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웹진 이음

[좌담] 지역 장애예술 지원을 말하다

이슈 튼튼한 토대에서 다채롭게 피어나도록

  • 박슬기·박주호·채지영·이진희 
  • 등록일 2022-10-26
  • 조회수819

이슈

개요

  • 일시2022년 10월 7일(금) 오후 4시

  • 장소이음센터 회의실

참석자
좌장.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 이음온라인 기획위원
패널.
박슬기 충북문화재단 문화복지 TF 과장
박주호 광주문화재단 창작지원팀 차장
채지영 경기문화재단 예술인지원팀 대리
  • 박슬기, 채지영, 박주호, 이진희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슬기, 채지영, 박주호, 이진희

기반 조성부터 차근차근

이진희지난 9월 ‘제1차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 기본계획’이 발표되었다. 앞으로 지자체와 문화재단이 주도하는 관련 사업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점에서 오늘은 ‘지역에 맞닿는 장애예술’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자 모였다. 먼저, 자기소개와 함께 각 문화재단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을 간략히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박주호광주문화재단 창작지원팀에서 장애인을 위한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올해 총예산은 6억 5천만 원으로, 시비 3억 5천만 원과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하 장문원) 공모 사업으로 3억 원을 받았다. 시각 분야 전업 작가를 위한 레지던시 지원사업과 10월 28일부터 열리는 작가별 개인전을 준비 중이고, 장애인 대상 음악교육‧연극교육 프로그램, 문학집 발간 지원사업이 있다. 최근에는 부산과 광주 지역 미술작가들의 교류전을 진행하고 있다.

박슬기충북문화재단 문화복지 TF팀에서 문화다양성 사업 내 장애인식 개선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 재단에서는 2018년에서 2020년까지 3년간 장애인 예술 매개자 양성 과정을 이어왔고, 최근 장애인과 장애예술인의 예술 창작 활동 및 교육에 대한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2021년 충북 예술인 실태조사’ 안에 장애예술인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등을 진행했다. 재단에 충분한 의지가 있어 곧 구체화된 장애예술 관련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채지영경기문화재단 예술인지원팀에서 근무하고 있고, 올해 장애예술 사업을 맡았다. 올해 처음 도 위탁‧대행 사업으로 14억 원이 편성돼 장애예술 관련 사업을 시행하고 있는데 전담 부서가 없어 예술인지원팀과 정책사업팀, 공공예술팀이 사업 성격별로 나눠서 진행하고 있다. 우리 팀에서 맡은 사업은 경기도 장애예술인 전문예술교육 지원사업으로, 장애예술인 대상 교육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문화예술단체를 지원한다. 공모를 통해 총 15단체가 선정됐고 요즘 현장 모니터링이 한창이다. 또 장애인 학교 등 문화예술 시설 지원, ‘장애 일상으로의 초대’라는 콘텐츠 제작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오는 11월 24, 25일에는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성과공유회도 예정하고 있다.

이진희각 문화재단의 사업과 활동을 간략히 소개해 주셨는데, 어떤 부분에 포커스를 맞춰 진행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요즘 한 해 사업을 마무리하는 시기이지 않나. 올해 공모 사업들은 전반적으로 어땠나.

채지영올해 갑작스럽게 사업을 시작하게 돼서 그런지, 신청 건수가 다른 지원사업에 비해 저조했다. 홍보가 많이 부족했나 생각했다. 한편, 적지 않은 예산이 편성됐을 때 문화재단 입장에서는 이 예산을 의미 있게 잘 써야겠다, 장애예술 사업은 더욱 섬세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공고 등 여러 행정절차에 필요한 시간을 고려하는 게 가장 먼저였다. 내부 관계자들은 물론 외부 전문가, 예술인들과의 온·오프라인 자문회의를 여러 차례 추진했다. 논의 끝에 올해는 교육 지원, 공간 조성, 콘텐츠 제작을 통한 인식 제고 등의 간접지원과 기반 조성 등 토대를 닦는 방향으로 풀어가기로 했고 그 점에 중점을 뒀다.

박주호경기문화재단 사례에 매우 공감한다. 광주문화재단이 이 사업을 3년간 해오면서 얻은 결론은 장애인이나 장애예술인을 지원하는 트랙의 구분이 필요하다는 거다. 저희도 관련 공모 사업을 진행해보면 지원 신청 건수가 적다. 신청자격 제한을 줄이고 지원 금액을 적극적으로 홍보해도 잘 안 들어온다. 장애예술인이나 단체의 경우 기획력과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행정 역량이 다소 부족한 게 사실이다 보니, 공모에 지원한다 해도 심사라는 경쟁을 통해 선정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건 별도의 지원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본 거다. 현재 우리 재단은 장애예술인 및 장애인 전용 창·제작 센터를 만드는 일에 장기적으로 주력하고 있다. 지상 3층, 지하 2층 정도 건물에 연습실, 다목적실, 전시장, 레지던스 공간을 두고 창작 활동을 하고 발표회도 열고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광주시를 꾸준히 설득하고 있다. 4년차인 2023년 사업 계획에도 신규 사업으로 포함했다.

박슬기충북문화재단은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다. 장애인이나 장예예술인을 대상으로 한 직접적인 형태는 아니고 아직은 문화다양성 사업 안에서 다뤄지고 있다. 작년까지 도비로 추진한 매개자 양성 사업이 좋은 선례가 되어 별도의 예산으로 장애예술 관련 사업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세심한 준비와 고민으로

이진희각 문화재단의 상황이 약간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이 있는 게 흥미롭다. 다양한 상황과 입장에서 경험한 것들, 이를 통해 배우게 된 점들을 들어볼 수 있는 귀한 자리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장애예술 지원사업을 운영하며 문화재단이나 사업 담당자가 마주하는 어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사업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도 할 것 같다.

