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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벨 지노 파리8대학 무용과 교수

인터뷰 연약함으로 연결되는 몸의 실천을 찾아서

  • 성무량 프로듀서
  • 등록일 2023-05-31
  • 조회수1041

인터뷰

변덕스러운 날씨가 잠시 귀한 햇살을 내어준 봄날 오후에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이자벨 지노(Isabelle Ginot) 교수와 마주 앉았다. 빨강 머리의 그녀는 상아탑의 교수라기보다는 거리의 투사처럼 자유로워 보였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과 함께 <예술과 연약함(Arts and Vulnerability)>이라는 다소 낯선 제목의 국제협력 리서치 프로젝트를 시작한 그녀를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 빨강색 머리카락, 빨강색 동그란 뚤테 안경, 파란색 귀걸이를 한 이자벨이 테이블에 팔을 올리고 오른손으로는 턱을 괸 자세로 정면을 응시한다. 나무로 된 벽을 배경으로 의자엔 몇 개의 패브릭 쿠션도 놓여있다.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인데 시간을 내어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 우선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드린다.

무용평론가로 일을 시작했다. 이후 파리8대학에 무용과가 생기면서 대학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파리8대학은 들뢰즈 등 유명한 이론가들로 이미 명성이 있는 곳이었고, 대학이 어떠해야 한다는 비전에 대해 굉장히 열려 있는 곳이다. 학과를 설립한 학과장을 비롯해 초기 멤버들은 무용계와 긴밀히 연결하고자 했고, 이것은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무용과의 정체성이다. 우리는 항상 실천에 기반하여 춤을 읽고, 엮고, 혼합해서 새로운 개념을 구성하고, 또 이론적으로 성찰하려고 한다. 이런 믿음의 근간에는 무용수의 실천을 통한 지식과 이론적 지식 모두가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는 철학이 있다.

이론보다 실천적인 측면에서 더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렇다면 현재의 연구 관심사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무용에 대한 이론이나 연구가 정치적, 혹은 사회적으로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에 관심이 많다. 지난 15년 동안 공연 분석이나 무용 비평보다는, 움직임과 춤이 약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권한을 부여(empowering)할 수 있는가에 대해 연구해 왔다. 대학 동료들과 무용수, 창작자, 소마틱 지도자, 사회복지사 등과 함께 춤과 움직임 연습이 어떻게 하면 현장과 연계된 실천(practice)이 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그러면서 장애에 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장애’ 연구의 길을 걷게 된 과정이다. 사실 프랑스에서는 ‘장애’라는 말이 없기도 하고, 이제 막 시작된 학문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연구를 하면서 세계 여러 나라의 장애학, 장애예술 등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 네크워크를 통해 이 분야에 관한 영감을 나누고 시각을 확장해 왔다.

프로젝트 제목이 <예술과 장애>가 아니라 <예술과 연약함>인데, 어떤 의미인가?

흔히 말하는 ‘장애’라는 단어를 굳이 사용하지 않은 것은, 우리가 하려는 것이 궁극적으로 장애에 국한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서다. 무엇이 장애인지, 어떤 종류의 장애가 있는지 등을 규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 연구 방식은 주로 ‘억압(oppression)’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억압의 원인이 무엇이든지―장애든, 이주든, 성별이든, 인종이든―그것을 마주해야 한다. 물론, 사회 속에서 모두가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정치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춤을 통해’ 우리가 그것을 해결할 수 있을지,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할지 등이 바로 나의 질문이다. 춤이 억압이나 불평등을 해결하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 그 춤이 정치적 의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실천에 기반한 연구라고 하셨는데, 기존의 ‘학문적’ 연구와 어떤 차이가 있나?

