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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꾸는 예술공간① 시각예술

이슈 다름이 공존하는 고립 없는 공간

  • 김은설·김환·문승현 
  • 등록일 2021-06-02
  • 조회수2400

이슈

내가 꿈꾸는 예술공간① 시각예술

다름이 공존하는 고립 없는 공간

김은설·김환·문승현

장애 예술에서 배리어프리 공간은 늘 중요한 이슈 중의 하나였고, 휠체어 경사로를 비롯한 물리적 접근성뿐 아니라 다양한 감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장애 유형을 고려한 장치, 안전한 환경, 장소의 분위기까지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작업실·연습실·전시장·공연장 등 장애 예술인의 창작과 발표를 더욱 활성화하기 위한 이상적인 공간은 무엇을 갖추어야 할지 여섯 명의 예술가에게 물었다.

① 시각예술

       |       

② 공연예술

  • 김은설
    개인전 《풀실놀이》(2019) 《덤불숲》(2020) 등

  • 김환
    개인전 《아트랩 대전, 소수자를 바라보는 소수자》(2017) 《신체의 지각》(2019) 등

  • 문승현
    개인전 《침묵 속 이야기를 그리다》(2018) 기획전시 《흐르는 벽으로 대화하기》(2020) 등

창작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공간

글. 김은설 작가

국내에는 다양한 창작공간이 있다. 아직도 SNS를 보면 잘 몰랐던 공간이 남아있을 정도로 활발하다. 예술인에게 창작의 원동력 되어주고자 공간이 새롭게 세워졌다가 없어지기도 하고 또 끊임없이 생긴다. 우리에겐 참 좋은 일이다. 예술인이라면 누구나 편의성을 모두 잘 갖춘 곳이든, 높고 넓은 곳이든, 작은 공간이든, 작업하기 좋은 곳이든 그저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든든한 기분이 들지 않겠는가. 그러나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 장애인에게는 친절하지 않은 공간이 되기도 한다. 배리어프리 환경이 여전히 부족하다.

내가 경험한 대부분 공간이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물리적 접근성에 제약이 많았다. 특히 턱이 많아 휠체어를 타는 사람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였다. 나는 청각장애가 있어서 창작공간을 이용할 때면 의사소통을 걱정한다. 면접 보는 것부터, 선정된 후에도 회의나 워크숍을 할 때 의사소통을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한다. 그래서 장애 예술인은 지원신청서를 내기 전에 원하는 공간에서 활동하기에 제약이 없는지 치밀하게 조사하고 고려해야 한다.

장애 예술인이 창작활동을 하려면 접근성 편의 제공에 대해 요구할 수밖에 없는데, 요청 과정이 상당히 피로하다. 예술공간 운영진은 법정 의무교육으로 장애 인식개선 교육을 받는다지만 장애 유형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사람이 많다. 나는 먼저 문자통역이나 수어 통역이 왜 필요한지 자료를 첨부해가며 설명해야 했고, 예산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려줬다. 특히 문자통역은 기록이 남는다는 이유로 말하기 꺼리거나 보안을 이유로 끝나고 난 후 원본을 받아보지 못한 적도 있다. 되레 요약해주면 내가 놓친 맥락을 보지 못해서 아쉬운 적이 있었기에 왜 문자통역 원본을 요청하는지 설명해야 했다. 편의 제공을 위한 예산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너무 적어서 회의나 프로그램 참여 시 비용 부담을 해주기 어려워하는 곳이 많아 사비를 써가며 해결해왔다. 어떤 곳은 법적인 의무사항으로 장애인에게 편의 제공을 당연히 해줘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는데도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제공하지 않으려는 곳도 있었다. 심지어 장애 관련 공간에서도 그런 적이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겪은 장애 예술인은 언제나 설득하고 알릴 준비가 되어있어야 해서 늘 부담감과 피로감이 크고 버겁다.

