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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인문극장 2023 <댄스 네이션>

리뷰 춤의 나라와 무국적의 몸들

  • 하은빈 연극평론가
  • 등록일 2023-06-14
  • 조회수870

리뷰

10대엔 왜인지 해마다 케이팝 댄스로 체육 수행평가를 치렀다. 춤에는 엄연한 계급이 있다는 약속과 합의가 어찌나 신속하고 은밀하게 이루어졌던지 누구도 내게 그 사실을 일러주지 않았다. 춤을 출 수 있는 애들은 따로 있었고, 그들이 아니면 주제넘게 잘 춰서는 안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엄금된 것은 춤을 원하는 일이었다. 그런 중요한 규율을 모르는 아이는 엄혹한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어느 날 나는 모두 앞에서 원더걸스의 <노바디>를 추었다가 강당에 모인 전교생을 뒤집어놓게 된다. 그렇게 많은 이들을 한꺼번에 웃길 기횔랑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았다. 전류와도 같은 수치심이 온몸을 흘러다니며 춤에 대한 열망을 살균했고 내가 ‘춤의 나라’ 국민이 아니라는 사실을 구석구석에 깊이 각인했다.

춤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은 다른 이들에게도 바늘구멍처럼 작다는 사실을, 뛰어난 무용수들 또한 그 문 앞에서 끝없이 고전한다는 사실을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된다. 연극 <댄스 네이션>의 무대에 오른 몸들, 해링턴 댄스학원 유소년부의 10대 무용수들에게도 그 문은 너무 멀고 작아서 끊임없이 이들을 전전긍긍하게 만든다. 그들은 매일 치열하게 춤추지만, 그 사실이 곧 그들 모두가 춤의 나라 국민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나라의 ‘국적’이란 가장 숙련된 몸을 검증하는 엄중하고 근엄한 제도에 의해서만 드물게 주어지는 까닭이다. 댄스부 선생인 ‘패트’가 그토록 시종일관 호통을 치는 것도 엄혹한 춤의 규율을 오랜 시간 체화했기 때문이리라.

팀에서 가장 탁월한 무용수인 ‘아미나’와 ‘주주’조차도 춤의 국경을 구획하며 떨어지는 불호령에 일일이 얼어붙는다. 연습이 끝나면 둘은 기다렸다는 듯이 서로에 대한 칭찬을 쏟아내지만, 이야기의 초점은 그들이 얼마나 그 춤을 만끽했는지에 있지 않다. 그들의 관심은 옆돌기가 안정적이었는지, 회전 속도가 어떠했는지 따위에, 그러니까 안무라는 약속을 얼마나 잘 수행했는지에 있다. 춤의 나라의 국적은 그것을 가장 빈틈없이 체현한 자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경연에서 주주가 실수하며 넘어졌을 때 아미나가 저도 모르게 그 빈자리를 대신해 춤추는 장면은 안무의 명령이 얼마나 엄중한지를 명백히 보여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누군가는 주어진 움직임을 수행해야 한다는 책임이 아미나의 등을 떠민 것이다.

요컨대, 그들을 춤의 나라 국민으로 만들어줄 요건이란 안무를 지키는 일이다. 일정한 타이밍에 오차 없이 움직이고 정지하기로 하는 약속, 일말의 실패도 허용하지 않는 규약을 행하는 일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나는 이 공연에, 정확히 말하자면 이 공연에 장애를 가진 배우들이 출연한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다. 안무라는 이 오랜 이념, 춤을 다스려온 이 유구한 기술 앞에서 장애를 가진 몸은 번번이 불복하고 불화하기 때문이다. 안무는 특정한 방식으로 이동하거나 움직이도록 무용수의 몸을 훈육하고 통제하려 하지만,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움직이거나 고정할 수 있는 종류의 신체를 가지지 않은 몸은 역으로 안무를 좌절시키고 패배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 장애를 가진 몸이 추는 춤은 미적이고 정치적인 춤의 다른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이 공연에 출연한 백우람과 강보람은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움직이거나 고정할 수 있는 조건의 몸을 가지지 않았다. 그들은 그 사실을 배우로서, 퍼포머나 무용수로서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아 작업해 왔다. 가령 백우람이 연구해온, 배우 자신이 ‘침묵의 5, 6초’라고 명명한 바 있는 특유의 지연의 순간은 <댄스 네이션>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백우람의 언어장애에서 기인하는, 약속된 대사를 약속된 순간에 수행할 수 없어 생겨나는 침묵은 역설적으로 대체 불가능한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그 에너지는 지연의 순간에 강력한 긴장감을 주고 에너지를 발산하는 동력으로 작용하여, 극 중 인물인 ‘루크’를 흥미롭고 입체적으로 구성한다. 차 안에서 이루어지는 느리고 나직한 그의 독백 장면에서, 또 딴청을 피우는 듯 그가 주주에게 사랑에 관해 돌려 묻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백우람이 구사하는 침묵을 기꺼이 기다렸으며 사랑했다.

