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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라는 바다에서의 항해일지③

이음광장 우리에겐 등대가 필요하다

  • 이승규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 부단장
  • 등록일 2023-02-08
  • 조회수422

이음광장

인간은 살아가면서 자연스레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인간뿐만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이 그러하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환경에서 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환경의 영향을 더욱 크게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장애인이다. 저시력 시각장애가 있는 나 역시 환경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초·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집에서 버스로 40여 분을 이동해야 했다. 그때는 지금과 같은 버스정보안내기도 없었고 버스의 번호판도 매우 작아서 시각장애가 있는 내가 이용하기에는 무척 힘든 상황이었다. 정류장에서도 승객이 미리 손을 들지 않으면 멈추지도 않고 지나쳐 가는 경우도 부지기수였고, 그 뒷감당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지금은 음성이 지원되는 버스정보안내기도 있고 버스 번호판 역시 크게 표시돼 버스를 이용하기가 수월해졌다. 이렇게 환경이 바뀌면 어려웠던 일이 가능해지는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예술환경에 관해서 특별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때는 내가 예술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예술인이라는 말이 어색하기도 했고, 내가 그렇게 불릴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이 들어서였다. 지금은 장애예술인으로 살아가면서 점차 예술환경에 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이하게도 내 주변에는, 혹은 내가 아는 한에서는 예술인이라면 누구나 손꼽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출신의 장애예술인은 없었다. 단지 입학 기준이 높아서일까? 나는 얼마 전 읽게 된 신문기사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한예종의 편견… 장애인 없는 과 “이성적 작업 못 해서”, 한겨레, 2022.10.07.(링크))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김예지 국회의원이 한예종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예종 전체 27개 학과 중 11개 학과에서 장애 학생을 선발하는 특수교육대상자 특별전형이 없다고 한다. 그중에는 연극원, 무용원, 전통예술원 등 신체를 많이 쓰는 실기과가 포함되어 있었다. 예술인을 양성하고 배출하는 대표적 교육기관인 한예종에서 장애 학생을 뽑지 않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이 역시 국정감사 자료에 나와 있었다. 자료에 따르면, 무용원의 경우 ‘긴밀한 협업 능력이 필수이기에 신체적‧지적 장애를 가진 학생에게 일반 학생과 같은 수준의 수업을 함께 진행하거나, 소수의 장애 학생만을 위한 별도의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라고 사유를 밝혔고, 향후에도 장애 학생을 뽑을 계획이 없다고 했다. 전통예술원은 ‘다양한 전통악기를 직접 배우고, 다각도로 실험하며 창작곡을 써나가는 과정은 정신적으로 고통스럽게 몰두하며 끊임없는 인내를 감수해내야 하며, 객관적 및 주관적 사고를 하며 이성적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만들어가는 작업이라 신체적‧지적 장애를 가진 학생들에게는 실행하기 어려움’이라고 밝히며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특수교육대상자 전형을 실시하지 않겠다고 했다. 설명은 거창하지만 결국 ‘장애인이 가지고 있는 신체·정신적인 한계’를 이유로 ‘예술이라는 바다’로 가는 지름길에 장애물을 설치하여 접근을 막은 것이다.

내가 속한 장애인극단에서는 여건이 닿는 대로 장애인을 위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다른 많은 유사 기관도 마찬가지로 저마다의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예술인을 꿈꾸는 장애인들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단기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경험’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과정이 그러하듯이 이러한 경험이 꾸준히 쌓이고 반복적인 훈련 과정을 거쳐야 결실을 맺을 수가 있지 않나. 앞서 한예종에서도 ‘고통스럽게 몰두하며 끊임없는 인내를 감수’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장애인이 예술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체계적인 훈련 과정이 있는 예술학과를 거치지 않고 멀리 돌아 예술단체나 사회복지시설에서 제공하는 교육프로그램에 의존하는 방법이 과연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비장애학생과 같은 수준의 수업을 함께 진행하거나 소수의 장애 학생만을 위한 별도의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장애인의 개별 특성에 맞는 환경을 갖춘 교육기관을 설치하고 운영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일 것이다.