박슬기장애예술에 관한 사회적인 관심과 화두가 있으니 지역문화재단도 거기에 맞춰 관심을 갖고 스스로 공부해야 하는 환경이 됐다. 직원들도 일단 관련 교육에 대해서 많이 열려 있고 각자의 노력도 있는 것 같다.

채지영장애예술이라고 하면 접근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전반에 깔려있는 것 같다. 저 역시 사회 변화와 문화예술의 역할을 생각할 때 장애예술에 대해 폭넓게 이해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렵고 도전이 필요한 분야다. 어쨌든 시작은 했고 중장기적으로 지속돼야 할 텐데, 그러려면 장애예술 사업이 문화재단 기존의 사업들과 어떻게 융합되어야 할지, 지역 예술현장에서 어떻게 뿌리내릴지 고민하여 진행해야 할 것 같다.

박주호지난해 사업 담당자가 갑자기 자리를 비우게 됐는데 후임자가 마땅히 없어 올해 제가 맡았다. 3년간 지속해오며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거부감은 크게 없었고, 오히려 내가 하면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막 관련 사업을 시작하는 곳에서는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가 제일 큰 고민이자 기초가 될 거다. 우리는 처음부터 복지와 문화예술을 분리했고, 명확하게 목표를 정했다. 장애예술인의 창작 활동 지원에 포커스를 맞추고, 여기에 향후 발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더 고민하기로 했다.

이진희앞서 별도의 세심한 준비나 고민이 더 많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하셨다. 예를 들어 공모를 낼 때 장애 유형에 따른 접근성을 고려해야 하고 홍보물도 여러 버전이 필요하다는 것 등이 업무의 일부 혹은 고민의 영역일 것 같다. 행정 담당자의 입장에서 다른 사업과 비교할 때 어떤 것들이 추가되나?

채지영11월에 열릴 성과공유회를 준비 중인데, 행사 공간을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경기도에 그렇게 많은 공연장과 체육관이 있는데도 말이다. 엘리베이터는 기본이고 여러 가지 배리어프리 시설이 필요하니까. 다른 때보다 2배의 시간이 걸렸다. 지난 9월 장문원이 주최한 ‘노리미츠인서울’을 참관하며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접수할 때 장애인/비장애인 여부를 선택하고, 해당 장소에 가는 수단, 장애인의 경우 어떤 택시를 부를 것인가까지 모든 체크 항목이 다 있었다. 현장에는 당연히 장애인석, 음성해설, 수어 통역, 문자해설도 다 잘 마련돼 있었다. 이런 것들을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앞으로 있을 지원사업 평가도 성과공유회도 할 수가 없겠구나 생각했다. 하나하나 부딪치면서 매번 절실히 느끼고 있다.

박주호장애예술인 한 명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비장애 예술인에게 들어가는 행정 능력보다 다섯 배는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담당자들이 이 사업만 하는 게 아니라 두세 개 사업을 맡아서 행정, 대외 대응, 기타 서무까지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놓치는 것이 생기고, 그러면서 자신이 힘들어지면, 결국 이 사업 자체를 기피하게 되는 거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 예술인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어떤 장치가 추가로 필요한가, 농인 예술가와는 어떤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나, 이를 뒷받침할 예산은 충분한가, 이런 부분에 준비가 안 되어있거나 추가 필요 사항이 많다 보니, 장애예술인이 지원 대상으로 선정돼도 풀어야 할 숙제가 잔뜩인 거다.

박슬기세심하게 세팅해야 한다는 것에 정말 공감한다. 제가 예술활동증명 신청 접수를 도와드리고 있는데, 장애 유무를 체크하는 칸이 있고, 장애 유형도 여러 가지에 중증·경증 이렇게 구분이 많았다. 이런 간접 경험이라도 없으면 알 수 없던 사실이었다. 또 한번은 청각장애 예술인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아무래도 의사소통이 걱정돼 노트북을 챙겨 갔더니, 요즘에는 활용하는 앱이 있다고 했다. 이렇게 사업 담당자로서 장애예술인에 관해 세심하게 파악하지 않으면 많은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사실 충북문화재단 건물도 배리어프리가 안 되어있다. 이 사업을 하려면 우리부터 돌아보고 부족한 걸 보완해야 하는데, 예산이 많이 필요한 부분이라 쉽지 않은 것 같다.

격차를 극복하고, 다양성으로 조화롭게

이진희시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사회적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돼있는 것도 사실이다. 접근성이 좋은 공연장 혹은 강사 한 명을 섭외하더라도 어쨌든 서울은 조금 더 선택의 폭이 있는 편이다. 서울과 비서울 지역 간 일종의 불평등인 셈이다. 이러한 불평등이나 차별을 느끼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하다.

박주호다행히 광주에서는 수도권과의 불평등을 그렇게 많이 느끼지 않는 편이다. 행사 때 지역 내 수어통역사협회라든가 장애인종합지원센터 등을 통해 필요한 부분을 해결할 수 있고, 자원봉사자들을 모을 수 있는 네트워킹도 되어있다. 다만 최근 기술을 접목한 배리어프리 측면에서는 부족한 게 사실인데, 서울에 있는 좋은 업체를 섭외하기에 일정이나 예산이 안 맞는 경우가 있다. 장애인 정보 접근성을 위한 관련 예산의 지원이 생기면 생기면 크게 문제 될 건 없을 것 같다. 그래도 광주는 나름대로 장애인 지원을 역점사업으로 생각하고 지원에도 긍정적이라는 점이 고무적이다.

모두반가운 일이다.

박슬기충북은 청주시와 그 외 지역의 차이가 꽤 크다. 이 부분은 정말 고민이 필요하다. 교통편의 측면을 생각하면 이동권도 상당히 취약한 편이다. 어느 지역에서 프로그램을 열어도 참여하기 위해 이동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일 거다.

