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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라는 바다에서의 항해일지②

이음광장 여리지만 강한, 작은 선장들

  • 이승규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 부단장
  • 등록일 2023-01-11
  • 조회수464

이음광장

내가 속해 있는 극단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이하 휠)’에서는 기회가 될 때마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연극 아카데미’를 진행해왔다. 올해로 벌써 11기를 맞았으며, 그동안 많은 장애인이 이 아카데미를 통해 예술인으로 성장하였다. 물론 우리 극단의 연극 아카데미가 예술인을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것만을 목표로 하는 건 아니다. 참여자 중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중도에 포기하거나 단지 경험으로 그친 이들도 있다. 휠의 송정아 단장은 긴 시간 동안 장애인의 자립생활에 관심을 두고 그들의 독립적인 활동을 위해 현장에서 꾸준히 경험을 쌓아왔다. 20년 넘게 장애인극단을 운영해온 그는, 장애인들이 연극을 통해 억눌려있던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면서, 예술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장애를 슬기롭게 받아들이는 과정을 만들기 위해 연극 아카데미를 연다고 했다. 그렇다면 여기에 가장 부합하는 대상자는 누구일까?

2019년 말, 휠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뇌병변장애인인 아들이 무용을 배우고 있는데, 평소 교류가 있는 또래의 장애청소년들에게 연극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단장님과 의논하여 프로그램을 진행하려 하였으나,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하면서 한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 차일피일 미뤄졌고, 2021년 말이 돼서야 프로그램을 시작할 수 있었다. 참여자들은 장애의 정도에 따라 다양한 차이를 보였고, 대부분 언어장애를 동반했다. 서로 비슷한 연령대이고 오랫동안 교류했던 터라 친구의 입을 통해, 그도 어려우면 핸드폰을 이용해 소통하였다. 아이들에게 연기를 가르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신체에 제약이 있고 대사 전달 또한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에겐 ‘열정’과 ‘의지’가 있었다.

다행히도 당시 강사로 참여한 분은 장애가 있는 청소년을 가르친 경험이 많았다. 상황극을 통해 참여자의 흥미를 높이고 표현을 끌어내려 노력했다. 보조강사로 참여했던 나는 처음에는 쭈뼛거리며 소극적이던 참여자들이 점차 과감해지고 자유로워지는 과정을 함께 지켜봤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장애청소년에게 얼마나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단기간의 교육으로 끝내기엔 서로가 아쉬움이 컸기에 우리는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참여한 모두가 함께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보자고 말이다. 그 바람대로 2022년 7월에 ‘제11기 연극 아카데미’에서 그들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새롭게 강사로 참여한 분도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움직임과 표현력에 감탄하였고, 그들이 가진 감각을 극대화하기 위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연습을 반복하였다. 참여자 대부분이 휠체어를 사용하고 있어서 움직임이 단조롭고 제한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각자 주어진 환경에서 다양한 표현을 하는 걸 보면서, 나 역시 다른 유형의 장애인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처음 하는 공연이라 긴장하여 평소보다 움직임이 위축되기도 했지만, 그들은 무대에서 빛이 났고 관객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표현 그대로 그들은 몸짓으로 꿈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도 무대 뒤에서 그들 ‘인생에서의 첫 무대’를 축하했다.

예술 활동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지원이 필요하다. 장애가 없는 청소년도 그러한데 장애가 있는 청소년의 경우에는 그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들을 뒷받침하는 것은 바로 부모의 몫이다. 그들이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단지 부모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 아이들의 당당한 모습을 보고 싶은 간절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장애’라는 특성으로 발생하는 신체적, 정신적인 한계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재능을 마음껏 펼치고 원하는 활동에 집중하면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그리고 장애가 있는 청소년 당사자의 마음도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장애청소년의 예술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부모에게만 맡기는 것이 옳은 일일까. 아이들의 첫 무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장애청소년이 좀 더 양질의 교육을 받고 꾸준한 경험을 쌓는다면 경쟁력을 갖춘 전문예술인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역할은 지금과 같이 일시적인 경험에 그치지 않도록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교육 형태를 갖춘 전문기관이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젊은 인재들이 필요하다. 그들이 있어야 발전할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 생긴다. 젊은 선장들이 없으면 그 세대에서 항해는 끝날 것이고, 바다는 얼어붙고 머지않아 활기를 잃게 될 것이다. 예술이라는 푸른 바다가 흐르기 위해선 전문예술단체의 역할과 함께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 의자, 매트, 소파 등이 보이는 공간. 한 명의 휠체어 장애인이 양팔을 머리 위에서 움직이고 있고, 네 명의 휠체어 장애인이과 한 명의 여성이 이를 둘러싸고 서서 바라보고 있다. 모두 립뷰 마스크를 썼다.

    연극 아카데미 수업 중

  • 암전된 무대. 뒤쪽 스크린에 파랑색 바탕에 흰색 점과 뿌연연기 같은 이미지가 떠 있고, 이 강렬한 빛이 공간을 채운다. 휠체어 장애인 한 명의 실루엣이 보인다.

