도 마을 공동체에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 심리치료사이다. 그는 닭의 마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사람들이 닭의 언어 ‘꼬끼오’를 쓰도록 만든다. 모두가 ‘꼬끼오’를 외치는 행위는 동물과 인간의 경계 허물기 이기도 하다. 심리치료사는 이번에는 객석의 관객들이 달걀 하나를 손에서 손으로 옮기고, 꼬끼오를 외치며 달걀에게 말을 걸게 한다. 이 순간 무대와 객석의 경계도 사라진다. 곧 희망이 닥칠 것 같지만 달걀은 결국 깨지고 만다. 달걀은 이 세상에 깨어나지 않기를 결심한 것이다.

한 공간에서 경험하는 다층의 시공간

<어느 마을>에는 다양한 세계가 중첩된 것처럼 다양한 시간이 뒤섞여 흐르고 있다. 달걀의 시간, 마을 사람들의 시간, 극장의 시간, 극장 밖의 시간이 있다. 배우와 관객들이 ‘꼬끼오’를 외치던 때에 이 시간은 한 장면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 공간들 역시 이 순간, 한 공간이 되었다.

<어느 마을>은 희곡 자체로서도 수많은 층위를 품고 있지만, 어떤 무대 위에 놓이는가, 출연진 구성을 어떻게 하는가, 배리어프리를 어떤 방식으로 구현할 것인가에 따라서 더욱 풍성해질 수 있는 극이다. 정성경 연출은 수많은 공연 요소를 무대 위에 펼쳐놓고 조합하면서 희곡이 본래 가지고 있던 공동체에 대한 진지한 사유에 깊이를 더했다. 좋은 공연임에도 풀리지 않은 한가지 질문이 있다. 이 희곡에서, 이 공연에서, 극장장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통제자인가, 방관자인가, 아니면 추상적인 예술을 구체적인 대상으로 치환시켜 놓은 것인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극장의 무기력함을 말하기 위함인가? 꼭 필요함을 강조하기 위함인가? 아마도 낭독이 아닌 온전한 공연이 무대에 오른다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한일공동연출 프로젝트 <어느 마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일본 새의극장 | 3월 4일(목)・5일(금) |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실험무대

어느 마을. 마을의 구성원들은 각자의 역할을 한다. 사람들이 일하면, 동물들은 생산하고 번식한다. 마을 사람들은 달걀을 주식으로 먹으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은 닭장 안의 닭들이 더는 알을 낳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이제 생존을 위해 새로운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 <어느 마을>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극창작플랫폼에서 일본 새의극장과 협업하여 2020~2021년 ‘한일공동연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한 공연이다. 일본과 한국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작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나 코로나19로 인해 한국과 일본이 각각 같은 대본으로 독해작품을 제작·공연하였다.

전강희

영문학과 연극학을 전공하고 예술현장에서 공연평론가, 드라마투르그, 축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다. 새로운 극적 언어를 탐색하고 장르 간 해체와 협업이 활발한 공연 만들기에 관심이 많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인으로 활동하며 여러 장르의 신진예술가 작업을 기록하고 소개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는 서울변방연극제 대표이자 프로그래밍 디렉터로서 축제를 만들었다. 또한 인천아트플랫폼, 우란문화재단, 광주 ACC 레지던시에 입주작가로 참여한 바 있다. 현재는 국립극단 창작프로젝트 <창작공감;연출> 운영위원으로 참여 중이다.

사진 제공.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창작플랫폼

2021년 6월 (20호)

상세내용

리뷰

한일공동연출 프로젝트 <어느 마을>

중첩된 세계, 흐려진 경계

전강희 공연평론가

올해 3월 이연주가 작가로 참여한 연극 <어느 마을>이 한국과 일본에서 무대에 올랐다. <어느 마을>은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와 일본 돗토리현에 있는 새의극장(鳥の劇場)이 공동으로 추진한 연출프로젝트로 본래 계획대로라면 작년에 두 나라의 연출가와 배우들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서로 적극적인 협업으로 공연을 무대에 올렸을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팬데믹으로, 물리적인 협업보다는 각 나라의 상황에 맞는 공연 방식을 택해서 올해 3월에 관객을 만났다.