한편, 같은 지점에서 나는 강보람이 춤추지 않는 배역으로 등장하는 것에 약간 놀랐던 것 같다. 강보람 역시 안무와 양립할 수 없는 운동적 조건을 가진 몸으로 일으키는 고유한 몸짓을 여러 무대에 걸쳐 오랜 시간 탐색해 온 퍼포머였기 때문이다. 나는 은연중에 강보람의 춤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계속해서 계획과 예상을 비켜나고 어긋나는 몸, 따라서 약속대로 이동하거나 움직이게 하려는 안무의 힘을 거꾸러뜨리는 강보람의 춤을. 그러니까 이를테면 강보람이 아미나나 주주로 등장하리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동안 안무와 눈부시게 겨루며 질문을 던져온 그가, <댄스 네이션>에서 춤과 대결하며 춤의 나라에 모종의 균열을 가하리라고.

그러나 예상과 달리 강보람은 무릎을 다쳐 춤출 수 없게 된 ‘바네사’나, 과거에 춤을 췄으나 이제는 병에 걸려 춤의 나라에서 밀려난 인물인 ‘주주 엄마’를 그려낸다. 이 지점에서 <댄스 네이션>이 장애를 활용하는 방식에 다소간의 균열이 인다. 백우람의 장애는 다른 춤추는 몸들과 다를 바 없는 특이성이자 차이로 그려지는 한편, 강보람의 몸이 가진 장애는 그 인물로 하여금 춤을 출 수 없게 하는 부득이한 신체 조건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강보람의 장애는 춤의 나라가 그 몸을 추방하는 근거처럼 재현되거나 해석될 수 있다. 그것이 공연의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과하게 앞서나간 우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게 누구보다도 무용수로 각인된 그가 이 눈부신 춤의 무대에서 유일하게 춤추지 않는다는 사실에 관해 생각하지 않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더 큰 틀에서 <댄스 네이션>은 춤의 나라 바깥의 몸을, 그 ‘무국적자들’의 춤과 몸과 삶을 충분히 보여준다. 패트 쌤의 혹독한 통제에도, 몸을 다스리려는 끊임없는 훈련과 노력에도 춤의 나라 국경 밖으로 꿈틀거리며 뛰쳐나가는 야생적이고 거친 몸. 기어이 사춘기가 찾아들고, 자위와 보지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으며, 터질 듯이 뜨거운 야망과 생명력과 자의식으로 입안에 송곳니가 돋치는 몸. 가장 중요한 순간에 생리가 터지고,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며, 선생님을 두려워하는 동시에 인정을 갈구하고, 팔뚝을 깨물며 피를 뿜어내는 몸. 남몰래 조용히 날아오르는, 자신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그 비밀을 들려주고 또 건네받는 몸. 그들의 몸은 하나같이 수치심 없이 춤을 원하고 사랑한다.

그들이 춤을 사랑한다는 것을 목격하는 순간마다, 춤이 끊임없이 그들을 다그치고 쫓아냄에도 여전히 그렇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마다, 몸의 어딘가가 따끔거렸다. 춤은 아이들을 몰아세우고 추궁하지만, 춤의 국경을 넘나드는 몸들은 거칠게 움직이며 간절히 속삭인다. “춤을 통해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엄마의 암이 나을 수 있을까?” “세계의 기아가 종식될 수 있을까?” 춤의 틈새로 삐져나가 그들이 닿으려는 것은 타인이고, 바깥이며, 자신 이외의 것들이다. 그들은 춤으로부터 미끄러지면서 계속해서 욕망한다. “춤을 추고 싶어. 춤을 추고 싶어! 춤을 추고 싶어!” 부대끼고 분열하며 꿈틀대는 이 몸들의 폭발하는 듯한 에너지로 부글거릴 때, 붉은 무대는 타오르듯 빛난다. 춤의 나라의 높은 장벽이 무너질 듯 위태롭게 흔들린다. 그 장벽 안팎에서 무릎 꿇거나 머리를 조아렸던 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쳐든다.

