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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인 무용수의 엄마로 살아가기③

이음광장 변화를 두려워하는 엄마, 도전하는 아들

  • 조은숙 언어치료사
  • 등록일 2023-02-08
  • 조회수791

이음광장

장애 아들을 키우며 불안한 순간이 너무 많았다. 특히 학령기에는 아이의 나이가 더해질수록 불안이 깊어져 갔다. 아침마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며 웃는 얼굴로 좋은 하루 보내라고 인사를 하지만, 돌아서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날카로운 바늘이 가슴을 찌르는 듯 아팠다. 불량한 친구들에게 나쁜 일을 당하지 않을까. 공부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유령 취급을 당하지 않을까. 짓궂은 친구들이 아들의 행동이나 말 습관을 따라 하며 놀리지 않을까.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설명하지 못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걱정 때문에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학년이 바뀔 때면 친구들과 선생님이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매번 했다. 새로운 환경에 아들을 적응시켜야 하는 일과 새로운 친구, 선생님에게 아들을 이해시켜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변화가 싫었다.

아들은 2년 정도 현대무용을 했다. 나는 발레나 한국무용은 어렸을 때부터 기본기를 익혀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반면에 현대무용은 기본기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감성을 틀에 박힌 방식이 아닌 자유로운 동작으로 표현하면 될 것 같았다. 아들은 2021년 장애인문화예술지원 연수 단원으로 활동하게 되었고, 새로운 장르인 한국 창작무용을 시작했다. 무용에 문외한인 나는 한국창작무용과 한국무용이 다른 장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에게 한국무용은 지루하고 TV에 나오면 채널을 돌리게 하는 장르였다. 게다가 퓨전 한국창작무용 <품바, Ya!>라는 작품을 연습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걸인들의 집단인 각설이패가 떠오르며 그들의 익살스러운 제스처와 한 푼 달라고 소리 지르며 구걸하는 장면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아들은 다운증후군이다. 가만히 거리를 걸어가도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시 고개를 돌려 얼굴을 확인한다. 나는 아들이 어린아이 같은 행동이나 몸짓을 해도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대로를 받아주지만, 사람들은 바로 그 모습에 주목한다. 아마도 이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것 같다. 그래서 아들이 좀 더 멋있어 보이는 무용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품바, Ya!>는 그런 내 바람을 무너뜨리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익살스러운 표정과 동작, 동정을 구하는 대사, 남루한 의상 등을 생각하며 ‘가만히 있어도 불쌍해 보일 수 있는데 시장에서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한 푼 줍쇼!”를 외치는 작품을 해야 하나?’라고 생각했다.

퓨전 한국창작무용이라는 낯선 장르의 <품바, Ya!> 연습은 시작되었지만 내 맘은 편하지 않았다. 더구나 이전과는 달리 비장애 무용수들과 함께하기 때문에 속도와 동작을 맞출 수 있을지 걱정도 됐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아들은 커뮤니티에 올라온 연습 동영상을 반복해서 보며 “엄마! 연습이 너무 재미있어요!”라고 말했다. 엄마는 작품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는데 아들은 예술을 통해서 또 하나의 세계를 배우고 있었다. 어색했던 춤사위도 연습 시간이 늘어날수록 조금씩 자연스러워졌다. 음악보다 동작이 빠를 때도 있고 느릴 때도 있지만, 비장애 무용수들과 함께 어울려 춤추는 것이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지적장애를 가진 무용수들이 자신감 있게 멋진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반복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연습 시간에는 전문무용수들이 항상 동참하며 장애 무용수들을 이끌어 주었다. 장애 무용수와 비장애 무용수의 통합이라는 의미 있는 작품을 위해 안무가와 전문무용수들은 반복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 수고의 결과로 2022년에 제주 국제학교 브랭섬홀아시아, 서산해미읍성축제, 아산시 장애인의날 행사, 서울나래학교 등 여러 곳에 초청공연을 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 5월 일본 가나가와현의 오다와라 산노마루 홀 초청공연과 9월 스페인 세빌리아의 장애인문화예술행사 등 국제적인 무대에까지 초청받았다.