실천에 기반한 연구가 학계에 지배적인 학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천학(practice-based)’이라는 단어는 영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실제 연구’ ‘실습 기반’ ‘현장 연구’ 등과 같은 다양한 하위 범주가 있다. 이러한 작업 방식들은 공존하면서 서로 깊이 연관을 맺고 있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정의된 바는 없다. 우리는 사회학이나 무용학, 인류학 등 어떤 방법론을 가지고 주제에 그것을 적용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람, 장소, 지형, 문제 등 무엇이든지 먼저 그 상황에서 시작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질문과 깊이 연결되는 방법론을 구축하려고 한다. 연약함이나 장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여성이지만, 특권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백인’이다. 나는 장애인이 아니다. 따라서 내가 연구자로서 장애인이나 예술가, 이주민 등을 지원하는 연구를 한다면, 할 수 있는 첫 번째 일은 그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가치를 부여하도록 돕는 일일 것이다.

그것이 이번 리서치 프로젝트에서 참가자들과 함께하고 있는 ‘바디스토밍’으로 발전한 것인가?

그렇다. 최근 몇 년 동안 학문적 교육 시스템의 표준과 관습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고 있었다. 매우 개방적인 방식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25년 이상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나에게 가르침은 일상이 되었고, 그것에서 빠져나가기가 정말 어려웠다. 그래서 더 나은 교육 방법을 찾고자 학생, 무용수들과 2년간 워킹그룹을 만들어서 ‘바디스토밍(body storming)’이라는 방식을 개발했다. 바디스토밍은 이슈를 공유하는 방법론으로, 참가자들과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에 관해 논의할 것인지 등을 소통하는 방식이다. 바디스토밍은 하나의 과정으로서의 상태일 뿐, 무엇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풍경 만들기(landscaping)’는 어떤 중요한 상황에 대해 공유하는 방식이다. 특히, 고립된 상태에서 작업하는 비장애인 무용수들에게 이 방식은 획기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다른 사람의 지식을 공유하는 이 스토리텔링은 어떤 사람들이 겪은 어려웠던 상황 등을 공유하고, 그룹이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해준다.

  • 콘크리트 벽체와 나무 테이블로 꾸며진 카페 안. 두 사람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다.
  • 이자벨이 대화하고 있다.

이번 한국에서의 워크숍 첫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스태프들까지도 함께 활동하도록 한 것이다. 대개 프로듀서들은 직접 참여하기보다는 뒤에서 지원하는 데 더 익숙하다. 이런 연구 프로젝트에서 프로듀서들과의 협업이 어떻게 진행이 될지 매우 기대된다.

프로덕션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엄청난 양의 지식이 순환되는 것 같다. 이 점은 늘 흥미롭다. 이론적·정치적 토론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런 것들이 이번 리서치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어떤 연관성이 있고, 우리가 그것에 동의하고 있는지 등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이론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우리는 정치적 인식도 함께할 수 있다. 물론, 사람마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며, 이는 지식 체계에 따른 결과다. 창작물 안에서 장애에 관해 이야기할 때 이런 맥락은 언제나 중요하다. 예를 들어, 우리가 휠체어가 접근할 수 없는 극장에서 휠체어 사용자와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만들려고 한다면, 그 맥락 자체가 프로젝트의 중심이 될 것이다. 또, 생태학적 관점으로도 바라볼 수 있다. 프로덕션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정확히 프로젝트의 생태라는 관점에서 작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창작하고, 어떤 사람은 지원한다는 것은 흔한 고정관념이다. 시대는 변하고 있고, 우리는 그러한 시각을 바꿔야 한다.