<댄스 네이션>이 보여주는 춤은 바르게 정렬되거나 일사불란하게 접히고 펼쳐지는 화려한 스펙터클과는 사뭇 다르다. <댄스 네이션>이 고용한 몸들이 장애를 가진, 중·노년의, 훈육되지 않은, 크거나 작은 몸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댄스 네이션>은 춤의 나라가 언제나 문밖으로 추방해온 바로 그 몸들을 데려와, 안무 밖으로 튀어나오는 보풀과 솔기가 그대로 드러나는 춤을 추도록 한다. 몸들이 추는 춤은 때로 삐걱대고 움찔거리며 꿈틀거리고 서툴다. 그러나 그 춤은 안무에 의해 자신을 삭제하지 않는 채로 제 몸에 안무를 실어 나른다. 그들은 추어야 하는 춤이 아니라 추고 싶은 춤을 춘다. 자신과, 자신이 생각하는 타인을 위해 춤춘다.

객석에 앉아 이 무국적의 몸에, 그들이 추는 뜨거운 춤에 속절없이 마음을 빼앗겼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따갑고 매운 기운이 다시금 온몸을 돌아다녔다. 이번에는 수치심이 아니었다. 수치심이 오래전에 죽여놓았다고 생각했던 무엇이었다.

댄스 네이션 Dance Nation

<댄스 네이션>

두산아트센터 | 2023.5.2. ~ 5.20. | 두산아트센터 Space111

클레어 배런의 원작()을 이오진이 윤색·연출한 작품으로, 춤을 통해 몸의 욕망을 발견하는 10대 여성들의 성장 드라마.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댄스 파이널 우승을 목표로 한 10대들의 강렬하고 치열한 춤의 세계를 보여준다. 10대를 훌쩍 지난 우리의 몸은 다시 그때를 감각할 수 있을까? 작품에 등장하는 10대 여성들은 다양한 나이대의 배우들이 연기하여 이들의 거침없는 몸의 욕망과 감각을 보여준다.

▸ 공연정보
▸ 두산아트센터 홈페이지

하은빈

목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미학을 전공했으며 공연을 하고 글을 쓴다. 무용극 <연인들은 바닥없는 호수에서 헤엄친다>, 연극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 <단명소녀 투쟁기> 등에서 춤을 추고 움직임을 만들었다. 웹진 [연극in],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연극비평란에 공연에 관한 글을 기고한다. 무늬글방 지기 중 하나. 불구의 몸, 상한 마음, 잘못한 사람에 관심이 있다.
bingguuuu@naver.com
▸ 인스타그램

사진 제공. 두산아트센터

2023년 6월 (42호)

상세내용

리뷰

10대엔 왜인지 해마다 케이팝 댄스로 체육 수행평가를 치렀다. 춤에는 엄연한 계급이 있다는 약속과 합의가 어찌나 신속하고 은밀하게 이루어졌던지 누구도 내게 그 사실을 일러주지 않았다. 춤을 출 수 있는 애들은 따로 있었고, 그들이 아니면 주제넘게 잘 춰서는 안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엄금된 것은 춤을 원하는 일이었다. 그런 중요한 규율을 모르는 아이는 엄혹한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어느 날 나는 모두 앞에서 원더걸스의 <노바디>를 추었다가 강당에 모인 전교생을 뒤집어놓게 된다. 그렇게 많은 이들을 한꺼번에 웃길 기횔랑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았다. 전류와도 같은 수치심이 온몸을 흘러다니며 춤에 대한 열망을 살균했고 내가 ‘춤의 나라’ 국민이 아니라는 사실을 구석구석에 깊이 각인했다.

춤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은 다른 이들에게도 바늘구멍처럼 작다는 사실을, 뛰어난 무용수들 또한 그 문 앞에서 끝없이 고전한다는 사실을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된다. 연극 <댄스 네이션>의 무대에 오른 몸들, 해링턴 댄스학원 유소년부의 10대 무용수들에게도 그 문은 너무 멀고 작아서 끊임없이 이들을 전전긍긍하게 만든다. 그들은 매일 치열하게 춤추지만, 그 사실이 곧 그들 모두가 춤의 나라 국민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나라의 ‘국적’이란 가장 숙련된 몸을 검증하는 엄중하고 근엄한 제도에 의해서만 드물게 주어지는 까닭이다. 댄스부 선생인 ‘패트’가 그토록 시종일관 호통을 치는 것도 엄혹한 춤의 규율을 오랜 시간 체화했기 때문이리라.