채지영이동권 부분이 너무 와닿는다. 수원에서 워크숍을 하면, 경기 북부인 동두천, 양주, 연천에서 오는 참여자는 네 시간씩 걸린다. 비장애인도 이동하기 힘든데 장애인은 얼마나 힘들겠나. 어떤 새로운 정책이 제시되면 광역문화재단인 경기문화재단은 실행안을 만들어내고 씨앗을 뿌리는 플랫폼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예술 사업도 경기도 내 31개 시군, 22개 기초문화재단과 촘촘히 연결하면서 확산시켜 나가야 할 텐데, 여기에 필요한 것들이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인프라도 네트워크도 전무하고 매개자도 마찬가지다. 광주와 정반대다.

박주호시와 도의 차이인 것 같다. 시는 한 블록 내에서 구획되고 중심권을 위주로 교통이 발달해서 접근도 수월한 편인데, 도 단위의 경우는 수십 개의 거점과 원활한 네트워킹을 갖추는 것만 해도 긴 시간이 필요할 거다.

이진희장애인과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면 지금 사회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문화다양성 사업은 중요한 현장이다. 문화다양성 사업과 장애예술 사업 간에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문화다양성 사업 내에서 장애를 풀어내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일까?

박주호제 경험상 장애예술인 대상 사업에서 새로운 제안이나 협업 같은 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문화다양성과 장애예술을 접목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나중에 사업이 안정화되면 추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박슬기우리는 단계화해서 가는 중이다. 지금은 문화다양성 사업 안에서 크게 다루지만 점차 장애예술인이나 소수자 예술인을 대상으로 한 지원사업이 별로도 마련될 거다. 그리고 향후에는 비장애 예술인과의 협업까지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전에 문화다양성 사업에서 예술인 대상 장애 관련 교육을 했는데 매우 수용적이었다. 기존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오케스트라나 합창단에서도 평소 가지고 있던 확장성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해소했다. 직접적이고 빠르게 가면 충돌이 생기거나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을 텐데, 이런 방식이 많이 도움이 됐다.

채지영공감한다. 다양성과 함께 가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싶다.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인정하는 차원으로 장애와 장애예술을 보는 거다. 관련 사업을 준비하고 조사해오면서, 더 큰 맥락인 다양성의 관점에서 우리가 이 사업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도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 박슬기 충북문화재단 문화복지 TF 과장
  •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 이음온라인 기획위원
  • 박주호 광주문화재단 창작지원팀 차장
  • 채지영 경기문화재단 예술인지원팀 대리

중요한 가치를 남기기 위해

이진희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켜본 바로는, 예술 행정을 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법‧제도나 지침에 압박과 부담을 느끼면서도 사업을 계속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 속에서도 어쨌든 과정의 경험과 결과물이 쌓일 텐데, 제도와 사업, 예산이 달라지면 거기에 새롭게 맞추느라 자칫 그간 쌓아온 내용이 휘발돼버릴 수 있지 않을까. 그간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조직의 중요한 가치로 남기기 위해 내부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박주호그런 점에서 광주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거점과 공간이다. 이를 통해 사업을 더욱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고 잘 기록해서 후임자에게 넘겨줄 수도 있고, 이다음 장기적인 로드맵을 그리는 것도 가능할 거라고 본다. 센터라는 물적 토대를 바탕으로 지향이 이어질 수 있게 되는 거다.

박슬기해당 사업에 특화된 담당자를 잘 양성하는 것도 방법이다. 하나의 업무를 길게 가져가며 진득하게 고민한다면 그 결과와 가치가 남지 않을까. 하지만 아무래도 대부분 문화재단이 순환보직 시스템인데다 직원 한 명이 여러 개의 사업을 맡고 있다 보니, 현실적으로는 좀 어려울 것 같기도 하다.

채지영요즘 다들 온라인 아카이빙을 해서 가시적인 결과물이 남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저도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사업과 예산이 스쳐 지나가는데, 문화재단 직원이라면 이것이 어떤 가치로 남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사업 담당자로서 소명 의식을 가지면 좋겠다. 100명 중 10명만이라도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여러 사업을 거친다고 가정해보면, 장애예술 사업을 하다 다른 사업을 하게 됐을 때 장애인 접근성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는 거다. 그러면 앞선 사업의 가치와 궁극적인 목표가 길고 넓게 퍼질 수 있지 않을까. 담당자 한 명의 마인드가 바뀌면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뀔 수 있다고 본다.

박주호가장 중요한 것이 사업 담당자의 의지와 태도, 노력이라는 의견에 매우 동의한다. 담당자가 어떻게 판단하고 기획하느냐에 따라 사업이 달라질 수 있으니, 어떻게 보면 그게 핵심이다.

이진희장애예술 지원사업은 관련 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당분간 안정적으로 진행되겠지만, 더욱 가치 있게 운영되기 위하여 개선 또는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 있을까? 예산뿐 아니라 어떤 조건들이 더 필요할지 이야기해보자.

박주호우리가 이 사업을 하는 이유, 목적은 결국 지역에 있는 장애인, 장애예술인을 위한 것이지 않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문화예술을 접하고 교육받고 문화 혜택을 누리고 싶은 수요도 있고, 예술인으로서 안정적으로 활동하고 자립할 수 있기를 원한다. 그래서 우리 문화재단은 그러한 여건과 환경을 만들려고 한다. 좋은 시설물을 건립해서 사업을 추진하고 실적을 쌓아가면 장애 인식 개선에도 도움이 되고, 이런 사업에 대한 필요성도 알리고, 당연하게 이 사업은 지속되고 발전할 거라고 본다.