이제 한국에서의 일정을 마치면 프랑스로 돌아가서 참가자들과 온라인으로 리서치를 이어가게 될 텐데, 어떤 주제와 포맷으로 진행되나? 그 과정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프랑스와 비교해 보면, 우리 리서치 그룹의 강점은 참가자들이 제도 밖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기관의 지원을 받기는 하지만, 각자가 기관에 소속돼 있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 기반으로 작업하고 있어서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그들은 극장 공연을 하고, 도시 안에 살고 있으며, 스튜디오에서 작업한다. 극장, 도심, 스튜디오는 어떤 맥락에서는 서로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각자 독립적으로 분리된 부분도 있다. 이번 리서치에서는 참가자들에게 ‘리서치 그룹’으로서 가장 시급한 질문이 무엇인지 정할 것을 제안했다. 물론, 이 ‘시급한 문제’가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내 역할은 그 필요가 무엇이고, 해결 방법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것일 뿐이다. 자료가 부족한 상황이라 우리의 논의 중에 이론적 질문이 빠진 것은 아닌지, 예술이나 리서치를 생산적인 방식으로 하고 있는지, 다양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과 협업하기 위해 제대로 된 방식을 구축하고 있는지 등을 질문하고 있다.

이 리서치 프로젝트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 것으로 예상하나?

이 프로젝트가 뭔가를 꼭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리서치 그룹에서는 함께 상상하고 함께 보는 것도 중요하다. 어떤 사물, 책, 잡지, 논문 혹은 우리가 보호하고자 하는 집단을 함께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결과가 무엇이 될지 알아내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이번 한국에서의 워크숍은 결과로 가기 위한 경로(route)를 파악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프랑스에서 작업하고 있는 프로젝트에서는 참여자 모두 각자의 작업방식을 공유했다. 그중에 발달장애 무용수가 있었는데, 긴 기간 동안 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 그녀에게 ‘맵핑(mapping)’부터 해보라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녹색 감자, 붉은 감자가 그려진 아주 우아한 도표를 만들었고, 빙 둘러앉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로 들어가서 그 그림을 놓고 자신의 작업을 들려줬다. 이처럼 리서치 참가자들이 가져오는 모든 것이 우리 연구의 자원(resource) 역할을 할 것이다. 나는 우리 프로젝트에 어떤 예측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프로젝트에 대한 공통된 접근 방식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 자체도 직접적인, 또는 간접적인 자원이 될 수 있다.

시차에 적응할 새도 없이 새로운 환경을 흡수하며 참가자들과 연일 진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숨차게 들어보았다. 일부는 우리나라 장애예술계와 겹치는 상황도 있었고, 어떤 부분은 문화적 차이가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사회적 약자 이슈에 접근할 때 어떤 방법론으로 리서치 하는 것이 더 현장에 밀착하는 것일까 하는 고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워크숍은 그런 문제의식의 출발점이 되었고, 향후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서로 지식을 공유하고 장애예술가들과의 만남을 이어갈 예정이다. 변화의 조짐을 감지한 참가자들의 눈빛을 통해 이후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상상해보았다.

  • 오디오 장비와 큰 에어컨이 설치돼 있는 넓은 연습실 안. 한 사람이 발꿈치를 모으고 양 팔을 아래쪽 사선으로 늘어뜨린 자세를 하고 서 있다. 여러 명의 참여자가 둥그런 모양으로 각자 편하게 앉아 이 모습을 지켜본다.
  • 큰 스크린이 설치돼 있는 넓은 연습실 안. 마주선 두 사람이 두 팔은 맞잡아 위 아래로 뻗고 다리는 조금 구부린 자세를 하고 있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두 명씩 짝을 지어 각각 다양한 동작을 하고 있다.
  • 큰 스크린이 설치돼 있는 넓은 연습실 안.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서서 각자 다른 동작을 하고 있다. 한 사람은 양 팔을 사선으로 쭉 뻗고 다리를 벌린 자세, 한 사람은 양 팔을 접어 가슴쪽으로 모은 자세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도 각자 혹은 짝을 지어 동작을 하고 있다.
  • 넓은 연습실 안. 열 명 남짓 참여자가 일렬로 서서 각자 앞사람의 어깨에 손을 짚은 채 웃고 있다.
  • 넓은 연습실 안. 여러 사람이 옆으로 나란히 서서 허리 높이고 손을 올리고, 서로의 손바닥을 약간의 간격을 두고 마주보도록 하고 있다.
  • 넓은 연습실 안. 열 여섯 명 남짓한 사람들이 의자나 바닥에 둥그렇게 모여 앉은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가운데에는 커다란 흰 종이가 놓여 있다.