팀에서 가장 탁월한 무용수인 ‘아미나’와 ‘주주’조차도 춤의 국경을 구획하며 떨어지는 불호령에 일일이 얼어붙는다. 연습이 끝나면 둘은 기다렸다는 듯이 서로에 대한 칭찬을 쏟아내지만, 이야기의 초점은 그들이 얼마나 그 춤을 만끽했는지에 있지 않다. 그들의 관심은 옆돌기가 안정적이었는지, 회전 속도가 어떠했는지 따위에, 그러니까 안무라는 약속을 얼마나 잘 수행했는지에 있다. 춤의 나라의 국적은 그것을 가장 빈틈없이 체현한 자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경연에서 주주가 실수하며 넘어졌을 때 아미나가 저도 모르게 그 빈자리를 대신해 춤추는 장면은 안무의 명령이 얼마나 엄중한지를 명백히 보여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누군가는 주어진 움직임을 수행해야 한다는 책임이 아미나의 등을 떠민 것이다.

요컨대, 그들을 춤의 나라 국민으로 만들어줄 요건이란 안무를 지키는 일이다. 일정한 타이밍에 오차 없이 움직이고 정지하기로 하는 약속, 일말의 실패도 허용하지 않는 규약을 행하는 일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나는 이 공연에, 정확히 말하자면 이 공연에 장애를 가진 배우들이 출연한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다. 안무라는 이 오랜 이념, 춤을 다스려온 이 유구한 기술 앞에서 장애를 가진 몸은 번번이 불복하고 불화하기 때문이다. 안무는 특정한 방식으로 이동하거나 움직이도록 무용수의 몸을 훈육하고 통제하려 하지만,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움직이거나 고정할 수 있는 종류의 신체를 가지지 않은 몸은 역으로 안무를 좌절시키고 패배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 장애를 가진 몸이 추는 춤은 미적이고 정치적인 춤의 다른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이 공연에 출연한 백우람과 강보람은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움직이거나 고정할 수 있는 조건의 몸을 가지지 않았다. 그들은 그 사실을 배우로서, 퍼포머나 무용수로서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아 작업해 왔다. 가령 백우람이 연구해온, 배우 자신이 ‘침묵의 5, 6초’라고 명명한 바 있는 특유의 지연의 순간은 <댄스 네이션>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백우람의 언어장애에서 기인하는, 약속된 대사를 약속된 순간에 수행할 수 없어 생겨나는 침묵은 역설적으로 대체 불가능한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그 에너지는 지연의 순간에 강력한 긴장감을 주고 에너지를 발산하는 동력으로 작용하여, 극 중 인물인 ‘루크’를 흥미롭고 입체적으로 구성한다. 차 안에서 이루어지는 느리고 나직한 그의 독백 장면에서, 또 딴청을 피우는 듯 그가 주주에게 사랑에 관해 돌려 묻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백우람이 구사하는 침묵을 기꺼이 기다렸으며 사랑했다.

한편, 같은 지점에서 나는 강보람이 춤추지 않는 배역으로 등장하는 것에 약간 놀랐던 것 같다. 강보람 역시 안무와 양립할 수 없는 운동적 조건을 가진 몸으로 일으키는 고유한 몸짓을 여러 무대에 걸쳐 오랜 시간 탐색해 온 퍼포머였기 때문이다. 나는 은연중에 강보람의 춤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계속해서 계획과 예상을 비켜나고 어긋나는 몸, 따라서 약속대로 이동하거나 움직이게 하려는 안무의 힘을 거꾸러뜨리는 강보람의 춤을. 그러니까 이를테면 강보람이 아미나나 주주로 등장하리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동안 안무와 눈부시게 겨루며 질문을 던져온 그가, <댄스 네이션>에서 춤과 대결하며 춤의 나라에 모종의 균열을 가하리라고.

그러나 예상과 달리 강보람은 무릎을 다쳐 춤출 수 없게 된 ‘바네사’나, 과거에 춤을 췄으나 이제는 병에 걸려 춤의 나라에서 밀려난 인물인 ‘주주 엄마’를 그려낸다. 이 지점에서 <댄스 네이션>이 장애를 활용하는 방식에 다소간의 균열이 인다. 백우람의 장애는 다른 춤추는 몸들과 다를 바 없는 특이성이자 차이로 그려지는 한편, 강보람의 몸이 가진 장애는 그 인물로 하여금 춤을 출 수 없게 하는 부득이한 신체 조건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강보람의 장애는 춤의 나라가 그 몸을 추방하는 근거처럼 재현되거나 해석될 수 있다. 그것이 공연의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과하게 앞서나간 우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게 누구보다도 무용수로 각인된 그가 이 눈부신 춤의 무대에서 유일하게 춤추지 않는다는 사실에 관해 생각하지 않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더 큰 틀에서 <댄스 네이션>은 춤의 나라 바깥의 몸을, 그 ‘무국적자들’의 춤과 몸과 삶을 충분히 보여준다. 패트 쌤의 혹독한 통제에도, 몸을 다스리려는 끊임없는 훈련과 노력에도 춤의 나라 국경 밖으로 꿈틀거리며 뛰쳐나가는 야생적이고 거친 몸. 기어이 사춘기가 찾아들고, 자위와 보지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으며, 터질 듯이 뜨거운 야망과 생명력과 자의식으로 입안에 송곳니가 돋치는 몸. 가장 중요한 순간에 생리가 터지고,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며, 선생님을 두려워하는 동시에 인정을 갈구하고, 팔뚝을 깨물며 피를 뿜어내는 몸. 남몰래 조용히 날아오르는, 자신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그 비밀을 들려주고 또 건네받는 몸. 그들의 몸은 하나같이 수치심 없이 춤을 원하고 사랑한다.

