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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set프로젝트 <관람모드>

이음광장 우리는 만날 수 있을까–만남에 관한 몇 가지 생각

  • 신재 
  • 등록일 2020-11-06
  • 조회수646

연극 <관람모드-만나는 방식>은 지난 10월에 나흘 동안 관객을 만난 후 마무리되었다. 공연의 전 과정은 만남의 연속이었다. 실제로 서로를 점점 더 만나는 과정이었고, 이미 만났다고 생각했던 것을 새삼스럽게 다시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익숙했던 많은 것이 낯설어지는 순간이 왔을 때 만나고 싶다는 마음도 함께 일어났다. 그리고 그 마음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2019년 연극 <관람모드–보는 방식>은 일방적으로 보여주고 바라봐야 하는 공연 방식에 대한 의문과 극장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경험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서 출발한 공연이었다. 따라서 공연은 관객이 극장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4명의 출연자를 일대일로 만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공연이 만들어낸 시공간이 관객과 출연자가 서로를, 그리고 극장을 낯설게 바라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랐다. 공연 당시 관객이 각 출연자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15분 남짓이었으니, 정말 서로를 낯설게 바라볼 수밖에 없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를 낯설게 바라보고 헤어지고 난 후에 떠올랐던 단어가 ‘만남’이었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인식한 후에 우리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서로의 경험과 방식을 생략하지 않으면서 이뤄지는 만남은 어떤 모습일까. 그렇게 만나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과 거리는 어느 정도이며,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 이런 질문을 품으면서 2020년 <관람모드-만나는 방식>을 통한 만남이 시작되었다.

연극 <관람모드-만나는 방식> (사진제공. 0set프로젝트)

만남의 속성, 낯섦과 설명

만나는 방식을 탐구하기 위해서 만난 출연자는 네 사람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함께 공연하게 된 홍성훈, 4~5년 전 함께 공연한 적 있는 박하늘, 그리고 이번에 처음 만나는 유현주와 김주희. 배우로 무대에 선 경험도 소통방식도 공연에 참여한 목적도 각자 다른 네 명과의 만남은 매번 만남의 방식뿐만 아니라 만남의 속성까지 따져 묻게 되는 시간이었다. 저마다의 만남 경험을 문자, 음성 그리고 수어와 음성통역으로 공유하면서 인식하게 된 만남의 속성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만남은 서로 낯선 존재 사이에서만 일어난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만남의 과정이란 끊임없이 나를 설명하고 때로는 설득해야 하는 일이라는 점이었다.

‘만난다’는 표현은 주로 차이를 가진 주어와 목적어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나는 너를 만난다’라는 문장을 쓸 때 나와 너는 다른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날 수 있다. ‘나는 나를 만난다’와 같이 주어와 목적어가 동일한 경우에도 앞의 나와 뒤의 나는 차이가 있다. 예전과는 달라진 나를 인식한다거나 나 자신을 대상화 또는 객관화하여 마치 타자처럼 살펴볼 때 ‘나는 나를 만난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차이가 있어야만 만남이 일어난다. 만남은 ‘나’와 분리된 즉 차이를 가진 ‘너’라는 대상 사이에서 일어나며, 이때 ‘나’와 ‘너’가 낯설수록 만남은 지연된다. 지연된다는 표현은 만남이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만남의 시간이 길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만남이란 마주치는 그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라기보다는 뒤늦게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추측을 담고 있다.

만남의 속성과 어려움에 대해서 길게 서술한 이유는 출연자들과 두 달 이상의 시간을 만나왔지만, 아니 만남으로 인해 나는 그들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나는, 키보드를 어깨 근육과 손가락으로 두드려 문자로 말을 건네는 홍성훈이 A4용지 한 장의 글을 쓰는 데 파스를 몇 장 붙이는지 알게 되었고, 무대에 서기 전 머리와 얼굴을 꾸밀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볼 수 있었다. 4~5년 만에 다시 공연에서 만난 박하늘의 달라진 일상과 움직임을 알게 되었고,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그의 어떤 눈빛과 그가 기억하고 기록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유현주가 수어로 보여준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와 정체성의 수어 표현을 만났던 순간이 여전히 강렬하게 남아있으며, 주말이면 지금쯤 유현주가 집에서 만화책을 읽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수어를 음성언어로 그리고 음성언어를 수어로 통역해준 김주희는 공연 기간 내내 나의 고민과 물음에 자신만의 응답을 들려준 사람이었다. 고민이 들 때면 그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해지곤 한다.