일본 공연이 먼저 3월 2일에 온라인을 통해서 한국에 소개되었다. 새의극장에서 극단 씨어터 포포의 연출가와 배우들이 만든 공연이다. ‘씨어터 포포’는 민들레라는 뜻의 일본말 ‘탐포포’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 극단의 배우들은 나라현에 있는 ‘민들레의 집’이라는 복지시설에서 생활하고 있고 주로 발달장애인이다. 연출가 모리나가 마코토와는 예전부터 교류하고 있었지만, 이들이 배우로서 무대에 서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극단 씨어터 포포가 탄생했다.

무대로부터 흐려지는 모든 경계

한국 공연은 3월 4일과 5일 한예종 연극원 실험무대에서 올라갔다. 팬데믹으로 소수의 관객만 입장 가능한 공연이었는데 5일 공연을 온라인으로 생중계하면서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 연출은 정성경이 맡았고, 강보람, 강선자, 강희철, 김범진, 아누팜 트리파티, 홍선우가 배우로 출연했다. 공연에는 수어 통역, 음성해설과 자막이 제공되었다. 배우 아누팜 트리파티가 출연하는 장면은 힌디어로 진행되는데 이 장면을 위해 한국어 자막과 수어 통역이 따로 또 제공되었다. 이 공연에는 극장에 누구나 올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배리어프리 매니저가 있었다. 공연 중 힌디어가 들리는 부분에서 배리어프리 매니저인 강보름이 한국어 자막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가 있는 관객에게 다가가 속삭이듯 극 내용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런 전달 방식을 ‘위스퍼링 통역’이라고 하며, 공연 도중 이런 통역이 있을 거라는 점이 관객 모두에게 사전에 공지되었다.

공연은 배우가 관객에게 직접 자기를 소개하면서 시작된다. 강희철 배우는 병원에 입원해있어 온라인으로 무대에 출연했다. 휠체어에 그의 의상을 놓아 몸통을 표현하고 얼굴 부분만 아이패드 화면 속 강희철로 대신해 병실과 극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뛰어넘어 실시간으로 출연했다. ‘블랙박스 씨어터’라는 물리적 공간과 배우 얼굴이 있는 아이패드 속 공간, 이 모든 것이 송출되는 온라인 공간이 중첩되면서 공연은 시작한다. 미화복을 입은 극장장 역의 강선자 배우는 연극원에서 실제로 미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극 중 극장장이 하는 일도 극장 구석구석을 정리하고 돌보는 것이라서, 실제 강선자와 배우 강선자의 역할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이 여러 차례 있었다. 연극과 연극이 올라가는 블랙박스 씨어터, 블랙박스 씨어터가 놓인 건물과 건물 바깥 세계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극은 시작한다.

닭들의 이유, 달걀의 결심

어느 날, 마을의 닭들이 알을 낳지 않는다. 이유가 메모 한 장에 적혀있다.

“(…) 우리는 당분간 알을 낳지 않습니다. 알을 낳을 수가 없습니다. 지난 전염병은 우리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많은 동료와 가족들이 떠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습니다. (…) 애도 기간을 갖지 않고, 알 생산에 열중했던 것을 후회합니다. 우리는 마을의 일원으로서, 일에 매진하여 슬픔을 극복하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이제라도 늦은 애도 기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에 동참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닭들은 마을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는 달걀을 낳고, 사람들은 달걀을 먹고 힘을 내어 각자 맡은 일을 하고 마을을 생산력이 높은 공동체로 유지한다. 마을 사람들은 구체적인 인물이 아니라, 요리사, 농부, 공장장으로 명명되면서 공동체가 작동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본적인 직업군을 대표하고 있다. 닭이 알을 낳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처음에는 닭을 염려했던 마을 사람들은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달걀을 먹지 못하니 힘이 나지 않아 일을 할 수 없어 자신들이 공동체에서 쓸모없는 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에 휩싸인다. 생산력, 쓸모와 같은 말에서 이 마을이 자본주의 질서를 깊게 체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닭을 치료하기 위해 최근 마을로 들어온 수의사에게 분풀이하면서 자신들의 불안을 투영한다.

수의사는 원래 이곳 사람이 아니다. 수의사를 찾아 다른 마을에서 들어온 심리치료사도 이 마을 사람이 아니다. 두 사람은 공동체에서 자신의 몫이 없는 이방인들이다.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주던 동물들이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는 이방인들이 차지하고 있는 지금 상황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비정상적이다. 정상성을 회복하고자 수의사를 마을 밖으로 쫓아낼 궁리를 한다. <어느 마을>의 극 속 세계는 마을 구성원의 세계, 외부의 세계, 그리고 달걀의 세계가 있다. 의사는 어느 날 우연히 닭장에서 굴러 나온 달걀 하나를 발견하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채로 담겨있는 하나의 세상을 상상해 본다.