아들이 공연할 때면 난 항상 객석에 앉는다. 매니저의 입장으로 관객의 반응을 살피기도 하고, 관객의 입장으로 아들의 공연을 바라보기도 한다. 관객들은 작품에 흐르는 감정에 이입되어 박수를 치고 장단에 맞춰 추임새를 넣으며 환호성을 지른다. 내가 걱정했던 것과 달리 그들은 아들을 불쌍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장애가 있음에도 무용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자신의 삶을 사는 무용수로 바라본다. 연습과 공연이 거듭될수록 아들이 무대 위에서 공연을 즐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때론 주어진 공연 시간의 변동으로 동선이 달라져도 당황하지 않고 지혜롭게 잘 맞추는 것을 보면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공연 전에 떨린다는 말을 많이 했던 아들이 지금은 “연습 많이 해서 괜찮아요. 잘할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난 아들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도록 ‘수고의 짐’을 져준 모든 무용수에게 감사할 뿐이다.

아들이 여기에 오기까지 정말 많이 받았던 질문 중 하나가 “장애를 가진 아이가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제 역할을 잘 감당하며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막연하게 대답했다. 이것은 장애 자녀를 둔 모든 부모의 가장 큰 바람일 것이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사회에서 거부당하지 않고 작은 일이라도 하며 함께 사는 것이 행복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대 이면에는 장애 자녀가 사회구성원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걱정과 염려가 있다. 시간을 되돌려 봤을 때 내가 경험하지 않은 환경, 예측하지 못한 사건들에 대해 걱정하고 근심했던 것들은 실제로는 조금밖에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들이 이루어졌고, 이루어져 가고 있다. 부모는 장애 자녀의 미래에 기대보다 걱정이 많을 수 있다. 자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재능을 가졌는지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복적인 가르침과 스스로 할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도 필요하겠지만, ‘내 아이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믿음 안에서 ‘앞으로 또 어떤 흥미로운 일이 일어날까?’ 기대하기 위해서는, 장애인을 이해하고 이들이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꺼이 수고를 감당하는 비장애인의 고마운 헌신 또한 필요하리라 생각하며 연재를 마친다.

  • 열 대여섯 명의 장애인 및 비장애인 배우, 관계자 등이 무대 위에서 관객을 향해 저마다 동작을 하며 인사한다. 여러 색의 헝겊 조각을 흰색 셔츠에 덧댄 품바 의상의 배우들은 손을 뻗거나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고 있다.

    제주 국제학교 브랭섬홀아시아에서의 <품바, Ya!> 공연

  • 야외 축제 현장, 공연 분장을 한 장애 무용수. 보라색빛 얇은 저고리에 파랑색 계열 여러 겹의 하의를 입고, 허리에는 화려한 무늬가 그려진 두툼한 너비의 띠를 둘렀다. 머리에는 상투를 틀고 손에 커다란 합죽선을 들고 있다.

    서산해미읍성축제에서 공연한 필자의 장애 무용수 아들

조은숙

다운증후군 아들에 대한 의사의 부정적인 소견을 듣고, 배고플 때 “밥 달라”는 소리는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특수교육대학원에서 언어치료를 공부했다. 이 일을 통해 장애아동의 언어치료뿐만 아니라 이들의 부모님을 위로하고 지지하는 역할도 했다. 말 한마디 못할 것 같던 아들이 어엿한 무용수가 되었고, 아들 덕분에 <열두 개의 문>이라는 작품에 참여하며 ‘무용린이’로 거듭났다.
esjo64@daum.net