지금은 문화예술이 세계를 움직이는 시대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문화강국으로 성장했고 그 한 축에는 장애예술도 포함되어 있다. 나는 우리 사회가 이를 외면하지 않고 장애·비장애를 아우르는 진정한 문화강국으로 성장하리라 믿는다. 그러기 위해선 어두운 바다에서 선장들을 이끌어 줄 수 있는 등대가 절실히 필요하다. 향후 그 여건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란 믿음을 가져본다.

  • 무대 위, 뒷 배경에는 6X3 바둑판 모양의 프레임 두 개가 붙어 있고, 양쪽에는 나무로 뼈대만 만든 문이 세워져 있다. 중앙 뒤편에는 누군가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고, 휠체어를 탄 배우를 포함한 네 명이 검은색 복장을 한 채 무대 위에 있다.
  • 작은 강당으로 보이는 공간, 연극이 진행 중이다. 토끼 얼굴 가면을 쓴 사람과 휠체어를 탄 사람이 마주보며 대화하고, 귀부인 옷차림의 휠체어 탄 여성이 이를 바라본다. 마법사 복장을 하고 목발을 짚은 사람, 해적 모자를 쓴 사람 둘도 한쪽에서 그들을 보고 있다.

이승규

선천성 저시력 장애인. 2016년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에 입단했고 현재 부단장을 맡고 있다. 장애인식개선교육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연극 <옥상 위를 부탁해> <언제나 맑음> <내 친구 상훈이> <귀를 기울이면> 등 여러 작품에 출연했다. 연극 <덜어내기>를 썼고, 을 쓰고 연출했다.
coca5201@naver.com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 홈페이지(링크)

사진제공. 필자

이승규

이승규 

선천성 저시력 장애인. 2016년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에 입단했고 현재 부단장을 맡고 있다. 장애인식개선교육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연극 <옥상 위를 부탁해> <언제나 맑음> <내 친구 상훈이> <귀를 기울이면> 등 여러 작품에 출연했다. 연극 <덜어내기>를 썼고, 을 쓰고 연출했다.
coca52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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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광장

인간은 살아가면서 자연스레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인간뿐만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이 그러하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환경에서 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환경의 영향을 더욱 크게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장애인이다. 저시력 시각장애가 있는 나 역시 환경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초·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집에서 버스로 40여 분을 이동해야 했다. 그때는 지금과 같은 버스정보안내기도 없었고 버스의 번호판도 매우 작아서 시각장애가 있는 내가 이용하기에는 무척 힘든 상황이었다. 정류장에서도 승객이 미리 손을 들지 않으면 멈추지도 않고 지나쳐 가는 경우도 부지기수였고, 그 뒷감당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지금은 음성이 지원되는 버스정보안내기도 있고 버스 번호판 역시 크게 표시돼 버스를 이용하기가 수월해졌다. 이렇게 환경이 바뀌면 어려웠던 일이 가능해지는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예술환경에 관해서 특별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때는 내가 예술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예술인이라는 말이 어색하기도 했고, 내가 그렇게 불릴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이 들어서였다. 지금은 장애예술인으로 살아가면서 점차 예술환경에 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이하게도 내 주변에는, 혹은 내가 아는 한에서는 예술인이라면 누구나 손꼽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출신의 장애예술인은 없었다. 단지 입학 기준이 높아서일까? 나는 얼마 전 읽게 된 신문기사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한예종의 편견… 장애인 없는 과 “이성적 작업 못 해서”, 한겨레, 2022.10.07.(링크))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김예지 국회의원이 한예종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예종 전체 27개 학과 중 11개 학과에서 장애 학생을 선발하는 특수교육대상자 특별전형이 없다고 한다. 그중에는 연극원, 무용원, 전통예술원 등 신체를 많이 쓰는 실기과가 포함되어 있었다. 예술인을 양성하고 배출하는 대표적 교육기관인 한예종에서 장애 학생을 뽑지 않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이 역시 국정감사 자료에 나와 있었다. 자료에 따르면, 무용원의 경우 ‘긴밀한 협업 능력이 필수이기에 신체적‧지적 장애를 가진 학생에게 일반 학생과 같은 수준의 수업을 함께 진행하거나, 소수의 장애 학생만을 위한 별도의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라고 사유를 밝혔고, 향후에도 장애 학생을 뽑을 계획이 없다고 했다. 전통예술원은 ‘다양한 전통악기를 직접 배우고, 다각도로 실험하며 창작곡을 써나가는 과정은 정신적으로 고통스럽게 몰두하며 끊임없는 인내를 감수해내야 하며, 객관적 및 주관적 사고를 하며 이성적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만들어가는 작업이라 신체적‧지적 장애를 가진 학생들에게는 실행하기 어려움’이라고 밝히며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특수교육대상자 전형을 실시하지 않겠다고 했다. 설명은 거창하지만 결국 ‘장애인이 가지고 있는 신체·정신적인 한계’를 이유로 ‘예술이라는 바다’로 가는 지름길에 장애물을 설치하여 접근을 막은 것이다.

