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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택트 시대의 공연예술 국제교류

이슈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 성무량 공연기획자
  • 등록일 2020-09-30
  • 조회수582

한 치 앞도 예측하기 힘든 요즈음에 국제교류를 논하려니 왠지 스스로 움츠러든다. 보통 공연예술에서 국제교류는 여력이 있을 때 하는 장식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그 의미를 되짚어 보려 한다. 혹여 여기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이다.

내 커리어의 시작은 어설픈 국제교류로 연결된다. 7월의 땡볕에도 불구하고 골목골목 가득 차 있던 아비뇽(Avignon)의 예술가들 모습이 생생하다. 말로만 듣던 아비뇽 교황청 마당은 수천 명의 사람이 밤마다 모여 새벽까지 공연을 보고 발을 구르며 배우들을 응원했다. 공연을 보고 그 감흥을 누르지 못해 새벽달을 보며 골목을 몇 바퀴 돌아 겨우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또 프랑스 소도시 렌느(Renne)에서 만난 공연은 나에게 예술을 본다는 것에 대한 원초적인 경험을 안겨 주었다. 11월의 밤거리를 뚫고 도착한 텐트 앞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언뜻 봐도 외국인은 나 혼자였다. 프랑스인들 틈에 끼어 입장을 기다리다 텐트에 불이 켜지고,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섰다. 조그마한 3층짜리 건물 높이의 텐트에 관람석은 맨 꼭대기였고 우리는 동그랗게 서서 5미터 아래 무대를 내려다보았다. 이윽고 불이 꺼지고 공연이 시작되자 어둠 속에서 광대 한 명과 쥐 한 마리가 등장했다. 나는 기겁을 하며 옆에 있는 낯선 사람에게 꼭 매달렸다. 저게 정말 쥐냐고, 설마 이 기둥을 타고 위로 올라오진 않겠지 하며. 알아들었는지 모를 그는 허허 웃으며 나를 등 뒤로 숨겨주었다. 반쯤 감은 눈으로 공연을 끝까지 본 나는 50여 명의 관객과 마술 같은 순간을 공유했다.

지금이야 ‘라떼’로 회상될 에피소드지만 당시의 얘기를 좀 더 해보겠다. 15시간 비행기 이코노미석에 몸을 구기고 쪽잠을 자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공연시간에 맞춰 극장으로 달려간다. 수많은 도시를 오갔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호텔과 극장가는 길이 전부였다. 아니 거기에서 만난 사람들의 눈빛과 숨소리 그리고 그 공간의 느낌(ambience)이었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한국으로 돌아오면 그런 냄새와 기억들에 의존해서 길고 험난한 프로젝트를 이어간다. 팩스로 교류하던 시절, 문제가 생기면 답신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국제전화를 할 수도 있지만, 시차와 요금 때문에 급박한 사안이 아니면 그쪽 사정이 나아지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팩스 머신에 ‘지잉’ 하고 두 장짜리 수신이 오면 안도하며 계약서를 쓰고 국제 우편을 보냈다. 요즘 기획자들이 들으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냐고 타박할지 모른다. 불과 십수 년 전 이야기다. 그만큼 모바일 디바이스의 변화가 급속했고, 한국은 새로운 문명의 이기들을 최전선에서 이용하며 국제교류의 장을 빠르게 이어갔다.

다시금 생각해본다. 그 시절 국제교류의 주요한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지금처럼 온라인에 거의 모든 정보가 나와 있고 스카이프(skype)를 수시로 하는 시대 말고, 전화나 팩스로 의중을 전하고 조율하던 시대는 언뜻 덜 효율적으로 보인다. 일견 그런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에 줌(zoom)을 수시로 하는 나는 그 시절에 비해 몇 배로 지친다. 회의를 했는데도 뭔가가 찜찜하고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한참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다음 줌을 기다린다. 줌 마이크에 들려온 그녀의 목소리에 피곤함이 묻었던 것 같기도 하고 짜증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제기랄… 줌 회의 전에 준비 줌을 하고, 줌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음 줌 회의를 준비하고… 줌 속에 갇혀서 줌아웃될 것 같다. 거대한 수조 속에 갇혀서 말을 하는데, 들리지 않는 느낌이다. 수조를 깨고 나가서 진짜 바닷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고 만나고 싶다. 이놈의 수조 속에선 누가 두드리면 금방 쳐다보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고, 프로젝트가 맘에 들지 않아도 대놓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다들 작은 수조에 갇혀서 산소를 나눠 쉬고 있는 처지를 이해하니까.