국제협력 리서치 프로젝트 <예술과 연약함(Arts and Vulnerability)>
오프라인 리서치 워크숍(2023.04.21.~28.,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연습실) ©이규철

국제협력 리서치 프로젝트 <예술과 연약함(Arts and Vulnerability)>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은 국내 장애예술 창작 환경을 살펴 이를 토대로 발전 방향을 전망하고 장애예술 콘텐츠를 확보하고자 국제협력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이에 국내외 장애예술 관련 전문가 9인이 참여하여, 다양한 장애 이슈에 관해 탐구하는 국제협력 리서치 <예술과 연약함>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그 첫해로 한국 장애예술의 사회적 상황과 필요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고 구체적인 연구 계획을 세울 예정이다. 지난 4월 21~28일에는 이자벨 지노(Isabelle Ginot) 교수가 한국의 참가자들과 함께 이슈를 되짚어보고 실천에 기반한 연구를 위한 공동방법론을 모색하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자벨 지노(Isabelle Ginot)

파리8대학 무용과 교수로, 특히 사회적 취약성의 맥락에서 신체 및 무용 연습과 정치적, 사회적 용도에 관한 연구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A.I.M.E.(Associations of Moving and Committed Individuals)의 공동 창립자인 그녀는 사회적 또는 건강이 불안정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무용과 신체 훈련을 기반으로 한 일련의 신체 훈련법을 개발했다.
연구 분야 : 신체 기술, 신체적 방법론, 무용과 장애의 사회적·신체적 연계, 예술 프로젝트, 안무 작업에 대한 분석
파리8대학 홈페이지 인물 정보(링크)

성무량

축제와 극장을 거쳐 현재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mooryang@hotmail.com

번역·정리. 이윤숙 스탭서울 PD
사진. 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자료제공.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023년 5월 (41호)

상세내용

인터뷰

변덕스러운 날씨가 잠시 귀한 햇살을 내어준 봄날 오후에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이자벨 지노(Isabelle Ginot) 교수와 마주 앉았다. 빨강 머리의 그녀는 상아탑의 교수라기보다는 거리의 투사처럼 자유로워 보였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과 함께 <예술과 연약함(Arts and Vulnerability)>이라는 다소 낯선 제목의 국제협력 리서치 프로젝트를 시작한 그녀를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 빨강색 머리카락, 빨강색 동그란 뚤테 안경, 파란색 귀걸이를 한 이자벨이 테이블에 팔을 올리고 오른손으로는 턱을 괸 자세로 정면을 응시한다. 나무로 된 벽을 배경으로 의자엔 몇 개의 패브릭 쿠션도 놓여있다.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인데 시간을 내어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 우선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드린다.

무용평론가로 일을 시작했다. 이후 파리8대학에 무용과가 생기면서 대학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파리8대학은 들뢰즈 등 유명한 이론가들로 이미 명성이 있는 곳이었고, 대학이 어떠해야 한다는 비전에 대해 굉장히 열려 있는 곳이다. 학과를 설립한 학과장을 비롯해 초기 멤버들은 무용계와 긴밀히 연결하고자 했고, 이것은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무용과의 정체성이다. 우리는 항상 실천에 기반하여 춤을 읽고, 엮고, 혼합해서 새로운 개념을 구성하고, 또 이론적으로 성찰하려고 한다. 이런 믿음의 근간에는 무용수의 실천을 통한 지식과 이론적 지식 모두가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는 철학이 있다.