    발표회 리허설 중

이승규

선천성 저시력 장애인. 2016년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에 입단했고 현재 부단장을 맡고 있다. 장애인식개선교육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연극 <옥상 위를 부탁해> <언제나 맑음> <내 친구 상훈이>  <귀를 기울이면> 등 여러 작품에 출연했다. 연극 <덜어내기>를 썼고, 을 쓰고 연출했다.
coca5201@naver.com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 홈페이지(링크)

사진제공. 필자

이승규

이승규 

선천성 저시력 장애인. 2016년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에 입단했고 현재 부단장을 맡고 있다. 장애인식개선교육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연극 <옥상 위를 부탁해> <언제나 맑음> <내 친구 상훈이> <귀를 기울이면> 등 여러 작품에 출연했다. 연극 <덜어내기>를 썼고, 을 쓰고 연출했다.
coca5201@naver.com

상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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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해 있는 극단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이하 휠)’에서는 기회가 될 때마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연극 아카데미’를 진행해왔다. 올해로 벌써 11기를 맞았으며, 그동안 많은 장애인이 이 아카데미를 통해 예술인으로 성장하였다. 물론 우리 극단의 연극 아카데미가 예술인을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것만을 목표로 하는 건 아니다. 참여자 중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중도에 포기하거나 단지 경험으로 그친 이들도 있다. 휠의 송정아 단장은 긴 시간 동안 장애인의 자립생활에 관심을 두고 그들의 독립적인 활동을 위해 현장에서 꾸준히 경험을 쌓아왔다. 20년 넘게 장애인극단을 운영해온 그는, 장애인들이 연극을 통해 억눌려있던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면서, 예술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장애를 슬기롭게 받아들이는 과정을 만들기 위해 연극 아카데미를 연다고 했다. 그렇다면 여기에 가장 부합하는 대상자는 누구일까?

2019년 말, 휠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뇌병변장애인인 아들이 무용을 배우고 있는데, 평소 교류가 있는 또래의 장애청소년들에게 연극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단장님과 의논하여 프로그램을 진행하려 하였으나,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하면서 한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 차일피일 미뤄졌고, 2021년 말이 돼서야 프로그램을 시작할 수 있었다. 참여자들은 장애의 정도에 따라 다양한 차이를 보였고, 대부분 언어장애를 동반했다. 서로 비슷한 연령대이고 오랫동안 교류했던 터라 친구의 입을 통해, 그도 어려우면 핸드폰을 이용해 소통하였다. 아이들에게 연기를 가르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신체에 제약이 있고 대사 전달 또한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에겐 ‘열정’과 ‘의지’가 있었다.

다행히도 당시 강사로 참여한 분은 장애가 있는 청소년을 가르친 경험이 많았다. 상황극을 통해 참여자의 흥미를 높이고 표현을 끌어내려 노력했다. 보조강사로 참여했던 나는 처음에는 쭈뼛거리며 소극적이던 참여자들이 점차 과감해지고 자유로워지는 과정을 함께 지켜봤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장애청소년에게 얼마나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단기간의 교육으로 끝내기엔 서로가 아쉬움이 컸기에 우리는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참여한 모두가 함께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보자고 말이다. 그 바람대로 2022년 7월에 ‘제11기 연극 아카데미’에서 그들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새롭게 강사로 참여한 분도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움직임과 표현력에 감탄하였고, 그들이 가진 감각을 극대화하기 위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연습을 반복하였다. 참여자 대부분이 휠체어를 사용하고 있어서 움직임이 단조롭고 제한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각자 주어진 환경에서 다양한 표현을 하는 걸 보면서, 나 역시 다른 유형의 장애인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처음 하는 공연이라 긴장하여 평소보다 움직임이 위축되기도 했지만, 그들은 무대에서 빛이 났고 관객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표현 그대로 그들은 몸짓으로 꿈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도 무대 뒤에서 그들 ‘인생에서의 첫 무대’를 축하했다.

예술 활동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지원이 필요하다. 장애가 없는 청소년도 그러한데 장애가 있는 청소년의 경우에는 그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들을 뒷받침하는 것은 바로 부모의 몫이다. 그들이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단지 부모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 아이들의 당당한 모습을 보고 싶은 간절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장애’라는 특성으로 발생하는 신체적, 정신적인 한계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재능을 마음껏 펼치고 원하는 활동에 집중하면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그리고 장애가 있는 청소년 당사자의 마음도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장애청소년의 예술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부모에게만 맡기는 것이 옳은 일일까. 아이들의 첫 무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장애청소년이 좀 더 양질의 교육을 받고 꾸준한 경험을 쌓는다면 경쟁력을 갖춘 전문예술인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역할은 지금과 같이 일시적인 경험에 그치지 않도록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교육 형태를 갖춘 전문기관이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젊은 인재들이 필요하다. 그들이 있어야 발전할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 생긴다. 젊은 선장들이 없으면 그 세대에서 항해는 끝날 것이고, 바다는 얼어붙고 머지않아 활기를 잃게 될 것이다. 예술이라는 푸른 바다가 흐르기 위해선 전문예술단체의 역할과 함께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 의자, 매트, 소파 등이 보이는 공간. 한 명의 휠체어 장애인이 양팔을 머리 위에서 움직이고 있고, 네 명의 휠체어 장애인이과 한 명의 여성이 이를 둘러싸고 서서 바라보고 있다. 모두 립뷰 마스크를 썼다.

    연극 아카데미 수업 중

  • 암전된 무대. 뒤쪽 스크린에 파랑색 바탕에 흰색 점과 뿌연연기 같은 이미지가 떠 있고, 이 강렬한 빛이 공간을 채운다. 휠체어 장애인 한 명의 실루엣이 보인다.

    발표회 리허설 중

이승규

선천성 저시력 장애인. 2016년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에 입단했고 현재 부단장을 맡고 있다. 장애인식개선교육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연극 <옥상 위를 부탁해> <언제나 맑음> <내 친구 상훈이>  <귀를 기울이면> 등 여러 작품에 출연했다. 연극 <덜어내기>를 썼고, 을 쓰고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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