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웹진 이음

극단 애인 <제4의 벽>

리뷰 관념의 벽을 깨고 관객과 마주하기

  • 유연주 연극평론가
  • 등록일 2022-11-23
  • 조회수1110

리뷰

  • '제4의 벽' 공연 장면. 왼편에 휠체어를 탄 파우스트 역 배우가 괴이한 표정과 손동작을 하고 있고, 오른편에 그것을 바라보는 당황한 표정과 몸짓의 연출 역 배우, 뒤편으로 허리 높이의 작은 의자에 대고 대본에 뭔가를 적고 있는 조연출 역 배우가 보인다.

2020년 <1인 무대> 이후 극단 애인의 작품을 기다려왔다. 그렇다고 그동안 극단 애인이 마냥 쉰 것은 아니다. 중간중간 여러 형태로 공연했고, 단원들의 개별 활동도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극단과 단원들의 다양한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자신의 몸과 움직임을 탐구해온 강보람, 장애에 대한 고민을 웃음으로 풀어내는 강희철, 자신만의 언어와 호흡을 탐구하며 연기를 갈고 닦아온 백우람뿐 아니라 모든 단원이 함께 내부 창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이번 <제4의 벽>은 극단 애인이 코로나19 팬데믹을 어떻게 통과해왔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장애미학으로 재탄생한 풍자와 비판

원작인 니콜라이 예브레이노프의 <제4의 벽>은 스타니슬랍스키식의 사실주의 (정확히는 초기 극사실주의) 연출방법론에 대한 풍자극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파우스트>를 공연하기 위해 파우스트가 살았던 시대 독일의 모든 것을 ‘리얼’하게 그려내야 한다는 강박과, 또 그렇게 해야만 무대예술의 사실주의를 완성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극장장, 그리고 그를 비웃으며 조정하는 연출보조가 중심이 되어 극을 이끌어간다.

파우스트 역을 맡은 배우는 극장에서 먹고 자며 ‘진정한’ 파우스트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공연팀은 그 시대의 복장과 소품, 무대, 언어 등을 무대에서 그대로 재현하고자 애쓴다. 그런데 사실적으로 재현하려 애쓰면 애쓸수록 공연은 우스꽝스러워지고 결국 그런 노력은 실패로 끝나게 된다. 이 작품의 압권은 무대 위에 제4의 벽을 세우는 데 있다. 객석에 있는 관객을 마주하지 못하고 벽에 감추어진 파우스트 역의 배우가 결국 이런 공연에 한계를 느껴 자살(쇼)하는 것으로 끝이 남으로써 사실주의라는 ‘주의’의 문제를 풍자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극단 애인의 <제4의 벽>은 원작의 큰 골격은 놔둔 채 사실주의 비판에서 ‘장애미학주의’ 비판으로 관점을 옮겨 각색했다. <파우스트>를 장애미학주의에 따라 무대화하려는 연출가와 그의 지시에 따르는/따를 수밖에 없는 파우스트 역의 배우, 연출가의 예술관에 심취해서 그를 추종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은 그를 조롱하는 조연출, 이렇게 셋이 중심이 된다.

장애 연극으로 재탄생한 <파우스트>의 모습은 어떠할까. 먼저 연출가는 장애가 있는 배우의 몸과 그러한 몸으로 인한 한계 상황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연출해나간다. 그는 장애가 있는 배우가 물잔을 들기 위해 팔을 뻗는 상황과 물잔을 들고서 부들부들 떨리는 팔이 장애미학주의의 완성을 돕는다고 생각한다. 그는 배우의 몸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드러나게끔 장면을 구축하고 나서야 만족하는데, 거기에 조연출이 본격적으로 끼어들어 공연을 한층 더 기괴하게 바꾸어나가기 시작한다. 어떤 대사든지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 장애미학주의라며, 대사 내용과 관계없는 휠체어 움직임을 넣고 기괴한 표정만 짓게 하기도 한다. 이렇게 장애를 극대화해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장애미학주의이고, 파우스트의 허무함과 고뇌를 드러내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결국 장애미학주의라는 이름 아래, 대사는 언어장애가 있는 조연출이 대신 읽고 신체장애가 있는 배우는 몸으로 연기하는 기괴한 파우스트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파우스트 역의 배우는 이게 연극이냐며 좌절한다.

