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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송이 피아니스트

인터뷰 건반을 누를 때마다, 소리의 꽃이 피어난다

  • 송현민 음악평론가
  • 등록일 2023-06-14
  • 조회수1085

인터뷰

해를 거듭할수록 장애 음악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국내외에서 눈부신 활동을 펼치는 그들의 연주는 음악을 ‘하고 있다’라는 표현을 넘어 ‘해내고 있다’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선곡과 연주도 수준급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특별했던 시선과 걱정도 편견이었음을 일깨워준다. 그 사이로 박송이의 이름도 부지런히 보인다.

지난 4월 18일 제43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 캠퍼스 갤러리에서 예술제 ‘닿다’가 열렸다. 재학 중인 장애 학생들이 함께한 공연과 전시회였는데, 박송이는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과 함께 피아노 연주를 맡아 감동을 선사했다. 박송이는 2018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다. 학업은 물론 활동도 다양했는데, 지난해에는 제10회 대한민국장애인예술경연대회 스페셜K 어워즈(주최 한국장애인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부산대상국제음악콩쿠르 대학(일반)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그녀는 오랜만의 인터뷰라면서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근황과 계획을 들려주었다.

  •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박송이
  • 건반 위 피아니스트 박송이의 손가락

곡을 준비하고 연주회에서 선보이기까지의 과정이 어떻게 되나?

일곱 살 때 음악 공부를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듣고 연주하는 것에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선생님이 연주하는 것을 듣고, 그것을 따라 하고 연습하며 외워간다. 그리고 악보를 손끝으로 읽어가며 악상 기호나 세부적인 부분들을 익힌다. 이렇게 전체적인 틀과 디테일이 잡히면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간다.

작품마다 연마하는 시간이 다르겠다.

최근에는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을 공부했다. 예전부터 좋아한 곡이어서 전 악장을 다 했다. 예전에는 막연히 좋아했는데, 막상 접해보니 화성의 진행도 복잡하고 섬세한 표현이 많아서 외우는데 힘들었다.

최근 연주한 작품 중 가장 행복했던 곡은 무엇인가?

슈베르트가 작곡한 <즉흥곡>(작품번호 90, 도이치번호 899)이다. 4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곡으로, 우리나라의 뚜렷한 사계절처럼 악장마다 계절감이 잘 느껴진다. 자연의 소리를 참 좋아하는데, 이러한 소리가 작품에서 들려왔다.

나를 위한 ‘단련’, 피아노 명곡들과의 ‘단합’

박송이는 네 살 무렵 시력을 잃었다. “오렌지색 같은 밝은 색상을 좋아한다”라고 말하는 그녀가 지금 느끼는 색과 형태는 이때의 기억에 의존하고 있다. 부산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녀가 피아노를 처음 만난 것은 일곱 살 무렵. 선생님이 연주하는 선율들은 금방 그녀의 기억과 손끝으로 배어들었다. 흥미를 갖는 모습에 어머니는 딸을 청주맹학교로 유학시켰다. 음악이 ‘운명’이 된 건 우연히 나간 부산예술고등학교 콩쿠르에서 2등에 입상하면서다. 입학추천서가 날아왔고, 일반전형으로 입학했다. 졸업 후에는 독일의 명문 드레스덴 국립음대로 진학했다.

사람이나 사물의 첫인상을 어떻게 느끼나?

목소리나 말투를 통해 그 사람에 대한 느낌을 갖는다. 신중한 사람인지 유머러스한 사람인지, 혹은 지금 어떤 심정이구나 하는 느낌이 목소리를 통해 느껴진다. 사물은 한 번씩 만져보곤 한다. 피부에 닿는 느낌으로 날씨와 햇볕도 느낄 수 있다. 빛과 어둠도 느낄 수 있다.

최근 시각장애 피아니스트들의 선곡력이 월등해지고 있는 것 같다. 어떤 곡을 연주할 때 가장 행복한가?

쇼팽, 리스트, 라흐마니노프의 작품들이다. 낭만주의 작곡가로 분류하지만, 한 명씩 보면 각각의 분위기가 다르다. 쇼팽은 서정적인 친구 같고, 리스트는 화려하고 기교적인 것을 좋아하고, 라흐마니노프는 낭만주의의 대표자 같다. 특히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을 연주할 때면 저의 이런 감정이 잘 묻어나는지, 연주 후에 사람들이 찾아와 “라흐마니노프를 좋아해요?”라고 먼저 물어온다. 그 질문에 행복해질 때가 있다.