나는 네 사람을 이렇게 몇 줄의 문장 또는 수식어로 설명하고 싶지 않다. 몇 번을 지우고 다시 썼지만 그래도 썩 맘에 들지 않는다. 길게 쓴다고 나의 부족한 글쓰기 실력으로 이들을 보다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관람모드-만나는 방식>을 통해서 출연자를 조금 더 ‘잘’ 만날 수 있는 설명 방식과 내용을 고르고 골랐지만, 이들과 관객의 만남이 공연 중에 일어났는지는 확신할 수가 없다. 감사하게도 공연에서 만난 관객이 쓴 리뷰 두 편이 있어 참고로 붙인다. 이 글 안에서 공연의 내용과 형식을 다 설명할 수 없으며 또한 내가 그것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함께 있기 위해

공연을 준비하고 상연하는 전 과정에서 네 사람을 만날수록 그리고 각자의 고유한 방식과 이야기를 알게 될수록 내가 확인한 것은 언제나 설명이 부족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여전히 이들을 잘 모르고, 조금이나마 알게 된 만큼 더 잘 설명하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만남을 의미하기 때문에 언제나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로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나(자신과 내가 만난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한 만남은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설명은 그 설명을 하게 된 맥락을 수반하므로 서로 만나고 있는 한 설명은 끊길 수 없다. 심지어 서로 설명하는 방식이 다를 경우에는 서로를 설명하기에 앞서 각자의 방식에 관해서도 설명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만남은 충족될 수 없는 설명의 연속이다.

한편 자신과 자신의 방식에 대한 설명은 주로 사회에서 낯설게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요구된다. 이때의 설명은 해명에 가깝다. 자신의 방식이나 존재를 의심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 즉 자신에 대한 해명을 요구받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자신을 정성 들여 설명할 말을 고를 필요가 없다. ‘보통’ 사람과 ‘다른’ 사람만이 자신을 해명할 것을 강요받거나 자신을 설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일방적인 질문과 시선을 받는다. “너는 남자니 여자니?” “장애가 있으면 살아가기 어렵지 않니?” “안 됐다, 불쌍하다” 등. 이런 질문과 시선은 설명을 듣고자 던지는 것이 아니다. 단지 상대를 자기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대로 이해해버리고 자신의 이해를 재확인하고자 던지는 것뿐이다. 이런 관계에서는 만남이 일어나지 않는다. 만남은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으며, 일방적인 질문과 시선으로 이뤄지지도 않는다.

만남은 서로의 차이를 인식하는 사람, 그렇기 때문에 정성 들여 자신을 설명하려는 사람, 서로가 궁금하기 에 질문하는 사람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다. 여전히 만남 또는 만남의 방식이 어떠해야 한다고 확언할 수는 없다. 그저 만남의 속성에 이런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어렴풋한 추측을 해볼 뿐이다. 우리가 서로의 방식을 존중하고, 서로에게 필요한 시간을 기다릴 수 있고, 서로를 쉽게 이해해버리려 하지 않을 때 만남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공연 후반부에 박하늘, 유현주, 홍성훈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렇게 말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함께 있기 위해 나의 말·언어·방식으로 나를 설명하고 설득한다.”

이것이 우리가 공연 준비 과정에서 서로에게 계속 시도했던 일이자 관객과 만나기 위해서 계속 노력했던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각자의 삶 속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계속될 것이다. 그러다가 우리가 또다시 반갑게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적은 메모 하나를 남기고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함께 있음을 인식하는 것 차이를 확인하는 것 따라서 끊임없이 자신을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하는 것 낯선 이야기를 이해하려는 과정에 머무는 것 이 사이 어딘가에 만나는 방식이 있지 않을까.”