이론보다 실천적인 측면에서 더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렇다면 현재의 연구 관심사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무용에 대한 이론이나 연구가 정치적, 혹은 사회적으로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에 관심이 많다. 지난 15년 동안 공연 분석이나 무용 비평보다는, 움직임과 춤이 약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권한을 부여(empowering)할 수 있는가에 대해 연구해 왔다. 대학 동료들과 무용수, 창작자, 소마틱 지도자, 사회복지사 등과 함께 춤과 움직임 연습이 어떻게 하면 현장과 연계된 실천(practice)이 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그러면서 장애에 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장애’ 연구의 길을 걷게 된 과정이다. 사실 프랑스에서는 ‘장애’라는 말이 없기도 하고, 이제 막 시작된 학문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연구를 하면서 세계 여러 나라의 장애학, 장애예술 등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 네크워크를 통해 이 분야에 관한 영감을 나누고 시각을 확장해 왔다.

프로젝트 제목이 <예술과 장애>가 아니라 <예술과 연약함>인데, 어떤 의미인가?

흔히 말하는 ‘장애’라는 단어를 굳이 사용하지 않은 것은, 우리가 하려는 것이 궁극적으로 장애에 국한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서다. 무엇이 장애인지, 어떤 종류의 장애가 있는지 등을 규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 연구 방식은 주로 ‘억압(oppression)’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억압의 원인이 무엇이든지―장애든, 이주든, 성별이든, 인종이든―그것을 마주해야 한다. 물론, 사회 속에서 모두가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정치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춤을 통해’ 우리가 그것을 해결할 수 있을지,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할지 등이 바로 나의 질문이다. 춤이 억압이나 불평등을 해결하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 그 춤이 정치적 의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실천에 기반한 연구라고 하셨는데, 기존의 ‘학문적’ 연구와 어떤 차이가 있나?

실천에 기반한 연구가 학계에 지배적인 학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천학(practice-based)’이라는 단어는 영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실제 연구’ ‘실습 기반’ ‘현장 연구’ 등과 같은 다양한 하위 범주가 있다. 이러한 작업 방식들은 공존하면서 서로 깊이 연관을 맺고 있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정의된 바는 없다. 우리는 사회학이나 무용학, 인류학 등 어떤 방법론을 가지고 주제에 그것을 적용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람, 장소, 지형, 문제 등 무엇이든지 먼저 그 상황에서 시작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질문과 깊이 연결되는 방법론을 구축하려고 한다. 연약함이나 장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여성이지만, 특권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백인’이다. 나는 장애인이 아니다. 따라서 내가 연구자로서 장애인이나 예술가, 이주민 등을 지원하는 연구를 한다면, 할 수 있는 첫 번째 일은 그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가치를 부여하도록 돕는 일일 것이다.

그것이 이번 리서치 프로젝트에서 참가자들과 함께하고 있는 ‘바디스토밍’으로 발전한 것인가?

그렇다. 최근 몇 년 동안 학문적 교육 시스템의 표준과 관습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고 있었다. 매우 개방적인 방식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25년 이상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나에게 가르침은 일상이 되었고, 그것에서 빠져나가기가 정말 어려웠다. 그래서 더 나은 교육 방법을 찾고자 학생, 무용수들과 2년간 워킹그룹을 만들어서 ‘바디스토밍(body storming)’이라는 방식을 개발했다. 바디스토밍은 이슈를 공유하는 방법론으로, 참가자들과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에 관해 논의할 것인지 등을 소통하는 방식이다. 바디스토밍은 하나의 과정으로서의 상태일 뿐, 무엇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풍경 만들기(landscaping)’는 어떤 중요한 상황에 대해 공유하는 방식이다. 특히, 고립된 상태에서 작업하는 비장애인 무용수들에게 이 방식은 획기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다른 사람의 지식을 공유하는 이 스토리텔링은 어떤 사람들이 겪은 어려웠던 상황 등을 공유하고, 그룹이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해준다.

  • 콘크리트 벽체와 나무 테이블로 꾸며진 카페 안. 두 사람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다.
  • 이자벨이 대화하고 있다.