<어느 마을>의 극 속에는 마을, 마을 밖, 달걀의 내부, 그리고 또 하나 극장이라는 세계가 있다. 극장장을 맡은 강선자 배우가 극 중 인물이기도 연극원의 인물이기도 한 것처럼, 극장도 극 안에 있기도, 극 밖 실제 세상에 있기도 하다. 어떤 때에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마을이 되기도, 어떤 때에는 마을이라는 세트를 담고 있는 극장이라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어느 마을>의 세계는 서로의 내부에 있으면서, 서로의 외부에 있다.

극장장이 실수로 조명을 건드려 무대를 암전시키자 마을은 더는 해가 뜨지 않는 곳으로 변한다. 빛이 없는 이곳에서 세계의 경계가 점차 사라지지 시작한다. 여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은 역설적이게도 마을 공동체에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 심리치료사이다. 그는 닭의 마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사람들이 닭의 언어 ‘꼬끼오’를 쓰도록 만든다. 모두가 ‘꼬끼오’를 외치는 행위는 동물과 인간의 경계 허물기 이기도 하다. 심리치료사는 이번에는 객석의 관객들이 달걀 하나를 손에서 손으로 옮기고, 꼬끼오를 외치며 달걀에게 말을 걸게 한다. 이 순간 무대와 객석의 경계도 사라진다. 곧 희망이 닥칠 것 같지만 달걀은 결국 깨지고 만다. 달걀은 이 세상에 깨어나지 않기를 결심한 것이다.

한 공간에서 경험하는 다층의 시공간

<어느 마을>에는 다양한 세계가 중첩된 것처럼 다양한 시간이 뒤섞여 흐르고 있다. 달걀의 시간, 마을 사람들의 시간, 극장의 시간, 극장 밖의 시간이 있다. 배우와 관객들이 ‘꼬끼오’를 외치던 때에 이 시간은 한 장면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 공간들 역시 이 순간, 한 공간이 되었다.

<어느 마을>은 희곡 자체로서도 수많은 층위를 품고 있지만, 어떤 무대 위에 놓이는가, 출연진 구성을 어떻게 하는가, 배리어프리를 어떤 방식으로 구현할 것인가에 따라서 더욱 풍성해질 수 있는 극이다. 정성경 연출은 수많은 공연 요소를 무대 위에 펼쳐놓고 조합하면서 희곡이 본래 가지고 있던 공동체에 대한 진지한 사유에 깊이를 더했다. 좋은 공연임에도 풀리지 않은 한가지 질문이 있다. 이 희곡에서, 이 공연에서, 극장장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통제자인가, 방관자인가, 아니면 추상적인 예술을 구체적인 대상으로 치환시켜 놓은 것인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극장의 무기력함을 말하기 위함인가? 꼭 필요함을 강조하기 위함인가? 아마도 낭독이 아닌 온전한 공연이 무대에 오른다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한일공동연출 프로젝트 <어느 마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일본 새의극장 | 3월 4일(목)・5일(금) |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실험무대

어느 마을. 마을의 구성원들은 각자의 역할을 한다. 사람들이 일하면, 동물들은 생산하고 번식한다. 마을 사람들은 달걀을 주식으로 먹으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은 닭장 안의 닭들이 더는 알을 낳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이제 생존을 위해 새로운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 <어느 마을>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극창작플랫폼에서 일본 새의극장과 협업하여 2020~2021년 ‘한일공동연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한 공연이다. 일본과 한국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작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나 코로나19로 인해 한국과 일본이 각각 같은 대본으로 독해작품을 제작·공연하였다.

전강희

영문학과 연극학을 전공하고 예술현장에서 공연평론가, 드라마투르그, 축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다. 새로운 극적 언어를 탐색하고 장르 간 해체와 협업이 활발한 공연 만들기에 관심이 많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인으로 활동하며 여러 장르의 신진예술가 작업을 기록하고 소개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는 서울변방연극제 대표이자 프로그래밍 디렉터로서 축제를 만들었다. 또한 인천아트플랫폼, 우란문화재단, 광주 ACC 레지던시에 입주작가로 참여한 바 있다. 현재는 국립극단 창작프로젝트 <창작공감;연출> 운영위원으로 참여 중이다.

사진 제공.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창작플랫폼

2021년 6월 (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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