2020 혜화동1번지 7기동인_가을페스티벌 ‘맞;춤’ <관람모드-만나는 방식> 수어 공연소개

신재

신재 

하고 싶은 이야기, 들어야할 말을 품고 있는 사람들과 공동 창작 작업하고 있으며, 2017년부터 프로젝트 형식으로 조사, 워크숍, 공연 제작 등을 하는 ‘0set프로젝트’ 팀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footlooseyou@gmail.com

신재

신재 

하고 싶은 이야기, 들어야할 말을 품고 있는 사람들과 공동 창작 작업하고 있으며, 2017년부터 프로젝트 형식으로 조사, 워크숍, 공연 제작 등을 하는 ‘0set프로젝트’ 팀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footlooseyou@gmail.com

상세내용

연극 <관람모드-만나는 방식>은 지난 10월에 나흘 동안 관객을 만난 후 마무리되었다. 공연의 전 과정은 만남의 연속이었다. 실제로 서로를 점점 더 만나는 과정이었고, 이미 만났다고 생각했던 것을 새삼스럽게 다시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익숙했던 많은 것이 낯설어지는 순간이 왔을 때 만나고 싶다는 마음도 함께 일어났다. 그리고 그 마음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2019년 연극 <관람모드–보는 방식>은 일방적으로 보여주고 바라봐야 하는 공연 방식에 대한 의문과 극장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경험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서 출발한 공연이었다. 따라서 공연은 관객이 극장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4명의 출연자를 일대일로 만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공연이 만들어낸 시공간이 관객과 출연자가 서로를, 그리고 극장을 낯설게 바라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랐다. 공연 당시 관객이 각 출연자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15분 남짓이었으니, 정말 서로를 낯설게 바라볼 수밖에 없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를 낯설게 바라보고 헤어지고 난 후에 떠올랐던 단어가 ‘만남’이었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인식한 후에 우리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서로의 경험과 방식을 생략하지 않으면서 이뤄지는 만남은 어떤 모습일까. 그렇게 만나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과 거리는 어느 정도이며,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 이런 질문을 품으면서 2020년 <관람모드-만나는 방식>을 통한 만남이 시작되었다.

연극 <관람모드-만나는 방식> (사진제공. 0set프로젝트)

만남의 속성, 낯섦과 설명

만나는 방식을 탐구하기 위해서 만난 출연자는 네 사람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함께 공연하게 된 홍성훈, 4~5년 전 함께 공연한 적 있는 박하늘, 그리고 이번에 처음 만나는 유현주와 김주희. 배우로 무대에 선 경험도 소통방식도 공연에 참여한 목적도 각자 다른 네 명과의 만남은 매번 만남의 방식뿐만 아니라 만남의 속성까지 따져 묻게 되는 시간이었다. 저마다의 만남 경험을 문자, 음성 그리고 수어와 음성통역으로 공유하면서 인식하게 된 만남의 속성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만남은 서로 낯선 존재 사이에서만 일어난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만남의 과정이란 끊임없이 나를 설명하고 때로는 설득해야 하는 일이라는 점이었다.

‘만난다’는 표현은 주로 차이를 가진 주어와 목적어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나는 너를 만난다’라는 문장을 쓸 때 나와 너는 다른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날 수 있다. ‘나는 나를 만난다’와 같이 주어와 목적어가 동일한 경우에도 앞의 나와 뒤의 나는 차이가 있다. 예전과는 달라진 나를 인식한다거나 나 자신을 대상화 또는 객관화하여 마치 타자처럼 살펴볼 때 ‘나는 나를 만난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차이가 있어야만 만남이 일어난다. 만남은 ‘나’와 분리된 즉 차이를 가진 ‘너’라는 대상 사이에서 일어나며, 이때 ‘나’와 ‘너’가 낯설수록 만남은 지연된다. 지연된다는 표현은 만남이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만남의 시간이 길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만남이란 마주치는 그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라기보다는 뒤늦게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추측을 담고 있다.

만남의 속성과 어려움에 대해서 길게 서술한 이유는 출연자들과 두 달 이상의 시간을 만나왔지만, 아니 만남으로 인해 나는 그들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나는, 키보드를 어깨 근육과 손가락으로 두드려 문자로 말을 건네는 홍성훈이 A4용지 한 장의 글을 쓰는 데 파스를 몇 장 붙이는지 알게 되었고, 무대에 서기 전 머리와 얼굴을 꾸밀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볼 수 있었다. 4~5년 만에 다시 공연에서 만난 박하늘의 달라진 일상과 움직임을 알게 되었고,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그의 어떤 눈빛과 그가 기억하고 기록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유현주가 수어로 보여준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와 정체성의 수어 표현을 만났던 순간이 여전히 강렬하게 남아있으며, 주말이면 지금쯤 유현주가 집에서 만화책을 읽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수어를 음성언어로 그리고 음성언어를 수어로 통역해준 김주희는 공연 기간 내내 나의 고민과 물음에 자신만의 응답을 들려준 사람이었다. 고민이 들 때면 그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해지곤 한다.