모든 예술공간 운영자에게 장애인에게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 교육하고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도록 상세한 가이드를 배포할 필요가 있다. 기획단계나 전시·창작공간을 재구성할 때 등 나도 모르게 배제되는 경우가 생긴다. 또는 필요한 것을 요구하면 장애인은 언제나 도움받아야 하는 의존적인 사람으로 보거나, 장애인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폭언을 듣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장애 인식개선이 필요하다. 예술공간이 아니더라도 초·중·고등학교 의무교육 과목에 장애 인식개선이 들어가면 좋겠다. 그래야 모든 사람이 다양한 장애를 어떻게 대해야 하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장애인이 먼저 요청하지 않아도 준비되어있는 공간이라면 무거운 부담감을 덜어내고 비로소 나 자신과 작업에 집중할 수 있어서 자유로워진다. 장애 예술인은 비장애 예술인에 비해 많은 것을 신경 쓰며 산다. 그래서 우리가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부담을 덜 수 있으면 좋겠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고 편안한 환경이 갖추어져 있다면 장애 예술인의 창작활동도 활발하게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김은설, <개개인의 밀집>, 2020, 접착제와 나뭇가지, 가변크기

다양한 가치와 정체성이 공존하는 공간

글. 김환 작가

내 작업에 종종 등장하는 ‘프레임’ 장치는 어릴 적 병원 창문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다. 신체적 물리적으로 다가갈 수 없는 영역에 대한 동경이었고, 한정적 시각에 대한 욕망이었으며, 사회의 평범한 구성원이 되어 생존하고자 하는 이상이었다. 그렇게 꽤 오랜 기간 모든 장애인의 사회참여를 주장했었다. 자각하지 못했던 존재를 자의든 타의든 인식하게 된다면 궁극적으로 세상이 더 이롭게 변화할 것으로 생각해서였다.

지체장애가 있는 나에겐 장애인식에 대한 변화와 이동권에 대한 여러 시대적 변화가 이러한 가능성을 기대하게끔 하였다. 물론 제약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워지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전시를 기획할 때 공간과 작품에 대한 고민보다는 접근 ‘가능’ 여부가 우선시되곤 하기 때문이다. 휠체어 접근성 때문에 선뜻 전시에 초대하지 못하고 미안해하는 동료 작가들을 보면 기분이 씁쓸하다. 실제로 많은 대안 공간과 비상업성 전시 공간이 대부분 오래된 건물을 개조하거나 리모델링한 곳으로, 시설 접근성이 좋지 않다. 배리어프리가 갖춰진 공간은 대부분 새 건물이고, 이는 높은 대관료와 직결된다. 다만 이는 당사자의 문제가 아닌 시대적 문화 차이이고, 더 직접적으로는 자본과 연결된 문제이니 고민하진 않는다.

하지만 장애는 다양한 유형이 있다. 잠실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해서 다른 장애 유형의 작가들을 만나고 다른 레지던시 작가들과 협업하며 참으로 다양한 목적과 가치를 만났다. 그러면서 최근 모든 장애인의 사회참여에 관한 주장은 개인의 영역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이었음을, 다른 유형의 장애인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나 역시 ‘평범’에 관한 상대적 보편성의 가치 기준이 비장애인이었다. 지금 이상적으로 바라는 공간은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를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곳’ 정도의 막연함뿐이다. 다만 한 가지 변한 생각의 지점이 있다면,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 짓지 않는다는 생각이 더 철저하게 지켜져야 할 영역이라는 점이다. 서로 다른 지향성과 정체성이 명확한 창작공간이 더 생겨나 다양성이 공존할 수 있도록 연구되길 소망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지속적인 협업과 작업을 통해 가능한 영역과 불가능한 영역을 구분하고, 더 나아가 서로 다른 유형의 장애 간의 간극과 차이를 실험하고 이를 이용해 공존의 가치가 지속해서 탐구되길 희망한다.

마찬가지로 장애인 당사자도 기획자와 기업, 많은 문화재단이 기획한 다양한 프로그램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스스로가 자료가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예술공간 운영자는 좀 더 세심하게 창작자의 욕구와 차이점을 관찰하고 서포트 해주어야 한다. 특히나 장애 예술 전용공간이라면 더 섬세하고 조심하며 오래 소통할 각오가 되어있길 원한다. 그렇게 기획자와 작가가 소모성 재료가 아닌 서로 공존하는 존재인 걸 각인하게 되길 바란다.

항상 고민한다. 장애를 이해해주기를 바라기 이전에 장애 당사자들은 서로 다른 장애 유형을 이해하고 있는가. 다른 소수자들을 공감하고 공존하기를 바라고 있는가. 그리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며 얻는 권리는 그 가치가 정당하다고 해도 옳은 일인가.