반면 공들여도 아직은 거리가 있는 작곡가나 작품이 있다면?

브람스와 그의 <피아노 소나타 1번>이다. 그도 낭만주의를 대표한 음악가였는데, 이상하게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연습할 때마다 손가락 위치도 낯설게 느껴지고, 손가락 사이의 간격도 잘 조정해야 하고, 화성도 많아 악보도 복잡하다.

학교에서 여러 수업을 받으며 이론적인 공부도 할 텐데, 수업 내용은 어떻게 익히나?

시각장애인용 점자 정보 단말기가 있다. 선생님들이 문서나 악보를 이메일로 보내거나 USB 메모리에 담아서 주시면 이 단말기가 정보를 점자와 음성으로 읽어준다. 선생님들의 배려가 늘 고맙다. 제가 그 정보들을 잘 접했는지 확인하시고, 빠진 게 있다면 연주를 통해 다시 들려주시곤 한다.

연주나 연습 일정이 없을 때 하는 본인만의 특별한 취미가 있다면 무엇인가?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한다. 유명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나 마스터 클래스 영상들을 늘 찾아본다. 많이 연주되지 않는 특이한 작품을 찾아보는 것도 좋아한다. 이러한 영상들을 접하고 나면 저만의 고민이 시작된다. 상상력을 동원해 그들의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찾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 외에 늘 함께하는 활동보조 선생님과 산책도 하고 이야기도 나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하기 전, 독일 드레스덴 국립음대에서 3년여 동안 유학했다. 기사들을 보니 그 시간이 조금 힘들게 다가왔다고 하는데, 어떤 점이 힘들었나?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유학했다. 어렸을 때부터 독립적이어서 혼자 생활하는 것은 별문제가 없었다. 초청 연주도 많아 새로운 도시의 무대에 서기도 했고, 교수들이 들려주는 피아노 소리에도 제가 몰랐던 새로운 부분들이 담겨 있어서 좋았다. 주위에 적극적으로 알리지도 않았는데도, 저의 이야기를 듣고 가족처럼 응원하고 도와주는 현지인과 한인들도 많았다. 문화, 언어, 음식, 기후 등의 차이는 유학생 누구라도 겪는 것일 텐데, 저에게는 유독 힘들게 다가왔다. 특히 독일의 날씨가 한국과 달라서 적응하기 힘들었다.

  • 흰색 셔츠에 검정색 자켓, 반묶음 헤어스타일을 한 피아니스트 박송이
  • 피아니스트 박송이

고향 바다에 펼쳐놓을 선율의 물결

박송이의 고향은 부산이다. 이런 연유로 현재 부산에서 아르테문화복지회(대표 김진) 소속으로 다양한 연주 활동을 선보이고 있다. 아르테문화복지회는 장애 음악가들을 위한 부산 내 유일한 비영리 예술단체이다. 무대에 올라 그녀가 누르는 건반 하나하나가 내는 소리는 장애 음악가를 바라보는 편견과 시선을 바꿔놓는다. 철저히 준비하고 신중하게 연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러한 활동을 인정받아 올해 4월 제43회 장애인의 날 기념행사에서 부산광역시장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근래에는 비장애 음악가와 장애 음악가가 앙상블을 결성하여 활동하기도 한다. 사실 피아노는 독주나 협연은 물론 실내악에서도 중요한 악기이고, 다른 악기들과 함께할 수 있는 레퍼토리도 많은데, 혹시 실내악단 결성과 활동에 대한 계획은 없나?

지금은 실내악을 좋아하고 있을 뿐, 아직 실행하진 못하고 있다. 바이올린과 첼로, 피아노가 함께하는 멘델스존의 <피아노 3중주 1번> 작품은 꼭 연주해보고 싶은 곡 중 하나다.