내가 속한 장애인극단에서는 여건이 닿는 대로 장애인을 위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다른 많은 유사 기관도 마찬가지로 저마다의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예술인을 꿈꾸는 장애인들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단기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경험’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과정이 그러하듯이 이러한 경험이 꾸준히 쌓이고 반복적인 훈련 과정을 거쳐야 결실을 맺을 수가 있지 않나. 앞서 한예종에서도 ‘고통스럽게 몰두하며 끊임없는 인내를 감수’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장애인이 예술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체계적인 훈련 과정이 있는 예술학과를 거치지 않고 멀리 돌아 예술단체나 사회복지시설에서 제공하는 교육프로그램에 의존하는 방법이 과연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비장애학생과 같은 수준의 수업을 함께 진행하거나 소수의 장애 학생만을 위한 별도의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장애인의 개별 특성에 맞는 환경을 갖춘 교육기관을 설치하고 운영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일 것이다.

지금은 문화예술이 세계를 움직이는 시대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문화강국으로 성장했고 그 한 축에는 장애예술도 포함되어 있다. 나는 우리 사회가 이를 외면하지 않고 장애·비장애를 아우르는 진정한 문화강국으로 성장하리라 믿는다. 그러기 위해선 어두운 바다에서 선장들을 이끌어 줄 수 있는 등대가 절실히 필요하다. 향후 그 여건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란 믿음을 가져본다.

  • 무대 위, 뒷 배경에는 6X3 바둑판 모양의 프레임 두 개가 붙어 있고, 양쪽에는 나무로 뼈대만 만든 문이 세워져 있다. 중앙 뒤편에는 누군가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고, 휠체어를 탄 배우를 포함한 네 명이 검은색 복장을 한 채 무대 위에 있다.
  • 작은 강당으로 보이는 공간, 연극이 진행 중이다. 토끼 얼굴 가면을 쓴 사람과 휠체어를 탄 사람이 마주보며 대화하고, 귀부인 옷차림의 휠체어 탄 여성이 이를 바라본다. 마법사 복장을 하고 목발을 짚은 사람, 해적 모자를 쓴 사람 둘도 한쪽에서 그들을 보고 있다.

이승규

선천성 저시력 장애인. 2016년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에 입단했고 현재 부단장을 맡고 있다. 장애인식개선교육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연극 <옥상 위를 부탁해> <언제나 맑음> <내 친구 상훈이> <귀를 기울이면> 등 여러 작품에 출연했다. 연극 <덜어내기>를 썼고, 을 쓰고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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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7 06:5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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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종에 특수교육대상자 전형이 없었다니...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 문화 예술계에서 장애 비장애 구분없이 배리어프리가 제도적으로도 활발히 지원이 되어야 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는 기사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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