김환, <창문틀 no.10 제주공항>, 2019, 캔버스에 아크릴·색연필·펜, 91.0x467.2cm

장애예술 레지던스의 조건

글. 문승현 작가

우리가 집을 이야기할 때 그곳은 나의 삶이 온전히 담기는 곳을 말한다. 집은 공간인 동시에 장소다. 집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많은 공간이 나와 다른 이들의 경험의 교차 속에서 장소의 기능을 풍부하게 만들어나간다. 어떤 공간이 아무리 잘 계획되고 튼튼하고 솜씨 있게 지어져서 아름답게 빛난다 해도 우리의 삶과 유리되어 존재한다면 장소가 되지 않는다. 말끔하게 복원된 고궁들에서, 화이트 큐브로 밀폐된 전시장에서, 우리는 그것이 우리 삶에 미치는 강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장소가 될 수 없는 이유를 묻지 않는다. 장소란 삶과 유리되지 않은 공간, 나의 경험에 의해서 때 묻고 낡고 닳아가는 과정 중에 있는 공간, 그곳을 밟는 숱한 발자국들이 켜켜이 쌓여가는 공간, 더운 숨과 연기와 음식 냄새가 배고 한 줄기 산들바람의 냄새가 그 위에 맴도는 공간이다. 우리가 거주하는 곳은 이런 장소이며 집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또한 커뮤니티다.

2000년부터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Artist-In-Residence)는 이런 장소와 커뮤니티의 맥락을 단순화시켰다. 그것은 마치 예술가와 예술행정가 사이의 계약에 의해서 커뮤니티의 장소와 공간을 예술가의 작업물로 치환하는 것이 공공예술의 본래 목표였던 듯 반응하는 것처럼, 커뮤니티의 존재가 선행되어야 하는 장소 중심적 레지던스도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본래 목표였던 듯 폐쇄적인 공간으로 바꾸어 놓는다. 일부 지자체 레지던스는 공유지나 유휴공간을 활용해 리모델링한 공간으로 테이트 모던의 후계를 자임하는 듯하지만, 그것이 왜 유휴공간인지를 말해주는 입지조건은 커뮤니티와 거리를 유지한 채 고고하다. 문제는, 장소를 재구축하는 과정에 커뮤니티의 모든 구성원의 접근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같은 폐쇄성은 작가들 사이에서 오르내리던 공공연한 비밀에서도 확인된다. 즉 유명 국공립 레지던스에 입주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작가로서 성공을 보장받는 루트라는 것이다. 그리고 일부 작가는 이 폐쇄적인 루트를 이용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러한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가 저마다의 특색으로 커뮤니티 안에서 작가를 지원한다는 명분은 닫힌 장소와 커뮤니티 안에서 그들의 세계로만 남을 뿐이다. 레지던스가 거주와 장소의 동시대적 문제를 간과하지 않으려면 장소에 대한 다른 차원의 감각과 문제를 공유하는 커뮤니티와 연대해야 한다. 그것은 화장실에서 시작하여 도로, 교통망, 이동수단, 도시기반시설의 무장애 환경구축, 실종 방지 긴급 안전망 설치에 이르기까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레지던스는 동시대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에 접근하고 있음을 감지해야 한다. 작가는 그들의 무대를 레지던스의 닫힌 장소 안에 둘 수 없다. 우리가 일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언제든 그 의미를 달리할 수 있다. 레지던스의 작가는 장소를 인지하는 다른 감각 세계의 차원으로 자신의 커뮤니티를 확장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이상적인 조합의 공간이나 장소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거나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책 입안 기관과 협의체는 거짓을 말하지 않아야 한다. 일원화된 장애 예술 레지던스 서비스는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일 중 하나다. 만약 장애 예술 레지던스가 개관한다면 앞서 지적한 사항들에 유념하며 공간과 장소, 장소와 커뮤니티의 정체성에 대한 오랜 숙고가 선행되어야 한다.