이번 한국에서의 워크숍 첫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스태프들까지도 함께 활동하도록 한 것이다. 대개 프로듀서들은 직접 참여하기보다는 뒤에서 지원하는 데 더 익숙하다. 이런 연구 프로젝트에서 프로듀서들과의 협업이 어떻게 진행이 될지 매우 기대된다.

프로덕션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엄청난 양의 지식이 순환되는 것 같다. 이 점은 늘 흥미롭다. 이론적·정치적 토론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런 것들이 이번 리서치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어떤 연관성이 있고, 우리가 그것에 동의하고 있는지 등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이론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우리는 정치적 인식도 함께할 수 있다. 물론, 사람마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며, 이는 지식 체계에 따른 결과다. 창작물 안에서 장애에 관해 이야기할 때 이런 맥락은 언제나 중요하다. 예를 들어, 우리가 휠체어가 접근할 수 없는 극장에서 휠체어 사용자와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만들려고 한다면, 그 맥락 자체가 프로젝트의 중심이 될 것이다. 또, 생태학적 관점으로도 바라볼 수 있다. 프로덕션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정확히 프로젝트의 생태라는 관점에서 작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창작하고, 어떤 사람은 지원한다는 것은 흔한 고정관념이다. 시대는 변하고 있고, 우리는 그러한 시각을 바꿔야 한다.

이제 한국에서의 일정을 마치면 프랑스로 돌아가서 참가자들과 온라인으로 리서치를 이어가게 될 텐데, 어떤 주제와 포맷으로 진행되나? 그 과정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프랑스와 비교해 보면, 우리 리서치 그룹의 강점은 참가자들이 제도 밖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기관의 지원을 받기는 하지만, 각자가 기관에 소속돼 있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 기반으로 작업하고 있어서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그들은 극장 공연을 하고, 도시 안에 살고 있으며, 스튜디오에서 작업한다. 극장, 도심, 스튜디오는 어떤 맥락에서는 서로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각자 독립적으로 분리된 부분도 있다. 이번 리서치에서는 참가자들에게 ‘리서치 그룹’으로서 가장 시급한 질문이 무엇인지 정할 것을 제안했다. 물론, 이 ‘시급한 문제’가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내 역할은 그 필요가 무엇이고, 해결 방법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것일 뿐이다. 자료가 부족한 상황이라 우리의 논의 중에 이론적 질문이 빠진 것은 아닌지, 예술이나 리서치를 생산적인 방식으로 하고 있는지, 다양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과 협업하기 위해 제대로 된 방식을 구축하고 있는지 등을 질문하고 있다.

이 리서치 프로젝트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 것으로 예상하나?

이 프로젝트가 뭔가를 꼭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리서치 그룹에서는 함께 상상하고 함께 보는 것도 중요하다. 어떤 사물, 책, 잡지, 논문 혹은 우리가 보호하고자 하는 집단을 함께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결과가 무엇이 될지 알아내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이번 한국에서의 워크숍은 결과로 가기 위한 경로(route)를 파악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프랑스에서 작업하고 있는 프로젝트에서는 참여자 모두 각자의 작업방식을 공유했다. 그중에 발달장애 무용수가 있었는데, 긴 기간 동안 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 그녀에게 ‘맵핑(mapping)’부터 해보라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녹색 감자, 붉은 감자가 그려진 아주 우아한 도표를 만들었고, 빙 둘러앉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로 들어가서 그 그림을 놓고 자신의 작업을 들려줬다. 이처럼 리서치 참가자들이 가져오는 모든 것이 우리 연구의 자원(resource) 역할을 할 것이다. 나는 우리 프로젝트에 어떤 예측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프로젝트에 대한 공통된 접근 방식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 자체도 직접적인, 또는 간접적인 자원이 될 수 있다.