시각장애 피아니스트인 김예지 국회의원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녀가 개발한 ‘3D 촉각 악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기존 점자 악보는 악상 기호나 음표가 많이 생략되고 이를 읽어가는 과정에서 연주자를 위한 정확도가 떨어져서, 연주자들이 원본에 가까운 악보를 통해 더 잘 연주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박송이 님도 나중에 여러 음악가를 위해 하고 싶은 일이나 계획이 있을 것 같다.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

지난 2월 부산 금정문화회관에서 한 아르테문화복지회 공연에 참여했다. 시각장애를 지닌 색소폰 연주자를 비롯해 성악가 등이 함께했다. 아르테문화복지회는 부산 최초로 장애 음악가들이 모인 단체로, 아직은 미약하지만 앞으로 부산 지역 장애 음악가와 함께하는 든든한 공동체가 되는 것이 목표다. 저도 이곳을 통해 연주와 교육 활동을 점차 늘려나가고, 음악을 전공하고 싶어도 장애 때문에 못 하는 이들을 돕고 싶다. 음악 전문학교와 외국 음악대학 유학 등 비장애 음악가들이 거치는 과정을 거치면서 쌓인 ‘작은 노하우’를 공유하고 싶다. 이러한 계획은 ‘큰 꿈’이고, 여러 연주 활동을 통해 그 꿈에 다가가고 싶다. 작년에 입상한 콩쿠르와 약속된 연주들도 하반기에 있는데, 그중 제가 대상을 수상한 스페셜K 어워즈 측의 초청으로 10월에 미국에서 공연이 있다. 8월에는 2023 부산세계장애인대회에서도 연주가 예정되어 있다.

그녀에게 삶의 롤모델을 물었다. 음악가답게 역시나 음악가를 꼽는다.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 크리스티안 짐머만을 좋아하고,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를 가장 좋아한다고. 그가 연주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곡들을 듣고 있노라면 “따듯함과 아늑함이 느껴진다”고 한다. 그녀의 피아노 소리가 누군가에게 희망과 용기의 신호탄이 되기를 그리고 ‘따듯함’과 ‘아늑함’의 소리로 다가가길 바란다.

  • 지난해 제10회 대한민국장애인예술경연대회 스페셜K 어워즈에서 대상을 수상한 모습. 무대 위 수많은 수상자들이 있고 앞쪽으로 검정색 드레스를 입은 피아니스트 박송이가 마이크를 들고 말하고 있다. 뒤편 대형 스크린에는 박송이의 얼굴이 크게 나온다.

    지난해 제10회 대한민국장애인예술경연대회 스페셜K 어워즈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 지난 4월 18일 장애인의 날의 맞아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 캠퍼스 갤러리에서 열린 예술제 ‘닿다’에서 김대진 총장과 협연한 모습. 백발의 김대진 총장과 검정색 정장을 입은 피아니스트 박송이가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 연주하고 있다.

    지난 4월 18일 장애인의 날의 맞아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 캠퍼스 갤러리에서 열린 예술제 ‘닿다’에서 김대진 총장과 협연했다.

박송이

일곱 살 때 피아노를 시작했다. 부산예술고 재학 중 러시아 국립 타타르스탄 심포니오케스트라와 협연했고, 졸업 후 독일 드레스덴 국립음대에서 유학(2011~2013)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 재학 중이다. 2022년 제10회 대한민국장애인예술경연대회 스페셜K 어워즈 대상 수상, 부산대상국제음악콩쿠르 대학(일반)부에서 입상, 올해 4월 제43회 장애인의 날 기념행사에서 부산광역시장 표창장을 수상했다. 현재 부산 아르테문화복지회 등의 여러 연주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psy030400@naver.com

송현민

음악평론가. 월간 [객석] 편집장.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했고, ‘한반도의 르네상스’를 주장했던 음악평론가 박용구론으로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을 수상했다.
bstsong@naver.com

사진.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자료 제공.아르테문화복지회

2023년 6월 (42호)

상세내용

인터뷰

해를 거듭할수록 장애 음악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국내외에서 눈부신 활동을 펼치는 그들의 연주는 음악을 ‘하고 있다’라는 표현을 넘어 ‘해내고 있다’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선곡과 연주도 수준급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특별했던 시선과 걱정도 편견이었음을 일깨워준다. 그 사이로 박송이의 이름도 부지런히 보인다.

지난 4월 18일 제43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 캠퍼스 갤러리에서 예술제 ‘닿다’가 열렸다. 재학 중인 장애 학생들이 함께한 공연과 전시회였는데, 박송이는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과 함께 피아노 연주를 맡아 감동을 선사했다. 박송이는 2018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다. 학업은 물론 활동도 다양했는데, 지난해에는 제10회 대한민국장애인예술경연대회 스페셜K 어워즈(주최 한국장애인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부산대상국제음악콩쿠르 대학(일반)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그녀는 오랜만의 인터뷰라면서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근황과 계획을 들려주었다.