문승현, <저녁 어스름>(Early Evening), 2011, Oil on canvas, 97.0×130.3cm

김은설

어렸을 때 접했던 풀(접착제)의 붙이고 떼는 것에서 느낀 것을 형상화하여 페인팅, 드로잉,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현재 장애·비장애 예술인 협업 <듣다> 프로젝트에서 청각장애를 가졌지만 보청기로 듣는 소리가 과연 소리라고 볼 수 있는지 고민하면서 자신만의 감각을 번역하고자 작업하고 있다. 《풀실놀이》(2019) 《덤불숲》(2020) 등 개인전과 《스테레오 비전》(2020) 《퍼블릭아트 뉴히어로》(2021)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odd_dreamer@naver.com

김환

목원대학교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잠실창작스튜디오 10~12기 입주작가로 선정되었다. 《아트랩 대전, 소수자를 바라보는 소수자》(2017), 《신체의 지각》(2019) 등의 개인전을 통해 예술 세계를 펼쳤다. 초기 작업에서는 자신이 바라본 세상과 소속감에 대한 동경, 즉 개인의 시선을 위주로 표현하였다면, 최근에는 대상에 대한 인식, 대상과 맺는 관계 등에 집중한다. 타자를 통해 재인식되는 시각과 최초의 시각에 차이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에서 시작하여, 대상(풍경) 속에서 덧입힌 기억, 맺는 관계, ‘나’를 둘러싼 시각적·사회적 관계망을 이야기하며 차이점에 대하여 질문한다.
0306kh@gmail.com

문승현

미술작가, 기획자, 공연예술 연출가, 옐로우닷컴퍼니 대표. 협성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마음, 하늘을 바라보다》(2012), 《Soul Face》(2013), 《침묵 속 이야기를 그리다》(2018) 등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뇌성마비 시각예술작가의 모임 아티스트 그룹 ‘날’에서 활동했으며, 2011, 2012, 2016년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로 활동했다. 〈선의 리듬〉(2014) 〈점점 퍼지다〉(2016) 〈21° 11′〉(2018) 《흐르는 벽으로 대화하기》(2020) 등 여러 공연과 전시에서 퍼포머, 연출, 기획, 음악으로 참여했다. 제1회 이원형어워드상(2018), 2016 전국장애인도예공모전 올해의 작가상, 제6회 경향미술대전 입선 등 다수의 수상경력이 있으며, 저서로 시집 『고해소 앞에는 등불이 켜져 있다』가 있다.
sellars@nate.com

사진제공.김은설, 김환, 문승현

2021년 6월 (20호)

상세내용

이슈

내가 꿈꾸는 예술공간① 시각예술

다름이 공존하는 고립 없는 공간

김은설·김환·문승현

장애 예술에서 배리어프리 공간은 늘 중요한 이슈 중의 하나였고, 휠체어 경사로를 비롯한 물리적 접근성뿐 아니라 다양한 감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장애 유형을 고려한 장치, 안전한 환경, 장소의 분위기까지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작업실·연습실·전시장·공연장 등 장애 예술인의 창작과 발표를 더욱 활성화하기 위한 이상적인 공간은 무엇을 갖추어야 할지 여섯 명의 예술가에게 물었다.

① 시각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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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공연예술

  • 김은설
    개인전 《풀실놀이》(2019) 《덤불숲》(2020) 등

  • 김환
    개인전 《아트랩 대전, 소수자를 바라보는 소수자》(2017) 《신체의 지각》(2019) 등

  • 문승현
    개인전 《침묵 속 이야기를 그리다》(2018) 기획전시 《흐르는 벽으로 대화하기》(2020) 등

창작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공간

글. 김은설 작가

국내에는 다양한 창작공간이 있다. 아직도 SNS를 보면 잘 몰랐던 공간이 남아있을 정도로 활발하다. 예술인에게 창작의 원동력 되어주고자 공간이 새롭게 세워졌다가 없어지기도 하고 또 끊임없이 생긴다. 우리에겐 참 좋은 일이다. 예술인이라면 누구나 편의성을 모두 잘 갖춘 곳이든, 높고 넓은 곳이든, 작은 공간이든, 작업하기 좋은 곳이든 그저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든든한 기분이 들지 않겠는가. 그러나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 장애인에게는 친절하지 않은 공간이 되기도 한다. 배리어프리 환경이 여전히 부족하다.

