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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 이주승 <두 개의 시선>

리뷰 가장 보통의 언어 속으로

  • 구정화 경기도미술관 학예사
  • 등록일 2020-09-30
  • 조회수493

리뷰

이주호 & 이주승 <두 개의 시선>

가장 보통의 언어 속으로

구정화 경기도미술관 학예사

한때 점자에 매료된 적이 있었음을 고백하며 이 글을 시작하려 한다. 오랜 세월 하나의 모국어로 말하고 생각하고 읽고 쓰며 구축한 세계가 단숨에 날아가던 그 순간. 얼마나 그 언어가 점유하는 공간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 났던가. 그곳에서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들로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쌓여서는 나 같은 이방인은 순식간에 그들의 시선 밖으로 밀쳐지곤 했다. 몸짓으로 말하고 손으로 보고 듣는 세상이 어떨지 나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 낯섦만으로도 찬란하던 장애인 공동체 예술가들과 작품들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그렇게 나를 홀려 이끌었다.

지난 8월 30일에 막을 내린 백남준아트센터 기획전 《침묵의 미래 :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 순간》은 오래전 나를 홀린 낯선 언어들로 가득한 침묵의 세계로 우리를 초청한다. 전시 큐레이터는 무한한 성장만을 향하는 자본주의적 상상력에서 깨어나 점차 강고해지는 양극화와 다름에 대한 차별에 주목하고자 다양한 국적의 작가 8명의 11작품을 초청하여 전시를 꾸렸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지금은 존재하지만 미래에는 사라질지도 모르는 수어, 촉각, 혹은 몸짓에 기반한 인간 사회의 다채로운 언어들을 경험하게 된다.

점자가 새겨진 5만 개의 레고 조각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벽화 <오즈의 마법사>(문재원)에서 시작되는 전시는 이제는 사라져 듣기 어려워진 제주 방언으로 불리는 <이어도사나>의 노랫가락을 들려주고 손뼉으로 만들어진 음악, 손으로 추는 춤이 담긴 영상을 통해 신체로 하는 대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외국어로 영어를 사용하며 빚어지는 오해의 순간들에 주목하거나 언어의 물질성을 탐색하며 번역의 불가능성에 다가가고 표준어 사용자의 받아쓰기 화면을 통해 시간 속에서 소멸해가는 방언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한다.

갑작스럽게 마주한 ‘코로나19’라는 재난의 상황은 컴퓨터 화면을 그저 눈으로 보고 복사하며 이어붙이고 배포하는 것이 다인 디지털화 된 우리의 일상을 가속화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느끼는 이 두려움에 주목한 <커렌트레이어즈 :포토샵핑적인 삶의 매너>(염지혜)는 소통한다는 것이 인간에게 부여한 경이로움을 환기하며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듯하다. 이 전시가 문을 열기로 약속했던 2월 27일 즈음부터 우리 사회는 전 지구적 전염병의 물결에 휩쓸리며 비대면과 비접촉이 뉴노멀이 되어가는 암담한 상황 속에 놓여 있다. 그래서일까? 코로나19의 와중에 잠시 열린 미술관을 다녀간 관람객들은 이주호·이주승 형제의 다큐멘터리 <두 개의 시선>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이들의 이야기에 오랫동안 귀 기울였다고 한다.

<두 개의 시선>은 《침묵의 미래》가 주목한 다채로운 언어의 세계 속에서 한편으로는 두려움과 암울함의 전망을 뒤로 한 채 지극히 평범하지만 결코 평온하지 않은 청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상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이주승은 선천적 시각장애를 가진 영화 음악가 지망생으로 졸업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형인 이주호 감독과의 협업을 통해 한편의 짧은 영상작품을 완성하였다. 대부분의 시나리오를 이주승이 쓰고 삽입된 음악을 만들었으며 본인이 직접 출연한 <두 개의 시선>은 한 시각장애인 청년이 경험한 한국사회의 장애에 대한 차별과 혐오 속에서 그가 음악이라는 언어를 발견하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가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영상에 담긴 주인공은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걷고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작곡을 하는 등 이제 막 꿈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 평범한 젊은이의 일상을 살아간다. 그에게 시각장애는 서로 다른 시력의 차이로 인해 겪는 불편함의 원인일 뿐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가 작곡한 음악을 지휘하기 위해 학교의 동료들 앞에 섰을 때 비로소 그가 가진 불편함에 대해 주의를 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가 이 평온함에 도달하기까지 겪었던 차별의 시선은 피곤함이 묻어나는 이주승의 독백과 애니메이션으로 그려진 그의 과거 장면으로 인해 알아차리게 된다. 자신의 장애를 발견한 사람들이 자신을 도와주려고 하는 마음을 그가 얼마나 불편해하는지. 그 불편함을 피하고자 친구들과 자신의 장애를 주제로 유머를 던지지만 금세 그는 자신을 학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고백한다. 이주승이 거리를 걷을 때면 사람들은 다가와 그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고 또 그에게서 용기를 얻는다고 말한다. 이주승은 중얼거린다. “뭔 소리야. 나는 그저 걷고 있을 뿐인데….”

