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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이> 속 여성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초상

이음광장 어리고 혼자일 수밖에 없는 어떤 여자애들

  • 조개인 작가
  • 등록일 2022-11-09
  • 조회수686

이슈

“사람이 어떻게 저래? 완전 ‘싸패’ 아냐?” 언제부턴가 하루에 한 번은 꼭 이런 말을 귀로 듣거나 눈으로 읽는다. 그때마다 묘한 기분이 드는데, 그것은 2022년에도 ‘정신병자’라는 단어가 모욕의 용도로 사용되는 것을 볼 때의 허탈함과 흡사하다.

사이코패스. 픽션과 논픽션을 불문하고 최근 몇 년간 한국 미디어가 가장 페티시적으로 천착하는 단어다. 일부 대중은 남성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무고한 약자들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이야기에 지치지도 않고 열광한다. 피해자가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고 살해되기 전에 성폭행까지 있었다면 더 그렇다. ‘정작 눈앞에 있는 사람은 못 때리면서 누가 대신 해 준다 그러면 과감해지는’ 사람들은 자신의 포르노적 욕망을 만족시켜 주는 사이코패스의 활약을 추앙하면서도, 그 존재에 대해서는 철저히 자신의 밖으로 선을 긋는다. ‘그냥 그런 정신을 타고난, 그래서 이해와 소통이 불가하고 그럴 필요도 없으며 무슨 짓을 저질러도 그럴 만한 사람’을 ‘사이코패스’라는 이름표로 편리하게 싸잡아 묶고 더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숱한 호명과 발화 속에서 정말로 사이코패스가 무엇인지 궁금증을 가지는 이는 몇이나 될까?

사실 ‘사이코패스’라는 정신의학적 진단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5판에서 가장 유사한 것을 꼽자면 ‘반사회적 인격장애’ 정도지만, 그것도 대중적인 ‘사이코패스’의 용례와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제임스 팰런, 『사이코패스 뇌과학자』, 김미선 옮김, 더퀘스트, 2020). 구체적 정의조차 없는 말이 여기저기서 신나게 남용되는 것에 신물이 나던 중, 20대 여대생 연쇄살인마가 한국 TV 드라마에 등장한다는 소식은 신선했다. ‘산소 같은 여자’ 이영애의 파격 변신으로도 화제가 되었던 <구경이> 이야기다.

체증을 해소해 줄 탄산 같은 것을 내심 예상했지만, 뜻밖에도 나는 ‘케이’의 첫 등장 장면부터 어떤 애상을 느끼고 말았다. 잘 보이고픈 친구를 위한 서프라이즈 이벤트로 몸집만 한 박스에 새끼고양이들과 함께 숨어 있느라 얼굴이 잔뜩 할퀴어진 모습. 사소한 호의의 기미에 철썩 달라붙어 괴이한 리스크를 감수하며 괴이한 방식으로 애정의 폭격을 퍼붓는 여자애. “걔는 어리고 혼자잖아” 케이를 두고 드라마 속에선 이 말이 반복된다. 케이는 소중한 사람이 흡족히 여길 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타인에게 이해받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 “고양이는 죽었는데 지는 왜 살아야 돼?” “저런 놈들은 씨를 말려야 되는데” 그의 소중한 사람이 스치듯 뱉었던 한마디는 잠언이자 이정표가 된다.

얄궂게도, 케이의 노력은 원하는 것을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든다. 온갖 애정의 서프라이즈를 받은 친구는 끝내 케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면서 무서우니 제발 내버려 두라고 빈다. 그날 저녁, 홀로 정처 없이 거리를 걷는 케이의 모습 위로 다른 상황 속 다른 인물의 독백이 마음의 소리처럼 겹쳐진다. “어떤 사람들은 날 때부터 사랑받고 되게 몸값이 높은데, 나는 그냥 날 때부터 싸구려에 불량품인 거예요” 그 길로 클럽에 들어간 케이가 현란하게 막춤을 추자 그의 주변으로 마치 지뢰가 심긴 것처럼 인파에 구멍이 생긴다. 그렇게 밤을 지새우고 부두에 누워 위태롭게 머리만 내민 케이를 두고 주변에서 수군거릴 때, 마침 걸려 온 소중한 이모의 전화에 그는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다. “맞다, 오늘 상담(치료) 날이지!”