나는 네 사람을 이렇게 몇 줄의 문장 또는 수식어로 설명하고 싶지 않다. 몇 번을 지우고 다시 썼지만 그래도 썩 맘에 들지 않는다. 길게 쓴다고 나의 부족한 글쓰기 실력으로 이들을 보다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관람모드-만나는 방식>을 통해서 출연자를 조금 더 ‘잘’ 만날 수 있는 설명 방식과 내용을 고르고 골랐지만, 이들과 관객의 만남이 공연 중에 일어났는지는 확신할 수가 없다. 감사하게도 공연에서 만난 관객이 쓴 리뷰 두 편이 있어 참고로 붙인다. 이 글 안에서 공연의 내용과 형식을 다 설명할 수 없으며 또한 내가 그것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함께 있기 위해

공연을 준비하고 상연하는 전 과정에서 네 사람을 만날수록 그리고 각자의 고유한 방식과 이야기를 알게 될수록 내가 확인한 것은 언제나 설명이 부족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여전히 이들을 잘 모르고, 조금이나마 알게 된 만큼 더 잘 설명하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만남을 의미하기 때문에 언제나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로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나(자신과 내가 만난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한 만남은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설명은 그 설명을 하게 된 맥락을 수반하므로 서로 만나고 있는 한 설명은 끊길 수 없다. 심지어 서로 설명하는 방식이 다를 경우에는 서로를 설명하기에 앞서 각자의 방식에 관해서도 설명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만남은 충족될 수 없는 설명의 연속이다.

한편 자신과 자신의 방식에 대한 설명은 주로 사회에서 낯설게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요구된다. 이때의 설명은 해명에 가깝다. 자신의 방식이나 존재를 의심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 즉 자신에 대한 해명을 요구받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자신을 정성 들여 설명할 말을 고를 필요가 없다. ‘보통’ 사람과 ‘다른’ 사람만이 자신을 해명할 것을 강요받거나 자신을 설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일방적인 질문과 시선을 받는다. “너는 남자니 여자니?” “장애가 있으면 살아가기 어렵지 않니?” “안 됐다, 불쌍하다” 등. 이런 질문과 시선은 설명을 듣고자 던지는 것이 아니다. 단지 상대를 자기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대로 이해해버리고 자신의 이해를 재확인하고자 던지는 것뿐이다. 이런 관계에서는 만남이 일어나지 않는다. 만남은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으며, 일방적인 질문과 시선으로 이뤄지지도 않는다.

만남은 서로의 차이를 인식하는 사람, 그렇기 때문에 정성 들여 자신을 설명하려는 사람, 서로가 궁금하기 에 질문하는 사람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다. 여전히 만남 또는 만남의 방식이 어떠해야 한다고 확언할 수는 없다. 그저 만남의 속성에 이런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어렴풋한 추측을 해볼 뿐이다. 우리가 서로의 방식을 존중하고, 서로에게 필요한 시간을 기다릴 수 있고, 서로를 쉽게 이해해버리려 하지 않을 때 만남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공연 후반부에 박하늘, 유현주, 홍성훈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렇게 말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함께 있기 위해 나의 말·언어·방식으로 나를 설명하고 설득한다.”

이것이 우리가 공연 준비 과정에서 서로에게 계속 시도했던 일이자 관객과 만나기 위해서 계속 노력했던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각자의 삶 속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계속될 것이다. 그러다가 우리가 또다시 반갑게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적은 메모 하나를 남기고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함께 있음을 인식하는 것 차이를 확인하는 것 따라서 끊임없이 자신을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하는 것 낯선 이야기를 이해하려는 과정에 머무는 것 이 사이 어딘가에 만나는 방식이 있지 않을까.”

2020 혜화동1번지 7기동인_가을페스티벌 ‘맞;춤’ <관람모드-만나는 방식> 수어 공연소개

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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