시차에 적응할 새도 없이 새로운 환경을 흡수하며 참가자들과 연일 진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숨차게 들어보았다. 일부는 우리나라 장애예술계와 겹치는 상황도 있었고, 어떤 부분은 문화적 차이가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사회적 약자 이슈에 접근할 때 어떤 방법론으로 리서치 하는 것이 더 현장에 밀착하는 것일까 하는 고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워크숍은 그런 문제의식의 출발점이 되었고, 향후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서로 지식을 공유하고 장애예술가들과의 만남을 이어갈 예정이다. 변화의 조짐을 감지한 참가자들의 눈빛을 통해 이후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상상해보았다.

  • 오디오 장비와 큰 에어컨이 설치돼 있는 넓은 연습실 안. 한 사람이 발꿈치를 모으고 양 팔을 아래쪽 사선으로 늘어뜨린 자세를 하고 서 있다. 여러 명의 참여자가 둥그런 모양으로 각자 편하게 앉아 이 모습을 지켜본다.
  • 큰 스크린이 설치돼 있는 넓은 연습실 안. 마주선 두 사람이 두 팔은 맞잡아 위 아래로 뻗고 다리는 조금 구부린 자세를 하고 있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두 명씩 짝을 지어 각각 다양한 동작을 하고 있다.
  • 큰 스크린이 설치돼 있는 넓은 연습실 안.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서서 각자 다른 동작을 하고 있다. 한 사람은 양 팔을 사선으로 쭉 뻗고 다리를 벌린 자세, 한 사람은 양 팔을 접어 가슴쪽으로 모은 자세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도 각자 혹은 짝을 지어 동작을 하고 있다.
  • 넓은 연습실 안. 열 명 남짓 참여자가 일렬로 서서 각자 앞사람의 어깨에 손을 짚은 채 웃고 있다.
  • 넓은 연습실 안. 여러 사람이 옆으로 나란히 서서 허리 높이고 손을 올리고, 서로의 손바닥을 약간의 간격을 두고 마주보도록 하고 있다.
  • 넓은 연습실 안. 열 여섯 명 남짓한 사람들이 의자나 바닥에 둥그렇게 모여 앉은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가운데에는 커다란 흰 종이가 놓여 있다.

국제협력 리서치 프로젝트 <예술과 연약함(Arts and Vulnerability)>
오프라인 리서치 워크숍(2023.04.21.~28.,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연습실) ©이규철

국제협력 리서치 프로젝트 <예술과 연약함(Arts and Vulnerability)>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은 국내 장애예술 창작 환경을 살펴 이를 토대로 발전 방향을 전망하고 장애예술 콘텐츠를 확보하고자 국제협력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이에 국내외 장애예술 관련 전문가 9인이 참여하여, 다양한 장애 이슈에 관해 탐구하는 국제협력 리서치 <예술과 연약함>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그 첫해로 한국 장애예술의 사회적 상황과 필요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고 구체적인 연구 계획을 세울 예정이다. 지난 4월 21~28일에는 이자벨 지노(Isabelle Ginot) 교수가 한국의 참가자들과 함께 이슈를 되짚어보고 실천에 기반한 연구를 위한 공동방법론을 모색하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자벨 지노(Isabelle Ginot)

파리8대학 무용과 교수로, 특히 사회적 취약성의 맥락에서 신체 및 무용 연습과 정치적, 사회적 용도에 관한 연구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A.I.M.E.(Associations of Moving and Committed Individuals)의 공동 창립자인 그녀는 사회적 또는 건강이 불안정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무용과 신체 훈련을 기반으로 한 일련의 신체 훈련법을 개발했다.
연구 분야 : 신체 기술, 신체적 방법론, 무용과 장애의 사회적·신체적 연계, 예술 프로젝트, 안무 작업에 대한 분석
파리8대학 홈페이지 인물 정보(링크)

성무량

축제와 극장을 거쳐 현재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mooryang@hotmail.com

번역·정리. 이윤숙 스탭서울 PD
사진. 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자료제공.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023년 5월 (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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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5 18: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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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빠리8대학 국제교류로 다녀왔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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