이진희물적 토대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 것 같다. 그 공간이 매개가 되고 지역 장애예술의 자양분이 되어 지속 가능성을 만들 수 있다는 말씀으로 이해했다.

박슬기장애예술인뿐 아니라 비장애 예술인들도 공간 문제를 가장 먼저 이야기한다. 창작 활동이나 예술 활동 지원사업에 그칠 게 아니라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공간이 그러한 기본 조건이라는 거다. 그게 결국에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하나의 조건이 아닐까.

채지영예산을 빼놓고는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새로운 지원사업이 시작되면 최소 3년 이상은 뒷받침되었으면 한다. 지속적인 예산지원만큼 현장에서 절실한 것은 없을 것이다. 또한 그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는데, 먼저 정책 결정자들이 좀 더 큰 크림을 그리는 거다. 장애인이나 장애예술인을 취약계층, 복지 대상, 일시적 수혜자로만 보는 게 아니라, 주체적인 한 명의 예술인으로 보고 이들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기존의 예술 생태계를 고려하고 문화다양성 사업과 어떻게 상호 작용할 수 있을까도 생각해주면 좋겠다. 그리고 또 하나는 소통의 구조다. 법이 통과되고 기본계획 세워지고 예산 편성되고, 중앙과 광역과 기초로 내려오는 게 일방통행이다. 좋은 취지의 사업이고 예산이지만, 현장의 여건도 살펴보려는 정책 결정자들의 고민이 필요하다.

박주호현장 상황과 의견을 도외시하는 톱다운 방식에서 오는 불합리한 것들이 확실히 있다. 일할 사람은 없는데 예산을 줄 테니 빨리 추진하라는 식이다. 대부분 비슷하겠지만 문화재단 직원 급여가 넉넉한 편도 아니고, 좋은 인력들이 꿈을 가지고 들어왔다가 실망하고 떠난다. 5년 미만 직원의 이직률이 정말 높다. 그럼 남아있는 사람에게 업무가 쌓인다. 여기에 코로나 때 갑자기 온라인 사업이 생긴 것처럼 신규사업이 들어오고, 난리다. 날마다 전쟁이다.

박슬기예술인 복지 업무도 담당하고 있어서 예술인들이 많이 찾아오신다. 어떨 땐 정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루종일 예술인 만나고, 외근 나갔다 오면 기본 두세 시간, 또 일이 남았으니 야근해야 하고. 이런 날이 많다.

다채롭게, 꾸준히, 가까이 가닿도록

이진희공감한다. 어떠한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예산만 내려보내서 될 일이 아니다. 현장에는 충분히 준비할 시간과 사람이 필요하다. 이러한 환경 자체를 어떻게 바꿀지, 기존 사업과의 통합이나 재편 등 체계화에 대해서도 같이 고민할 수 있는 구조가 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장애예술정책이 지역화된다는 게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지역 문화재단의 입장에서 어떻게 전망하는지 궁금하다.

박주호문화재단이 우리 지역 현실에 맞는 문화예술 사업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있다. 여기에 더해 아까 이야기 나온 담당자의 소명 의식과 발전 방향에 관한 꾸준한 고민으로 사업을 잘 끌어낸다면, 좋은 성과로 이어지면서 의회를 설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명분도 생길 거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사업 명칭에 ‘광주형 장애인 문화예술 지원사업’이라고 지역명을 넣었다. 광주의 브랜드를 만들어보자는 의미도 있고, 그만큼 특색 있고 재미있게 해볼 수 있는 사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슬기지역화라는 단어를 통해 꾸준히 자극받으며, 오늘처럼 각 지역의 환경을 이해하는 기회가 많으면 좋겠다. 한 가지 사업이 각 지역의 특색에 맞게 다양한 색깔로 진행되고 결실을 맺고 발전해 나간다면, 어쩌면 이것도 문화예술이 가진 또 하나의 긍정적인 측면이지 않을까.

채지영경기문화재단에서는 관련 사업을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 앞으로 경기도 내 지역화가 어떻게 실현될지 저도 매우 궁금하다. 장애예술은 특히나 긴 호흡과 기다림이 필요한 분야이다. 내실을 다지며 길게 이어져 잘 보이지 않는 곳, 숨어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가닿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렇게 정보와 관심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자리도 더 많이 필요하다.

이진희서울에서는 파악하기 어려운 내용들, 지역 문화재단이기에 경험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해 정말 많이 배운 것 같다. 장애 인권 운동, 장애 문화예술 운동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장애예술이 지역에서 꽃피우는 데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고민하겠다. 함께 열심히 협력했으면 좋겠다.

박슬기

충북문화재단 문화복지 TF팀에서 예술인복지와 문화다양성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예술인의 창작 환경 지원, 예술활동증명 등록 지원과 함께 문화다양성의 가치 확산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qtr0513@cbfc.or.kr

박주호

광주문화재단에서 인사 업무, 한중전통문화교류 및 국제교류전, 미디어아트페스티벌, 공연장 상주단체 육성 지원사업 등을 담당했다. 올해는 2022 광주형 장애인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맡아, 장애예술인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기회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jfk5769@gjcf.or.kr

채지영

예술경영 및 문화정책을 전공했다. 경기문화재단 지역정책팀, 생활문화팀에서 근무했고, 현재 예술인지원팀에서 장애예술 지원사업과 예술과 기술의 융복합 지원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새로운 예술지원 패러다임 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chaejiyoung@ggcf.or.kr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 장애여성공감의 극단 ‘춤추는허리’에서 장애여성 동료들과 연극을 만든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rpvl72@gmail.com

정리. 최용휘 프로젝트 궁리 에디터 lotush0317@gmail.com
사진. 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2022년 11월 (36호)