내가 경험한 대부분 공간이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물리적 접근성에 제약이 많았다. 특히 턱이 많아 휠체어를 타는 사람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였다. 나는 청각장애가 있어서 창작공간을 이용할 때면 의사소통을 걱정한다. 면접 보는 것부터, 선정된 후에도 회의나 워크숍을 할 때 의사소통을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한다. 그래서 장애 예술인은 지원신청서를 내기 전에 원하는 공간에서 활동하기에 제약이 없는지 치밀하게 조사하고 고려해야 한다.

장애 예술인이 창작활동을 하려면 접근성 편의 제공에 대해 요구할 수밖에 없는데, 요청 과정이 상당히 피로하다. 예술공간 운영진은 법정 의무교육으로 장애 인식개선 교육을 받는다지만 장애 유형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사람이 많다. 나는 먼저 문자통역이나 수어 통역이 왜 필요한지 자료를 첨부해가며 설명해야 했고, 예산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려줬다. 특히 문자통역은 기록이 남는다는 이유로 말하기 꺼리거나 보안을 이유로 끝나고 난 후 원본을 받아보지 못한 적도 있다. 되레 요약해주면 내가 놓친 맥락을 보지 못해서 아쉬운 적이 있었기에 왜 문자통역 원본을 요청하는지 설명해야 했다. 편의 제공을 위한 예산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너무 적어서 회의나 프로그램 참여 시 비용 부담을 해주기 어려워하는 곳이 많아 사비를 써가며 해결해왔다. 어떤 곳은 법적인 의무사항으로 장애인에게 편의 제공을 당연히 해줘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는데도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제공하지 않으려는 곳도 있었다. 심지어 장애 관련 공간에서도 그런 적이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겪은 장애 예술인은 언제나 설득하고 알릴 준비가 되어있어야 해서 늘 부담감과 피로감이 크고 버겁다.

모든 예술공간 운영자에게 장애인에게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 교육하고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도록 상세한 가이드를 배포할 필요가 있다. 기획단계나 전시·창작공간을 재구성할 때 등 나도 모르게 배제되는 경우가 생긴다. 또는 필요한 것을 요구하면 장애인은 언제나 도움받아야 하는 의존적인 사람으로 보거나, 장애인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폭언을 듣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장애 인식개선이 필요하다. 예술공간이 아니더라도 초·중·고등학교 의무교육 과목에 장애 인식개선이 들어가면 좋겠다. 그래야 모든 사람이 다양한 장애를 어떻게 대해야 하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장애인이 먼저 요청하지 않아도 준비되어있는 공간이라면 무거운 부담감을 덜어내고 비로소 나 자신과 작업에 집중할 수 있어서 자유로워진다. 장애 예술인은 비장애 예술인에 비해 많은 것을 신경 쓰며 산다. 그래서 우리가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부담을 덜 수 있으면 좋겠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고 편안한 환경이 갖추어져 있다면 장애 예술인의 창작활동도 활발하게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김은설, <개개인의 밀집>, 2020, 접착제와 나뭇가지, 가변크기

다양한 가치와 정체성이 공존하는 공간

글. 김환 작가

내 작업에 종종 등장하는 ‘프레임’ 장치는 어릴 적 병원 창문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다. 신체적 물리적으로 다가갈 수 없는 영역에 대한 동경이었고, 한정적 시각에 대한 욕망이었으며, 사회의 평범한 구성원이 되어 생존하고자 하는 이상이었다. 그렇게 꽤 오랜 기간 모든 장애인의 사회참여를 주장했었다. 자각하지 못했던 존재를 자의든 타의든 인식하게 된다면 궁극적으로 세상이 더 이롭게 변화할 것으로 생각해서였다.

지체장애가 있는 나에겐 장애인식에 대한 변화와 이동권에 대한 여러 시대적 변화가 이러한 가능성을 기대하게끔 하였다. 물론 제약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워지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전시를 기획할 때 공간과 작품에 대한 고민보다는 접근 ‘가능’ 여부가 우선시되곤 하기 때문이다. 휠체어 접근성 때문에 선뜻 전시에 초대하지 못하고 미안해하는 동료 작가들을 보면 기분이 씁쓸하다. 실제로 많은 대안 공간과 비상업성 전시 공간이 대부분 오래된 건물을 개조하거나 리모델링한 곳으로, 시설 접근성이 좋지 않다. 배리어프리가 갖춰진 공간은 대부분 새 건물이고, 이는 높은 대관료와 직결된다. 다만 이는 당사자의 문제가 아닌 시대적 문화 차이이고, 더 직접적으로는 자본과 연결된 문제이니 고민하진 않는다.