  •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박송이
  • 건반 위 피아니스트 박송이의 손가락

곡을 준비하고 연주회에서 선보이기까지의 과정이 어떻게 되나?

일곱 살 때 음악 공부를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듣고 연주하는 것에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선생님이 연주하는 것을 듣고, 그것을 따라 하고 연습하며 외워간다. 그리고 악보를 손끝으로 읽어가며 악상 기호나 세부적인 부분들을 익힌다. 이렇게 전체적인 틀과 디테일이 잡히면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간다.

작품마다 연마하는 시간이 다르겠다.

최근에는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을 공부했다. 예전부터 좋아한 곡이어서 전 악장을 다 했다. 예전에는 막연히 좋아했는데, 막상 접해보니 화성의 진행도 복잡하고 섬세한 표현이 많아서 외우는데 힘들었다.

최근 연주한 작품 중 가장 행복했던 곡은 무엇인가?

슈베르트가 작곡한 <즉흥곡>(작품번호 90, 도이치번호 899)이다. 4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곡으로, 우리나라의 뚜렷한 사계절처럼 악장마다 계절감이 잘 느껴진다. 자연의 소리를 참 좋아하는데, 이러한 소리가 작품에서 들려왔다.

나를 위한 ‘단련’, 피아노 명곡들과의 ‘단합’

박송이는 네 살 무렵 시력을 잃었다. “오렌지색 같은 밝은 색상을 좋아한다”라고 말하는 그녀가 지금 느끼는 색과 형태는 이때의 기억에 의존하고 있다. 부산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녀가 피아노를 처음 만난 것은 일곱 살 무렵. 선생님이 연주하는 선율들은 금방 그녀의 기억과 손끝으로 배어들었다. 흥미를 갖는 모습에 어머니는 딸을 청주맹학교로 유학시켰다. 음악이 ‘운명’이 된 건 우연히 나간 부산예술고등학교 콩쿠르에서 2등에 입상하면서다. 입학추천서가 날아왔고, 일반전형으로 입학했다. 졸업 후에는 독일의 명문 드레스덴 국립음대로 진학했다.

사람이나 사물의 첫인상을 어떻게 느끼나?

목소리나 말투를 통해 그 사람에 대한 느낌을 갖는다. 신중한 사람인지 유머러스한 사람인지, 혹은 지금 어떤 심정이구나 하는 느낌이 목소리를 통해 느껴진다. 사물은 한 번씩 만져보곤 한다. 피부에 닿는 느낌으로 날씨와 햇볕도 느낄 수 있다. 빛과 어둠도 느낄 수 있다.

최근 시각장애 피아니스트들의 선곡력이 월등해지고 있는 것 같다. 어떤 곡을 연주할 때 가장 행복한가?

쇼팽, 리스트, 라흐마니노프의 작품들이다. 낭만주의 작곡가로 분류하지만, 한 명씩 보면 각각의 분위기가 다르다. 쇼팽은 서정적인 친구 같고, 리스트는 화려하고 기교적인 것을 좋아하고, 라흐마니노프는 낭만주의의 대표자 같다. 특히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을 연주할 때면 저의 이런 감정이 잘 묻어나는지, 연주 후에 사람들이 찾아와 “라흐마니노프를 좋아해요?”라고 먼저 물어온다. 그 질문에 행복해질 때가 있다.

반면 공들여도 아직은 거리가 있는 작곡가나 작품이 있다면?

브람스와 그의 <피아노 소나타 1번>이다. 그도 낭만주의를 대표한 음악가였는데, 이상하게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연습할 때마다 손가락 위치도 낯설게 느껴지고, 손가락 사이의 간격도 잘 조정해야 하고, 화성도 많아 악보도 복잡하다.

학교에서 여러 수업을 받으며 이론적인 공부도 할 텐데, 수업 내용은 어떻게 익히나?

시각장애인용 점자 정보 단말기가 있다. 선생님들이 문서나 악보를 이메일로 보내거나 USB 메모리에 담아서 주시면 이 단말기가 정보를 점자와 음성으로 읽어준다. 선생님들의 배려가 늘 고맙다. 제가 그 정보들을 잘 접했는지 확인하시고, 빠진 게 있다면 연주를 통해 다시 들려주시곤 한다.