얼마 전에는 호주의 백투백시어터(Back to Back Theatre)와 온라인 토크를 진행했다. 행사 전날 테크니컬 리허설뿐만 아니라 콘텐츠 리허설까지 거의 2시간을 연습했다. 호주와 한국 양쪽 참가자들의 어색함을 중재하는 극한 직업을 경험한 것이다. 악수를 시킬 수도, 농담을 하기도, 눈으로 찡긋 신호를 보내기도 쉽지 않았다. 타이밍은 어색하게 빗나가고, 기침 소리를 낼 수 없는 조명 아래서 모두 하고 싶은 말을 반쯤은 삼키며 모니터 속 상대방의 반응을 살핀다.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3시간을 꽉 채우고, 카메라가 꺼진 뒤에야 작은 모니터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숨 가쁘게 이어간 동시통역 중간 중간에 숨어있는 우리의 진심이 서로 닿았기를 바라며 다음 줌 회의를 잡았다.

국제교류는 (국내도 마찬가지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에 기반해서 거리, 문화, 제도의 간극을 뛰어넘어 존재한다. 같이 마셨던 와인 잔의 온도와 그녀의 눈빛에 비친 열망을 기억하며 이후에 이어지는 힘든 과정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냄새와 느낌이 가능하지 않은 줌 속에서 우리는 서로 웃고 있지만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사소한 오해들을 피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과 집중을 한다. 늘 차선을 찾는 꼴이다. 코로나가 물러가면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마도 그 시간의 소중함은 그 전과 비교해서 몇 곱절이 될 것이다. 그전에는 알지 못했던 비말의 존재가 새삼 위대하게 다가온다. 지금이야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천덕꾸러기지만, 동시에 잠재성을 실현해주는 힘이 있는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며 침방울을 공중에 튀겨본다. 입이 다 마르기 전에, 자유롭게 다시 만나길 기대하며 컴퓨터를 켠다. 두 개의 줌 초청이 보인다. 생명줄이다. 아직은 물밑이지만 이것마저도 없다면 숨쉬기가 더 힘들 것 같다.

성무량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일을 시작하여 대전예술의전당을 거쳐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최근의 관심사는 컨템퍼러리와 장애 이슈를 중심으로 이전의 세상을 다시 바라보기이다.
mooryang@hotmail.com

메인사진.탭 톡 온라인 토크(2020.7.30.)

2020년 09월 (13호)

상세내용

한 치 앞도 예측하기 힘든 요즈음에 국제교류를 논하려니 왠지 스스로 움츠러든다. 보통 공연예술에서 국제교류는 여력이 있을 때 하는 장식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그 의미를 되짚어 보려 한다. 혹여 여기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이다.

내 커리어의 시작은 어설픈 국제교류로 연결된다. 7월의 땡볕에도 불구하고 골목골목 가득 차 있던 아비뇽(Avignon)의 예술가들 모습이 생생하다. 말로만 듣던 아비뇽 교황청 마당은 수천 명의 사람이 밤마다 모여 새벽까지 공연을 보고 발을 구르며 배우들을 응원했다. 공연을 보고 그 감흥을 누르지 못해 새벽달을 보며 골목을 몇 바퀴 돌아 겨우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또 프랑스 소도시 렌느(Renne)에서 만난 공연은 나에게 예술을 본다는 것에 대한 원초적인 경험을 안겨 주었다. 11월의 밤거리를 뚫고 도착한 텐트 앞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언뜻 봐도 외국인은 나 혼자였다. 프랑스인들 틈에 끼어 입장을 기다리다 텐트에 불이 켜지고,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섰다. 조그마한 3층짜리 건물 높이의 텐트에 관람석은 맨 꼭대기였고 우리는 동그랗게 서서 5미터 아래 무대를 내려다보았다. 이윽고 불이 꺼지고 공연이 시작되자 어둠 속에서 광대 한 명과 쥐 한 마리가 등장했다. 나는 기겁을 하며 옆에 있는 낯선 사람에게 꼭 매달렸다. 저게 정말 쥐냐고, 설마 이 기둥을 타고 위로 올라오진 않겠지 하며. 알아들었는지 모를 그는 허허 웃으며 나를 등 뒤로 숨겨주었다. 반쯤 감은 눈으로 공연을 끝까지 본 나는 50여 명의 관객과 마술 같은 순간을 공유했다.