하지만 장애는 다양한 유형이 있다. 잠실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해서 다른 장애 유형의 작가들을 만나고 다른 레지던시 작가들과 협업하며 참으로 다양한 목적과 가치를 만났다. 그러면서 최근 모든 장애인의 사회참여에 관한 주장은 개인의 영역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이었음을, 다른 유형의 장애인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나 역시 ‘평범’에 관한 상대적 보편성의 가치 기준이 비장애인이었다. 지금 이상적으로 바라는 공간은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를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곳’ 정도의 막연함뿐이다. 다만 한 가지 변한 생각의 지점이 있다면,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 짓지 않는다는 생각이 더 철저하게 지켜져야 할 영역이라는 점이다. 서로 다른 지향성과 정체성이 명확한 창작공간이 더 생겨나 다양성이 공존할 수 있도록 연구되길 소망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지속적인 협업과 작업을 통해 가능한 영역과 불가능한 영역을 구분하고, 더 나아가 서로 다른 유형의 장애 간의 간극과 차이를 실험하고 이를 이용해 공존의 가치가 지속해서 탐구되길 희망한다.

마찬가지로 장애인 당사자도 기획자와 기업, 많은 문화재단이 기획한 다양한 프로그램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스스로가 자료가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예술공간 운영자는 좀 더 세심하게 창작자의 욕구와 차이점을 관찰하고 서포트 해주어야 한다. 특히나 장애 예술 전용공간이라면 더 섬세하고 조심하며 오래 소통할 각오가 되어있길 원한다. 그렇게 기획자와 작가가 소모성 재료가 아닌 서로 공존하는 존재인 걸 각인하게 되길 바란다.

항상 고민한다. 장애를 이해해주기를 바라기 이전에 장애 당사자들은 서로 다른 장애 유형을 이해하고 있는가. 다른 소수자들을 공감하고 공존하기를 바라고 있는가. 그리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며 얻는 권리는 그 가치가 정당하다고 해도 옳은 일인가.

김환, <창문틀 no.10 제주공항>, 2019, 캔버스에 아크릴·색연필·펜, 91.0x467.2cm

장애예술 레지던스의 조건

글. 문승현 작가

우리가 집을 이야기할 때 그곳은 나의 삶이 온전히 담기는 곳을 말한다. 집은 공간인 동시에 장소다. 집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많은 공간이 나와 다른 이들의 경험의 교차 속에서 장소의 기능을 풍부하게 만들어나간다. 어떤 공간이 아무리 잘 계획되고 튼튼하고 솜씨 있게 지어져서 아름답게 빛난다 해도 우리의 삶과 유리되어 존재한다면 장소가 되지 않는다. 말끔하게 복원된 고궁들에서, 화이트 큐브로 밀폐된 전시장에서, 우리는 그것이 우리 삶에 미치는 강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장소가 될 수 없는 이유를 묻지 않는다. 장소란 삶과 유리되지 않은 공간, 나의 경험에 의해서 때 묻고 낡고 닳아가는 과정 중에 있는 공간, 그곳을 밟는 숱한 발자국들이 켜켜이 쌓여가는 공간, 더운 숨과 연기와 음식 냄새가 배고 한 줄기 산들바람의 냄새가 그 위에 맴도는 공간이다. 우리가 거주하는 곳은 이런 장소이며 집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또한 커뮤니티다.