이진희, 박슬기, 박주호, 채지영

이진희, 박슬기, 박주호, 채지영 


상세내용

이슈

개요

  • 일시2022년 10월 7일(금) 오후 4시

  • 장소이음센터 회의실

참석자
좌장.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 이음온라인 기획위원
패널.
박슬기 충북문화재단 문화복지 TF 과장
박주호 광주문화재단 창작지원팀 차장
채지영 경기문화재단 예술인지원팀 대리
  • 박슬기, 채지영, 박주호, 이진희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슬기, 채지영, 박주호, 이진희

기반 조성부터 차근차근

이진희지난 9월 ‘제1차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 기본계획’이 발표되었다. 앞으로 지자체와 문화재단이 주도하는 관련 사업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점에서 오늘은 ‘지역에 맞닿는 장애예술’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자 모였다. 먼저, 자기소개와 함께 각 문화재단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을 간략히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박주호광주문화재단 창작지원팀에서 장애인을 위한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올해 총예산은 6억 5천만 원으로, 시비 3억 5천만 원과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하 장문원) 공모 사업으로 3억 원을 받았다. 시각 분야 전업 작가를 위한 레지던시 지원사업과 10월 28일부터 열리는 작가별 개인전을 준비 중이고, 장애인 대상 음악교육‧연극교육 프로그램, 문학집 발간 지원사업이 있다. 최근에는 부산과 광주 지역 미술작가들의 교류전을 진행하고 있다.

박슬기충북문화재단 문화복지 TF팀에서 문화다양성 사업 내 장애인식 개선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 재단에서는 2018년에서 2020년까지 3년간 장애인 예술 매개자 양성 과정을 이어왔고, 최근 장애인과 장애예술인의 예술 창작 활동 및 교육에 대한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2021년 충북 예술인 실태조사’ 안에 장애예술인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등을 진행했다. 재단에 충분한 의지가 있어 곧 구체화된 장애예술 관련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채지영경기문화재단 예술인지원팀에서 근무하고 있고, 올해 장애예술 사업을 맡았다. 올해 처음 도 위탁‧대행 사업으로 14억 원이 편성돼 장애예술 관련 사업을 시행하고 있는데 전담 부서가 없어 예술인지원팀과 정책사업팀, 공공예술팀이 사업 성격별로 나눠서 진행하고 있다. 우리 팀에서 맡은 사업은 경기도 장애예술인 전문예술교육 지원사업으로, 장애예술인 대상 교육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문화예술단체를 지원한다. 공모를 통해 총 15단체가 선정됐고 요즘 현장 모니터링이 한창이다. 또 장애인 학교 등 문화예술 시설 지원, ‘장애 일상으로의 초대’라는 콘텐츠 제작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오는 11월 24, 25일에는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성과공유회도 예정하고 있다.

이진희각 문화재단의 사업과 활동을 간략히 소개해 주셨는데, 어떤 부분에 포커스를 맞춰 진행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요즘 한 해 사업을 마무리하는 시기이지 않나. 올해 공모 사업들은 전반적으로 어땠나.

채지영올해 갑작스럽게 사업을 시작하게 돼서 그런지, 신청 건수가 다른 지원사업에 비해 저조했다. 홍보가 많이 부족했나 생각했다. 한편, 적지 않은 예산이 편성됐을 때 문화재단 입장에서는 이 예산을 의미 있게 잘 써야겠다, 장애예술 사업은 더욱 섬세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공고 등 여러 행정절차에 필요한 시간을 고려하는 게 가장 먼저였다. 내부 관계자들은 물론 외부 전문가, 예술인들과의 온·오프라인 자문회의를 여러 차례 추진했다. 논의 끝에 올해는 교육 지원, 공간 조성, 콘텐츠 제작을 통한 인식 제고 등의 간접지원과 기반 조성 등 토대를 닦는 방향으로 풀어가기로 했고 그 점에 중점을 뒀다.

박주호경기문화재단 사례에 매우 공감한다. 광주문화재단이 이 사업을 3년간 해오면서 얻은 결론은 장애인이나 장애예술인을 지원하는 트랙의 구분이 필요하다는 거다. 저희도 관련 공모 사업을 진행해보면 지원 신청 건수가 적다. 신청자격 제한을 줄이고 지원 금액을 적극적으로 홍보해도 잘 안 들어온다. 장애예술인이나 단체의 경우 기획력과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행정 역량이 다소 부족한 게 사실이다 보니, 공모에 지원한다 해도 심사라는 경쟁을 통해 선정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건 별도의 지원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본 거다. 현재 우리 재단은 장애예술인 및 장애인 전용 창·제작 센터를 만드는 일에 장기적으로 주력하고 있다. 지상 3층, 지하 2층 정도 건물에 연습실, 다목적실, 전시장, 레지던스 공간을 두고 창작 활동을 하고 발표회도 열고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광주시를 꾸준히 설득하고 있다. 4년차인 2023년 사업 계획에도 신규 사업으로 포함했다.

박슬기충북문화재단은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다. 장애인이나 장예예술인을 대상으로 한 직접적인 형태는 아니고 아직은 문화다양성 사업 안에서 다뤄지고 있다. 작년까지 도비로 추진한 매개자 양성 사업이 좋은 선례가 되어 별도의 예산으로 장애예술 관련 사업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세심한 준비와 고민으로

이진희각 문화재단의 상황이 약간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이 있는 게 흥미롭다. 다양한 상황과 입장에서 경험한 것들, 이를 통해 배우게 된 점들을 들어볼 수 있는 귀한 자리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장애예술 지원사업을 운영하며 문화재단이나 사업 담당자가 마주하는 어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사업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도 할 것 같다.

박슬기장애예술에 관한 사회적인 관심과 화두가 있으니 지역문화재단도 거기에 맞춰 관심을 갖고 스스로 공부해야 하는 환경이 됐다. 직원들도 일단 관련 교육에 대해서 많이 열려 있고 각자의 노력도 있는 것 같다.