사진 제공. 필자

조은숙

조은숙 

다운증후군 아들에 대한 의사의 부정적인 소견을 듣고, 배고플 때 “밥 달라”는 소리는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특수교육대학원에서 언어치료를 공부했다. 이 일을 통해 장애아동의 언어치료뿐만 아니라 이들의 부모님을 위로하고 지지하는 역할도 했다. 말 한마디 못할 것 같던 아들이 어엿한 무용수가 되었고, 아들 덕분에 <열두 개의 문>이라는 작품에 참여하며 ‘무용린이’로 거듭났다.
esjo64@daum.net

상세내용

이음광장

장애 아들을 키우며 불안한 순간이 너무 많았다. 특히 학령기에는 아이의 나이가 더해질수록 불안이 깊어져 갔다. 아침마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며 웃는 얼굴로 좋은 하루 보내라고 인사를 하지만, 돌아서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날카로운 바늘이 가슴을 찌르는 듯 아팠다. 불량한 친구들에게 나쁜 일을 당하지 않을까. 공부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유령 취급을 당하지 않을까. 짓궂은 친구들이 아들의 행동이나 말 습관을 따라 하며 놀리지 않을까.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설명하지 못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걱정 때문에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학년이 바뀔 때면 친구들과 선생님이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매번 했다. 새로운 환경에 아들을 적응시켜야 하는 일과 새로운 친구, 선생님에게 아들을 이해시켜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변화가 싫었다.

아들은 2년 정도 현대무용을 했다. 나는 발레나 한국무용은 어렸을 때부터 기본기를 익혀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반면에 현대무용은 기본기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감성을 틀에 박힌 방식이 아닌 자유로운 동작으로 표현하면 될 것 같았다. 아들은 2021년 장애인문화예술지원 연수 단원으로 활동하게 되었고, 새로운 장르인 한국 창작무용을 시작했다. 무용에 문외한인 나는 한국창작무용과 한국무용이 다른 장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에게 한국무용은 지루하고 TV에 나오면 채널을 돌리게 하는 장르였다. 게다가 퓨전 한국창작무용 <품바, Ya!>라는 작품을 연습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걸인들의 집단인 각설이패가 떠오르며 그들의 익살스러운 제스처와 한 푼 달라고 소리 지르며 구걸하는 장면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아들은 다운증후군이다. 가만히 거리를 걸어가도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시 고개를 돌려 얼굴을 확인한다. 나는 아들이 어린아이 같은 행동이나 몸짓을 해도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대로를 받아주지만, 사람들은 바로 그 모습에 주목한다. 아마도 이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것 같다. 그래서 아들이 좀 더 멋있어 보이는 무용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품바, Ya!>는 그런 내 바람을 무너뜨리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익살스러운 표정과 동작, 동정을 구하는 대사, 남루한 의상 등을 생각하며 ‘가만히 있어도 불쌍해 보일 수 있는데 시장에서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한 푼 줍쇼!”를 외치는 작품을 해야 하나?’라고 생각했다.

퓨전 한국창작무용이라는 낯선 장르의 <품바, Ya!> 연습은 시작되었지만 내 맘은 편하지 않았다. 더구나 이전과는 달리 비장애 무용수들과 함께하기 때문에 속도와 동작을 맞출 수 있을지 걱정도 됐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아들은 커뮤니티에 올라온 연습 동영상을 반복해서 보며 “엄마! 연습이 너무 재미있어요!”라고 말했다. 엄마는 작품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는데 아들은 예술을 통해서 또 하나의 세계를 배우고 있었다. 어색했던 춤사위도 연습 시간이 늘어날수록 조금씩 자연스러워졌다. 음악보다 동작이 빠를 때도 있고 느릴 때도 있지만, 비장애 무용수들과 함께 어울려 춤추는 것이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지적장애를 가진 무용수들이 자신감 있게 멋진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반복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연습 시간에는 전문무용수들이 항상 동참하며 장애 무용수들을 이끌어 주었다. 장애 무용수와 비장애 무용수의 통합이라는 의미 있는 작품을 위해 안무가와 전문무용수들은 반복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 수고의 결과로 2022년에 제주 국제학교 브랭섬홀아시아, 서산해미읍성축제, 아산시 장애인의날 행사, 서울나래학교 등 여러 곳에 초청공연을 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 5월 일본 가나가와현의 오다와라 산노마루 홀 초청공연과 9월 스페인 세빌리아의 장애인문화예술행사 등 국제적인 무대에까지 초청받았다.