이 일련의 장면들 곳곳에서, 나는 짙은 기시감을 느꼈다. 한 번 울 것을 삼십 번 울고, 30데시벨로 웃을 것을 100데시벨로 웃는. 엉뚱한 데서 죽어라 애쓰고 엉뚱한 데서 대책 없이 손을 놓는. 아무도 모르게 제멋대로 힘들고 아무도 이해 못 하는 방식으로 혼자 편안한. 혼자만의 시공간에서 몇 알의 약을 장군처럼 삼킬지도 모르는. 먼 사람이든 가까운 사람이든, 더러는 아끼고 위한다는 사람마저도 뒤에서든 면전에서든 미친년, 또라이, 정신병자라고 입방아를 찧을. 하필 그런 쪽은 기분 나쁘게 눈치가 빨라서 희미한 쑥덕임도 다 알아채고야 마는. 이런 복기조차 예민하고 지랄인 걸로 간주될, 그래서 ‘어리고 혼자인’ 그런 여자애들. 그런 여자애. 바로 나였다. 케이는 가상에 가까운 괴물이라기보다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 정신질환자의 뒤틀린 면모를 모은 콜라주 같았다. 나는 케이에 대해 그 이상으로 말을 덧붙이고 엮을 수 없었다.

케이가 저지른 일들은 명백한 범죄이기에, 결국 응당한 벌을 받는다. 그 와중에 손바닥만 한 감옥 창으로 스민 지는 해의 빛처럼, 케이의 공범 중에도 그가 살인자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길 진심으로 바란 이가 있었다는 사실이 그도 모르는 새 그 어린 얼굴을 잠시 어루만지고 간다. 그래서 다음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공허한 말이 가신 자리에 공기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 필자의 그림. 얼굴과 몸통에 걸쳐 나무로 분장을 한 여성이 혼자 테이블에 앉아 피자와 콜라를 먹고 있다. 윤곽으로만 그려진 주위의 사람들은 여성을 신경쓰지 않고 대화를 나누거나, 여성을 곁눈질로 보며 속닥이고 있다.

    “걔는 어리고 혼자잖아”

  • 위쪽에 나 있는 아주 작은 창문으로 희미한 빛이 들어와 텅빈 공간을 비춘다. 웅크리고 앉아 창문을 올려다보는 긴머리 여성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 어떤 구구절절한 사연도 죄 앞에서는 변명일 뿐이다.
    그렇기에, 같은 죄에는 같은 벌이 내려져야 한다.

조개인

‘다들 그렇다니까 그런 것’을 가장 경계하는 햇병아리 정신장애인 당사자. 아무리 못해도 자신을 속이지는 말자는, 유일하게 다짐한 바에 따라 어찌어찌 살고 있다.
milosaya@naver.com
인스타그램 바로가기(링크)

그림. 필자

조개인

조개인 

‘다들 그렇다니까 그런 것’을 가장 경계하는 햇병아리 정신장애인 당사자. 아무리 못해도 자신을 속이지는 말자는, 유일하게 다짐한 바에 따라 어찌어찌 살고 있다.
milosaya@naver.com

상세내용

이슈

“사람이 어떻게 저래? 완전 ‘싸패’ 아냐?” 언제부턴가 하루에 한 번은 꼭 이런 말을 귀로 듣거나 눈으로 읽는다. 그때마다 묘한 기분이 드는데, 그것은 2022년에도 ‘정신병자’라는 단어가 모욕의 용도로 사용되는 것을 볼 때의 허탈함과 흡사하다.

사이코패스. 픽션과 논픽션을 불문하고 최근 몇 년간 한국 미디어가 가장 페티시적으로 천착하는 단어다. 일부 대중은 남성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무고한 약자들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이야기에 지치지도 않고 열광한다. 피해자가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고 살해되기 전에 성폭행까지 있었다면 더 그렇다. ‘정작 눈앞에 있는 사람은 못 때리면서 누가 대신 해 준다 그러면 과감해지는’ 사람들은 자신의 포르노적 욕망을 만족시켜 주는 사이코패스의 활약을 추앙하면서도, 그 존재에 대해서는 철저히 자신의 밖으로 선을 긋는다. ‘그냥 그런 정신을 타고난, 그래서 이해와 소통이 불가하고 그럴 필요도 없으며 무슨 짓을 저질러도 그럴 만한 사람’을 ‘사이코패스’라는 이름표로 편리하게 싸잡아 묶고 더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숱한 호명과 발화 속에서 정말로 사이코패스가 무엇인지 궁금증을 가지는 이는 몇이나 될까?

사실 ‘사이코패스’라는 정신의학적 진단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5판에서 가장 유사한 것을 꼽자면 ‘반사회적 인격장애’ 정도지만, 그것도 대중적인 ‘사이코패스’의 용례와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제임스 팰런, 『사이코패스 뇌과학자』, 김미선 옮김, 더퀘스트, 2020). 구체적 정의조차 없는 말이 여기저기서 신나게 남용되는 것에 신물이 나던 중, 20대 여대생 연쇄살인마가 한국 TV 드라마에 등장한다는 소식은 신선했다. ‘산소 같은 여자’ 이영애의 파격 변신으로도 화제가 되었던 <구경이> 이야기다.