채지영장애예술이라고 하면 접근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전반에 깔려있는 것 같다. 저 역시 사회 변화와 문화예술의 역할을 생각할 때 장애예술에 대해 폭넓게 이해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렵고 도전이 필요한 분야다. 어쨌든 시작은 했고 중장기적으로 지속돼야 할 텐데, 그러려면 장애예술 사업이 문화재단 기존의 사업들과 어떻게 융합되어야 할지, 지역 예술현장에서 어떻게 뿌리내릴지 고민하여 진행해야 할 것 같다.

박주호지난해 사업 담당자가 갑자기 자리를 비우게 됐는데 후임자가 마땅히 없어 올해 제가 맡았다. 3년간 지속해오며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거부감은 크게 없었고, 오히려 내가 하면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막 관련 사업을 시작하는 곳에서는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가 제일 큰 고민이자 기초가 될 거다. 우리는 처음부터 복지와 문화예술을 분리했고, 명확하게 목표를 정했다. 장애예술인의 창작 활동 지원에 포커스를 맞추고, 여기에 향후 발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더 고민하기로 했다.

이진희앞서 별도의 세심한 준비나 고민이 더 많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하셨다. 예를 들어 공모를 낼 때 장애 유형에 따른 접근성을 고려해야 하고 홍보물도 여러 버전이 필요하다는 것 등이 업무의 일부 혹은 고민의 영역일 것 같다. 행정 담당자의 입장에서 다른 사업과 비교할 때 어떤 것들이 추가되나?

채지영11월에 열릴 성과공유회를 준비 중인데, 행사 공간을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경기도에 그렇게 많은 공연장과 체육관이 있는데도 말이다. 엘리베이터는 기본이고 여러 가지 배리어프리 시설이 필요하니까. 다른 때보다 2배의 시간이 걸렸다. 지난 9월 장문원이 주최한 ‘노리미츠인서울’을 참관하며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접수할 때 장애인/비장애인 여부를 선택하고, 해당 장소에 가는 수단, 장애인의 경우 어떤 택시를 부를 것인가까지 모든 체크 항목이 다 있었다. 현장에는 당연히 장애인석, 음성해설, 수어 통역, 문자해설도 다 잘 마련돼 있었다. 이런 것들을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앞으로 있을 지원사업 평가도 성과공유회도 할 수가 없겠구나 생각했다. 하나하나 부딪치면서 매번 절실히 느끼고 있다.

박주호장애예술인 한 명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비장애 예술인에게 들어가는 행정 능력보다 다섯 배는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담당자들이 이 사업만 하는 게 아니라 두세 개 사업을 맡아서 행정, 대외 대응, 기타 서무까지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놓치는 것이 생기고, 그러면서 자신이 힘들어지면, 결국 이 사업 자체를 기피하게 되는 거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 예술인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어떤 장치가 추가로 필요한가, 농인 예술가와는 어떤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나, 이를 뒷받침할 예산은 충분한가, 이런 부분에 준비가 안 되어있거나 추가 필요 사항이 많다 보니, 장애예술인이 지원 대상으로 선정돼도 풀어야 할 숙제가 잔뜩인 거다.

박슬기세심하게 세팅해야 한다는 것에 정말 공감한다. 제가 예술활동증명 신청 접수를 도와드리고 있는데, 장애 유무를 체크하는 칸이 있고, 장애 유형도 여러 가지에 중증·경증 이렇게 구분이 많았다. 이런 간접 경험이라도 없으면 알 수 없던 사실이었다. 또 한번은 청각장애 예술인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아무래도 의사소통이 걱정돼 노트북을 챙겨 갔더니, 요즘에는 활용하는 앱이 있다고 했다. 이렇게 사업 담당자로서 장애예술인에 관해 세심하게 파악하지 않으면 많은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사실 충북문화재단 건물도 배리어프리가 안 되어있다. 이 사업을 하려면 우리부터 돌아보고 부족한 걸 보완해야 하는데, 예산이 많이 필요한 부분이라 쉽지 않은 것 같다.

격차를 극복하고, 다양성으로 조화롭게

이진희시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사회적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돼있는 것도 사실이다. 접근성이 좋은 공연장 혹은 강사 한 명을 섭외하더라도 어쨌든 서울은 조금 더 선택의 폭이 있는 편이다. 서울과 비서울 지역 간 일종의 불평등인 셈이다. 이러한 불평등이나 차별을 느끼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하다.

박주호다행히 광주에서는 수도권과의 불평등을 그렇게 많이 느끼지 않는 편이다. 행사 때 지역 내 수어통역사협회라든가 장애인종합지원센터 등을 통해 필요한 부분을 해결할 수 있고, 자원봉사자들을 모을 수 있는 네트워킹도 되어있다. 다만 최근 기술을 접목한 배리어프리 측면에서는 부족한 게 사실인데, 서울에 있는 좋은 업체를 섭외하기에 일정이나 예산이 안 맞는 경우가 있다. 장애인 정보 접근성을 위한 관련 예산의 지원이 생기면 생기면 크게 문제 될 건 없을 것 같다. 그래도 광주는 나름대로 장애인 지원을 역점사업으로 생각하고 지원에도 긍정적이라는 점이 고무적이다.

모두반가운 일이다.

박슬기충북은 청주시와 그 외 지역의 차이가 꽤 크다. 이 부분은 정말 고민이 필요하다. 교통편의 측면을 생각하면 이동권도 상당히 취약한 편이다. 어느 지역에서 프로그램을 열어도 참여하기 위해 이동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일 거다.