그들이 춤을 사랑한다는 것을 목격하는 순간마다, 춤이 끊임없이 그들을 다그치고 쫓아냄에도 여전히 그렇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마다, 몸의 어딘가가 따끔거렸다. 춤은 아이들을 몰아세우고 추궁하지만, 춤의 국경을 넘나드는 몸들은 거칠게 움직이며 간절히 속삭인다. “춤을 통해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엄마의 암이 나을 수 있을까?” “세계의 기아가 종식될 수 있을까?” 춤의 틈새로 삐져나가 그들이 닿으려는 것은 타인이고, 바깥이며, 자신 이외의 것들이다. 그들은 춤으로부터 미끄러지면서 계속해서 욕망한다. “춤을 추고 싶어. 춤을 추고 싶어! 춤을 추고 싶어!” 부대끼고 분열하며 꿈틀대는 이 몸들의 폭발하는 듯한 에너지로 부글거릴 때, 붉은 무대는 타오르듯 빛난다. 춤의 나라의 높은 장벽이 무너질 듯 위태롭게 흔들린다. 그 장벽 안팎에서 무릎 꿇거나 머리를 조아렸던 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쳐든다.

<댄스 네이션>이 보여주는 춤은 바르게 정렬되거나 일사불란하게 접히고 펼쳐지는 화려한 스펙터클과는 사뭇 다르다. <댄스 네이션>이 고용한 몸들이 장애를 가진, 중·노년의, 훈육되지 않은, 크거나 작은 몸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댄스 네이션>은 춤의 나라가 언제나 문밖으로 추방해온 바로 그 몸들을 데려와, 안무 밖으로 튀어나오는 보풀과 솔기가 그대로 드러나는 춤을 추도록 한다. 몸들이 추는 춤은 때로 삐걱대고 움찔거리며 꿈틀거리고 서툴다. 그러나 그 춤은 안무에 의해 자신을 삭제하지 않는 채로 제 몸에 안무를 실어 나른다. 그들은 추어야 하는 춤이 아니라 추고 싶은 춤을 춘다. 자신과, 자신이 생각하는 타인을 위해 춤춘다.

객석에 앉아 이 무국적의 몸에, 그들이 추는 뜨거운 춤에 속절없이 마음을 빼앗겼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따갑고 매운 기운이 다시금 온몸을 돌아다녔다. 이번에는 수치심이 아니었다. 수치심이 오래전에 죽여놓았다고 생각했던 무엇이었다.

댄스 네이션 Dance Nation

<댄스 네이션>

두산아트센터 | 2023.5.2. ~ 5.20. | 두산아트센터 Space111

클레어 배런의 원작()을 이오진이 윤색·연출한 작품으로, 춤을 통해 몸의 욕망을 발견하는 10대 여성들의 성장 드라마.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댄스 파이널 우승을 목표로 한 10대들의 강렬하고 치열한 춤의 세계를 보여준다. 10대를 훌쩍 지난 우리의 몸은 다시 그때를 감각할 수 있을까? 작품에 등장하는 10대 여성들은 다양한 나이대의 배우들이 연기하여 이들의 거침없는 몸의 욕망과 감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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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빈

목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미학을 전공했으며 공연을 하고 글을 쓴다. 무용극 <연인들은 바닥없는 호수에서 헤엄친다>, 연극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 <단명소녀 투쟁기> 등에서 춤을 추고 움직임을 만들었다. 웹진 [연극in],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연극비평란에 공연에 관한 글을 기고한다. 무늬글방 지기 중 하나. 불구의 몸, 상한 마음, 잘못한 사람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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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두산아트센터

2023년 6월 (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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