납작하게 고정된 정의는 없다

이 작품은 장애미학주의라는 이름으로 장애미학을 납작하게 만들어버리는 상황을 통렬하게 풍자하는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공연 내내 객석에서는 웃음소리가 그칠 새가 없었지만, 그 과정에서 관객은 "장애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그 정의에 대한 고민부터, 장애와 장애미학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만들어내는 장애 연극을 향한 비판까지 뒤섞여 머릿속이 복잡하다. 짧은 공연 시간 안에 답을 내리긴 어렵지만, 공연장 밖에 나와서도 연극이 던진 질문을 곱씹게 된다는 점에서 긴 뒷맛을 남기는 작품이었다.

장애 연극이란 무엇인가, 장애미학이란 무엇인가. 극단 애인을 비롯해 많은 장애(인) 극단이 고민하는 지점일 듯하다. 극의 내용과 형식보다 장애인 배우의 존재에 몰입해버리는, 배우의 장애에만 초점이 가 있어 공연과 상관없이 연민과 동정의 감정을 갖는 관객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연극인을 꽤 보았다. 실제로 많은 관객이 그랬다. 그런데 이번 공연을 보면서 관객이 달라졌다고 느꼈다. 배우의 리듬에 맞추어 함께 호흡하고 대사와 움직임을 지켜보며 그들이 만들어내는 순간순간을 관객은 즐기고 있었다. 장애 연극의 역사가 깊어지고 장애인 배우의 활동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관객은 성장할 것이다.

‘장애미학이란 이런 것이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극단의 역사와 함께 새로운 연극 미학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극단 애인의 작업이 바로 장애미학이고, 장애미학은 극단 애인과 함께 매번 새롭게 정의내려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들의 옆에는 관객이 함께한다.

  • '제4의 벽' 공연 장면. 오른편에 뭔가 열심히 말하는 익살스러운 표정의 연출 역 배우, 왼편에 허리 높이의 의자에 대본을 올려놓고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그를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조연출 역 배우.
  • '제4의 벽' 공연 장면. 휠체어를 탄 파우스트 역 배우가 대본을 열심히 보고 있고, 뒤편으로 허리 높이의 의자에 손을 짚고 그를 바라보고 있는 조연출 역 배우.

제4의 벽

극단 애인 | 2022.10.19.~10.23. | 성북마을극장

“무대에서 장애는 미학적인가?” 니콜라이 예브레이노프의 원작에서 ‘파우스트’를 진짜로 보여주기 위해 사실주의, 자연주의에 입각하여 관객과 무대 사이에 벽을 세우고 “있는 그대로의 예술이 진짜 예술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면, 극단 애인의 <제4의 벽>은 ‘장애미학주의’라는 새로운 양식으로 바꾸어 묻는다. 장애예술에서 무엇을 바라보는가, 장애가 미학적인 이유는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공연정보 바로가기(링크)

유연주

연극평론가.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연극을 꿈꾼다.
likegoethe@nate.com
페이스북 바로가기(링크)

사진 제공. 극단 애인

2022년 12월 (37호)

유연주

유연주 

연극평론가
likegoethe@nate.com

상세내용

리뷰

  • '제4의 벽' 공연 장면. 왼편에 휠체어를 탄 파우스트 역 배우가 괴이한 표정과 손동작을 하고 있고, 오른편에 그것을 바라보는 당황한 표정과 몸짓의 연출 역 배우, 뒤편으로 허리 높이의 작은 의자에 대고 대본에 뭔가를 적고 있는 조연출 역 배우가 보인다.