채지영이동권 부분이 너무 와닿는다. 수원에서 워크숍을 하면, 경기 북부인 동두천, 양주, 연천에서 오는 참여자는 네 시간씩 걸린다. 비장애인도 이동하기 힘든데 장애인은 얼마나 힘들겠나. 어떤 새로운 정책이 제시되면 광역문화재단인 경기문화재단은 실행안을 만들어내고 씨앗을 뿌리는 플랫폼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예술 사업도 경기도 내 31개 시군, 22개 기초문화재단과 촘촘히 연결하면서 확산시켜 나가야 할 텐데, 여기에 필요한 것들이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인프라도 네트워크도 전무하고 매개자도 마찬가지다. 광주와 정반대다.

박주호시와 도의 차이인 것 같다. 시는 한 블록 내에서 구획되고 중심권을 위주로 교통이 발달해서 접근도 수월한 편인데, 도 단위의 경우는 수십 개의 거점과 원활한 네트워킹을 갖추는 것만 해도 긴 시간이 필요할 거다.

이진희장애인과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면 지금 사회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문화다양성 사업은 중요한 현장이다. 문화다양성 사업과 장애예술 사업 간에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문화다양성 사업 내에서 장애를 풀어내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일까?

박주호제 경험상 장애예술인 대상 사업에서 새로운 제안이나 협업 같은 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문화다양성과 장애예술을 접목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나중에 사업이 안정화되면 추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박슬기우리는 단계화해서 가는 중이다. 지금은 문화다양성 사업 안에서 크게 다루지만 점차 장애예술인이나 소수자 예술인을 대상으로 한 지원사업이 별로도 마련될 거다. 그리고 향후에는 비장애 예술인과의 협업까지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전에 문화다양성 사업에서 예술인 대상 장애 관련 교육을 했는데 매우 수용적이었다. 기존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오케스트라나 합창단에서도 평소 가지고 있던 확장성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해소했다. 직접적이고 빠르게 가면 충돌이 생기거나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을 텐데, 이런 방식이 많이 도움이 됐다.

채지영공감한다. 다양성과 함께 가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싶다.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인정하는 차원으로 장애와 장애예술을 보는 거다. 관련 사업을 준비하고 조사해오면서, 더 큰 맥락인 다양성의 관점에서 우리가 이 사업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도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 박슬기 충북문화재단 문화복지 TF 과장
  •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 이음온라인 기획위원
  • 박주호 광주문화재단 창작지원팀 차장
  • 채지영 경기문화재단 예술인지원팀 대리

중요한 가치를 남기기 위해

이진희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켜본 바로는, 예술 행정을 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법‧제도나 지침에 압박과 부담을 느끼면서도 사업을 계속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 속에서도 어쨌든 과정의 경험과 결과물이 쌓일 텐데, 제도와 사업, 예산이 달라지면 거기에 새롭게 맞추느라 자칫 그간 쌓아온 내용이 휘발돼버릴 수 있지 않을까. 그간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조직의 중요한 가치로 남기기 위해 내부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박주호그런 점에서 광주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거점과 공간이다. 이를 통해 사업을 더욱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고 잘 기록해서 후임자에게 넘겨줄 수도 있고, 이다음 장기적인 로드맵을 그리는 것도 가능할 거라고 본다. 센터라는 물적 토대를 바탕으로 지향이 이어질 수 있게 되는 거다.

박슬기해당 사업에 특화된 담당자를 잘 양성하는 것도 방법이다. 하나의 업무를 길게 가져가며 진득하게 고민한다면 그 결과와 가치가 남지 않을까. 하지만 아무래도 대부분 문화재단이 순환보직 시스템인데다 직원 한 명이 여러 개의 사업을 맡고 있다 보니, 현실적으로는 좀 어려울 것 같기도 하다.

채지영요즘 다들 온라인 아카이빙을 해서 가시적인 결과물이 남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저도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사업과 예산이 스쳐 지나가는데, 문화재단 직원이라면 이것이 어떤 가치로 남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사업 담당자로서 소명 의식을 가지면 좋겠다. 100명 중 10명만이라도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여러 사업을 거친다고 가정해보면, 장애예술 사업을 하다 다른 사업을 하게 됐을 때 장애인 접근성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는 거다. 그러면 앞선 사업의 가치와 궁극적인 목표가 길고 넓게 퍼질 수 있지 않을까. 담당자 한 명의 마인드가 바뀌면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뀔 수 있다고 본다.

박주호가장 중요한 것이 사업 담당자의 의지와 태도, 노력이라는 의견에 매우 동의한다. 담당자가 어떻게 판단하고 기획하느냐에 따라 사업이 달라질 수 있으니, 어떻게 보면 그게 핵심이다.

이진희장애예술 지원사업은 관련 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당분간 안정적으로 진행되겠지만, 더욱 가치 있게 운영되기 위하여 개선 또는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 있을까? 예산뿐 아니라 어떤 조건들이 더 필요할지 이야기해보자.

박주호우리가 이 사업을 하는 이유, 목적은 결국 지역에 있는 장애인, 장애예술인을 위한 것이지 않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문화예술을 접하고 교육받고 문화 혜택을 누리고 싶은 수요도 있고, 예술인으로서 안정적으로 활동하고 자립할 수 있기를 원한다. 그래서 우리 문화재단은 그러한 여건과 환경을 만들려고 한다. 좋은 시설물을 건립해서 사업을 추진하고 실적을 쌓아가면 장애 인식 개선에도 도움이 되고, 이런 사업에 대한 필요성도 알리고, 당연하게 이 사업은 지속되고 발전할 거라고 본다.

이진희물적 토대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 것 같다. 그 공간이 매개가 되고 지역 장애예술의 자양분이 되어 지속 가능성을 만들 수 있다는 말씀으로 이해했다.

박슬기장애예술인뿐 아니라 비장애 예술인들도 공간 문제를 가장 먼저 이야기한다. 창작 활동이나 예술 활동 지원사업에 그칠 게 아니라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공간이 그러한 기본 조건이라는 거다. 그게 결국에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하나의 조건이 아닐까.