그는 자신이 보는 방식이 자신에게는 보통임을 항변한다. 그러나 장애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차별과 동정의 시선은 현저히 다른 두 눈의 시력으로 세상을 보는 이주승의 시선과 함께 엄연히 존재한다. 카메라의 앵글을 통해 겨우 바라보게 된 동생의 이야기를 형 이주호는 어떻게 느꼈을까? 이주호 감독은 동생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음을 고백한다. 화면에 담긴 평온한 일상 뒤의 갈등과 고통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너무나 평온해 보이는 그의 일상이 담긴 화면과 달리 빠른 흐름으로 전개되어가던 이주승의 음악이 아주 오랫동안 나의 귀가를 맴돌았다. 문득 이주승이 차이 나는 눈으로 마주하는 세상과 그 속에서 발견한 그만의 언어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서도 나와 다른 존재를 인식하고 관계를 맺기 위해서도 침묵의 순간은 필요하다. 코로나19가 견인하는 잠시 멈춤의 침묵 속에서 숨을 고르고 눈을 감은 채 그의 음악을 경청해보기를 권한다.

이주호 & 이주승 <두 개의 시선> 스틸컷(2020, 싱글비디오채널, 10분 50초, 백남준아트센터 커미션)

두 개의 시선

이주호 & 이주승, 2020.2.27.~ 8.30. 백남준아트센터 제2전시실

이주호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2014년부터 영화연출을 시작했다. 이주승은 영화 음악을 공부하고 오케스트라부터 재즈까지 다양한 음악을 짓는 작곡가이자 기타연주자이다. 이주호 & 이주승 형제는 《침묵의 미래: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 순간》 전시에서 백남준아트센터 커미션으로 제작한 영상 <두 개의 시선>을 처음 선보였다. 선천적 시각장애가 있는 영화음악가 이주승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형인 이주호 감독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상이다.

구정화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쌈지스페이스 큐레이터를 거쳐 2004년부터 경기문화재단에 재직하며 예술지원사업과 공공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장애인예술 지원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들의 눈을 통해 일본 에이블아트의 발원지인 민들레의 집을 방문하고 협력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삶과 예술의 관계를 배우고 깨달았다. 2011년부터 백남준아트센터와 경기도미술관에서 전시와 공공프로그램을 기획하며 매개로서의 예술과 그 공공적 가치를 묻고 동시대인들과 나누고자 노력하고 있다.

참고자료. 김윤서, 「침묵의 미래,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 순간」, 『침묵의 미래』, (백남준아트센터, 2020)
사진 제공. 백남준아트센터
사진 촬영. 박형렬

2020년 09월 (13호)

상세내용

리뷰

이주호 & 이주승 <두 개의 시선>

가장 보통의 언어 속으로

구정화 경기도미술관 학예사

한때 점자에 매료된 적이 있었음을 고백하며 이 글을 시작하려 한다. 오랜 세월 하나의 모국어로 말하고 생각하고 읽고 쓰며 구축한 세계가 단숨에 날아가던 그 순간. 얼마나 그 언어가 점유하는 공간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 났던가. 그곳에서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들로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쌓여서는 나 같은 이방인은 순식간에 그들의 시선 밖으로 밀쳐지곤 했다. 몸짓으로 말하고 손으로 보고 듣는 세상이 어떨지 나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 낯섦만으로도 찬란하던 장애인 공동체 예술가들과 작품들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그렇게 나를 홀려 이끌었다.

지난 8월 30일에 막을 내린 백남준아트센터 기획전 《침묵의 미래 :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 순간》은 오래전 나를 홀린 낯선 언어들로 가득한 침묵의 세계로 우리를 초청한다. 전시 큐레이터는 무한한 성장만을 향하는 자본주의적 상상력에서 깨어나 점차 강고해지는 양극화와 다름에 대한 차별에 주목하고자 다양한 국적의 작가 8명의 11작품을 초청하여 전시를 꾸렸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지금은 존재하지만 미래에는 사라질지도 모르는 수어, 촉각, 혹은 몸짓에 기반한 인간 사회의 다채로운 언어들을 경험하게 된다.

점자가 새겨진 5만 개의 레고 조각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벽화 <오즈의 마법사>(문재원)에서 시작되는 전시는 이제는 사라져 듣기 어려워진 제주 방언으로 불리는 <이어도사나>의 노랫가락을 들려주고 손뼉으로 만들어진 음악, 손으로 추는 춤이 담긴 영상을 통해 신체로 하는 대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외국어로 영어를 사용하며 빚어지는 오해의 순간들에 주목하거나 언어의 물질성을 탐색하며 번역의 불가능성에 다가가고 표준어 사용자의 받아쓰기 화면을 통해 시간 속에서 소멸해가는 방언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한다.