2020년 <1인 무대> 이후 극단 애인의 작품을 기다려왔다. 그렇다고 그동안 극단 애인이 마냥 쉰 것은 아니다. 중간중간 여러 형태로 공연했고, 단원들의 개별 활동도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극단과 단원들의 다양한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자신의 몸과 움직임을 탐구해온 강보람, 장애에 대한 고민을 웃음으로 풀어내는 강희철, 자신만의 언어와 호흡을 탐구하며 연기를 갈고 닦아온 백우람뿐 아니라 모든 단원이 함께 내부 창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이번 <제4의 벽>은 극단 애인이 코로나19 팬데믹을 어떻게 통과해왔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장애미학으로 재탄생한 풍자와 비판

원작인 니콜라이 예브레이노프의 <제4의 벽>은 스타니슬랍스키식의 사실주의 (정확히는 초기 극사실주의) 연출방법론에 대한 풍자극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파우스트>를 공연하기 위해 파우스트가 살았던 시대 독일의 모든 것을 ‘리얼’하게 그려내야 한다는 강박과, 또 그렇게 해야만 무대예술의 사실주의를 완성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극장장, 그리고 그를 비웃으며 조정하는 연출보조가 중심이 되어 극을 이끌어간다.

파우스트 역을 맡은 배우는 극장에서 먹고 자며 ‘진정한’ 파우스트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공연팀은 그 시대의 복장과 소품, 무대, 언어 등을 무대에서 그대로 재현하고자 애쓴다. 그런데 사실적으로 재현하려 애쓰면 애쓸수록 공연은 우스꽝스러워지고 결국 그런 노력은 실패로 끝나게 된다. 이 작품의 압권은 무대 위에 제4의 벽을 세우는 데 있다. 객석에 있는 관객을 마주하지 못하고 벽에 감추어진 파우스트 역의 배우가 결국 이런 공연에 한계를 느껴 자살(쇼)하는 것으로 끝이 남으로써 사실주의라는 ‘주의’의 문제를 풍자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극단 애인의 <제4의 벽>은 원작의 큰 골격은 놔둔 채 사실주의 비판에서 ‘장애미학주의’ 비판으로 관점을 옮겨 각색했다. <파우스트>를 장애미학주의에 따라 무대화하려는 연출가와 그의 지시에 따르는/따를 수밖에 없는 파우스트 역의 배우, 연출가의 예술관에 심취해서 그를 추종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은 그를 조롱하는 조연출, 이렇게 셋이 중심이 된다.

장애 연극으로 재탄생한 <파우스트>의 모습은 어떠할까. 먼저 연출가는 장애가 있는 배우의 몸과 그러한 몸으로 인한 한계 상황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연출해나간다. 그는 장애가 있는 배우가 물잔을 들기 위해 팔을 뻗는 상황과 물잔을 들고서 부들부들 떨리는 팔이 장애미학주의의 완성을 돕는다고 생각한다. 그는 배우의 몸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드러나게끔 장면을 구축하고 나서야 만족하는데, 거기에 조연출이 본격적으로 끼어들어 공연을 한층 더 기괴하게 바꾸어나가기 시작한다. 어떤 대사든지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 장애미학주의라며, 대사 내용과 관계없는 휠체어 움직임을 넣고 기괴한 표정만 짓게 하기도 한다. 이렇게 장애를 극대화해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장애미학주의이고, 파우스트의 허무함과 고뇌를 드러내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결국 장애미학주의라는 이름 아래, 대사는 언어장애가 있는 조연출이 대신 읽고 신체장애가 있는 배우는 몸으로 연기하는 기괴한 파우스트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파우스트 역의 배우는 이게 연극이냐며 좌절한다.