지금이야 ‘라떼’로 회상될 에피소드지만 당시의 얘기를 좀 더 해보겠다. 15시간 비행기 이코노미석에 몸을 구기고 쪽잠을 자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공연시간에 맞춰 극장으로 달려간다. 수많은 도시를 오갔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호텔과 극장가는 길이 전부였다. 아니 거기에서 만난 사람들의 눈빛과 숨소리 그리고 그 공간의 느낌(ambience)이었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한국으로 돌아오면 그런 냄새와 기억들에 의존해서 길고 험난한 프로젝트를 이어간다. 팩스로 교류하던 시절, 문제가 생기면 답신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국제전화를 할 수도 있지만, 시차와 요금 때문에 급박한 사안이 아니면 그쪽 사정이 나아지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팩스 머신에 ‘지잉’ 하고 두 장짜리 수신이 오면 안도하며 계약서를 쓰고 국제 우편을 보냈다. 요즘 기획자들이 들으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냐고 타박할지 모른다. 불과 십수 년 전 이야기다. 그만큼 모바일 디바이스의 변화가 급속했고, 한국은 새로운 문명의 이기들을 최전선에서 이용하며 국제교류의 장을 빠르게 이어갔다.

다시금 생각해본다. 그 시절 국제교류의 주요한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지금처럼 온라인에 거의 모든 정보가 나와 있고 스카이프(skype)를 수시로 하는 시대 말고, 전화나 팩스로 의중을 전하고 조율하던 시대는 언뜻 덜 효율적으로 보인다. 일견 그런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에 줌(zoom)을 수시로 하는 나는 그 시절에 비해 몇 배로 지친다. 회의를 했는데도 뭔가가 찜찜하고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한참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다음 줌을 기다린다. 줌 마이크에 들려온 그녀의 목소리에 피곤함이 묻었던 것 같기도 하고 짜증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제기랄… 줌 회의 전에 준비 줌을 하고, 줌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음 줌 회의를 준비하고… 줌 속에 갇혀서 줌아웃될 것 같다. 거대한 수조 속에 갇혀서 말을 하는데, 들리지 않는 느낌이다. 수조를 깨고 나가서 진짜 바닷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고 만나고 싶다. 이놈의 수조 속에선 누가 두드리면 금방 쳐다보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고, 프로젝트가 맘에 들지 않아도 대놓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다들 작은 수조에 갇혀서 산소를 나눠 쉬고 있는 처지를 이해하니까.

얼마 전에는 호주의 백투백시어터(Back to Back Theatre)와 온라인 토크를 진행했다. 행사 전날 테크니컬 리허설뿐만 아니라 콘텐츠 리허설까지 거의 2시간을 연습했다. 호주와 한국 양쪽 참가자들의 어색함을 중재하는 극한 직업을 경험한 것이다. 악수를 시킬 수도, 농담을 하기도, 눈으로 찡긋 신호를 보내기도 쉽지 않았다. 타이밍은 어색하게 빗나가고, 기침 소리를 낼 수 없는 조명 아래서 모두 하고 싶은 말을 반쯤은 삼키며 모니터 속 상대방의 반응을 살핀다.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3시간을 꽉 채우고, 카메라가 꺼진 뒤에야 작은 모니터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숨 가쁘게 이어간 동시통역 중간 중간에 숨어있는 우리의 진심이 서로 닿았기를 바라며 다음 줌 회의를 잡았다.

국제교류는 (국내도 마찬가지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에 기반해서 거리, 문화, 제도의 간극을 뛰어넘어 존재한다. 같이 마셨던 와인 잔의 온도와 그녀의 눈빛에 비친 열망을 기억하며 이후에 이어지는 힘든 과정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냄새와 느낌이 가능하지 않은 줌 속에서 우리는 서로 웃고 있지만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사소한 오해들을 피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과 집중을 한다. 늘 차선을 찾는 꼴이다. 코로나가 물러가면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마도 그 시간의 소중함은 그 전과 비교해서 몇 곱절이 될 것이다. 그전에는 알지 못했던 비말의 존재가 새삼 위대하게 다가온다. 지금이야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천덕꾸러기지만, 동시에 잠재성을 실현해주는 힘이 있는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며 침방울을 공중에 튀겨본다. 입이 다 마르기 전에, 자유롭게 다시 만나길 기대하며 컴퓨터를 켠다. 두 개의 줌 초청이 보인다. 생명줄이다. 아직은 물밑이지만 이것마저도 없다면 숨쉬기가 더 힘들 것 같다.

성무량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일을 시작하여 대전예술의전당을 거쳐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최근의 관심사는 컨템퍼러리와 장애 이슈를 중심으로 이전의 세상을 다시 바라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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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9월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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