2000년부터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Artist-In-Residence)는 이런 장소와 커뮤니티의 맥락을 단순화시켰다. 그것은 마치 예술가와 예술행정가 사이의 계약에 의해서 커뮤니티의 장소와 공간을 예술가의 작업물로 치환하는 것이 공공예술의 본래 목표였던 듯 반응하는 것처럼, 커뮤니티의 존재가 선행되어야 하는 장소 중심적 레지던스도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본래 목표였던 듯 폐쇄적인 공간으로 바꾸어 놓는다. 일부 지자체 레지던스는 공유지나 유휴공간을 활용해 리모델링한 공간으로 테이트 모던의 후계를 자임하는 듯하지만, 그것이 왜 유휴공간인지를 말해주는 입지조건은 커뮤니티와 거리를 유지한 채 고고하다. 문제는, 장소를 재구축하는 과정에 커뮤니티의 모든 구성원의 접근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같은 폐쇄성은 작가들 사이에서 오르내리던 공공연한 비밀에서도 확인된다. 즉 유명 국공립 레지던스에 입주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작가로서 성공을 보장받는 루트라는 것이다. 그리고 일부 작가는 이 폐쇄적인 루트를 이용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러한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가 저마다의 특색으로 커뮤니티 안에서 작가를 지원한다는 명분은 닫힌 장소와 커뮤니티 안에서 그들의 세계로만 남을 뿐이다. 레지던스가 거주와 장소의 동시대적 문제를 간과하지 않으려면 장소에 대한 다른 차원의 감각과 문제를 공유하는 커뮤니티와 연대해야 한다. 그것은 화장실에서 시작하여 도로, 교통망, 이동수단, 도시기반시설의 무장애 환경구축, 실종 방지 긴급 안전망 설치에 이르기까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레지던스는 동시대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에 접근하고 있음을 감지해야 한다. 작가는 그들의 무대를 레지던스의 닫힌 장소 안에 둘 수 없다. 우리가 일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언제든 그 의미를 달리할 수 있다. 레지던스의 작가는 장소를 인지하는 다른 감각 세계의 차원으로 자신의 커뮤니티를 확장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이상적인 조합의 공간이나 장소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거나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책 입안 기관과 협의체는 거짓을 말하지 않아야 한다. 일원화된 장애 예술 레지던스 서비스는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일 중 하나다. 만약 장애 예술 레지던스가 개관한다면 앞서 지적한 사항들에 유념하며 공간과 장소, 장소와 커뮤니티의 정체성에 대한 오랜 숙고가 선행되어야 한다.

문승현, <저녁 어스름>(Early Evening), 2011, Oil on canvas, 97.0×130.3cm

김은설

어렸을 때 접했던 풀(접착제)의 붙이고 떼는 것에서 느낀 것을 형상화하여 페인팅, 드로잉,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현재 장애·비장애 예술인 협업 <듣다> 프로젝트에서 청각장애를 가졌지만 보청기로 듣는 소리가 과연 소리라고 볼 수 있는지 고민하면서 자신만의 감각을 번역하고자 작업하고 있다. 《풀실놀이》(2019) 《덤불숲》(2020) 등 개인전과 《스테레오 비전》(2020) 《퍼블릭아트 뉴히어로》(2021)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odd_dreamer@naver.com

김환

목원대학교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잠실창작스튜디오 10~12기 입주작가로 선정되었다. 《아트랩 대전, 소수자를 바라보는 소수자》(2017), 《신체의 지각》(2019) 등의 개인전을 통해 예술 세계를 펼쳤다. 초기 작업에서는 자신이 바라본 세상과 소속감에 대한 동경, 즉 개인의 시선을 위주로 표현하였다면, 최근에는 대상에 대한 인식, 대상과 맺는 관계 등에 집중한다. 타자를 통해 재인식되는 시각과 최초의 시각에 차이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에서 시작하여, 대상(풍경) 속에서 덧입힌 기억, 맺는 관계, ‘나’를 둘러싼 시각적·사회적 관계망을 이야기하며 차이점에 대하여 질문한다.
0306kh@gmail.com

문승현

미술작가, 기획자, 공연예술 연출가, 옐로우닷컴퍼니 대표. 협성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마음, 하늘을 바라보다》(2012), 《Soul Face》(2013), 《침묵 속 이야기를 그리다》(2018) 등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뇌성마비 시각예술작가의 모임 아티스트 그룹 ‘날’에서 활동했으며, 2011, 2012, 2016년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로 활동했다. 〈선의 리듬〉(2014) 〈점점 퍼지다〉(2016) 〈21° 11′〉(2018) 《흐르는 벽으로 대화하기》(2020) 등 여러 공연과 전시에서 퍼포머, 연출, 기획, 음악으로 참여했다. 제1회 이원형어워드상(2018), 2016 전국장애인도예공모전 올해의 작가상, 제6회 경향미술대전 입선 등 다수의 수상경력이 있으며, 저서로 시집 『고해소 앞에는 등불이 켜져 있다』가 있다.
sellars@nate.com

사진제공.김은설, 김환, 문승현

2021년 6월 (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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