납작하게 고정된 정의는 없다

이 작품은 장애미학주의라는 이름으로 장애미학을 납작하게 만들어버리는 상황을 통렬하게 풍자하는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공연 내내 객석에서는 웃음소리가 그칠 새가 없었지만, 그 과정에서 관객은 "장애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그 정의에 대한 고민부터, 장애와 장애미학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만들어내는 장애 연극을 향한 비판까지 뒤섞여 머릿속이 복잡하다. 짧은 공연 시간 안에 답을 내리긴 어렵지만, 공연장 밖에 나와서도 연극이 던진 질문을 곱씹게 된다는 점에서 긴 뒷맛을 남기는 작품이었다.

장애 연극이란 무엇인가, 장애미학이란 무엇인가. 극단 애인을 비롯해 많은 장애(인) 극단이 고민하는 지점일 듯하다. 극의 내용과 형식보다 장애인 배우의 존재에 몰입해버리는, 배우의 장애에만 초점이 가 있어 공연과 상관없이 연민과 동정의 감정을 갖는 관객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연극인을 꽤 보았다. 실제로 많은 관객이 그랬다. 그런데 이번 공연을 보면서 관객이 달라졌다고 느꼈다. 배우의 리듬에 맞추어 함께 호흡하고 대사와 움직임을 지켜보며 그들이 만들어내는 순간순간을 관객은 즐기고 있었다. 장애 연극의 역사가 깊어지고 장애인 배우의 활동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관객은 성장할 것이다.

‘장애미학이란 이런 것이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극단의 역사와 함께 새로운 연극 미학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극단 애인의 작업이 바로 장애미학이고, 장애미학은 극단 애인과 함께 매번 새롭게 정의내려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들의 옆에는 관객이 함께한다.

  • '제4의 벽' 공연 장면. 오른편에 뭔가 열심히 말하는 익살스러운 표정의 연출 역 배우, 왼편에 허리 높이의 의자에 대본을 올려놓고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그를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조연출 역 배우.
  • '제4의 벽' 공연 장면. 휠체어를 탄 파우스트 역 배우가 대본을 열심히 보고 있고, 뒤편으로 허리 높이의 의자에 손을 짚고 그를 바라보고 있는 조연출 역 배우.

제4의 벽

극단 애인 | 2022.10.19.~10.23. | 성북마을극장

“무대에서 장애는 미학적인가?” 니콜라이 예브레이노프의 원작에서 ‘파우스트’를 진짜로 보여주기 위해 사실주의, 자연주의에 입각하여 관객과 무대 사이에 벽을 세우고 “있는 그대로의 예술이 진짜 예술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면, 극단 애인의 <제4의 벽>은 ‘장애미학주의’라는 새로운 양식으로 바꾸어 묻는다. 장애예술에서 무엇을 바라보는가, 장애가 미학적인 이유는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공연정보 바로가기(링크)

유연주

연극평론가.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연극을 꿈꾼다.
likegoethe@nate.com
페이스북 바로가기(링크)

사진 제공. 극단 애인

2022년 12월 (37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의 조건에 따라 이용이 가능합니다.

댓글 남기기

2022-12-16 13:05:07

비밀번호

작성하신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배우들의 숨소리마저 들릴 듯한 작은 공연장에서 세 배우님들의 연기 몰입해서 봤어요. 새침한 연출가, 교활한(?) 조연출, 열연하는 주인공 역의 배우님까지. 각자의 상황에서 100번도 더 나왔을 것 같은 '장애미학'이 귓가를 울리네요. 실존을 부정당하고 좌절하며 절규하던 희철 배우님의 모습과 암전된 무대에서 묵묵히 무대를 준비하던 보람 배우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글을 보면서 가끔 웃어도 될까 눈치보지 말고 좀더 맘 편히 웃어도 되었겠다 싶네요ㅎ

제 2021-524호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WA-WEB 접근성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 | 1.업체명: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고 112 3.웹사이트:http://www.ieum.or.kr 4.유효기간:2021.05.03~2022.05.02 5.인증범위:이음 온라인 홈페이지 |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47조제1항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9조제5항에 따라 위와 같이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를 발급합니다. 2021년 05월 03일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