갑작스럽게 마주한 ‘코로나19’라는 재난의 상황은 컴퓨터 화면을 그저 눈으로 보고 복사하며 이어붙이고 배포하는 것이 다인 디지털화 된 우리의 일상을 가속화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느끼는 이 두려움에 주목한 <커렌트레이어즈 :포토샵핑적인 삶의 매너>(염지혜)는 소통한다는 것이 인간에게 부여한 경이로움을 환기하며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듯하다. 이 전시가 문을 열기로 약속했던 2월 27일 즈음부터 우리 사회는 전 지구적 전염병의 물결에 휩쓸리며 비대면과 비접촉이 뉴노멀이 되어가는 암담한 상황 속에 놓여 있다. 그래서일까? 코로나19의 와중에 잠시 열린 미술관을 다녀간 관람객들은 이주호·이주승 형제의 다큐멘터리 <두 개의 시선>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이들의 이야기에 오랫동안 귀 기울였다고 한다.

<두 개의 시선>은 《침묵의 미래》가 주목한 다채로운 언어의 세계 속에서 한편으로는 두려움과 암울함의 전망을 뒤로 한 채 지극히 평범하지만 결코 평온하지 않은 청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상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이주승은 선천적 시각장애를 가진 영화 음악가 지망생으로 졸업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형인 이주호 감독과의 협업을 통해 한편의 짧은 영상작품을 완성하였다. 대부분의 시나리오를 이주승이 쓰고 삽입된 음악을 만들었으며 본인이 직접 출연한 <두 개의 시선>은 한 시각장애인 청년이 경험한 한국사회의 장애에 대한 차별과 혐오 속에서 그가 음악이라는 언어를 발견하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가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영상에 담긴 주인공은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걷고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작곡을 하는 등 이제 막 꿈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 평범한 젊은이의 일상을 살아간다. 그에게 시각장애는 서로 다른 시력의 차이로 인해 겪는 불편함의 원인일 뿐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가 작곡한 음악을 지휘하기 위해 학교의 동료들 앞에 섰을 때 비로소 그가 가진 불편함에 대해 주의를 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가 이 평온함에 도달하기까지 겪었던 차별의 시선은 피곤함이 묻어나는 이주승의 독백과 애니메이션으로 그려진 그의 과거 장면으로 인해 알아차리게 된다. 자신의 장애를 발견한 사람들이 자신을 도와주려고 하는 마음을 그가 얼마나 불편해하는지. 그 불편함을 피하고자 친구들과 자신의 장애를 주제로 유머를 던지지만 금세 그는 자신을 학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고백한다. 이주승이 거리를 걷을 때면 사람들은 다가와 그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고 또 그에게서 용기를 얻는다고 말한다. 이주승은 중얼거린다. “뭔 소리야. 나는 그저 걷고 있을 뿐인데….”

그는 자신이 보는 방식이 자신에게는 보통임을 항변한다. 그러나 장애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차별과 동정의 시선은 현저히 다른 두 눈의 시력으로 세상을 보는 이주승의 시선과 함께 엄연히 존재한다. 카메라의 앵글을 통해 겨우 바라보게 된 동생의 이야기를 형 이주호는 어떻게 느꼈을까? 이주호 감독은 동생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음을 고백한다. 화면에 담긴 평온한 일상 뒤의 갈등과 고통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너무나 평온해 보이는 그의 일상이 담긴 화면과 달리 빠른 흐름으로 전개되어가던 이주승의 음악이 아주 오랫동안 나의 귀가를 맴돌았다. 문득 이주승이 차이 나는 눈으로 마주하는 세상과 그 속에서 발견한 그만의 언어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서도 나와 다른 존재를 인식하고 관계를 맺기 위해서도 침묵의 순간은 필요하다. 코로나19가 견인하는 잠시 멈춤의 침묵 속에서 숨을 고르고 눈을 감은 채 그의 음악을 경청해보기를 권한다.

이주호 & 이주승 <두 개의 시선> 스틸컷(2020, 싱글비디오채널, 10분 50초, 백남준아트센터 커미션)

두 개의 시선

이주호 & 이주승, 2020.2.27.~ 8.30. 백남준아트센터 제2전시실

이주호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2014년부터 영화연출을 시작했다. 이주승은 영화 음악을 공부하고 오케스트라부터 재즈까지 다양한 음악을 짓는 작곡가이자 기타연주자이다. 이주호 & 이주승 형제는 《침묵의 미래: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 순간》 전시에서 백남준아트센터 커미션으로 제작한 영상 <두 개의 시선>을 처음 선보였다. 선천적 시각장애가 있는 영화음악가 이주승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형인 이주호 감독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상이다.

구정화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쌈지스페이스 큐레이터를 거쳐 2004년부터 경기문화재단에 재직하며 예술지원사업과 공공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장애인예술 지원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들의 눈을 통해 일본 에이블아트의 발원지인 민들레의 집을 방문하고 협력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삶과 예술의 관계를 배우고 깨달았다. 2011년부터 백남준아트센터와 경기도미술관에서 전시와 공공프로그램을 기획하며 매개로서의 예술과 그 공공적 가치를 묻고 동시대인들과 나누고자 노력하고 있다.

참고자료. 김윤서, 「침묵의 미래,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 순간」, 『침묵의 미래』, (백남준아트센터, 2020)
사진 제공. 백남준아트센터
사진 촬영. 박형렬

2020년 09월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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