아들이 공연할 때면 난 항상 객석에 앉는다. 매니저의 입장으로 관객의 반응을 살피기도 하고, 관객의 입장으로 아들의 공연을 바라보기도 한다. 관객들은 작품에 흐르는 감정에 이입되어 박수를 치고 장단에 맞춰 추임새를 넣으며 환호성을 지른다. 내가 걱정했던 것과 달리 그들은 아들을 불쌍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장애가 있음에도 무용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자신의 삶을 사는 무용수로 바라본다. 연습과 공연이 거듭될수록 아들이 무대 위에서 공연을 즐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때론 주어진 공연 시간의 변동으로 동선이 달라져도 당황하지 않고 지혜롭게 잘 맞추는 것을 보면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공연 전에 떨린다는 말을 많이 했던 아들이 지금은 “연습 많이 해서 괜찮아요. 잘할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난 아들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도록 ‘수고의 짐’을 져준 모든 무용수에게 감사할 뿐이다.

아들이 여기에 오기까지 정말 많이 받았던 질문 중 하나가 “장애를 가진 아이가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제 역할을 잘 감당하며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막연하게 대답했다. 이것은 장애 자녀를 둔 모든 부모의 가장 큰 바람일 것이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사회에서 거부당하지 않고 작은 일이라도 하며 함께 사는 것이 행복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대 이면에는 장애 자녀가 사회구성원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걱정과 염려가 있다. 시간을 되돌려 봤을 때 내가 경험하지 않은 환경, 예측하지 못한 사건들에 대해 걱정하고 근심했던 것들은 실제로는 조금밖에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들이 이루어졌고, 이루어져 가고 있다. 부모는 장애 자녀의 미래에 기대보다 걱정이 많을 수 있다. 자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재능을 가졌는지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복적인 가르침과 스스로 할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도 필요하겠지만, ‘내 아이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믿음 안에서 ‘앞으로 또 어떤 흥미로운 일이 일어날까?’ 기대하기 위해서는, 장애인을 이해하고 이들이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꺼이 수고를 감당하는 비장애인의 고마운 헌신 또한 필요하리라 생각하며 연재를 마친다.

  • 열 대여섯 명의 장애인 및 비장애인 배우, 관계자 등이 무대 위에서 관객을 향해 저마다 동작을 하며 인사한다. 여러 색의 헝겊 조각을 흰색 셔츠에 덧댄 품바 의상의 배우들은 손을 뻗거나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고 있다.

    제주 국제학교 브랭섬홀아시아에서의 <품바, Ya!> 공연

  • 야외 축제 현장, 공연 분장을 한 장애 무용수. 보라색빛 얇은 저고리에 파랑색 계열 여러 겹의 하의를 입고, 허리에는 화려한 무늬가 그려진 두툼한 너비의 띠를 둘렀다. 머리에는 상투를 틀고 손에 커다란 합죽선을 들고 있다.

    서산해미읍성축제에서 공연한 필자의 장애 무용수 아들

조은숙

다운증후군 아들에 대한 의사의 부정적인 소견을 듣고, 배고플 때 “밥 달라”는 소리는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특수교육대학원에서 언어치료를 공부했다. 이 일을 통해 장애아동의 언어치료뿐만 아니라 이들의 부모님을 위로하고 지지하는 역할도 했다. 말 한마디 못할 것 같던 아들이 어엿한 무용수가 되었고, 아들 덕분에 <열두 개의 문>이라는 작품에 참여하며 ‘무용린이’로 거듭났다.
esjo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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