연주나 연습 일정이 없을 때 하는 본인만의 특별한 취미가 있다면 무엇인가?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한다. 유명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나 마스터 클래스 영상들을 늘 찾아본다. 많이 연주되지 않는 특이한 작품을 찾아보는 것도 좋아한다. 이러한 영상들을 접하고 나면 저만의 고민이 시작된다. 상상력을 동원해 그들의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찾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 외에 늘 함께하는 활동보조 선생님과 산책도 하고 이야기도 나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하기 전, 독일 드레스덴 국립음대에서 3년여 동안 유학했다. 기사들을 보니 그 시간이 조금 힘들게 다가왔다고 하는데, 어떤 점이 힘들었나?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유학했다. 어렸을 때부터 독립적이어서 혼자 생활하는 것은 별문제가 없었다. 초청 연주도 많아 새로운 도시의 무대에 서기도 했고, 교수들이 들려주는 피아노 소리에도 제가 몰랐던 새로운 부분들이 담겨 있어서 좋았다. 주위에 적극적으로 알리지도 않았는데도, 저의 이야기를 듣고 가족처럼 응원하고 도와주는 현지인과 한인들도 많았다. 문화, 언어, 음식, 기후 등의 차이는 유학생 누구라도 겪는 것일 텐데, 저에게는 유독 힘들게 다가왔다. 특히 독일의 날씨가 한국과 달라서 적응하기 힘들었다.

  • 흰색 셔츠에 검정색 자켓, 반묶음 헤어스타일을 한 피아니스트 박송이
  • 피아니스트 박송이

고향 바다에 펼쳐놓을 선율의 물결

박송이의 고향은 부산이다. 이런 연유로 현재 부산에서 아르테문화복지회(대표 김진) 소속으로 다양한 연주 활동을 선보이고 있다. 아르테문화복지회는 장애 음악가들을 위한 부산 내 유일한 비영리 예술단체이다. 무대에 올라 그녀가 누르는 건반 하나하나가 내는 소리는 장애 음악가를 바라보는 편견과 시선을 바꿔놓는다. 철저히 준비하고 신중하게 연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러한 활동을 인정받아 올해 4월 제43회 장애인의 날 기념행사에서 부산광역시장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근래에는 비장애 음악가와 장애 음악가가 앙상블을 결성하여 활동하기도 한다. 사실 피아노는 독주나 협연은 물론 실내악에서도 중요한 악기이고, 다른 악기들과 함께할 수 있는 레퍼토리도 많은데, 혹시 실내악단 결성과 활동에 대한 계획은 없나?

지금은 실내악을 좋아하고 있을 뿐, 아직 실행하진 못하고 있다. 바이올린과 첼로, 피아노가 함께하는 멘델스존의 <피아노 3중주 1번> 작품은 꼭 연주해보고 싶은 곡 중 하나다.

시각장애 피아니스트인 김예지 국회의원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녀가 개발한 ‘3D 촉각 악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기존 점자 악보는 악상 기호나 음표가 많이 생략되고 이를 읽어가는 과정에서 연주자를 위한 정확도가 떨어져서, 연주자들이 원본에 가까운 악보를 통해 더 잘 연주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박송이 님도 나중에 여러 음악가를 위해 하고 싶은 일이나 계획이 있을 것 같다.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

지난 2월 부산 금정문화회관에서 한 아르테문화복지회 공연에 참여했다. 시각장애를 지닌 색소폰 연주자를 비롯해 성악가 등이 함께했다. 아르테문화복지회는 부산 최초로 장애 음악가들이 모인 단체로, 아직은 미약하지만 앞으로 부산 지역 장애 음악가와 함께하는 든든한 공동체가 되는 것이 목표다. 저도 이곳을 통해 연주와 교육 활동을 점차 늘려나가고, 음악을 전공하고 싶어도 장애 때문에 못 하는 이들을 돕고 싶다. 음악 전문학교와 외국 음악대학 유학 등 비장애 음악가들이 거치는 과정을 거치면서 쌓인 ‘작은 노하우’를 공유하고 싶다. 이러한 계획은 ‘큰 꿈’이고, 여러 연주 활동을 통해 그 꿈에 다가가고 싶다. 작년에 입상한 콩쿠르와 약속된 연주들도 하반기에 있는데, 그중 제가 대상을 수상한 스페셜K 어워즈 측의 초청으로 10월에 미국에서 공연이 있다. 8월에는 2023 부산세계장애인대회에서도 연주가 예정되어 있다.