체증을 해소해 줄 탄산 같은 것을 내심 예상했지만, 뜻밖에도 나는 ‘케이’의 첫 등장 장면부터 어떤 애상을 느끼고 말았다. 잘 보이고픈 친구를 위한 서프라이즈 이벤트로 몸집만 한 박스에 새끼고양이들과 함께 숨어 있느라 얼굴이 잔뜩 할퀴어진 모습. 사소한 호의의 기미에 철썩 달라붙어 괴이한 리스크를 감수하며 괴이한 방식으로 애정의 폭격을 퍼붓는 여자애. “걔는 어리고 혼자잖아” 케이를 두고 드라마 속에선 이 말이 반복된다. 케이는 소중한 사람이 흡족히 여길 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타인에게 이해받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 “고양이는 죽었는데 지는 왜 살아야 돼?” “저런 놈들은 씨를 말려야 되는데” 그의 소중한 사람이 스치듯 뱉었던 한마디는 잠언이자 이정표가 된다.

얄궂게도, 케이의 노력은 원하는 것을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든다. 온갖 애정의 서프라이즈를 받은 친구는 끝내 케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면서 무서우니 제발 내버려 두라고 빈다. 그날 저녁, 홀로 정처 없이 거리를 걷는 케이의 모습 위로 다른 상황 속 다른 인물의 독백이 마음의 소리처럼 겹쳐진다. “어떤 사람들은 날 때부터 사랑받고 되게 몸값이 높은데, 나는 그냥 날 때부터 싸구려에 불량품인 거예요” 그 길로 클럽에 들어간 케이가 현란하게 막춤을 추자 그의 주변으로 마치 지뢰가 심긴 것처럼 인파에 구멍이 생긴다. 그렇게 밤을 지새우고 부두에 누워 위태롭게 머리만 내민 케이를 두고 주변에서 수군거릴 때, 마침 걸려 온 소중한 이모의 전화에 그는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다. “맞다, 오늘 상담(치료) 날이지!”

이 일련의 장면들 곳곳에서, 나는 짙은 기시감을 느꼈다. 한 번 울 것을 삼십 번 울고, 30데시벨로 웃을 것을 100데시벨로 웃는. 엉뚱한 데서 죽어라 애쓰고 엉뚱한 데서 대책 없이 손을 놓는. 아무도 모르게 제멋대로 힘들고 아무도 이해 못 하는 방식으로 혼자 편안한. 혼자만의 시공간에서 몇 알의 약을 장군처럼 삼킬지도 모르는. 먼 사람이든 가까운 사람이든, 더러는 아끼고 위한다는 사람마저도 뒤에서든 면전에서든 미친년, 또라이, 정신병자라고 입방아를 찧을. 하필 그런 쪽은 기분 나쁘게 눈치가 빨라서 희미한 쑥덕임도 다 알아채고야 마는. 이런 복기조차 예민하고 지랄인 걸로 간주될, 그래서 ‘어리고 혼자인’ 그런 여자애들. 그런 여자애. 바로 나였다. 케이는 가상에 가까운 괴물이라기보다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 정신질환자의 뒤틀린 면모를 모은 콜라주 같았다. 나는 케이에 대해 그 이상으로 말을 덧붙이고 엮을 수 없었다.

케이가 저지른 일들은 명백한 범죄이기에, 결국 응당한 벌을 받는다. 그 와중에 손바닥만 한 감옥 창으로 스민 지는 해의 빛처럼, 케이의 공범 중에도 그가 살인자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길 진심으로 바란 이가 있었다는 사실이 그도 모르는 새 그 어린 얼굴을 잠시 어루만지고 간다. 그래서 다음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공허한 말이 가신 자리에 공기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 필자의 그림. 얼굴과 몸통에 걸쳐 나무로 분장을 한 여성이 혼자 테이블에 앉아 피자와 콜라를 먹고 있다. 윤곽으로만 그려진 주위의 사람들은 여성을 신경쓰지 않고 대화를 나누거나, 여성을 곁눈질로 보며 속닥이고 있다.

    “걔는 어리고 혼자잖아”

  • 위쪽에 나 있는 아주 작은 창문으로 희미한 빛이 들어와 텅빈 공간을 비춘다. 웅크리고 앉아 창문을 올려다보는 긴머리 여성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 어떤 구구절절한 사연도 죄 앞에서는 변명일 뿐이다.
    그렇기에, 같은 죄에는 같은 벌이 내려져야 한다.

조개인

‘다들 그렇다니까 그런 것’을 가장 경계하는 햇병아리 정신장애인 당사자. 아무리 못해도 자신을 속이지는 말자는, 유일하게 다짐한 바에 따라 어찌어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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