채지영예산을 빼놓고는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새로운 지원사업이 시작되면 최소 3년 이상은 뒷받침되었으면 한다. 지속적인 예산지원만큼 현장에서 절실한 것은 없을 것이다. 또한 그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는데, 먼저 정책 결정자들이 좀 더 큰 크림을 그리는 거다. 장애인이나 장애예술인을 취약계층, 복지 대상, 일시적 수혜자로만 보는 게 아니라, 주체적인 한 명의 예술인으로 보고 이들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기존의 예술 생태계를 고려하고 문화다양성 사업과 어떻게 상호 작용할 수 있을까도 생각해주면 좋겠다. 그리고 또 하나는 소통의 구조다. 법이 통과되고 기본계획 세워지고 예산 편성되고, 중앙과 광역과 기초로 내려오는 게 일방통행이다. 좋은 취지의 사업이고 예산이지만, 현장의 여건도 살펴보려는 정책 결정자들의 고민이 필요하다.

박주호현장 상황과 의견을 도외시하는 톱다운 방식에서 오는 불합리한 것들이 확실히 있다. 일할 사람은 없는데 예산을 줄 테니 빨리 추진하라는 식이다. 대부분 비슷하겠지만 문화재단 직원 급여가 넉넉한 편도 아니고, 좋은 인력들이 꿈을 가지고 들어왔다가 실망하고 떠난다. 5년 미만 직원의 이직률이 정말 높다. 그럼 남아있는 사람에게 업무가 쌓인다. 여기에 코로나 때 갑자기 온라인 사업이 생긴 것처럼 신규사업이 들어오고, 난리다. 날마다 전쟁이다.

박슬기예술인 복지 업무도 담당하고 있어서 예술인들이 많이 찾아오신다. 어떨 땐 정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루종일 예술인 만나고, 외근 나갔다 오면 기본 두세 시간, 또 일이 남았으니 야근해야 하고. 이런 날이 많다.

다채롭게, 꾸준히, 가까이 가닿도록

이진희공감한다. 어떠한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예산만 내려보내서 될 일이 아니다. 현장에는 충분히 준비할 시간과 사람이 필요하다. 이러한 환경 자체를 어떻게 바꿀지, 기존 사업과의 통합이나 재편 등 체계화에 대해서도 같이 고민할 수 있는 구조가 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장애예술정책이 지역화된다는 게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지역 문화재단의 입장에서 어떻게 전망하는지 궁금하다.

박주호문화재단이 우리 지역 현실에 맞는 문화예술 사업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있다. 여기에 더해 아까 이야기 나온 담당자의 소명 의식과 발전 방향에 관한 꾸준한 고민으로 사업을 잘 끌어낸다면, 좋은 성과로 이어지면서 의회를 설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명분도 생길 거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사업 명칭에 ‘광주형 장애인 문화예술 지원사업’이라고 지역명을 넣었다. 광주의 브랜드를 만들어보자는 의미도 있고, 그만큼 특색 있고 재미있게 해볼 수 있는 사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슬기지역화라는 단어를 통해 꾸준히 자극받으며, 오늘처럼 각 지역의 환경을 이해하는 기회가 많으면 좋겠다. 한 가지 사업이 각 지역의 특색에 맞게 다양한 색깔로 진행되고 결실을 맺고 발전해 나간다면, 어쩌면 이것도 문화예술이 가진 또 하나의 긍정적인 측면이지 않을까.

채지영경기문화재단에서는 관련 사업을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 앞으로 경기도 내 지역화가 어떻게 실현될지 저도 매우 궁금하다. 장애예술은 특히나 긴 호흡과 기다림이 필요한 분야이다. 내실을 다지며 길게 이어져 잘 보이지 않는 곳, 숨어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가닿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렇게 정보와 관심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자리도 더 많이 필요하다.

이진희서울에서는 파악하기 어려운 내용들, 지역 문화재단이기에 경험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해 정말 많이 배운 것 같다. 장애 인권 운동, 장애 문화예술 운동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장애예술이 지역에서 꽃피우는 데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고민하겠다. 함께 열심히 협력했으면 좋겠다.

박슬기

충북문화재단 문화복지 TF팀에서 예술인복지와 문화다양성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예술인의 창작 환경 지원, 예술활동증명 등록 지원과 함께 문화다양성의 가치 확산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qtr0513@cbfc.or.kr

박주호

광주문화재단에서 인사 업무, 한중전통문화교류 및 국제교류전, 미디어아트페스티벌, 공연장 상주단체 육성 지원사업 등을 담당했다. 올해는 2022 광주형 장애인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맡아, 장애예술인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기회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jfk5769@gjcf.or.kr

채지영

예술경영 및 문화정책을 전공했다. 경기문화재단 지역정책팀, 생활문화팀에서 근무했고, 현재 예술인지원팀에서 장애예술 지원사업과 예술과 기술의 융복합 지원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새로운 예술지원 패러다임 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chaejiyoung@ggcf.or.kr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 장애여성공감의 극단 ‘춤추는허리’에서 장애여성 동료들과 연극을 만든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rpvl72@gmail.com

정리. 최용휘 프로젝트 궁리 에디터 lotush0317@gmail.com
사진. 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2022년 11월 (36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의 조건에 따라 이용이 가능합니다.

댓글 남기기

제 2021-524호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WA-WEB 접근성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 | 1.업체명: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고 112 3.웹사이트:http://www.ieum.or.kr 4.유효기간:2021.05.03~2022.05.02 5.인증범위:이음 온라인 홈페이지 |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47조제1항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9조제5항에 따라 위와 같이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를 발급합니다. 2021년 05월 03일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