그녀에게 삶의 롤모델을 물었다. 음악가답게 역시나 음악가를 꼽는다.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 크리스티안 짐머만을 좋아하고,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를 가장 좋아한다고. 그가 연주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곡들을 듣고 있노라면 “따듯함과 아늑함이 느껴진다”고 한다. 그녀의 피아노 소리가 누군가에게 희망과 용기의 신호탄이 되기를 그리고 ‘따듯함’과 ‘아늑함’의 소리로 다가가길 바란다.

  • 지난해 제10회 대한민국장애인예술경연대회 스페셜K 어워즈에서 대상을 수상한 모습. 무대 위 수많은 수상자들이 있고 앞쪽으로 검정색 드레스를 입은 피아니스트 박송이가 마이크를 들고 말하고 있다. 뒤편 대형 스크린에는 박송이의 얼굴이 크게 나온다.

    지난해 제10회 대한민국장애인예술경연대회 스페셜K 어워즈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 지난 4월 18일 장애인의 날의 맞아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 캠퍼스 갤러리에서 열린 예술제 ‘닿다’에서 김대진 총장과 협연한 모습. 백발의 김대진 총장과 검정색 정장을 입은 피아니스트 박송이가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 연주하고 있다.

    지난 4월 18일 장애인의 날의 맞아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 캠퍼스 갤러리에서 열린 예술제 ‘닿다’에서 김대진 총장과 협연했다.

박송이

일곱 살 때 피아노를 시작했다. 부산예술고 재학 중 러시아 국립 타타르스탄 심포니오케스트라와 협연했고, 졸업 후 독일 드레스덴 국립음대에서 유학(2011~2013)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 재학 중이다. 2022년 제10회 대한민국장애인예술경연대회 스페셜K 어워즈 대상 수상, 부산대상국제음악콩쿠르 대학(일반)부에서 입상, 올해 4월 제43회 장애인의 날 기념행사에서 부산광역시장 표창장을 수상했다. 현재 부산 아르테문화복지회 등의 여러 연주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psy030400@naver.com

송현민

음악평론가. 월간 [객석] 편집장.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했고, ‘한반도의 르네상스’를 주장했던 음악평론가 박용구론으로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을 수상했다.
bstsong@naver.com

사진.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자료 제공.아르테문화복지회

2023년 6월 (42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의 조건에 따라 이용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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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5 12: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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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극복하고 훌륭한 연주가가 된 박송이 피아니스트! 정말 감동입니다. 강인한 정신력과 예술에 대한 집념이 현재의 박송이 피아니스트를 만들었겠지요.작은 힘듬에도 포기가 빠른 제가 부끄럽네요.앞으로도 훌륭한 연주 기대하겠습니다.

2023-06-15 08: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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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불편함에도 불평ㆍ불만하고 분노까지 표출하는 현시대에, 송이양이야말로 작은영웅이라 감히 말씀드리고 싶네요. 힘겹게 세상의 편견과 싸워 이겨낸 모녀의 눈물의 시간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먹먹하고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2023-06-15 06: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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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으로 음악을 창작한다는 것에 마음이 쩌릿해 옵니다. 한곡 한곡을 귀로 듣고 손으로 익히면서 느껴지는 감흥은 또 어땠을까.. 감히 짐작하게 되구요. 사실 저도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쳤었는데 그만두었다가 사고로 손이 마비되는 바람에 재활치료로 시작하면 어떨지 진지하게 고민했었거든요. 근데 또 악보를 못보게 되었다는 게 걸리더라고요. 그땐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진심을 다한다면 장애라는 것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는 거ㅛ을요. 현재 저는 여러 개로 보이는 이상한 세상을 느린 손으로 마음을 다해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아름다운 긍정 미긍(美肯) 입니다. 기회가 닿으면 송이님의 피아노선율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댓굴 참여 이벤트)

제 2021-524호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WA-WEB 접근성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 | 1.업체명: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고 112 3.웹사이트:http://www.ieum.or.kr 4.유효기간:2021.05.03~2022.05.02 5.인증범위:이음 온라인 홈페이지 |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47조제1항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9조제5항에 따라 위와 같이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를 발급합니다. 2021년 05월 03일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